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기(1937)

 


'''현임 및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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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북 제5선거구)'''
제9대
장경순
김택하

'''제10대'''
장경순
'''김원기'''

''선거구 개편''
진의종[A]
김원기[A]
조상래[B]
김진배[B]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북 제6선거구)'''
''선거구 개편''
장경순[C]
김원기[C]
이호종[D]
박용기[D]

'''제11대'''
진의종
'''김원기'''

''선거구 개편''
전종천[E]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북 정주시·정읍군)'''
''선거구 개편''
전종천[E]

'''제13·14대
김원기'''

''선거구 개편''
윤철상[F]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북 정읍시)'''
제15대
윤철상

'''제16·17대
김원기'''

제18·19대
유성엽

'''대한민국 제17대 전반기 국회의장
김원기
金元基 | Kim Won-ki
'''
'''출생'''
1937년 2월 16일 (87세)
전라북도 정읍군 감곡면 통석리 석정마을
(現 전라북도 정읍시 감곡면 통석리)
'''본관'''
도강 김씨
'''현직'''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재임기간'''
제17대 전반기 국회의장
2004년 6월 5일 ~ 2006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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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父 김환국
'''형제자매'''
6남 2녀 중 장남
'''배우자'''
윤정심
'''자녀'''
슬하 1남
'''학력'''
소성국민학교 (졸업)
정읍중학교 (졸업)
전주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 / 학사)
'''소속 정당'''

'''의원 선수'''
'''6'''
'''의원 대수'''
'''10, 11, 13, 14, 16, 17'''
'''약력'''
평화민주당 원내총무
민주당 사무총장
통합민주당 공동대표최고위원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새정치국민회의 상임고문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열린우리당 창당준비위원회 위원장
열린우리당 의장
제17대 전반기 국회의장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선거이력
5. 소속 정당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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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정치인.

2. 생애


1937년 전라북도 정읍군 감곡면 통석리 석정마을[1]#에서 김환국(金煥國)의 아들로 태어났다. 감곡국민학교, 전주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32회),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동아일보에서 기자를 지내다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민당에 입당하여 정계에 입문하였다. 해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전라북도 김제군-정읍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장경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전라북도 정읍군-고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진의종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3년까지 민주한국당 대변인을,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민주한국당 훈련원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민주당 돌풍의 여파로 민주정의당 전종천 후보와 신한민주당 류갑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 후 정읍시 선거구에서 13대, 14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2], 13대 국회에서는 평화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했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에 복귀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여 DJ계가 무더기로 이동했을 때, 김대중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호남 지역 정치인 중에서 유일하게 이를 비판하며 민주당에 잔류했고, 그 대가로 이듬해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회의 윤철상 후보에게 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통추에서 상대표를 맡다가, 이기택과의 반목으로 1996년 11월 25일부로 통합민주당에서 출당처리 되었다. 하지만 그 다음해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 원혜영, 유인태, 김정길 등을 비롯한 통추인사들과 함께 김대중 지지를 선언하고 국민회의에 합류했다.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장관급 직책인 노사정위원장으로 중용되었으며,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다시 정읍에서 당선되고[3], 그 다음 선거에서도 당선되어[4] 전반기 국회의장까지 지냈다. 현재는 더불어민주당의 상임 고문으로 재직중이며, 이용희가 정치활동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최고 원로로 일컬어지고 있다.
2020년 8월 29일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김부겸 전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3. 여담


  • 김생기 전 정읍시장이 그의 4촌 동생이다. 국회의장 시절이던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본인의 정무담당 비서관으로 재직한 바 있었다.
  • 한편으로는 노무현의 정치적 스승이기도 했다. 1991년 이래로 노무현과 항상 동행해왔기 때문.
  • 현재까지 16개의 당적을 기록하고 있다.[5] 그럼에도 철새 이미지가 없는 이유는 박정희 독재에 대항하기 위해 힘없는 야당들이 정계 개편을 자주 한 탓이다. 30년 민주당 계열 역사에 인사들 자체는 별로 변한 게 없다. 2008년 17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를 은퇴한 이후에도 당의 원로로 남아 있다보니 통합민주당 당적을 갖고 있다.
  • 2004년 4월 탄핵 역풍을 등에 업고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달성했다.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했던 열린우리당은 법사위원장 자리를 한나라당에게 내주고 합의를 유도했다. 그러나 체계 자구권 등 국회 통과안을 무력화할 수 있었던 법사위 때문에 4대 개혁 법안은 상정되지 못하고 있었다. 오직 국회의장에게만 있는 권한인 직권 상정으로 돌파할 수 있는데, 당시 국회의장이던 김원기가 직권상정을 거부하면서 4대 개혁 법안은 걸레짝이 되고 만다. 열린우리당은 힘없는 권력으로 낙인 찍히면서 언론,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맞게 됐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다수당을 뒤에 두면서도 전통적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고 레임덕에 시달리게 됐다.

4. 선거이력


  •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78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5선거구[6]

'''45,703 (24.81%)'''
'''당선 (2위)'''
'''초선'''[7]
1981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정읍·고창

'''41,789 (26.72%)'''
'''당선 (2위)'''
'''재선'''[8]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정읍·고창

26,449 (16.43%)
낙선 (3위)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정주·정읍

'''58,276 (64.29%)'''
'''당선 (1위)'''
'''3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정주·정읍

'''55,616 (74.75%)'''
'''당선 (1위)'''
'''4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정읍

20,891 (27.96%)
낙선 (2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정읍

'''38,497 (57.59%)'''
'''당선 (1위)'''
'''5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정읍

'''32,562 (49.56%)'''
'''당선 (1위)'''
'''6선'''[9]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78 - 1980
정계 입문

1980 - 1981
정당 해산

1981 - 1987
창당

1987
탈당

1987 - 1991
입당

1991
당명 변경

1991 - 1995
합당[10]

1995 - 1996
합당[11]

1996 - 1997
새정치국민회의 합류를 위한 탈당

1997 - 2000
창당

2000 - 2003
합당[12]

2003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해 탈당

2003 - 2004
창당

2004 - 2006
국회의장 취임으로 인한 탈당

2006 - 2007
복당

2007
대통합민주신당 합류를 위한 탈당

2007 - 2008
입당

2008
합당[13]
정계 은퇴

2008 - 2011
당명 변경

2011 - 2013
합당[14]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15]

2015 -
당명 변경

6. 둘러보기






[1] 도강 김씨 집성촌이다. 사촌동생으로 국회의장 시절 자신의 정무담당 비서관을 지낸 바 있는 김생기 전 정읍시장도 이 마을 출신이다.[2] 당적은 평화민주당, 민주당, 통합민주당 [3] 이 때 공천을 놓고 경쟁한 윤철상 의원은 당시 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 직권으로 전국구(비례대표) 상위권에 공천되어 당선되면서 큰 갈등은 없었다.[4] 이 때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서 새천년민주당 윤철상 후보를 꺾는다.[5] 신민당→민주한국당→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민주당→통합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민주당→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6] 김제군-정읍군[7] 민주공화당 장경순 후보와 동반 당선[8] 민주정의당 진의종 후보와 동반 당선[9] 전반기 국회의장[10] 민주당과 신설 합당[11] 개혁신당#s-1과 신설 합당[12]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13] 민주당과 신설 합당[14]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5] 민주당새정치연합의 합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에 합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