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헤일 사카슈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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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지아의 전 대통령이자 우크라이나 전 오데사 주 주지사를 지낸 정치인.
2. 생애
1967년 트빌리시에서 태어났다.
1992년 우크라이나 키예프 국립대를 졸업한 후[2] 미 국무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컬럼비아 대학교와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법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 후 미국 뉴욕의 로펌에서 근무 했다.
1995년 지인의 권유로 조지아로 귀국 후 정치활동에 참여하였으며 그 해 의원으로 당선됐고 2000년에는 법무장관직에 올랐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 정권 관료들의 부패를 고발하다가 2001년 장관직을 사퇴, 국민운동당을 창당한다.
2.1. 조지아 대통령 재임기
2003년 셰바르드나제 정권의 부패와 실정에 조지아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사임하는 장미혁명이 일어났다. 장미혁명의 주역중 한명이었던 사카슈빌리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 2004년 30대의 젊은 나이로 조지아의 3대 대통령이 되었다.
강한 친미, 친유럽주의 성향의 사카슈빌리는 조지아가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북대서양 조약기구와 유럽연합에 가입하길 희망했다. 사카슈빌리는 조지아의 NATO가맹 합의를 이끌어내고 미국의 군사원조를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2008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그러던 중 조지아 내 남오세티야 자치주의 독립찬반투표에서 문제가 터졌다. 독립파의 압승으로 끝난 선거 결과에 대해 조지아 정부는 이를 러시아에 의한 강제병합음모라 비난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다.
조지아와 러시아의 갈등은 2008년 8월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이어졌고 조지아는 패전,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사실상 독립국이 되어 버렸다.
2013년 3선에 실패한 뒤 대통령 재임 당시 스캔들[3] 에 연루되어 임기 말미에 기소되었고 우크라이나로 망명했다.
2.2. 우크라이나 망명 후
페트로 포로셴코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사카슈빌리에게 우크라이나 국적을 부여했고 사카슈빌리는 오데사 주 주지사로 임명되어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주지사 재임 기간동안 우크라이나 정부 인사들과 갈등을 빚고 1년여만에 쫓겨나고 우크라이나 시민권도 박탈당하고 말았다.
그 이후 한때 절친이었던 포로셴코 탄핵을 주도하다가 유로마이단으로 축출된 친러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사주를 받았다는 혐의로 우크라이나 검찰에 체포, 폴란드로 추방당했다.[4]
그 후 2019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사카슈빌리의 우크라이나 국적을 회복시켜주어 그해 5월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우크라이나로 입국했다.
3. 평가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조지아를 위기에 빠트리고 권력남용등 내정에서의 문제를 일으켰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망명 후에도 조지아 정치권의 막후를 조종하고 있다며 정적들에게 비난받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 대학생 시절 부터 학생운동과 인권활동에 참여했으며 셰바르드나제 정권의 부패와 실정을 고발하고, 대통령 재임 후 조지아의 개혁을 이끌어 부패가 판치던 조지아를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 세계 10위권'''(사업 친화지수 전세계 6위, 유럽 2위, 경제자유지수 세계 16위, 유럽 8위)'''로 올려놓은 공적도 있다.
유럽연합과 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으로 가입하려는 조지아의 친서방, 친유럽주의 정책 방향을 확고히 했다.
4. 여담
- 조지아어, 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 우크라이나어 등 5개 언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키예프 대학 선후배 관계로 한때 절친이었다.
- 2010년 3월 15일 조지아의 방송사가 뉴스에서 "러시아가 기습 공격을 가해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오보를 내기도 했다. 조지아 국민들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방송국 PD가 만든 가짜뉴스였고 해당 방송국은 국내외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 러시아에서 굉장히 싫어하는 외국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기행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극우 정당 러시아 자유민주당의 알렉세이 미트로파노프 전 의원은 사카슈빌리가 율리야 티모셴코 전 우크라이나 총리와 육체적 관계를 가진다는 내용의 에로 영화를 제작해 물의를 빚었다.
- 러시아의 반정부 야권에 동조하는 입장으로 보리스 넴초프 암살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을 비판했으며 오데사 주지사 재임 시절 푸틴 반대활동을 하는 예고르 가이다르 전 러시아 총리의 딸 마리야 가이다르를 부지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는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