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 땅크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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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사단 사령부의 전경'''
1. 개요
2. 역사
2.1. 상징성
3. 현재의 예하부대
3.1. 전력수준
4. 그러나 명백한 한계
4.1. 1960년대 수준의 전투장비
4.2. 1950년대 수준의 전투교리
4.3. 태만한 군기와 낮은 훈련도
4.4. 보급 부족
5. 기타
6. 관련 항목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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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육군의 기갑부대로 북한군 최초의 기갑부대이자 정규 기갑부대의 효시인 부대이며, 북한군 최초의 근위부대라고 알려져있다.김일성과 항일 빨치산 운동을 함께 했던 측근인 류경수를 초대 지휘관으로 세운 부대로써 1947년 5월 16일 창설된 북한군 최초의 기갑부대인 제15전차연대를 모태로 이후 제9 전차여단으로 개편되었고 6.25 전쟁 당시 서울을 함락시킨 뒤로 현재와 같은 105라는 단대호를 부여받았다.
북한 전차전력과 역사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거론해야되는 부대가 바로 이 부대이고 이 부대를 소개할때는 아예 북한 전차부대 창설의 역사까지 소개해야될 정도로 북한군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중요한 부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일성 시절부터 김정일 시대와 현 김정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3대 돼지가 북한의 지상군 현지시찰을 나갈때면 거의 필수코스로 들르는 곳도 바로 이 곳이다. 선대들은 말할 것도 없고 MiG-29 A/C형같은 구형전투기 30기 남짓으로 공군 강국을 자처하며 비행기 사랑을 뽐내고 인민들의 고혈을 짜서 대외과시용 에어쇼까지 열었던 김정은 역시 '''땅크는 우리 군대의 상징''' 이라며 이 부대를 각별히 여길 정도다. 그만큼 타 북한군 사단과 달리 최신 전차와 제일 좋은 보급품을 우선적 공급받으며 정말 좋은 대우를 받고 있고 장비와 수송능력이 개판인 북한군 군대중 그래도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행보들은 정말로 이 부대가 자랑스럽고 대단한 것을 떠나서 아래 역사문단에서 집중적으로 설명할테지만 6.25 전쟁 당시에 수도 서울에 최초로 입성했던 부대였기 때문에 순수한 의도에서의 현지시찰이 아닌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하여, 내부로는 단결과 영원히 이뤄질리가 없는 적화통일 이념을 고취시키고 대외 특히 대한민국을 향해서는 거하게 어그로를 끌기 위한 목적 그 이상도 아닐 것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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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제9땅크려단장 시기 류경수의 사진.[1]
위에 개요에서 짧게 언급한대로 이 105사단의 역사는 곧 북한군 전차보유의 역사와 함께 시작하기 때문에 설명할 것이 굉장히 많다. 1946년 이후 북한군이 점점 무장을 시작하면서 김일성은 남침에 가장 우선적인 전차를 포함한 기계화무기들을 소련에게 부탁하였고 소련은 개전 직전까지 T-34 242대와 SU-76 176대 등을 지원하며 남한과 달리 본격적인 전쟁을 위한 무장에 열을 올리던 참이었다.
북한의 전차전력 창설은 1947년에서 48년 사이로 거슬러 올라가게된다. 류경수라는 인물은 당시 김일성과 함께 항일 빨치산 운동을 같이했던 동지로써, 특히 소련군이 운용하던 전차를 매우 동경하고 있어서 몰래 소련인들에게 술과 고기를 대접해가며 전차에 대한 것을 배웠을 정도로 전차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김일성은 북한정권 설립 후 북한군 최초의 전차부대 창설을 준비하면서 그를 적임자로 내세우게 된다. 1948년 8월 20일 그렇게 북한군의 전차부대 창설을 진두지휘하게 된 류경수는 첫 전차부대인 제15교도전차연대를 탄생시켰으며 이 때문에 북한의 기계화군단 명칭인 제 '''820기계화군단(위장명칭 820훈련소)'''의 단대호가 바로 이 8월 20일에서 따온 명칭이 되었다.
북한은 소련군정이 끝난 1946년 이후 소련이 남기고 갔던 각종 중화기 특히 T-34전차를 기초로 소련군 교관을 초빙해 전차전술과 부대창설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고 전차운용에 적합한 농민들이나 노동자들을 가려뽑아 부대가 주둔했던 지금의 평양 사동일대 호랑이골에서 고도의 훈련을 거쳐 북한의 첫 전차 승무원들을 배출하였다. 1948년 북한의 첫 전차열병식을 시작한 때로부터 이 교도전차연대는 교도라는 타이틀을 벗기고 군기를 하달받아 본격적인 야전전차부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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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1월 땅크부대에 하달된 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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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4월 26일에는 제9전차여단이라는 명칭으로 여단급 전차부대로 승격된 이후 6.25 전쟁때 전투에 투입되면서까지 유지된다.
6.25 전쟁 당시의 제9전차여단은 현재 우리군의 제1포병여단같은 군단급 지원부대와 비슷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예하에 있었던 4개의 전차연대인 제107,109,203,206연대를 독립적으로 운용하지않고 북한군 제1군단 예하 1,3,4,6사단에 1개씩 임시배속하여 진격지원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그 결과 107연대와 109연대는 3,4사단의 진격축선을 따라서 국군의 제7보병사단을 섬멸시켰고 3일만에 수도 서울을 가장먼저 뚫고 들어가 점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학교병원 인근 산에서 교전이 발생해 조용일 소령과 남 소위, 그리고 선임하사인 민 하사를 비롯한 수비병력 전원이 전사했다. 이후 병동에 난입하여 그곳에 입원해 있던 국군 부상병과 일반 환자 약 900여 명을 학살했다. 저항을 포기한 포로의 학살도 전쟁범죄인데 민간인까지 죽였기 때문에 인민군에 대한 서울시민의 반감은 적지 않았다.
어쨌든 서울함락 이후, 제9전차여단은 1950년 7월 5일에 북한군 최고사령관 명령 7호에 따라 '제 105 땅크사단'으로 승격되었고, '''서울'''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같은 달 27일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54호에 따라 '''근위''' 칭호를 수여받아 '''근위 서울 제105 땅크사단'''이라는 명칭이 되었다.
105땅크사단은 서울 점령 이후, 오산시에서 미군을 공격한 후 금강, 대전광역시, 낙동강 등으로 진격하였다. 북한군의 남침 당시, 국군에는 T-34-85를 저지할만한 무기가 거의 없어서 곡사포직사로 사격하여 격파를 노리는 방법, 궤도 집중공격, 수류탄 또는 박격포탄 묶음을 들고 적 전차에 맨몸으로 돌격하는 방법 등이 시행되었을 정도로 북한군 T-34를 저지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방법이 동원되었지만, 전체적인 전세를 바꿀 수 있을 만큼의 피해를 입히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105땅크사단은 낙동강으로 진격하는 도중 미군의 네이팜 및 공대지 폭격, 보급선의 부실 및 고장으로 인한 진격 도중의 유기,[2] 자력 집중적인 대전차 사격으로 적지 않은 수를 잃게 되었고, 낙동강 전선의 다부동 전투에서도 민낯을 드러나게 된 북한군의 저급한 전차운용, M26, M20과 같은 UN군의 강력한 전차와 대전차화기 등으로 인하여 상당수를 잃게 되었다.
당시 다수의 T-34를 손실한 105땅크사단은 부대에 사단이라는 이름만 붙은 상황이었지, 사실상 연대급의 부대였다. 인천상륙작전이후, 퇴로가 차단되기 시작한 북한군은 퇴각하면서 남은 T-34들을 모두 집결시켜 수원 부근에서 미군의 포위를 간신히 돌파하였는데, 이 때에도 손실을 감수하여야 했다.
결국 105땅크사단은 몇 안 되는 T-34만으로 강계까지 퇴각하였고, 이 이후 10월 말과 11월14일 즈음에는 T-34를 새로이 인계받고 제3군단으로 배속된 후 후방에서 재조직되었다. 완전히 새로 편성 되다시피 한 105땅크사단은 사실상 교도련대 수준을 면치 못하였으며, 설상가상으로 예비물자와 훈련도 부족하여 전선에 투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1951년 4월 1일 이후에는 최고사령부 관하 제4군단으로 배속 이동되었으며, 미 공군의 공습에 대비해 방공기자재를 운용하는 부대들을 사단에 편제시키게 되면서 '''근위 서울 제105 기계화사단'''으로 개칭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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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있는 류경수의 흉상.
당시 지휘관이었던 류경수는 1958년 사망했는데 부대명칭은 한 동안 바뀌지 않고 이어져오다가 이후 2001년 5월 23일 김정일이 이때의 지휘관 류경수의 업적을 기리고자 최고사령관 명령 0089호를 내려 '''류경수'''라는 칭호를 하달하면서 결정적으로 현재와같은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 땅크사단'''으로 최종 명명되게된다.

2.1. 상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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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군 전차의 상징인 105 숫자가 붙어있는 T-34 전차다.
북한에서는 105라는 숫자가 본 문서의 부대를 상징함은 물론 전차 자체를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북한은 이런식으로 자신들의 기념일이나 특별한 뜻을 내포한 숫자들을 프로파간다에 써먹고있다. 이를테면, 자칭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인 1953년 7월 27일 을 기념해 고위간부의 차량번호에까지 할당하는 727번호와 EC-121 격추 사건때 공훈을 세웠던 MiG-21전투기에 사건일자였던 1969년 4월 15일을 기념해 4.15 전투기라는 금테가 둘러진 삐까뻔쩍한 노즈아트 를 수여하는 등..
개요와 역사 문단에서 짧게 설명한대로 105와 류경수 그리고 820이라는 세가지 숫자는 북한 전차부대 창설역사의 중요한 뜻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류경수라는 이름이 가지고있는 상징성은 아주 대단한데 그의 이름을 딴 각종 전차나 기계화관련 시설도 존재하고 북한의 첫 전차부대 지휘관이자 전문가인 동시에 김일성과 빨치산활동을 같이했다는 것만으로도 후대에 이 자가 얼마나 미화되고 띄워졌을지는 북한이라는 국가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뻔해보인다. 어쩌면 김일성의 숙청이 한창 벌어지던 60년대에서 70년대를 보질 못 하고 1958년에 지병으로 죽은게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다..
2014년경 이후에, 북한 측에서 6.25 전쟁 당시 공훈을 세운 북한군 근위부대를 찬양하기 위해 작곡된 북한의 군가인 '근위부대 자랑가'에서 '단숨에 서울에 공화국기발을 날린 무쇠 철마' 운운하며 군가 가사의 맨 첫 번째 부대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해당 군가는 작곡 이후 2015년, 2017년 열병식에서 근위부대 열병식을 할때마다 연주된 곡인 걸로 봐서 북한의 높으신 분들이 밀어주고 있는 곡인듯. 우리나라 뉴스에는 '한국 전쟁 당시 서울을 제일 먼저 함락 시킨 탱크 부대를 칭송하는 내용'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3. 현재의 예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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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황해북도 곡산군에 주둔하고 있는데 북한의 이름난 정예부대인 만큼 한국 육군으로 쳤을때는 거의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이나 혹은 제11기계화보병사단과 동일한 성격의 부대라 그런지 최신무기들이 족족 배치되었다고 알려져있다. 또 선군호가 우선배치되어 최소 복수의 대대급 규모이상 편제된 상태다.
''' 사단 본부와 직할대'''
-경보병 정찰대대
-공병대대 (도하공병 + 전투공병)
-통신대대
-화학대대
-군의대대
-신병교육대
'''제5 기갑여단'''
-공병중대
-전차대대 3개 (선군호)
-경전차대대 (PT-85 신흥)
-기계화보병대대 (M2010 APC)
-방공대대 (57mm/37mm/14.5mm 자주대공포)
-지원대대
'''제15 기갑여단'''
-공병중대
-전차대대 3개 (선군호)
-경전차대대 (PT-85 신흥)
-기계화보병대대 (M2010 APC)
-방공대대 (57mm/37mm/14.5mm 자주대공포)
-지원대대
'''제206 기계화보병여단'''
-공병중대
-화학중대
-통신중대
-정찰중대
-기계화보병대대 3개 (M2010 APC)
-전차대대 (선군호)
'''제303 포병여단'''
-포병대대 4개 (122mm / 152mm 1개 중대씩 = 1개 대대)
-방사포 포병대대 (122mm 방사포)
'''사단 지원보급대'''
-차량화수송대대
-정비대대
-야전병원
-화기보급소
-장비보급소
하지만 2010년도 이후 훈련장면에서 59식 전차로 보이는 T-55계열이 105사단 소속으로 훈련에 참가했던 것을 볼때 구형전차들도 물량 유지를 위해 운용하고 있거나 북한판 땅크 바이애슬론인 땅크병 경기대회에서 장비 표준화를 위해 일부러 빌려탄 것일 수도 있다. 105사단은 땅크사단이라는 호칭을 가지고있는데 반해서 전체적인 전투서열을 들여다보면 사단급의 규모라기에는 굉장히 크기 때문에 이 105사단만 특별한 편제가 이루어진건지 아니면 상위부대였던 820훈련소에 흡수되었거나 승격되어 명칭만 사단급으로 전통을 유지한 군단급의 규모인지 알 수 없다.
특히 포병대대가 8개 이상에 이 포병대대를 2개씩 다른 여단에게 떼어주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듯 보여서 북한의 남침전쟁 개시때에 맞춰 포병전력과 기계화전력 또 BMP등의 보병전투차를 이용해 하차전투가 아닌 승차전투로 기동력을 앞세워 남침하려는 의도가 보이기에 전체적으로 상태가 심각한 북한군치고는 부대의 우선권과 업적덕분인지 장비들은 전체적으로 북한치고는 높은 수준을 갖추고있다. 물론 8개의 포병대대는 평시 편제일 수도 있고 혹은 6.25때 처럼 전시에만 620 포병군단(포병사령부)의 구성부대에 대한 통제권을 받는 방식일 수도 있다.
전차는 200대 이상 300대 미만으로 볼 수 있고 자주포는 150문 미만 각종 장갑차량들도 역시나 300대 미만으로 규모가 굉장히 크다. 다만 본격적인 군단급 지원화기인 방사포가 12문 밖에 없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독립여단의 성격이던 고무장한 부대들을 통합시킨 부대의 특성상 예하 여단들까지 알차게 완편되어 있기 때문에 많아보이는 것일 수도 있을 듯 싶다.
2019년 기준으로 열병식들에서 북한 최신기갑차량인 선군호M2010 APC가 근위대 칭호(마킹)를 붙이고 등장했는데 기계화부대 중 유일하게 근위대 칭호를 가지고 있는게 이 105사단이고 탈북자들 증언에서도 105사단에 모든 최신장비가 집중배치 된다는 점을 보았을 때, 구식 BMP-1이나 PT-76등은 더 이상 운용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10월 10일 열병식에서 첫 공개된 북한 최신기갑차량인 M-2020 전차가 배치 중인 걸로 보인다.

3.1. 전력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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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2010 APC를 대량으로 배치받아 기존 궤도식 장비보다 우월한 기동성과 관리/유지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선군호를 이용한 하천 도하훈련도 함께 진행했다. 전체적으로 북한의 모든 최신장비를 우선적으로 하달받는 부대이며 6.25 전쟁때 서울을 가장먼저 무너뜨린 부대라 그런지 6.25 전공부대에 하달되는 근위대칭호가 기계화부대들 중 유일하게 가지고 있다. 물론 당시에 기계화부대라곤 교육용 부대를 제외하면 사실상 이 105밖에 없었다. 따라서 열병식때도 해당 최신장비들이 측면에 근위대라 써진 대형 스티커를 붙이고 등장한다.
기존에 보유하는 것으로 추정하던 BMP-1 등은 더 이상 북한 내부에서도 운용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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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0일 열병식에서 류경수사단 병력들의 모습.

4. 그러나 명백한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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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부대 역시 '''언제 북한군이 안 그랬냐만은''' 실질적인 북한군의 현 상황을 볼때 북한군의 최강 정예부대이자 최고의 기갑부대이고 서울을 3일만에 밀어버린 전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문제가 당연히 많다.

4.1. 1960년대 수준의 전투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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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야에서 구관이 명관이라는건 꾸준한 개량과 발전을 거쳤을 때 뿐이다.
첫째로 최신전차라던 선군호역시 60년대 활강포 땜빵으로 나왔던 T-62의 차대를 개조하고 거기에 포탑을 대형화시켜 T-72 수준의 복합장갑을 넣고 125mm 주포를 얹은 것으로 끝난 구식 복합장갑에 의존한 한계성이 뚜렷한 전차라는 점이다. 폭풍호를 비롯해 T-62의 북한군 제식명칭 계열인 천마호는 모두 T-62의 한계를 뚜렷하게 가졌으며 걸프전쟁이나 각종 분쟁에서 그 보다 윗급인 T-72가 터져나가고 남한에 최신전차가 배치되고 있는것만 묵묵히 지켜보며 경사장갑 채용이나 차대확장 등 무의미한 개량만 반복한 개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거는 비단 전차뿐만 아니라 이미 보병전투차개념의 선구자라는 타이틀만 가진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들어가버려서 이젠 중동전장에서도 구식이 된 BMP-1이라던가 현대에는 아예 저고도 방공망으로도 쓰기 어려운 ZSU-57-2같은 물건을 운용하고 전체적으로 어디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전력들로만 채워진 부분도 한 몫한다.
무엇보다도 상대라는 한국군이 한국전쟁 때와는 달리 세계 10위 안에 드는 강군[4]으로 성장했고, 경제가 고도로 발전해 농촌에서도 아파트가 들어선 한국에서는 천하의 미군이라도 3일 안에는 밀고들어오지 못할 복잡한 환경을 가졌으며,[5] 수적우세 라는 식으로 말로만 떠들어서는[6] 한번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과 경제력 또 생산력 부문에서 절대로 선군정치라는 말만 나불댈뿐 한국이 본격적으로 군수에 온 국력을 투입한다면 북한이 GDP의 100%을 쓴다고해도 절대로 북한따위 레벨로는 이길 수 없는 수준에 온 동시에 기본적으로 군대라면 갖춰야할 전력에서 조차 동등한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무기의 숫적 제원표 따위만 비교를 하며 누가 쎄고 누가 약하다 또는 정신력이 무기보다 중요하다 수준의 자칭 밀덕들이나 할만한 노가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현대전은 단지 수뇌부가 전쟁을 하겠다고 그냥 일으킬 수 있는게 아니라 복합적인 외교정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군사력부문을 다 따져보고 주변의 국가들과 국제조약이나 기구들의 행동과 정세도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결국엔 이 부대를 운용하는 수뇌부라는 곳이 조선로동당김정은이라는 점만 봐도 속 빈 강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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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북한 최정예라는 기갑사단은 결국 이라크사담 후세인의 전철을 밟을 확률이 거의 100%다. 당장 걸프전쟁때만 보더라도 일반 정규군과 비교되고 특혜를 받은 동시에 엄선되어 선발되었던 고도로 정예화된 공화국 수비대 소속의 탈와카나,메디나,함무라비 이 3개 이라크 최정예 기갑사단들의 노선이 어땠는지 생각해보자.. T-72로 암만 무장해봤자 미군 에이브람스 1개 중대(13대 남짓)에게 몇 십분만에 예하 전차여단(100여대)들을 통째로 탈탈탈탈 털리고 100시간만에 완패해버린 고기방패이자 약해빠진 장기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이라크만도 못 했던 공군력과 경제력을 갖춘 현대의 북한따위가 90년대 미군과는 비교도 안 되는 2018년의 미군을 상대한다는건 차라리 신에게 대적하는게 더 쉽다고 생각될 정도다. 거기에 미군과 더불어 주적인 한국군 마저도 육군 한정으로 중국과 세계 3~4위[7] 를 다툴 정도이니, 제우스헤라클레스 에게 덤비는 꼴이나 다름없는 셈.
더군다나 북한의 선군호조차 공개된 형상과 정황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T-62를 극한까지 개량하여 T-64T-72에 준할 정도로 개량한 곳으로 추정되며 콘탁트-5와 같은 반응장갑이나 소프트킬, 하드킬 능동방호장치 따위도 제대로 없고 FCS(사통장비)도 갖추지않은 냉전 깡통전차에 불과하기에 오히려 이라크가 보유했던 '''포탑사출전문가 T-72M''' 계열보다도 기본기가 떨어지는 물건이다. 무기는 60년대 수준인데 70~80년대 수준의 무장을했던 이라크도 90년대 미군에게 지상군 투입이후에는 단 100시간만에 털렸다는 걸 생각해보면 60년대 무기수준으로 2020년대 미군에게 까불면 어떻게 될지는 눈에 선하다.
다만 2020년 10월 10일 열병식에서 공개된 M-2020 전차가 보여주기용 가짜가 아니고 배치되어 열약한 북한군의 현실을 극복해서 정상적 운용이 가능하면 전차대 전차전에서 K-1 전차에 선군호와 달리 압도적 열세를 극복하고 어느정도 위협적일 것이다.

4.2. 1950년대 수준의 전투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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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대가 더 끔찍한 것은 그 어떤 능력도 존재하지 않는 주제에 겉으로는 적화통일만 되내일 뿐 전혀 실천이라는 걸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냉전식의 소련군이 주도했던 공격적인 기계화부대와 제파공격을 앞세운 양면 침공교리를 북한은 미군이 최대한 오기전에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어떤 일을 당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을 선제 침공해서 부산까지 다이렉트로 뚫고가는걸 중시했는데 문제는 이런교리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희생할 물자와 인력을 감수해야하고 무엇보다도 유류체계와 보급체계가 원할해야한다.
나치 독일군만 보더라도 전쟁준비기간이 미흡해 보급 속도가 진격 속도에 못 미쳤고 결국 시원하게 뚫고가다가 42년도와 43년도를 기점으로 탈탈탈 털리고 소련군에게 두들겨 맞았는데 이 수준도 안 되는 북한이 이런 공격적이고 양면에 엄청난 물자를 투입해야 겨우 할 수 있는 짓을 가능케한다면 치트키를 현실에서 쓴 것이다.
게다가 만약에 선군호같은 구식전차들이 K-2 흑표K-1 전차보다 방호력과 공격력이 강한 전차였다고 하더라도 이미 내부에 현대적인 FCS와 광학장비가 전무하다시피한 깡통에 불과해서 야간전투 수행도 불가하고 한국군 전차들이 기동간 사격을하며 헌터킬러개념으로 북한군 전차를 먼저 발견하고 쏠때까진 단 몇 초도 걸리지 않고 또 이 사실을 '''C4I'''체계등을 통해 아군에게 실시간으로 전송해 지휘통솔을 원할히 하도록 한데 비해서 북한은 포탑을 돌리고 내부에서 적을 찾으며 역시나 수동으로 모든 전투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대처속도도 매우 떨어질 뿐더러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도 않았기 때문에 실전에 효용성은 얼마나 떨어질지는 뻔히 보인다. 당장 최정예로 훈련받고 배급도 짱짱하게 대우받는 이라크의 공화국수비대도 그렇게 탈탈탈 털렸는데 최정예부대마저 간부들이 배터리 떼다가 TV보고 10년에 기동훈련 할까말까한 군대인데 그게 가능할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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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76등의 구식 경전차를 이용한 정찰, 강행돌파, 험지전투나 전방 알보병을 까부수도록 기획된 '''전차 게릴라전술'''을 현대전에 와서도 버리지 못한 북한군은 인력만 낭비하는 꼴이다. 당장 K-21같은 전투장갑차만 보더라도 사통장비가 첨단화되고 원거리에서도 적을 식별해내서 높은 수준의 관통력을 가진 탄환으로 구식전차 측면은 으깨버리는데 2차대전 직후에 등장한 중기관총 철갑탄도 전면으로 겨우 받아내는 구식 경전차 따위로 뭘 할 수 있을지는 북한 수뇌부만이 알 것이다.

4.3. 태만한 군기와 낮은 훈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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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161&pn=6&num=8213
(글 내용은 밀덕이나 군사전문가가 아닌 출신 전역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기에 전차 명칭등은 배경지식 부족으로 실제와 다른게 있음)
2011년 탈북한 북한 105사단 출신의 탈북자 말을 들어보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가장 최정예라는 부대조차 전차 배터리를 간부들이 몰래 뜯더다가 TV볼때 쓸 정도고 조종수는 1년에 기동훈련도 못 하며 소대장이나 전차장이라는 인간들도 정작 전차를 몰아본 경험이 거의 없는 심각한수준이다. 이것만 봐도 이게 정신력 운운할 자격은 있는지 의문인 군대이다.
구식무기여도 적어도 훈련을 체계적으로 받는다면 2선급이나 예비군용도로는 적합할텐데 이 나라는 무기도 구식이고 훈련이나 병사들의 사기는 물론이요 자신이 타는 장비가 적어도 무엇인지는 알아야 할텐데 그 마저도 모르는 수준이다.

4.4. 보급 부족


'''가장 큰 문제'''
물량이 있으면 뭘 하는가? 기갑부대도 기름과 탄약이 있어야 훈련을 하는데, 군대 자체가 그럴 기름도 없고 탄약도 없다. 사실 위에서 나열한 훈련도와 복무사기가 극악하리만침 낮은 가장 큰 이유가 이유가 보급 부족 때문이다... 설령 백번 양보해서 선군호가 세계최강의 전차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보급이 받쳐주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는 깡통이 될 뿐이다.[8][9]
애초에 식량을 비롯한 기본 의식주조차 제대로 배급되지 않아서 평소에 하는 것이라고는 체계적인 훈련이 아닌 민가를 털어 약탈을 하거나 밭에서 서리를 해가면서 식량을 얻거나 아니면 부대내의 농장시설이나 협동농장 등에 인력으로 투입되어 농사나 짓고있다.
따라서 이 놈들은 겉만 번지르르할뿐 사실상 북한 학술연구 외엔 필요조차없는 깡통부대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는 땅크사단 만의 문제가 아닌 '''북한군 전군'''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할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 참조.

5. 기타


이 부대의 사령부는 황해북도 곡산군 인근에 퍼져있고 인근에는 최전방 항공부대인 곡산 비행장이 존재하는데 이 비행장에 주둔하고있는 조선인민군 제86 비행연대에선 아직도 MiG-21 초기형이나 굴리고 있다. 사단사령부는 곡산 시내와 외곽 그리고 비행장 사이에있으며 이 주변 지형을 동서남북으로 쭉 넓게 예하 부대들이 퍼져있다.
따라서 남침전쟁이 시작되거나 반대로 한국군이 올라가게 된다면 철원축선에 자리잡고있는 한국군 제3보병사단제6보병사단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될 부대일 가능성이 높다. 2차로 이보다 약간 뒤쪽에 주둔중인 제8기동사단이나 제1기갑여단등도 이 부대와 전면적으로 전투에 돌입할 가능성이 꽤 높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의 최정예라던 105사단도 수준만보면 자기보다 체급이 서너배는 작은 한국군 독립기갑여단에도 그냥 복날에 개 맞듯이 갈려나갈게 뻔한데, 훈련을 하고 안 하고 차이는 심하다. 심지어 인민군은 훈련 보다 구타를 자주 한다고 인민군 출신 탈북자들이 하나 같이 증언한다. 그래서 프래깅 또한 만연하다. 한국군에 투항할 가능성이 엄청 높다. 쌍팔년도 이전의 한국군에 대응되는 수준이니..
대중매체 중 2차 한국전쟁 에서 최종보스 포지션으로 등장, 12군단과 강동포병군단, 일부 교도대와 함께 주인공이 속한 육군 80기갑여단과 해병 2사단을 위협한다. 그러나 신의주에 상륙해서 미군 지원도 없이 밀고내려와 평양 북방에 있어서 탄약과 유류보급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페널티까지 가진 80여단에게 사실상 소멸당한다. 물론 80여단은 그 대가로 장비 50%, 병력 30%를 상실했지만.... 정작 주력인 2사단은 80여단의 탱킹으로 멀쩡했고, 결국 북한은 포병탄약만 보충받으면 2사단이 평양에 돌입할 기세를 보이자 황급히 무조건 항복하고 만다.

6. 관련 항목


[1] 군복 가슴팍에 달려있는 것은 국기훈장 제2급이다.[2] 많은 수의 전차들이 38선 부근에서부터 경상도 부근까지 자력으로 기동했기 때문에, 진격을 거듭하면서 엔진성능 저하, 궤도 마모 등 구동계통의 내구도가 악화되었다고 한다.[3] 이후 다시 기계화사단 이라는 명칭이 땅크사단 이라는 명칭으로 재변경되었다.[4] 주변에 물량 넘치는 중국군이나 해상전력으로 유명한 자위대가 있어서 그렇지, NATO군 중에서도 재래식 전력으로 국군만큼 역량을 갖춘 나라가 적다.[5] 속설로 ‘미국은 한국을 3일안에 점령할수 있다.’ 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곤 하는데, 이는 핵무기를 포함한 비대칭 전력 무기를 무차별적으로 쏟아부었을시에만 해당되는 사항이고 이는 냉전 이후에도 꾸준히 핵전쟁의 잠재적 위험을 품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말도 안되는 일이다. 애초에 비대칭 전력 을 전제로 깔면 생기는 문제점이, 미국은 러시아와 더불어 비대칭 전력만으로 전세계 국가를 몇번이고 박살낼 수 있는 국가다. 대결 성사 자체가 되지 않으며 미국이 핵전쟁으로 공멸을 원하지 않는 이상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전제다.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군의 경우, 민병대 수준의 규모와 조직력을 보였고 화력에 압도당하기 매우 쉬운 평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전투를 1주~2주 정도는 벌이며 게릴라로 버텼다. 그와 비교했을때 훨씬 강하고 재래식 전력과 규모도 세계적인 수준이며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여 여차하면 게릴라를 벌이기 쉬운 지형인 한국군이 3일을 못버틴단 소리는 말그대로 헛소리다. 못해도 반년간은 항전이 가능하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는 100시간 만에 털렸다는 말이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라크가 평야지대이고 실질적인 전투 능력이 상실되는데까지 걸린 시간이지, 한국군이 아무리 약해도 걸프전 이라크 보다는 훨씬 강력하고 앞선 첨단무기들로 무장하고 있으며 한국의 모든 기갑 사단이 패퇴하여 게릴라로 전환하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못해도 수개월~반년이 맞다. 다만 수도인 서울과 서부지대의 경우에는 평야지역이 많아 미국의 공세를 온몸으로 받아 내야 한다는 점이 변수로 작용 할수는 있다. 애초에 미국과 대한민국은 동맹국이고 같은편이면 같은편이지 싸울일이 없다.[6] 북한의 수적우세와 이를 기반으로한 전차공세는 더이상 한국군의 위협이 되지 못한다. 1980~1990년대에 K-1 전차가 실전배치 완료된 시점부터 이미 전차교전비는 남한이 압도적으로 유리 해진것은 물론, 이제는 지속적인 K-1 전차의 개량과 K-2 전차 실전배치로 남한의 기갑군단이 단독으로 북한의 기갑군단을 각개격파 하는것이 가능한 수준이 되어 ‘우리의 대규모 전차공세는 제아무리 첨단으로 무장한 남한이라 할지라도 경계해야 할것이다.’ 라는 북한 재래식 전력의 마지막 자존심도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북한의 기갑 전력은 걸프전 당시 구형 M1 에이브람스 앞에 처참히 무너진 이라크 군의 기갑 전력보다 훨씬 초라한 수준이라 어떤 교전비를 보여줄지는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서 압도적인 공군, 야전 육군의 공포의 대상인 아파치헬기 까지 등에 업고 있는 한국 육군은 북한 입장에서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 세가지가 얼마나 무서운 거냐 하면, 내가 쫄따구들을 떼거지로 몰고 갔더니 상대방이 격투기 선수들을 데려온것도 모자라(우월한 성능과 수적으로 밀리지 않는 최신전차들) 아파트 옥상에서 정밀하게 돌을 던져대고 새총을 쏘아대며(공군의 제공권 장악)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연발로 새총과 사제폭탄을 날려대는(아파치헬기) 상황이란 거다. 한마디로 뭐 할수있는게 없는 상황. 북한 공군과 방공전력, 헬기전력 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겠지만 북한의 촘촘한 ‘저고도’ 방공망은 자국영토 내에서 방어전을 할때에나 효력이 있으며 그마저도 선제공격을 할경우 북한의 처참한 야전 방공망 특성상 방공능력이 사실상 전무 하다고 봐도 될 정도. 또한 북한 공군은 동아시아 3국에 밀려 비교적 약소국 취급하는 대만군은 물론 동남아시아 한정 강군인 태국 공군에게 조차도 밀리는 실정이다.[7] 육군뿐만 아니라 공군력 역시 10위권 내외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북한'''따위'''가 꿈도 꾸지못할 작전기인 5세대 F-35A와 4.5세대~5세대 전투기인 KFX, 공중급유기 A330 MRTT, 그밖의 전자전기 및 E-8와 같은 지상작전지원기를 확보할 예정이고 항공작전사령부 역시 차기 대형수송헬기인 CH-47F 22대, AH-64 가디언 추가도입, LAH를 통해 500MD를 대체하는 등을 통해 항공전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있다. 미사일사령부역시 전략자산인 현무와 관련장비를 지속적으로 확충중이며 일반 보병부대 및 특수부대 역시 워리어 플랫폼 등으로 군복, 방탄복, 군장등의 개인 장구류 및 K2C1, K12 기관총, K15 경기관총, DSAR-15PC 차기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등의 개인화기 및 공용화기의 혁신을 꽤하고 있다. 해군의 경우도 세계 10권 안팍의 전력을 꾸준히 유지할 뿐만 아니라 세종대왕급 batch-2, KDDX, FFX batch 3, 4, 장보고-3 등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있어서 앞으로의 전력확충이 더 가속될 예정이다. 날이 갈수록 전력격차가 줄지 않고 있으며, 국군역시 수뇌부인 김정은 등을를제거하여 북괴군의 손발을 잘라버릴 제13공수특전여단 및 전용 항공단을 편제하고, 킬체인, 대량응징보복작전 등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확실히 북한의 손, 발, 머리를 잘라내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진행중이다.[8] 전쟁에서 진정한 강함은 보급이며, 거의 대부분의 전쟁 역사에서 승패를 결정한 것 또한 ‘어느 나라가 보급할 여력이 더 많이 남아 도는가’ 이었기 때문이다.[9] 이러한 보급 체계에 문제는 비단 북한 뿐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동구권 국가에서 일어났다. 소련군과 중국군, 그리고 북한군 등이 공산주의 사회 특성상 내부적인 보급체계에서 한계에 직면해 버렸고, 결국 냉전기에 들어서서 단기적이고 공격적인 군사교리를 채택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이러한 단기전이 성공한 사례는 동구권에서 단 한번도 없는데, 국공내전 의 공산군은 공격적인 성향을 띄긴 했으나 결코 단기적인 성향을 띄지 않았고, 오히려 최종적인 승리를 쟁취하기 까지 준비한 기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으며, 베트남 전쟁기 북베트남은 오히려 미국을 상대로 악착같이 게릴라(방어전)로 버티며 정치,외교 선전에서 승리 했을 뿐이지 초기에 적극적 이었던 공세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단기전을 목표로 한 교리가 없었다. 나치 독일의 전격전은 초기에 무리할 정도로 역량을 쏟아부은 나머지 결과적으로 소련 에게 패배 했고, 아이러니 하게도 시대가 지나 독일과 유사한 공격적인 교리를 채택한 냉전기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 했을때도 마찬가지로 패배 요인중 하나가 보급 이었다. 소련군은 그 결과로 연방이 해체 됨에 따라 같이 해산 되거나 러시아군이 되었고, 북한군은 지금의 안습한 모습을 갖추었으며, 중국군은 자본주의 체제가 도입 됨에 따라 보급의 한계를 메꾸어 주요 군단의 전반적인 첨단화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