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헤일 사카슈빌리

 


'''조지아 제3대 대통령
미헤일 사카슈빌리'''
'''본명'''
'''მიხეილ სააკაშვილი
Міхеїл Саакашвілі
미헤일 사카슈빌리'''
'''국적'''
[image]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1967년 12월 21일 - 1991년 04월 09일)
[image] 조지아(1991년 04월 09일 - 2015년 05월 29일)
[image] 우크라이나(2015년 05월 29일 - 2017년 07월 26일)
무국적(2017년 07월 26일 - 2019년 5월 28일)
[image] 우크라이나(2019년 05월 28일 - 현재)
'''출생'''
1967년 12월 21일 (56세)
[image] 소련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트빌리시
[image] 조지아 트빌리시
'''학력'''
키예프 대학
컬럼비아 법학대학원
조지워싱턴대학교 로스쿨
국제 인권 연구소
'''가족'''
아내: 산드라 룰로포스
슬하: 2남 [1]
'''정당'''
'''새힘운동''']]'''(2017년 02월 23일 - 현재)
'''서명'''
[image]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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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조지아 의회 의원(1995년 11월 25일 - 2001년 03월 02일)
[image] 제 6대 조지아 법무부장관(2000년 10월 12일 - 2001년 09월 19일)
[image] 조지아 의회 의원(2001년 11월 06일 - 2002년 12월 22일)
[image] 통합국민운동 의장(2001년 10월 - 2004년)
[image] 제3대 조지아 대통령(2004년 01월 25일 - 2007년 11월 25일)
[image] 조지아 총리 권한대행(2005년 02월 03일 - 2005년 02월 17일)
[image] 제3대 조지아 대통령(2008년 01월 20일 - 2013년 11월 17일)
[image] 통합국민운동 의장(2012년 - 2014년 9월)
[image] 오데사 주지사(2015년 05월 30일 - 2016년 11월 09일)
[image] 통합국민운동 의장(2017년 01월13일 - 2019년 3월 24일)
[image] 통합국민운동 명예의장(2019년 3월 24일 - 현재)

1. 개요
2. 생애
2.1. 조지아 대통령 재임기
2.2. 우크라이나 망명 후
3. 평가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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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지아의 전 대통령이자 우크라이나오데사 주 주지사를 지낸 정치인.

2. 생애


1967년 트빌리시에서 태어났다.
1992년 우크라이나 키예프 국립대를 졸업한 후[2] 미 국무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컬럼비아 대학교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법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 후 미국 뉴욕의 로펌에서 근무 했다.
1995년 지인의 권유로 조지아로 귀국 후 정치활동에 참여하였으며 그 해 의원으로 당선됐고 2000년에는 법무장관직에 올랐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 정권 관료들의 부패를 고발하다가 2001년 장관직을 사퇴, 국민운동당을 창당한다.

2.1. 조지아 대통령 재임기


2003년 셰바르드나제 정권의 부패와 실정에 조지아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사임하는 장미혁명이 일어났다. 장미혁명의 주역중 한명이었던 사카슈빌리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 2004년 30대의 젊은 나이로 조지아의 3대 대통령이 되었다.
강한 친미, 친유럽주의 성향의 사카슈빌리는 조지아가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북대서양 조약기구유럽연합에 가입하길 희망했다. 사카슈빌리는 조지아의 NATO가맹 합의를 이끌어내고 미국의 군사원조를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2008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그러던 중 조지아 내 남오세티야 자치주의 독립찬반투표에서 문제가 터졌다. 독립파의 압승으로 끝난 선거 결과에 대해 조지아 정부는 이를 러시아에 의한 강제병합음모라 비난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다.
조지아와 러시아의 갈등은 2008년 8월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이어졌고 조지아는 패전, 남오세티야압하지야는 사실상 독립국이 되어 버렸다.
2013년 3선에 실패한 뒤 대통령 재임 당시 스캔들[3]에 연루되어 임기 말미에 기소되었고 우크라이나로 망명했다.

2.2. 우크라이나 망명 후


페트로 포로셴코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사카슈빌리에게 우크라이나 국적을 부여했고 사카슈빌리는 오데사 주 주지사로 임명되어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주지사 재임 기간동안 우크라이나 정부 인사들과 갈등을 빚고 1년여만에 쫓겨나고 우크라이나 시민권도 박탈당하고 말았다.
그 이후 한때 절친이었던 포로셴코 탄핵을 주도하다가 유로마이단으로 축출된 친러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사주를 받았다는 혐의로 우크라이나 검찰에 체포, 폴란드로 추방당했다.[4]
그 후 2019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사카슈빌리의 우크라이나 국적을 회복시켜주어 그해 5월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우크라이나로 입국했다.

3. 평가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조지아를 위기에 빠트리고 권력남용등 내정에서의 문제를 일으켰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망명 후에도 조지아 정치권의 막후를 조종하고 있다며 정적들에게 비난받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 대학생 시절 부터 학생운동과 인권활동에 참여했으며 셰바르드나제 정권의 부패와 실정을 고발하고, 대통령 재임 후 조지아의 개혁을 이끌어 부패가 판치던 조지아를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 세계 10위권'''(사업 친화지수 전세계 6위, 유럽 2위, 경제자유지수 세계 16위, 유럽 8위)'''로 올려놓은 공적도 있다.
유럽연합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으로 가입하려는 조지아의 친서방, 친유럽주의 정책 방향을 확고히 했다.

4. 여담




[1] 장남 에두아르드 사카슈빌리, 1995년생, 차남 니콜로즈 사카슈빌리 2005년생[2] 졸업 직전 소련이 해체됐다.[3]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해 금융인 살인에 연루된 용의자들을 사면한 혐의 등.[4] 참고로 이때 체포된 혐의가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사주를 받고 쿠데타를 꾸몄다.''' 라는 참으로 터무니없는 이유였다. 그렇기에 이에 반발한 그의 지지자들이 '''후송차량을 습격해서 문을 강제로 뜯어내서 미헤일을 구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