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중
金花中
1945년 1월 3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의료인, 교육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광산 김씨[1] 다. 남편은 전 곡성군수 고현석이다.
1945년 충청남도 논산군에서 김용윤(金容潤)과 윤정희(尹貞姬)의 딸로 태어났다[2] . 대전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간호교육학 석사,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1967년부터 1969년까지 서울대학교병원 간호사, 수간호사로 근무하다가 1971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로 근무하였다.[3] 한편 대한간호협회 이사, 간호정우회 회장, 가정간호학회 초대 회장, 대한간호협회 회장, 한국학교보건학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전국구 후보 20번을 배정받았으나, 19번까지만 당선되는 바람에 아쉽게 낙선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김한길 전국구 의원이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의원직을 사퇴해 그 자리를 승계했다. 이 후 민주당 김대중 총재 특별보좌역, 민주당 원내부총무와 정책위 부의장을 맡으며 국군간호사관학교 폐교 저지, 호주제 폐지 등을 위해 노력했으며,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몇몇 전국구 의원들이 정몽준, 이회창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막장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보건의료 특별보좌역과 권양숙 여사의 비서실장을 지내며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입각, 2004년 7월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장관직을 맡는다. 비록 장관 재임 당시 , 고위직 공무원 들과의 알력으로 복지부 산하 국립보건원의 질병관리청 승격을 이뤄내지 못하는 등의 흑역사도 있지만, 장관 재임 당시 전세계 사람들을 떨게 만든 SARS에 대한 빈틈없는 방역조치로 인해 이 후 조류 인플루엔자와 MERS에 손도 못 쓰고 당한 박근혜 정부의 무능한 보건복지부 장관들과 비교되어 긍정적인 면으로 재평가되었다. 건강보험 포괄수가제 시범 도입 등의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아동 보육정책의 여성부 이관으로 아동 및 복지계로 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고 있으며, 대한민국 교육부에 곡성에 있는 자신과 남편의 시설을 매입을 부당하게 요청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장관 퇴임 이 후에도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 충청북도 명예도지사, 새정치민주연합 국정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장녀는 서울대학교 간호학과 고진강 교수
차녀는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고선강 교수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