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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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아랍 무슬림
2.1. 예언자의 시대
2.2.2.1. 시리아와 이라크
2.2.2.2. 소강기 (638 ~ 639년)
2.2.2.3. 이집트와 이란
2.2.3.1. 지중해 진출과 사산 조의 멸망
2.2.4. 4대 알리: 1차 피트나[1]
2.2.5.1. 초기: 아프리카 & 아나톨리아
2.2.5.2. 2차 피트나 (683 ~ 691년)
2.2.5.3. 중기 : 마그레브, 이베리아, 호라산
2.2.5.4. 쇠퇴기 (히샴)
2.2.5.5. 3차 피트나 (742 ~ 751년)
2.2.6.1. 시칠리아 & 크레타 정복
3. 관련 문서


1. 개요


중세 이슬람 세력[2]이 외부 세력[3]을 정복하거나 싸운 전투/활동 목록이다.

2. 아랍 무슬림


  • 이슬람력이 아닌 서기 연도입니다.
  • 승/패 여부는 이슬람의 기준으로 서술합니다.
  • 더 자세한 정보는 해당 연도나 해당 사건의 문서를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2.1. 예언자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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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70년: 사도 무함마드 탄생
  • 610년: 대천사 지브릴의 계시받아 이슬람 전도 시작
  • 614년: 메카 귀족들의 무슬림 박해 시작
  • 615년: 일부 무슬림들의 에티오피아 피신
  • 616년: 우마르의 개종
  • 619년: 아내 카디자와 숙부 아부 탈리브의 별세
  • 620년: 야스리브[4]가 분쟁 조정자로 무함마드 초청
  • 621년: 미라즈 (무함마드의 승천 기행)
  • 622년: 히즈라 (성천: 마카야스리브)
  • 623년: 봉쇄에 대항하여 무슬림들이 메카의 카라반을 습격, 이후 메카 군대가 야스리브의 가축을 약탈.
  • 624년: 바드르 전투 (승)[5]
  • 625년: 우후드 전투 (패)[6]
  • 627년: 한다크 (참호) 전투 (승)[7]
  • 628년: 후다이비야 협정 (메카 - 무슬림 간 휴전)[8]
  • 629년: 문다 전투 (패)[9]
  • 630년[10] 메카 입성, 후냔 전투 (승)[11] 아무타스 전투 (승)[12], 타이파 포위[13], 타북 함락[14]
  • 631년: 1차 두마툴 잔달 원정[15]
  • 632년: 무함마드 사망

2.2. 정통 (라쉬둔) 칼리파 시대


시리아, 이라크, 이집트, 이란 정복

2.2.1. 1대 아부 바크르


  • 릿다 (배교) 전쟁 (632 ~ 633년)
  • 632년 9-10월 : 주후사 전투 (승)[16], 부자카 전투 (승), 감라 전투 (승), 나크라 전투 (승)[17], 자파르 전투 (승), 부타 전투 (승). 타북/다뭇 원정
  • 632년 11월: 다바 전투[18]
  • 632년 12월: 야마마 전투 (승)[19]
  • 633년 1월: 타북, 다뭇 & 바레인 & 예멘 평정
  • 633년 2월: 하드라마우트[20] 평정
  • 1차 메소포타미아 정복 전쟁 (633년)
  • 633년 4월: 살리실[21] 전투 (승), 알 마드하르[22] 전투 (승), 우발라 함락 → 첫 지즈야 납부
  • 633년 5월: 왈라자 전투 (승), 울라시스 전투 (승), 아라비아 북부의 반란, 1차 다우맛 알 잔달 전투 (승)[23], 알 히라 함락[24] → 라흠 왕국 멸망
  • 633년 6월: 안바르 포위
  • 633년 7월: 아인 알 타므르 전투 (승), 안바르 함락
  • 633년 8월: 2차 다우맛 알 잔달 전투 (승)
  • 633년 11월: 무자야흐 전투 (승), 사니이 전투 (승), 주마일 전투 (승), 이라크의 이란 군대 괴멸
  • 634년 1월: 피라즈 전투 (승) 이란-로마 연합군 격파
  • 1차 시리아 정복 전쟁 (634년)
  • 634년 2월: 가자 일대 습격, 다틴 전투 (승)[25]
  • 634년 4월: 마르즈 라히트 전투 (승)[26]
  • 634년 6월: 팔미라 함락, 알 콰레야틴 전투 (승)[27]
  • 634년 7월: 보스라 함락[28], 야쿠사 전투 (승)[29]
  • 634년 8월: 아즈나딘 전투 (승)[30], 마르즈 앗 사파르 전투 (승)[31], 다마스쿠스 포위[32]

2.2.2. 2대 우마르


할리드 대신 아부 우바이다가 총사령관이 되며 전개 속도가 느려졌고 이때부터 통치 체계의 정립이 시작된다.

2.2.2.1. 시리아와 이라크

  • 634년 9월: 산티나 알 우캅 전투 (승)[33], 다마스쿠스 함락, 마라 알 데바 전투 (승)[34]
  • 634년 10월: 아블라 전투 (승)[35]
  • 사산 제국 페르시아의 반격
  • 634년 11월: 나마라크 전투 (승)[36], 다리 전투 (패)[37]
  • 635년: 동로마 제국 - 사산 제국 동맹
  • 2차 시리아 정복 전쟁 (635 ~ 636년)
  • 635년 1월: 파흘 전투 (승) : 팔레스타인 로마군 소멸
  • 635년 2월: 티베리아스 함락, 2차 아이나딘 전투 (승)[38]. 이후 군대 3개로 나눔
  • 635년 봄-여름: 나블루스, 야파, 하이파 함락[39].아크레 함락[40].시돈, 비블로스 함락[41]
  • 635년 여름-가을: 마라 알 로마 전투 (승)[42], 다마스쿠스 전투 (승)[43], 바알벡 항복, 카이사레아 포위[44]
  • 635년 가을-겨울: 하마, 마라트 알 누만 함락.[45]
  • 635년 12월: 에메사 (홈스) 포위[46]
  • 636년 3월: 에메사 함락
  • 636년 6월: 헤라클리우스의 반격 개시
  • 636년 7월: 무슬림 군대가 야르무크 평원에 집결[47]
  • 636년 8월: 야르무크 전투 [48]
  • 636년 10월: 추후 진로에 대한 전략회의[49]
  • 636년 11월: 예루살렘 포위[50]
  • 2차 메소포타미아 정복 전쟁 (636년 ~ 637년)
  • 636년 8월: 카디시야 전투[51]
  • 636년 12월: 나자프[52] 함락, 부르스 전투 (승), 바빌론 입성[53], 데이르 캅 전투 (승)
  • 637년 1월: 크테시폰 포위
  • 637년 3월: 크테시폰 함락
  • 637년 4월: 자룰라 전투 (승), 자룰라 포위
  • 3차 시리아 정복 전쟁
  • 637년 초: 베이루트[54], 티레[55], 가자[56] 함락
  • 637년 4월: 예루살렘 함락, 2차 카이사레아 포위
  • 637년 봄 : 에메사 & 다마스쿠스 재접수, 북부 진격
  • 637년 6월: 하지르 전투 (승), 칼키스 항복
  • 637년 8월: 알레포 포위
  • 637년 10월: 알레포 항복[57], 아자즈[58]함락, 안티오크 철다리 전투[59] (승), 안티오크 항복[60]
  • 637년 말: 라타키아, 타르투스, 트리폴리 함락.
  • 637년-637년: 카이세리, 세바스티아, 말라티야 습격, 카파도키아의 키지르마크 강 도달[61]
  • 3차 메소포타미아 정복 전쟁
  • 637년 11월: 자룰라 함락. 키르쿠크 함락[62], 모술 항복 → 메소포타미아 평정
  • 637년 12월: 카니킨 전투 (승)[63], 훌완 포위
  • 638년 1월: 훌완 함락, 진격 중단[64]
  • 638년: 호르즈미드-아르다시르 함락
  • 시리아 & 메소포타미아 평정
  • 638년 3월: 자지라에서 아랍 기독교도들의 봉기[65]
  • 638년 여름: 에메사 전투 (승)[66], 자지라 평정[67]
  • 638년 가을: 에데사, 아미다, 말라티야 함락[68]
  • 638년 말: 게르마니케아 함락 [69]

2.2.2.2. 소강기 (638 ~ 6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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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파 우마르는 동쪽으로는 자그로스 산맥, 북으로는 아르메니아 고원과 타우루스 산맥 (카파도키아), 서로는 시나이 반도의 국경선에 만족하였다.
  • 639년: 시리아, 이라크 일대에 큰 가뭄. 정복 중단
  • 639년 8월 : 라카 항복[70]
  • 639년 가을 : 하란, 사모사타 항복

2.2.2.3. 이집트와 이란

  • 이집트 정복 전쟁
  • 639년 12월: 우마르의 재가
  • 640년: 카이사레아, 펠루시아 함락
  • 640년 5월: 바빌론 포위
  • 640년 7월: 헬리오폴리스 전투[71]
  • 640년 12월: 바빌론 함락[72], 테베의 항복[73]
  • 641년 2월: 알렉산드리아 포위[74]
  • 642년 9월: 알렉산드리아 함락, 리비아 진격
  • 후제스탄 정복 전쟁
  • 640년 가을: 투스타르 전투 (승), 아바즈 함락, 수사 포위
  • 641년 1월: 수사 항복, 준드 사부르 함락
  • 641년 여름: 페르시아 군대의 메소포타미아 습격
  • 641년: 람-호르즈미드 함락, 슈스타르 포위
  • 642년: 슈스타르, 군디샤푸르 함락
  • 643 / 644년: 바이루드 전투[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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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년, 라쉬둔 (정통) 칼리파 조의 강역

2.2.3. 3대 우스만


해군 편성과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의 성장

2.2.3.1. 지중해 진출과 사산 조의 멸망

  • 645년 : 알렉산드리아 전투
  • 646년 : 알렉산드리아 재점령
  • 647년 : 트리폴타니아 정복, 수페툴라 전투 (승), , 아나톨리아 침공[76]
  • 648년 : 리비아 정복, 이슬람 해군 편성
  • 649년 : 캅카스 정복
  • 650년 : 아나톨리아 침공, 파르스 정복
  • 651년 초 : 메르브 항복, 옥수스 전투 (승)[77]
  • 651년 말 : 호라산 반란 진압, 페르시아 부흥군 패배, 야즈데게르드 3세 피살. 사산 제국 페르시아의 멸망.
  • 652년 : 시칠리아, 로도스 습격. 알렉산드리아 해전
  • 654년 : 아르메니아 정복. 로도스, 키프로스 공격
  • 655년 : 마스트 해전, 키프로스 정복

2.2.4. 4대 알리: 1차 피트나[78]



2.2.5. 우마이야 왕조



2.2.5.1. 초기: 아프리카 & 아나톨리아

  • 663년: 아르메니아 정복, 아나톨리아 공격 (-666)
  • 665년: 아나톨리아 슬라브족 항복
  • 666년: 시칠리아 정복 (-667)
  • 667년: 칼리니코스의 그리스 불 발명
  • 668년: 1차 콘스탄티노플 포위 (-669)
  • 671년: 발흐 함락, 부하라 포위 (-674)
  • 672년: 크레타, 로고스 공격
  • 673년: 2차 콘스탄티노플 포위 (-678)
  • 674년: 포위 공격 본격 시작 (콘스탄티노플)
  • 675년: 크레타 정복
  • 676년: 바닥샨 원정, 부하라 & 사마르칸트 포위
  • 677년: 동로마의 역습 (콘스탄티노플)
  • 678년: 후퇴하던 아랍 함대 침몰
  • 679년: 30년 평화 협정
  • 680년: 카르발라 학살
  • 681년: 호젠트 원정

2.2.5.2. 2차 피트나 (683 ~ 691년)

  • 683년 : 메카 반란
  • 684년 : 다마스쿠스 반란
  • 685년 : 진압
  • 688년 : 시칠리아 동부 점령, 평화 협정 개시
  • 691년 : 세바스티아 전투, 아르메니아 정복
  • 692년 : 이븐 주바이르 토벌

2.2.5.3. 중기 : 마그레브, 이베리아, 호라산

  • 3차 아프리카 원정 (693 ~ 709년)
  • 693년 : 아프리카 진격 (-693)
  • 696년 : 카르타고 포위
  • 697년 : 카르타고 함락
  • 697년-698년 : 동로마 군이 카르타고 수복
  • 698년 : 카르타고 함락
  • 700년 : 알제 함락
  • 706년 : 수스 함락
  • 707년 : 탕헤르 함락, 발레아레스 제도 점령
  • 709년 : 세우타 함락
  • 2차 트란스옥시아나 원정 (705 ~ 713년)
  • 706년 : 부하라 함락
  • 710년 : 신드 원정 (-712)
  • 713년 : 사마르칸트 함락
  • 이베리아 원정 (711 ~ 713년)
  • 711년 : 3차 콘스탄티노플 포위

2.2.5.4. 쇠퇴기 (히샴)


2.2.5.5. 3차 피트나 (742 ~ 751년)


2.2.6. 아바스 왕조



2.2.6.1. 시칠리아 & 크레타 정복

  • 799년 : 아글라브 왕조 성립
  • 813년 : 동로마-아글라브 휴전 갱신
  • 816년 : 일단의 안달루스 인들이 코르도바에서 반란 실패하고 축출됨
  • 818년 : 쫓겨난 1만 5천의 안달루스 인들이 알렉산드리아 장악. 압바스 측의 반격
  • 824년 : 아부 하프스 휘하 1만 2천의 안달루스 인들이 크레타 점령. (크레타 후국)
  • 826년 : 시칠리아 해군 제독 에우페미오스 반란, 시라쿠사와 카타니아 장악하고 칭제
  • 827년 : 측근들에게 배신당해 축출된 에우페미오스, 아글라브 왕조에 망명. 지원 요청
  • 827년 6월 : 아글라브 함대가 수스 출항, 마자라 상륙. 동로마 제국군 격파. 아크라이 휴식
  • 827년 가을 : 아글라브 군이 시라쿠사 포위
  • 828년 : 크레타 후국이 동로마 원정군 격파. 사령관인 아나톨리콘 테마의 포테이노스 전사
  • 828년 봄 : 포위 도중 아글라브 측 사령관인 카이로완의 카디 아사드 이븐 푸라트 병사
  • 828년 여름 : 신임 사령관 무함마브 이븐 아불 자와리, 시라쿠사 포위 풀고 내륙으로 철수[79]
  • 828년 가을 : 아글라브 군이 아그리젠토와 엔나 포위. 후자에서 에우페미오스 암살됨[80]
  • 829년 : 전 총독 테오도토스가 시칠리아 당도. 엔나 구원, 아글라브 거점 미네오 포위
  • 829년 10월 : 타소스 전투. 크레타 함대가 동로마 함대 격파
  • 830년 여름 : 후우마이야 함대가 시칠리아 상륙. 미네오 구원, 테오도토스 엔나 철수
  • 830년 가을 : 후우마이야 군이 사령관 사망 후 철수. 테오도토스, 추격해 승리하나 전사. 남부의 아글라브 군이 팔레르모 포위
  • 831년 9월 : 팔레르모 (알 마디나) 수비대장 시메온, 안전 보장 대가로 항복. 남은 시민들 노예화
  • 832년 3월 : 아글라브 조의 첫 시칠리아 총독 아부 피흐르 무함마드가 팔레르모 당도
  • 833년 8월 : 압바스 칼리파 알 마문 사망
  • 834년 봄 : 아부 피흐르, 엔나 수비대 두 차례 격파
  • 835년 : 아부 피르흐, 시칠리아 중부의 동로마 군 격파. 타오르미나까지 습격대 보내나 암살됨
  • 835년 여름 : 신임 총독 알 파즐 이븐 야쿠브, 반격 나선 동로마 군 매복해 대파
  • 835년 9월 : 아글라브 아미르 지야다툴라, 사촌 이브라힘 총독 임명
  • 835년 가을 : 이브라힘, 동로마 함대의 여정 방해 대한 복수로 판텔레리아와 섬 동부 습격
  • 836년 : 알 파즐 이븐 야쿠브 휘하 함대가 리파리 섬과 틴다리 점령. 이브라힘의 육균은 격퇴됨
  • 837년 : 아글라브 군이 엔나 점령, 시타델 함락 실패하자 막대한 배상금 받고 철수
  • 838년 3월 : 테오필로스 황제의 사위 알렉시오스, 증원군과 시칠리아 당도. 체팔루 구원
  • 838년 6월 : 아글라브 아미르 지야다툴라 사망, 동생 아부 이칼 계승. 증원군 파견
  • 839년 : 테오필로스, 신하들의 모함에 알렉시오스 본국 소환
  • 839년-840년 : 아글라브 군이 칼타벨로타, 코를레오네 점령. 나폴리 지원, 브린디시 습격
  • 840년 : 아글라브 군이 베네벤토 공국의 내전 틈타 타란토 점령
  • 841년 : 아글라브 군이 엔나 ~ 그로티 일대 습격
  • 842년-843년 : 아글라브 군이 나폴리 해군의 도움으로 메시나 점령
  • 845년 : 아글라브 군이 시칠리아 동남부 모디카 점령
  • 845년-846년 : 부테라 전투. 알 압바스[81] 휘하 아글라브 군이 동로마 원정군 대파. 1만 전사시킴
  • 846년 : 아글라브 군이 책략으로 시칠리아 동부의 린티니 점령
  • 847년 : 시칠리아 출신 베르베르계 무슬림 칼푼이 바리 점령 (바리 후국)
  • 848년 : 시칠리아 동남부 라구사 성채가 식량 떨어지자 항복, 파괴됨
  • 851년 : 시칠리아 총독 이브라힘 사망, 알 압바스 추대됨. 북부의 칼타부투로 점령 (시칠리아 후국)
  • 852년-853년 : 알 압바스, 노토 습격. 부테라 6개월 포위, 6천 무슬림 포로 석방 대가로 철수
  • 853년 5월 : 동로마 함대가 다미에타 습격
  • 857년 : 알 압바스, 섬 북부의 체팔루 점령. 주민 안전 철수, 도시 파괴됨. 가글리아노 포위 실패
  • 858년 여름 : 알 압바스의 동생 알리, 아풀리아의 동로마 함대 40척 격파. 다만 반격에 패해 도주
  • 859년 1월 : 알 압바스, 동로마측 포로 도움으로 엔나 함락. 대규모 약탈과 학살 자행됨
  • 859년 가을 : 콘토미티스 휘하 동로마 증원군이 시라쿠사 당도. 시칠리아 해군에 함대 1/3 상실
  • 859년 말 : 알 압바스 현지인들의 봉기 진압, 체파루 전투에서 콘토미티스 격파. 시라쿠사 철수
  • 861년 가을 : 알 압바스 사망, 숙부 아흐마드 이븐 야쿠브 아미르 추대됨
  • 862년 2월 : 아흐마드 폐위되고 알 압바스 아들 압둘라 아미르 추대됨
  • 862년 7월 : 아글라브 조가 개입해 압둘라 폐위, 카파자 이븐 수피안 임명
  • 863년 : 카파자, 아들 무함마드 파견해 시라쿠사 습격하나 격퇴됨
  • 864년 2-3월 : 동로마측 배신자 도움으로 노토와 시클리 점령됨
  • 865년 : 카파자, 엔나 향하나 아들 무함마드가 매복 당하여 철수
  • 866년 : 카파자, 타오르미나와 휴전. 노토, 라구사 재점령
  • 867년 : 카파자, 건강 회복 후 시라쿠사와 카타니아 습격
  • 868년 봄 : 카파자, 동로마 증원군 격파. 시라쿠사 습격
  • 869년 1-2월 : 무함마드, 가에타 포위 후 돌아와 타오르미나 점령 시도
  • 869년 봄 : 카파자, 에트나 산 일대 습격. 무함마드, 시라쿠사 습격하나 수비대 반격에 패배
  • 869년 6월 : 카파자, 시라쿠사 몇주 간의 포위하곤 팔레르모 귀환 도중 암살됨[82] 무함마드 계승
  • 870년 8월 : 시칠리아 함대가 몰타의 중심지 멜리테 함락. 약탈 후 성벽 파괴됨
  • 871년 2월 : 프랑크-롬바르드-동로마 군대가 바리 점령. 바리 후국 멸망
  • 871년 5월 : 무함마드, 궁정 환관에게 암살당함
  • 875년 : 아글라브 아미르 무함마드 2세 사망, 이브라힘 2세 계승. 총독 자파르 이븐 무함마드와 원정군 파견
  • 877년 6월 : 자파르, 시라쿠사 외곽 요새들 정복하곤 도시 포위
  • 878년 3월 : 자파르, 시라쿠사 함락. 2달간 약탈, 주민들 학살 혹은 노예화
  • 878년 봄 : 자파르, 동생과 숙부의 음모에 암살당함
  • 878년 9월 : 시칠리아의 찬탈자들, 폐위된 후 튀니지로 보내져 처형됨
  • 879년-880년 : 신임 총독 후세인 이븐 라바흐, 타오르미나 포위하나 실패
  • 880년 : 동로마 제국군이 타란토 점령 / 스탈라이 해전. 동로마 제독 나세르가 팔레르모 근해의 아글라브 함대 격파
  • 881년-882년 : 아부 타우르 휘하 시칠리아 군이 타오르미나 포위하나 동로마 군의 반격에 칼타부투로에서 대패
  • 882년 : 시칠리아의 아랍인들이 동로마 총독과 내통해 재차 타란토 점령
  • 883년 : 시칠리아 군이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폴리치 일대 습격
  • 884년 : 시칠리아 군이 카타니아, 로메타 습격
  • 885년 : 시치릴아 군이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습격
  • 885년-886년 : 동로마 제국군이 재차 타란토 수복
  • 886년 12월 : 팔레르모 시민 봉기, 총독 사와바 이븐 카파자 축출
  • 888년 : 신임 총독이 밀라초에서 동로마 함대 격파, 칼라브리아 습격
  • 889년 : 사와바, 아글라브 군과 귀환. 타오르미나 공격하나 실패
  • 890년 3월 : 팔레르모의 아랍 무슬림들이 사와바 대해 반란
  • 895년-896년 : 시칠리아-동로마 휴전. 후자는 1천 무슬림 포로 석방[83]
  • 898년 : 시칠리아 내의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간 내전 발발[84]
  • 900년 여름 : 이브라힘 2세, 아들 압둘라 휘하 진압군 파견
  • 900년 9월 : 압둘라, 반군과의 협상 결렬되자 팔레르모 점령. 다수 반군이 타오르미나 향함[85]
  • 900년 말 : 동로마 증원군이 레조에 집결. 압둘라, 타오르미나 습격. 카타니아 포위 시도 후 회군
  • 901년 7월 : 압둘라, 레조 점령, 대대적 약탈, 주민 1만 5천 노예화. 귀환 도중 동로마 함대 대파, 30척 나포
  • 902년 초 : 아글라브 아미르 이브라힘 2세, 아들 압둘라에 양위. 대신 그의 시칠리아 총독위 차지
  • 902년 여름 : 이브라힘, 지하드 지원자들과 시칠리아 당도. 타오르미나 수비대 격파, 도시 포위
  • 902년 8월 : 이브라힘, 타오르미나 점령. 인근 지역에 파병, 항복 / 파괴 / 조공 중 고르게함
  • 902년 10월 : 이브라힘, 레조에서 북상해 진군하나 코센차 포위 도중 병사. 손자가 회군
  • 909년 : 파티마 제국이 아글라브 왕조 멸하고 시칠리아 장악
  • 911년 : 177척의 동로마 함대가 크레타 수복 시도하나 실패
  • 912년 : 아글라브 잔당인 이븐 쿠르훕이 파티마측 시칠리아 총독 죽이고 반란
  • 913년 : 이븐 쿠르훕, 파티마 해군 격퇴
  • 914년 : 동로마-파티마 휴전
  • 917년 : 동로마-파티마 휴전 갱신, 전자의 조공. 파티마 군이 시칠리아 수복, 타오르미나 자립
  • 923년 : 파티마 함대가 레조 인근 요새 함락
  • 924년 4월 : 파티마 함대가 타란토 습격, 이듬해 10월 1천 1백의 포로와 마디야 귀환
  • 928년 : 파티마 제독 사비르, 칼라브리아 약탈. 타란토 점령, 주민 노예화 및 도시 파괴
  • 929년 : 사비르, 나폴리와 살레르노 봉쇄. 동로마 해군 격파, 배상금 받고 철수
  • 932년 : 동로마-파티마 휴전 갱신. 전자의 연공 납부
  • 935년 : 파티마 해군이 제노바 습격
  • 937년 : 시칠리아 인들이 파티마 조에 대해 대대적으로 반란
  • 938년 : 파티마 장수 알리 알 칼비, 아그리젠토의 반란군에 살해됨
  • 941년 : 파티마 제국군이 시칠리아 반란 진압
  • 947년 4월 : 팔레르모 시민들이 재차 반란, 총독 이븐 아타프 축출. 동로마 측이 연공 중단
  • 948년 : 하산 이븐 알리 알 칼비, 시칠리아 총독 봉해짐. 팔레르모 수복, 동로마 측의 3년치 연공 받아냄
  • 949년 : 128척의 동로마 함대가 크레타 수복 나서나 칸디아 포위 도중 반격당해 대패하고 철수
  • 951년 6월 : 동로마 측 증원군 대한 하산의 지원 요청에 환관 파라즈 휘하 1만 파티마 군이 팔레르모 당도
  • 951년 6-7월 : 하산, 파라즈와 칼라브리아 침공. 카사노 공격. 동로마 군은 바리로 철수
  • 952년 5월 : 제라체 전투. 하산, 동로마 군대 격파. 페트라쿠카 습격
  • 952년 9월 : 동로마-파티마 휴전 갱신. 전자의 조공 및 칼라브리아 무슬림 자유 보장됨
  • 953년 5월 : 하산, 이프리키야 귀환. 아들 아흐마드가 총독위 계승 (칼브 왕조)
  • 957년 : 동로마 측이 레조의 사원 파괴하고 팔레르모 인근 테르미니 습격
  • 958년 : 하산, 동생 암마르와 재차 시칠리아 파견되어 동로마 원정군 격파
  • 958년 9월 : 암마르, 칼라브리아 습격 후 귀환 도중 폭풍으로 익사. 동로마-파티마 휴전 갱신됨
  • 960년 : 니키포로스 포카스 휘하 3백척의 동로마 함대가 크레타 수복 나섬
  • 961년 3월 : 니키포로스 포카스, 칸디아 함락. 3일간 약탈, 크레타 수복
  • 962년 3월 : 아흐마드, 타오르미나 포위
  • 962년 12월 : 아흐마드, 30주의 포위 끝에 타오르미나 점령[86]
  • 963년 : 아흐마드의 사촌 하산 이븐 암마르, 섬의 마지막 동로마 거점 로메타 포위
  • 964년 10월 : 니키포로스 2세의 사위 마누일, 메시나 점령하나 로메타에서 전사
  • 964년 11-12월 : 하산, 팔레르모에서 병사. 동로마 함대가 칼라브리아로 철수
  • 965년 초 : 메시나 해전. 시칠리아 해군이 철수하던 동로마 함대 격파
  • 965년 5월 : 아흐마드, 로메타 함락. 주민들 학살 혹은 노예화
  • 967년 : 동로마-파티마 간 최종 휴전 체결됨. 타란토 재건됨
  • 977년 : 아불 카심, 타란토 점령
  • 982년 7월 : 스틸로 전투. 시칠리아 군이 아불 카심의 전사에도 오토 2세 격파, 4천 독일군 전사
  • 1025년 : 동로마 군이 메시나 상륙
  • 1038년 : 동로마 제독 마니아케스, 내전 틈타 메시나 ~ 시라쿠사 점령
  • 1042년 : 시칠리아 군이 메시나 탈환

3. 관련 문서



[1] 무슬림 내전[2] 아랍, 베르베르, 튀르크, 몽골[3]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유교[4] 후에 예언자의 도시라는 뜻의 메디나로 개칭[5] vs 메카 쿠라이쉬 기득권 세력[6] vs 메카 쿠라이쉬 기득권 세력[7] vs 메카 쿠라이쉬 기득권 세력[8] 원래 10년 기한이었다.[9] vs 가산 왕국 + 동로마 제국[10] 629년에 동로마 군대가 크테시폰까지 밀어붙인 후, 이 해에 로마와 사산 제국은 평화 조약을 맺었다. 그렇다고 두 세력이 동맹을 맺은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양국은 아랍 무슬림 세력에 대해 잘 몰랐다. 그들의 속국이자 방패인 가산 왕국라흠 왕국의 간곡한 권고를 양측 모두 레반트를 둘러싼 싸움에만 집중하다보니 귀담아 듣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는... 지금 쓰고 있다.[11] vs 베두인[12] vs 산악민족[13] 함락에 실패했지만 이후 주민들이 자진하여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 항복하였다.[14] 10월, 북부 아라비아. 이후 아카바의 단성론파 기독교도들이 이슬람 진영으로 이탈함[15] 서북부 아라비아[16] 9월[17] 10월[18] 오만 방면[19] 12월[20] 남부 아라비아[21] 사슬 / 카지마흐 전투[22] 4월 3번째 주, 유프라테스 강 / 우발라 전투[23] 할리드 알 왈리드[24] 5월 말, 라흠 왕국의 멸망[25] Battle of Dathin, 2월. 가자 인근, 아므르 이븐 알 아스[26] Battle of Marj Rahit, 4월 24일, vs 가산 왕국[27] Battle of Al-Qaryatayn[28] 6~7월. 가산 왕국 멸망[29] 7월 20일, 티베리아스 호수 근처[30] 7~8월, Battle of ajnadayn[31] 8월 19일, Battle of Marj al-Saffar (634)[32] 8월 21일 ~ 9월 19일, Siege of Damascus (634)[33] 할리드가 다마스쿠스를 향하던 동로마 지원군 격파[34] Battle of Maraj-al-Debaj[35]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가 베이루트 인근에서 로마군에 포위되어 있던 아부 알 쿠다스의 군대를 구원. 10.15[36] Battle of Namaraq, 쿠파(도시) 인근[37] Battle of al-Jisr[38] 아인나딘 요새 함락[39] 아므르[40] 슈라빌[41] 야지드[42] Battle of Maraj-al-Rome, 아부 우바이다 지휘[43]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가 친위대만을 이끌고 테오도로스의 다마스쿠스 탈환 시도 격퇴[44] 실패, 하지만 야르무크 전투 이후 이어진 2차 포위에서 결국 함락 (640년)[45] 무슬림 군대는 일시적으로 킬리키아 지방의 마라쉬 (현재 터키)까지 점령하였다.[46] 원래 칼키스와 에데사는 아부 우바이다와 1년간의 휴전 조약을 맺었으나 헤라클리우스가 대규모 군대를 안티오키아에 군집시키자 아랍 측은 조약의 파기를 선언하고 두 도시를 포위하였다.[47] 헤라클리우스의 포위 후 각개격파 전술을 간파한 할리드가 아부 우바이다에게 간언한 전술이 채택된 것이다. 점령지의 무슬림 군대는 전부 도시를 버리고 후퇴하였다. 경기병대가 강점인 아랍 군대는 전통적으로 회전에 강했다. 자비야 평원에서 야르무크 평원으로 이동하던 아랍 군대의 후미는 할리드와 그 친위대가 지켰고, 동로마 선발대를 격파하여 기선을 제압하였다.[48] 8월 15 ~ 21일, 할리드의 지휘. 이후 헤라클리우스의 레반트 포기[49] 이븐 우바이다의 주최. 예루살렘과 카이사레아 놓고 출동. 칼리파 우마르: 예루살렘 지목[50] ~ 637년 4월, 무슬림 군대는 수비군의 식량이 바닥나기만을 기다렸다. 이후 총대주교는 칼리파 우마르에게 직접 항복한다는 조건으로 백기를 들었다.[51] 사드 이븐 아비 와카스의 지휘[52] 이후 쿠파(도시)가 세워진다.[53] 12월 20일경[54] 야지드[55] 슈라빌[56] 아므르[57] 항복 후 동로마 사령관 요아킴은 4천명의 그리스 병사들과 함께 이슬람으로 개종, 충실한 장군이 되었다.[58] 현재 시리아 북부 터키와의 국경도시. 터키 도시인 킬리스와 마주하고 있으며, 알레포와 가지안테프 중간 쯤에 있다. 이들리브 - 알레포 - 킬리스 - 가지안테프로 도로가 이어진다. 안티오크 포위의 전초전[59] 아이나딘, 야르무크 전투 다음으로 동로마 측이 가장 큰 인명 손실을 본 전투.[60] 10월 31일. 패잔병들은 동로마로 떠날 수 있게 해주었다.[61] 할리드의 원정대[62]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으나 내부의 기독교도들이 내통하여 함락하였다.[63] 직후에 도시도 함락됨[64] 칼리파 우마르가 장군 쿠아카에게 서신을 보내어 점령지 (수아드)와 페르시아 간의 국경선은 자그로스 산맥이 적합하다고 명령.[65] 헤라클리우스의 사주를 받았다.[66] 7월경으로 추정됨. 할리드의 친위대의 대승리. 기독교 아랍인들의 후퇴[67] 8월[68] 할리드 이븐 왈리드와 리야드 이븐 가늠[69] 현재. 터키의 카라만마라쉬. 할리드의 마지막 원정. 로마 황제 헤라클리우스가 킬리키아 관문을 넘어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던 중 할리드의 군대와 간발의 차이로 접촉을 피하얐다. 시리아를 두고 후퇴하며 그가 남긴 시는 헤라클리우스 문서의 후반 부분 참고[70] 이야드 이븐 가님. 수비대가 강경 저항하자 후퇴하여 5-6일간 주변 초토화시키자 항복해옴. 후에 자지라 총독으로 부임[71] 7/6[72] 12/21[73] 12/22[74] 헤라클리우스 사망[75] 피루즈의 반란 진압[76] 무아위야[77] 이후 야즈대게르드 3세는 페르가나 칸국을 거쳐 당나라로 도피, 다시 거병하여 호라산으로 돌아오나 다시 패배하고 살해당한다.[78] 무슬림 내전[79] 본래 본국으로 철수하려 했는데 동로마 함대의 방해로 좌절되자 함대 불사르고 내륙의 미네오 향함. 3일간의 포위 끝에 항복하자 그곳을 거점으로 삼음.[80] 엔나 측이 항복 제안하며 초청, 이에 에우페미오스가 소수의 호위대와 입성하자 살해함[81] 위에 활약한 알 파즐 이븐 야쿠브의 아들로 추정됨[82] 베르베르계 암살자는 이후 시라쿠사로 도주[83] 이때 동로마 측은 아랍인과 베르베르인들을 따로 석방하며 두 집단의 반목 부추겼다고 함[84] 점차 팔레르모 vs 아그리젠토 간 지역 대결로 전개됨[85] 일부는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당도[86] 하필은 그날이 크리스마스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