G.G.사토

 

[image]
'''NPB 등록명'''
G.G.사토(G.G.佐藤)
'''본명'''
사토 타카히코(佐藤隆彦)
'''생년월일'''
1978년 8월 9일 (46세)
'''국적'''
일본
'''출신지'''
지바 현 이치카와 시
'''출신고교'''
토인가쿠엔고 (가나가와)
'''포지션'''
외야수, 1루수
'''투타'''
우투우타
'''체격'''
184cm, 98kg
'''프로입단'''
2003년 드래프트 7순위
'''소속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2004~2011)
포르티투보 베이스볼 볼로냐(2012)[1]
치바 롯데 마린즈(2013~2014)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48번'''


'''G.G.사토 (2013~2014)'''

미야자키 아츠시(2015~2018)
1. 개요
2. 선수 경력
3.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서의 유명세
4. 그의 행동, 명언
5. 역대 성적
6. 관련 문서


1. 개요



자막버전
일본프로야구 선수.
G.G.사토는 등록명이고 본명은 佐藤隆彦(사토 다카히코). G.G. 사토라는 등록명은 어릴 때부터 타고난 '''노안'''이라서 친구들이 지은 노인네같다는 의미의 일본어 지지쿠사이(ジジくさい)라는 묘한 별명의 지지를 따서 GG로 지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국말로 GG사토를 번역하면 '''노인네 사토'''. 이름 때문에 중국에서는 좀 난감한 듯 싶다.

2. 선수 경력


호세이대학 졸업후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 싱글A팀에 입단했고 이 시기에 어깨가 좋다는 장점을 살려 포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3년 드래프트에 세이부 라이온즈에 지명되어 마이너리그에서 일본프로야구로 역수입된 최초의 선수.
이후 타격능력과 어깨는 괜찮았지만 수비가 영 꽝이라 주로 1루수로 출장하다가 외야수로 전향하여 활약했다.
올림픽에서 복귀한 후 다음 해인 2009년에 2할9푼1리에 25홈런 83타점을 올리면서 커리어하이를 찍었으나 이듬해인 2010년부터 갑자기 기량이 쇠퇴. 결국 2011시즌이 채 끝나지도 않은 10월 9일에 소속팀인 세이부로부터 시즌 후 방출 선고를 받았다. 일단 본인은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싶어했는데 이미 당시 나이가 한국 나이로 34살이라 받아주는 구단이 있을지 의문이었고, 결국 2011년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다.
2012년 2월에 뜬금없이 이탈리아 리그 팀하고 계약했다는 뉴스가 들어왔다. 어쨌거나 본인으로서는 현역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듯했다. # 그러나 결국 이탈리아 리그에서도 1년밖에 뛰지 못하고 해고당하여 정말로 은퇴할 듯했다. 이탈리아 리그 성적은 42 경기 출전에 타율 .319, 3홈런, 22 타점, OPS.847.
하지만 은사인 이토 쓰토무가 감독으로 새로 선임된 치바 롯데 마린즈의 입단테스트에 합격하면서 2013 시즌부터 다시 일본프로야구에 복귀하였다. 그런데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볼을 빠뜨리는 플레이를 펼쳐서 보는 사람의 어이를 상실하게 했다.영상 주로 1루수 백업이나 우타 대타요원으로 출장하고 있으며 여기서도 팬 서비스는 여전한 듯. 동료 선수들, 구단 스태프와 팬들을 데리고 AKB48恋するフォーチュンクッキー에 맞춰 군무를 추기도 했다. 영상 2013년 기준 10경기에 선발출장했으며, 선발로 나올 때는 거의 지명타자로만 나왔다. 1경기에서 좌익수로 나오긴 했다. 또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지명타자로 1경기 선발출장.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쓰리런 홈런을 치기도 했으나 팀은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총 전적 4:1로 패해 탈락.
2014 시즌 후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방출됐다. 이후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고 측량 회사의 매니저로 입사했다.[2] 주말에는 사내 팀 소속으로 연식야구를 한다고 한다..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실업야구 개념의 사회인야구가 아닌, 한국처럼 아마추어들이 월급 안 받고 하는 그런 사회인야구 팀이라고 한다.
또한 2016년부터 야구 해설가가 되었으며, 방송계에도 진출했다. 2017년에는 '여자 성주 나오토라'라는 일본 사극에 특별출연하며 드라마 연기에 도전한 적이 있다.
박동희 기자가 2013 시즌 초반 그의 이야기를 담은 칼럼을 남기기도 했다. 궁금한 사람들은 한 번 읽어볼 것.#
은퇴한 신조 츠요시나 미국으로 간 이가와 게이와 함께 '기인'으로 불릴 만한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북두의 권'의 주인공인 켄시로빠. 키와 몸무게를 최대한 켄시로와 가깝게 맞추려고 하고 있으며[3] 말투도 켄시로를 따라하고 있다고 하였다.
참고로, 타석에 들어설 때의 테마곡은 소녀시대Gee, 자신의 이름 탓에 이 곡으로 정했다고. 그의 응원가는 2년 반 후 롯데에 입단한 로엘 산토스가 물려받았다. 그런데 산토스도 1시즌 만에 방출당하면서 다시 주인이 없는 상태.
이외에도 그와 관련된 행동이나 명언이 아래의 항목에 별도로 첨부되어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3.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서의 유명세


[image]

'''"아아아아악!!! 대쓰요!!! 노쳐쓰요!!! 노쳐쓰요!!! 고마워요 GG사또". 아~고마워요 사또"''' - 허구연 MBC 해설위원

'''"좌중간! 좌익수 갑니다! 잡습니다! 잡습니다! 아! 아...아...사토가 떨어뜨립니다! G.G. 사토가 공을 떨어뜨렸습니다! 또 1점을 내줍니다!"''' - 경기 당시 일본 중계석 캐스터의 탄식.[4]

국내팬들에게는 색다른 의미로 유명하다. 그 이름을 널리 떨치게 된 계기는 바로 베이징 올림픽 야구 4강전에서 보여준 고영민의 뜬공을 놓치는 환상의 적시타급 에러[5]. 이 실책으로 점수가 4:2에서 5:2로 벌어졌다.
아마추어도 잡을 법한 평범한 외야 플라이를 글러브에서 빠뜨리는 유쾌한 플레이한국팀 전매특허인 8회의 기적에 크게 공헌하면서 '''고마워요 사토'''라는 허구연 해설위원의 찬사를 받았고, 이승엽에게 홈런을 맞고 전주 이씨의 칭호를 받은 이와세 히토키와 더불어 한국팀 병역 브로커에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스케줄상 일본팀은 계속 야간 경기만 하다가 갑자기 주간 경기를 가지게 되어서 적응이 안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감안해도 너무나 엄청난 에러였다. 전년 우익수로 실책이 0였던 선수를 굳이 좌익수로 기용한 호시노 센이치에 대한 비난 여론도 많았다. 물론 국가대표급 외야수라면 어딜가도 기본은 한다. 저런 타구는 외야 어딜보든 잡을 수 있는 타구다. 굳이 이걸 들지 않아도 베이징 올림픽에서 호시노의 수비 기용에는 문제가 많았다. 유격수만 너무 많이 데리고 온 점 부터 시작해서 준수한 유틸리티 플레이어인 주니치의 모리노 마사히코를 지명타자로 기용하는 기행아닌 기행까지 보여줬다.
예능에서 그가 나와 한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올림픽 대회가 아마추어 수준인줄 알고 별로 긴장하지 않았는데 막상 가서보니 엄청난 선수들이 포진해있어서[6] 일본팀 톱 선수들이 긴장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 자신도 갑자기 긴장감이 생겨서 저런 플레이를 했다고 밝혔다.
이 일로 충격이 심했는지 소속팀으로 복귀해서 심리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일본(특히 2ch이나 니코니코 동화)에서는 볼을 빠뜨리는 플레이를 펼친 선수에게 G.G+선수 이름을 붙이고 놀려먹는 소재[7]로 이용되기도 했다. 참 잊을 수 없는 플레이를 펼친 대가라고 해야 할런지…
사토는 이 히 드랍 더 볼TV 아사히반면교사 컨셉 인기 예능프로인 <시쿠지리 선생>에서 자학네타로 써먹었다. 그것도 방송에 일본대표 유니폼을 입고...
모르는 사람도 꽤 많은데, 그는 준결승 후에 치러진 미국과의 3, 4위전에서도 히 드랍 더 볼을 시전했다. 심지어 여기서는 다른 동료가 잡으려고 자리까지 다 잡고 대기하는 뜬공을 자기가 잡겠다고 무리하게 덤벼들다가 둘 다 놓친 케이스라 빼박 100% 본인 잘못. 그 바람에 4:1로 앞서나가다가 미국에 3점포 홈런을 허용하면서 원점이 된 뒤 더블 스코어로 미국에게 동메달을 내줬다. 준결승에서의 실책까지 생각하면 그에게는 올림픽에서의 기억은 평생 악몽으로 남을 듯.
10년이 넘게 지나도 사토의 실책은 잊혀지지 않고 있으며, '세기의 낙구'라 불린다.[8] 영고라인 입성 확정.

4. 그의 행동, 명언


  • 마이너리그 시즌 오프 때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돈이 궁해 당시 같이 귀국하던 자니즈 사무소 소속 연예인의 보디가드 아르바이트를 했다.
  • 옷가게에서 우연히 후지와라 노리카[9]와 알렉스 카브레라[10]를 상점에서 마주치게 되었는데, 후지와라 노리카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카브레라에게 달려갔다고. 혹시 변태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샀다고 한다.
  • 2006년의 캐치프레이즈는 "슬림하게 땅!"
  • 2007년의 캐치프레이즈는 "사랑의 파동포 GG 사토!"
  • 세이부 라이온즈 입단 후 첫 캠프에서 "死すら生ぬるい、死あるのみ(죽음조차 부족하다. 죽음이 있을 뿐)"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북두의 권켄시로의 대사이다.
  • 처음으로 4번 타순에 놓인 2007년 7월 12일~13일 이틀간의 시합을 끝낸 뒤 다음과 같이 말함. "4番は強いて言えば、付き合っている彼女に初めて、あなたに出会ってよかったといわれたようなもの。責任感が芽ばえたということです(4번에 대해서 굳이 말한다면, 사귀는 여자에게 처음으로 당신이랑 사귀어서 정말 다행이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책임감이 싹튼다고 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다음 날 4번은 카브레라로 교체되었다.
  • 2007년 8월 30일, 한달 만에 4번으로 복귀해서 1루 방향의 내야안타를 친 뒤에 한 말 "奇跡、奇跡という言葉は起こすためにある(기적, 기적이라는 말은 일어나기 위해서 있다)!"
  • 2008년 5월 5일 홈런을 친 뒤 어린이날을 기념해 다음과 같이 말함. "子供たちよ、夢を現実に。ホームランに夢を乗せて(아이들아, 꿈을 현실로. 홈런에 꿈을 실어라)!"
  • 2008년 5월 22일 12호 투런 홈런을 날린 뒤 스포츠지 기자가 올해는 타격 3관왕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하자 다음과 같이 답변. "30歳を過ぎた独身女性に『結婚しないの?』と聞くのと同じぐらい、それはデリケートな質問です(30살 넘은 독신여성에게 '혼인 안 해?'라고 물어보는 것과 같을 만큼이나 그건 예민한 질문입니다)。"
  • 2008년 7월 29일 베이징 올림픽 대표선수로 뽑힌 뒤 첫 홈런을 치고 나서 "体は北京へ行きますが、魂は西武ドームに置いていきます(몸은 북경으로 갑니다만, 혼은 세이부돔에 놓고 가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
  • "一生忘れられないようなプレイをしてきます(평생 잊어버릴 수 없을 것 같은 플레이를 하고 오겠습니다)。" - 2008 베이징 올림픽 직전 인터뷰에서.
  • "もう読売の心は読み切っていました。読んでおいて良かった(벌써 요미우리의 마음은 읽어두었습니다. 읽어둬서 다행이었어요)。" 2008년 교류전에서 요미우리와의 시합을 앞두고 요미우리 신문을 15분 동안 정독한 뒤 시합에 들어가 홈런 2발을 치고 나서 한 말.
  • 2008년 5월 22일 야쿠르트와의 교류전 직전에 325cc짜리 야쿠르트를 먹고 홈런을 침.
  • 2008년 5월 12일 요코하마와의 교류전 직전에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의 슈마이를 먹은 뒤 홈런을 침.
  • 연애 중이던 여성에게 "君は魔女だ。僕の心に魔法をかけた(너는 마녀다. 나의 마음에 마법을 걸었다)。"라고 말함. 하지만 그 여성은 "기분 나빠!"라고 말했다고 한다.
  • 데이트 중 "あっ消防車だ!でも、決して二人の愛の火は消せやしない(앗! 소방차다! 하지만 결코 우리들의 사랑의 불을 끌 수는 없어)。"라고 말함.
  • 역시 데이트 중 "君は怪盗ルパンかい?僕の心すら盗むのかい(너는 괴도 루팡이냐? 내 마음마저 훔쳐가는 거냐)?" 라고 말함.

어째 하는 행동이 이가와 게이 같다는 후문이... -_-;;

5. 역대 성적


역대 기록 (NPB)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타율
출루율
장타율
2004
세이부 라이온즈
45
57
17
2
0
3
9
8
0
5
.298
.349
.491
2005
37
56
12
3
0
2
3
3
0
3
.214
.254
.375
2006
45
133
33
6
0
4
17
18
2
5
.248
.275
.383
2007
136
486
136
'''31'''
(2위)
3
'''25'''
(5위)
69
65
7
54
.280
.351
'''.510'''
(4위)
2008
105
388
117
30
1
21
62
62
1
42
.302
.368
'''.546'''
(4위)
2009
136
502
146
'''34'''
(4위)
0
'''25'''
(5위)
83
69
1
52
.291
.357
.508
2010
53
162
33
4
0
6
19
13
1
13
.204
.257
.340
2011
1군 기록 없음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타율
출루율
장타율
2013
치바 롯데 마린즈
30
51
13
5
0
2
9
6
0
3
.255
.296
.471
2014
1군 기록 없음
<color=#373a3c> '''NPB 통산'''
(8시즌)
587
1835
507
115
4
88
270
245
12
178
.276
.338
.487

6. 관련 문서


[1] 이탈리아 야구팀[2] 이 측량 회사 사장이 친아버지다.[3] 실제 키가 184cm이며(켄시로와 '''1cm'''차이) 몸무게는 98kg('''2kg'''차이)이라고 한다. 이만하면 진성 켄시로빠 인증.[4] 이걸 보고 옆의 해설자는 "이 1점은 크네요..."라고 덧붙였다. 당시 일본 해설 영상. 6분 16초부터.[5] 이거 말고도 4회 이용규 안타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며 이날에만 2개의 실책을 보여줬다.[6] 미국은 마이너리거 + 대학선발의 혼성이었고, 캐나다 역시 마이너리거가 주축이었으며, 쿠바는 아마야구 최강이란 명성을 날리고 있었던데다가 한국과 대만은 자국의 프로선수들을 총출동 시켰다.[7] 한국에서 송신영, 한기주방화범 드립과 비슷한 밈.[8] 원래는 1973년 낙구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센트럴리그 9연패를 허용한 한신 타이거즈의 이케다 준이치에게 붙여진 말이고 이후 1979년 고시엔 18회 경기에서 낙구로 경기를 넘겨준 선수에게 쓰여진 말이었는데, 21세기 들어서서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낙구라 세기의 낙구라는 말은 옳다.[9] 당대 큰 인기를 끌었던 일본의 배우.[10] 세이부, 오릭스, 소프트뱅크에서 뛰었던 외국인 타자로 블라디미르 발렌틴 이전 일본야구 시즌 최다홈런 타이기록(55개, 오 사다하루, 터피 로즈와 공동)을 가졌던 강타자였다. 다만 미첼 리포트에 등재되는 등 약물 의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