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종

 


<colbgcolor=#99CCFF><colcolor=#000000> '''김민종
金旻鍾 | Kim Min Jong'''
'''출생'''
1971년 3월 23일[1] (53세)
서울특별시 강남구[2]
'''국적'''

'''본관'''
경주 김씨
'''신체'''
179cm[3], O형
'''직업'''
배우, 가수, SM 엔터테인먼트 이사
'''가족'''
2남 2녀 중 넷째
'''학력'''
서울대왕초등학교(졸업)
수유중학교(졸업)
안양예술고등학교(연극영화과 / 졸업)
[image]서울예술대학교(영화과 / 전문학사)
'''종교'''
불교(법명: 법진)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데뷔'''
1988년 영화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1. 개요
2. 연기 활동
3. 가수 활동
4. 종교
5. 근황
6. 출연 작품
6.1. 영화
6.2. 드라마
7. 앨범
8. 수상 경력
8.1. 시상식
8.2. 가요 프로그램 1위
9.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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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가수배우.
가수와 배우 양쪽에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 원조 멀티 엔터테이너로, 대표적인 90년대 아이콘 중의 한 명이자 미남 톱스타였다. 안양예고-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했다.

2. 연기 활동


정식 데뷔 전에는 광고모델로 업계에 얼굴도장을 찍다가 1988년 영화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로 데뷔했고, 1989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로 처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가수 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는데, 드라마만 나왔다 하면 히트를 쳐서 안방극장의 흥행 보증 수표라고 불렸다. <느낌>, <머나먼 나라>, <미스터Q>, <수호천사> 등의 숱한 드라마에서 당대 최고의 미녀 스타들과 호흡을 맞춰 드라마를 대히트시키고 OST까지 직접 불러 대히트시켰다. 특히 김희선과는 <머나먼 나라>, <웨딩드레스>, <미스터Q> 세 작품에서 주연으로 만나 커플로서 찰떡궁합 콤비를 과시하여 90년대 드라마 남녀 캐스팅 1순위였다. 80년대 말 ~ 90년대 초반에 등장한 여러 하이틴 스타들 군단의 일원으로 톱가수로서의 인기까지 더해 199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톱배우로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지금은 결혼한 배우 이승연과 6년 넘게 공개 열애를 하며 1990년대 대표적인 톱스타 커플이었으나 2001년에 결별했다.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 쪽으로는 영 풀리지 않았는데, 데뷔 초에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들이 나름 성공하고 인지도를 쌓아가다[*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에서도 조연으로 출연했는데 영화 평은 좋은 편이었다.인기 스타가 된 이후 찍은 영화 <귀천도>로 일약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 뒤로 찍은 영화는 줄줄이 망했어요. 박찬욱 초기작인 3인조는 그렇다 쳐도, 제목부터가 뭐야 이거? 소리가 나오는 마지막 방위 홀리데이 인 서울은 왕가위 영화 기법 표절작이라고 흥행과 같이 평도 망했고, 이후로 나오는 이것이 법이다, 패밀리, 나비, 낭만자객 등 줄줄이 흥행에서 연속 재앙이었다. 작품 보는 눈+운+감독[4]빨이 안 받고 흥행참패의 쓴 잔을 연거푸 마셨다. 진지한 정극 연기인 <나비>와 망가지는 연기도 불사하고 찍은 <낭만자객>을 연달아 찍었으며, 특히 <나비>의 경우는 흥행에 실패하면 연예계를 은퇴하겠다는 각오[5]로 작업에 임했다. 그리고 희대의 영화 낭만자객에서 관객에게 큰 충격을 먹이고 그 뒤엔 충무로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는지 영화계에서는 제작자, 감독 그 아무도 찾지 않는 배우가 되었다. <나비>같은 경우는 본인도 매우 진지하게 작품에 임했고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가 갱스 오브 뉴욕, 무간도, 선생 김봉두, 매트릭스 리로디드, 엑스맨2, 지구를 지켜라 그리고 살인의 추억이었다.
힐링캠프 김민종 편에서 김민종이 직접 밝혔듯이 영화 <낭만자객> 이 자신의 연기 커리어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드라마와 음반에서는 항상 히트를 시키며 최고의 대우를 받았으나 영화에서 항상 실패를 해온 김민종은 당시 하이틴 스타의 틀을 벗어나 영화배우로서의 성공이 절실했다. 특히 영화배우가 몸값과 위상에서 드라마 배우를 추월해가던 2000년대 초반의 시기에[6] 만약 낭만자객이 흥행을 하면 하이틴 스타가 아닌 제대로 된 배우로서 자신의 입지를 높이고 톱스타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지만 실패를 한다면 과거의 하이틴 스타로만 남고 배우로서의 클래스가 추락하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낭만자객은 전국 관객 90만명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거두고 혹평을 받았다. 결정적으로 그동안 터프가이 이미지에 눈에 힘주고 멋있는 캐릭터만 연기하던 김민종 또한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등장하여 이미지를 구기고 2000년대 현빈, 소지섭, 강동원 등의 새로운 배우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그 후 김민종의 연기 커리어는 쭉 하락세를 걸었다.
2003년 KBS 주말 드라마 <진주목걸이>, 2004년 SBS 수목 드라마 <섬마을 선생님>, 2005년 MBC 수목 드라마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에서 주연을 맡아 드라마 커리어는 이어갔지만 90년대 안방극장의 흥행 보증 수표란 말이 무색하게 시청률이 좋지 않았다. 2006년 tvN 개국기념 미니시리즈 <하이애나> 를 끝으로 원톱 주연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2008년 MBC 드라마 <천하일색박정금>, 2009년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2010년 MBC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2011년 SBS 드라마 <아테나> 등을 거치며 주연의 자리에서 확실히 내려오게 되었고 별 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해 슬럼프를 겪었다.
2012년 드라마 신사의 품격으로 복귀. 팬들의 기다림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완벽한 연기로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펼치게 되었다. 덕분에 미중년 컨셉으로 다시 인기몰이를 했다. 드라마에서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자신이 '신사의 품격'에서 맡은 최윤 변호사 역을 그대로 활용하여 차관우를 자신의 로펌으로 스카웃하려 제의를 하는 선배 변호사로 등장. 또한 '응답하라 1994'에서는 '성동일'과 인연을 맺은 자신의 캐릭터 '김민종'으로 분하여 2002년 나정의 결혼식 때 삼천포와 같이 축가 '너만을 느끼며'를 불렀다.
2015년에는 SBS 드라마 미세스 캅을 2016년에는 시리즈편인 미세스 캅 2에서 박종호 역할로 출연한다. 2017년, MBC 월화특별기획 투깝스에 조항준 역으로 특별출연. 또한 12월에 개봉한 신과 함께 죄와 벌에도 우정 출연하여 과거 인기 스타 시절 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연기 활동을 하고 있다.
2019년에는 SBS 드라마 배가본드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 윤한기 역할로 출연했는데, 2010년 MBC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에 이어 두번째 악역을 맡았다.

3. 가수 활동


1992년 솔로 1집 '''또다른만남을 위해''' 로 데뷔하여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신인으로서 이례적으로 바로 10위 안에 들며 가수로서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7] 그리고 1993년 솔로 2집 '''하늘아래서'''가 1위를 하고 크게 히트하여 락발라드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또한 솔로 1집 활동이 끝나가던 시기인 1992년 12월에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 중 하나인 손지창과 함께 2인조 그룹 '''더 블루'''를 결성해서 투유초콜릿 CF송이자 더블루 1집 타이틀 '''너만을 느끼며 (1992)''', 손지창과 함께 주연을 맡은 드라마 느낌의 OST '''그대와 함께 (1994)''', 더블루 2집 후속 '''친구를 위해 (1995)'''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듀엣 그룹으로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8] 정규 앨범뿐만 아니라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의 OST도 직접 불러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드라마 열정시대의 '내가 알고 있는 미소', 느낌의 '그대와 함께'[9] 드라마 머나먼 나라의 'Endless Love', 미스터Q의 '세상 끝에서의 시작', 드라마 사랑하세요? 의 '항상 그 자리에' , 드라마 수호천사의 '난 다를거야', 영화 패밀리의 '추억애' 그리고 2010년대로 넓히면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아름다운 아픔' 등등.[10]
솔로 1, 2집과 더블루 1,2집을 연속으로 성공시킨 후 1996년에는 본인이 주연을 맡고 배우 이경영(1960)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귀천도의 OST 겸 솔로 3집 타이틀이었던 '''귀천도애'''가 그 전 앨범들을 뛰어넘는 초대박을 터뜨리면서 1996년 하반기 가요계를 평정하여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유력 대상 후보로 여겨졌으나...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싹쓸이할 때 귀천도애가 일본 노래를 표절한 걸로[11] 판정되어 가요톱텐에서 사과 방송을 한 다음 1위 후보에서 자진 하차하고 가수 은퇴 선언을 하게 되었다.[12] 그래서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던 드라마 <머나먼 나라>의 OST이자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후속곡 Endless Love 활동 역시 불미스럽게 접게 되었다.
그렇게 약 2년간 가수로서는 활동을 하지 않다가 미련이 많이 남았는지 착한 사랑 작곡가 김도형과 가수 신승훈, 가수 이소라 등 주위의 설득에 김민종의 대표곡으로 아직도 사랑받는 록발라드 명곡 '''착한 사랑'''의 작사를 직접하면서 2년만에 가요계에 복귀한다. 착한사랑은 1998년에 가요프로그램 1위를 수차례 기록하며 대히트를 기록하였고 김민종은 과거 인기 가수의 영광을 되찾는다. 그 뒤 발매하는 앨범마다 큰 인기를 끌고 가요프로그램 1위를 쓸어담으며 2000년대 초중반까지 90년대 대표 남자 인기 가수이자 록발라드의 대표 주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집 '''또다른 만남을 위해''' / '''투유''', 2집 '''하늘 아래서''', 3집 '''귀천도애''' / '''Endless Love''', 4집 '''착한 사랑''' / '''그래도 그대는 나의 영원한 사랑이야''' / '''세상끝에서의 시작''', 5집 '''비원''' / '''순수''', 6집 '''왜''' / '''아름다운 아픔''', 7집 '''You're My Life''' / '''하얀 그리움''', 8집 '''바보처럼''' 등의 여러 히트곡들을 남겼다.[13] 특유의 목을 쥐어짜는 창법과 열창할 때 미간이 찌푸려지는 표정, 무대에서 쓰러질 듯[14]한 모습은 많은 연예인들이 개인기로 따라했고 1970~1980년대생들이 노래방에서 김민종의 포즈를 많이 따라하며 노래를 불렀었다. 미간을 찡그리고 콧부리에 집게손을 살짝 얹으며 그대여 를 하는 게 정석.
2005년 영화 종려나무숲의 OST '좋은 사람 만나요', 2008년 드라마 천하일색박정금의 OST '이별도 사랑이다' 등의 OST를 발매하였으나 정규앨범은 2003년 솔로 8집 이후로 더이상 발매를 하지 않고 있다.[15] 이렇게 최근 음반을 발매하지 않는 이유는 음악을 잘 해낼 자신이 없고 잘하는 후배들이 너무 많아서 가요계에 나서기가 부끄럽다고 털어놓았다. 2012년에는 신사의 품격의 OST 를 발매하였는데 본인의 6집 후속곡이던 '''아름다운 아픔'''을 재녹음해서 수록하였고 이 노래가 최근 참여한 음악 활동이 되겠다.
수많은 1위를 하고 숱한 히트곡을 남긴 레전드 남자 솔로 중의 한 명이지만 19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에게는 가수 김민종의 모습이 생소한데[16], 2003년 솔로 8집 바보처럼 활동 이후로는 배우에만 전념하여 가수로서의 모습을 TV나 공연 등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전 출생 세대들에게는 학창시절 최고의 인기 가수 중 한 명이었고 특히 노래방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어가던 1990년대 중후반에 김민종의 히트곡들은 2000년대 초반까지 남자들의 대표 애창곡들이었다. 특히 남심을 자극하는 음색과 본인이 직접 작사한 슬픈 가삿말들로 인해 남학생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끌었다.[17]
록발라드 가수치고는 노래의 난도가 높거나 고음이 많은 편은 아니였고[18], 가창력 역시 아주 뛰어나진 않지만 본인의 음역대에 맞는 곡들을 김민종 특유의 간지[19] 와 애절한 감성으로 본인의 노래들을 잘 소화해내었다. 악을 쓰면서 목으로 노래를 부르고 전업 가수가 아니란 비판도 당대에 있었으나[20] 톱배우로서의 인기를 떠나서 가수로서 뛰어난 감정 전달 능력을 보여주어 9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다. 그러나 3집 귀천도애부터 목을 긁는 스크래치 창법[21] 으로 창법을 바꾸어서 음역대가 많이 가라앉았고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잦은 술담배로 인한 관리 실패로 본인의 히트곡들을 원키로 소화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목 상태가 악화되었다. 모창 프로그램 히든 싱어 시즌 1 때부터 섭외 1순위였던 가수 김민종이 지금까지도 출연하지 않는 이유 역시 계속 언급하듯이 김민종 본인이 목 관리에 실패하여 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다.
2020년 현재 사실상 가수로서는 커리어를 중단한 상태다. 다만 인터뷰나 방송에 나오면 여전히 음악적 갈증은 마음 속에 있다고 하고 라디오스타나 복면가왕 게스트로 나와서 가끔씩 본인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 언젠가는 앨범을 낼 가능성이 있다.
히든 싱어 4 보아 편에 패널로 나왔을 때는 자기는 1라운드에서 떨어질 거라며 히든 싱어 출연을 고사한 적이 있다. 방송에서는 김민종의 모창자를 꾸준히 모으고 있지만 시즌 6까지 방영했음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4. 종교


불교의 상징이라 할 만한 '(만)'자 목걸이를 즐길 정도로, 연예계에서 꽤나 유명한 불교 신도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비구니인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친구들과 사찰을 자주 찾았고, 학창 시절 한때 절에서 학교를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시상식에서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는 수상소감을 밝혔고[22], 2012년 연기대상 시상식에서도 부처님의 '''자비로움'''에 감사한다는 수상소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본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친 만큼 그 감회가 남다른 듯 하다.
여담으로 개같은 날의 오후 영화에서도 '' 목걸이 매고 나왔다.

5. 근황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 그 인기가 다소 주춤하게 됐는데, 나이를 먹기 시작한 것도 있고, 앞서 언급했듯 영화에서의 지속적인 실패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가수로서의 활동을 접은 게 크다. 김정민 버금갈 만큼 목을 쥐어짜는 듯한 스크래치 창법을 구사했던만큼, 목에 부담이 많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톱가수로서의 모습을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새로운 90년대생 세대들에게는 보여주지 못했다. [23] 90년대 전성기 시절에도 대중들이 톱배우 김민종보다 톱가수 김민종의 모습을 더 친근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수로서의 모습을 더이상 보여주지 않게 되자 귀신같이 연기 커리어 역시 하락세를 걸었다. [24] 김민종처럼 연기력, 음악실력 모두 일정 수준 이상으로 연마한 연예인은 지금도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음악적 역량을 꾸준히 쌓아가서 과거와 같이 활발히 활동을 하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가수이며, 꾸준하게 활동을 하는 만큼, 팬들은 그가 다시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는 SM에서 인수한 여행사에 사외이사로 선임이 되어서 나름 SM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간부가 되었다.[25]
2015년 11월 부산 조직 폭력배 칠성파 간부 결혼식에 나와 손지창과 같이 진행을 맡았다. 이에 대한 취재에 둘 다 피해 다니기만 했다고.
2019년에 KBS 육아예능 '아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 에 출연하여 미혼남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잘 돌보는 모습을 보여줬다.
2020년 11월 28일 극우 정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 출연했다.# @ 소장인 강용석과 방송 이후에 여러번 술자리를 가지면서 생긴 개인적인 인연으로 출연했다고 한다. 지난 10월 24일 모친상을 당했을 때는 김세의 대표와 김용호 연예부장이 직접 조문을 와줬었다고 한다. 정치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지만 전혀 정치적인 얘기는 하지는 않았고 연예계 쪽 얘기와 최근 근황에 대해서만 말했다. 특히 가로세로연구소측이 빅히트를 비난했던것을 김세의 대표가 언급하자 가로세로연구소측이 그러면 안된다며 SM도 그렇고 빅히트도 그렇고 가로세로연구소가 유하게 나가야 한다며 조언이 섞인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2020년 11월 29일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새로운 아들로 출연했다.

6. 출연 작품



6.1. 영화


<rowcolor=#000000> '''연도'''
'''제목'''
'''배역'''
'''비고'''
1988년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조연 • 데뷔작
1989년
내 사랑 동키호테
동석
조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손창수
단역
1990년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순철
주연
영심이
문환
조연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최종민
조연
1991년
너에게로 또다시
김삼수
주연
하얀 비요일
종민
조연
10대의 반항
강일
주연
1992년
가을 여행
종수
마음의 파수꾼
재우
1993년
오렌지나라
영빈
1994년
커피 카피 코피

특별출연
1995년
돌아온 영웅 홍길동
홍길동
주연 • 목소리
개 같은 날의 오후
달수/도둑2
조연
1996년
귀천도
우운검
주연
1997년
체인지
이호
단역
홀리데이 인 서울
벨보이
주연
3인조

오현경의 전설과 반항
상민

마지막 방위
유행철
주연
1998년
토요일 오후 2시
윤태
2001년
이것이 법이다
표준호
2002년
몽중인

특별출연
패밀리
차성대
주연
2003년
나비[26]
윤민재
주연
낭만자객
요이
2005년
종려나무 숲[27]
김인서
2011년
아테나: 더 무비


2016년
브링 홈

주연 • 내레이션
2017년
신과함께-죄와 벌
저승차사
우정출연
2018년
신과함께-인과 연
2019년
그대 이름은 장미
라디오DJ[28]
우정출연

6.2. 드라마


<rowcolor=#000000> '''연도'''
'''방송사'''
'''방송명'''
'''배역'''
'''비고'''
1989년

토지
최환국

1992년

목소리를 낮춰요
이태식


겨울무지개
상우
성탄특집극
1993년

열정시대
한창석

1994년

느낌
한현


아들의 여자
강준욱

1995년
아파트
이우진

1996년

머나먼 나라
김한수

1997년
웨딩드레스
장풍도

1998년

미스터Q
이강토
주연
1999년
고스트
차달식
2000년

사랑하세요
박상진


비밀
조영민

2001년

수호천사
하태웅

2003년

진주 목걸이
김기남

2004년

섬마을 선생님
추호태

2005년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이서준
주연
2007년

하이에나
김철수
2008년

천하일색 박정금
한경수
2009년
돌아온 일지매
구자명
2010년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황우현

아테나:전쟁의 여신
김기수
2012년
신사의 품격
최윤
2013년

응답하라 1994
김민종
특별출연

너의 목소리가 들려
최윤 변호사
특별출연
2014년
비밀의 문
나철주
주연
2015년
미세스 캅
박종호
2016년
미세스 캅 2
2017년

투깝스
조항준
특별출연
2018년

우리가 만난 기적
김만종
특별출연
2019년

배가본드
윤한기
조연

7. 앨범




8. 수상 경력



8.1. 시상식


<rowcolor=#000000> '''날짜'''
'''시상식명'''
'''수상 부문'''
'''작품'''
'''1992년'''
1992년
뮤직박스 가요대상
신인상
또 다른 만남을 위해
'''1994년'''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본상
그대와 함께
'''1996년'''
12월 12일
제17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귀천도
'''1998년'''
12월 6일
KMTV 가요대전
최우수인기가수상
착한 사랑
12월 29일
S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미스터Q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착한 사랑
'''1999년'''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청소년 부문 올해의 가수상
비원
'''2000년'''
12월 31일
SBS 연기대상
빅스타상
고스트
'''2001년'''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팝발라드 부문상
You're My Life
12월 31일
SBS 연기대상
드라마스페셜부문 연기상
수호천사
10대 스타상
'''2012년'''
12월 31일
SBS 연기대상
주말연속극부문 남자 특별연기상
신사의 품격
베스트 커플상
(with 윤진이)

8.2. 가요 프로그램 1위


'''총 41회 1위'''
<rowcolor=#000000> '''날짜'''
'''방송명'''
'''곡명'''
'''비고'''
'''1993년'''
1월 8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너만을 느끼며
(11회)
1위
1월 10일
SBS 인기가요
1월 15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1월 17일
SBS 인기가요
1월 22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1월 24일
SBS 인기가요
1월 29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1월 31일
SBS 인기가요
2월 5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1위
(5주 연속)'''
2월 7일
SBS 인기가요
1위
2월 14일
'''1위
(6주 연속)'''
10월 31일
SBS 스타 서울 스타
하늘아래서
(1회)
1위
'''1994년'''
10월 19일
KBS 가요톱10
그대와 함께
(6회)
1위
10월 23일
SBS TV가요20
10월 26일
KBS 가요톱10
10월 30일
SBS TV가요20
11월 2일
KBS 가요톱10
'''1위
(3주 연속)'''
11월 6일
SBS TV가요20
'''1위
(3주 연속)'''
'''1995년'''
10월 1일
SBS TV가요20
친구를 위해
(3회)
1위
10월 8일
'''1위
(2주 연속)'''
10월 13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1위
'''1996년'''
9월 28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귀천도애
(8회)
1위
10월 2일
KBS 가요톱10
10월 5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10월 9일
KBS 가요톱10
10월 12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50
'''1위
(3주 연속, BEST OF BEST)'''
10월 13일
SBS TV가요20
1위
10월 16일
KBS 가요톱10
10월 23일
'''1위
(4주 연속)'''
'''1998년'''
7월 12일
SBS 인기가요
착한 사랑
(5회)
1위
7월 19일
'''1위
(2주 연속)'''
7월 21일
KBS 뮤직뱅크
MVP
7월 26일
SBS 인기가요
'''1위
(3주 연속)'''
8월 2일
'''1위
(4주 연속, 왕중왕)'''
'''1999년'''
4월 25일
SBS 인기가요
비원
(1회)
1위
'''2000년'''
5월 2일
KBS 뮤직뱅크

(4회)
1위
5월 7일
SBS 인기가요
5월 14일
5월 21일
'''1위
(3주 연속, 왕중왕)'''
'''2001년'''
11월 25일
SBS 인기가요
You're My Life
(2회)
1위
itv Hot3 Big10

9. 여담


장동건과 관련된 꽤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김민종은 이른 시기에 스타가 되었는데 원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장동건이 맡은 배역은 김민종의 배역이었다. 그러나 김민종이 SBS <열정시대>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출연이 어렵게 되자, 이미지가 비슷한 탤런트를 찾다가 신인 장동건을 기용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장동건은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물론 워낙 출중한 외모이니만큼 이 드라마가 아니어도 언젠가는 떴겠지만… 사실 장동건을 진짜 스타로 만들어준 드라마는 따로 있다.
김희선에게 따귀를 때리는 폭행을 가한 적이 있다고 한다.
김보성과 더불어 연예계의 대표적인 의리 캐릭터로, 앞뒤도 안 보고 의리 하나 때문에 금전적, 물질적인 손해를 보고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한 듯하다. 지인의 부탁으로 영화에 무보수로 출연한 적도 있었다고. 다만 김민종의 경우는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다고 보는 게 옳을 듯.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직업적 특성상, 연예인들은 감정이입하는 능력이 매우 발달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장국영처럼 연기자로도 가수로도 모두 성공을 거둔 사례를 찾아보면 더 쉽게 알 수 있는 부분. '''연예인으로서는 축복받은 재능'''이나, 남의 말을 잘 믿고, 부탁을 쉽게 거절 못하기 때문에 고생 끝에 번 돈을 허무하게 날리는 경우가 유독 많은 연예인 직업군에서도 크게 손해를 보았던 사례인 듯.
박중훈과의 인연이 좀 깬다. 1987년[29]에 박중훈이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라는 영화에 최재성과 같이 주연으로 나왔는데 김민종은 이 영화의 단역으로 데뷔했다.[30] 촬영장에서 박중훈이 날씨가 추운 관계로 김민종에게 자신의 차 열쇠를 주면서 시동만 켜 놓고 차 안에서 히터를 쬐라고 배려해 줬었는데 김민종은 이 차로 주행을 하다가 접촉사고를 내고 말았다.# 이 사고로 상대 차량의 수리비가 그 당시 기준으로 50만 원(지금으로 따지면 그 10배인 500만원이 넘는 돈이다.)이 나왔다. 이 때문에 박중훈은 김민종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하며 갈궜는데 이후 그것도 인연이라고 나중에 화해한 이후로는 둘이 친하게 지냈다. 참고로 박중훈은 영화에서 맡았던 코믹한 역할 이미지와 달리, 지금도 그랬지만 당시에도 '''화가 나면 가장 무서운 연예인'''이였다. 박중훈의 분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바이오맨 항목이나 박중훈 항목을 보면 된다.
의외로 심각한 방송사고를 일으킨 적이 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삼인조 홍보차 나온 한밤의 TV연예에서 사회자 유정현이 그가 맡은 깡패역의 극중 한 장면을 한번 보여달라고 계속 요청하자 생방송인데도 실제 '''쌍욕'''을 넣어 '야 이 씨박쉐끼야 잔소리하지 말고 돈 되는 거 있으면 다 내놔'라고 거하게 대사를 친 뒤 자기도 놀라 '큰일 났다. 방송사고다! 어쩌지? 시키시니까 하긴 했는데...' 라고 한 흑역사 중 흑역사(...) 당시 데뷔한지 10년차라 방송물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인데도 저런 실수를 했단 것이다. 다만 당시 진행자 유정현도 과했던 것이 계속 강하게 해달라면서 김민종을 몰아 세웠다. 그래서 김민종도 순간 욱해서 욕을 섞어가며 연기했고 그와 동시에 유정현을 쏘아보며 '시킨대로 했다, 어쩔 거냐'는 반응이였다. 유정현 역시 시켜놓고 막상 방송사고를 터트리니 살짝 화나서 이악물고 '그래 했다 이거지' 이런 식으로 대꾸했다. 다소 격앙된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당시 함께 주연을 맡아 방송에도 함께 나온 이경영이 진행자와 김민종 모두 말을 더듬고 있을 때 "제가 앞으로 김민종씨 언어순화 교육을 책임지고 살겠습니다"라고 유머러스하게 넘겨서 욕을 덜 먹었다.[31] 퓨어한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도 퓨어 한 듯.
2013년 10월 말~11월 초 2주간에 걸쳐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초청되는 등 조금씩 극 이외의 매체에도 등장하면서 다시 주목 받는 중. 이날 방송을 보면 DSP미디어 이호연과 친해서, 과거 이호연과 핑클이랑 같이 일본에 놀러갔었다고 한다. 그때 성유리가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졌는데, 김민종이 와서 구해줬다고 밝혔다. #

[1] 여러 추측들이 있는데, 과거 김민종 3집 앨범에 수록된 <이왕 시작된 인생>이라는 곡의 가사에서는 본인이 1971년 3월 23일 생이라 되어 있고, 에전에는 71년 생이라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면 71년 생으로 보였다. 72년 2월 생인 윤정수가 형으로 부른다거나, 72년 3월 생인 장동건 등 많은 수의 72년 출생자들이 빠른 신경 안 쓰고 72년 1, 2월 생들과 친구하는 유재석도 모두 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그런데 최근에 출연한 라스에서는 또 1972년 생으로 언급된다. 참고로 네이버다음 등에는 모두 1972년 생으로 기입되어 있고, 발칙한 동거 촬영 당시에도 1992년 생인 유라를 보고 본인과 딱 20살 차이난다고 하고 결정적으로 서울예대 동기지만 1살 많은 신동엽에게 족보가 꼬일 수 있다는 이유를 가지고 형이라고 부르겠다고 한 것을 보아 1972년 생이 딱 정설로 보인다. 한마디로 빠른 72년생인 것. 한데, 71년 생인 남희석과는 또 안양예고 동기이다. 한마디로 과거에는 학번에 맞춰서 1971년 생이라고 하고 살았지만 나이가 들어서 1972년 생으로 (한 살이라도 어리게) 커밍아웃한 것으로 보인다. 신동엽도 빠른 71년생이다. 71년생인 자신이 빠른 71년생과 친구 먹으면 70년생과 족보가 꼬이니까 형이라 하겠다고 한거면 딱 맞는다. 데뷔작 언급한 힐링캠프 방송이나 뉴스를 찾아보면 나오는데 1988년작 영화를 고2때 찍었다고 했다. 71년생이 1988년에 고2다. 윤정수가 형이라고 한것도 71년생이니까 형이라고 했어야 이해가 되지 같은 빠른 72년생에게 형이라고 할 바보는 없다. 바로 앞 결론은 틀린 것이다. 굳이 나이 먹은 후에 왜 프로필 나이를 줄여서 원ㅋ. 실제로 1년 늦게 호적을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프로필로는 1972년생이라고.. 60~70년대 생들은 행정 미비 그리고 높은 영유아 사망률에 타ㆍ호적을 늦게 올렸다. 그리고 71년생 돼지띠가 맞다.[2] 참고로 부친의 고향이 충청북도 보은군이다.[3] 네이버 프로필 상 키는 180cm지만 예전 프로필키가 180cm가 안됬었다. 179~180cm로 본다.[4] 그가 맡은 작품들을 보면 현재 흥행감독으로 잘나가는 윤제균, 거장으로 불리는 박찬욱이 있지만 그가 출연한 작품은 죄다 망했다.[5] 나중에 다른 인터뷰에서 억지로 한 말이라고 했다고 밝혔다는 이야기가 있다.[6]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브라운관에 나오는 배우들이 스크린에 나오는 배우들보다 인지도가 더 높았다. 당시 영화관은 단관 체제로서 지금처럼 전국적으로 500만, 1000만 관객을 모으던 때가 아니다. 전국 관객 집계도 안되고 서울 관객 집계를 해서 50만만 되어도 흥행했다고 하던 시기. 반면 드라마는 기본 시청률 20%에 히트한 작품의 시청률들은 30~40%가 나오던 때라 인지도나 대중의 친숙도에서 영화와 비교가 안 되었다.[7] 한해 전인 1991년 본인이 출연한 <하얀 비요일>의 OST에서 1집의 타이틀곡인 '또다른 만남을 위해'를 불렀던 적이 있다. 이미 배우로서는 하이틴 영화와 청춘드라마에 주연으로 나와 인지도가 높았던 상황[8] 손지창 역시 연기와 노래 모두 잘 하는 능력 있는 배우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하이틴스타였다. 지금으로 치면 배우로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김수현과 송중기가 노래까지 잘하는데 둘이 또 친해서 우정만으로 의기투합을 해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노래가 대히트한 케이스.[9] 앞에서 언급했듯이 손지창과 함께 부름. 가요톱10 3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이때 드라마틱하게도 1위 경쟁을 하던 곡이 이현도가 작사, 작곡한 구본승의 '너 하나만을 위해'라는 곡이었는데 '그대와 함께'가 2주차 1위를 했을 때는 단 3표 차이, 3주차 1위를 할 때는 딱 1표 차이로 2위에 머물렀다가 그 다음 주부터 '그대와 함께'의 4주 연속 1위를 저지한 뒤 정상을 밟았지만 그 다음 주부터 발라드 황제라 불리우는 분노래가 정상을 밟은 뒤 결국 골든컵을 차지했다.[10] 물론 신사의 품격은 김민종의 주연 작품은 아니고 서브 주연 작품이다. 앞의 작품들은 모두 김민종 주연 작품들이다.[11] TUBE가 부른 Summer Dream (1987). 오다 테츠로 작곡. 듣고 판단하시길. '귀천도애'의 작곡가 서영진은 이미 1993년 더 블루의 '나를 위해'X JAPAN'Endless Rain'을 표절했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12] 정작 작곡을 한 작곡가 서영진은 잠수를 타버렸다. 작사를 하고 노래를 부른 가수가 모든 책임을 덮어쓰게 된 상황...[13] 정규 앨범 10장 중 솔로 1집, 솔로 8집을 제외한 모든 정규 앨범에서 1위곡을 배출했다. 세월은 많이 지났지만 언제 들어도 명곡..역대 히트곡 컴백 무대 모음[14] 피사의 사탑처럼 몸을 기울이고 노래를 부른 경우가 많다.[15] 그래서 지금까지 발매한 총 정규앨범은 더블루 정규 2장, 솔로 정규 8장 해서 총 10장이다.[16] 배우 김민종의 모습도 많이 잊혀져가다가 2010년대에 신사의 품격의 히트로 40대 동안 아재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주연에서 내려온 시점의 히트작이라 신세대들은 90년대 톱배우 김민종의 모습을 잘 모르는 경우가 다수.[17] 귀천도애, 착한 사랑, 비원을 들어보라. 김민종 노래의 99%가 이별을 당한 남자가 여자한테 그래 내가 싫으면 떠나라 하지만 난 여기서 하늘을 바라보며 편안히 기다릴게 영원히 사랑해 라고 말하는 내용들이다.[18] '김민종 옥타브 정리 영상'인데 2옥타브 솔 ~ 2옥타브 시 사이의 음역대로 3옥타브를 넘어가진 않는다.[19] 유튜브에 김민종 무대 영상들을 검색해보면 왜 간지라고 표현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그대는 나의 영원한 사랑이야 검정 선글라스 간지 라이브 무대'[20] 만능 엔터테이너 쌍두마차이던 임창정 역시 김민종과 함께 90년대에 전업 가수가 아니란 비판을 받았다. 이 시기에는 배우는 배우를 하고, 가수는 가수를 해야한다는 인식이 대부분이어서 겸업을 하면 하나라도 제대로 할 것이지 왜 설치냐는 식으로 안 좋게 보는 대중들이 많았다. 배우가 가수를 하면 배우 인기빨로 가수로서도 인기를 날로 먹는다고 했었기 때문.[21] 1집 또다른 만남을 위해, 2집 하늘아래서를 들어보면 본래 김민종의 목소리는 미성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비음이 가득차고 걸걸한 목소리로 그대여를 부르는 4집의 김민종 모습과 완전 다르다.[22] 앞서 수상한 여성 그룹의 한 멤버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한 이후라 어느 정도 의도적인 발언으로 보인다.[23] 이런 점 때문에 김민종이 가수활동을 쉬게 된 2000년대 이후 이 창법을 구사하는 대형신인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24] 2003년에 발매된 솔로 정규 8집이 현재까지 마지막 정규 앨범인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연기 커리어 역시 2003~2004년을 기점으로 톱배우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영화 나비, 영화, 낭만자객, 드라마 섬마을선생님 등이 줄줄이 아쉬운 결과를 ...[25] 여행사를 인수한 이유는 SM의 해외진출과 맞물려 해외 팬들을 상대로 한 여행상품을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26] 2003년 베니스 영화제 비평가 주간 초청작[27]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폐막작[28] 목소리[29] 정확히는 87년~88년 초까지 촬영, 1988년 개봉.[30] 당시 김민종은 고등학교 1학년이였고 박중훈은 대학생이였다.[31] 당시 이경영은 요즘의 영화 속 이미지와 달리, 젠틀맨 이미지의 대표 배우였고 여성 팬들에게 인기도 많았던 톱배우였다. 진행자가 아님에도 방송사고 상황을 괜찮게 수습한 이경영에 대한 평판만 올라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