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가수)/활동 내역

 


1. 국내 최초 걸스힙합 그룹의 탄생과 전성기
1.1. 데뷔 전
1.2. 1집
1.3. 2집
1.4. 3집
1.4.1. 채리나가 디바에서 탈퇴한 이유?
2. 새롭게 재정비된 디바
2.1. 4집
2.2. 5집
2.3. 6집
3. 그룹의 활동 후반기, 그리고 잠정 해체
3.1. 7집
3.2. 8집
4. 해체 이후
4.1. 슈가맨 출연
4.2. 슈가맨 출연 이후
4.3. DMC 페스티벌 - 레전드 토토가 논란


1. 국내 최초 걸스힙합 그룹의 탄생과 전성기



1.1. 데뷔 전


채리나[1]그룹을 결성하기로 마음 먹고, 미국에서 비키를 먼저 캐스팅했다. 97년 봄에 보도된 기사를 보면 원래는 채리나, 비키 2인조 듀엣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었지만 채리나가 꼭 한국의 TLC를 만들겠다는 일념하에 마지막 세번째 멤버로 지니를 캐스팅 하면서 결국 3인조 체제가 완성된다. [2] 당시 국내 가요 기획자들 사이에서 영입대상 1순위로 뽑히던 채리나였기에 이들의 행보에 미디어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DSP, YG엔터테인먼트 등의 대형 기획사에서도 역시 채리나에게 우리와 함께 하자며 컨택했지만 대부분 여성 듀오를 제안했고[3], 그만큼 당시 한국 음악계에 여성그룹 시장 자체가 거의 없던 상황이었기에 채리나는 더 마음을 굳히고 이들의 러브콜을 고사했다고 한다. 이 시절 가요계에 여자 그룹은 대부분 2인조 혹은 간혹 3인조 규모의 듀오나 트리오 그룹들이었고 우정의 무대 등지에서 사랑받는게 전부였을 정도. 거기에 당시엔 '''메이저 장르도 아니었던 힙합 장르를 선택해 등장한것이 대단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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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김성재 댄서로 연예계에 입문한 지니. 당시 17살이었다. (사진 맨왼쪽)
팀의 막내였던 지니는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뉴욕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듀스김성재가 공연 차 미국에 오게되었고, 과거부터 그의 팬이었던 지니는 공연을 보러갔다가 김성재의 눈에 띄어 댄서 오디션을 보게 된다. 이때 한 동작을 몇시간 내내 추는 지니의 모습을 보고 그 끈기에 반한 김성재가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에 지니를 참여시켰으며 댄서로 연예계에 입문한다. 현지 흑인 댄서들과 한국인 댄서들로 구성된 김성재의 댄서 팀은 현지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지냈고[4] 김성재 솔로 앨범 작업을 마친 뒤 국내에 귀국 했을때에도 여러 연예가 프로에서 얼굴을 비췄으며 백업댄서지만 함께 인터뷰를 하고 사진 촬영도 함께 하는등 지니 역시 거의 김성재와 한 팀처럼 활동할 예정이었던것으로 보인다. #
김성재의 생전 마지막 무대로 알려지는 생방송 TV가요 20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 데뷔전 지니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 링크에 있는 영상에서 12분 10초 쯤에 비니를 쓰고 있는 사람이 지니이고 그 옆에서 팔짱 끼고 있는 사람이 비키라는 얘기가 있는데 비키는 아니고, 비키와 닮은 댄서다. 위에 있는 사진 맨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 영상에 비키라고 오인받는 인물이지만 사진으로 보면 확실히 비키와 얼굴이 다르며 비키도 김성재의 댄서였다고 언급한적이 단 한번도 없다.[5] 안경을 쓰고 있어서 묘하게 닮아 보이는데 사진으로보면 얼굴이 다르다. 당시 김성재의 댄서팀 중 한국인 여성은 딱 지니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단발머리 댄서였고 홍보 차원에서 촬영된 다른 사진만 봐도 확실히 비키는 아니다. #

1997년 8월 24일 데뷔 직전의 디바를 취재했던 연예가 프로
디바 멤버들은 '''유독 듀스하고 인연이 깊었는데''', 비키는 1996년 이현도 뮤직비디오 감독이 우연히 한인타운을 걷고 있는 비키를 보고 "이현도 뮤직비디오에 출연해주지 않겠냐"며 픽업했다고 한다. 이후 이현도의 1집 '사자후' 뮤직비디오에 카메오로 출연한 비키[6]를 촬영장에서 본 이현도가 얼굴이 작다며 연예인 하라고 추천하면서 평소 친하게 지냈던 채리나가 여성 3인조 그룹을 뽑는다는 사실을 알고 둘을 연결시켜주어 채리나가 비키를 한국에 데려오면서 디바에 합류하게 되었다. 지니는 96년 룰라의 미국 콘서트때 댄서로 참여한 인연으로 채리나에게 캐스팅 된 케이스다. 채리나가 속했던 룰라가 듀스와의 인연이 깊었기 때문에 더더욱 듀스와 인연이 있었다.
비키의 경우에는 집안이 어느날 망해버려서 미국에서 힘겹게 살고 있던 와중에 우연히 픽업되어 한국에 돌아와 음반 활동을 하게 된 터라, 어떠한 트레이닝도 받지 못한 상태였으며 기획사에서는 춤 연습만 시키길래 열심히 춤추고 있었는데 어느날 사장님이 비키의 노래를 들어봐야겠다며 다짜고짜 노래를 시켰다. 그러나 어떠한 트레이닝을 받지 못했던 비키는 악만 고래고래 지르며 "She's Gone"을 열창해댔고(...) 결국 사장님의 표정이 굳더니 너는 랩을 하라고 지시해서 결국 발음을 굴려가며 영어 랩을 맡게 됐다고 한다.[7] 그러나 이때 한국 가요계는 미국 유학파 출신하면 알아주던 시절이라, 본인에게는 어두운 과거임에도 방송에 나와 유학파라고 포장되고 있을때 많이 부끄러웠다고.
참고로 지니와 채리나가 6촌 지간이라는 활동 당시 인터뷰도 있었으며 당시 여러 인터뷰에서 지니와 사촌지간이라고 밝혔으나 이후에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어서 소속사의 언플이라는 설이 있었는데 '''실제로 둘의 혈연관계는 없다'''고 한다. 최근 채리나의 인스타 라이브 방송에서도 이같은 질문이 있었는데 채리나는 "그때 당시 지니를 집에 데려다가 같이 살았기 때문에, 친한 동생을 <사촌 동생>이라고 표현하곤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거에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1집 앨범 작업이 착착 진행되던 어느 날, 지니는 언니들이 자신들을 예뻐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데뷔 전에 팀 탈퇴를 결심한다. 당시 디바로서 첫 방송 예능 녹화를 앞두고 결국 '''지니가 잠적해버리는 사건이 터졌다.''' 이 시절에는 음악 방송 데뷔가 아닌 주말예능 짜투리 코너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이 대개 신인들의 데뷔 방송이었다.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PD에게 얼굴을 찍어둬야, 나중에 음악 방송 섭외가 들어와서 방송 활동을 할 수 있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
당시 채리나와 비키는 호화로운 집에서 같이 살며 베스트 프렌드로 지낸 반면 지니는 회사에서 마련해준 역삼동의 여관촌에서 2달간 투숙해야 했고 이동 중간에 비키가 실수로 닫은 차문에 지니의 손이 낀적이 있었는데 고의는 아니지만 손톱이 빠져서 굉장히 아팠을 지니에게 사과 한마디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굉장히 지니를 왕따시켰다고 비키 본인이 인정했다. 지니 역시도 계속 이렇게 활동하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에 방송 녹화를 앞두고 잠적한 다음 잠정 탈퇴를 선언했으며 결국 소속사 직원들이 지니를 찾아와 다시 얘기를 잘 한 다음에 디바에 겨우 합류하게 되었고 시간이 흐른 다음 비키와 지니는 화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1~2집 시절 무대를 보면 묘하게 비키와 지니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8]

1.2.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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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9. 발매
'''디바 정규 1집 앨범 <Funky Diva>'''


1집 타이틀 곡 '그래'
1집 후속곡 '12월의 드라마'
그렇게 3~4개월간 데뷔 준비를 마친 디바는 1997년 9월 초에 1집 앨범을 발매했으며 타이틀곡 '그래'가 가요톱텐에서 최고 4위까지 랭크되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때는 댄스 장르를 하는 여성 그룹이 드물었기에 최소한 1위 후보까지 갈 수 있는 인기를 자랑했음에도 모든 음악 방송에서 TOP 3 안을 뚫지 못했다.[9] 그래서인지 '그래'가 가요 차트 1위에 올랐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편. 거기다 꼰대 기질이 다분했던 90년대 후반부 방송국의 텃세 때문에 그 이후에도 디바는 항상 방송국 PD들에게 불려가며 온갖 쓴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10] 힙합 패션을 무지 불량하게 여기던 당시 정서 탓인데, 국내 최초의 걸스 힙합 걸그룹 답게 굴하지 않고 당당한 패션과 라이브, 무대 매너를 선보여 여성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여학생들의 트렌드세터가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 후 이상민이 작곡한 후속곡 '12월의 드라마'도 TOP 10 안에 올려놓음으로서 신인으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졌으며, IMF가 겹쳤음에도 약 2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화제가 된다. 1집 앨범은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 디바 앨범 중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채리나의 기획 의도처럼 힙합 비트를 차용했고 당시 신인 작곡가였던 윤건이 타이틀 곡과 여러 곡을 훌륭하게 만들어내어 디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11] 당시 '''채리나와 윤건 콤비로 디바 앨범을 제작한것이 아직도 좋은 평가'''를 얻기도 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1집 앨범에서 두 곡의 히트 싱글이 나왔음에도 뮤직비디오가 제작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래는 이상민 작곡의 '골드(Gold)'를 타이틀로 염두했었지만 앨범 발매전에 타이틀 곡이 '그래'로 교체되었다고 알려진다. 1집 앨범을 살펴보면 그 흔적이 남아있는데, '골드'만 무대용 버전으로 편집된 음원이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어있으며 디바가 데뷔를 앞뒀을때 홍보 차원에서 보도된 신문 자료들을 봐도 타이틀 곡을 '골드'로 소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곡은 당시 기준으로 낯선 힙합 리듬이 강했고 대중적으로 사랑받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보다 대중적인 멜로디의 '그래'로 교체했는데 이 곡이 히트치면서 좋은 선택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걸그룹이 20만장이 넘긴 것이 큰 뉴스였기에 각종 연예 뉴스에서 다룬 적이 있다. 그해 디바는 음반 판매량으로 심사하는 골든디스크에서 인기가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1.3.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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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5. 발매
'''디바 정규 2집 앨범 <SNAPPY DIVA'S SECOND ALBUM>'''


2집 타이틀 곡 '왜불러'
2집 후속곡 'Joy'
1집의 성공 이후 디바는 채리나 주도하에 후속 앨범 작업에 돌입한다. 이때 1집 앨범에 참여한 이상민은 참여하지 않았으며 윤건과 채리나가 주도적으로 프로듀싱하고 최준영이 작곡하여 타이틀 곡으로 선정된 '왜 불러'를 메인으로 2집을 발매한다. 타이틀 곡 '왜 불러'는 작사가가 영화 타이타닉을 보고 영감을 떠올려 만든 곡이라고 하며 당시 초고음 댄스곡을 만들기로 유명하던 최준영이 극강의 고음을 자랑하는 곡을 선사하는 바람에 여러 라이브 방송에서 채리나가 멱살 잡고 캐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2집 타이틀곡 '왜 불러'는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했고 유승준의 '나나나'와 같이 인기가요에서 한달간 1위 후보를 하다가 1998년 7월 첫째주에 새로운 1위 후보였던 김민종을 꺾고 '''디바 활동 최초이자 유일한 1위''' 트로피를 거머쥐면서 인기 그룹 반열에 올랐다. 후속곡이었던 'Joy' 역시 '왜 불러'의 인기를 이으면서 상당한 사랑을 받았고 2집 앨범은 23만장(음협기준)의 판매량을 올렸다.
한편 2집 활동 때부터 채리나의 몸상태가 급격하게 안좋아졌는데 활동 당시에 몸 상태가 워낙 안좋다보니 방송에서는 위궤양 판정을 받았다고 얘기했으나, 사실 채리나는 디바 1집 활동 직후 위암 초기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첫 수술을 마친 다음 무리하면 안된다는 의사의 조언에 디바 활동을 그만둘까 했지만, 자초지종을 모르는 팬들이 어깨너머로 활동을 관둔다는 얘기만 듣고 극구 반대했고 결국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2집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1998년 2집 활동 당시 채리나와 어머니를 주제로 제작된 MBC 다큐멘터리'''
당시 힘겹게 활동을 이어가던 채리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12]
그래서 2집 활동 기간 내내 음식도 제대로 못먹어가며 활동하는 모습이 여러 인터뷰 등을 통해서 보여졌고, 워낙 동정받기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위암 판정을 받은 사실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가 몇년이 지난 후에야 인정했다. 이 시절 무대를 보면 채리나의 표정이 매우 안좋아보일때가 여럿 있는데 한 라이브 방송에서는 힘겨워하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지만 꾸역 꾸역 활동을 이어갔고 약 2년 정도 위절제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활동했다.
한편 2집 앨범은 1집 시절과 연장 선상에 있는 걸스힙합 패션을 선보였지만 노래 장르는 완전히 가요 팝이었으며 힙합의 색채가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많이 희석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파워풀한 댄스와 랩을 섞어 힙합 그룹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대중적인 느낌의 밝은 힙합 패션을 선보여 대중적으로 디바가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는 시기가 되었다. 이해에 처음으로 SBS 가요대전 10대 가수에 선정되었으며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엔딩을 장식하거나 스페셜 방송에 초대되는 등 가요계 정상 그룹으로서 발돋움하게 된다.
2집 앨범의 히트 이후 디바는 대만 활동을 선언해 현지에서 여러 가수들과 콘서트를 했고 이후 아예 영어로 곡을 재녹음하여 대만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이 앨범은 'Dream'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과 대만 등지에서 발매되었으며 한국에서 발매한 히트곡들을 영어로 녹음하여 신곡 'I'll Get Your Love'를 타이틀로 홍보했다. 다만 한국에서는 거의 홍보가 없어서 나온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


대만 앨범 타이틀 곡 'I'll Get Your Love'
'12월의 드라마' 영어 버전 뮤직비디오

1.4. 3집


영어 앨범을 발매한 뒤 막내 지니가 공식적으로는 영주권 문제로 팀을 돌연 탈퇴했으며 3집 앨범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도 지니가 왕따당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멤버들 오피셜로는 그런 언급을 한적이 없으며 비키가 지니를 왕따시켰다고 한 시기는 1집 제작 전, 데뷔 기간이었기 때문에 이 시절에도 지니가 왕따 때문에 탈퇴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3집 활동 당시 디바의 오프라인 행사를 뛰었던 팬이 쓴 후기글을 보면 채리나가 팬들에게 지니가 4집때 돌아올거라고 얘기해줬다는 글도 있었는데, 이후 그룹 유니티[13] 출신의 이민경이 채리나의 제안으로 영입되고, 4집 때 채리나가 떠나고 지니가 돌아온 걸 보면 채리나의 큰 그림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팬들은 무척 당황했다.[14]
그렇게 잠시 새롭게 재편된 디바는 3집 앨범 'Millennium'을 발매하여 복귀한다. 인기 멤버였던 지니의 탈퇴로 어수선한 시기를 겪었지만, 새멤버 이민경의 귀여운 외모와 탄탄한 실력으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고, 99년 초 이들의 뮤즈였던 TLC가 'Fanmail' 앨범으로 쏘아올린 사이버틱한 힙합을 오마쥬한듯한 컨셉과, 음악적으로 트렌드를 따려가려는 노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멤버 본인들은 썩 좋은 시기로 기억하지 않으며 기존 팬들 사이에서도 멤버 이탈로 인한 내분이 있었는데, '''앨범 퀄리티는 역대 앨범 중 최고'''라는 평가를 들었다.전곡이 다 명곡이라는 호평 속에 앨범 활동이 이루어졌다.
타이틀 곡의 본래 제목은 'Yo Yo'였지만 당시 신화가 2집 앨범 후속곡으로 내놓은 'Yo!'와 혼동될 것을 우려, 발매 직전에 노래 제목을 '고리'로 수정했고 'Yo Yo'는 부제로 옮겼다. 역대 디바 뮤직비디오 중 최초로 해외 올로케이션 뮤직비디오에 메가폰은 유명 감독 홍종호가 맡아 화제가 되었다.[15] 이들은 그전까지 절대 안입던 치마를 입고 엄정화가 유행시킨 귀마개 패션[16]을 선보여 활동에 나섰으며 2집 때처럼 순위가 높게 올라가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차트제를 운영했던 SBS 인기가요에서 5위 권에 들면서 선전했고 두달여간 활동을 이어가다 후속곡 활동 없이 짧게 마감했다.
'고리'는 좋은 음악 퀄리티로 가요 차트 상위권에 머물렀으며 괜찮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당시 룰라 6집 앨범으로 인해 앨범 시기가 여러가지로 밀리던 와중에 계속 딜레이하던 대만 활동을 더는 미룰수 없어서 활동을 일찍 접어야 했고 마지막 방송을 기점으로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좋아하면 다 그래'와 '느껴봐' 그리고 영어 앨범 타이틀 곡 'I'll Get Your Love'를 짤막하게 선보인 뒤 활동을 종료했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고리'보다 '좋아하면 다 그래'가 더 인기가 좋은 편이다. 채리나 역시 앨범 발매 당시에 이 곡을 가장 좋아한다고 뽑았기에 이 노래를 타이틀로 했다면 더 좋은 반응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 지배적. 원래 타이틀 곡으로 이 곡을 염두해뒀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당시 멤버 탈퇴를 겪고 채리나의 개인 문제, 멤버들간의 오해가 쌓여 이 시절을 디바 멤버들은 썩 좋게 기억하지 않았으며, 인기가 상당했음에도 '부진했다'라고 회상하고 있다. 그래도 음반 판매량은 15만장 가량 팔려 후속곡 활동이 없었음에도 꽤 잘 나간 편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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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6. 발매
'''디바 정규 3집 앨범 <Millennium>'''


3집 타이틀 곡 '고리'
3집 후속곡 '좋아하면 다 그래'
3집 활동이 끝나기가 무섭게 디바는 이상민 휘하의 패밀리 그룹 브로스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이때 지니가 브로스 활동에 합류하며 다시 복귀했다. 당시 보도자료에서는 지니가 디바와는 별개의 아티스트로 참여했지만 브로스 앨범의 수록곡 중 참여 뮤지션들을 가사로 랩으로 옮긴 'Zen'을 살펴보면 "비키 민경 리나 지니 디바 브로스로부터 탄생되어 영원하고 있다"라는 가사가 있어 이 당시 내부에서는 이미 지니의 복귀가 확정된 상태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후 디바는 99년 서울 인 프로덕션[17]와의 계약이 만료된 후 룰라 매니저 출신 김균민 대표가 자리하여 이상민이 대표 프로듀서로 있던 기획사 A&B 엔터[18]로 이적하여 채리나를 제외한 지니, 비키, 이민경은 새로운 디바 활동을 위해 계약하고 4집을 준비한다.

1.4.1. 채리나가 디바에서 탈퇴한 이유?


3집 활동 이후 룰라가 재결성하면서 팀의 중축이자 사실상 에이스였던 채리나가 탈퇴했고, 이 과정에서 이상민은 당시로서는 신인이었던 모델 장윤주에게 채리나의 빈자리를 메꿀 멤버로 컨택했으나 장윤주가 고사했다. 이후 4인조로 재편될 계획으로 일부 보도 자료까지 등장하나 무산되었고 이때 팀 이름을 디바스(Diva's)로 바꾼다는 말도 있었지만 이 계획도 무너진다. 그리고 브로스 활동때 다시 국내에 귀국해 디바로서가 아닌 솔로 아티스트로 브로스에 참여했던[19] 지니가 다시 디바 멤버로 복귀하면서[20] 지니, 비키, 이민경 체제로 재정비되었다.
채리나가 디바에서 탈퇴를 선언한 것은 2000년 8월 경이며, 당시 채리나의 공식 탈퇴 이유는 룰라와 디바 활동을 함께 이어가는게 힘들었으며, 후에는 전문적인 댄서와 프로듀서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이후 채리나가 솔로 가수로 재데뷔하면서 탈퇴 이유가 불화가 아니냐는 의혹성 기사가 제시되었고 여러 루머가 돌았다. 대표적으로는 4집을 오리지널 멤버 채리나, 비키, 지니로 내고 이민경은 A&B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샤크라 또는 월드뮤직의 신인 으로 보낸다는 계획이었으나 이민경이 디바 잔류 의사를 내비쳤고, 미국에서 돌아온 지니도 복귀해야 했으며, 채리나도 룰라에도 합류해야 했으므로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려 채리나가 물러났다는 루머가 있었다. 이는 채리나와 디바의 기존 멤버들이 크게 다퉜더라면 4집의 프로듀서가 이상민일리도 없었기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기도 했다.
2018년에 채리나가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비화를 자세히 밝혔는데 사실 디바 2집 활동이 끝난 직후, 룰라 스탭들이 다시 모여 재결성을 논의하러 찾아오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채리나는 디바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대답을 내놓지 못했고, 그 모습을 안 좋게 본 룰라 스탭들이 채리나에게 쓴소리를 하는 바람에 결국 룰라에 합류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이에 한참 활동을 이어가야 했던 디바 멤버들을 두고 '''룰라 활동에 몰두하는 모습에 서로 오해를 빚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서로 지내면서 서운했던 감정들이 하나하나 터지면서 결국 갈라서게 되었고, 마침 이 때의 채리나는 항암치료도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 때를 인생을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회상했다.
그런 와중에도 소속사와의 계약 때문에 3집 앨범을 내야 했기 때문에, 멤버들이 3집 활동 기간을 좋게 기억하지 않고 있는 것. 채리나는 인스타 라이브에서 '''디바 멤버들이 자신에게 속상해하는 것을 백번 이해한다'''고 말했고 이 이후 이민경 외에 비키, 지니와의 교류는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때만 해도 개인활동을 하면 배신한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가요계가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여러 시대적 상황이 맞물려 안타깝게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다만 알려진 것처럼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느니, 사이가 매우 안좋다는 얘기는 소문일 뿐이며, 채리나가 솔로로 데뷔할 당시 1집 앨범 Thanks to에 추억의 디바 멤버들이라고 언급하기도 했고 연락은 하지 않지만 그렇게 멀지는 않은 어색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20년 7월 라디오 "오후의 발견 이지혜입니다"에서 채리나가 "디바"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채리나는 디바 곡 중에서 3집의 "좋아하면 다 그래" 를 명곡으로 뽑았다. 이 중에 이지혜가 3집멤버는 비키와 이민경인데 둘이 연락하냐는 질문에 채리나는 이민경과는 연락을 하지만 비키와는 연락을 안하는 모양.[21] 비키와는 사이가 부드럽지는 않다고 언급하였지만 그렇다고 으르렁 대는 사이는 아니라고 하였다.[22] 하지만 그 뒤에 비키를 정말 많이 보고싶다고 언급하였다. 아무래도 세월이 많이 지나면 나쁜 기억은 없어지고 좋은 기억이 남는다는 이지혜의 말에 채리나도 수긍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2. 새롭게 재정비된 디바



2.1.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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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 발매
'''디바 정규 4집 앨범 <naughty diva> 자켓 사진.'''


4집 타이틀 곡 'Up & Down'
4집 후속곡 '이 겨울에'
그렇게 앨범 발매 전까지 디바의 위기론이 대두되었지만 4집 앨범이 발매된 후, 1집 이후 오랜만에 다시 손을 잡은 이상민의 신선한 프로듀싱과 스타일리스트로 참여한 이혜영의 독특한 센스로 탄생한 타이틀 곡 'Up & Down'이 모두의 우려 속에서도 SBS 인기가요에서 1위 후보까지 올랐고 다른 방송사에서도 10위 권 안에 들면서 선전했다. 당시 'Up & Down'은 우리 나라 가요 중 BPM이 가장 빠른 곡이라고 홍보되기도 했다.[23]
당시 스타일리스트 이혜영은 '''"야 니들 컨셉은 미친X 컨셉이야~"'''라며 엄청나게 화려한 스타일을 선보여 화제가 많이 됐다. 비키의 경우 드레드 헤어를 선보였는데 사실 1집 때 하려다가 제대로 망쳐서 4집 때 돼서야 시도한 헤어스타일. 지금에 와서는 시대를 앞서간 패션이라고 좋은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당시만 해도 호불호가 많이 갈려 방송국 스탭들이나 관객들이 자주 기겁했다고 한다. 무대에 올라서면 다들 "쟤들은 뭐지"하는 눈길로 쳐다보는 일도 많았다고.
또 앨범의 마지막 수록곡 'Diva Diva Diva'의 경우 별다른 멜로디나 가사 없이 옥타브를 올려가며 괴성을 지르는 충격적인 트랙이 있는데 당시 립싱크 가수, 오토튠 가수들을 풍자하기 위해 만든 트랙이었다. 이 트랙이 워낙 충격적이라 넷상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모았고, 모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어그로 꾼이 항상 어그로 성글에 맥락없이 이 노래를 BGM으로 깔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뒤이어 내놓은 후속곡 '이 겨울에' 역시 10위 권 안에 들면서 인기를 회복했으며 두 곡이 히트함에 따라 또다른 후속곡인 'Crazy'로도 짤막하게 활동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려 새로운 디바 팬덤을 모으는 데에 성공했다. 이 앨범은 채리나 없이도 디바가 굳건히 활동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11만장 가량의 판매량을 올려 전작에 비해 큰 하락없는 고른 판매량을 기록했다. 높은 판매량은 아니었으나 힙합과 랩이 메인인 앨범이었음에도 음반 판매에서도 괜찮은 기록을 기록한 편.

2.2. 5집


다음해 발매한 5집에서는 의 히트곡을 만든 박해운이 프로듀싱을 맡은 복고풍 댄스곡이었던 5집 '딱이야'를 선보였으며 이때 이슈감이 딱히 없어서 소속사 사장이 언플을 위해 1집때 삭발 했던 비키를 보고 다시 머리를 깎으라는 지시를 해서 '''삭발 헤어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24]


5집 타이틀 곡 '딱이야'
5집 후속곡 'D.V.D'
이때 성시경과 비키의 열애설이 나기도 했는데 비키가 실제로 성시경을 많이 좋아했지만 매니저가 성시경을 과잉 보호하는 바람에 딱 한번 술 먹고 다시 사석에서 보지 못했다는 안습한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타이틀 곡인 '딱이야'는 10위 안에 진입하면서 어느 정도 선전했지만 갑작스럽게 힙합 컨셉을 배제하고 너무 대중적인 스타일로 복귀했던 탓에 기존 팬덤이 상당히 떨어져 나갔다. 디바만의 개성이 사라져버린 탓에 힙합을 기반으로 하는 이들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사실 5집 발매전 리더 비키가 4집 때의 난해한 스타일 덕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 것에 불만을 품고 이상민에게 항의를 했더니 단칼에 "그럼 하지 마"라고 정리하면서 5집에 이상민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체성이 상당히 희미해졌고 이 시점부터는 보통의 댄스 그룹같은 이미지를 고수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디바 멤버 본인들의 의지도 담겨 있었는데 '''디바 멤버들은 활동 기간 내내 센 이미지, 혹은 강렬한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에 심한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하며 팀 컨셉을 많이 바꾸고 싶어 했다고 알려진다. 그래서 5집때 대중적인 느낌으로 바꿨던 것이고, 이상민과 결별하면서 까지 이미지 변신을 감행한 것인데 '''대중들이 원하는 디바의 모습과 본인들이 원하는 모습의 차이가 컸던 탓'''에 팀 컨셉은 희미해져가고 대중적인 인기는 떨어지게 되는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5집 활동 막바지에 후속곡 'D.V.D'로 짧게 활동한 뒤 멤버 지니가 폭행 사건에 연루되면서 대중들의 디바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되었다. 이때 디바에게 '''여자 DOC'''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가요계의 악동 이미지가 생겨나기 시작.

2.3. 6집




6집 타이틀 곡 'Action'
6집 후속곡 '바람 바람 바람'
2002년 디바는 4집 시절 작곡진과 함께 다시 의기투합한 6집 'Action'을 발매했지만 전보다 임팩트가 조금 떨어지는 곡에, 뮤직비디오도 없이 홍보한 결과[25] 별다른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고 이 시점부터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는다기 보다 행사 위주로 활동을 이어가면서 메인스트림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오히려 이때부터는 행사의 여왕으로 떠올라 밤무대(업소) 행사를 마다하지 않고 하루에 전국을 U턴하고 올 정도의 엄청난 행사를 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에 현찰로 몇천만원이 있을 정도의 수익을 벌었다고 하며, 아마 디바 멤버들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절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앨범 성적이 전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디바의 이름 값이 있어서 차트에서 중위권을 유지하긴 했고 후속곡인 '바람 바람 바람'으로 짤막하게 활동한 뒤 6집 활동을 마감했다. 다만 이 앨범부터 본격적으로 디바의 하락세가 시작되어서 사실상 대중들이 기억하는 디바의 활동기는 이때까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3. 그룹의 활동 후반기, 그리고 잠정 해체



3.1. 7집




7집 타이틀 곡 'Hey Boy'
7집 후속곡 'Amoremio'
2003년에는 지니가 또 다시 음주운전을 하면서 결국 디바는 이 해에 복귀하지 못했으며 베스트 앨범을 발매한 뒤 기존 기획사 잼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BM뮤직으로 이적하여 2004년 드디어 외국 작곡가의 곡을 받아 7집 타이틀곡 'Hey Boy'와 후속곡 'Amoremio'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미 가요계 주류 시장은 발라드-소몰이 음악으로 변하고 있었고[26],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는 가요계 후배들과 아예 붕괴된 걸그룹 시장, 걸그룹이라 불리기엔 너무 오래된 디바의 연식 등의 문제로 높은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인기는 얻지 못했다. 타이틀곡인 'Hey Boy'는 유일하게 차트제를 운영한 음악캠프에선 10~20위권에 겨우 올라갔지만 디바 팬들에게는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노래에서 남자 백댄서의 급소를 움켜쥐는 듯한 노골적인 안무가 있었는데 당연히 지상파에서는 방송 불가 판정을 내려서 지상파 무대 때는 안무를 수정했다.

3.2. 8집




8집 타이틀 곡 '웃어요'
8집 후속곡 'My Style'
마지막 앨범이었던 8집 '웃어요'는 온라인 음원 순위에선 소소하게 선방했고 케이블 음악 방송에서는 10위권 내외의 성적을 거두었다.[27]
그럼에도 8집 앨범은 디바를 다시 메인스트림에 올리는 데에 실패했고, 결국 세 멤버는 기존 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되었다. 이때 멤버 이민경이 솔로 전향을 위해 재계약을 고사하며 탈퇴했고, 남은 2인이서 군대 위문공연이나 각종 행사를 조촐하게 다니면서 2007년까지 활동을 이어갔지만 결국 수입이 저조해 9집 앨범 제작이 무산된 뒤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참고로 8집 앨범으로 컴백할 당시 유행하던 후드 집업을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음악 방송 녹화를 하고 있었는데 음악 방송 PD가 이들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며 호통을 치면서 리허설 도중 음악을 끊어버렸고, 이에 분개한 비키가 직접 PD를 찾아가 항의했다고 한다. 사실 비슷한 시기 이효리도 비슷한 스타일로 무대에 오른적도 있었는데 유난히 불량한(?)이미지로 평소에도 제재를 많이 받던 와중에 이런 차별 행위가 드러나 비키도 못참고 터진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방송가에서는 비키가 PD를 폭행했다는 말도 안되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고.

4. 해체 이후


  • 채리나는 간간히 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데 룰라 멤버로서 하는 편. 사실 그 쪽이 오히려 당연하기도 하다.
  • 비키는 거의 은퇴한 뒤 2009년에 결혼해 1남 1녀를 뒀으며, 슈가맨 출연 이후 드문드문 예능 게스트로 활동을 하고 있다.
  • 지니는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온스타일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 3에 출연했다.
  • 이민경은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면서 결혼해 1녀를 뒀으며, 2016년 2월에 이혼했다. 2019년에는 복면가왕에 출연했다.

4.1. 슈가맨 출연


2016년 4월 5일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희열팀 슈가맨으로 등장했다. 또한 '''걸크러쉬의 시조새'''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히트곡 메들리를 선보이며 레전드급 게스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슈가송은 'Up & Down'인데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고 한다.[28] 나중에 비키는 슈가맨이 디바의 마침표였다고 언급했다.

4.2. 슈가맨 출연 이후


슈가맨에 나온 이후 단체로 이상민의 음악의 신2에 출연했다. 멤버 비키는 개별적으로도 자주 방송에 출연했다.
2016년 10월 3일 DMC 페스티벌-레전드 토토가에 출연하여 '딱이야', '왜 불러', 'Up & Down'을 불렀다. 그리고 그 후 디바로서 여러 번의 무대를 갖겠다고 말했다.


4.3. DMC 페스티벌 - 레전드 토토가 논란


무대 직후 원년 멤버 채리나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인간적으로 디바 노래를 나와서 부를꺼면 내 목소리는 좀 빼고 왜불러를 부르던가, 립싱크를 할꺼면 돈 들여서 다시 편곡 작업해서 부르던가 불쾌하다"'''며, '''"내 목소리는 나오는데 다른 이가 입을 뻥긋하고 있다. 진심 코미디. 2집 앨범 씨디음향 그대로 잘 들었다"'''는 글을 남겨 논란이 되었다.
물론 사적으로 이야기하면 됐지 SNS에서 모처럼 무대에 오른 전 멤버들을 디스를 해야 하냐면서 일부 네티즌들이 채리나에게도 적지 않은 비난을 했었다.
하지만 해당 방송에서는 채리나의 목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와 이민경이 그대로 립싱크하는 모습이 나와버린 상황이다. 사실 '왜 불러'가 디바 커리어 중 최고 히트 곡인 만큼 안 부를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 원년 멤버 채리나 입장에서는 본인 노래다.[29]
물론 디바 3집 때 이민경과 채리나가 함께 멤버로 있었지만, '왜 불러'를 부를 당시에는 채리나는 있었으나 이민경은 없었으므로 당연히 이를 보고 채리나가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아이돌도 이러한 이유로 멤버가 탈퇴하면 재녹음하고 행사 뛰는 경우도 있다.[30]
어떠한 말도 없이 전 멤버의 목소리가 들어간 98년도 음원 그대로 틀어 공연한 것은 전 멤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한 부분이 맞다. 따라서 같이 활동했던 지니, 비키의 노래이기도 한 만큼 사전 합의까진 아니더라도, 현 디바 멤버들이 처신을 잘 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1] 당시 채리나는 룰라의 멤버로 활동중이었다.[2] 2017년 라디오스타 방송분 중 채리나의 발언.[3] YG에서는 철이와 미애의 미애와 함께 듀오를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DSP에서는 당시 뮤 출신의 김준희와 듀엣을 제안했다고 한다.[4] 이 때 김성재가 무대의 완벽함을 위해 댄서들을 혹독하게 연습 시켰고, 지니는 김성재의 팬이라 김성재의 이니셜로 된 반지까지 착용할 정도였는데 김성재의 혹독한 연습에 너무 힘든 나머지 반지를 빼서 던져버렸다고 한다.[5] 향후 서술된 내용이지만 자신의 연예계 입문을 96년 이현도 뮤직비디오 때문이라고 언급한것만 봐도 95년 김성재의 솔로 활동과는 전무하다.[6] 영상 1분 37초 쯤 이현도의 왼쪽에 있는 금발의 숏컷이 비키다. [7] 물론 정식 앨범에는 보컬도 하고 있지만 상당히 보컬 실력이 미흡했다.[8] 특히 데뷔곡 '그래'의 경우 1절이 끝나고 비키와 채리나가 랩하는 부분에서도 지니는 뒤에서 혼자 서있고 비키와 채리나는 어깨동무를 하며 사이좋게 랩을 하고 있기도. 후속곡 '12월의 드라마'에서는 세 멤버가 어깨동무하는 안무가 있는데 여기에서도 지니는 채리나 옆에 있고, 비키와는 떨어져 있었다.[9] 그래도 꽤 긴 시간동안 차트 상위권에서 롱런한 편. 1위만 못했지 인기가 많았다.[10] 그 당시 IMF 한파로 가요 순위 프로에 대한 방송 심의위원회가 아주 까다로웠는데 항상 디바는 유독 방송 직전에 헤어나 의상 검사를 수시로 받고 PD들한테 자주 혼나서 멤버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11] 앨범에 채리나의 절친 에스더가 코러스로 참여했다. 타이틀 곡 '그래' 도입부의 애드립 및 수록곡 전반의 고음 애드립은 거의 다 에스더의 목소리.[12] 8분 50초 경을 보면 위궤양에 걸려 고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앞서 언급한듯이 위암 판정 직후였으며 채리나가 동정받고 싶지 않아 했기에 위궤양에 걸렸다는 식으로 언급되었다.[13] 남자 멤버들의 군 입대 등으로 해체. 남자 멤버 중 1명이 북치기 박치기로 인기를 얻었던 래퍼 후니훈이다.[14] 룰라 6집 활동 끝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 없이 비키, 지니, 채리나 셋이서 3집을 낼 거라고 했는데, 갑자기 지니가 뿅하고 사라져버린 것.[15] 태국 등지에서 촬영.[16] 귀마개 스타일을 엄정화와 동시에 패션쇼에서 보고 앨범 컨셉팅을 했으나, 엄정화가 먼저 컴백을 하면서 선배 가수를 위해(컨셉이 겹치면 안되는 이유도 포함.) 자켓 사진에서는 물이 든 귀마개를 착용하고 무대 위에서는 튜브로 변경하여 활동한다.[17] 룰라의 전 기획사이자 디바 1~3집 소속사다.[18] 2000년 샤크라 1집, 룰라 7집 음반 등을 제작.[19] 공식적으로 당시 브로스 프로필을 보면 디바와는 별개로 솔로 아티스트로 참여하고 있었다.[20] 참고로 사람들이 이 대목에서 채리나가 나가고 이민경이 들어왔다고 착각을 한다.[21] [22] 이지혜가 첨언하기를 안 친한건 아니지만 결이 다른 사이인 듯 하다고 이해한다고 함. [23] 다만 일본 힙합 듀오 m-flo의 곡인 "ten below blazing"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었다.[24] 1집 때 비키가 드레드 헤어를 하려다 망치고 머리를 밀었는데 두상이 예쁘다는 평을 받아 본인도 별 거리낌 없이 리더로서 용감히 삭발했다고 한다.[25] 당시 소속사 잼 엔터테인먼트 측 보도자료를 보면 뮤직비디오 예산 1천만원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내용이 있다. 대신 한국 영화 '로드무비'의 장면들을 재편집해 수록곡이었던 '''지켜준다더니'''의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26] 당시 SG워너비버즈 등의 남성 가수들이 강세였다. 채리나 탈퇴 이후의 디바는 기존의 팬덤형보다는 노래 좋으면 히트치고 안 좋으면 바로 망하는 제일 위험한 형인 대중형에 가까웠으며 팬빨에 영향이 없는 타입.[27] 참고로 '웃어요' 활동 당시에 지상파는 순위제를 운영하지 않았다. 인기가요는 네티즌 송을 선정하는 방식이었으며 뮤직뱅크는 순위제가 없었고 MBC 쪽은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으로 인해서 음악 순위 프로그램이 휴지기에 있었다.[28] 최대 히트곡인 '왜 불러'를 부르지 않아서인 듯하나, '업 앤 다운'은 이 멤버 체제로 냈던 첫 곡이었고 멤버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29] 팀의 노래라고 볼 수도 있지만, 2집 프로듀싱은 위의 설명대로 채리나와 윤건이 했으며, YouTube등의 영상을 보면 사실 노래도 채리나가 거의 하드캐리 하다시피 했다. 채리나로써는 나름 황당할만한 입장.[30] 그러나 이는 공적인 사유이며 사적으로는 민경과 채리나는 아직 친한 것으로 밝혀졌다. 2020년 7월 이지혜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채리나가 출연해 디바 멤버들 중 '민경'과는 연락을 이어가고 있으나 '비키'와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