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서
1. 소개
메서(Messer)란 독일어로 나이프를 뜻하는 말이다. 일상어로 쓰일 땐 조리용 식칼이나 식사용 나이프 등등도 모두 메서라고 부르지만, 이 문서에서는 메서라고 불리며 무기로 사용된 중근세 도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다른 도검류의 지칭법이 으레 그렇듯이, 독일 지방과 그에 영향을 받은 지역들에서 외날 손칼들을 메서라고 부를 수 있다.
2. 기원과 유사 도검
독일의 나이프 중에서도, 전투용으로 사이즈를 키운 메서를 일명 그로스 메서(Großes Messer)라고 한다.
그로스는 Big이나 Great에 해당한다. 즉 대형 나이프라는 뜻이다. 참고로 독일어의 에스체트(ß)는 대체 표기인 ss로 표기하는 수도 있으므로 grosse messer라고 표기하는 것도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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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스메서는 14세기에 등장하여 15~16세기에 유행의 절정을 이루었는데, 사실 당시 검객들은 이 타입의 검을 그로스 메서라고 딱잡아 부르지는 않았던듯 하다. 그냥 메서라고만 쓰는 경우가 많고, 종종 큰 것을 랑에스 메서(langes messer=롱 메서)라 부르는 경우가 좀 있는 편이고 그와 구분될만한 짧은 단도 혹은 한손검 사이즈의 메서를 쿠르젠 메서(kurzen messer=숏 메서) 같은 식으로 구분해서 칭하는 일이 가끔 있으나, 절대적으로 그냥 '메서'라고만 쓰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래서 15세기쯤에 그로스 메서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는 하나, 그로스 메서라고 특정지어 말하는 경우가 오히려 보기 드문 경우인듯 하다. 어차피 검객들이 쓰는 나이프는 큰 전투용을 말하는 것이니까 별로 구분할 필요가 없긴 하다.
독일 지역에서 힐트를 리벳으로 고정하는 메서 타입의 외날 나이프 류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바우에른베어(Bauernwehr)라는 게 있는데, 농부의 호신무기라는 뜻 정도가 될 것이다. 이 타입의 것은 이르게는 10~11세기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제대로 형성된 것은 13~14세기에 널리 유행하기 시작하면서이며, 이후 메서와 나란히 존재하거나 혼합되기도 한 타입이다. 이것 중에 작은 것은 식탁에서 고기나 빵 잘라먹는데 곧잘 쓰던 작은 테이블 나이프에 가까운 것들이고, 큰 것은 다용도와 전투용이 된다.
바우에른베어와 메서를 구별하는 가장 큰 특징은, 바우에른베어에는 나겔은 있어도 크로스가드는 절대 없다.
검신과 그립 사이에 약간 돌출된 부위가 손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기는 하나, 전투용 무기처럼 제대로 된 크로스가드가 달린 경우는 없으며 그게 달리면 메서로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참고로 바우에른베른(Bauernwehren)이란 말은 이 나이프 종류도 포함해서 농노층이 전투용 무기로 사용한 워 사이드나 워 포크, 플레일 따위도 싸잡아 부를 때 많이 쓴 호칭이다. 하우스베어(Hauswehr=하우스 디펜스 or 웨폰, 가정 호신무기) 역시 바우에른베어와 비슷한 용어인데 바우에른베어와 뚜렷한 구분은 없고 형태의 바리에이션은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
힙메서(Hiebmesser)라는 용어도 그로스 메서와 같은 맥락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쪽을 좀 제대로 정의하자면 가정에서 다용도 칼로 쓰면서 여차하면 호신용 무기로도 쓰는 베는 큰 칼(사실상 큰 사이즈의 부엌칼+잡칼)을 가리킬 때 이 용어가 쓰인다. 그래서 현재 남은 힙메서라고 할만한 유물들은 전투용 도검과는 달리 크로스가드가 없는 경우가 상당수. 식칼에 큼지막한 크로스가드 달려봐라 그게 도마 위에서 칼질이나 되는지... 그러므로 힙메서는 사실상 바우에른베어와 교집합이 매우 크다. 딱히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령도 없고... 뭐 이름은 붙이기 나름이라서, 박물관에서 힙메서라고 이름 붙인 유물은 상당수가 바우에른베어로 볼 수도 있고, 개중에 제대로 된 전투용 메서에 가까운 것도 드물게 있긴 하고, 희귀한 케이스로는 칼날이 무슨 낫처럼 ㄱ 자로 꺾인 물건도 존재한다.
16세기에 이르면 두삭(Dussack)이라는 트레이닝용 한손 도가 동유럽/독일 지방에서 등장하는데, 이게 등장할 때쯤 검술서에서 메서가 슬슬 안보이기 시작하는지라 두삭을 메서/펄션/커틀러스/힙메서 훈련용 도구로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두삭은 그 모양새부터 근본적으로 메서와는 영 딴판이라서, 두삭은 메서의 트레이닝 버전이 아니라 그냥 한손 외날도라는 점에서 메서/펄션 검술과 거의 같게 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훈련용으로 사용했다고 해야할 것 같다.
다만 두삭을 트레이닝용으로만 정의하는 것은 좀 곤란한 게... 두삭은 일반적으로 훈련용 웨이스터와 비슷하게 보는 게 보편적 인식인데, 일부 강철 도검으로도 존재하는 두삭이 있다. 보통 훈련용 두삭은 파손되기 쉬운 나무나 가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나무나 가죽제 유물은 사실상 현재까지 살아남은 바가 없다. 크로아티아나 체코 같은 동유럽 지역에 가면 두삭이라고 불리는 도검의 유물이 간혹 등장하는데, 체코 지역에서는 두삭의 어원에 해당하는 tesak이나 그 유사 용어가 사실상 서유럽의 행어, 커틀라스 류의 외날의 날 선 도검을 칭하는데 보편적으로 쓰였기 때문에 그 대부분은 행어 류의 외날 도인 경우가 많으나, 우리가 잘 아는 훈련용 두삭 형태이면서 강철으로 만들어진 유물도 드물게 발견된다. 이게 보편적인 일이었는지 아니면 드물게 있는 일인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현재로서는 일단 목제 두삭을 메서 등의 다른 도검의 훈련용으로 사용했다는 점만 확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크릭스메서(Kriegsmesser)라는 것도 있다. Krieg은 전쟁이라는 뜻이니 전투용 메서, 즉 군용이나 전장에서 운용할만한 대형의 워소드 타입 메서가 된다. 크릭스메서도 메서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보니, 샌드위치형 풀탱, 크로스가드와 사이드에 붙은 러그, 퍼멀도 날이 선 방향으로 돌출하는 등 힐트 구조는 메서와 동일하다. 종종 그로스 메서와 동일한 의미로 잘못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둘은 차이가 확연히 있다. 그로스 메서는 한손검 사이즈의 작은 것이 포함되지만 크릭스메서는 작아도 한손반 사이즈, 대부분 투핸더 사이즈의 딥다 큰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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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온 소드의 크릭스메서 The Knecht 현재는 단종되었다.)
그로스 메서와 크릭스 메서를 구분하는 차이점은 무엇일까? 크릭스메서는 독일계에서 메서로 부르기는 하지만, 사실 헝가리 지방의 쯔바이핸더 비슷한 외날 양손검에서 유래한 것이고 그래서 그 시초부터가 투핸더 도검이다. 근데 이게 참 곤란하게도 그로스 메서도 딥다 큰 것은 크릭스메서처럼 양손검에 가까운 사이즈가 있어서 둘을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일단 이론적으로 구분하자면 메서는 근본적으로 나이프에서 사이즈를 키워왔다면 크릭스메서는 처음부터 투핸더 사이즈 도검이던 것이 메서와 융합했다고 구분해야 할 것이다.
크릭스메서의 검신 스타일도 메서처럼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대체로 시미터 비슷하게 미끈하게 빠진 곡도 형태의 것이 대표적인 형태.
펄션은 검신 형태와 용도에서 메서와 상당히 유사한 느낌을 주는 도검이다. 하지만 둘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으니, 좀 본격적인 전투용 그로스 메서와 펄션을 한눈에 구분하려면 힐트 구조를 보면 되는데, 메서는 나이프의 풀탱을 흉내낸 힐트이지만 펄션은 당시의 한손검 류의 힐트 구성을 그대로 갖고 있다. 물론 이것도 크로스오버가 없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지만 보편론이 그렇다.
색스(Seax)가 메서의 선조라는 설은 구조상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
3. 외형
다른 모든 도검과 마찬가지로, 메서도 그 외형상의 바리에이션은 상당수 있다.
일단 외날 도검이라는 것은 공통적인 특징이며 전형적인 형태는 곡률이 크지 않고 칼끝에 가까울수록 폭이 약간 넓어지는 형태이지만, 유물도 많고 변형도 다양하여 유물마다 제각각이다. 외날 직도, 곡률이 있는 외날 곡도, 세이버에 가까운 곡률이 크고 날렵한 곡도, 펄션 비슷하게 칼 끝으로 갈수록 두툼해지는 곡도, 백엣지가 있는 곡도 등등 상당히 다양하다. 검신 형태로만 보자면 펄션과 다름없는 것도 있고 사실상 검신만으로 펄션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메서의 외형적 특징은 검날이 아니라 힐트 형태로 구분해야 한다. 애초에 나이프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가 나이프에 흔히 쓰이는 힐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힐트의 가장 큰 특징은 탱 고정 방식이 나이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샌드위치형이라는 점일 것이다. 요즘에 풀탱이라고 부르는, 탱 좌우로 나무판을 붙이고 핀(혹은 리벳)을 박아서 고정하는 형태. 그래서 탱의 일부가 외부로 노출된다. 풀탱이 다 그렇듯이 탱의 폭이 넓어서 아주 견고하지만 칼날의 진동이 손으로 그대로 와서 손맛은 좀 안좋다. 이 방식이 대다수이고, 유물 중에 드물게도 중세 장검처럼 히든 탱 형태인 것도 있다. 그립은 직선형이 보통이지만 중국 대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힐트 전체가 곡선으로 휘어있는 스타일의 것도 간혹 존재.
중세 스타일의 심플한 크로스가드가 있고 나겔(Nagel)이라고 부르는 너클 쪽을 보호하는 판이 크로스가드 측면에 튀어나와있는데, 이것도 나름 형태의 바리에이션은 다양하다. 나겔을 생략한 형태나, 나겔이 사이드링이거나 사이드-셸 모양이거나, 크로스가드를 꺾어서 너클가드 형태로 만든다거나 아예 너클가드를 추가로 달아주거나, 사실상 힙메서라고 부를만한 크로스가드 없는 부엌칼 형태의 것이나, 르네상스 스타일의 S가드 등등.
전형적인 형태의 퍼멀은 모자 형태라고 부르는, 칼날 방향으로 끝단이 조금 돌출되어있는 것이다. 도검을 휘둘렀을 때 손에서 미끄러져 날아가는 것을 방지해주며 스윙 시에 힘을 실을 수 있도록 해주는 형태. 하지만 이것도 형태가 좀 다양해서 퍼멀 부가 없거나[1] , [9뚜껑]] 형태로 그냥 끝단만 덮어주는 버트캡 형태의 것이 있는가 하면, 킬리지 비슷한 갈고리처럼 꺾이고 둥그런 퍼멀이 달리는 경우도 있다.
길이. 그로스 메서의 길이는 제각각이다. 전투용으로 사이즈를 키운 것이므로 보통의 손칼보다야 큰 것은 확실한데, 얼마나 큰지는 만드는 놈 맘이요 쓰는 놈 취향이다. 게르만어의 네이티브들은 랑에스 메서라고 하면 롱소드(랑에스 슈베르트) 체급을 말하는 것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사실 랑에스 메서와 그로스 메서는 서로 교환이 가능한 용어이고 마찬가지로 딱히 정해진 사이즈 제약은 없다. 짧은 한손검 사이즈부터, 긴 한손검 사이즈, 한손반검 사이즈, 아예 양손검 사이즈의 것까지 유물이 두루 존재한다. 검날의 길이가 짧은 한손검일지라도, 그립 길이는 한손반검 정도로 제법 여유가 있어서 양손으로 잡는 경우도 있다.
4. 메서 검술
메서는 당시 독일 지방 서민들에게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다용도 칼이면서 또한 동시에 전투용 도검에 가까워서 싸움에 쓰기 좋은 물건이었으며, 그래서 서민용 호신 무기로 널리 사용되었다. 하지만 반드시 서민만 사용하는 하층민의 도검은 아니었고 독일계에서는 위아래 할 것 없이 두루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무려 막시밀리안 1세의 보석 박힌 그로스 메서 같은.
어떤 사람은 '전투 무기인 도검이 서민과 농노층에게 금지되어 있었으나 외날 나이프로 취급할 수 있는 메서는 금지품이 아니므로 메서가 하층민의 무기로 유행했다'는 의견도 펼친다. 창검, 장검 류의 본격적인 무기를 휴대하기 힘든 곳에서 메서 같은 공구나 도구에 가까운 무기로 대체하면서 법적 제한을 비켜가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실은 중세를 통틀어서 무기의 금지령은 특정 지역, 특정 시대에만 적용 가능한 것이고 범유럽적인 하층민 무기 금지령 같은 것은 결코 없었다.
예를 들면 일부 도시는 방벽 안에서는 공식적으로 도검 휴대를 금지하는 일이 있었다. 도시에 들어설 때 무장을 해제해서 맡겨놓고 들어가야 하는 식이다. 이런 경우는 전투용 단검도 금지되는 경우가 많았고, 빵 잘라먹는데 쓰는 도구에 가까운 작은 단검 정도는 봐주는 편이다. 그런데 이 규칙은 하층민만 적용되는게 아니라 귀족에게도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소작농은 영주로부터 땅을 빌려서 일구는 농사꾼이므로, 그 땅을 빌리고 거기서 사는 한 영주의 규칙을 따라야 했고 영주의 뜻에 따라 무장에 제한을 받는 수가 있었다. 대신에 그들은 영주에게 세금을 바치고 영주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자유로운 자영농들은 도시나 마을, 영주의 영역 밖에서 땅을 일구고 살았으며, 그런 사람들로부터 무기를 빼앗는 것은 그들을 죽이겠다는 뜻과 같았다. 방벽 밖에서 칼 든 강도나 약탈하는 용병 따위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주는 것은 손에 쥐고 있는 무기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유민 계층은 도검과 활, 갑옷 같은 무기와 방어구를 충실히 지니고 스스로를 지킬만큼 무력을 보유했다.
그러므로 메서 유행의 원인이 도검 금지령이라고 말하는 것은 허튼 소리고, 그냥 요즘의 호신술이 책이나 가방 같은 손에 잡히는 물건을 도구로 쓰듯, 메서도 당시 사람들이 쉽게 휴대하고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공구 겸 무기이므로 메서 검술이 유행했다고 보는 게 좋겠다.
메서가 그렇게 유행한 만큼, 독일계 마스터들의 검술서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가장 풍부하게 메서를 취급한 것은 레크흐너의 검술서이고, 코덱스 발러슈타인이나 알브레히트 뒤러 검술서 등에서도 등장한다. 16세기부터는 메서는 드물고 주로 두삭이 등장하는데 트레이닝 무기로 두삭이 그때쯤 널리 쓰였음을 추측케 한다. 거의 대부분이 그냥 한손검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가끔 버클러와 같이 쓰는 경우가 있다. 양손 사이즈의 메서는 그냥 독일식 양손검술로 운용했을 것으로 본다. 한손용이든 양손용이든, 검술의 원리 자체야 독일식 시스템의 일부이니까 어느 쪽이든 취급에 문제 없었을 것이다.
란츠크네히트와 같은 독일계 군인 및 용병들이 그로스 메서를 부무장으로 곧잘 사용하곤 했다. 드물게 방패나 버클러와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 참고 링크
5. 관련 항목
[1] 손망실된 유물일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