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기)
刀
1. 개요
칼을 나타내는 명칭 중 하나. 칼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은 도검 문서 참조.
2. 검과의 구별
1813년에 박종경이 편찬하여 간행한 "융원필비"에 잘 나와 있다. 원래는 '''칼집이 있는 칼을 "검"'''이라고 부르고 '''칼집이 없는 칼을 "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다가 차츰 칼집이 있는 칼인 "검"을 "도"라고도 부르기 시작하여 후대에 와서 이 책(융원필비)이 간행된 때에는 칼집이 있는 칼인 "검"을 "도"라고도 널리 불렀다.
대중에는 '도(刀)'는 외날 칼, '검(劍)'은 양날 칼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역사에서 검과 도는 그렇게까지 명확하게 구분되어서 쓰이지 않았다. 양날 칼이 도로 불리는 경우도 자주 있었고, 반대로 외날 칼이 검으로 불리는 경우도 흔했다. 이렇듯 검과 도라는 단어는 쓰임새가 생각만큼 딱 잘라 나뉘지 않았다.
특히 한국어와 일본어에서는 역사에서 검과 도라는 용어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쓰는 경우가 매우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고로 무협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처럼 지나치게 두 칼과 그 검술을 구분하려 드는 것은 역사적 사례 앞에서 반박당하기 좋으므로 유의할 것. 단적인 예를 들자면, 조선시대 무반 호위 관직인 운검(雲劍)은 '운검'이라는 호위용 패용 도검을 지니고 다닌다고 '운검'이라 불렸는데, 운검은 고급스럽게 장식한 환도의 일종이었다. 이와 비슷하게도 조선시대 조선인들은 일본도를 두고 왜검(倭劍)이라고 하고 왜도(倭刀)라고 부르기도 하는 등 명칭을 딱히 통일하지 않았다. 당대 조선에서 도와 검이란 두 용어가 이렇게 섞여서 쓰였던 것이다. 물론 이런 경향은 같은 시기 일본에서도 역시 매한가지여서 일본인들 역시 도와 검이란 두 용어를 비슷한 뜻으로 섞어서 사용한 바 있다.
이러한 경향은 동양만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서양인들 역시 외날과 양날의 구분에 그리 큰 의의를 두지 않았다. 양날검 롱소드를 위한 롱소드 검술과 외날도 메서를 위한 메서 검술[1] 이 서로 큰 차이가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현재는 각종 창작물에서 양날 칼은 검으로, 외날 칼은 도로 흔히 분류한다.
3. 경향성
서양에서 양날 검을 주로 사용했던 데 비해서 동양에서는 외날 도를 주로 사용하였다. 특히 일본의 일본도나 중국의 대도, 한국의 환도 등이 동양에서 사용된 도의 대표적인 사례들로 꼽힌다.
이는 역사적 경위와도 관련이 있었는데, 아직 기술이 미숙하던 시절에는 구조가 복잡하고 내구도가 떨어지는 양날 검보다는 그보다 더 단순하고 견고한 외날 도가 선호되었었기 때문이다. 양날검이 절단 성능이 좋으려면 칼날 두께도 얇고 검폭도 넓고 양날 모두 예리해야 하지만, 외날도는 칼등의 두께를 유지하여 칼날의 무게를 유지하며 내구도를 확보하면서도 전체적 형상 덕분에 칼날의 날각이 예리한 편이 되기 때문에 절단력이 상당했다.
충분히 기술력이 생긴 이후에도 중국의 군용 도검은 안모도(雁毛刀)[2] 나 유엽도(柳葉刀)[3] 등의 외날도가 주로 쓰였다. 이런 경향은 근현대에도 이어져 국민혁명군의 군도인 대도(大刀)에 계승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중국의 이웃나라인 일본과 한국으로도 전파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더욱 극단화된 형태로 나타나 세계적으로도 동양식 외날도의 아이콘으로 통용되는 일본도가 나왔고, 근현대에도 영향력이 이어져 일본군의 군도인 일본군도가 제작되었다. 한국 역시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환도를 군용 도검으로 채용하게 되는 등 양날검보다는 외날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위로 동양에서는 전투용 도검으로 주로 외날 도를 사용했다. 양날 검은 민간의 호신용 도검으로 사용되거나 실전을 자주 치르지 않는 고위직의 위엄을 살리기 위한 의장용 도검, 또는 주술적 의미를 가진 장신구적 도검으로 사용되었다. 그렇다고 물론 그렇다고 동양에서 양날검을 실전용으로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대체로 경향성이 그렇다는 것. 이와 비슷한 사례로, 고대의 글라디우스·스파타나 중세의 롱소드 등으로 대표되는 양날검을 주로 사용했던 서양에서도 메서·세이버·커틀러스·펄션·색스·백소드 등 외날도를 적지 않게 썼고, 특히 서양의 기병은 근세 이후 서양식 외날도의 아이콘처럼 통하는 세이버를 주력으로 사용했다. 그 영향으로 세이버는 도검이 무기의 주류에서 물러나게 된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의 의장대에서 의장용 군도로서 널리 채용되었다.
4. 휘어있는 형태
전세계적으로 외날도는 칼날이 휘지 않고 양날검처럼 곧은 형태인 직도에서 각도를 주어 칼날이 휜 형태인 곡도로 변화하는데 이는 곡도를 유행시킨 문화권(몽골)의 영향과, 기병도로 사용하기에는 곡도가 더 우수하다는 점, 도검 제조시 열처리 기법에 따라 자연스레 휘는 경향 등을 반영한 총체적인 변화에 따른 것이다.
직도에서 곡도로 변화한 이유를 살펴보면, 하나는 내구성에 있다. 칼로 내리칠 때 칼이 받는 공기의 저항을 '검압'이라고 하는데, 휘어진 형태의 곡도가 곧은 형태의 직도보다 검압에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직도에서 곡도로 변한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기법에서 찾을 수 있다. 직도가 곡도보다 사정거리와 찌르기와 치기에서 확실히 우월하다. 하지만 베기는 약간 다른데, 사람을 제자리에서 베거나 혹은 지나가면서 벨 때, 사람의 뼈를 절단하지 못할 경우, 칼의 움직임이 뼈에서 걸릴 수밖에 없다. 이 때, 직도는 부러지는 경우가 있지만, 곡도는 구부러진 구조로 자연스럽게 살만 베거나, 걸리더라도 곡도를 당겨주어 몸에서 칼을 빼기가 용이하다. 이러한 차이는 총기의 등장으로 나타난 중갑의 도태로 인한 경장갑화 혹은 갑옷을 안 입게 되는 경우와 맞물려, 직도에서 곡도로 변하는 과정에 일조하게 된다. 다만 서양에서는 기병도로는 직도와 곡도 양자 모두가 계속 경합했는데, 비교적 경장갑인 상대를 공격하는 경기병은 세이버와 같은 곡도를 애용했지만 백소드와 같은 직도 또한 기병도로 꾸준히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곡도는 칼날이 후방으로 휜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쿠크리나 팔카타 등과 같이 칼날이 전방으로 휜 경우도 있는데, 이는 이는 도끼에 가까운 발상에서 무게중심을 앞으로 쏠리게 하여 타격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쿠크리나 팔카타 등 사례들과는 칼날의 구조가 다소 다르긴 하지만, 코피스도 마찬가지로 도끼처럼 무게와 가속도를 이용해 타격력을 높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2-3세기 중국 곡도도 앞쪽으로 휜 형태였다.
[1] 탁구에서 한쪽 면만 쓰는 펜홀더와 양쪽 면을 다 쓰는 셰이크핸드라는 비슷한 개념이 있다.[2] 찌르기와 베기에 모두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설계된 외날 도검. 주로 명나라 시대에 사용되었다. 안모도를 다루는 기법은 양날검의 검술과 외날도의 검술 양자에 걸쳐 있었다고 한다.[3] 베기에 중점을 둔 외날 도검으로, 전통적인 중국도 중에서는 가장 흔히 쓰이던 칼로서 보병도로서도 기병도로서도 널리 쓰였기에 여러 중국 무술 유파에서 사용법을 가르쳤던 칼이기도 하다. 대도보다는 작은 칼이지만 그래도 역시 장검이었고, 대도와 마찬가지로 무게중심이 칼날의 말단부로 쏠려 베는 위력을 크게 증가시키는 구조였다. 대도와 다른 점은 대도가 무거운 양손검인데 유엽도는 더 가벼운 한손검이라는 것. 여담으로 유엽도의 설계가 무게중심이 절묘하게 잡혀 검술을 할 경우 손목을 이용하여 쉽게 위력을 내기 쉬워서 대도보다 더 실전적인 칼이라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