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민
[clearfix]
1. 개요
현 두산 베어스의 코치.
현역 시절엔 주로 2루수로 출장했다. 일반적인 2루수 위치보다 더 외야 쪽으로 빠져 있는 그의 독특한 수비스타일 덕에 '''2익수(2루수 + 우익수)'''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수비 좋기로 유명한 두산 베어스의 내야수 중에서도 탄탄한 수비력을 갖춘 선수로 유명했다. '''넓은 수비범위를 뛰어다니며 팔을 쭉쭉 뻗어 공을 잡는 모습을 형사 가제트에 빗대 '고제트' 라는 별명도 있다.''' 심지어 응원가도 가제트 주제가에 맞춰 '고젯! 안타!'.
[image]
그의 별명 고제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현역 시절엔 이익수로 대표되는 특유의 수비 능력과 더불어 일단 나가면 홈을 밟는다는 창의적인 주루플레이로 유명한 선수였다. 볼넷도 잘 골라내서 타율 대비 높은 출루율을 보이며 장타포텐도 있어서 뜬금포도 종종 때려내곤 했다.
창의적인 주루플레이는 2군 시절부터 유명했다. 이 때문에 2군의 동료 선수들에게는 '야구천재'로 불렸으나, 2군의 모 코치는 '미친놈'인 줄 알았다고 회고하기도(...) 스피드 자체는 주루플레이를 장기로 하는 선수들 중에서는 그다지 특출난 편이 아니지만, 주루센스는 육상부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두산 야수들 중에서도 최고로 평가받았다.
문제는 '''극악의 컨택''' 능력. 별로 좋지 않은 선구안[6] 과 특유의 뻥스윙이 결합하다 보니 타율이 높지 않은 편이었다. 과거엔 뛰어난 수비와 주루능력, 비교적 높은 출루율, 가끔씩 때려내는 뜬금포 덕분에 2할 5푼만 쳐도 팀에 매우 도움이 되는 선수였으나, 전성기가 지난 이후엔 70경기 출장도 불안한 백업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변태라는 별명처럼 공수에서 변태적인 면모를 자랑한다. '''베이징올림픽 결승 쿠바전, 9회말 3:2로 앞선 1사 만루 상황에서 병살 수비 때 보여준 러닝스로우''' 를 본 진갑용이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던지는 섀끼도 있구나...." 라며 감탄(?)을 했으며, 박진만도 공이 뽈뽈뽈 거리면서 날아가는 걸 보면서 미치는 줄 알았다고...(...) 참고로 당시 두산 팬들은 만날 보던 거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보면서 던지는 순간 우승이라고 직감했는데, 타 팀 팬들은 뭐 저런 새끼가 있냐며 순간 경악했다고 한다.
1.1. '''고변태'''
그의 변태적인 행위를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1. '''2익수'''. 2익수라는 표현을 사실상 처음 만들어낸 주인공. 해당 항목 참고.
2. 보통 빠른 발과 마른 체격을 가지고 수비 부담이 높은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은 장타보다는 단타 위주로 안타 생산력을 올린다. 하지만 고영민은 풀스윙으로 장타율을 올려 홈런을 양산한다. 일단 때렸다 하면 대형 홈런. 특히 국제대회 때는 꼭 홈런을 하나씩 치곤 한다. 2009 WBC 때는 MLB의 대표적인 투수 친화 구장인 펫코 파크 좌중간을 훌쩍 넘겼고, 베이징 올림픽 직전 쿠바와의 평가전에서는 잠실에서 장외홈런에 근접한 초대형 홈런을 때리기도 했다. 올림픽 본선에서도 대만전에서 3점홈런 을 쳐 냈다. 사실 고영민은 겉으로는 말라 보이지 183cm의 작지 않은 키를 가진 강골이다. 여기에 수비할 때도 부각되는 사실이지만 손목 힘이 강해서 장타능력이 꽤 있는 편.
3. 일반적으로 한 선수에게서 나오기 힘든 괴랄한 스탯. 이른바 변태스탯. 볼넷과 삼진이 극단적으로 많아 2008년에는 볼넷 2위, 삼진 1위(...)를 기록했다. 통상적으로 선구안이 좋으면 볼넷이 많아지고 삼진이 줄어드는데 고영민은 볼넷 개수도 많으면서 삼진도 많다. 그러면서도 득점권 찬스에서 이상하게 강해 타율에 비해 타점이 상당히 많다. [7] 기록만 봐도 득점권 타율이 타율에 비해 '''1할'''가량 높다. 위에 언급한 2008년에도 무려 70타점을 기록했을 정도. 컨택 능력이 안좋은 점을 감안해 선구안은 좋은데 컨택 능력이 떨어져서 나오는 기록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나중에 밝혀진 사실로는 못 치는 공은 아예 손도 안대고 흘려보내는 스타일이라 볼넷도 많고 삼진도 많다고. 추신수의 스타일과 어느 정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물론 추신수의 경우에는 진짜 선구안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고, 볼넷 아니면 삼진이 많은 이유는 오히려 너무 섬세하게 구분이 가능해서이기도 하다. 대신 그런 스타일의 선수들이 항상 그렇듯 본인의 존과 심판의 존이 어긋날 때가 생기면 그 경기는 망...
4. 보통 선수와는 다른 기묘한 플레이 스타일. 3루 베이스를 맞는 2루타를 친 후 자기 루에 있던 수비수가 공을 든 채로 멍 때리고 있을때 단독 진루를 감행해 성공하거나[8] 과거의 한 팀이었던 이종욱과 상대팀을 뒤흔들기도 하고 2루수가 1루수에게 공을 던지는 동안 3루에서 홈을 밟는다든가 플라이 타구에서 1루에서 2루로 가는 플레이를 선보이고 2015년 두산우승을 결정지은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는 이지영이 앞쪽으로 잘 블로킹한 짧은 폭투에 홈까지 내달려 세이프되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마지막 병살 플레이 때도 여유있게 던지지 않고 던지기 힘든 터닝스로로[9] 박진만과 진갑용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5. 찍히는 사진마다 신비스러운 느낌으로 "역시 변태" 를 외치게 만드는 재주. 여기에서 그의 기묘한 포스를 느껴보자...
6. 어떤 의미에서는 KBO 최고의 인터뷰이로도 유명하다. 두산팬들은 고영민이 좋은 활약을 보여 경기 MVP가 유력시되면 9회말 역전 위기 찬스 때보다 더 가슴을 졸인다고... "바깥쪽에 포커페이스를 맞추고..."나 "김동주라는 선배님..." 등이 유명하다. '고무식'이라는 별명은 이 때문에 생겨난 것. 그런데 2009년 포스트시즌부터는 인터뷰 스킬이 엄청나게 좋아져서 팬들을 경악케 했다.
7. 최정에 버금가는 '사구를 부르는 얼굴'로도 유명하다. 주전이 된 이후 경기 출장 수가 적은 2009 시즌을 제외하고는 매해 사구 개수 순위권이다. 그 마른 몸매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게 맞아대는지 팬들이 궁금해할 정도. 사구를 맞을 때 표정이나 동작이 지극히 불쌍하면서도 변태스럽기 때문에 그날의 포토제닉을 장식한다.
다음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보여준 고변태 플레이들(...).
1. 베이징올림픽 지역예선에서 2루 땅볼 포구 미스로 팀 패배의 원인 제공
- 이것 때문에 베이징 예선을 한번 더 치르었다. 게다가 부정오더 논란에 휩싸이면서 일본 애들을 기쁘게 해주었다.
2. 베이징올림픽 본선 캐나다전, 7회초 무사 1, 2루 상황에서 2루 대주자로 나와 더블스틸을 시도하였으나 3루에서 아웃.
- 그 다음 3루 주자 이진영이 박진만 타석 때 캐나다 투수 데이비드 데이비슨의 폭투를 틈타 홈으로 진루하였지만 태그아웃되면서 결국 이닝이 마감되었다. '''류현진의 완봉승'''이 아니었으면 참 큰일날 뻔했다.
3. 베이징올림픽 준결승 일본전, 1회 초 뜬금없이 보여준 롤링송구
- 저걸 무리하게 송구하다가 이승엽과 니시오카가 부딪혀 주자방해로 2루 진루. 이후 1사 1, 3루에서 투수 앞 땅볼이 나와 병살타 처리가 충분했으나, 박진만과의 사인미스(?)로 타자 주자를 살려주면서 3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4. '''베이징올림픽 결승 쿠바전, 9회말 3:2로 앞선 1사만루 상황에서 병살 수비때 보여준 러닝스로우'''
- 진갑용은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던지는 x끼도 있구나...라며 감탄 을 했으며, 박진만도 공이 뽈뽈뽈 날아가는 걸 보며 미치는줄 알았다고(...)...고영민 스스로도 그 당시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회고했다.[10]
5.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회 결승전 3회 아오키의 직선타 포구실책으로 일본의 선취점에 일조함.
- '''게다가 역대 최강의 역전이 나올 뻔한 9회 귀신같은 헛스윙삼진'''....
아무튼 고영민에 대해 뭐라 표현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으면, 그저 '''변태같다''' 하면 된다.
2. 선수 경력
2.1. 짧았던 전성기
2002년 성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차 1번으로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았다. 고교 시절에도 수준급의 2루수로 주목받긴 했으나 2차 1번으로 지명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여서, 고영민의 1년 후배이자 다음해 야수 최대어인 박경수 스카우트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11] 하지만 고영민이 국가대표급으로 성장한 이후에는 그냥 그 순번에 뽑을 수 있는 선수를 뽑았다는 의견이 대세.
상위 순번 지명 선수임에도 주전 2루수였던 안경현의 벽에 막혀 입단 이후 4년 내내 2군 생활을 해야 했으며 1군에는 아주 가끔씩만 모습을 보였다. 1군 승격이 결정된 후 2군 마지막 경기에서 발목 부상을 당하는 등 어느 정도 불운이 겹치기도 했다. 4년째는 야구를 그만둘 생각을 했다고도 할 정도로 2군에서 설움을 많이 겪은 선수이며, 이 때문에 두산 팬들은 고영민을 2군 훈련장인 이천 베어스필드에서 키운 대표적인 선수로 생각한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김경문 감독의 기대를 받으며 국대급 내야수로 성장했다. 달감독 특유의 SM 플레이의 본보기로 유명하다. 일반적인 감독-선수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밀고 당기기 스킬이 시전된다고 봐도 좋을 듯...[12] 결국 포텐이 터지기 시작한 '''고영민은 이종욱-민병헌 과 함께 두산 육상부'''를 이끌며 두산 발야구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2007시즌에는 수준급의 수비력과 더불어 타격에서도 펀치력을 선보이며 두산의 중심타자인 3번타자로서 맹활약 하였고, 한국시리즈에서도 맹활약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7 시즌을 마치고 본인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2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까지 수상하며 국가대표 2루수로서의 최전성기를 알렸다.
'''베이징 올림픽과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 탄탄한 수비력을 높이 평가받아 정근우를 제치고 국가대표 주전 2루수로 활약'''했다. 위에도 언급했듯 대형삽질을 많이 저질러서 시청자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익수라는 별명답게 넓은 수비범위가 가장 주목'''받고 있지만, 2루수로서 '''고영민의 최대 강점은 바로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손목힘이 강해 스냅만으로 강한 송구'''를 할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이로써 더블플레이시 굉장한 위력을 보여주며, 특히 1루를 등지고 송구를 받아 피벗하면서 1루에 송구하는 장면에서는 고영민의 장점을 유감없이 볼 수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마지막 더블플레이 장면에서 많은 야구팬들이 심장을 쓸어내렸지만[13] 정작 두산팬들은 그러려니 했다고...
이렇게 07~ 08 시즌 고영민은 계속해서 승승장구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국가대표 2루수로서의 면모를 더욱더 확고히 하는가 했는데... 하지만 단일 시즌이나 그 시절 고영민의 당시 임팩트를 따라올 선수는 많지 않다는 평가다.
2.2. 2009 시즌
[image]
2009 시즌 초반에는 1군 커리어 최악의 부진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5월달에는 1루 베이스에 오른쪽 발목을 접질려 한 달 넘게 엔트리에서 빠지기도 했다. 복귀 후에는 그럭저럭한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초반 까먹은 성적은 회복하지 못했다. 대신 '''플레이오프에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활약'''을 펼쳤으나 팀이 SK에게 역스윕당하면서 역시 대활약한 박정권에게 묻혔다...
09 시즌은 타율 0.235, 홈런 6, 타점 29, OPS 0.699 로 부진했다. WBC 후유증인듯.
부상 및 부진으로 인하여 2009년에는 1억 6,000만 원이던 연봉이 2010년에는 1억 3,500만 원으로 15.6% 삭감되었다. 두산 1, 2군 내야수를 통틀어 유일한 삭감 대상이었다...[14]
2.3. 2010 시즌
김경문 감독은 베어스의 10년 4번 타자였던 김동주를 5번으로 내리고 김현수를 4번, 고영민을 3번에 배치하겠다는 타선 구상을 밝혔다. 이전에도 유리몸 기질로 인해 부상이 잦은 김동주가 결장시 고영민의 3번 배치가 잦았던 터라 그리 놀라운 구상은 아니지만, 이렇게 고정으로 못박은 적은 없었기에 귀추가 주목된다.
시범경기에서 꾸준히 3번 타자로 기용되고 있지만 무시무시한 삼진 적립율을 보여주고 있다. 뭐, 김현수 외 거의 모든 두산 타자들이 삽질중이지만. 어쨌든 3월 14일 현재 시범경기 삼진 1위, 사사구 1위다...지극히 고영민스럽다 할 수 있다. 시범경기 최종 성적은 타율 0.206에 출루율 0.413... 여기에 사사구 삼진 모두 1위, 득점 2위다. 이제 팬들도 놀라지 않는다.
정규시즌에는 이성열의 분전과 정수빈이 부상으로 이성열에게 3번 자리를 내주고 2번으로 가게 될 듯. 팬들은 이쪽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타격시 몸이 붕 뜨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중심을 낮추고 스트라이드를 거의 하지 않는 자세로 타격폼을 바꾸었다. 일단 삼진이 줄었다는 건 긍정적이나 안타를 잘 치지 못하는데...? 하지만 안타를 쳤다 하면 홈런이 쏠쏠하게 나오는 것으로 보아 노 스트라이드로도 장타력에는 이상이 없는 듯하다.
개막전에서 로페즈를 상대로 홈런을 쳤다. 그 다음 이성열이 또 홈런을 쳐서 백투백 홈런. 그후로 무안타로 일관하다가 네번째 경기인 SK전에서 글로버를 상대로 두 번째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다. 그리고 또 역시 이성열의 백투백... 이른바 변(태)뽕(열) 콤비로 각광받고 있는 듯하다. 4월 2일 현재 2안타가 모두 홈런, 그리고 볼넷 없이 몸에 맞는 볼이 무려 3개! 타율은 1할대인 주제에 OPS는 무려 9할대다... 트레이드 마크인 삼진은 아직 1개밖에 적립하지 못했다.
4월 7일, 등에 담이 들어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하지만 2군에는 가지 않고 계속해서 1군 엔트리와 동행하고 있다. 그런데 고영민의 부상을 틈타 2루수로 나서고 있는 오재원의 대활약!! 가끔 덕아웃에 앉아 있는 모습이 비춰지는데, 속이 타는지 가뜩이나 마른 얼굴이 더 핼쓱해졌다...
4월 16일 14군에 복귀했지만 실전감각이 떨어진 관계로 그다지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복귀 1주째인 삼성과의 시리즈에서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급기야 이후 한화와의 시리즈에서 예의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을 발휘, '발바닥'에 사구를 맞고 나가 재치있는 주루플레이로 3루까지 진루하여 결승점을 올렸다. 그리고 30일, 넥센과의 경기에서는 25경기만에 타율 2할대에 진입하였다! 그런데 고영민이 살아나자 오재원이 부진에 빠져 둘이 합쳐 평균 회귀의 법칙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5월 5일, 엘지 서승화에게 첫 타석에서 종아리에 사구를 맞아 부상으로 주전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대신 잠깐 부진했던 오재원은 고영민이 빠지면서 다시 2루수로 나서 좋은 타격을 보이고 있다.(더불어 수비에서의 롤러코스터도...) 니들 정말 뭐냐...?
포지션 경쟁을 펼치고 있는 오재원이 연이은 대형 실책으로 팀 연패의 일익을 담당하자 5월 12일, 오재원을 1루수로 밀어내고 2루수 겸 2번 타자로 복귀하였다. 복귀무대에서 안타 1, 사사구 2, 도루 1, 득점 1 (그리고 병살타 1...)에 호수비를 곁들이는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재원 역시 이 경기에서 호수비에 2안타 2타점을 곁들여 경기 MVP에 뽑혔다. 이번 시즌 들어 둘이 동시에 활약한 최초의 경기인 듯. 당분간은 고영민 2루, 오재원 1루의 구도가 지속될 것으로 보여, 팬들은 '고똘'과 '오똘'을 함께 본다는 생각에 두려움 반 설렘 반의 감정을 내비치고 있다. 여기에 이성열을 더하면 2똘 1뽕이라고...
5월 14일 SK와의 경기 첫 타석에서 글로버의 공에 손가락을 맞아 교체되었다. 골절은 아니지만 새끼손가락 마디가 터져 1바늘 꿰맸다고. 열흘만에 다시 사구로 부상당하는 불운을 겪고 있다. 그리고 재차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이쯤 되면 심각하게 굿을 고려해야... 괜히 무속베어스가 아닌데.
5월 25일 1군에 복귀해서 바로 선발 2루수 겸 2번타자로 나섰으나 5타수 무안타로 부진해서 다음날부터 선발 엔트리에서 빠졌다. 5월 27일 경기에서는 대주자로 나와 다음 타석에서 예의 사구 적립... 올시즌 사구 때문에 두 번이나 부상당한 터라 출루하는 표정이 영 좋지 않다.
6월 13일 SK와의 경기에서 주자1루 상황에 박경완의 중견수 쪽으로 빠지는 타구를 잡아내어 더블플레이를 시도. 하지만 공이 글러브에서 빠지지 않자 글러브째 손시헌에게 토스하는 변태스러움을 보여줬다. 고영민의 플레이도 플레이지만 글러브에서 분리되는 공을 시크하게 받아낸 손시헌의 모습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 그런데 15일 경기후 인터뷰에서 사실은 '''글러브를 1루에 던지려고 생각했다가''' 좀 먼 것 같아서 2루로 던졌다는 말을 했다. 역시 범인으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다... 직접 한번 보자. 메이저리그에서도 가끔 나타나는 플레이라고 한다.
6월 15일 엘지와의 경기에서 만루홈런을 때려냈다. 여기에 솔로홈런을 추가하여 멀티홈런까지. 극심한 부진 끝에 나온 홈런이라 본인은 물론이고 동료 선수, 코칭스태프, 팬들까지 모두 들떠 있다. 두산 타선의 마지막 퍼즐이라고 여겨졌던 선수인 만큼 이후 행보가 주목된다.
6월 16일 엘지와의 경기에서 또다시 투런홈런을 때려내면서 최고의 타격감각을 뽐내고 있다. 이틀동안 때린 세 개의 홈런이 모두 X존을 넘어가는 타구였다. 그러니까 두산도 X존을 설치하라니까. 최근 고영민에게 2루자리를 내준 오재원은 간만에 주전 1루수로 나섰으나 타석에서는 삼진 퍼레이드에 수비에서도 실책을 범하는 등 역시나 둘의 궁합이 영 안 맞고 있다.
6월 26일 기아전에서는 7회 김상훈의 2루 베이스를 넘어가는 타구를 노바운드로 잡으려다 손시헌과 충돌, 손시헌의 무릎에 머리를 부딪쳐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라인드라이브에 가까운 얕은 플라이성 타구라 콜 플레이를 할 수도 없었으니 누구 잘못을 따질 수도 없고, 그저 둘 다 수비범위가 넓은 탓일 수밖에... 고영민은 쓰러진 와중에 공을 잡은 글러브를 들어 아웃을 어필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은 그저 눈물...
6월 30일 한화전에서 양 팀 모두 2안타씩만 치는 팽팽한 투수전 속에서 양팀의 유일한 장타(2루타)를 치며 결승득점을 올렸다. 1사 3루에서 한화 내야진이 전진수비를 하여 오재원의 빠른 타구를 막아냈으나, 고영민은 3루에서 스킵동작을 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한화 2루수 오선진이 1루에 공을 토스하는 사이에 번개같이 홈으로 대시하였다. KBO 최강이라는 특유의 주루센스가 유감없이 발휘된 플레이.
8월 8일 기아전에서는 폭투로 주자가 3루에 있는 상황에서 결승타를 때려냈다. 시즌 4번째 3안타 경기. 당연하게도 경기 후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되었는데, 역시 고영민다운 인터뷰 실력을 보여 팬들을 간만에 충공깽으로 몰아넣었다...
8월 13일 SK전에서 첫 타석에 가도쿠라의 공을 손에 맞아 나뒹굴어 팬들은 석 달 전의 악몽이 오버랩되어 치를 떨었으나, 슬로비디오 상으로는 방망이 손잡이 부분에 공이 맞아 방망이가 울려 손이 저렸던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할리우드 액션으로 출루 후 김현수의 투런 홈런으로 득점을 올린다. 2아웃이라는 상황을 감안하면 출루하지 못했으면 이닝이 종료되고 1회 4실점하여 어렵게 될 뻔한 경기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고 결국 이겼다. 그리고 당연히(…) SK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2009시즌에 .235 의 타율을 보여주며 부진을 보였던 고영민은 절치부심했으나 2010시즌에는 타격폼 자체가 완전히 무너지며 .205에 그치는 극도의 부진을 보였다. 전력급 선수가 계속 양성되는 화수분 두산임을 생각한다면 빨리 당시의 부진을 탈출할 필요성이 있었다. 아니라면 아예 주전 자리에서도 밀려버릴 위험성이 컸다.
원래 정확도가 높은 타자는 아니었지만 지금의 부진은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우려가 높다. 타격폼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게 문제인데 아무리 잘 치던 타자도 일순간에 타격폼이 무너지면 장기간 고생한 사례가 많았다.
김경문 감독이 인터뷰에서 전력의 요소요소를 보강하기 위해 트레이드 창구도 열어놓겠다고 했는데 고영민이 그 대상이 되지 말란 법이 없었다.
수준급의 수비를 보여주는 2루수이니만큼 최소한 .250 정도를 목표로 삼아야 할 듯했다. 그 상태에서 고영민 특유의 장타력이 살아나만 준다면 희망은 있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2타수 1안타 1타점, 타율&장타율&출루율 0.083로 완전히 망했지만,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3타수 무안타 2볼넷 1희생플라이 1도루 1타점 2득점, 타율&장타율 0, 출루율 .333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2010년 포스트시즌 최종 성적은 15타수 1안타 2볼넷 1희생플라이 1도루 2타점 2득점, 타율&장타율 .067, 출루율 .167.
2010년 시즌 후 마무리훈련 때부터 하체를 바닥에 고정시키는 타격폼 교정을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으며, 코칭스태프나 본인의 인터뷰로 보았을 때 나름 성과를 거두고 있는 듯. 그리고 드디어 달감독의 스프링캠프 예언에서 '올해는 고영민이 잘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15] .
2.4. 2011 시즌
시범경기에서는 똑딱똑딱거리며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타격폼을 수정하면서 지나치게 똑딱거리는 폼이 되어 장타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팬들 사이에 있었다. 원래 타자 고영민의 장점은 타율 대비 높은 출루율+장타율이었지만 장타력이 감소하면 오재원과 비교해서 경쟁력이 없다는 지적이었던 것. 하지만 고영민은 원래 스윙보다는 손목힘을 이용해서 장타를 날리는 스타일이어서 장타력에 크게 지장은 받지 않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이번 시즌 최대 과제는 스윙시 하체를 단단하게 고정하는 것.
하지만 11시즌이 끝난 결과...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부진하며 주전 2루수 자리를 오재원에게 빼앗기며 대수비 요원이 되었다. 시즌 초부터 발군의 도루능력을 인정 받아 그린 라이트를 받았는데...결과는 시망. 11시즌 전체를 말아먹는 부진은 도루능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도루 찬스마다 무위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며 많은 두산팬들의 혈압에 버프를 걸어주었다.
4월 2일 개막전에서는 선발 2루수 겸 7번 타자로 나와 3번째 타석에서 4번째 득점의 시발점이 되는 3루타를 때려내었다. 기민한 수비와 재치넘치는 주루플레이는 여전. 그리고 짤방 생산력도 여전히 절륜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본격 분유 버프
4월 3일 엘지와의 개막 2차전에서는 3회 2루 베이스로 빠져나가는 이대형의 타구를 귀신같이 따라가며 잡아냈으나 스텝이 꼬여[16] ... 주자와 타자 모두를 살려주고 말았다. 평소 고영민의 수비실력을 감안하면 좀 아쉬우면서도 왠지 고영민답다...라고 보이는 장면. 타석에서는 1사 만루의 황금같은 기회를 잡았으나 귀신같은 병살타로 이닝을 종료시켰다. 상대 투수인 박현준이 볼넷-안타-사구로 흔들리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초구 공략은 아쉬운 감이 있다.
\
아무래도 지난 시즌 성적이 부진했다는 것에서 오는 압박감, 치고 올라오는 오재원, 그리고 팀을 나락으로 몰고간 임 모씨와 감독의 자진 사퇴 등 많은 사건 사이에서 멘탈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뭔가 하나가 잘 되는 일이 없이 타격, 수비, 주루 전반에 걸쳐 무너져내리고 있다. 타격은 허수아비급 . 주루는 자동 아웃. 수비도 중요할 때 실책. 결국 오재원에게 주전을 빼앗겨 7월까지 선발 출장이 거의 없었다.
7월부터 선발로 차츰차츰 많이 나오더니 서서히 부진에서 탈출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듯 하다. 이렇게 선발기회를 부여받아 나아지더니 결국은 8월 13일 한화전에서 MVP가 되었다. 인터뷰에서 MVP로 뽑힌게 오랜만이라서 본인도 얼떨떨하다고 했다. 역시 두산 야구는 고영민이 잘해야 재밌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곧 다시 부진...
팬 입장에서는 열심히 하는 모습은 보이는 데다가 자신감이 결여된 듯한 모습으로 사소한 실수가 계속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오재원의 상승세와 5위경쟁이 치열한 후반기 상황때문에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10월 6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 마지막 타석에서 느닷없이 안경을 착용하고 좌타를 들고 나와서 팬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삼구삼진으로 아웃[17] 당했지만 시즌 마지막까지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며 퇴장하였다. 여담이지만 이때 팀 전체 사진에서도 눈에 바로 뜨이는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2.5. 2012 시즌
절치부심하고 신인 때부터 달았던 14번으로 바꿨다.
확실히 그냥 간첩이었던 작년보단 페이스가 좋고 안정적이 된 것 같지만 고영민의 기대치가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오재원이 돌아올 때까지 확실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듯. 하지만 복귀한 오재원이 1루를 꿰차며 경쟁에 휘둘리지 않고 2루를 꿰차는가 했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잠시 2루 자리를 신인 최주환에게 넘겼으나...
최주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고영민도 이전 시즌처럼 부진한 것은 아니지만 07,08년도 만큼 미쳐 날뛰는 것도 아닌 그저 약간 변태같은 2루수일 뿐 군 제대 후 포텐이 터지고 있는 최주환을 상대하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인다. 적어도 09년만큼의 모습은 보여 줘야 할 듯 한데, 7월 24일 9회 간만의 대수비로 나와 뭔가 보여주고 싶었는지(...) 병살 코스로 굴러온 평범한 2루 땅볼을 송구 에러(정확히는 유격수쪽으로 토스했는데 말도 안되는 곳으로 날아갔다)해버리면서[18] 한동안 더 덕아웃 지킴이로 활동할 듯. 그래도 경기 시작 전 최재훈이 두피 마사지를 해준다면서 수건을 머리에 씌운 채 머리채를 잡고 끌어올리는 등 짤방 지분은 사수했다.
4월 18일 삼성전에서 뜬금포를 쏴서 시즌 1호 홈런을 기록했다. 1점차 승리였기 때문에 이 홈런은 꽤 중요한 한 방이었으나 이날 최재훈이 포텐셜 대 폭발을 하는 바람에 묻혀버렸다..
7월 3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3회 초 심판의 삼진아웃 판정에 항의하는 모습이 나와 논란이 되었다.
일단 현재는 최주환과 번갈아 주전을 맡고 있다.[19] 그래도 가끔씩 해 준다.
7월 3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 원정경기에서 좋은 수비와 나홀로 2타점을 올리며 팀의 2:1 역전승을 이끌었다.
2.6. 2013 시즌
허리 부상으로 1군에 늦게 합류했는데, 사사구에 따르면 척추분리증이 발병했다고 한다. 2루에는 허경민과 오재원이 자리를 잡은 상황. 외야로 전향하려는 것인지 중견수로 출장하기도 했다.
이후 각종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고, 회복에 전념하다 6월 말부터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 4할 타율을 찍기도 하고 홈런도 두 개 쳤지만, 1군에 자리가 없다는 게 문제.
별다른 활약없이 2013년 시즌을 끝냈고, 겨울철을 앞두고 어째선지 소셜 커머스 사이트에서 출몰하기 시작했다. '''고제트 핫팩'''(…)이란 상표명인데, 일단 팔리기는 잘 팔리는 모양.
시즌 이후 동결된 7,500만 원에 연봉 계약을 체결했다. 팬들 사이에는 한 게 뭐있다고 동결이냐며 까는 글이 제법 있었다. 안습.
2.7. 2014 시즌
시즌 후 손시헌, 최준석이 FA로 빠지고, 작년 퓨처스리그에서 맹활약한 김동한이 군입대를 하면서 내야에 약간의 공간이 생겼고, 시범경기에서 홈런을 치는 등 활약하면서 최주환을 밀어내고 개막 엔트리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4월 6일 KIA 타이거즈와의 홈경기에서 2루수로 선발출장했다. 상대 선발 양현종을 노린 엔트리인듯.
이후 10일에 2루수 - 2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다.
4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도 2루수 겸 7번타자로 선발 출장했다. 이번엔 장원삼을 노린 엔트리.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4월 30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2루수 선발 출장하였다. 그러나 타격에서 많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4월 한 달 동안 타격도 좋지 않고 설렁설렁 플레이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 극초반과는 달리 팬들에게 엄청 까였다. 해설진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는 평가를 내렸으며 심지어 이순철 해설위원은 아예 2군 가란 소리를 할 정도였다.
이후로는 오재원에게 완벽하게 밀리며 출장을 드문드문 하면서 그저 그런 성적을 냈고 결국 6월 27일자로 외야수 보강을 위해 박건우가 등록되면서 말소되었다.
8월 23일 말소된 이원석 대신 1군에 콜업 되었다.
2.8. 2015 시즌
[image]
2015년 시즌 후 FA를 신청하여 2016년 1월 13일 계약금 없이 1+1년에 연봉 1억 5천, 인센티브 2억, 총액 5억원에 두산과 계약했다. FA 시장은 마지막 미계약자였던 그의 계약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2.9. 2016 시즌
시즌을 앞두고 오랫동안 고생했던 허리 통증이 재발해 퓨처스 출장 없이 전반기 내내 재활에 힘썼다고 한다. 7월 19일 퓨처스 경기에 처음으로 출장했다.
8월 14일 잠실 넥센전을 앞두고 닉 에반스의 부상으로 인해 빠진 자리에 오랜만에 콜업됐다.
8월 20일 NC전에 7회말 대타로 나와 시즌 첫 안타(2루타)[20] 와 타점을 기록하였다. 8월 21일 NC전에 9회말 대타로 나와 임창민에게 볼넷을 얻어 출루하였다.
11월 22일 전력 외로 분류되어 방출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전반기를 통으로 날리고 복귀 후에도 출장 횟수가 위에 언급한 게 거의 전부였다고. 아무리 그래도 아직 한창 나이의 국가대표 2루수가 방출된다는 것에 대해 허리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한 것 아닌가 하는 추정만 할 뿐 대다수의 팬들은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 다른 구단의 러브콜을 기다렸으나 결국 은퇴 수순을 밟았다.
3. 국가대표 경력
3.1. 2007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KBO리그에서 2익수라 불리며 수비력을 인정받은 고영민은 2007 시즌 득점 1위, 도루 3위를 기록하며 공격력까지 만개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07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당시 대회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한 대회였다. 한국은 일본, 대만, 필리핀과 경쟁해 우승을 차지해야만 올림픽 본선 직행 티켓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만, 필리핀을 이기고도 일본에 3:4 1점차 석패하면서 대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올림픽 본선 직행 실패와 상관없이 고영민으로서는 성공적인 국가대표 데뷔였다. 고영민은 대회기간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편안한 수비를 선보였다. 또한 타격에서 역시 홈런을 두개나 때려내며 KBO리그에서 선보였던 갭파워를 보여줬다. 이 홈런 중 하나는 무려 일본을 상대로 때려낸 것으로 가치가 매우 높았다.
3.2. 2008 베이징 올림픽 플레이오프
3.3. 2008 베이징 올림픽
2007 아시아 지역예선, 2008 최종예선에 모두 출전했던 고영민은 결국 베이징 올림픽 본선 무대까지 밟게 됐다. 정근우와 함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2루수로서 선발됐다. 정근우의 백업 역할을 수행할 것이란 세간의 예상과 달리 고영민은 주전 2루수로서 활약했다. 이는 단기전 특성상 내야수의 경우 수비력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실재로 당시 공격은 정근우, 수비는 고영민이 KBO리그 탑 2루수라고 평가받고 있었다.[21]
실제로 본선 기간동안 고영민의 방망이는 매우 부진했다. 대표팀이 치룬 9경기중 무려 8경기에 출전했지만 0.602의 OPS를 기록했다. 그나마 예선 풀리그 대만전 때려낸 귀중한 홈런포로 간신히 체면을 유지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2루 수비는 매우 견고했다. 2익수란 별명답게 매우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했고 볼처리도 안정적이었다. 실제로 대표팀이 금메달을 확정지은 대회 마지막 아웃카운트 역시 고영민의 송구에서 나왔다. 쿠바와의 결승전 9회, 유격수 박진만이 토스한 공을 받아 베이스를 밟은 후 런닝스로우로 1루수 이승엽에게 송구하여 병살타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와 같은 고영민의 수비력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함에 있어 큰 자산이었다.
3.4. 2009 WBC
4. 지도자 경력
[image]
은퇴 후 kt wiz 코치 시절
전 두산 감독인 김진욱 감독의 부름을 받고, kt wiz에 코치진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김진욱 감독의 말로는 옛날부터 후배들에게 수비를 가르치는게 남달랐다고 하니 미래를 내다 본걸지도... 앞으로 kt에서 유망주를 잘 만들어주길. 관련기사 김진욱 감독 인터뷰
1군 주루코치로 보직이 확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시즌 초에는 3월 27일과 28일 SK 와이번스전에서 주자들의 주루사를 하나씩 적립하면서 이 분을 연상케하는 풍차를 선보이고 있다.(...) 아직은 1군 코치 1년차이니만큼 나아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 같지만. 풍차뿐이 아니라 3루에서 홈으로 쇄도하는 주자가 있으면 자신도 홈으로 같이 뛰면서 2루 주자는 방치하는 등 프로 코치로서 한참 부족한 모습을 연발해 KT 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
결국 5월 11일자로 최태원과 자리를 바꾸며 2군행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다시 코칭 스태프 개편으로 인해 1군 주루코치로 다시 보직이 확정되었다.
2018시즌 종료 후 친정팀 두산으로 옮겼다. 이후 두산 유니폼을 다시 입고 찍은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팬들의 반응은 '아직도 현역인것같다'는 반응이 대다수.
2019년 6월 20일 허리디스크로 인해 1군 말소가 되었다. 빈 자리는 지난 시즌까지 1루 주루담당을 했었던 강동우 코치가 했으며 2019년 7월 2일 통증이 다 나은다음에 1군에 다시 등록되었다.
김주찬이 주루코치로 부임하면서 1군 작전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5. 여담
5.1. 트레이드 떡밥
20대 군필 내야수가 국가대표 경력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전에서 밀려나 2군을 들락날락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다른 팀에서 상당히 군침이 날 만하기도 했었는데, 특히 주전 2루수가 군입대를 한 LG[22] 나 주전 2루수의 노쇠화가 서서히 진행되는 롯데[23] , 삼성[24] 에서는 더욱 매력적인 카드이기도 했었다. 그런 이유로 트레이드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항상 블록에 올라가는 선수였다.
의외로 자팀 선수만 곱게 보는 일반적인 추세와는 달리 타 팀 팬들이 높이 평가하고 두산 팬은 가치를 훨씬 낮게 보는 괴상한 경향이 있었다. 그야 그럴 것이 타 팀 팬은 일단 2루수 맡길 사람이 없으니 자기들 쪽이 급한 데다가 자주 안 보다 보니 2007, 2008년의 전성기와 국대에서의 활약만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두산 팬은 3년여간 시달리다 보니 해탈해서 아예 포기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오재원이 미필이라 두산에서 트레이드 카드로 쓰지 않는다는 썰이 돌았으나 김재호가 각성하고 최주환 허경민도 준수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와중에 2014년 아시안게임으로 오재원이 군 문제를 해결하면서 이제는 트레이드 썰 조차도 돌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2015년 후반기에 모처럼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활약을 보여줬으나, 허리 부상이 도지면서 2016년에 은퇴를 택하게 되었다.
5.2. 야구 외
오랫동안 교제한 애인[25] 과 2011년 12월 결혼식을 올렸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들도 있다. 엄마 닮았는지 귀엽다.
아내는 아동복 쇼핑몰을 운영 중인데 여초 커뮤니티에서 인지도가 꽤 있는 편이다. 모든 옷의 피팅모델은 아들.
무뚝뚝하고 무서운 인상이지만 상당히 가정적인 남편. 아들바라기.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북한 공작원으로 나온다.
켠김에 왕까지 프로야구 스피리츠편에선 허준에게 포풍욕설을 들었다. 그럴 만한 게 WBC모드로 한국 대표팀을 플레이 중이었는데 한 경기에 4개의 에러가 한 군데에서만 나왔기 때문.
프로야구매니저 운영진이 미워하는 것 같다. 거의 모든 연도에서 장타 수치에서 불이익을 제일 많이 받은 선수 중 하나.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 양상국과 매우 닮았으며, 이 닮은꼴을 인연으로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어서 양상국이 고영민-서혜연 부부 결혼식의 사회를 보아 주기도 하였다. 모년 7월 29일 잠실 야구장에 양상국이 나타나, 고영민의 선전을 기원하기도 했다.[26] 인간의 조건에서도 양상국의 친구로 출연했는데 하도 닮아서 '''고영민의 아들조차도''' TV에 나오는 양상국을 보고 "아빠다"라고 한다고(…). 그런데 잠실에 나타나서 NC를 응원한 모습이 포착되었다![27]
오승환의 초등학교 '''후배'''다! 심지어 오승환에게 커브볼을 가르쳐줬다고.
두산의 유튜브 채널에서 은근히 예능캐로 자리잡은 듯하다.[28]
6. 역대 성적
[1] 현역 시절 주 포지션은 2루수였고, 선수생활 말년에는 1루수로 출전했다.[2] 11시즌 마지막 경기 팀의 마지막 타석이 될 수도 있는 9회초 2아웃 때 우투수인 장시환선수 상대로 좌타석에 서는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 적이 있다. 결과는 3구삼진 고글고젯[3] 본인이 없애달라고 요청했다고 함.[4] 밤바라라밤빰 빰빰 고젯! 빰빠라밤 밤 빰 빰 안타! 빰빠라라 밤밤 빰빰 고젯! 빰 또로롱 또로롱 또로롱 안타! 데뷔 이후 이 응원가만 사용했다.[5]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부문 '''금메달''' 획득.[6] 타율 대비 출루율이 높아서 오해하기 쉽지만 고영민은 선구안이 그리 좋은 선수가 아니다. 삼진이 엄청나게 많고 그 중 루킹삼진 비율도 꽤나 높은 수준이다. 삼진 아니면 볼넷이 매우 많은 건 못 칠 것 같은 공은 아예 포기하는 스타일이기 때문. 그게 선구안이 좋다는거다. 자신의 존이 확실하고, 그 존 밖으로 나가는공에 대한 스윙률이 낮다는건 결국 좋은선구안의 다른 말이다.... 메이져리그에서도 선구안을 볼때 타출갭과 아웃존 스윙률이 높은지 낮은지를 가지고 판단하는데 타율보다 출루율이 1할가까이 넢은건 선구안이 좋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해당문서엔 잘못된 내용이 아주많은데, 고영민의 타격은 팀에 도움되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 매우 괜찮은 선수였다. 높은 타출갭, 높은 순장타율, 이는 후배 오재원의 베스트 시즌 wrc+보다 고용민의 베스트시즌 wrc+가 높은 것으로 증명된다.[7] 9회말 2사에서 원바운드성 슬라이더를 노려 동점타를 때린다든가...[8] 2007년 4월 29일 롯데전 5회 1사 주자 없을 때 기록. 이 당시 3루수는 바로 이원석이고, 투수는 장원준으로, 3루 진루는 투수 실책으로 기록되었다. [9] 오른발을 축으로 터닝하여 던지는 고영민 특유의 폼인데, 동료 선수들이나 해설진들 모두 불안불안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인터뷰 때 본인의 말에 의하면, 연습 때 하던 거고 몸에 익은 동작이기 때문에 큰 문제 없다고...[10] 하지만 아래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이런 수비를 매일 봤던 두산 팬들은 딱히 아무렇지 않았다고...[11] 이에 대해서는 '박경수 나비효과'라는 이름으로 야구팬들의 농담거리가 되기도 했다. 박경수 나비효과란 것이 아주 농담만으로 치부되지는 않는다. 손시헌이 두산으로 진로를 결정한 것은 박경수가 LG에 입단했기 때문에 두산 쪽이 경쟁하기가 쉽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손시헌은 나중에 현대에서 방출된 이종욱을 끌어왔다. 이 둘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2] 찬스에서 큰 스윙이 나오자 바로 교체 후 "영민이가 벤치에서 생각 좀 해보라고 뺐습니다." 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다음 날 고영민은 맹타로 경기 MVP로 선정된 후 인터뷰에서 "감독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훈훈한 연출을...리포터에게 강요당했다... 그러나 달감독은 평상시에는 끊임없이 고영민을 조여도 큰 경기 때면 여지없이 "키플레이어는 고영민..." 이라고 말하곤 했다.[13] 당시 고영민에게 공을 토스했던 박진만은 "뒤에서 보니 공이 뽈뽈거리며 날아가는데 미치는 줄 알았다"고 했고 진갑용도 "어떻게 거기서 러닝 스로를 할 수 있냐"고 회고할 정도로 당시 뛰던 선수들마저도 철렁했다고 그만큼 빠른 송구가 가능하지만 공이 느리기에 복불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14] 이는 두산에 남아 있었더라면 삭감 대상이었을 정원석이나 이대수 같은 베테랑 내야수들이 방출, 혹은 트레이드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2009 시즌 두산 야수들은 대부분 성적이 괜찮았거나 꼬꼬마 신인급들이어서 연봉을 깎을 여지가 거의 없었다. 2010 시즌에 연봉이 깎인 '야수'는 역시 부상으로 부진했던 이종욱과 유혹의 이성열...을 합쳐 단 셋 뿐이다.[15] 스프링캠프에서 김경문 감독이 꼽는 주목할 선수는 정말로 시즌 중 터질 확률이 높았다. 고영민은 당시까지 '잘해줘야 한다'는 말은 들은 적 있어도 '잘할 것이다'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16] 슬로비디오를 보면 고영민 본인은 자신이 직접 2루를 밟고 1루로 던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2루 베이스는 손시헌이 커버. 토스하기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였기에 고영민은 머뭇거리다가 베이스를 지나치고 말았다. 뒤이어 5cm 모자라는 처절한 베이스 태그까지...[17] 삼구삼진이긴 해도 1, 2구를 배트에 맞히기는 했다. 3구 떨어지는 변화구에 루킹삼진(...)[18] 2루를 밟은 김재호보다 약 1미터 정도 앞쪽으로 날아갔다. 뭔가 보여주겠다 하는 욕심은 있었으나 오랜만의 출전이라 토스감이 떨어진 듯.[19] 오재원은 최준석의 부상 및 부진 등으로 1루수에 고정.[20] 이것이 프로에서의 마지막 안타가 되었다.[21] 정근우는 2루수로 출전하지 않은 날에는 지명타자로 경기에 나섰다.[22] 2012년에는 서동욱이, 2013년에는 삼성에서 트레이드로 데려온 손주인이 그 자리를 메꿔줬다.[23] 2012년에 조성환의 후계자로 손용석이 꼽히긴 했지만, 1군으로 올라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조성환이 2012 시즌에 생각보다 잘 해줘서... 2013년에는 정훈이 새로이 떠올랐다.[24] 유혹의 신의 노쇠화로 조동찬과 손주인이 2루를 돌아가며 땜빵하였다. 허나 조동찬은 유리몸이고, 손주인은 주전감이 아니라는 게 문제. 게다가 2012 시즌이 끝난 후 손주인은 LG로 트레이드되었다. 김태완을 얻어오긴 했지만.[25] 소녀시대보다 예쁘다고 '''소녀시대 앞에서''' 직접 밝혔다.[26] 참고로 이날 시구는 김준현이었다. 경기 중간에 김준현과 양상국이 구장 한 가운데에 나와 인사하고 했다.[27] 참고로 양상국은 경남 김해 출신이다.[28] 스프링캠프에서 펑고를 쳐주는데 2019년에는 헛스윙을 하더니 2020년에는 '''배트를 부러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