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원
1. 소개
前 롯데 자이언츠, 쌍방울 레이더스, 해태 타이거즈, SK 와이번스의 내야수.
2. 선수 경력
1992년 고려대를 졸업했고 그 해 아마추어 국가대표 유격수로도 발탁되기도 했다. 유격수 치고 큰 키[1] 와 강한 어깨로 수비에서 강점을 보였고, 그 때문에 1992년 드래프트 2차 2순위 지명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프로에 데뷔한 1992년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하여 121경기 .243 6홈런 47타점을 기록, 신인으로서 유격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 몇 안 되는 선수가 된다.[2] 롯데가 3위를 차지하는데 일조했으며 특히 포스트 시즌에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삼성과 맞붙은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솔로 홈런을 때리는등 2경기 .429 1홈런을 기록했고, 해태와 붙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연장 10회초, 조계현에게 결승타를 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17타수 5안타 .294를 기록하며 1992년 한국시리즈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신인왕은 같은 팀 투수 염종석이 차지했지만,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는 것으로 자신의 활약에 충분한 보답을 받았다.
1993년까지 주전 유격수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이듬해인 1994년 어께 부상을 달고 무리하게 경기에 출전하는 바람에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이때 방위 복무 중이라 홈 경기에만 출전했음에도 부상이 악화된것. 1997년에 재활을 마치고 그라운드로 복귀했지만, 그가 빠진 자리를 김민재가 성공적으로 메우며 벤치 멤버로 전락해 1998년 6월 5일 이동수와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됐다.[3] 이후 벤치멤버로 활동하다가 1999년 4월 16일 오봉옥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4] 되었다. 이 때 이종범이 일본으로 건너가고 김종국이 부상당한 해태의 내야진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이듬해인 2000년 또 다시 2:2 트레이드[5] 의 대상자로 SK 와이번스로 이동했다. 선수 생활을 마칠 때까지 통산 9시즌 동안 1,812타수 439안타(홈런 19개)로 타율 0.242를 기록했다.종합적인 평가를 하자면, 유격수로써는 나쁘지 않은 타격과 준수한 수비로 팀에 도움이 되었던 선수라고 볼 수 있다.
3. 지도자 경력
'''주루 코치가 떠나니 말썽을 부리는 SK의 新 철밥통'''
2002년 SK 와이번스에서 은퇴한 후 2003년 미국 플로리다 주 브래든턴에 위치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구산 산하의 마이너 루키 팀[6] 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2004년 SK 와이번스 2군 수비&작전 코치로 임명되었다.
이후 2006년 롯데 자이언츠의 수비코치로 영입되어 친정 팀에 복귀했다. 이후 2009년까지 수비코치를 맡았고 2009년엔 작전/주루 코치도 겸하여 2010년부터는 작전/주루 코치로 전환하여 2011년까지 맡다가, 다시 2012년에는 수비코치를 맡았다.
수비코치로의 능력은 공필성보다는 낫다는 게 중론. 실제로 2009년을 제외하고 박계원이 수비코치를 맡은 해엔 롯데의 실책 순위는 3~5위권을 유지했으나 공필성이 맡은 해엔 '''어김없이''' 실책 1위를 기록했으니... 실책이 수비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롯데의 수비를 본 사람들이라면 '''실책이라도''' 줄였으면 하는게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라서...
하지만 작전/주루코치로는 다소 의문이라는 평가. 주루는 몰라도 롯데 선수들의 작전 수행 능력이 크게 나아졌다는 평가는 그가 작전코치를 맡은 동안엔 별로 없었다.
어쨌든 2013 시즌부터는 다시 작전/주루코치로 활동한다. 그리고 수비코치는 다시 '''공필성'''이 맡았다. 그 때문인진 몰라도 롯데는 2013 시범경기에서 초반 3경기부터 7개의 실책을 저질렀다. 그리고 페넌트레이스 시즌 초 롯데에서 좋지 않은 플레이를 보이게 되자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박현승과 교체되어 2군으로 내려갔다.
2013 시즌 종료 후 SK 코치 시절 감독이었던 조범현과의 인연 때문인지 kt wiz의 코치로 영입되었다가 조범현이 시즌 후 kt wiz 감독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동반 사임했다.
2017년부터는 SK 와이번스의 수비코치로 계약하며 2005년 이후 12년만에 SK로 되돌아왔다.
2018 시즌 전반기를 마친 후 루키팀 수비·작전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대신 1군으로 올라온 코치는 손지환. 결국 시즌 후 팀을 떠나게 되었다.
2020년 9월 14일에 모교 부산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으로 선임됐다.
4. 이모저모
[1] 186CM[2] 1983년 김재박, 1987년 류중일에 이어 세번째. 이후 1993년 이종범도 입단 첫해에 수상한다.[3] 박계원, 이동수 ↔ 김현민, 박성기[4] 오봉옥, 박계원 ↔ 송구홍, 박재용, 송구홍이 준수한 컨택능력은 있었지만 유격수비를 볼 수 없었다는 게 이유일 듯.[5] 이호준, 박계원 ↔ 성영재, 김호[6] 이 때 같은 팀에 있었던 선수가 호세 바티스타다. 물론 본인이 가르친 건 아니다.[7] 이 경기에서는 이대호가 상대 팀 투수로 나왔다. 사실 이대호가 본래 투수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