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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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광진구 을)'''
''선거구 분리''
강수림[32]

'''제15·16대
추미애'''

제17대
김형주
제17대
김형주

'''제18~20대
추미애'''

제21대
고민정

'''대한민국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제17대 후반기
홍준표

'''제18대 전반기
추미애'''

제18대 후반기
김성순






'''대한민국 제67대 법무부 장관
추미애
秋美愛 | Choo Mi-ae
'''
<colbgcolor=#003764><colcolor=#fff> '''출생'''
1958년 10월 23일 (65세)
경상북도 달성군
(現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거주지'''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
현대프라임아파트[1][2]
'''본관'''
추계 추씨
'''현직'''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재임기간'''
제67대 법무부 장관
2020년 1월 2일 ~ 2021년 1월 27일
'''서명'''
[image]
'''외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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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 '''형제자매'''
2남 2녀 중 셋째
'''배우자'''
서성환
'''자녀'''
아들 서재휘, 서재현, 서재영
'''학력'''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법학 / 학사)
연세대학교 (경제학 / 석사)
'''종교'''
불교[33]
'''소속 정당'''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15''', '''16''', '''18''', '''19''', '''20'''
'''경력'''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춘천지방법원 판사
광주고등법원 판사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컬럼비아 대학교 방문교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제2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제67대 법무부장관

1. 개요
2. 생애
2.1. 유년 및 학창 시절
2.2. 법조인 시절
3. 학력
4. 경력
5. 수상
6. 어록
7. 별명
8. 추미애 사단
10. 여담
11. 소속 정당
12. 선거 이력
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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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판사 출신 정치인.
제15·16·18·19·20대 국회의원과 제2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재인 정부 시절 제67대 법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여러 가지의 ''''최초''''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나열해보자면,
  •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지역구 5선 국회의원[3]
  •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서울 지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
  • 최초의 여성 판사 출신 국회의원
  • 최초의 판사 출신 야당 국회의원
  •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선출직) 여당 대표[4]
  •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최초의 TK#s-1.1 출신 당수(당대표)[5]
  •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최초의 임기를 다 채운 당대표[6]
  • 헌정사상 최초로 검찰총장에 대해 직무배제를 명령하고 징계를 청구한 법무장관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법원에서 10여 년간 판사로 일했고, 1995년 김대중에게 스카웃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2. 생애



2.1. 유년 및 학창 시절


1958년 경상북도 달성군(1995년 대구광역시로 편입)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셋째이자 차녀로 태어났다. 3살 무렵에 부모가 운영하는 세탁소에 도둑이 들어서 재산도 줄어들고, 마침 이때 막내 동생이 태어나고 언니도 눈병에 걸려 살림이 굉장히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3살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외갓집에 맡겨져 컸다고 한다. 이러한 성장 배경이 강한 '독립심'과 '반항적 기질', '기득권에 대한 분노'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대구남산초등학교, 구남여자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시절부터 동기 서성환[7]캠퍼스 커플로 7년간 교제한 끝에, 1985년에 결혼하여 법조인 부부로 이름을 알렸다. 추미애는 1982년 사법시험 합격 후 여기저기서 혼처를 제안받았으나, 서성환이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결혼하기까지의 과정도 순탄치 않았는데, 추미애는 경상북도, 서성환은 전라북도 정읍 출신인 점이 걸림돌이었다. 당시는 경상도전라도지역감정이 극심했던 때라 양쪽 지역 출신 사이의 결혼을 선뜻 승낙받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서성환은 고등학생 때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그러나 추미애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결혼 승낙을 받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언론에서는 추미애를 가리켜, 그리고 추미애 스스로도 '대구의 딸, 호남의 며느리'라고 부른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추미애를 정계에 영입한 이후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슬하에는 3명[8]의 자녀가 있다.

2.2. 법조인 시절


한양대 졸업 이후 재수 끝에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인 1983년에 사법연수원에 입교하였다. 당시에는 여성이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서, 제24회 합격자 300명 중 여성은 추미애 포함 단 3명에 불과[9]할 정도였고, 게다가 이른바 SKY 출신도 아니어서[10] 더욱 화제가 되었다.
사법연수원 동기(14기)생으로는 홍준표, 주호영, 신기남, 정종섭, 권순일, 이기택, 이석태, 채동욱, 김진태 등이 있다. 사법연수원 재학 시절에는 이후의 모습과는 상반되게 '''조용하고 차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법연수원 내에서는 홍일점[11]으로 주목받았으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공부에 매진하며 교제 중이던 서성환 외에는 한눈 팔지도 않는 순애보의 이미지였다고 한다.
사법연수원 졸업 이후에는 법관의 길을 걸어 춘천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서 일했다. 판사 시절부터 점차 현재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 없는, 당돌하고 대차지만 자기 중심적이며 반항적인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는 춘천지방법원에 처음 발령받을 때부터 법원 내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역시 판사 출신에 사법연수원 1년 선배인 신평 변호사는, 추미애가 1985년에 초임지를 지방(춘천)으로 발령받은 것에 분개하여 법원행정처에 가서 펑펑 울면서 여자를 지방으로 발령한 것은 부당하다며 항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는 지방이라는 이유로 조직에서 배정한 임지에 대해 불만을 하소연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던 시절이라 이런 행동에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몹시 격앙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는 내용이다.[12] 그러나 이에 대해 추미애는 그런 일이 없었으며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결국 신평은 자신의 발언으로 추미애에게 상처를 준 데 대해 사과하며 한 발 물러섰으나, 너무 강렬한 기억이었다며 그런 전언을 들은 것까지는 부정하지 않았다.
또한 춘천지방법원에 부임한 때는 아직 서슬 퍼런 전두환 군부 독재 정권 시기였는데, 추미애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
  • 1985년 봄, 전두환 정권은 오늘날에는 명작으로 평가 받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100권이 넘는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하고 관련된 출판사 및 서점 등을 압수수색하였다. 전국 검찰에선 일제히 영장을 청구했고, 전국 법원은 예외 없이 영장을 발부했다. 그때 춘천지방법원에서 초임 판사로 일하던 추미애에게도 불온서적 유통 혐의를 받던 춘천의 가장 큰 서점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영장이 청구되었다. 그러나 추미애는 부당한 청구라며 영장을 기각하였다. 전국에서 유일한 영장 기각이었다. 이후 법원장은 추미애를 호출해서 “당신, 김대중 정치 운동하는 판사냐?”며 비아냥대듯 야단쳤다고 한다. 훗날 추미애는 이 사건에 대해 "독재정권이 저지르는 진시황분서갱유 같은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날 밤을 새우며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만 해도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는 금기와 편견의 상징이었고, 불온의 대명사였다. 그렇게 저에게 ‘김대중’의 이름이 씌워졌지만 그 분과는 생면부지였다. 실제로 인연이 맺어진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에 우연히 찾아왔다."고 회고하였다.
  • 이외에도 수사 당국이 여러 공안 사건에서 구속영장을 남발해도 법적으로 용납이 안 되면 기각해버렸다. 한번은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며 경찰서장이 한밤 중에 추미애에게 전화를 걸어와 “내일 다시 신청할 테니 꼭 발부해달라”며 신경질을 낸 일이 있었다. 추미애가 “영장청구권자는 검사인데 서장께서 왜 직접 전화를 하는가? 판사가 한번 결정해 외부로 나간 일은 번복할 수 없다”라고 응수했는데, 다음 날 법원장이 불러 “아버지 같은 경찰서장에게 도대체 뭐라 했길래 서장이 그리 화가 난 것이냐”라며 질책했다. 추미애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검찰 쪽으로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경찰서장이 찾아와 사과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고 한다.
이로 인해 나이 어린 초임 판사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보던 주위 사람들에게 ‘껄끄러운 여성 판사’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런 성격과 행보가 쌓이면서 ‘불의에 굴하지 않는 여성 판사’라는 평판도 얻게 된다.
이런 추미애를 주목한 것이 김대중이었다. 추미애가 판사 10년차이던 1995년, 김대중은 정계 복귀[13]를 위해 신당(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준비하며 386세대 젊은 인재 영입 작업을 벌이던 중이었다. 결국 추미애는 1995년 8월 김대중의 영입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법원에 사직서를 내고 정계에 입문한다. 정치인이 된 이후의 생애는 아래 '정계 활동' 문단에서 서술한다.

2.3. 정계 활동




3. 학력



4. 경력


  • 1982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 1985 춘천지방법원 판사
  • 1989 인천지방법원 판사
  • 1993 전주지방법원 판사
  • 1995 광주고등법원 판사
  • 1996 ~ 2000 제15대 국회의원 (서울 광진구 을)
    • 제15대 국회 내무위원회 위원
    • 제15대 국회 여성특별위원회 간사
    • 제15대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위원
  • 1997 제15대 대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유세단장
  • 1998 제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14]
  • 2000 ~ 2004 제16대 국회의원 (서울 광진구 을)
    • 제16대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위원
    • 제16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
  • 2001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 2002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 2003 새천년민주당 상임중앙위원
  • 2002 제16대 대선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
  • 2003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미국·일본 특사
  • 2004 ~ 2006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방문교수
  • 2006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2007 제17대 대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
  • 2008 ~ 2012 제18대 국회의원 (서울 광진구 을)
  • 2008 ~ 2010 제18대 국회 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 2012 ~ 2016 제19대 국회의원 (서울 광진구 을)
    • 2012 제19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 2013 제19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
  • 2012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 2012 제18대 대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국민통합위원장
  • 2015 ~ 2016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 2015 ~ 2016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경제정의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
  • 2016 더불어민주당 소녀상의 눈물 운동본부 위원장
  • 2016 ~ 2020 제20대 국회의원 (서울 광진구 을)
    • 2016 제20대 국회 전반기 국방위원회 위원
    • 2016 제20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 2016 ~ 2018 제20대 국회 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15]
    • 2017 제20대 국회 한러의원외교협의회 회장
    • 2018 ~ 2020 제20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 2019 제20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미주소위원회 위원장
    • 2019 국회 한-러시아·CIS 의회외교포럼 회장
  • 2016 ~ 2018 제2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 2017 제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대위원장
  • 2018 더불어민주당 혁신성장추진위원회 위원장
  •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대위원장
  • 2019 ~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 2020 ~ 2021 제67대 법무부장관

5. 수상


  • 1997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권익디딤돌상[16]
  • 1999 《ASIAWEEK》[17] 새 천년을 이끌어 갈 아시아의 젊은 정치지도자 20인
  • 1999 한국유권자운동연합 국회의정활동 행정자치위원회 최우수상
  • 2000 국민화합운동연합 국민화합상
  • 2000 한국여성유권자연맹 20세기를 빛낸 여성
  • 2000 바른사회밝은정치시민연합 새천년 밝은정치인상
  • 2003 시사저널 차세대 지도자감 1위
  • 2004 월간중앙 국민이 뽑은 정당의 최고 정치지도자 1위
  • 2009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 2012 국회도서관 이용 최우수 국회의원
  • 2013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 안중근 평화대상
  • 2014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국정감사 과학기술 최우수 의정상
  • 2015 국회를 빛낸 바른 언어상
  • 2015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5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7 대한민국소비자대상 입법의정부문 올해의 최고 인물
  • 2018 한국유권자총연맹 국정감사 최우수 의정활동 대상
  • 2019 2018 한양대학교 총동문회 자랑스러운 한양인상
  • 2019 한국유권자총연맹 국정감사 최우수 의정활동 대상
  • 2019 한국자치발전연구원 대한민국 자치발전 국정부문 대상
  • 2021 광복회 독립운동가 최재형상

6. 어록


'''"노 대통령탄핵 사유는 줄이고 줄여도 책으로 만들 정도"'''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

'''"익명의 그늘에 숨어 대통령을 '재앙'으로 부르고 지지자를 농락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 행위"'''

2018년 1월, 네티즌들의 "문재앙", "문슬람" 등 표현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했다"'''

2020년 1월, 검찰 고위직 인사와 관련하여 #

'''"윤 총장이 저의 지시를 어기고 지시의 절반을 잘라먹었다"'''

'''"장관 말을 겸허히 들었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지휘랍시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2020년 6월,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포럼에서 #

'''"검언유착이 심각하구나, 또 한번 감탄하고 있다"'''

'''"아이가 굉장히 화가 나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0년 7월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 중 아들 휴가 의혹에 대해 #

'''"검언유착이 아닌 지 의심할 때가 있다"'''

'''"당장 수사하라. 검언유착이냐. 장관 흔들기냐. 답변을 해야 하나"'''

2020년 7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 중 아들 휴가 의혹 관련 질의가 나오자 격분하며 #

'''"소설을 쓰시네"'''

2020년 7월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 중 윤한홍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

'''"일반 주부에 이어 젊은 층마저 투기 대열에 뛰어들었다"'''

2020년 8월, 수도권 집값 급등 현상에 대해 #

'''"좋습니다. 이렇게 커밍아웃 해주시면 개혁만이 답입니다"'''

2020년 10월, 자신을 비판한 평검사를 SNS로 저격, 비난하며 #

'''"그날이 쉽게 오지 않음을 알았어도 또한 그날이 꼭 와야 한다는 것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2020년 1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개혁의 의지를 드러내며 #

"'''모든 개혁에는 응당 저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개혁은 있어도 영원한 저항은 있을 수 없습니다."'''

2021년 1월, 법무부장관 이임사에서 #


7. 별명



  • 추다르크
  • 느와르메이커
  • 돼지엄마: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별명이라고 한다.
  • 탄핵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한 이유로 트위터에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본인이 직접 언급했다. # 그 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때도 야당 대표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그런지 관련 별명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 탄핵요정
    • 프로탄핵러
  • 킹슬레이어
  • 킹 메이커
  • 선거의 여왕: 그녀가 당대표로 재임한 기간 중에 있었던 제19대 대통령 선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8 재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 추날두: 추미애라는 글자를 키보드 영자로 치면 'cnaldo', 즉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약자처럼 된다. 브라질 축구황제 호나우두가 현역이던 시절, 어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등에 C.Ronaldo 를 쓰기도 하였었는데, 이때 사람들이 씨날두, 크날두로 부르곤 했었다. 나중에는 등에 Ronaldo 만 표기한다.
-
  • 애미추: 추미애 이름 석 자를 뒤집어 패드립 뉘앙스를 풍기게 만들어 놓은 것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부정적인 별명이다.
    • 추애미
  • 추미애국보수: 과거 노무현 탄핵에 찬성했던 전적, 댓글조작 의혹을 제기했는데 경찰에서 검거하고 보니 민주당원이었던 것,[18]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권주자로 만들어주고 문재인 정부 지지율을 떨어뜨린 것 등 여러 차례 팀킬을 한 전력을 비꼬는 별명이다.
    • 추크나이트
  • 법無부장관, 무법부장관: 지나친 수사지휘권 행사, 정권 수사 방해, 검찰 인사권 남용, 무리한 검찰총장 직무정지 및 징계 청구 등 추미애의 법무부장관으로서의 행보를 비판하는 별명이다. 참고로 전임 장관인 조국 또한 같은 별명을 가지고 있다.

8. 추미애 사단


2020년 1월과 8월 2차례에 걸쳐 정권을 수사하는 검사들을 좌천시키고 친정부 검사들을 요직에 앉혔다. 이로서 2020년 8월 검사 인사 이후 '윤석열 사단'이 전멸했지만, '''추미애 사단'''이 새로 생겨났다는 평을 받았다. 검찰에서 추미애 사단에 속하는 주요 인사로는 다음과 같다. # # 이후 박범계 장관이 새로 취임하면서 추미애 사단은 '''박범계 사단'''으로 갈아타게 되었다.
  • 이성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대표적인 친정부 검사로, 문재인의 경희대 법대 후배로 참여정부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실에 파견되어 일한 바 있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승승장구했으며, 중앙지검 검사장으로 있으면서 정부여당의 입맛에 맞게 사건을 편파적으로 처리해왔다.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사건 이후 휘하 검사들의 신망을 완전히 잃어버렸으나, 박범계 후임 장관도 이성윤을 유임시켰다.
  • : 추미애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핵심 참모이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를 철회해달라는 글을 추미애 장관에게 쓰기도 했다.
  • 심재철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검사장: 일명 '상갓집 파동'의 주인공으로, 조국 무혐의를 주장하여 상갓집에서 후배 검사로부터 "니가 검사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사건 당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총장 측이 제기한 징계위원 기피신청에 기각 표를 던진 뒤 자진해서 회피신청을 하여 윤 총장 징계의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박범계 장관이 2021년 2월 검찰 인사를 단행하면서 법무부 검찰국장에서 라임 사태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이동했다.
  • 이정현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있으면서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수사를 지휘한 인물이다.
  • 신성식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있으면서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수사를 지휘한 인물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사건 당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 이종근 대검찰청 형사부장: 법무부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부단장을 지냈다.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의 남편이다.
  • 고경순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추미애의 한양대 법대 후배이다. 서울서부지검 차장검사로 있으면서 윤미향 사태에 대해 봐주기식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
  •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 이종근 대검찰청 형사부장의 아내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사건 당시 윤 총장에 대한 망신주기식 감찰 및 하급자 의견 묵살 등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9. 비판 및 논란




9.1. 법무부장관 시기




10. 여담


  • 장녀는 양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

  • 남편인 서성환 씨는 아내와는 달리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법무법인을 설립해서 본업인 변호사 업무를 행하며 정치와는 사실상 무관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내인 추미애에 대한 기본적인 외조나 선거 캠프 등에서 실무 작업에 참여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대외 행사에도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 대한민국 불교계의 대원로였던 성철 스님과 대면한 적이 있다. 그것도 2번씩이나... 이게 대단한 이유가 뭔가 하면 성철 스님은 "누구든지 나를 만나고 싶거든 부처님 앞에 3,000배를 하고 오라"고 시켰다. 그런데 추미애는 실제로 3,000배를 했기 때문. 참고로 박정희 대통령도 해인사를 방문했을 때 성철 스님을 만나려고 했지만, 성철 스님이 같은 조건을 내세우는 바람에 만남을 포기했었다.
  • KBS 2TV '슈퍼맘 다이어리'라는 리얼 다큐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시청자의 반응은 "평소에 정치인으로서 굉장히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여장부[19]의 면모와 달리, 해당 프로그램 속의 주부 추미애는 대한민국의 여느 아줌마들과 같은 모습"이라는 평. # 그리고 2017년 7월에는 KBS 2TV의 오락 프로그램 냄비받침에 출연하여 진행자인 이경규와 대화를 나눴다.
  • 2000년 7월 5일, 동료 의원들 및 기자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 'X같은 조선일보', '이회창이 이놈' 등의 발언을 했고, 동아일보 기자와 싸움이 번져 '사주 같은 놈', '누구의 지시를 받아 기사를 썼느냐'는 등의 발언을 했다. 정동영 등 동료 의원들이 말리면서 데리고 나오자 '정의가 바로 서야 하는데 왜 이러느냐' 하고 마당에 주저 앉아 펑펑 울었다고 한다. 다음 날, 조선일보에는 추미애의 'X같은 조선일보' 발언이 대문짝만하게 실려서 곤욕을 치렀다.
  • 2007년 11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지시사항이 적힌 삼성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추미애 의원을 가리켜 '돈 안 받는 정치인'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추미애는 본의 아니게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돈 안 받는 정치인' 인증(?)을 받았고, 이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우스개 소리로 '추미애 의문의 1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 2016년 9월 22일, 추 의원에 대해 허위 기사를 쓴 지역 매체 기자에게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이 내려졌다. 법원은 "기자로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고 허위 기사를 작성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도 피해자의 고소가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해 범행 이후의 정황도 좋지 않아 징역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
  • 2017년 더불어민주당제19대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때는 줌마개그를 선보였다. 호남권 경선 대회 때 개표 발표를 맡았던 홍재형 당시 선거관리위원장은 후보의 이름이나 총 득표율을 잘못 말하는 실수를 여러 번 하였다. 이에 이름이 잘못 불려진 후보 측에서 반발이 생기자 이후 충청권 경선 대회 때 자신의 말 실수를 공식 사과했다. 이후 추미애는 홍재형 위원장의 사과를 너그럽게 받아달라고 말하며 "제 이름을 거꾸로 하면 애미가 되겠지요?"라는 농담을 했다.
  • 2017년 제19대 대선 기간 동안 문재인 후보가 내세운 문재인 1번가를 홍보하는 홍보 영상금태섭 의원과 함께 직접 출연했다. 물론 추미애가 전문 배우는 아닌 관계로 발연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금태섭의 발연기가 더 심해서 묻힌 감이 없잖아 있다. 금태섭 의원의 연기에 대해서는 "금씨 성을 가진 더민주 인사는 무기한 출연 금지 요청합니다."라는 반응도 있었다.
  • 2017년 8월, 이혜훈[20], 이정미와 함께 여성 당대표 특집으로 여성중앙(2017년 9월호) 화보를 찍은 적이 있다.
  • 2017년 10월 25일 녹화되고, 사흘 뒤 인터넷에 공개된 김어준의 파파이스 최종회에서 친노무현계의 좌장으로 불리는 이해찬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에 출마한 사람을 제외하고) 민주당의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할 만한 사람들을 언급해달라는 김어준의 요청에 추미애를 언급하였다.
  • 2018년 2월 4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의 황금개띠해 특집 편에 개띠 인물 중의 한 명으로 잠깐 출연해[21] 김준호 등 1박 2일 멤버들을 만났다.#
  • 2018년 4월 1일, 만우절을 맞아 추미애 대표의 네이버 블로그와 페이스북이 초선 의원이던 시절로 맞춰져 변경되었다. # 심지어 블로그 포스트의 내용도 당시 시절로 깔맞춤되었다. ## 만우절에 쓴 블로그 글 중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추미애 의원이 배우 채시라 씨를 닮았다고 말씀하셨다며 자신의 미모(?)를 자랑하는 자뻑글도 있는데, 이 글은 다른 이유로 화제를 모았다. 그 이유가 알고 싶다면 이 쪽으로... 이후 추미애 블로그에 이 만우절 드립 제작의 후기가 올라왔다.
  • 김삿갓이 쓴 시 중 음을 읽으면 추미애에 대한 욕인 것처럼 된 한시가 있던 것으로 알려져있었으나 이는 오래된 헛소문으로 보인다. 고파스
> 秋美哀歌靜晨竝 추미애가정신병
> 가을 날 곱고 애잔한 노래가 황혼에 고요히 퍼지니
> 雅霧來到迷親然 아무래도미친연
> 우아한 안개가 홀연히 드리운다
> 凱發小發皆雙然 개발소발개쌍연
> 기세 좋은 것이나 소박한 것이나 모두가 자연이라
> 愛悲哀美竹一然 애비애미죽일연
> 사랑은 슬프며 애잔함은 아름다우니 하나로 연연(連延)하다.
해당 고파스 링크에 따르면 이 시는 김립[22]시집에 실린 '추미애가'로 알려져 있다. 김립시집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이응수에 의해 초판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김립시집에는 이와 같은 시가 실려있지 않다. 양동식의 2005년 연구는 이응수의 김립시집 초판(1939), 증보판(1941), 최종판(1956) 및 백길순 판본(1954), 박오양 판본(1956, 1975, 1978), 허문섭 판본(1994), 리응수의 '풍자시인 김삿갓'[23] 등의 분석을 통해 김립시집의 원전을 찾기 위한 연구였다. 그의 논문 부록은 이응수(1941)본과 백길순, 박오양, 허문섭 판본의 시 목록을 비교한 대조표가 적혀 있는데 "추미애가..."로 시작되는 시는 발견할 수 없다. 인터넷 상에는 2006년 10월 1일 작성된 다음 블로그 글에서 최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이후 추미애에 대한 반감이 거센 시기에 나온 당시 친노 성향 네티즌의 드립성 작문이 그 효시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친박 성향 네티즌들에게 와전되어 2020년 현재 김삿갓의 시로 둔갑되어 알려지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조선시대에 '정신병'이라는 말은 오히려 고상한(?) 표현이었기 때문에,[24] 정신병을 욕설로 쓰고 들어가는 것부터가 어색한 편.
  • 프로필에 나오듯이 불교 신자이다. 불교계와의 교류도 꽤 깊고, 사적으로도 사찰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국회에 출석할 때도 염주를 손에 쥐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나타났다.

11.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5 - 2000
정계 입문

2000 - 2005
합당[25]

2005 - 2007
당명 변경

2007
합당[26]

2007
대통합민주신당 합류를 위한 탈당

2007 - 2008
입당

2008
합당[27]

2008 - 2011
당명 변경

2011 - 2013
합당[28]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29]

2015 -
당명 변경

12.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을

'''36,570 (43.77%)'''
'''당선 (1위)'''
'''초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42,787 (57.35%)'''
'''재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26,973 (30.08%)
낙선 (2위)
[30]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34,854 (52.29%)'''
'''당선 (1위)'''
'''3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45,980 (55.19%)'''
'''4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43,980 (48.53%)'''
'''5선'''[31]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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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둘러보기










[1] 한강변에 있는 역세권 아파트로 입지가 매우 좋다.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이 아파트가 5억 원(42%) 정도 올랐다. 추미애 아파트 '10억' 올라…집값 상승 4가지 포인트는?[2] 여담으로 지역구 후임 의원인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바로 옆 단지인 구의현대2단지에 거주한다.[3] 5선의 여성 국회의원은 추미애 말고도 여럿 있으나, 이는 '비례대표 의원' 시절을 포함해서 선수를 계산한 경우이고, 순수히 '지역구 의원'으로만 5선에 성공한 것은 추미애가 최초이다. 다만 추미애의 경우 내리 5선 의원은 아닌데, 17대 총선에서 하필이면 노무현 탄핵의 주역으로 몰려 열린우리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기 때문.[4]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가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 그리고 새누리당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으나, 말 그대로 (임명직) '비상대책위원장'이었을 뿐 전당대회를 거쳐 뽑힌 당대표는 아니었다. 박근혜가 참여정부 시절 당대표였던 때도 있었으나, 그땐 '여당' 대표가 아니라 '야당' 대표였다. (2002년 한국미래연합 대표, 2004년~2006년 한나라당 대표) 다만 추미애 역시 당 대표에 당선되었을 당시에는 야당 대표였고, 이후 당시 대통령을 끌어내고 다음 대선에서 자당 후보를 당선시킴에 따라 여당 대표로 신분이 바뀌었다.[5] 앞서 새천년민주당 시절, 경북 출신의 김중권이 당대표를 지낸 적이 있으나,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당대표 위에 당 총재(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 겸임)가 있어 당대표는 당수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선출직도 아니고 총재가 임명하는 명실상부한 2인자 자리였다.[6] 보통 당대표는 선거 패배 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민주당계 정당의 경우 선거 패배 사례가 많다 보니, 여지껏 임기를 다 채운 당대표가 없었다. 추미애 이전에 민주당계 정당에서 가장 오래 당대표를 지냈던 인물은 정세균(통합민주당 시절 약 2년)인데, 그도 재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바람에 임기를 다 채우진 못했다. 추미애의 경우 당대표 재임시절 치른 선거(19대 대선, 7회 지선)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당대표를 사퇴할 일도 없었고, 때문에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추미애 이후 당대표가 된 이해찬21대 총선의 슈퍼 압승 덕분에 2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7] 서성환은 추미애보다 3살 많지만, 대학을 늦게 입학한 까닭에 같은 과 같은 학번의 동기였다. 두 사람은 연애를 하며 사법시험 공부를 함께 했다고 한다.[8] 1남 2녀[9] 1978년(제20회)에는 김영란 등 2명, 1980년(제22회)에는 조배숙 등 3명, 1981년(제23회)에는 강금실 등 2명밖에 합격하지 못했다. 1979년(제21회)에는 아예 여성 합격자가 없었다.[10] 당시에는 사법시험에서도 SKY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당장 제24회 사법시험의 다른 여성 합격자 2명(김선혜 전 서울고법 판사, 조경란 제19대 특허법원장)은 모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생 및 재학생이었다.[11] 사법시험 여성 합격자가 워낙 적던 시절이라 각 반에 여성이 1명 있을까 말까 했다.[12] 역시 자기중심적이며 곳곳에서 무리한 주장으로 물의를 빚은 것으로 유명한 신평마저도 '지극한 자기중심주의적 세계관'과 '과도한 자기애'를 갖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을 보면, 추미애의 성격이 당시부터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13]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자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잠시 영국에 가 있었다.[14] 25명 인수위원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15]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었으나 2016년 8월 당 대표에 선출됨에 따라 상임위 활동이 어려워져, 상대적으로 부담이 작은 외교통일위원회로 이동(사보임)했다.[16] 남녀평등실현과 여성권익 향상에 디딤돌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17] 홍콩 시사주간지[18] 이로 인해서 친문 핵심 인사인 김경수가 1,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아 경남도지사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19] 이 때문에 정치인 스타일 중에서는 탱커형으로 종종 분류된다.[20] 당시 바른정당의 당대표였다.[21] 추미애 의원이 개띠라고 한다.[22] 김삿갓의 한자어[23] 북한에서 출간되었다.[24]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精神病이라는 표현은 대체로 노쇠하여 정신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말할 때 쓰였다.[25] 새천년민주당과 흡수 합당[26] 중도개혁통합신당과 신설 통합[27] 민주당과 신설 합당[28]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29]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30]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 시절에 치른 선거인데, 당시 탄핵에 찬성한 여파로 인해 결국 낙선했다. 이후 미국에 가 있다가 18대 총선 이전에 다시 귀국한다.[31] 20대 국회 현역 최다선 여성 의원.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차기 선거 불출마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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