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
1. 당대의 시인
1.1. 소개
본명은 이백(李白). 태백(太白)은 그의 자를 가리킨다.李白斗酒詩百篇,長安市上酒家眠。天子呼来不上船,自稱臣是酒中仙。
이백은 술 한 말을 마시고 시 100편을 짓고, 장안성 저자의 술집에서 잤다. 천자가 오라하여도 배에도 오르지 않은채, 스스로 칭하기를 '신은 술의 신선입니다' 하였다.
- 두보[1]
두보와 함께 한시 문학의 양대 거성으로 꼽힌다. 두보가 몇 번의 퇴고를 거쳐서 완성된 시를 내놓는 반면 그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마음 내킬 때 몇 줄 내려쓰면 그게 두보에 필적하는 명시였다고 한다. 때문에 별명은 두보의 별명인 시성(詩聖)과 대비되는 시선(詩仙).[3] 그 둘을 묶어 보통 '이두(李杜)' 라고 부르며 둘 사이의 우열을 가리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이미 중국 고전문학계에서는 논쟁을 끝냈을 정도다(이백이 뛰어나다는 소리가 아니다. 동급이라는 소리).
1.2. 생애
촉 지방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유명한만큼 태생 지역이 여러 학자들에 의한 근거없는 이설이 심하다. 키르기르스탄의 토크목(Tokmok) 일대에 태어났다고도 하며(어머니가 키르기르스탄인이라는 추측이 존재한다) 산둥, 관중 일대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지만 근거있는 설로서 출생은 하서(간쑤성 칭양시)이며 3살이 되기 전에 사천(쓰촨)으로 이주했다는 설이 정설. 사서의 기록으로 옛 촉나라 지역인 쓰촨성이 고향으로 적혀 있어 쓰촨성 태생 또한 정설이다. 젊었을 때는 검술을 배워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사람을 '''여럿 살해'''하고 다녔다가 20살 때에 당시 은거하던 이인인 동엄자(東嚴子)과 만나서 개과천선했다고 하며 그의 시가 신선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것도 이때부터다. 25살 때는 사천성을 떠나 강남 일대를 유람하면서 살다가 여기저기를 떠돌며 28살 때 운몽호에서 당 고종(高宗) 때의 조상인 허어자의 손녀를 만나 결혼하고 10년 동안을 거기서 살았다.
야사에 따르면 이백은 스승에게 글을 배우다가 그만 공부가 싫어져서 멋대로 방랑길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상의산(象宜山) 기슭에서 한 노파를 만났는데, 노파는 부러진 도끼를 열심히 갈아 바늘을 만들고 있었다. 그 노파의 모습에서 이백은 포기하지 않으면 마침내 뜻을 이룰 수 있음을 깨우쳤고, 다시 마음을 돌이켜 공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여기서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사자성어가 유래했다.
35살 때는 잠시 낙양을 거쳐 태원까지 유람했고 이때 우연히 명장 곽자의와의 안면을 텄다고도 한다. 야사에서는 곽자의가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쓰자 이백이 구명활동을 벌이고 무죄를 호소하여 풀려났다고 한다. 만일 사실이라면 훗날 곽자의가 이백을 살려주려고 한 것은 은혜를 갚은게 된다. 또한 도술도 이래저래 배우고 다녔다고 한다. 37살 때는 5명의 시인과 같이(공소보(孔巢父), 배정(裵政), 한준(韓準), 장숙명(張叔明), 도면(陶沔)) 죽림에 은거하여 조용히 살려고 했으나 시가 너무 유명해져서 도피 겸(!) 여행을 다니다가 장안까지 입성하게 되었다고. 시험도 쳤으나 당시 시험관이었던 양국충과 고력사의 의견이 충돌하는 바람에 낙방...
유교적 도덕을 바탕으로 시를 쓴 두보와 달리, 그야말로 풍류를 벗하고 풍류를 노래한 인물이다. 그런 삶을 살았기에 역대 중국왕조를 보면 국가적 차원에서 이백보다 두보를 더 높이 쳐줬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중국 왕조에서 대대로 푸시를 받은 두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백의 시가 그와 대등하게 평가받고 있으니 그만큼 '''시의 천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선 술마시고 노래하는 풍류인(風流人) 이백 쪽이 인기가 더 높다. 유교 문화권에 속하기는 해도 풍류를 노래하는 정취가 수많은 선비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옛날 이야기에서 달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반드시 이백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두보에게는 천재적인 시인이라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컨셉이나 이미지가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백의 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강산의 정취를 노래하기 때문에 놀고 즐길 때 딱이지만, 두보의 시는 시사(詩史)라고 불릴 정도로 당대 사회에 대한 현실적인 비판과 풍자를 담고 중국의 고사 비유가 많기 때문에 학구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때에 알맞기 때문이다. 두보는 당시 중국사회의 여러 가지 면면을 살피고, 민초들의 생활고에 슬퍼하고 고뇌하며, 다양한 중국의 고사를 예로 들며 진지한 주제를 제시하는 시가 많은데, 이런 걸 놀면서 즐기기에는 좀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두보의 시의 완성도는 훌륭했고,[4] 이백에게 인기가 밀리건 어쨌건 간에, 조선왕조에서는 중국왕조와 마찬가지 이유로 두보의 시를 널리 알리고 크게 권장했다. 당장 훈민정음 창제 이후 훈민정음으로 발간된 대표적인 책 중의 하나가 두시언해였다. 이렇듯 교훈적인 이유로 두보의 시가 장려되었으니, 충분히 조정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이백과 쌍벽을 이룬다는 사실 때문에 두보의 이미지는 아주 꼿꼿한 기상을 지닌 선비로 곧잘 표현되곤 한다. 그러니까 술도 잘 안 마시고 별로 놀지도 않으며 그야말로 청렴검소의 모범이 되는 인물이었을 거라는 이미지 말이다. 하지만 두보 본인도 이백에 지지 않을 정도로 술과 풍류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애당초 둘이 여행도 같이 다닐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그는 발해 사신의 문서를 해독한 걸로 유명하다.구체적으로는 당나라 현종때 발해의 선전포고 서신을 받았는데, 조정의 대신들 중에서 아무도 그것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대신 하지장(賀知章)이 과거시험에서 낙방한 이백을 입궁하게 했다. 이백은 과거 시험에 낙방한 자신이 그 과제를 할 자격이 없다며 거절하자 황제는 그에게 한림학사의 직함과 관직을 주었고, 이백은 대신들 중에서 자신의 시험관을 찾아 그들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기게 하고 그 문서를 번역했다.
시를 잘 지어 당현종과 양귀비의 총애를 받았으나 술김에 현종의 총애를 받고 있던 환관 고력사에게 "내 신발 좀 벗겨봐라. 이 고자놈아!"라며 술주정을 부릴 정도로 호방하게 굴었고 훗날 이 일을 잊지 않은 고력사의 미움을 사서 파면당했고, 그해 여름 낙양에서 두보를 만나 1년 동안 같이 지내면서 여행도 다녔다. 두보가 한 말에 의하면 둘은 밤에는 같은 이불에서 잤고, 날이 새자마자 손 잡고 떠났다고 한다. 이백이 두보보다 12살 연상이었는데 두보가 이백의 재능에 크게 탄복하면서 그와 더불어 하남, 산동 일대를 유람하면서 친구 사이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54세가 되던 해 강남으로 돌아와서 2년 뒤 영왕의 군대에 참여하나 영왕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처형된 뒤 귀양을 가다 삼협도에서 사면받고 다시 방랑길에 오르고 62세가 되던 해, 종숙이던 이양빙의 집에서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2남 1녀를 두었으나 집안을 돌보지 않고 떠돌기만 한 인생이라 자손들은 가난해져 소식을 모르게 되었고, 이백이 죽은 지 60년쯤 지난 후에 어느 관리가 이백의 무덤을 찾은 후 자손을 알아보았는데 농민에게 시집간 손녀 2명만 파악되었다고 한다.
1.3. 여담
- 놀랍게도 고구려에 관련한 시가 존재한다. 이백이 장안에 들어가 과거시험에 합격한 후, 한림학사가 된 42살(742년)에 지은 시로, 당시에 당나라에 온 고구려 무용수의 춤을 보고 지은 시로 보여진다. 여기서 절풍모는 고구려인들이 자주 썼던 조우관을 말한다.
金花折風帽[금화절풍모]
노란 꽃 절풍모를 쓰고
白馬小遲回[백마소지회]
백마를 탄채 잠시 멈추었다 돌며,
翩翩舞廣袖[편편무광수]
펄럭펄럭 넓은 소매로 춤을 추니
似鳥海東來[사조해동래]
바다 동쪽에서 새가 날아온듯 하구나.
이백
- 애주가들의 표본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술을 뜻하는 한자인 酒(주)자를 앞에 넣어 '주태백'이라고 하면 술꾼인 사람들, 특히 자주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는 술고래들을 일컫는 말로 많이 쓰인다. '주태배기'라고도 하며 "이백은 달하고 서로 술을 주고 받았다"는 전설도 있었다.
- 위에서도 언급한 대로 달을 굉장히 사랑했다. 달을 읊은 시가 수없이 많은데 월하독작 등이 읽기도 쉽고 정취가 빼어나다. 심지어 야사에는 그가 '뱃놀이를 하다가 강에 비친 달을 보고 그걸 건지려다 뛰어들어 익사했다'고 알려질 정도로 그의 사랑은 대단했다.[5] 우리나라 민요와 가요 중 '달타령'에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라는 대목이 나오는 것이 그의 영향이다. 단순히 달을 좋아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니고 그가 안사의 난을 일으킨 수괴인 안록산과 절친했기 때문에 그 죽음에 모종의 음모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 당시 이태백은 황족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반란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가 곽자의의 도움으로 살아난 신세라 그리 신빙성이 있는 건 아닐 듯하다. 그 후 유배에서 풀려나 몇 년간 양자강 중하류를 떠돌다가 762년 외숙부의 집에 몇 달 동안 의탁하다 6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민간 전승에서는 이때 강에 뛰어든 이백이 고래를 타고 하늘을 날아 고향인 선계로 돌아갔다고 한다.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백은 젊어서부터 유협 생활을 했던 인물로 무예가 뛰어났다. 특히 검술에 능하여 시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검술 또한 일류 고수에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한다. 보검제작으로 유명한 용천 지방을 지날 때에는 차고 있던 용천검을 뽑아 검무를 추고 싶다는 싯구를 썼을 정도로 검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
- 서양에도 그의 시가 전해졌는데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도 그의 시에 반한 듯하다. 중국의 시들을 바탕으로 작곡된 대지의 노래에서 이백의 시가 절반 넘게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볼 때 그렇다. 물론 원문과 대지의 노래의 가사 사이에는 좀 갭이 있긴 하지만. 외국어에도 능통했는지 위에 언급한 대로 발해의 말을 알아서 당시 발해에서 온 외교문서를 처리하는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고 한다.[6]
- 전술하듯이 두보와 관계가 깊었는데, 두보가 그에게 많은 시를 선물했지만 그는 이를 감사히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 편의 시만을 써준 일화를 두고 중국의 한 네티즌이 “이백, 양심에 안 찔려?(李白, 你的良心不会痛吗?)”를 SNS에 올렸는데, 이후 2017년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일본 NTT 도코모의 앵무새 형제 캐릭터 포인코(poinko)에 이 신조어를 붙인 짤[* 짤의 캐릭터는 포인코 동생. 포인코 형제 중 옆으로 펑퍼짐한 형태의 캐릭터가 동생이다.]이 화제가 되면서 유행어가 되었다.
- Fate 시리즈에선 양귀비의 대사에서 언급되는데 주인공인 리츠카가 일본인이라서 이백의 친구였던 아베노 나카마로를 언급하면서 술친구였다고 하고 자길보고 먹을 갈며 따라 붙은 호쿠사이를 보고 이백처럼 예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말하는데 예술가였던 만큼 성격이 괴팍했던 듯 싶다.
[1] A B 두보의 시, 음중팔선가 중 이백에 대해 평가한 부분.[2] 지금의 쓰촨성이다.[3] 여기에 시불(詩佛) 왕유, 시귀(詩鬼) 이하를 더해서 당시사걸(唐詩四傑)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4] 애당초 창작 스타일이 전혀 달랐다. 이백이 술 한잔 걸치고 일필휘지식으로 시를 줄줄 지었던 반면 두보는 시 한구절에서조차 퇴고에 퇴고를 거듭했다.[5] 물론 그 전설이 어린 고장은 높은 산이 솟아있는 지역이라 사실은 아니다.[6] 아마 이백은 문서 자체를 다르게 이해한 듯 싶다. 알다시피 한국어와 중국어는 문장 성분의 어순이 다르다. 즉 발해에서 한문 어순을 한국어(정확히는 당시 발해어) 순서를 따라 썼기에 중국에서 해석이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다. 교착어인 한국어에서는 어순이 바뀌어도 조사의 도움으로 해독이 가능하지만 중국어같이 어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고립어의 경우, 어순이 바뀌었을 시 해독이 아주 어려워진다.
2. 하라 야스히사의 만화 킹덤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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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형 무장이라는 설정과 인식에 통솔력이나 지력이 높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무력이 더 높은 무장.
조나라의 장군으로, 진나라와 조나라와의 전투에서 등장한다. 연나라의 5만여 명의 적군에 맞서 겨우 수천 명으로 작은 성을 지켰다 하여 일명 '''수비'''의 이백이라 불린다. 초반에는 몽무도 그의 수비벽을 뚫지 못하여 고전하는 듯 했고 이백은 몽무가 자신을 이기려면 10년은 더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장담했으나, 이것은 급징용된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몽무의 계책으로, 이후 전투에서는 몽무에게 '''넌 그 동안 상대를 잘 만난 것 뿐'''이라며 완전히 개발살나고 목숨만 부지한다.[7]
이후 합종군에도 참전해 경사 휘하에서 신과 표공의 군대와 싸우다가 경사와 함께 철수한다.
그 뒤로는 작가가 잊어먹었는지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본인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공손룡은 꾸준히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 안습...
3. 트랜스포머 사이버트론의 등장 트랜스포머
Evac. 한국명은 라이브콘.
4. 나치 독일의 초중전차
[7] 그리고 몽무는 이백을 쫓는 대신 장군을 잃은 이백군을 쓸어버리는 것을 택하여 머리가 도망가 오합지졸로 전락한 이백군을 절단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