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진

 

'''대한민국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19대 전반기
오제세

'''제19대 후반기
김춘진'''

20대 전반기
양승조
'''대한민국 국회의원 (전북 고창군·부안군)'''
제16대
정균환

'''제17~19대
김춘진'''

''선거구 개편''
유성엽[1]
김종회[2]
[image]
'''이름'''
김춘진(金椿鎭)
'''출생일'''
1953년 1월 24일 (71세)
'''출생지'''
전라북도 부안군
'''병역'''
대한민국 육군 대위 만기전역
'''종교'''
가톨릭(세례명: 베드로)
'''가족'''
부인 오명숙, 슬하 1남 1녀
'''소속 정당'''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7, 18, 19
'''경력'''

1. 개요
2. 선거 이력
3. 소속 정당
4.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치과의사, 정치인이다. 전 국회의원.
1953년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났다. 부안중학교[3]를 졸업하고 전주고등학교, 경희대학교 치과대학 학부, 동 대학원 치의학 석사-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1973년부터 1976년까지 국군청평병원에서 군의관으로 병역의무를 수행하여 대한민국 육군 대위로 만기전역하였다.
이후 치과의사로 활동하였으며 고려대학교, 경희대학교, 한림대학교 등에서 외래교수를 겸임하였다. 1986년부터 2002년까지 김대중 대통령의 치과 주치의를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전라북도 부안군-고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천년민주당 정균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열린우리당 제5정책조정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 때, 전라북도의 선거구 중에서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민주당 전라북도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민주당 무상급식추진특별위원회 위원장, 정책위원회 제6정책조정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SBS SOS24시 프로 그램에서 섬 노예를 구출하러 김경진 변호사와 같이 해남에 다녀오기도 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4년부터 제19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김춘진 의원실은 안민석 의원실과 더불어 극한직업으로 통하는 곳이라고 한다. 인격적으로는 대우가 매우 좋기로 유명하지만 그만큼 업무적으로도 일이 매우 많다.[4] 국정감사나 청문회만 열리면 철저한 준비를 위해 본인부터 시작해서 보좌관, 비서들이 철야를 불사할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후보로 출마했지만, 선거구가 개편되면서 부안이 고창 대신 김제시와 묶이게 되고 선거가 철저히 소지역주의 양상으로 흘러가버려서 부안에서는 60%의 득표를 얻었지만 인구가 더 많은 김제에서 32%의 득표에 그쳐, 김제 출신인 국민의당 김종회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고 말았다.
이후 정치행보는 좀 안습하다. 일단 총선 후보에서 공천 배제되었던 최규성을 경선에서 이기고 지역구 지역위원장직을 지켰고, 추미애 지도부 출범 이후 전라북도 도당위원장으로서 최고위원이 되었으며[5],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전북 지역 문재인의 전국 최대 득표율을 올리는데 기여한 것까진 좋았으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현역 전라북도지사 송하진에 도전했으나 경선에서 패했고, 이후에도 딱히 정부에서 역할을 맡지 않고 있다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출마 선언을 했으나 이원택에 밀려 공천에서 배제되었다.[6] 당시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던 분위기 상 이원택과 신경전이 치열했으니 경선이 무산되자 당연히 반발했고, 재심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었다. 결국 공천에 승복하긴 했다.#[7]
상술했듯이 낙선 후 계속 선출직에의 의지를 보였으나[8] 좌절을 겪은 좀 안습한 정치인이 되어버렸다. 비문으로 분류되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분당때도 민주당을 지키고 이후 문재인에 대해 끝까지 신의를 다했는데도 결과가 안 좋은 안타까운 경우. 정치인으로서 향후 행보는 불투명하나, 이대로 정계은퇴를 하더라도 민주당과 당원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였던 만큼 민주당 원로로서는 계속 예우받을 것으로 보인다.

2.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고창·부안)

'''23,328 (56.26%)'''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고창·부안)

'''35,662 (77.42%)'''
'''당선 (1위)'''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고창·부안)

'''23,097 (39.34%)'''
'''당선 (1위)'''
'''3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김제·부안)

32,936 (42.94%)
낙선 (2위)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8 - 2000
정계 입문

2000 - 2003
합당

2003
탈당[9]

2003 - 2007
입당

2007 - 2008
합당

2008
당명 변경

2008 - 2011
당명 변경

2011 - 2013
합당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

2015 -
당명 변경

4. 둘러보기







[1] 정읍시·고창군[2] 김제시·부안군[3] 가끔 학교에서 초청하여 좋은말씀 하시러 오기도 한다. [4] 이는 안민석 의원실도 마찬가지다.[5] 이때 민주당은 서울·제주/경기·인천/강원·충청/호남/영남의 권역별 시도당위원장이 호선으로 지역별 최고위원을, 여성/노인/청년 직능별 위원장이 최고위원을 함으로써 지도부를 구성하는 지도체제였다.[6] 이전 총선에서 소지역주의에 밀렸으니 이번엔 김제 출신을 후보로 내겠다는 방침이 있었을 수 있고, 여론조사에서 이원택에 비해 후보적합도가 현저히 떨어으며, 고령이라는 점도 감안된듯 하다.[7] 취소선 드립을 치긴 했지만 어쨌든 당의 결정을 인정한 것 만으로도 좋은 정치인의 자세이다.[8] 이 정도 무게감의 정치인이라면 보답을 받을만도 한데 그런게 없었던걸 보면 선출직에 대한 의지가 강해서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9] 열린우리당 합류를 위한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