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우역
羅湖站 | Lo Wu Station
홍콩 신계 북구에 위치한 MTR 동철선의 철도역으로, 1949년 10월 14일에 개업하였다.
3면 2선의 승강장을 갖추고 있다. 이 중 한 쪽은 두단식 승강장이며, 한쪽은 중국 대륙 즉 본토쪽과 선로가 연결되어 있어 간혹 본토행 열차가 통과한다. 이 외에도 역 승강장을 거치지 않고 그냥 통과하는 선로가 1선 있다.
로우 지역은 1899년 신계가 영국에 조차된 이후 쭉 청나라와 영국령 홍콩의 국경선 역할을 해 왔으며, 이후 구광철도가 개업했을 당시 약 1년간[2] 임시역사가 위치했으나 사실상 바로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던지라 임시역사는 폐쇄되었다.
이후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겪었으나 직통열차는 무사했다. 그러나 그 후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일어나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신정부인 중화인민공화국 측이 일방적으로 영국 열차의 중국 진입을 거부하여 일시적으로 중국본토행 직달열차 운행이 중단된 덕에 셩수이역 이북으로는 운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덕분에 1949년 10월 14일에 다시 역사를 개업하기에 이르며, 중국 국경으로 건너가려면 역에서 내러 널빤지를 놓은 나무 다리를 건너 넘어가야 했다. 중국은 당시 로우 다리를 통해 사람은 넘어올 수 있게 개방했으나 직통열차는 못 다니게 했다. 남북 간 개성공단 출입용 도라산 출입경사무소를 생각하면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머지 접경지대에는 철조망을 치고 경비병력을 대거 배치했으며 영국군은 구르카 연대를 배치하고 중국군도 특수부대들을 죄다 영국령 홍콩과의 국경에 긁어모으며 배치했으며 일일이 뉴스에 안나와 그렇지 양측이 총격전 등 국지전을 벌인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가 1979년 덩샤오핑 주석에 의해 개혁개방 선언이 있으며 홍콩-중국 간 직통열차가 특쾌 등급으로 재개된다. 그리고 양측 국경에는 신경전을 벌이던 군 병력이 철수하고 대신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소속 무경부대원들과 홍콩 경찰이 배치되었으며 사실상 같은 나라 내 행정구역 경계마냥 경계를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자연히 양측 통행도 많아진다.
이에 맞춰 동철선도 근교 통근열차 성격을 겸하게 되면서 1983년에는 복선전철화가 이루어졌고, 이 전철화와 더불어 중국 개혁개방으로 인해 직통운행이 다시 가능해지게 되자 이에 맞춰 역을 중건하게 되었다. 이 때 널빤지를 놓고 통행하던 로우 다리도 제대로 된 출입경사무소로 거듭난다. 땡볕에 노출되며 땀 흘리며 걸을 필요 없이 에어컨이 빵빵한 신식 건물 안에서 육교로 양측을 오갈 수 있도록 하고 출입국 층을 따로 분리했다.
중건 공사는 장장 5년에 걸쳐 진행되어 1987년에 완료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후 1997년 홍콩이 홍콩특별행정구로 중국에 반환, 흡수되면서 중국-홍콩 간 교류가 정식 활성화되어 로우 쪽 국경선은 졸지에 출입 인원이 넘쳐나 과포화 상태가 되었다. 특히 선전시에서 살면서 홍콩으로 출근하는 중국인이나 홍콩에서 광동성 쪽으로 방문하는 홍콩인이 많아졌다. 그래서 빠른 수속을 위해 록마차우역 해관을 신설하고, 중국 쪽에는 황강 버스터미널이 들어서 여객이 현재는 분산되었다.
선전 지하철 1호선 뤄후역[3] 과는 환승역 처리가 되긴 하나 홍콩과 중국 간 국경선 검문소를 끼고 있는 간접환승이다.
중국본토 후커우 소지 중국인이나 홍콩 시민, 즉 홍콩인 모두 국경선을 통과하려면 유효한 비자[4] 및 내륙통행증[5] /특별행정구 출입증[6] 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중국인은 홍콩 이민국에서, 홍콩인이나 외국인은 중국 공안에서 입국이 거부된다. 전자 쪽은 대륙인들, 후자 쪽은 한국인 등 중국 비자를 받아야 하는 외국인들이 주로 겪는다. 후자의 경우 잘 몰라서(...) 사전에 중국 비자를 받지 않고 입국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는지라, 홍콩 이민국이 출국수속 때 칼같이 중국 비자가 있냐 물어보고 없으면 홍콩으로 돌려보낸다.
다행히도 뤄후국경(罗湖口岸)은 중국 공안 비자사무소가 있어서 5일 간 선전시 경제특구 내에만 체류가능한 도착비자를 발급해준다. 대놓고 중국본토 진입 순간 도착비자 키오스크가 대문짝만하게 보인다. 수수료는 168 위안으로 유니온페이, 비자, 아멕스카드 그리고 현금을 받으며, 표준중국어를 몰라도 키오스크를 통해 접수가 가능하다.
단 문제는 도착비자를 발급받더라도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변방관리국의 까다로운 입국심사'''를 또 거쳐야 한다. 2018년부터는 외국인의 지문날인까지 추가되어 더 빡세졌다.
뤄후역과 로우역은 이름[7] 만 같지 완전히 다른 역이다. 환승통로도 없다. 뤄후는 근처가 홍콩의 로우 마을이라서 이를 따서 지은 이름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강 건너편으로 떨어져 있다. 홍콩의 원조 로우는 한적한 농촌으로 허허벌판이다. 중국 본토-홍콩 경계는 중국 공산화 이후 홍콩 정부에서 개발을 통제해왔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19 사태로 인해 출입경 사무소는 폐쇄되고 주민을 위해 일부 열차만이 10분당 한대 간격으로 들어왔으나, 청명절이 끝나자 4월 20일 이후 역사 전체가 폐쇄되었다. 6월 말 홍콩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록마차우역과 황강터미널이 7월 말 재개장을 선언하였으나 로우는 재개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8]
3/4번 승강장은 두단식 승강장이며, 1/2번 승강장은 중국 본토측 선로와 연결이 되어있는 선로로, 간혹 중국 본토 직통열차가 이 승강장을 통과한다. 또한 승강장에 화장실이 있다. 그러나 화장실을 찾니 뭐니 하면서 함부로 돌아다니면 큰일나는 것이, 승강장 내에도 일반인이 출입하면 안되는 곳이 펜스로 막혀 있으니 주의하자. 특히 잘못 타고 와서 다시 돌아 나가야 하는 경우 더더욱 말이다.
어차피 마을과 샌드릿지 공동묘지 쪽으로는 출구를 잠궈서 나갈 수 없고 시간이 정해져 있어 개방시간에만 경찰이 문을 열어준다. 로우 마을만이 유일하게 민통선 북쪽에 걸려있으며 이 역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게 타지역과 단절되어 있다.
역사는 중국 본토 입국심사장과 연결되어 있으며, 출구는 단 한개뿐으로, 인근 로우 마을과 역 앞 주차장으로 나갈 수 있다.
샌드리지 공동묘지(Sandy Ridge Cemetery)라는 공동묘지 및 로우 마을이라 불리는 몇몇 작은 마을들 그리고 로우 교도소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외에는 모두 늪지대 아니면 산이며, 이 쪽이 가장 엄격히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는 변경금구 즉 민통선 지역이라 아직까지도 경찰들이 근처 마을들을 순찰하며 금구 내의 마을에 외지인이 있는지를 칼 같이 체크한다. 이 지역을 얼쩡거리는 외지인은 밀입국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홍콩 경찰 변경금구 지역대는 매시간마다 산악수색이나 철책선 순찰 등을 통해 밀입국자를 칼 같이 잡아낸다. 간혹 가다 중국을 거쳐 홍콩에 몰래 들어올려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 등 남아시아 빈국 사람들이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인들이 여기서 경찰에 잡혀 버려 추방당하기도 한다. 로우 교도소에는 이들 외국인 밀입국자를 임시 감금,수용하는 장소가 있다.
그리고 전술했듯 역 주변으로는 작은 마을이 몇 개 있는데 이 마을들로 가는 출구는 막아 놓는다. 개방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때 가서 경찰이 열어준다. 마을의 경우 너무 작은 규모라 마을사람들이 모르는 외지인이 민통선 이북 마을을 드나들 경우 주민들이 경찰에 밀입국자로 신고해 버린다.
즉 대놓고 중국 쪽에서 들어오는 출퇴근 및 방문 인원을 수송하기 위해 있는 역이다.
중국 국경을 통과하여 선전시 뤄후구로 들어가면 선전역 및 선전시외버스터미널 등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 터미널 건물에는 그 유명한 '''짝퉁시장'''이 있어서 한국인들이 짝퉁을 사고 싶으면 가기도 하는데 홍콩 세관을 조심해야 한다. 무작위 검문으로 걸리면 크게 세금을 떼어야 한다. 그리고 담배가 있는지 필히 확인하고 한갑 빼고 다 버려야 한다.
1. 개요
홍콩 신계 북구에 위치한 MTR 동철선의 철도역으로, 1949년 10월 14일에 개업하였다.
2. 역 정보
3면 2선의 승강장을 갖추고 있다. 이 중 한 쪽은 두단식 승강장이며, 한쪽은 중국 대륙 즉 본토쪽과 선로가 연결되어 있어 간혹 본토행 열차가 통과한다. 이 외에도 역 승강장을 거치지 않고 그냥 통과하는 선로가 1선 있다.
로우 지역은 1899년 신계가 영국에 조차된 이후 쭉 청나라와 영국령 홍콩의 국경선 역할을 해 왔으며, 이후 구광철도가 개업했을 당시 약 1년간[2] 임시역사가 위치했으나 사실상 바로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던지라 임시역사는 폐쇄되었다.
이후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겪었으나 직통열차는 무사했다. 그러나 그 후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일어나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신정부인 중화인민공화국 측이 일방적으로 영국 열차의 중국 진입을 거부하여 일시적으로 중국본토행 직달열차 운행이 중단된 덕에 셩수이역 이북으로는 운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덕분에 1949년 10월 14일에 다시 역사를 개업하기에 이르며, 중국 국경으로 건너가려면 역에서 내러 널빤지를 놓은 나무 다리를 건너 넘어가야 했다. 중국은 당시 로우 다리를 통해 사람은 넘어올 수 있게 개방했으나 직통열차는 못 다니게 했다. 남북 간 개성공단 출입용 도라산 출입경사무소를 생각하면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머지 접경지대에는 철조망을 치고 경비병력을 대거 배치했으며 영국군은 구르카 연대를 배치하고 중국군도 특수부대들을 죄다 영국령 홍콩과의 국경에 긁어모으며 배치했으며 일일이 뉴스에 안나와 그렇지 양측이 총격전 등 국지전을 벌인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가 1979년 덩샤오핑 주석에 의해 개혁개방 선언이 있으며 홍콩-중국 간 직통열차가 특쾌 등급으로 재개된다. 그리고 양측 국경에는 신경전을 벌이던 군 병력이 철수하고 대신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소속 무경부대원들과 홍콩 경찰이 배치되었으며 사실상 같은 나라 내 행정구역 경계마냥 경계를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자연히 양측 통행도 많아진다.
이에 맞춰 동철선도 근교 통근열차 성격을 겸하게 되면서 1983년에는 복선전철화가 이루어졌고, 이 전철화와 더불어 중국 개혁개방으로 인해 직통운행이 다시 가능해지게 되자 이에 맞춰 역을 중건하게 되었다. 이 때 널빤지를 놓고 통행하던 로우 다리도 제대로 된 출입경사무소로 거듭난다. 땡볕에 노출되며 땀 흘리며 걸을 필요 없이 에어컨이 빵빵한 신식 건물 안에서 육교로 양측을 오갈 수 있도록 하고 출입국 층을 따로 분리했다.
중건 공사는 장장 5년에 걸쳐 진행되어 1987년에 완료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후 1997년 홍콩이 홍콩특별행정구로 중국에 반환, 흡수되면서 중국-홍콩 간 교류가 정식 활성화되어 로우 쪽 국경선은 졸지에 출입 인원이 넘쳐나 과포화 상태가 되었다. 특히 선전시에서 살면서 홍콩으로 출근하는 중국인이나 홍콩에서 광동성 쪽으로 방문하는 홍콩인이 많아졌다. 그래서 빠른 수속을 위해 록마차우역 해관을 신설하고, 중국 쪽에는 황강 버스터미널이 들어서 여객이 현재는 분산되었다.
선전 지하철 1호선 뤄후역[3] 과는 환승역 처리가 되긴 하나 홍콩과 중국 간 국경선 검문소를 끼고 있는 간접환승이다.
중국본토 후커우 소지 중국인이나 홍콩 시민, 즉 홍콩인 모두 국경선을 통과하려면 유효한 비자[4] 및 내륙통행증[5] /특별행정구 출입증[6] 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중국인은 홍콩 이민국에서, 홍콩인이나 외국인은 중국 공안에서 입국이 거부된다. 전자 쪽은 대륙인들, 후자 쪽은 한국인 등 중국 비자를 받아야 하는 외국인들이 주로 겪는다. 후자의 경우 잘 몰라서(...) 사전에 중국 비자를 받지 않고 입국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는지라, 홍콩 이민국이 출국수속 때 칼같이 중국 비자가 있냐 물어보고 없으면 홍콩으로 돌려보낸다.
다행히도 뤄후국경(罗湖口岸)은 중국 공안 비자사무소가 있어서 5일 간 선전시 경제특구 내에만 체류가능한 도착비자를 발급해준다. 대놓고 중국본토 진입 순간 도착비자 키오스크가 대문짝만하게 보인다. 수수료는 168 위안으로 유니온페이, 비자, 아멕스카드 그리고 현금을 받으며, 표준중국어를 몰라도 키오스크를 통해 접수가 가능하다.
단 문제는 도착비자를 발급받더라도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변방관리국의 까다로운 입국심사'''를 또 거쳐야 한다. 2018년부터는 외국인의 지문날인까지 추가되어 더 빡세졌다.
뤄후역과 로우역은 이름[7] 만 같지 완전히 다른 역이다. 환승통로도 없다. 뤄후는 근처가 홍콩의 로우 마을이라서 이를 따서 지은 이름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강 건너편으로 떨어져 있다. 홍콩의 원조 로우는 한적한 농촌으로 허허벌판이다. 중국 본토-홍콩 경계는 중국 공산화 이후 홍콩 정부에서 개발을 통제해왔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19 사태로 인해 출입경 사무소는 폐쇄되고 주민을 위해 일부 열차만이 10분당 한대 간격으로 들어왔으나, 청명절이 끝나자 4월 20일 이후 역사 전체가 폐쇄되었다. 6월 말 홍콩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록마차우역과 황강터미널이 7월 말 재개장을 선언하였으나 로우는 재개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8]
3. 역 내부 시설
3/4번 승강장은 두단식 승강장이며, 1/2번 승강장은 중국 본토측 선로와 연결이 되어있는 선로로, 간혹 중국 본토 직통열차가 이 승강장을 통과한다. 또한 승강장에 화장실이 있다. 그러나 화장실을 찾니 뭐니 하면서 함부로 돌아다니면 큰일나는 것이, 승강장 내에도 일반인이 출입하면 안되는 곳이 펜스로 막혀 있으니 주의하자. 특히 잘못 타고 와서 다시 돌아 나가야 하는 경우 더더욱 말이다.
어차피 마을과 샌드릿지 공동묘지 쪽으로는 출구를 잠궈서 나갈 수 없고 시간이 정해져 있어 개방시간에만 경찰이 문을 열어준다. 로우 마을만이 유일하게 민통선 북쪽에 걸려있으며 이 역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게 타지역과 단절되어 있다.
역사는 중국 본토 입국심사장과 연결되어 있으며, 출구는 단 한개뿐으로, 인근 로우 마을과 역 앞 주차장으로 나갈 수 있다.
4. 역 주변 안내도 및 주변 정보
샌드리지 공동묘지(Sandy Ridge Cemetery)라는 공동묘지 및 로우 마을이라 불리는 몇몇 작은 마을들 그리고 로우 교도소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외에는 모두 늪지대 아니면 산이며, 이 쪽이 가장 엄격히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는 변경금구 즉 민통선 지역이라 아직까지도 경찰들이 근처 마을들을 순찰하며 금구 내의 마을에 외지인이 있는지를 칼 같이 체크한다. 이 지역을 얼쩡거리는 외지인은 밀입국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홍콩 경찰 변경금구 지역대는 매시간마다 산악수색이나 철책선 순찰 등을 통해 밀입국자를 칼 같이 잡아낸다. 간혹 가다 중국을 거쳐 홍콩에 몰래 들어올려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 등 남아시아 빈국 사람들이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인들이 여기서 경찰에 잡혀 버려 추방당하기도 한다. 로우 교도소에는 이들 외국인 밀입국자를 임시 감금,수용하는 장소가 있다.
그리고 전술했듯 역 주변으로는 작은 마을이 몇 개 있는데 이 마을들로 가는 출구는 막아 놓는다. 개방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때 가서 경찰이 열어준다. 마을의 경우 너무 작은 규모라 마을사람들이 모르는 외지인이 민통선 이북 마을을 드나들 경우 주민들이 경찰에 밀입국자로 신고해 버린다.
즉 대놓고 중국 쪽에서 들어오는 출퇴근 및 방문 인원을 수송하기 위해 있는 역이다.
중국 국경을 통과하여 선전시 뤄후구로 들어가면 선전역 및 선전시외버스터미널 등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 터미널 건물에는 그 유명한 '''짝퉁시장'''이 있어서 한국인들이 짝퉁을 사고 싶으면 가기도 하는데 홍콩 세관을 조심해야 한다. 무작위 검문으로 걸리면 크게 세금을 떼어야 한다. 그리고 담배가 있는지 필히 확인하고 한갑 빼고 다 버려야 한다.
[中文] 香港新界北區羅湖 羅湖車站路[영문] Lo Wu Station Road, Lo Wu, North District, Hong Kong[1] 중건 완료일[2] 1910년 10월 1일~1911년 10월 5일 간[3] 발음 차이가 크지만 이름이 같은 역이다.[4] 한국인은 홍콩은 90일 내 무비자이므로 중국 비자에 한한다.[5] 홍콩인과 마카오인, 대만인이 받는 회향증. 사실상 비자와 별 차이가 없다.[6] 대륙 후커우 소지자들이 받는 홍콩 등 특구 입경허가증. 외국에서 주로 말하는 중국 국적자가 이 후커우 소지자들로 외교가에서 중국 국적자 어쩌구 할때는 이 후커우 소지 중화인민공화국 여권 소지자를 말한다.[7] 간체자: 罗湖站/ 뤄후역[8] 홍콩 정부는 코로나19 지역감염이 0명이 되어 사실상 코로나19가 홍콩에서 소멸되자 홍콩-마카오 페리터미널, 황강버스터미널, 록마차우역 등의 재개방을 선언하고 준비 중이다. 이 준비 과정에서 홍콩과 중국 간, 홍콩과 마카오 간 상호 검역이 인정되어 코로나 음성판정을 증명하는 건강관리앱을 설치 시 양측이 격리 없이 입국시킬 수 있다. 마카오는 이미 주하이와의 국경에서 통학생 등을 상대로 일부분 실시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