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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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트에 있는 지역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영토이며, 남쪽으로는 카르멜 산과 길보아 산, 북쪽으로는 레바논 국경, 동쪽으로는 갈릴래아 호와 요르단 강,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해 있다. 가톨릭의 표기는 '갈릴래아'이고, 개신교에서는 '갈릴리'라 부른다. 공동번역 성서에서 열왕기와 여호수아에서는 '갈릴리'로 적혀있으며, 그 외에는 '갈릴래아' 표기가 사용되었다.
성경에 따르면 갈리래아는 과거 히브리인의 12지파 가운데 아셀과 납달리 지파의 땅이었다. 열왕기상 9절에 솔로몬이 페니키아 동맹이었던 티레의 왕 히람에게 보상으로 갈리래아의 성읍 20곳을 주었다는 내용이 있다.
아시리아는 갈릴래아를 점령하고 그곳의 히브리인들을 추방해버린다. 이후 갈릴래아에는 이투레아인(Itureans)이나 페니키아인과 같은 외부인들이 이주한다.
유대 지역 하스몬 왕조의 아리스토불로스 1세는 갈릴래아를 정복한다. 하스몬 왕조가 갈릴래아를 지배하면서 유대 지역 출신 유대인들이 갈릴래아로 이주하거나(참고), 이투레아인 등의 기존 갈릴래아인들이 유대교고 개종하면서(참고) 갈릴래아는 유대인 문화권으로 변한다. 갈릴래아가 유대화되면서 갈릴래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하러 가는 등 유대 지역과의 인구 왕래가 잦아지게 된다. 그런데, 갈릴래아와 유대 사이에는 이 지도처럼 사마리아인들의 사마리아가 있어서 서로 교류를 하려면 사마리아를 가로질러 지나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갈릴래아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에게 해코지를 당하는 등의 충돌도 늘어나게 된다.
기원전 37년 하스몬 왕조가 멸망하고 헤로데 왕조가 들어선다. 기원전 4년 헤로데가 사망한 뒤 그의 영토는 아들 셋과 여동생에게 분할된다. 갈릴래아는 페레아와 함께 헤로데 안티파스가 물려받는다. 기원후 39년 헤로데 안티파스가 칼리굴라 황제에게 폐위당한 뒤 갈릴래아와 페레아는 40년 그의 조카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의 손에 들어간다. 41년 아그리파스 1세가 유대 왕위에 오르고, 44년 그가 사망하면서 갈릴래아와 페레아는 유다이아 속주에 편입되어 로마 제국의 직할령이 된다.
제1차 유대 로마 전쟁이 발발하고, 유대인 다수 지역인 갈릴래아 역시 전쟁에 휘말린다. 당시 로마의 장군이었던 베스파시아누스는 67년 갈릴래아를 침략하여 유대인 반란을 진압한다.
132년 유다이아 속주에서 시몬 바르 코크바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로마 제국에 반란을 일으키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대규모 군사를 소집하여 이를 진압한다. 하드리아누스는 135년에 유다이아 속주의 명칭을 '팔라이스티나(Palaestina)'로 변경하면서 시리아 속주와 통합하여 새롭게 시리아 팔라이스티나(Syria Palaestina) 속주로 개편한다. 따라서 갈릴래아 역시 시리아 팔라이스티나 속주로 이어진다.
동로마 제국이 이슬람의 팽창으로 레반트를 이슬람 세력에 내주면서 갈릴래아 역시 정통 칼리파조의 손에 들어간다. 이후 갈릴래아는 차례대로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 이흐시드 왕조, 파티마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된다. 제1차 십자군 원정 이후 갈릴래아는 예루살렘 왕국의 영토가 된다. 십자군이 철수하고 아이유브 왕조와 맘루크 왕조의 지배를 받는다.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왕조를 정복하면서 갈릴래아도 오스만 제국이 통치하게 된다. 영국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세우고 갈릴래아도 위임통치령에 속하게 되며, 이후 이스라엘의 영토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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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반트에 있는 지역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영토이며, 남쪽으로는 카르멜 산과 길보아 산, 북쪽으로는 레바논 국경, 동쪽으로는 갈릴래아 호와 요르단 강,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해 있다. 가톨릭의 표기는 '갈릴래아'이고, 개신교에서는 '갈릴리'라 부른다. 공동번역 성서에서 열왕기와 여호수아에서는 '갈릴리'로 적혀있으며, 그 외에는 '갈릴래아' 표기가 사용되었다.
2. 역사
성경에 따르면 갈리래아는 과거 히브리인의 12지파 가운데 아셀과 납달리 지파의 땅이었다. 열왕기상 9절에 솔로몬이 페니키아 동맹이었던 티레의 왕 히람에게 보상으로 갈리래아의 성읍 20곳을 주었다는 내용이 있다.
아시리아는 갈릴래아를 점령하고 그곳의 히브리인들을 추방해버린다. 이후 갈릴래아에는 이투레아인(Itureans)이나 페니키아인과 같은 외부인들이 이주한다.
유대 지역 하스몬 왕조의 아리스토불로스 1세는 갈릴래아를 정복한다. 하스몬 왕조가 갈릴래아를 지배하면서 유대 지역 출신 유대인들이 갈릴래아로 이주하거나(참고), 이투레아인 등의 기존 갈릴래아인들이 유대교고 개종하면서(참고) 갈릴래아는 유대인 문화권으로 변한다. 갈릴래아가 유대화되면서 갈릴래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하러 가는 등 유대 지역과의 인구 왕래가 잦아지게 된다. 그런데, 갈릴래아와 유대 사이에는 이 지도처럼 사마리아인들의 사마리아가 있어서 서로 교류를 하려면 사마리아를 가로질러 지나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갈릴래아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에게 해코지를 당하는 등의 충돌도 늘어나게 된다.
기원전 37년 하스몬 왕조가 멸망하고 헤로데 왕조가 들어선다. 기원전 4년 헤로데가 사망한 뒤 그의 영토는 아들 셋과 여동생에게 분할된다. 갈릴래아는 페레아와 함께 헤로데 안티파스가 물려받는다. 기원후 39년 헤로데 안티파스가 칼리굴라 황제에게 폐위당한 뒤 갈릴래아와 페레아는 40년 그의 조카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의 손에 들어간다. 41년 아그리파스 1세가 유대 왕위에 오르고, 44년 그가 사망하면서 갈릴래아와 페레아는 유다이아 속주에 편입되어 로마 제국의 직할령이 된다.
제1차 유대 로마 전쟁이 발발하고, 유대인 다수 지역인 갈릴래아 역시 전쟁에 휘말린다. 당시 로마의 장군이었던 베스파시아누스는 67년 갈릴래아를 침략하여 유대인 반란을 진압한다.
132년 유다이아 속주에서 시몬 바르 코크바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로마 제국에 반란을 일으키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대규모 군사를 소집하여 이를 진압한다. 하드리아누스는 135년에 유다이아 속주의 명칭을 '팔라이스티나(Palaestina)'로 변경하면서 시리아 속주와 통합하여 새롭게 시리아 팔라이스티나(Syria Palaestina) 속주로 개편한다. 따라서 갈릴래아 역시 시리아 팔라이스티나 속주로 이어진다.
동로마 제국이 이슬람의 팽창으로 레반트를 이슬람 세력에 내주면서 갈릴래아 역시 정통 칼리파조의 손에 들어간다. 이후 갈릴래아는 차례대로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 이흐시드 왕조, 파티마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된다. 제1차 십자군 원정 이후 갈릴래아는 예루살렘 왕국의 영토가 된다. 십자군이 철수하고 아이유브 왕조와 맘루크 왕조의 지배를 받는다.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왕조를 정복하면서 갈릴래아도 오스만 제국이 통치하게 된다. 영국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세우고 갈릴래아도 위임통치령에 속하게 되며, 이후 이스라엘의 영토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