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
1. 개요
유대교에서 율법학자 또는 존경받는 선생을 일컫는 말. 히브리어 단어인 'רב(raḇ)'와 소유격 접미사 '־י(-ī)'가 더해진 표현으로 "나의 스승님", "나의 주인님"을 뜻한다. 유대교에서 보통 종교학자, 혹은 율법학자를 부르는 존칭으로 사용된다. 용어 자체는 1세기 때부터 보편화되었다. 즉, 영어의 "마스터/티처" 또는 한국어의 "선생님"과 비슷한 위치의 단어이다. 실제로 랍비를 선생님이라고 번역하는 사례도 여럿 보이는 편.
2. 상세
보통 랍비가 유대교의 성직자라 생각하지만 아니다.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이래 유대교의 성직자는 사실상 사라졌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역사 문단 참고.
랍비라는 개념은 성직자와는 크게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유대교의 경전인 토라에서 가르치는 율법의 생활양식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지도하는 선생과 조언자 역할을 한다. 아울러 유대인들은 코셔 푸드만 먹을 수 있으므로 이를 준비하고 요리하는 역할도 맡고있다. 즉 유대인들의 생활규범을 가르치고 지도하며, 상담을 맡는 생활담당 지도교사겸 상담자라고 보면 되겠다. 그래서 다른 본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랍비 일은 일종의 자원봉사 형태로 하는 랍비도 많다. 성직자보다는 오히려 이슬람교 수니파의 이맘과 비슷하다고 볼수 있겠다.
랍비란 유대교에 정통한 현명한 어르신이라 이해하면 된다. 유대교는 자손을 남기는 것을 중시해, 랍비는 결혼을 해야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
유대인들의 탈무드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사람들도 이들이라서인지 지혜로운 역할로 자주 등장한다. 아버지와 동급 혹은 이상으로 취급받는다.
복음서에서 예수도 라삐라 칭해지지만, 이 경우는 그냥 별생각 없이 통용되던 관용어였다.
마르코 복음서에는 라삐라는 호칭이 '선생님' 혹은 '스승님'이라는 호칭 대신 모두 네 번 사용된다(마르 9,5; 10,51; 11,21; 14,45). 하지만 이런 사실만으로는 이 호칭이 예수의 가르침과 특별한 관련이 있다고 싸잡아 말할 수는 없다. ... 전체적으로 보이 예수를 '선생님'(스승님) 혹은 '라삐'라 부른 것을 근거로 그분께서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하신 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당시 '별생각 없이 통용되던 관용어'[3]
였다.
-루돌프 슈낙켄부르크(Rudolf Schnackenburg),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김병학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8), 55쪽.
당시에는 아직 랍비라는 호칭이 서품된 율사에 대한 존칭이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한정된 사용은 1세기 말경에 비로소 관행이 되었고, 따라서 랍비라는 호칭에서 예수가 한때 어느 랍비 문하에 입학한 일이 있었다는 결론마저 끌어내어서는 안된다.[4]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나자렛 예수》, 정한교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2), 223쪽
3. 역사
유대교의 사제는 이스라엘 12지파 중 하나인 '레위 지파', 나중에는 레위 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직계의 사람만이 될 수 있었다. 유대교의 모든 제사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쳐야 하는데, 서기 70년경에 로마 제국이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면서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다. 당연히 동물 희생제사 같은 제사 율법들도 드릴 수가 없게 되면서 유대인들에게 이 예식은 자연스레 사문화되어 버렸고, 현재 극소수로 남아있는 사마리아인들이 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결국 이 일로 기존의 성전 중심의 유대교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고 큰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먼저 성전이 파괴되면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제사장들과 성직자단이 저절로 해체되었고, 자연스레 사두가이파와 로마에 대항한 젤로트당 등의 세력은 몰락했다. 바리사이파는 유대교의 명실상부한 주류가 되었고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상태에서 토라(율법)[5] 공부가 제사를 대신한다고 명망 있는 랍비가 해설한 이래, '''랍비와 토라 공부장소(예쉬바), 토라 낭독, 시나고그를 중심으로 한 랍비 유대교가 수립되었고, 현대까지 발전해 이어지고 있다.''' 당연히 일개 학자들이던 랍비들의 권위도 성직자들의 지위를 흡수하고 유대인들의 종교적, 사회적 지도자의 위치로 부상해 엄청나게 신장되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방식의 유대교는 이전의 성전 의식 중심의 정통(orthodox) 유대교와 구분하여 '랍비 유대교'라고 불리게 된다. 즉, 랍비 유대교는 나라를 빼았기며 유대교의 중심점이 되었던 종교 의식들을 하기 어렵게 되자 발달하게 된 대체재인 셈.
토라 공부와 시나고그 중심의 랍비 유대교가 확립된 후에도 하레디와 하시딤 등의 극정통파, 개혁파, 진보파, 보수파, 신정통파, 카라이트 등 여러 분파로 나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카라이트는 토라의 권위만을 인정하는 소수종파로, 서기 70년 이전 사두가이파와 달리 사후세계를 인정한다는 점과 다른 유대교파와 달리 '''육류와 유제품을 같이 먹어도 되는 등'''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유대교 교파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현대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아론의 후손을 자처하는 유대인들이 다시 성전이 복구되리라 믿고 과거 유대교의 사제들이 행하던 종교의례를 복원하려 하고 있다. 더 과격한 사람들도 있는데, 예루살렘의 성전산에 지어져 있는 이슬람의 알 아크사 모스크를 파괴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여 다시 고대 유대교의 전통 성직자단을 복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오니즘적 민족주의와 결부된 주장을 하는 이들도 많다. 몇몇 유대인들은 실제로 폭탄을 몰래 설치하여 모스크를 부수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성전산은 무함마드가 대천사 가브리엘의 안내를 받아 신을 만나고 올 때 승천하였다고 믿어지는 장소이며, 알 아크사 모스크는 우마이야 왕조 칼리파인 아브드 알 말리크가 지은 것으로,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이다. 만약 정말로 알 아크사 모스크를 파괴한다면 이스라엘은 문자 그대로 전 세계 무슬림들과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다. 아무리 친미 국가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정부는 모스크 파괴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4. 기타
탈무드에서는 랍비가 주역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대개 행동 양식이 몇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이야기마다 그 역할은 대동소이한데, 대부분이 뭔가 모자라거나 어리석은 권력자나 일반인의 뒤통수를 지혜나 블랙 유머로 시원하게 후려치는 형식이다.
- 늙고 못생겼지만 지혜로운 랍비가 어느날 왕실의 초대를 받아 여왕이 기거하는 궁전에 찾아갔는데, 여왕은 그의 외모를 보고 그를 저평가하며 비웃었다. 그러나 랍비는 여왕에게 "포도주가 맛이 좋은데 어디에 담아서 보관합니까?"라고 물을 뿐이었다. 여왕은 "토기에 담아서 토굴의 암실에 저장한다"고 대답했는데, 이에 랍비는 "왕실의 권위를 살리려면 포도주를 금동이에 담아 양지에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휘황찬란한 왕실에 토기와 토굴 암실이라니, 격이 떨어집니다그려."라고 따졌다. 여왕은 이것이 일리있는 말이라 여겨서 그대로 시행했지만, 양지에 내놓은 포도주는 식초만도 못하게 변질되고 말았다. 여기에 숨구멍이 막힌 금동이까지 겹쳐져서 그대로 썩어가기까지 했다. 여왕은 랍비를 잡아와 화를 냈지만, 랍비는 순순히 끌려와서는 차분히 대답했다. "그래서, 양지에 내놓은 금동이 포도주는 맛이 좋았습니까? 폐하께서 날 비웃은 것도 내가 금동이에 담긴 것이 아니라 토기에 담겼기에 그러신 것입니다." 여왕은 이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잘못을 반성했다.
- 한 청년이 두 친구에게 각각 150달란트, 200달란트를 꿨는데, 두 친구가 다 200달란트를 꾸었다고 주장. 청년은 랍비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각각 방법이 제시되는데...
>1. 두 친구에게 각각 150달란트를 갚고 200달란트를 꾼 친구가 누군지 후에 찾으면 그때 50달란트를 마저 갚는다.
>2. 누군지 찾을 때까지 아예 두 사람한테 무기한으로 대출을 연장한다.
1은 그렇게 하면 150달란트를 꿔 준 거짓말쟁이는 손해 볼 것이 없고 진짜 200달란트를 꿔 준 친구만 손해를 보게 되는 방법이고, 2는 둘 다 손해를 보고 마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랍비들은 의논 끝에 방법을 제시한다. 청년은 두 친구에게 찾아가 "누가 진짜 200달란트를 꿔 준 사람인지 찾을 때까지 돈을 갚지 않기로 했고, 만약 찾지 못하면 그 대출금은 모두 랍비님들이 갖기로 했다."라는 말도 안 되는 소식을 전한다.
그 후 한 친구가 청년에게 찾아와 자신이 150달란트를 꿔 줬다며 돈을 돌려달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랍비들의 노림수였다. '50달란트 이득보려다가 150달란트를 잃어버리느니 차라리 원금이라도 찾자'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 자수하게 하는 방법이었던 것.
>2. 누군지 찾을 때까지 아예 두 사람한테 무기한으로 대출을 연장한다.
1은 그렇게 하면 150달란트를 꿔 준 거짓말쟁이는 손해 볼 것이 없고 진짜 200달란트를 꿔 준 친구만 손해를 보게 되는 방법이고, 2는 둘 다 손해를 보고 마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랍비들은 의논 끝에 방법을 제시한다. 청년은 두 친구에게 찾아가 "누가 진짜 200달란트를 꿔 준 사람인지 찾을 때까지 돈을 갚지 않기로 했고, 만약 찾지 못하면 그 대출금은 모두 랍비님들이 갖기로 했다."라는 말도 안 되는 소식을 전한다.
그 후 한 친구가 청년에게 찾아와 자신이 150달란트를 꿔 줬다며 돈을 돌려달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랍비들의 노림수였다. '50달란트 이득보려다가 150달란트를 잃어버리느니 차라리 원금이라도 찾자'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 자수하게 하는 방법이었던 것.
- 어떤 마을에 허풍과 과장을 굉장히 밥먹듯이 하여 거짓 소문 등으로 마을을 시끄럽게 만드는 여자가 있었다. 참다 못한 마을 주민들이 랍비에게 몰려가 하소연을 하자 랍비는 그 여자를 직접 찾아가 "왜 이웃에 대해 없는 일과 거짓말을 하여 소동을 일으키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여자는 "난 그저 사람들 말에 조금 더 보태서 얘기한 것 뿐이다."라며 태연자약했다. 그러자 랍비는 자루를 하나 내주고는 "시장에 나가서 이 안에 있는 것을 꺼내 놓고, 1시간 후에 그것을 다시 자루에 담아 가져오시오"라고 지시한다. 여자는 자루를 들고 시장으로 나가 자루를 풀었는데, 그 안에 있던 것은 바로 새 깃털이었다. 1시간이 지나자 깃털들은 당연히 바람에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간데없고, 남은 것은 한 가닥 뿐이었다. 여자는 하는 수 없이 빈 자루와 깃털 한 가닥을 들고 돌아와서 "다 멀리 날아가버려서 주워올 수가 없었다"고 랍비에게 투덜댄다. 그러자 랍비는 "그 깃털이 바로 당신의 말(言)입니다. 말이란 아주 가벼워서, 한번 밖으로 나오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고, 날아가버려 다시 주워담을 수 없게 됩니다. 진실한 말이든, 당신이 생각없이 더 보탠 근거없는 말이든 똑같이. 그리고 그렇게 흩어진 말은 결국 누군가가 피해를 입게 만든답니다."라고 여자를 훈계했고, 그 여자는 이후로 말을 굉장히 신중히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1]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겹자음을 발음하지 않으므로 '라비'(/ˈˈʁäbi/)에 가깝게 발음한다.[2] '래바이'(/ˈɹæ.baɪ/)라고 읽는다.[3] (책 속 주석)F. HAHN, ''Christologische Hoheitstitel: Ihre Geschichte im Frühen Christentum'', FRLANT 83 (Göttingen 1963$${/}^{4}$$1974) 77.[4] (책 속 주석)한 랍비계 전승에 따르면 예수는 여호수아 벤 페라햐의 제자였다고 하는데, 전혀 근거가 없다. 이미 年代상 이유로도 지탱될 수 없다. 예수를 얀나이 왕 때로 옮겨놓기 때문이다. 이 전승에 관한 비판은 이미 Klausner, ''Jesus'' 25-9에도 나온다. 요한 7,15에 따르면 유다인들은 예수가 공부한 적이 없다는 비난을 한다.[5] '토라'라는 단어는 본래 모세오경을 가리켰으나, 후기 유대교에서는 오경에 대한 랍비들의 해석까지도 토라로 불렸기 때문에 단어의 의미가 넓어져 그저 '가르침'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한국어 성경에서는 '율법'이라 번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