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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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시산(文国诗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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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장시와 난창시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는 1474m에 불과하지만 산세가 수려하기로 유명한 명산이다. 수백여개에 달하는 봉우리들은 1년 365일 중 200일 이상 운무에 둘러쌓여 있어 사진 작가들이 즐겨 찾는다. 중국5A급여유경구에 지정되어 있다.
광산(匡山) 혹은 광려(匡廬)로도 불리는데, 이는 고대 주나라 대에 광씨 7형제가 이곳에 살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과거부터 루산은 정신적 안식처를 찾는 승려, 시인, 학자들의 터전이 되었다. 전한 대에 사마천이 입산하여 사기를 편집하였고(기원전 126년), 후한 대에는 파르티아의 왕자 출신으로서 승려가 된 안세고가 중국 선교를 위해 불경을 한자로 번역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2. 상세
루산(여산)은 남북조시대에 남조의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모두 한번쯤은 찾는 명소였다. 남조를 넘어 중국 최고의 명필로 평가받는 왕희지 역시 이곳에 별장을 두었고, 이후 그를 기증하여 귀종사(歸宗寺)로 이어졌다. 동진 말엽에 입산[5] 한 고승 혜원 (慧遠)은 오랜 수행 끝에 '''정토종'''을 창시하였고 386년에 그에 의해 세워진 동림사는 정토종의 본산이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학한 감진은 750년경에 일본으로 불교를 전파하며 여산은 한중일 각지의 순례객을 받게 되었다. 5세기 초엽에는 동진을 대표하는 시인인 도연명이 입산하여 여러 시조를 남겼는데, 그의 거처는 이후 그를 기리는 정절서원(靖節書院, 징졔서원)이 세워졌다.
동진 시대를 거치며 여산은 정토종 외에도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황룡종(黃龍宗) 등 여러 불교 종파의 중심지가 되었고, 동진을 이은 유송 대에는 도가의 육수정 (陸修靜)[6] 이 백운봉(白雲峯)에 도교 사원을 세웠다. 여산의 문화적 융성은 6, 7세기의 정치적 안정기에 힘입이 정체기를 맞았다가 8세기 이후 당송팔대가가 찾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백거이, '''이백''', 구양수, 주돈이, 왕안석 (王安石), '''소식'''(苏轼, 소동파의 본명), 미불 (米芾), 그리고 북송 말의 문인인 황정견, 육유 (陆游)등도 시조를 남기고 갔다.
한편, 940년에 오로봉(五老峯) 인근에 세워진 백록동 서원은 11세기 말에 훼철되었다가 주희에 의해 남송 서원의 효시로서 재건되었다. 이후 여산은 불교 다음으로 성리학의 성지가 되었다. 한편,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이슬람, 기독교 등의 사원도 세워졌고 여산은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산이 되었다. 명나라 대에는 왕수인, 시인 이몽양, 문인화가 왕사임 등이 다녀갔다. 세월이 쌓이며 여산에는 수백개의 사찰, 서원, 도장, 산장이 지어졌는데, 청나라 말기에 일어난 태평천국 운동 시에 상당수가 파괴되었다. 19세기 말엽에는 서양의 선교사들의 별장과 신사층의 산장이 세워졌고, 그때부터 루산은 중국 남부를 대표하는 피서지가 되었다.
루산은 20세기에도 역사의 현장이었다. 중화민국의 여름 수도, 즉 하도(夏都)로 지정되었고, 1935년 초에 장시 소비에트와 중국 국민당 간의 전투가 일어났다. 1937년 여름에는 장제스와 저우언라이가 만나 2차 국공합작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중일전쟁 직후인 1946년에는 연합군 사령관 조지 마샬과 장제스가 회담을 하였다. 이후 이어진 국공내전 후에, 마오쩌둥은 루산에서 3차례에 걸쳐 중공중앙회의(中共中央会议)를 소집하였으며 1959년의 루산회의(庐山会议)에서는 펑더화이가 좌천되었다.
여산에 관련된 4천여수의 시 중에서 특히 이백의 여산 폭포와, 백낙천의 향로봉(香爐峰)에 대한 시가 유명하다. 또한 루산에는 4백여 개의 석각과 9백여개의 명문이 세겨져 있는데, 5세기부터 현대까지 그 연대가 다양하다. 루산 일대는 그 유구한 역사와 빼어난 경관을 인정받아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04년에는 세계지질공원이 되었다.
3. 여산 폭포
폭포가 많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未到三叠泉,不算庐山客
삼첩 폭포를 보지 않으면 여산을 다녀간 것이 아니다.
당나라 대의 시인 서응이 남긴 감상虛空落泉千仞直 雷奔入江不暫息 [7]
허공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천 길로 곧은데, 우레와도 같이 달려 강에 들기 쉬지를 않네.
今古長如白練飛 一條界破靑山色 [8]
고금의 긴 세월에 흰 비단이 하늘을 나는 듯, 폭포 한 줄기 푸른 산빛을 둘로 갈라놓는다.
삼첩천 폭포를 묘사한 이백(이태백)의 시조 중日照香爐生紫烟
향로봉에 햇빛 비쳐 안개가 피어나고
遙看瀑布掛前川
멀리 뵈는 폭포는 앞 내를 매단 듯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5] 대략 서기 381 혹은 384년경[6] 407 ~ 477년. 도장(道藏)의 편찬자[7] 허공낙천천인직 뇌분입강부잠식[8] 금고장여백련비 일조계파청산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