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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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매니저에서 있었던 KILL 라인.
한국프로야구/2009년 두산 베어스의 철벽 계투진으로, 상대 타선을 KILL해버린다는 별명이다. 멤버는 고창성('''K'''o Chang-seong), 임태훈('''I'''m Tae-hoon) , 이재우('''L'''ee Jae-woo), 이용찬('''L'''ee Yong-Chan)으로 멤버들의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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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일구회 선정 신인왕. 우완 사이드암 투수로 두산 불펜진에 거의 없다시피 했던 잠수함 투수였다. 2009년도에는 64경기에 등판하여 '''5승 2패 1세이브 16홀드 평균자책점 1.95'''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으며 신인왕에 등극해도 부족함이 없었던 성적이었지만 달랑 9표로 3위에 오르면서 2차 결선투표에 진출하지도 못했다. 중간계투에 대한 부족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만 야구인들이 주는 일구회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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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신인왕으로, 2007년부터 두산의 불펜을 지탱해온 필승조이다. 당시에는 빠른 볼을 바탕으로 좋은 투구를 보여주었으며 가장 믿을 만한 두산의 불펜 투수 중 하나였다. 2009년 성적은 58경기에 나와서 11승 4패 5세이브 13홀드 ERA 3.06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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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불펜의 핵. 최대 148km까지 나오는 강속구에 뛰어난 포크볼을 구사하던 불펜 투수였다. 직전 해였던 2008년도에는 구원승만으로 11승을 달성하는 등 선발이 무너진 상황에서 두산 투수진을 지탱하던 기둥이었다. 다만 분식회계라고 까이기도 했다. 2009년도에는 선발로도 몇 경기 등판하기도 하였다. 2009년 성적은 54경기에 등판하여 5승 2패 12홀드 ERA 3.88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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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세이브 1위, 신인왕. 묵직한 직구 구위를 통해 두산의 새로운 마무리로 자리잡았으며 롯데의 애킨스와 함께 세이브 공동 1위를 기록하였고 그 해 신인상을 수상했다. 다만 1이닝보다 적은 이닝을 소화하고 차지한 세이브의 비중이 많았다는 것과 소화 이닝이 40 1/3이닝밖에 안 됐다는 점에서 팀 동료인 고창성이 수상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2009년 성적은 51경기에 나와 0승 2패 26세이브 ERA 4.20을 기록했다.
'''김경문판 살려조.''' 김경문 재임 시기에 이 선수들뿐만 아니라 투수 유망주의 포텐이 보인다 싶으면 전부 불펜에다 갈아넣어서 2016년 현재까지도 두산의 불펜진은 불안불안하다. 비단 굴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팀 투수들의 특성도 제대로 파악을 못 해서 장기적인 선발감으로 충분히 키울 수 있었던 임태훈[1] , 이용찬[2] 을 내일이 없는 듯 불펜에다 죽어라 갈아넣었고, 투수들을 전부 불펜에다 갈아넣는 와중에 정작 김진욱 체제에서 불펜으로 포텐이 터지면서 불펜 체질이었던 것이 드러난 홍상삼은 선발로 썼었다.
이후 김진욱 전 감독이 선발야구의 기틀을 다져놓았고, 김태형 현 감독이 그걸 받아 탄탄하게 선발진을 구축하면서 불펜을 커버하고 있다. 물론 김진욱 체제에서는 정명원 투수코치, 김태형 체제에서는 한용덕 투수코치의 공이 크다. 이렇게 선발야구에 공을 들인 결과 2016년 시즌 선발 자원만 8명[3] 이라는, 김경문 시절엔 꿈도 못 꾸던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좌완 부재로 허덕였던 김경문 시절과 달리 이때는 좌완이 4명이나 된다.
대학 시절 이미 엄청난 혹사를 당했기 때문에[4] 입단 1년차 시기를 통째로 재활하며 보냈고, 그로 인해 더더욱 관리가 필요했던 선수였음에도...
2010년 두산의 '''포스트시즌 10경기 중 10경기를 등판하는 전대미문의 혹사'''를 당했다. [5] 아무리 단기전에서는 4선발 체제가 돌아가고 총력전을 해야 한다고 쳐도 계투를 저따위로 굴리는 막장짓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면 할 짓이 못 된다. [6] 혹사로 정평이 난 김성근조차 가을야구 10경기 전경기 출장같은 백정짓은 하지 않았다.
김경문 감독이 2017년 NC 다이노스에서 우완 사이드암 투수 원종현[7] 을 와일드카드 1차전부터 준플레이오프 5차전까지 6경기 연속 출장시키면서, 이 역사는 반복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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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로 전향한 2010년부터는 그렇다 쳐도 2007년부터 2009년까지의 약 '''4600구''' 가량을 던졌다. 한 시즌당 공 1500개를 넘게 던졌다는 건데 이건 김성근 수준의 운용이다. 선발도 아니고 100% 순수 불펜이 아마추어 팀 감독이 저렇게 등판시켜도 뒷목 잡을 마당에 프로팀 감독이 저 지랄을 떨었다. 2007년 시즌의 기록은 '''프로 입단 1년차'''의 기록인데 '''순수 계투로만 100이닝을 돌파했다.''' 그리고 같은 해의 한국시리즈에서 김경문은 '''5차전에 구원등판해서 패전을 먹은 투수를 올라갈 선발 투수가 없다는 이유로 6차전 선발로 등판시켰다.'''
임태훈은 신인드래프트 당시 1차 지명자였고, 1차 지명자라면 고교 무대에서 날리던 에이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도 서울고의 에이스이자 입단 동기 이용찬과 함께 서울지역 최대어로 이름을 날렸다.[8] 고교 시절 팀의 에이스였다면 죽어라 굴려진다는 건 야구계에 발 좀 담가봤으면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프로 무대 경험까지 부족한 신인 투수들에게는 더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실제로 임태훈은 서울고 2학년 시절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 대회 1회전에서 혼자 167구를 던졌던 적이 있다. # 게다가 남성의 경우 20대 초반의 나이까지 신체가 성장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까딱 잘못했다간 선수생명 자체를 망쳐버리는 수가 있다. 그러나 역시 관리 그딴 거 없었다. 오죽하면 김경문 당시 두산 감독더러 '''임태훈에게 싸대기 맞아도 할 말 없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까...
이후 임태훈의 행적으로 봐선 김경문은 백정에게 백정짓한 백정으로 보여진다.
2008년 '''출장 경기 수 2위'''를 기록하면서 65경기 87⅓이닝을 던졌다. 그 다음해인 2009년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54경기 97⅓이닝을 던지는 혹사를 당했다.
결국 2010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으면서 시즌 아웃되었고, 2011년 '''수술받은 부위가 다시 끊어지면서''' 같은 수술만 두 번을 받게 되었다.
그나마 마무리였기에 소화이닝이 적어서[9] 저 셋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보호받은 편이었고 그 덕에 KILL 라인 멤버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미래의 선발감으로 충분히 제 역할을 해 줄 수 있었던 선수였음에도 마무리로 썼다는 점에서 희대의 병크. 물론 2009년 세이브 1위를 차지하면서 신인왕을 타내며 성적상으로는 마무리로 포텐이 터졌다고 볼 수 있지만 양아세이브의 비중이 많았다는 게 문제였고 방어율도 4점대이다. 물론 떠먹여준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 받아먹은 것도 선수의 능력이 맞지만 문제는 이용찬은 팀의 장기적인 클로저로 뛸 수 있을 만큼 강심장까지는 아니었다는 것. 멘탈 한 번 흔들리면 개털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해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이용찬이 마무리를 계속 뛸수록 거듭 증명되고 있다.
이게 삽질인 더 결정적인 이유는, 이용찬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마운드에서 몸이 늦게 풀리는 선수였다. 이닝이 거듭될수록 안정을 찾았고, 고교 시절 나이답지 않은 경기 운영 능력에 대해 칭찬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이런 선수를 처음부터 선발로 생각하고 장기적으로 키운 게 아니라 몸이 회복되자마자 마무리로 박아 썼다는 건, 단적인 예시로 장원준을 마무리로 쓴 거랑 똑같은 거다(...)[10] 실제로 불펜으로 뛰어도 이닝이 길어지면 더 잘 던지는[11] 기이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게 선수 성향과 맞물려 있지 않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이용찬을 마무리로 박아서 쓴 이유로는 아마 150km의 빠른공에 비해서 그걸 받쳐주는 변화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마무리로 박아서 썼다는 의견도 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경기 운영 능력이 뛰어나고 이닝이 거듭될수록 안정감을 가지는 투수를 단순히 빠른 직구 하나만 보고 마무리로 돌려서 쓴거다. 그나마 김진욱 감독이 이러한 이용찬의 장점을 살려내서 선발투수로 성공적인 전향을 시켰다.
2시즌 동안 70이닝을 넘게 먹고 2010년 포스트시즌 전 경기에 출장한 후유증으로 2011년에는 문자 그대로 퍼졌으며, 2012 시즌에는 ERA 8점대를 찍으면서 망했다. 2012 시즌 종료 후 신생팀 지원을 위한 20인 외 지명을 통해 NC로 이적했지만, 예전의 구위를 되찾지 못한 채 2016 시즌 후 방출되었다.
2017년 구대성과 임경완이 거쳐간 호주 야구리그(Australian Baseball League, ABL) 시드니 블루삭스에서 한 시즌을 던졌으며, 2018년 KT에 입단하였으나 한 시즌 만에 다시 방출되었고 새 팀을 찾지 못한 채 그대로 은퇴하였다.
국가대표 경력도 있고 정말 전도유망한 선수였는데, 이래저래 두산 팬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올드팬들이 아니면 최정상 셋업맨이었던 것도 잘 모르니까...
2007년 데뷔후 3시즌동안 불펜에서 신나게 굴려진 결과, 2010년에 혹사의 후유증이 나타났고 선발로 전향했지만 후반기에 홈런공장장이 되며 평균자책점 5점대를 찍으며 부진했다. 그리고 2011년 역대급 사건을 일으키며 완전히 몰락했다. 그 후로도 허리 부상등으로 부진한데다 2015년 임의탈퇴 되면서 팀을 떠났다. 그리고 이후로도 사생활 관련 구설수를 일으키자 이름만 거론해도 모든 팬들에게 집중적으로 까이는 금지어가 되었다.
두 차례의 수술을 극복하고 2012시즌 후반기 다시 복귀에 성공하면서 인간승리를 알렸다. 2013시즌에는 주로 5선발로 등판해 두산 선발의 한축이 되었지만 시즌 중 또다시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했다. 다행히 포스트 시즌 때 복귀하여 2013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5이닝을 막아내 1승을 거두기도 했다.
2015년 두산 베어스에서 코치제의를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방출된 후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였으나 살려조라 불리는 필승조에는 들지 못하고 간간히 나와 패전처리로 던졌다. 그 와중에 2016년 9월 14일 '''이승엽의 한일통산 600호 홈런 허용투수'''가 되기도 했다.
결국 2017 시즌 도중 부상을 입고 웨이버 공시되면서 은퇴했다.
KILL 라인의 유일한 생존자. 그나마 저 셋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라 2011년 선발로 전향하며 2시즌동안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2012년 시즌후에 부상으로 재활에 돌입했고 2014년에 다시 마무리로 전향했지만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심심치 않게 까이고 상무 입대.
전역한 뒤 이현승과 함께 셋업과 마무리를 오가다가, 2018년 다시 선발로 돌아와서 토종 투수 다승, 평균자책 1위라는 좋은 성적을 냈다. 2019년 역시 쏠쏠하게 활약을 해주었으나 2020년 부진과 더불어 부상으로 토미존 수술까지 하는 바람에 일찍 시즌아웃. 이 여파로 두산은 알칸타라와 플렉센을 제외하면 제대로 던질 선발투수가 없었고 그 결과 6위까지 추락했으나 가을에 유희관의 부활과 동시에 3위를 확정지는데 성공했다. 시즌후 FA자격을 얻게 되며 두산을 떠날 가능성도 생겨 완전한 해체도 가능해졌다.
2014년도부터 HOLY라인이 만들어졌지만 당시에는 시원치 않았고 2015년에도 두산의 불펜진이 아직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은 줄 알았으나 새로운 불펜들이 그 자리를 매꿔주기 시작했고, 2016년에 정재훈이 돌아오면서 조금 더 안정된다.
2017년에는 조금 더 불펜이 안정화된다. 항상 약점으로 지목되던 두산의 불펜이 후반기 평균자책점 1위까지 등극하면서 최상의 상태를 보여주었다. 2015년과 2016년에 필승조로 뛰었던 김강률의 제구가 안정되면서 후반기에는 마무리로 보직을 옮겼고, 2017년의 최상위권 5선발 함덕주가 포스트시즌 때 셋업맨으로 보직을 옮기면서 아주 강력하게 되었다. 여기에 김승회, 이영하, 김명신등이 활약하면서 HKKKL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2017년, KILL라인의 설계자는 NC버전인 단디 4 라인을 완성했다. 결국 2018 ~ 2019년 사이에 모든 선수들이 수술대에 오르거나 부진에 빠지면서 NC는 전년 가을야구 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몰락해 최하위권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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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매니저에서 있었던 KILL 라인.
1. 개요
한국프로야구/2009년 두산 베어스의 철벽 계투진으로, 상대 타선을 KILL해버린다는 별명이다. 멤버는 고창성('''K'''o Chang-seong), 임태훈('''I'''m Tae-hoon) , 이재우('''L'''ee Jae-woo), 이용찬('''L'''ee Yong-Chan)으로 멤버들의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2. 멤버
2.1. 고창성('''K'''o Cha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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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일구회 선정 신인왕. 우완 사이드암 투수로 두산 불펜진에 거의 없다시피 했던 잠수함 투수였다. 2009년도에는 64경기에 등판하여 '''5승 2패 1세이브 16홀드 평균자책점 1.95'''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으며 신인왕에 등극해도 부족함이 없었던 성적이었지만 달랑 9표로 3위에 오르면서 2차 결선투표에 진출하지도 못했다. 중간계투에 대한 부족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만 야구인들이 주는 일구회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2.2. 임태훈('''I'''m Tae-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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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신인왕으로, 2007년부터 두산의 불펜을 지탱해온 필승조이다. 당시에는 빠른 볼을 바탕으로 좋은 투구를 보여주었으며 가장 믿을 만한 두산의 불펜 투수 중 하나였다. 2009년 성적은 58경기에 나와서 11승 4패 5세이브 13홀드 ERA 3.06을 기록했다.
2.3. 이재우('''L'''ee Jae-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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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불펜의 핵. 최대 148km까지 나오는 강속구에 뛰어난 포크볼을 구사하던 불펜 투수였다. 직전 해였던 2008년도에는 구원승만으로 11승을 달성하는 등 선발이 무너진 상황에서 두산 투수진을 지탱하던 기둥이었다. 다만 분식회계라고 까이기도 했다. 2009년도에는 선발로도 몇 경기 등판하기도 하였다. 2009년 성적은 54경기에 등판하여 5승 2패 12홀드 ERA 3.88을 기록했다.
2.4. 이용찬('''L'''ee Yong-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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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세이브 1위, 신인왕. 묵직한 직구 구위를 통해 두산의 새로운 마무리로 자리잡았으며 롯데의 애킨스와 함께 세이브 공동 1위를 기록하였고 그 해 신인상을 수상했다. 다만 1이닝보다 적은 이닝을 소화하고 차지한 세이브의 비중이 많았다는 것과 소화 이닝이 40 1/3이닝밖에 안 됐다는 점에서 팀 동료인 고창성이 수상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2009년 성적은 51경기에 나와 0승 2패 26세이브 ERA 4.20을 기록했다.
3. 운용 그리고 혹사
'''김경문판 살려조.''' 김경문 재임 시기에 이 선수들뿐만 아니라 투수 유망주의 포텐이 보인다 싶으면 전부 불펜에다 갈아넣어서 2016년 현재까지도 두산의 불펜진은 불안불안하다. 비단 굴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팀 투수들의 특성도 제대로 파악을 못 해서 장기적인 선발감으로 충분히 키울 수 있었던 임태훈[1] , 이용찬[2] 을 내일이 없는 듯 불펜에다 죽어라 갈아넣었고, 투수들을 전부 불펜에다 갈아넣는 와중에 정작 김진욱 체제에서 불펜으로 포텐이 터지면서 불펜 체질이었던 것이 드러난 홍상삼은 선발로 썼었다.
이후 김진욱 전 감독이 선발야구의 기틀을 다져놓았고, 김태형 현 감독이 그걸 받아 탄탄하게 선발진을 구축하면서 불펜을 커버하고 있다. 물론 김진욱 체제에서는 정명원 투수코치, 김태형 체제에서는 한용덕 투수코치의 공이 크다. 이렇게 선발야구에 공을 들인 결과 2016년 시즌 선발 자원만 8명[3] 이라는, 김경문 시절엔 꿈도 못 꾸던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좌완 부재로 허덕였던 김경문 시절과 달리 이때는 좌완이 4명이나 된다.
3.1. 고창성
대학 시절 이미 엄청난 혹사를 당했기 때문에[4] 입단 1년차 시기를 통째로 재활하며 보냈고, 그로 인해 더더욱 관리가 필요했던 선수였음에도...
2010년 두산의 '''포스트시즌 10경기 중 10경기를 등판하는 전대미문의 혹사'''를 당했다. [5] 아무리 단기전에서는 4선발 체제가 돌아가고 총력전을 해야 한다고 쳐도 계투를 저따위로 굴리는 막장짓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면 할 짓이 못 된다. [6] 혹사로 정평이 난 김성근조차 가을야구 10경기 전경기 출장같은 백정짓은 하지 않았다.
김경문 감독이 2017년 NC 다이노스에서 우완 사이드암 투수 원종현[7] 을 와일드카드 1차전부터 준플레이오프 5차전까지 6경기 연속 출장시키면서, 이 역사는 반복되고 말았다.
3.2. 임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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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로 전향한 2010년부터는 그렇다 쳐도 2007년부터 2009년까지의 약 '''4600구''' 가량을 던졌다. 한 시즌당 공 1500개를 넘게 던졌다는 건데 이건 김성근 수준의 운용이다. 선발도 아니고 100% 순수 불펜이 아마추어 팀 감독이 저렇게 등판시켜도 뒷목 잡을 마당에 프로팀 감독이 저 지랄을 떨었다. 2007년 시즌의 기록은 '''프로 입단 1년차'''의 기록인데 '''순수 계투로만 100이닝을 돌파했다.''' 그리고 같은 해의 한국시리즈에서 김경문은 '''5차전에 구원등판해서 패전을 먹은 투수를 올라갈 선발 투수가 없다는 이유로 6차전 선발로 등판시켰다.'''
임태훈은 신인드래프트 당시 1차 지명자였고, 1차 지명자라면 고교 무대에서 날리던 에이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도 서울고의 에이스이자 입단 동기 이용찬과 함께 서울지역 최대어로 이름을 날렸다.[8] 고교 시절 팀의 에이스였다면 죽어라 굴려진다는 건 야구계에 발 좀 담가봤으면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프로 무대 경험까지 부족한 신인 투수들에게는 더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실제로 임태훈은 서울고 2학년 시절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 대회 1회전에서 혼자 167구를 던졌던 적이 있다. # 게다가 남성의 경우 20대 초반의 나이까지 신체가 성장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까딱 잘못했다간 선수생명 자체를 망쳐버리는 수가 있다. 그러나 역시 관리 그딴 거 없었다. 오죽하면 김경문 당시 두산 감독더러 '''임태훈에게 싸대기 맞아도 할 말 없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까...
이후 임태훈의 행적으로 봐선 김경문은 백정에게 백정짓한 백정으로 보여진다.
3.3. 이재우
2008년 '''출장 경기 수 2위'''를 기록하면서 65경기 87⅓이닝을 던졌다. 그 다음해인 2009년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54경기 97⅓이닝을 던지는 혹사를 당했다.
결국 2010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으면서 시즌 아웃되었고, 2011년 '''수술받은 부위가 다시 끊어지면서''' 같은 수술만 두 번을 받게 되었다.
3.4. 이용찬
그나마 마무리였기에 소화이닝이 적어서[9] 저 셋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보호받은 편이었고 그 덕에 KILL 라인 멤버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미래의 선발감으로 충분히 제 역할을 해 줄 수 있었던 선수였음에도 마무리로 썼다는 점에서 희대의 병크. 물론 2009년 세이브 1위를 차지하면서 신인왕을 타내며 성적상으로는 마무리로 포텐이 터졌다고 볼 수 있지만 양아세이브의 비중이 많았다는 게 문제였고 방어율도 4점대이다. 물론 떠먹여준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 받아먹은 것도 선수의 능력이 맞지만 문제는 이용찬은 팀의 장기적인 클로저로 뛸 수 있을 만큼 강심장까지는 아니었다는 것. 멘탈 한 번 흔들리면 개털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해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이용찬이 마무리를 계속 뛸수록 거듭 증명되고 있다.
이게 삽질인 더 결정적인 이유는, 이용찬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마운드에서 몸이 늦게 풀리는 선수였다. 이닝이 거듭될수록 안정을 찾았고, 고교 시절 나이답지 않은 경기 운영 능력에 대해 칭찬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이런 선수를 처음부터 선발로 생각하고 장기적으로 키운 게 아니라 몸이 회복되자마자 마무리로 박아 썼다는 건, 단적인 예시로 장원준을 마무리로 쓴 거랑 똑같은 거다(...)[10] 실제로 불펜으로 뛰어도 이닝이 길어지면 더 잘 던지는[11] 기이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게 선수 성향과 맞물려 있지 않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이용찬을 마무리로 박아서 쓴 이유로는 아마 150km의 빠른공에 비해서 그걸 받쳐주는 변화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마무리로 박아서 썼다는 의견도 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경기 운영 능력이 뛰어나고 이닝이 거듭될수록 안정감을 가지는 투수를 단순히 빠른 직구 하나만 보고 마무리로 돌려서 쓴거다. 그나마 김진욱 감독이 이러한 이용찬의 장점을 살려내서 선발투수로 성공적인 전향을 시켰다.
4. 이후의 행적
4.1. 고창성
2시즌 동안 70이닝을 넘게 먹고 2010년 포스트시즌 전 경기에 출장한 후유증으로 2011년에는 문자 그대로 퍼졌으며, 2012 시즌에는 ERA 8점대를 찍으면서 망했다. 2012 시즌 종료 후 신생팀 지원을 위한 20인 외 지명을 통해 NC로 이적했지만, 예전의 구위를 되찾지 못한 채 2016 시즌 후 방출되었다.
2017년 구대성과 임경완이 거쳐간 호주 야구리그(Australian Baseball League, ABL) 시드니 블루삭스에서 한 시즌을 던졌으며, 2018년 KT에 입단하였으나 한 시즌 만에 다시 방출되었고 새 팀을 찾지 못한 채 그대로 은퇴하였다.
국가대표 경력도 있고 정말 전도유망한 선수였는데, 이래저래 두산 팬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올드팬들이 아니면 최정상 셋업맨이었던 것도 잘 모르니까...
4.2. 임태훈
2007년 데뷔후 3시즌동안 불펜에서 신나게 굴려진 결과, 2010년에 혹사의 후유증이 나타났고 선발로 전향했지만 후반기에 홈런공장장이 되며 평균자책점 5점대를 찍으며 부진했다. 그리고 2011년 역대급 사건을 일으키며 완전히 몰락했다. 그 후로도 허리 부상등으로 부진한데다 2015년 임의탈퇴 되면서 팀을 떠났다. 그리고 이후로도 사생활 관련 구설수를 일으키자 이름만 거론해도 모든 팬들에게 집중적으로 까이는 금지어가 되었다.
4.3. 이재우
두 차례의 수술을 극복하고 2012시즌 후반기 다시 복귀에 성공하면서 인간승리를 알렸다. 2013시즌에는 주로 5선발로 등판해 두산 선발의 한축이 되었지만 시즌 중 또다시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했다. 다행히 포스트 시즌 때 복귀하여 2013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5이닝을 막아내 1승을 거두기도 했다.
2015년 두산 베어스에서 코치제의를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방출된 후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였으나 살려조라 불리는 필승조에는 들지 못하고 간간히 나와 패전처리로 던졌다. 그 와중에 2016년 9월 14일 '''이승엽의 한일통산 600호 홈런 허용투수'''가 되기도 했다.
결국 2017 시즌 도중 부상을 입고 웨이버 공시되면서 은퇴했다.
4.4. 이용찬
KILL 라인의 유일한 생존자. 그나마 저 셋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라 2011년 선발로 전향하며 2시즌동안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2012년 시즌후에 부상으로 재활에 돌입했고 2014년에 다시 마무리로 전향했지만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심심치 않게 까이고 상무 입대.
전역한 뒤 이현승과 함께 셋업과 마무리를 오가다가, 2018년 다시 선발로 돌아와서 토종 투수 다승, 평균자책 1위라는 좋은 성적을 냈다. 2019년 역시 쏠쏠하게 활약을 해주었으나 2020년 부진과 더불어 부상으로 토미존 수술까지 하는 바람에 일찍 시즌아웃. 이 여파로 두산은 알칸타라와 플렉센을 제외하면 제대로 던질 선발투수가 없었고 그 결과 6위까지 추락했으나 가을에 유희관의 부활과 동시에 3위를 확정지는데 성공했다. 시즌후 FA자격을 얻게 되며 두산을 떠날 가능성도 생겨 완전한 해체도 가능해졌다.
5. 새로운 KILL라인의 가능성(?)
2014년도부터 HOLY라인이 만들어졌지만 당시에는 시원치 않았고 2015년에도 두산의 불펜진이 아직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은 줄 알았으나 새로운 불펜들이 그 자리를 매꿔주기 시작했고, 2016년에 정재훈이 돌아오면서 조금 더 안정된다.
2017년에는 조금 더 불펜이 안정화된다. 항상 약점으로 지목되던 두산의 불펜이 후반기 평균자책점 1위까지 등극하면서 최상의 상태를 보여주었다. 2015년과 2016년에 필승조로 뛰었던 김강률의 제구가 안정되면서 후반기에는 마무리로 보직을 옮겼고, 2017년의 최상위권 5선발 함덕주가 포스트시즌 때 셋업맨으로 보직을 옮기면서 아주 강력하게 되었다. 여기에 김승회, 이영하, 김명신등이 활약하면서 HKKKL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2017년, KILL라인의 설계자는 NC버전인 단디 4 라인을 완성했다. 결국 2018 ~ 2019년 사이에 모든 선수들이 수술대에 오르거나 부진에 빠지면서 NC는 전년 가을야구 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몰락해 최하위권으로 떨어진다.
6. 관련 문서
[1] 2010년 선발로 뛰면서 홈런공장장이라는 오명을 썼지만 시즌 전반기에만 해도 10승은 그냥 찍을 기세였다. 후반기에 혹사의 여파로 무너지면서 불명예를 쓴 것. 실제로 당해 성적을 보면 9승은 찍었다. 참고로 당시 선발로 전향했던 이유도 '''혹사로 인해 체력이 후달리자 휴식일이 보장되는 선발로 돌린 것'''이었다.[2] 2011년 팀 사정상 제대로 된 선발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선발로 뛰게 되었음에도 꽤 좋은 모습을 보였고, 2012년 각성하면서 2점대 후반의 평균자책점에 10승을 찍었다.[3]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와 마이클 보우덴, 토종 좌완 듀오 유희관, 장원준에 5선발 및 대체선발로 사용 가능한 허준혁, 고원준, 이현호, 안규영.[4] 경성대 야구부의 특정 투수 한두 명에 의존한 마운드 운용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고창성의 전임자인 이상화, 김기표, 장원삼, 후임인 이상백, 임현준, 임준섭, 이민우, 김명신 등이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5] 심지어 한국시리즈 앞 문턱에서 실책으로 무너졌다.[6] 비슷한 사례로는 2015년 포스트시즌에서의 조상우가 있다. 와일드카드~준플레이오프 기간 6일동안 120구를 던진 조상우는 결국 준PO의 마지막 경기에서 탈탈 털린 것도 모자라서 다음 시즌은 부상으로 아예 날리게 되었다. 이것 역시 감독의 큰 잘못이다.[7] '''대장암 투병 경력'''도 있어 절대적으로 관리가 필요한 선수이다![8] 2007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는 1차 지명으로 2명을 데려올 수 있었는데, 그 당시 LG에게 서울팜 최대어를 몇 년간 뺏겨온 두산 스카우트 팀이 당해 서울지역 랭킹 1, 2위였던 이용찬과 임태훈을 데려오려고 작정하고 덤벼들었다는 건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임태훈의 동기인 이용찬 같은 경우는 현 두산 스카우트 팀장인 이복근 당시 스카우트 차장이 장충고에 1주일 중 7일을 출근해 훈련이 끝나면 이용찬에게 밥을 사먹이고 집에 데려다주고 심지어 전지훈련까지 따라가는 바람에 현재 NC 다이노스의 스카우터로 재직하고 있는 당시 유영준 장충고 감독이 "내가 두산 가라고 할 테니 제발 그만 오라"고 사정했다는 건 기사로도 나와 있다. 두산은 당시 이용찬을 잡은 뒤 역시 최대어급이었던 임태훈에게도 달려들었고, 계약금 3억을 제시해서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이용찬을 놓치고 급해진 LG가 돈을 지르기 시작해 경쟁이 붙자 곧바로 최초 제시액에 1억을 더 얹어 데려왔다. [9] 2009년 51경기 40⅔이닝, 2010년 47경기 41⅔이닝.[10] 장원준을 1회에만 쓴다고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11] 특히 연장전에 가서 3이닝 이상씩 던지게 되면 인생투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