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니즘
1. 개요
'''Zionism'''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조상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던 민족주의 운동으로,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됨으로써 실현되었다. 시온(Zion)이란 원래 예루살렘 시가지 내의 언덕 이름으로 예루살렘, 또는 이스라엘인의 땅을 의미한다.[1]
시온주의, 시오니즘이라는 단어 자체는 1893년 빈의 유대인 대학생 지도자 나탄 비른바움에 의해 만들어졌다.
2. 역사
2.1. 태동
19세기 민족주의 열풍이 불면서 시오니즘도 유대인 사회에서 새로운 근대적 의미를 갖게되고 드레퓌스 사건에 깃들어있는 반유대주의의 뿌리깊은 앙금을 목격한 유대계 오스트리아 기자 테오도르 헤르츨의 제창에 의해 국제 시오니즘 협회가 창설되고 당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토였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의 이주를 원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시오니즘의 제창자인 테오도르 헤르츨. 1897년 제1차 시오니스트 총회가 열린 스위스 바젤에서 찍은 사진이다.[2]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제국, 폴란드 일대의 중부 유럽에 뿌리를 깊게 내린 유대인 좌파 노조들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착취와 제국주의적 폭압에 병든 유럽을 버리고 유대인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신천지를 개척하자'라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퍼지기 시작했고 러시아 제국의 반유대주의 폭동이 심각해지면서 동유럽 유대인들의 경우,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대규모 민족 이동이 시작되었다.[3] 이런 동유럽 유대인들의 대다수가 팔레스타인에 고향을 찾자는 시온주의에 동조하여 팔레스타인 이민을 결정했다. 여기에 하심 가문은 아랍의 근대화에 유럽 출신의 유대인들이 대거 이민오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 트란스요르단 지역에 유대인의 이민을 적극 지원하며 시오니즘 지지를 천명했다.
수십 년의 이민의 결과, 1920년경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이민자 사회가 팔레스타인에 형성되어 현지 아랍인들, 영국 식민 당국과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당시 유대인 정치 집단 중 조직화와 이데올로기적 무장이 가장 철저 했던 집단은 중부 유럽의 유대인 분트(Bund), 각지 사회당-공산당의 유대인 조직 등 사회주의에 깊게 심취한 좌파였고,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시오니즘 또한 원래는 좌파의 이데올로기로 시작했다. 모세스 헤스, 나흐만 쉬르킨, 베르 보로초프 등 시온주의의 초기 이론가들은 또한 동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자들이기도 했으며, 베를 카츠넬슨, 다비드 벤구리온, 골다 메이어 등의 많은 이스라엘 초기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들 또한 평생 뿌리 깊은 사회주의적 신념을 품고 살았다.
시오니스트들 중에서 좌파 시오니스트들의 경우, 이스라엘 건국 이후 막장 민족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쓴 글들만 하더라도 순진한 건지, 이상이 지나친 건지 수 천년만에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가 떡!하고 떨어지면 현지 아랍인들과 대립과 반목은 커녕, 똑같이 서구 제국주의자들에게 억압받는 피착취계급 처지로서 서로 서로 손 잡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평등한 이웃으로 존중하며 오순도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 희망이 넘친다.[4] 이러한 믿음 또한 이들이 결코 전통적인 종교적 관점에서 [5] 단순히 '우리민족끼리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땅을 차지해야겠다!' 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나름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벨 에포크의 낙관적 계몽주의에 기반하여 시오니즘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현실의 벽과 맞닥뜨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게 나름 호소력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환빠에게 굳이 정치적 정체성을 부여하자면 전형적인 팽창주의적 민족주의 극우에 속하는 반면 시오니즘은 역사적 관점에서 동급으로 취급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하는 관점은 기본적으로 너무 머리가 꽃밭에서 노닐고 있던 이상주의자들의 주장이고 대다수 시오니스트들은 기본적으로 아랍인을 부려먹기 딱 좋은 미개인 취급했다. 시오니스트들이 사민정책을 열심히 펼쳐서 아랍인을 팔레스타인에서 축출하자는 주장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들은 기본적으로 아랍인은 정치적으로 아무런 각성도 없는 미개민족에 불과하니까 옆에 두어서 잘 부려먹자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19세기 말부터 아랍 민족주의가 각성하고 조직적인 민족주의 단체들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대놓고 공존을 부정하고 자신들을 미개 민족으로 보는 집단이 속속 정착하는 것에 대해 아랍인들이 곱게 볼 리가 없었다. 반면 아하드 하암와 같은 일부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절대 공존을 천명하며 아랍인을 극도로 존중해서 아랍인들의 인정을 받아야 유대 국가가 팔레스타인에 건설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소수였던 그들의 목소리는 작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초기 시오니스트들이 아랍인에 대한 시각은 제각각이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좌파민족주의적이고 친노동적인 성향이 강했으나, 나치 홀로코스트와 이스라엘 건국, 그로 인한 전쟁 등을 통해 점차 우경화되었고 신보수주의가 세계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에는 아얘 대놓고 이스라엘 내에서도 우파들이 주도권을 쥐게 되어 21세기 와서는 사실상 진보적 색채조차 찾아보기 힘든 우파-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다른 주류 이데올로기와 비교해봐도 시오니즘은 보수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된 셈이다.[6]
2.2. 충돌의 시작
시오니스트들이 유대인 국가를 세우려고 하는데 문제는 팔레스타인지역은 몇 백만 명 아랍인[7] 들이 오랫동안 살아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대 이민의 초기에는 유혈충돌이 없었고 상술한 것처럼 오히려 아랍 엘리트들은 시오니즘을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의 유대인 학살을 비롯해서 유럽에 팽배한 반유대주의로 인하여 하루빨리 유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강박증과 더불어 아랍인을 존중할 필요없는 미개인 취급하는 시오니스트들의 관점은 아랍인들과의 충돌을 빚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 팔레스타인으로의 유대인 이민은 더욱 가속화되었는데 유대인의 수가 급증하고 여기저기서 건설되는 유대인 공동체가 아랍인에게 2등 시민의 지위를 강요하자 강성해지고 있던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시오니즘에 큰 반감을 품게 되었다. 이 때문에 192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유대인을 상대로 한 폭동, 테러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아민 알 후세이니가 주도한 예루살렘 폭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영국 당국은 소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애초에 원인을 제공한게 얘들인 건 둘째치고 이미 식민당국의 개입 정도로 소요가 진정되기에는 민족감정의 골이 깊어진 후였다.
여기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더더욱 시오니즘에 집착하게 되었으며, 서유럽 여러 나라들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방관했다는 빚과 민족자결주의, 격화되는 식민지의 독립 민족국가 수립요구 등으로, 또 소련의 경우에는 서유럽의 영향력이 막강한[8] 아랍지역에 공산국가[9] 를 하나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 등등 각각의 계산에 따라 유대인 국가가 성립하는 것을 찬성했다.
1948년 UN의 분리독립안에 따라 이스라엘의 건국이 선포됨과 동시에 주변 아랍국가들은 일제히 이스라엘에 선전포고 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는데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아랍계 팔레스타인인들이 추방되고 주변 아랍국가에서는 유대인들이 추방되면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결론적으로는 그 사상은 팔레스타인 고통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10]
전쟁 이전부터 약 1년간 무기 금수 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 영국령 팔레스타인 식민지 내에는 소화기 이상의 무기는 없는 상태로 주변 아랍국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아랍계가 유리했지만 유대계는 2차대전 중 영국이 에르빈 롬멜을 상대하기 위해 예비로 모병해둔 부대 출신자와 유럽 각국에서 군경력을 쌓은 전역자들이 있어서 조직력 면에서는 우수했다.
1차 중동전이 시작되면서 신생 이스라엘은 미리 수입해둔 공작기계로 간단한 무기를 생산하는 한편, 유럽과 미국 등지에 특사를 파견해 기부금을 모았고[11] 그 돈으로 2차대전 이후 처리에 고심하고 있던 구형 무기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해 전쟁 초기에는 기갑 차량이나 공군력이 거의 전무하던 상황에서 후기에는 체코에서 전투기 등을 수입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력 격차를 메꾸는 데 성공했다.[12]
결국 아랍계는 우세한 무기와 전력체계[13] 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의 이권다툼[14] 때문에 참패하고 말았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떡실신되고 결국 이집트와 요르단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15][16] 더이상 반 이스라엘 정책을 펴지 않는다. 시리아는 아직도 적대관계이나 전략적 요충지인 골란 고원을 빼앗기고 그저 바라만 보고있는 수밖에 없다. 아니 시리아 같은 경우는 서로 국경에서 포격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리아로선 이대로 평화적으로 대충 놔두는 분위기(물론 골란 고원은 포기 안 하지만)였는데 아사드 대통령의 독재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서 발생한 시리아 내전으로 더 엉망이 되면서 이스라엘에선 독재자 아사드 일가가 무너질 경우 호스니 무바라크 실각 직후의 이집트 꼴이 나지 않을까 우려 중이다. 나중에는 어쨌거나 팔레스타인의 고통과 그들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담 후세인 시절에는 요르단을 사이에 두고 이라크와 이스라엘은 으르렁거렸지만,[17] 걸프 전쟁 이후 미국한테 실컷 얻어맞은 이라크가 너무나 약체화되어 이스라엘은 한시름 놓는가 했는데(...)
아랍 민족이 아니라서[18] 같은 친미국가인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았던 이란은 혁명 이후 이슬람 세력이 집권한 후 외교 방침을 180도 돌려 반미-반이스라엘 정책을 펼친다. 호메이니는 이슬람 영토를 점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스라엘을 "악마 제국"으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을 지도상에서 없애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되찾아주는 것을 국가적 사명으로 삼았다. 그 뒤를 이은 이란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정책을 펴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현재 이스라엘과 이란은 서로를 제1의 가상 적국으로 삼고 있다. 물론 이란과 이스라엘이 직접적으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요르단과 이라크가 양국 사이에 있기 때문에 희박하다. 특히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는 게 가뜩이나 반미국가 이란을 싫어하는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짓이라서 이란으로서는 더욱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할수가 없는 상황.
그러나 어쨌든 이란-이스라엘의 갈등은 심각한 편. 이란의 핵 개발도 사실상 핵 보유국인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한 이유가 크다. 만약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이란을 폭격할 경우에는 정말로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헬게이트가 열릴지도 모른다. 물론 핵 협정 타결로 이란이 핵포기를 함에 따라 핵전쟁은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란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적으로 생각하고 이스라엘도 이란을 경계하고 있기에 핵전쟁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전쟁의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이집트에서 2011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몰락하면서 이스라엘에겐 잠시 비상이 걸렸다. 8,000만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아랍권에서 정보 및 여러 모로 중요한 나라이자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고 친미 국가가 되면서 미국제 무기를 도입하던 이집트가 단기간에 친미 독재자를 잃은 셈. 2012년 시점에서는 군부는 아직도 무시 못하나 여론은 반군부에 무슬림 형제단을 지지하고 1차 총선에서도 이들이 압승을 거두는 통에 이스라엘로선 30년 넘도록 평화를 유지한 이집트와 충돌도 염려해야 할 판국...일 줄 알았으나, 1년도 못 가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집권하던 무슬림 형제단이 개박살나면서 유야무야된 듯. 새로 집권한 엘시시 정부는 내부문제와 이슬람 무장단체들에만 신경쓰며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관심을 끊고 있다.
3. 대이스라엘주의
이스라엘 극우파[19] 들의 주장. 이들은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땅은 '''나일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모든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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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 전 이스라엘의 전성기였던 다윗왕 때 유대 왕국의 영토가 그 정도였다고 성경에 언급된다고 한다. 이는 레바논(400만), 시리아(2400만), 요르단(640만) 전 영토와 이라크(2800만) 반절 이상을 합친 범위인데 대충 현재 '''이스라엘 면적의 25배''' 정도? 덕분에 1982년 이집트에게 시나이 반도를 반환할 때 극우파의 반발이 극심했다. 심지어 극우 민병대들이 시나이에 또 다른 이스라엘을 건국하겠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시나이 지역을 돌려준 가장 큰 까닭은 도무지 자기들로선 여길 지배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내 지식인, 전문가들도 이스라엘 극우들의 엉터리 주장 영토는 설령 전쟁을 통해 차지한다 해도 계속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의견을 모은다. 팔레스타인조차 관리하지 못하는 6백만 수준 이스라엘 인구로[20] 현재 인구 6천만이 넘는 저 지역들을 모두 지배한다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영토에 관한 부분은 당연히 엄청난 과장이 섞인 기록이다. 성경에 나오는 통일 이스라엘의 지도를 최대한 넓게 잡아야 이 정도 크기이고 이는 현재 이스라엘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이다. 문제는 이 땅의 주인이라는 사울과 다윗의 '통일 왕국'은 실존했는지 아닌지조차 논쟁의 대상이며, 부정적인 입장에서는 사울과 다윗이 있기는 했겠지만 끽해야 지방 군벌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이견이 없는 시대(이스라엘 왕국-유다 왕국 시대)의 지도를 보면 기껏해야 이 정도.
그런데 이걸로도 부족한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쿠웨이트 영토 상당수에 터키와 이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일부, 거기에 아예 키프로스 전역까지 지들 땅이라며 갈수록 그 억지가 늘어나고 있다...[21] 여기 포함하면 사우디아라비아(인구 2700만)와 이집트 상당 부분에서 이젠 쿠웨이트땅 통째로에 터키와 이란 땅 일부까지 무려 3억 3천만이 넘는 인구(참고로 터키(7500만)와 이란(7600만), 이집트(8100만),겨우 이 3나라 인구만 합쳐도 '''2억 3천만은 거뜬히 넘어간다!''')를 지배하겠다고 나서는 셈. 정말 이런 게 이뤄지면 본격 이스라엘 헬게이트 성립. 아니 정말 이스라엘이 저런다고 무력을 동원하다간 세계대전급 전쟁이 벌어질 테고 이스라엘은 정말로 확실하게 멸망한다. 특히 물주인 미국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미국은 이란을 제외하곤 이 국가들과 적대하지 않는데 이스라엘에 군대 파견과 같은 직접적인 도움을 줄 리가 없다.[22]
단지 인구가 많아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이나 종전 중동전쟁과 차원이 다른 전쟁이 된다. 이집트만 해도 아랍 지역에서 군사강국이며 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고,[23] 이후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으로 미국제 무기를 상당히 들여와 무장했다. 게다가 심심하면 터지는 이슬람 과격파 토벌 및 수단과 리비아와 국경분쟁으로 실전경험도 틈틈이 쌓았다. 거기에 역시 상당한 군사강국인 터키만 해도... 거기에 키프로스까지 먹는다고 이스라엘이 개기다간 키프로스를 자기땅으로 여기는 그리스가 분노할 것이 뻔하며 터키랑 그리스는 NATO 가입국이다... 이스라엘이 개털리지 않아도 그 피해는 종전 전쟁과 차원이 다른 피해를 입은 게 뻔하다. '''그리고 사실 저정도 전력차이면 당연히 이스라엘이 개털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저게 가능하다고 믿는 시오니즘 광신도들도 있는데 상식적으로 그당시 국제여론도 당시 백인의 의무 등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행위는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기적적으로 모든 나라를 쳐부수고 정복에 성공한다 쳐도 몇 세대 못가 만주족 꼴이 될 가능성이 높딘. 여기에 유럽 국가들이 화력과 기술 면에서 여러모로 식민지로 삼았던 국가들보다 뛰어났던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스라엘 리라 동전에 새긴 지도가 이스라엘 땅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위에 열거된 나라들 지도까지 새겨져 있다. 즉 '''돈에도 이런 짓거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었다.''' 이에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항의를 했다. 다만 2014년 현재 이 동전은 쓰여지지 않는다. 여행자들이나 책자에서도 현지에서 봤다고 증언하는 게 나온 걸 보면 하두 주변 나라들의 비난에 일단 안 쓰는 모양이다.
3.1. 반론
위 문단의 내용은 좀 어폐가 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도 음모론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을 당연한 사실인 양 기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시오니즘을 비판하는 입장에선 그럴싸해 보이긴 하지만,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 음모론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도, 사실만 두고 보자면 이스라엘과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인 팔레스타인의 예서 아라파트 대통령이 그렇다고 '''주장한''' 것이 시초이며, 당연히 이스라엘은 이를 부인했다. 이스라엘 측의 말로는 'Mattathias Antigonus II' 치세하의 금화 유물의 외형을 따라 그린 것 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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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해당 도안은 이스라엘 중앙은행의 마크이기도 하다. 우측과 상단이 많이 갈려나갔지만, 좌측 하단의 톱니바퀴 모양으로 난 자국은 이 모양이 동전을 본뜬 것이라는 이스라엘 측의 해명에 무게를 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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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Greater Israel" 지도의 예 1. 자세히 보면 시나이반도-이스라엘로 이어지는 지중해 해안선이 맞지도 않으며, 홍해를 어중간하게 가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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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Greater Israel" 지도의 예 2(...).
그렇다고 죄다 허구는 아니긴 하다. 하레디가 실제로 저런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스라엘 내에서도 군대도 안 가려고 하는 놈들이 잘도 남에게 가서 싸우라고 하곤 지들은 국고금 받아 놀고 먹는다고 비난이 많긴 하다.
4. 아랍에서의 시오니즘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시오니즘 자체가 유대인과 유대교를 찬양하는 주의이자 (아랍을 침공하여) 잃어버린 유대국의 영토를 수복한다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제외한 아랍 대부분은 이 시오니즘에 대해서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통적인 이슬람 율법을 통해서 시오니즘 찬양을 금지하고 있고 그 외 다른 아랍국가들도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시오니즘에 대해서 적시하거나 불온적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
시아파가 대부분인 이란 역시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을 경계하고 혐오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주변국인 레바논, 시리아 등 이슬람교 국가 입장에서는 자기네 영토가 포함되어 있는 것 때문에 더욱 시오니즘에 대한 혐오성향이 짙다. 그것도 이슬람교가 아닌 '''유대국의 영토'''라는 점 때문에.
5. 분파
- 종교적 시오니즘 (Religious Zionism)
정치적인 성향보다는 종교적, 범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분파로 유대민족주의와 종교적인 면에 집중한다.
- 자유주의 시오니즘 (Liberal Zionism)
- 노동 시오니즘 (Labour Zionism)
'좌파 시오니즘'과 동의어이다. 초기 시오니즘의 진보적 색채를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 노동당과 메레츠가 표방하는 이념으로, 키부츠 운동, 사회주의 운동과 연관이 깊다. 20세기 말부터 노동시오니스트들은 자유주의 시오니스트들과 함께 이슬람교나 팔레스타인과 화합을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 내에서 보통 중도좌파~좌익 성향을 띤다. 일종의 좌파민족주의다.
- 수정주의적 시오니즘 (Revisionist Zionism)
시오니즘을 단순히 "유대 국가의 성립"으로 정의하지 않는 시오니즘이다. 보통 우파 시오니즘으로 분류되며, 현재 시오니즘의 주류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리쿠드 등 이스라엘 주류 보수우파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념이다. 국가주의적 색채가 강하며, 비판자들에게는 팽창주의 이념이라고 비판한다.[24] 기본적으로는 세속주의를 표방하지만 본래 좌파이념이였던 기존 시오니즘과 비교했을때 종교적 색채가 좀 더 가미되었다. 사실 국제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욕쳐먹고 손가락질 받는 '시오니즘'은 모든 형태의 시오니즘이 아니라 보통 수정주의적 시오니스트들이다. 이들이 90년대 이후 시오니즘 전체를 과대대표하고 있다.
- 무슬림 시오니즘 (Muslim zionism)
- 문화적 시오니즘 (Cultural Zionism)
- 기독교 시오니즘 (Christian Zionism)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에게 나타나는 시오니즘 사상.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세계 각지의 유대인이 고토로 귀환(알리야)하는 것을 성경 예언의 성취로 보며, 예루살렘에 제3성전이 세워지고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대환난, 그리고 유대인들의 회심과 구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보수 기독교 진영에서 종종 보이는 모습. 유대-기독교라는 개념을 옹호하고 있다.
- 탈시오니즘 (Post-Zionism)
기존의 시오니즘을 탈피하자는 사상이다. 즉 이스라엘을 '유대인의 국가'가 아닌 '일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아랍인과 유대인이 특정한 자치권을 누리면서 함께 사는 이원화된 국가를 지향한다.[25] 이스라엘 내 급진좌파 정당들이 표방한다.
- 반시오니즘 (Anti-Zionism)
시오니즘 자체를 반대하고 혐오하는 것을 뜻하지만, 다만 안티라는 것은 단순한 비판이나 반대가 아닌 보통 진영논리의 개념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반공주의나 안티페미니즘을 극우로 분류하는 것처럼,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에서는 극우파 세력과 극좌파 세력이 反시오니즘을 표방하지만, 지구촌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공산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도[26] 反시오니즘을 표방한다. 극좌에선 주로 반제국주의적 관점에서, 극우에선 유럽의 전통적 반유대주의적 관점에서 반이스라엘을 표방하며, 이런 겹치는 스탠스 때문에 이스라엘 당국과 시오니스트 매체에선 반시오니즘=반유대주의라 선전하는 근간이기도 하다. 2019년, 2020 영국 노동당의 전 총재 제레미 코빈 청문과 탈당, 복당 사건과도 큰 연관이 있다.
또한 시오니즘을 반대하는 유대교 종파 및 단체들도 있다. 이들은 시오니즘은 유대교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있다. 비유대인 반 시오니스트들과 논리를 같이 하는 세속적 유대인들의 반시오니즘은 논외로 치고 유대교 자체의 종교적 관점, 즉 굳이 말하자면 보수적 관점에서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신이 유대인들을 나라 없는 떠돌이 민족으로 지냈던 것은 하느님의 뜻이었다'라며 유대 민족의 구원은 신이 보낸 메시아에 의해 이루어 져야지 인간의 손으로, 그것도 원쑤인 세속주의자 좌파들이 새운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인간이 하느님 흉내를 내려는 신성모독이란 관점이다. 이들의 일부인 네투레이 카르타의 웹사이트.
또한 시오니즘을 반대하는 유대교 종파 및 단체들도 있다. 이들은 시오니즘은 유대교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있다. 비유대인 반 시오니스트들과 논리를 같이 하는 세속적 유대인들의 반시오니즘은 논외로 치고 유대교 자체의 종교적 관점, 즉 굳이 말하자면 보수적 관점에서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신이 유대인들을 나라 없는 떠돌이 민족으로 지냈던 것은 하느님의 뜻이었다'라며 유대 민족의 구원은 신이 보낸 메시아에 의해 이루어 져야지 인간의 손으로, 그것도 원쑤인 세속주의자 좌파들이 새운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인간이 하느님 흉내를 내려는 신성모독이란 관점이다. 이들의 일부인 네투레이 카르타의 웹사이트.
6. 오해 및 편견
6.1. 시오니즘은 우파적이다
시오니즘은 19세기 초에 당시에 좌파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민족주의[27] 의 영향으로 유대인이 주류 사회에 대한 억압,차별,혐오에 저항하기 위해 시작된 정체성 정치였다.
그런데 시오니즘 자체가 친서방 우파사상으로 잘못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나치즘의 반유대주의가 아니고 러시아의 볼셰비키가 시오니스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레닌을 위시로한 볼세비키는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워 약소민족의 민족주의를 지지했고 강대국의 민족주의를 비판했다. 그러나 당시 우파 시오니스트들은 서양 열강에게 로비해서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는데 이때 볼세비키가 이를 친제국주의라고 비난했다.[28]
레프 트로츠키가 요세프 스탈린에게 숙청당한 이후로 소련은 반시오니즘에서 반유대주의로 바뀌었고 서방으로 도망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클리프주의를 포함한 수정주의 계열까지 포함해서 반시오니즘 기조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자체가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선전해왔으며 이에 영향을 미친 사회자유주의, NLPDR, PD계열 정당이 반시오니즘을 진보좌파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1967년 이후로 이스라엘을 우파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이는 진보좌파에게는 시오니즘이 무고한 팔레스타인인을 억압하는 우파적인 이념으로 보이게 되었다.
6.2. 반시오니즘=반유대주의?
우파 시오니스트들이 내세우는 매도이고 사실이 아니다.
반유대주의는 우파가 먼저 시작했고 반시오니즘은 좌파가 먼저 시작했다는 점부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유대인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면 후자는 이스라엘 자체에 대한 부정이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대안우파는 친시오니즘이지만 반유대주의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자국내에서 유대인에 대한 타자화를 하고 이스라엘을 내세워 예루살렘을 대안우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대(大)중동 전체를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언뜻보면 모순적이지만 이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도구로 이용할 뿐 유대인을 배려하려는 마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29]
주류 반시오니스트들은 진보좌파 성향이라서 대개 반유대주의를 반대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존재가 반유대주의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을 탄압함으로서 아랍인들에게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서양제국주의가 중동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고 유럽 유대인이 원주민인 아랍인을 내쫒아 만든 식민지라고 간주하고 있다. 또한 서양, 이스라엘의 우파들이 시오니즘을 내세워 유대인과 아랍인을 이간질한다고 생각하고 유대인과 아랍인이 연대하여 이스라엘을 비롯한 서양제국주의를 중동에서 추방시켜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NL처럼 반서양주의의 영향을 받은 정당은 반시오니즘과 반유대주의를 동시에 내세우며 심지어 히틀러를 옹호하는 감정적인 언행을 보이고 있다.
6.3.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을 항상 타자화한다
초기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아랍인을 보고 외세에 저항해 땅을 지키다가 결국 정체성까지 상실해버린 유대인의 후손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시오니스트들 중에서 종교시오니즘,수정시오니즘은 팔레스타인은 무주공산이라고 우겼고 팔레스타인의 원주민은 아랍인이 멋대로 들어온 것이라고 매도했다. 이들은 우파성향이었기 때문에 당시 서양국가에 대한 로비가 잘 통했으며 이들이 공산주의자, 볼셰비즘, 아랍나치즘[30] 으로 낙인찍힌 노동시오니즘, 리버럴시오니즘에 비해 더 주류가 되었다. 이들은 1947년에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학살,탄압을 자행했으며 이들의 행태는 2021년 현재진행형이다.
현재도 이스라엘 내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사우디인마냥 매도하는 것에 대해 반지성주의, 사이비과학이라는 비판여론이 있으며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은 조상이 같다는 증거를 확보하려는 시오니스트들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미국의 영향으로 우파가 대세이기 때문에 아직도 비주류일 뿐이다.
7. 여담
얼핏 시오니스트들은 모두 골수 유대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테오도르 헤르츨, 다비드 벤구리온, 모세 다얀 등 다수의 시오니스트들은 무신론자였다.
일부 문화적 시오니스트들은 프란츠 카프카를 이스라엘 국적 작가라고 주장한다. 유태인이나 이스라엘에 대하여 언급도 하지 않고 유태인 찬양도 하지 않았으며 종교조차도 유태교를 믿지 않던 카프카인데도 말이다. 그 당시에 존재도 하지않던 당시 이스라엘이? 항목에서 보듯이 카프카를 문화적 시오니즘의 성자로 왜곡한다라는 해외의 비난이 나오고 있다. 그저 유명한 작가라고 이스라엘의 자랑이라며 왜곡하는 것이다.
다른 얘기지만 '''유대인 인권단체와 시오니즘 단체는 동의어가 아니다.''' 이걸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후자의 경우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나 미국유대인위원회(AJC) 같은 경우를 가리키고 전자의 경우는 반명예훼손연맹(ADL)같은 혐오 반대 단체이다. 후자는 시오니즘을 표방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슬람혐오를 포함해 모든 형태의 인종주의와 차별에 반대하는 반인종주의 단체이다.[31] '''유대인 인권단체를 시오니즘 단체로 치부하는 것은 이슬람혐오 반대 단체를 이슬람주의 단체라고 치부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논리적 비약이다.'''
8. 관련 항목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 소련의 스탈린은 시오니즘 정착민 운동을 보고 자극받아 떠돌이 민족 유대인에게 소련 변방의 빈 땅 하나를 제시하고 이주를 장려했다. 그런데 그 위치가 흑룡강변, 극동 외만주 지역이다(...) 그래도 초창기엔 유럽 각지의 유대인들이 땅을 그냥 준다니까 은근히 모여들었는데[32] 그러나 가나안에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국하여 이스라엘 본토에서 재정착했고, 지금은 유대인이 거의 없다.
- 읽을거리
[1] 다른의미로는 천국을 지칭하기도 한다.[2] 참고로 헤르츨은 7년 후인 1904년 44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스라엘의 건국은 44년 후에 이루어졌다. 그의 유해는 1949년부터 이스라엘로 이장되었다.[3] 독일 제국의 경우 지식인들의 경우 오히려 이런 지오니즘을 반대하고 역으로 독일사회에 편입하면서 유태인들의 권리 신장을 노리는 경우도 있었다. 마침 독일내에서 유태인에 대한 차별이 철폐되면서 이런 운동이 가속화 되었다.[4] 더 극단적인 경우를 들자면, 1세대 유대인 이주민의 자녀들이 장성했을 무렵, 종교 공동체를 바탕에 깔고 있는 유대인 정체성에 기반한 국가 대신 팔레스타인 땅에서 태어나 히브리어를 모어로 쓰는 히브리 토박이들이 같은 토박이인 아랍계를 포용한 히브리 민족국가를 세우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아랍계는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만 받아들이면 국민이 될 수 있는 반면, 세계 각지의 디오스포라 유대인들의 경우 기독교도와 무슬림처럼 그저 유대교라는 종교 공동체에 속해있는 외국인에 불과하게 된다.[5] 사실 전통적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게, 시오니즘을 일반적인 민족 국가의 내셔널리즘의 땅이 없는 유대인 버전으로 보자면, 종교적인 우파의 관점에서 유대인 민족 국가를 얘기하기 시작 한 것은 이들보다 한 박자 늦게 활동을 시작한 블라디미르 야보틴스키가 소위 말하는 '수정 시오니즘'을 주장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만 하더라도 다수의 이민자들이 1차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굉장히 화려한 문화적, 지적 발달을 영유했던 중부 유럽의 유대인들이여서 이런 고지식하고 단순무식한 민족주의보다 보편적이고 세련된 좌파 시오니즘을 선호했으나, 6일 전쟁을 기점으로 근대적 이데올로기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던 중동의 유대인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이스라엘 좌파는 무너지고 우익이 등극하게 된 것이다.[6] 시오니즘의 우경화에는 미국의 역할이 컸는데 미국은 1967년 이전까지 이스라엘에 관심두지 않다가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이스라엘을 중동 통제 수단으로 간주했다. 이런 정세에서 미국에서 시작된 신보수주의가 이스라엘에게 영향을 미쳐 수정시오니즘이 이스라엘 정계에서 대세가 된 것이다.[7] 아랍에 동화된 유대인들의 후손이라는 말도 많다. 사실 아랍인들 자체가 이집트인과 베르베르인, 시리아인, 메소포타미아인들을 흡수해서 형성된 종족이라는걸 생각해보면 타당성은 있다.[8] 지금의 상황과는 매우 달라서 당시에는 이집트나 시리아, 이라크와 요르단 등의 왕가가 친서구적 성격이 강했다.[9] 이것도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이스라엘 건국 이후 오랫동안 제1당이 노동당이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집단농장들이 공산주의적 이상주의자들의 흔적.[10] 그래서 아랍국가들은 1차 중동전을 알 나크바, 대재앙이라고 부른다.[11] 이때 미국에 파견되었던 사람이 나중에 이스라엘 최초의 여수상이 된 골다 메이어.[12] 이때 체코에서 Bf-109를 수입하다 보니 이집트군이 사용하는 스핏파이어와 묘한 공중전을 치르기도 했다.[13] 특히 요르단 군은 영국군의 지도를 받아 아랍군단이라고 불리며 아랍계 최정예로 불리는 서구식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14] 자국 이득도 있거니와 내부 갈등도 컸다. 1차 중동전쟁 끝나고 겨우 3년 만에 이집트 파루크 왕가가 쿠데타로 무너진 것을 봐도 알 수 있다.[15] 심지어는 이스라엘의 요구에 응해 자국 내의 팔레스타인인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그래서 분노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게 총리가 암살당하는 사건까지 터졌다.[16] 또 다른 의미로는 당시 팔레스타인을 지도하던 PLO가 입헌군주국인 요르단에서 지나치게 세력을 확대했기 때문에 입지를 안정시키기 위해 숙청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PLO는 요르단을 떠나 레바논으로, 다시 레바논에서 리비아로 본부를 옮겨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참고.[17] 1981년에는 이스라엘 공군이 이라크에 있는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하기도 했다. 원자로는 타격을 받았지만 목표로 하던 완전 파괴는 실패했고 결국 걸프 전쟁 때서야 미군이 엄청나게 폭격하여 비로소 완전히 파괴했다.[18] 이란은 페르시아 민족이며 아랍인과는 언어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전혀 다르다. 나름 아랍인에 비해 더 문화민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고 이란의 환빠들은 아랍 주변 나라들이 과거 페르시아 제국 땅이라고 자부하는 게 비슷하다. 다만 환빠와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는게, '''이들이 주장하는 페르시아 제국은 실존했던 강대국이었다'''. [19] 세속주의자도 있고 하레디도 있는데 최근 그 세력이 빠르게 늘고 있다.[20] 이스라엘 현재 인구인 8백만에서 아랍인을 빼고 이스라엘 내의 유대인만을 계산한 수다.[21]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에서 남한 절반도 안 되는(...) 작은 나라를 대제국으로 뻥치는게, 환단고기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깠던 적이 있다.[22] 당장에 이스라엘에 미군을 주둔시키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23] 물론 후반에 미국의 도움을 받은 이스라엘한테 역관광당해 물러나야했지만.[24] 실제로 정착촌을 정당화하는 이들이다.[25] 이는 중도좌파인 이스라엘 노동당이 내세우는 '양국 방안'(Two-state solution)는 또 다르다![26]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분파를 제외한 공산주의와 페미니즘은 시온주의 사상과 공존이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국가의 시온주의 체제를 뒷받침하는 유대주의(Judaism:유대교 신본주의+유대 문화+유대인 정체성) 및 민주공화제를 배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본토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나 페미니스트는 '시온주의 체제의 지향점에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에 바탕한 공민권운동과 사회복지사업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스라엘 공산당과 메레츠당 및 하다사 조직과 WIZO 조직이 대표적인 모범이다. [27] 나치 독일 이후로 민족주의는 우파적으로 간주되었지만 19세기 초 당시 민족주의는 신분제를 옹호하던 봉건주의에 대항하여 평등한 국민을 강조했기에 좌파적으로 간주되었다.[28] 유대인=볼셰비키라는 공식은 우파 반유대주의자의 편견이며 볼셰비키 중에 유대인이 종종 있다는 것이지 볼셰비키 주요 당원들 자체가 유대인이 아니다.[29] 대안우파 온건파는 유대-기독교 개념을 강경파보다 더 지지하기 때문에 유대인을 서양 사회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있다.[30] 당시 히틀러가 팔레스타인을 이용한 사건으로 생겨난 단어이다.[31] 다만 놈 촘스키는 ADL가 시오니즘 단체라고 비판 한적이 있다. 다만 이것은 ADL가 반이스라엘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착종해 프로불편러적인 태도를 보여서 빚어진 오해이다.남부빈곤법률센터도 마지드 나와즈를 이슬람혐오자로 오판해 반이슬람 극단주의자 낙인을 찍었던 것처럼(물론 지금은 입장철회했다). 게다가 어디까지나 공공연히 인정받는 견해가 아닌 순전히 개인적 견해이다. ADL는 반이슬람 증오에도 마찬가지로 반대하며 노골적 친이스라엘이나 시오니즘을 공공연하게 내세우지 않는다.[32] 사실 결과적으로 유럽에 남아있었다간 상당수가 홀로코스트에 휘말렸을 테니 딱 그 시기에 나치와 거리가 먼 여기를 거친 유대인은 그나마 운이 좋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