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크라
1. 소개
대한민국의 4인조 걸그룹. 룰라의 이상민이 프로듀싱한 걸그룹으로 유명하다.[1] 2000년 2월 26일에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데뷔했으며, 3월 2일에 첫 앨범을 냈다.
팀명 '샤크라'의 뜻은 인도의 고대 의학 서적에 담긴 어원으로 '''성취, 매력, 창조, 평정''' 인간의 4가지 에너지를 말하는 '차크라(Chakra)'를 뜻한다. 차크라라고 읽는게 맞을 것 같지만 Soft Ch- 발음이라 샤크라가 맞다 (Chanel기 차넬이 아니라 샤넬인 것처럼).
정식 데뷔 이전에는 이상민의 프로젝트 그룹 브로스 소속으로 음악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으며, 브로스 소속 당시 멤버였던 홍보라[2] 와 이현주[3] 는 정식 데뷔 때 려원과 이은으로 교체되었다.
당시는 김현정으로 대표되는 여성 솔로가수의 전성기였으나, 아이돌계가 침체기에 들어갔던 2000년 초반에도 상당히 선방하면서 이름을 알린 걸그룹이다.
2. 상세
걸그룹 초창기 시대의 주역으로서 동시대에 같이 활동한 걸그룹으로 S.E.S., 핑클, 베이비복스, 디바, 쥬얼리 등이 있는데, 보통 S.E.S.와 핑클 그리고 베이비복스를 1군, 디바와 샤크라를 2군으로 인식했다.[4]
콘셉트는 상당히 신선했지만, 사운드 밸런스에서는 상당히 위태로웠던 그룹이었다. 그 당시엔 음악 방송 대부분이 립싱크였던지라, 외모만 된다면 길거리 캐스팅으로 일단 팀을 급하게 모아 두어 달 만에 급하게 데뷔시키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당시의 그룹들은 부족한 실력을 커버하기 위해 외모는 좀 부족해도 노래는 잘 하는 메인보컬을 한 명씩 끼워넣었는데[5] , 샤크라는 '''4명 전원을 비주얼만 보고 뽑는''' 위험한 선택을 했다.
은, 황보, 려원 셋 다 애초부터 연예계와 아무런 인연도 없던 일반인 소녀들이었는데 길거리 캐스팅으로 외모와 분위기만 보고 멤버로 발탁되었다.[6] 그나마 연예계 관련 경력이 있었던 이니는 '''무려 1997년도 미스코리아 미'''[7] 라는 압도적인 스펙을 갖추었기에 대놓고 비주얼 담당으로 뽑힌 티가 났다. 그런데 정닥 데뷔초에는 보이시한 컨셉으로 숏컷과 함께 독특한 화장을 해 외모적으로 황보, 려원에 밀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8]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이상민이 실력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인도 여자처럼 생겼다'''는 이유 하나로 캐스팅한 황보가 의외로 실력까지 준수해 리드보컬과 랩을 맡게 되었다. 가수로 믿을만한 멤버가 황보뿐이었다 보니 노래의 대부분을 황보가 부르고 은과 려원은 한두 소절 정도 넣는 리더 몰빵 파트 분배를 보여줬다.[9] 게다가 이니는 단지 미스코리아 美 출신이라는 우월한 스펙을 이용한 비주얼 담당일 뿐이었고, 보컬로서의 기능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10] 황보가 그룹의 메인보컬로서 타 그룹에 비해 압도적이라고 할 수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11] , 그 부분을 커버할 서브보컬도 없다보니... 그나마 이니가 나가고 보나가 들어온 뒤에는 좀 나아졌지만, 보나도 성량이 뛰어나질 못했기 때문에 떼창파트에 황보 목소리만 들리는 상황이 그룹 해체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상민의 노련한 차별화를 보여준 프로듀싱으로 인해 비교적 일찍 주목을 받으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다른 걸그룹들과는 다르게 인도풍의 이국적인 콘셉트로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12] 실력을 제쳐두고 콘셉트의 특이성만으로 따지자면 데뷔 당시의 2NE1 정도로 비교될 수 있는데,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그 이상으로 독특하고 이질적인 콘셉트였다고 볼 수 있다.
3. 활동
3.1. 2000년
당시 드물게 억대 비용이 들었던 '''<한 (Come A Come)>'''의 뮤직비디오.
같은 시대에 경쟁했던 걸그룹 라이벌들과 비교했을 때 누가 봐도 차별화된 확고한 콘셉트로 큰 주목을 받으면서 샤크라의 존재감을 확실히 인식시켰다. 여기에다 데뷔곡 <한>의 곡 퀄리티도 뛰어났기 때문에 가요 차트를 차례차례 정복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 해의 신인들 중에서 눈에 띄게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1군 걸그룹만 섭외된다는 여러가지 CF도 많이 찍었다.
그리고 무려 '''데뷔 65일차에 지상파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했다.''' 당시 걸그룹 3대천왕이라 불렸던 S.E.S. 핑클, 베이비복스의 기록을 모두 넘어서는 기간이다.[13] 음반 판매량도 16만 장으로, 베이비복스의 4집보다 많이 팔리며 신인으로서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14] 당시의 이들이 얼마나 단기간에 파급을 일으켰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여담으로 이 곡의 키가 굉장히 높으며 후렴 부분에서 수시로 3옥타브 솔을 찍어대고[15] , 후반부에서 1키 올라가서 전조되기 때문에 최고음은 무려 '''진성 3옥타브 라♭(!).''' 가성 최고음은 려원의 파트의 3옥타브 시다.
그 뒤 '한'의 인기를 이어 신나는 댄스 후속곡인 '''Hey U'''도 상위권에 올려놓았다. SBS 인기가요에선 차트 최고 4위, KBS 뮤직뱅크에선 3위까지 랭크되었다.
연말에는 캐롤 앨범 <Lonely Christmas>를 발표하면서 1집의 인기를 이어갔다. 반응이나 퀄리티도 꽤 괜찮았고, 겨울 시즌 이벤트성 깜짝 활동으로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봄에 데뷔해서 겨울까지 한해동안 연이어 왕성한 활동을 하며 히트치는 데 성공했고, 결과적으로 신인상까지 휩쓸면서 그야말로 완벽한 마무리를 했다.
3.2. 2001년
2001년, 2집의 타이틀곡인 아프리카풍의 댄스곡 <끝>을 발표했다. ‘SBS 인기가요’에서 4월 마지막주 1위를 차지했고, ‘뮤직뱅크’와 ‘생방송 음악캠프’에선 1위 후보까지 오를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SBS 인기가요’ 상반기 결산에도 출연하면서 그 인기를 이어갔다. 특히 황보의 랩 파트인 '''‘야끼! 야끼!’'''[16] 파트는 꽤 큰 인기를 끌었다. <끝> 이외에도 <아니야>, <주연은 너와 나> 등의 상당한 명곡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어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앨범이다. 참고로 MBC 음악방송에서는 타이틀곡 제목인 '끝'이라는 단어가 너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고 심의에서 반려되어 영어 제목인 'END'로 활동했다.[17]
이후 2집 후속곡이었던 <Oh My Boy>[18] 로도 중위권에 들면서 뮤비에 당시에는 인기있었던 방송인이나 지금은 범죄자로 전략한 강병규가 카메오로 출연할 정도로 대중적으로 선전했으나[19] , 당시 소속사 재정난이 있었는지 음악 방송에서의 샤크라의 의상 퀄리티도 무대를 오를수록 점점 떨어지는 등 예산 부족으로 추정되는 행보를 계속 보여줬다.[20] 이런 과정에서 2집 앨범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팀의 맏언니이자 리더였던 이니가 유학을 선언하고 팀에서 탈퇴했다.
여담으로 끝 뮤직비디오는 Nine Inch Nails의 The Perfect Drug 뮤직비디오를 대놓고 표절한 것이다. 다만 그 당시에는 국내에서 Nine Inch Nails가 그리 인지도 있는 뮤지션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혀 논란이 되지 않았다.
3.3. 2002년
2002년부터 황보로 리더가 교체되었으며, 새로운 메인보컬 멤버인 보나[21] 가 합류했다.[22]
이후 3집을 통해 <돌아와>[23] 를 발표했으나, 가창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발라드를 냈던 터라 결과는 참혹했다. 그래도 곡 자체는 호평을 받았고 가사 역시 이상민이 작사했다.
뮤직비디오도 해외 로케를 진행하긴 했으나, 퀄리티 자체가 조악하기 그지 없어 혹평을 받았다. 전체적인 콘셉트를 동남아쪽 베트남을 모티브로 잡아 무대 의상도 올블랙 드레스에 시뻘건 고추장 립을 하고 올랐으나, 반응이 좋지 않아 립스틱 색은 점점 연해졌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돈다고, 당시 트렌드에 맞지 않았을 뿐 현재는 강렬한 레드립이 유행인지라 최근 반응들은 이 때의 메이크업이 예쁘다는 평이 많다. 또한 1, 2집 활동 때는 립싱크만 했다면, 3집부터는 라이브도 시도했다.
3집의 후속곡으로는 수록곡 <다>라는 인도풍 댄스곡으로 아주 짧게 활동했다. <한 (Come A Come)>과 같은 인도풍의 곡이었으나, 곡과 무대 자체가 리즈 시절보다 못해서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다.
3.4. 2003년
2003년엔 4집 <TOMATO>의 타이틀곡 <난 너에게>[24] 로 활동했다. 4집에선 기존의 독특한 오리엔탈 컨셉트에 얽매여있다고 생각했는지, 이를 일절 배제해 친근하고 대중적인 모습으로 나왔었다[25] . <난 너에게>는 어느 정도 히트는 했다고 평가받았지만[26] , 이전의 히트곡들인 <한 (Come A Come)>, <끝 (End)> 때의 뜨거운 반응은 얻지 못하고 활동을 접었다. 또한 기존 멤버들의 계약 만료기간이 임박했던 것 때문에 후속곡 활동도 없었다.
샤크라는 1집 때 A&B 엔터테인먼트[27] 소속이였으며 이 회사가 원섬미디어, 천일기획과 합병한 뒤 사명을 Jam 엔터테인먼트로 바꾼 다음 3집 앨범까지 발표하고, 4집부터 키스엔터테인먼트라는 신생 기획사로 넘어가게 됐는데 이게 문제였다.[28] 이곳엔 DSP미디어와 계약이 종료되어 넘어온 비슷한 신세의 클릭비도 샤크라와 같이 넘어왔지만 클릭비도 계약 문제로 고생을 했을 정도로 체계가 안잡힌 회사였다[29] .
또 원섬미디어 소속이던 파파야 역시 활동 내내 그 회사에서 급여도 못받았다가 원섬미디어가 천일기획, A&B와 합병하며 소속사 사장이 두명인 상태가 되자 내부 분란이 생겨 결국 해체됐다고 밝힌적이 있어서 이 회사들과 연관된 스타들은 여러모로 고생을 많이 한듯하다.
3.5. 2004년
가장 먼저 팀을 이탈한 것은 려원. 연기자로서 전향하기 위해 활동을 위해 팀을 떠났다고 한다. 당시 4집 활동을 너무 뜬금없이 활동을 종료해 팬들 사이에서 ‘려원이 재계약을 하지 않고 연기자로 돌아서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많이 돌았다.
당시 려원이 4집 활동을 병행하며 시트콤 등지에서 개인 활동을 시작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엔 지금처럼 그룹 안에서 개인 활동을 허락치 않는 대중들의 암묵적인 룰이 있었고, 4집이 나올 쯤엔 그런 분위기가 점차 완화되는 시점이었다. 그 뒤 2010년에 ‘슈퍼스타 K 2’에 참여했던 멤버 보나가 “샤크라 해체 이유에 려원의 연기자 선언 때문에 그런 얘기가 많이 있던 것을 알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게다가 결과론적으로 따지면 개인을 위해 팀에서 잘 나온 셈.
이후 공식 해체가 되기까지의 약 1년여간, 남은 멤버들은 셋이서 정말 눈물의 활동을 이어가야 했다. 위에 서술했듯 이 키스엔터테인먼트는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줬는데[30] , 안타깝게도 려원을 제외한 3인의 멤버가 단기 재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앨범을 내고 어떻게든 활동을 시켜줘야 했는데, 회사 재정난의 문제로 앨범조차 내지 못했다. 보나가 후에 밝힌 바에 따르면 막바지 1~2년간은 정산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3.6. 2005년
[image]
2005년에는 섹시 컨셉으로[31] 당시 유행하던 모바일 화보를 촬영했는데, 콘텐츠 제공업체가 이걸 마치 성인용 누드화보처럼 홍보하는 바람에[32] 막대한 이미지 훼손을 겪었다. 오죽하면 2019년까지도 이때 샤크라가 누드화보를 찍은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고 본 항목에도 그렇게 적혀있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소속사는 제공업체에게 법적대응을 했으나, 해당 업체는 '관례적인 마케팅'이라고 응수했다.
악재가 겹치며 멤버들은 이때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고, 대중들은 이 3인조로 바뀐 샤크라의 행보에 대해서 거의 무관심이나 마찬가지였다. 후배 걸그룹들인 쥬얼리와 슈가가 뒤늦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면서 약진하고 있었고, 선배 & 동료 걸그룹은 해체하거나 일찌감치 대중의 관심에서 뒤쳐지는 등의 풍토 속에 있었다. 결국, 이들 역시 공식해체를 선언하면서 가요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33][34]
3.7. 해체 후
정려원이나 황보 등은 각자 배우, 가수, 예능인으로서 기존 인지도를 활용해 왕성한 개인 활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막내 이은 역시 잠시 연기자로 모습을 잠깐 보였다가 곧바로 연예계 은퇴 후 재벌가 며느리로 입성했다. 그러나 보나는 유일하게 키스엔터테인먼트에 남아 재계약을 하며 눈물의 행보를 이어갔다.
2008년에는 김상혁의 당시 소속사였던 아스틴 엔터테인먼트가[35] '샤크라 노바'라는 이름으로 2기 멤버를 뽑는다고 당시 유행하던 UCC 오디션을 개최했으나 흐지부지 되었다.
인기가 꽤 많았던 그룹인데다 <한 (Come A Come)>의 파급력이 꽤나 크다보니, 멤버들이 단골로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샤크라 재결합''' 질문이다.[36] 막내 이은은 “언니들이 한다면 한다”고 말했으나, 황보와 정려원은 “재결합은 없다”고 발언했다. 특히 황보는 여러 매체를 통해 “절대 없다”고 강하게 부정하는 등 어지간히 싫은 듯하다.[37][38]
S.E.S.부터 핑클, 베이비복스, 디바, 쥬얼리가 공식 혹은 비공식으로 재결합 무대를 보여준 것에 대조되어 안타까운 부분.
4. 멤버
다른 걸그룹에 비해 멤버들의 이력이 상당히 특색있다. 이니는 미스코리아 미 출신에다 키가 팀 내 최장신인 170cm이었고, 황보는 태권도 공인 3단이었다. 다들 비주얼로 길거리 캐스팅을 당해서 데뷔한 만큼, 비주얼적으로는 상당히 준수했다.
4.1. 이니
본명은 임선홍. 1997년도 미스코리아 미 출신인 만큼.상당한 미모를 자랑했으나, 데뷔 당시에 숏컷 스타일로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샤크라의 활동기간 동안 리더를 담당했으나, 유학을 가면서 너무 빨리 탈퇴를 하는 바람에 사실상 황보가 리더로 인정받았다. 탈퇴 이후로 사실상 연예계에서는 은퇴 하였으며, 2008년에 재미교포 사업가와 결혼을 하여 미국에 거주중. 이후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4.2. 황보
샤크라 멤버 중 사실상의 리더이자[39] 또 다른 비주얼 담당으로서[40]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 마디로 샤크라의 '''메인.''' 웨이트리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정말 인도인처럼 생긴 외모로''' 캐스팅되었다.[41] 샤크라가 해체할 때 크게 반대했을 만큼 애착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샤크라 활동 당시 멤버들에게 제대로 수입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황보는 리더라는 이유로 세금을 내야 했다고 한다[42] . 그룹 해체 이후 간간히 가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예능으로도 ‘무한걸스’를 주축으로 꽤 활발히 활동했으나 현재는 개인사업을 하느라 방송활동은 뜸한 상황. 간간히 본인의 SNS을 통해 근황을 알리고 있다.
4.3. 려원
샤크라 내에서 황보 보다 더욱 인기를 구사한 샤크라의 인기 멤버였다. 주로 본인의 활발한 성격과 귀엽고 예쁜 얼굴로 주목을 받았다. 팬덤도 탄탄한 편이라 음악 방송에서 팬들의 환호성을 가장 크게 받은 멤버. 강남 한 오락실에서 비니에 힙합바지 입고 DDR을 하다가 캐스팅 중인 이상민이 중성스러운 외모에 큰 영감을 받아 그 자리에서 캐스팅했다고 한다. 1집에선 가성을 난무하여[43] 고음 파트가 많았다가, 2집 이후로 진성으로 노래하면서 중저음 파트가 많아졌다. 샤크라 해체 이후 배우로 전향하여 가수 시절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4.4. 은
1984년 9월 30일생, 본명은 이경은[44] 이다. 샤크라 활동 당시 가장 비중이 적은 멤버였다. 샤크라에서 가장 막내.
샤크라 해체 후 2006년 01월, 에릭, 한지민, 엄태웅 주연으로 방영했던 '늑대'라는 드라마에 주역으로 출연하며 복귀를 알렸다. 그러나 드라마 촬영 도중 에릭과 한지민의 부상으로 제작이 중단되었고,[45] 결국 드라마는 3화 정도를 방영한 상태에서 드라마가 엎어졌다. '늑대' 제작진은 주연 배우들의 상태에 따라 촬영 재개를 하려 했으나 결국 무산된 것.
이후 결혼과 동시에 사실상 은퇴했다. 슬하에는 딸만 3명을 낳았다. 젝스키스의 장수원이 다리를 놔 주었다고 하며, 남편은 골프 선수 권용으로 아일랜드 리조트 그룹 권오영 회장의 아들이다. 결혼 후 SBS의 육아 예능 '오 마이 베이비'에 오랜만에 얼굴을 비추었으나, 이내 하차했다. 2016년 말에 이혼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4.5. 보나
1982년 6월 11일생, 본명은 최현정. 2002년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이니 대신 들어온 신입 멤버. 보컬라인이 약했던 샤크라에게 보탬이 되어 파트를 이끌어갔던 메인보컬이다.[46] 위에 서술했던 이상민이 발탁한 멤버가 아닌 새로 바뀐 소속사에서 오디션 봐서 들어온 멤버.
샤크라의 다른 멤버들이 계약기간이 끝나 재계약을 하지 않고 개인 활동의 활로를 찾아 나갔지만, 혼자만 키스엔터테인먼트[47] 와 재계약을 하고 솔로데뷔를 준비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허송세월만 보내다 소속사를 이적했으나 또다시 엎어지는 등 혼자서 소속사만 3곳을 옮겨다녀야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인터뷰. 이후 회사에서 탈출해 2010년, '슈퍼스타 K 2' 오디션에 참여해 화제가 되었다.[48]
2012년과 2013년에 각각 발라드 싱글 한 장씩을 발표했고, 그렇게 다시 오랜 공백을 보내나 싶더니 2018년 3월에는 트로트 가수가 되어 돌아왔다. 중국 등지에서 간간이 활동을 해왔다고 하는데 외모가 많이 달라졌다. 이질감이 약간 있지만 데뷔 이후로 가장 어려보이고 예쁜 얼굴로 정착한 듯.
5. 음반
5.1. 정규 1집 《Chakra》
[image]
6. 수상 경력
6.1. 시상식
6.2. 가요 프로그램 1위
[1] 그룹 이름은 이혜영이 지었다고 한다.[2] 브로스 앨범 자켓에는 있으나, 준비도중 하차했는지 무대에는 이니, 황보, 줄리(이현주) 세 멤버만 활동.[3] 예명 '줄리'였으며, 엠넷, KMTV 등지에서 이미 VJ로 활동했다. 려원과 같은 해외파 멤버였으나, 데뷔 직전에 탈퇴한 멤버. 줄리의 포지션을 려원이 그대로 가져갔다. 현재는 반포동에서 공방을 열며 뜨개질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4] 그도 그럴 것이, 그 수많은 걸그룹 중 지상파 음악 방송 1위를 했던 그룹은 '''이 5팀밖에 없었다.''' 추후 세대가 바뀌며 1.5세대격으로 쥬얼리가 1위를 수상하며 2세대 걸그룹과의 간극을 이었지만, 샤크라와 쥬얼리는 불과 데뷔 시기가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샤크라는 데뷔하자마자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쥬얼리는 3,4집이 전성기였기 때문에 1.5세대로 분류되고 있다.[5] 대표적 케이스가 핑클의 옥주현, god의 김태우다.[6] 황보는 레스토랑에서 서빙 알바를, 려원은 압구정 오락실에서 DDR 게임을 하다가, 막내 은 역시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먹다가 캐스팅 됐다.[7] 지금이야 어지간히 예쁜 여자들이 죄다 배우나 걸그룹으로 몰려간 상태라서 미스코리아가 그저 그런 대회로 전락했지만, 1999년 이전의 미스코리아 대회는 진짜로 '''대한민국 최고의 미인'''을 선발하는 대회였다. 당시 미스코리아에서 입상했다고 하면, 확실히 미모는 보장되는 분위기였다.[8] 그렇다고 려원과 황보가 외모가 떨어지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특히 황보는 서구적인 이목구비에 개성을 갖춘 미인상으로, 샤크라의 콘셉트의 확실히 부합하는 외모였다. 애초에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하기도 했으니...[9] <한 (Come A Come)>에서의 은은 뭔가 읊조리는 내레이션과 보컬 중간의 묘한(...) 파트를 담당했고, 려원은 아예 거의 모든 파트를 가성으로 불렀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곡 <한>에서 고음 파트를 맡기도 했다. 문제는 이니가 라이브 무대를 선 적이 없어서 실제로도 그 파트가 소화 가능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11] 동시기에 활동한 걸그룹 메인보컬들이 바다, 옥주현, 간미연, 채리나 등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전설의 라인업이다.[12] 애초에 '샤크라'라는 이름부터가 차크라를 다르게 읽은 것으로, 영문 스펠링도 그대로 썼다. 무대 또한 인도, 이집트, 아프리카, 아메리칸 원주민 등 이국적인 콘셉트의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다. 당장 아래 영상만 봐도 1분 27초쯤에 머리에 인도풍 왕관(...)까지 쓴 것을 볼 수 있다.[13] S.E.S.는 86일, 핑클은 127일, 베이비복스는 761일이 걸렸다. 이 기록은 이후 2, 3세대 걸그룹을 모두 다 합쳐도 miss A 22일, 2NE1, BLACKPINK 13일 , 씨야, ITZY (11일)뿐일 정도로 흔치 않은 기록이다. 이 중에선 ITZY가 최단기간 데뷔 1위며 어떤 걸그룹도 현재까지 깨지 못하는 타이 기록이다.[14] 이 해 걸그룹중에는 핑클의 3집이 가장 높은 판매량이었다.[15] 소찬휘 <Tears>와 같은 음이다.[16] ‘이야기’를 세게 발음한 것이다.[17] 같은 일례로 베이비복스의 7집 타이틀곡 'Xcstasy'가 마약류 이름과 같아 SBS에서 심의 불가되어 '환상'이라는 제목으로 변경해 활동하기도 했다.[18] 95년 데뷔한 혼성그룹 '루키' 출신의 신상근이 작곡했다. 팀 해체 후 이상만 사단의 작곡가로 활동.[19] 룰라의 곡을 다수 맡았던 신상근과 이상민이 만든 곡이다. 황보 파트에 이상민 목소리를, 려원 파트에 채리나 목소리를 넣으면 그대로 룰라 곡이 될 정도로 이상민의 색이 강한 레게풍 댄스곡. 실제 모 방송에서 룰라의 채리나는 이상민을 향해 '우리가 녹음했던 노래중에 샤크라한테 넘어간거 있지 않나'란 말을 해 이 곡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었다.[20] 연말 시상식 무대에도 올랐으나, 정말 무성의함과 저예산의 심각함을 느낄 수 있다.[21] 소속사가 주관한 오디션으로 합격했다.[22] 2018년 모 유튜버 방송에 나와 밝혔는데 당시 이니 탈퇴 후 3인조로 가기로 멤버끼리 합의가 됐었는데 소속사측에서 멤버들에게 고지 없이 자신을 합류 시켜 기존 3인의 멤버는 자신에게 무관심했고 어색함이 감돌았다고 했다. 하지만 점차 활동하며 서로 마음을 열었고 4집부터는 친해져 의기투합 해보려던 찰나... 라고...영상은 아래 '보나' 카테고리에 링크.[23] 맨 마지막의 “그대만큼 나도 슬퍼요. 하지만...” 내레이션은 배우 권상우가 담당했다.[24] 과거 안성준 사장이 작곡해 피아노 3집 앨범에 올린 <체념>을 리메이크했다.[25] 다만 '이미지 변신'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1집시절부터 샤크라는 꾸준히 '컨셉이 강한 곡' + '발랄한 댄스곡' 두가지 조합으로 나왔다. 예를들어 인도풍인 '한'의 후속곡으로 'Hey you'를 내놓는 식. '난 너에게' 또한 'Hey you'나 'Oh my boy'같은 곡들의 연장선에 있다.[26] 3집보다는 확실히 나은 성적이며, 당시 유일하게 지상파 차트제를 운영했던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10위권 내에 들 정도로 선전했다.[27] 샤크라의 소속사 사장이 이상민으로 알려져있는데 그것은 아니고 이상민이 대표 프로듀서이자 룰라 시절 스탭들을 모아 만든 회사가 A&B엔터였고 대표 역시 룰라 매니저 출신이 대표 이사였다.[28] 3인조 보컬 그룹 '피아노'의 메인보컬로 활동하던 안성준이 세운 기획사.[29] 황보가 무한걸스 '예능의 여왕'특집에서 '샤크라 시절 회사를 옮기고 나서 정산은 못 받았는데 리더라고 세금폭탄을 맞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팬들은 그게 이 시기였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보나 역시 샤크라 막바지 1~2년간 정산을 못 받았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30] 2005년 클릭비 해체 당시 김태형의 법률대리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2004년 9월부터 약 1년 간 개런티를 받지 못했고, 그 결과 모 멤버는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는 지경이었다고 한다. 클릭비가 저 정도였으니 샤크라가 어떤 사정이었을 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러나 사장이라는 작자는 당시 한나라당에 입당, 국회의원 보선에 공천을 신청하고, 당시만 해도 이명박의 심복으로 통했던 정두언을 4집 앨범 가수로 만들어주는 등 정치놀음에 여념이 없었다.[31] 컨셉이 섹시했을 뿐이고, 일반적인 잡지화보 정도 수준이다.[32] 모바일 인터넷 시장이 태동하던 2000년대 중순에는 이러한 여자 연예인의 누드화보 열풍이 일었었다. 비슷한 시기 클레오도 소속사의 누드화보 제안 때문에 큰 내홍을 겪었다.[33] 정확히는 2005년에 막내 은마저도 탈퇴를 선언하게 되면서 샤크라는 황보, 보나 2명만 남게 되었고, 2006년에 황보까지 탈퇴하게 되면서 해체되었다.[34] 공교롭게도 베이비복스 역시 2004년에 심은진이, 2005년에 윤은혜까지 탈퇴하게 되면서 베이비복스도 김이지, 이희진, 간미연 3명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06년에 김이지, 간미연도 탈퇴하게 되면서 샤크라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35] 키스엔터는 샤크라 해체 직전인 2005년 미국 롭슨사에 인수되어 '롭슨 코리아'로 사명을 변경했다. 샤크라라는 상표권만 넘어간 듯.[36] 특히 ‘무한도전’에서의 토토가 이후 이런 질문이 많았다.[37] 사실 그럴 만도 한 게, 샤크라가 1위까지 했던 인기 걸그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멤버들은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본인 이름으로 된 통장이 있었으나 회사가 가지고 있었고, 그 회사가 사기를 치면서 세금이 수 천만원까지 나와 오랫동안 빚을 지고 살았다고 한다. 또 그 뒤로 수천만원을 황보가 리더라는 이유로 혼자 몇억을 10년 동안 갚았다고 한다. 다만 샤크라라는 그룹이나 황보 개인이나 워낙 거쳐간 소속사가 많아 어느 회사가 문제를 만든 건지는 불명확. 다만 보나의 인터뷰로 미루어 보면 키스엔터테인먼트 시기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38] 이때 소속사 사장이 이상민이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상민은 사장이 아니라 프로듀서였다. 황보도 딱히 이상민에게 나쁜 감정은 없는지 아는형님에 같이 출연하기도 했었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 CEO는 빚이 좀 있어야 한다며 위로해주었다고 언급하는 등 사적으로 잘 교류하고 지내는 듯. 려원도 미우새에 출연해서 예전 상민오빠보다 지금이 훨씬 멋지다며 응원한 바 있다.[39] 이니가 있을 때는 이니가 리더였고 황보가 부(副)리더였으나, 이니가 탈퇴한 후 정식 리더를 승계했다.[40] 객관적으로 외모는 이니가 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샤크라라는 그룹의 콘셉트에 어울리는 외모를 꼽자면 단연 황보였다. 2NE1이나 miss A 같은 그룹에서 비주얼 멤버가 따로 있음에도, 무대 위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더 주목을 받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황보 또한 상당한 미인이었으니...[41] 캐스팅 당시의 이상민이 “이제 됐다. 다른 애들은 덜 인도스러워도 돼.”(...)라며 감탄했다고 한다.[42] 멤버였던 보나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황보가 이 일을 당한 건 키스 엔터테인먼트 시기로 추정된다.[43] 이 때문에 속칭 ''''귀신 목소리''''라는 별명도 붙었다(...).[44] 여담이지만, 하리수와 본명이 같다. 물론 개명 후 이름이지만.[45] 밤 촬영 중 자동차에 치였고, 두 배우는 병원에 입원하는 등 시끌시끌했다.[46] 샤크라 2집까지만 해도 보컬라인이 약한게 황보 혼자 메인보컬이였고, 그나마 분량이 많았던 려원이 사실상 리드보컬 역할을 할 정도였다.[47] 샤크라의 3집과 4집 을 제작한 회사. 이상민과는 관계가 없는 회사다.[48] 방송 당시 황보가 보나의 가수에 대한 열정에 안타까워하며 SNS로 응원을 하기도. 다만 방송 후에는 연락이 닿지 않는 듯하다.[49] 2019년 드림캐쳐의 리메이크 버전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