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재

 

'''성영재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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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373a3c>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7번'''
이현택(1992)

'''성영재(1993~1999)'''

팀 해체
'''SK 와이번스 등번호 17번'''
팀 창단

'''성영재(2000)'''

이호준(2000~2001)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13번'''
장석희(1997~1999)

'''성영재(2000)'''

이강철(2001)
'''해태 / KIA 타이거즈 등번호 29번'''
권명철(1999)

'''성영재(2001~2002)'''

고우석(2003~2004)
'''두산 베어스 등번호 57번'''
게리 레스(2002)

'''성영재(2003)'''

게리 레스(2004)
'''LG 트윈스 등번호 65번'''
곽병모(2002)

'''성영재(2003~2005)'''

김영롱(2006~2007)
'''LG 트윈스 등번호 91번'''
김용수(2003~2004)

'''성영재(2006)'''

배우열(2009~2010)
'''LG 트윈스 등번호 85번'''
조충열(2006)

'''성영재(2007~2010)'''

최인영(2011)


[image]
'''이름'''
성영재 (成英在 / Young-jae Sung)
'''생년월일'''
1971년 3월 9일 (53세)
'''출신지'''
광주광역시
'''학력'''
광주일고 - 인하대[1]
'''포지션'''
투수
'''투타'''
우언우타
'''프로입단'''
1993년 2차 1-1라운드 (전체 1순위, 쌍방울)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3~1999)'''
SK 와이번스 (2000)
해태-KIA 타이거즈 (2000~2002)
두산 베어스 (2003)
LG 트윈스 (2003~2005)
'''지도자'''
LG 트윈스 1군투수코치 (2005~2006)
LG 트윈스 1군불펜코치 (2006~2010)
LG 트윈스 재활코치 (2010)
광주제일고등학교 감독 (2016~)
'''프런트'''
LG 트윈스 스카우트 팀 과장 (2011~2016)
1. 소개
2. 선수 시절
2.2. 해태 타이거즈 및 그 이후 시절
3. 지도자 시절
4. 연도별 주요 성적
5. 기타
6. 관련 문서


1. 소개


쌍방울 레이더스박충식 대신 1993년 2차 1순위로 지명한 언더핸드 투수. 현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앞서 해태는 1991년 신인 1차 지명에서 김기태 대신 한양대 투수 오희주를 뽑았지만 기대에 훨씬 미달했고, 김기태는 신생 쌍방울에서의 프로 첫해부터 홈런 2위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이듬해인 1992년 해태는 광주일고를 막 졸업하는 박재홍을 1차 지명했지만, 그는 연세대에 입학했다. 결국 해태는 1993년 건국대를 졸업한 이종범을 영입하고서야 이들 둘을 놓친 아쉬움을 풀었다.
지금 와서 보면 성영재가 팀을 잘못 만났을 뿐, 성영재가 삼성으로 갔거나 아님 박충식이 쌍방울로 갔다면 충분히 운명이 달라졌을 수 있다.
각이 그리 크지 않아 '나노 포크'라고 불리긴 했어도, 언더핸드임에도 잠수함 투수에겐 매우 드문 포크볼을 던졌던 투수로 유명하다. 얼굴도 나름 곱상하게 잘 생긴 편이라, 쌍방울 시절에는 김원형만큼이나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선수였다.

2. 선수 시절



2.1.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광주일고[2][3]인하대(1989학번)를 졸업하고 1993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계약금 1억 원을 받고 입단했다. 당시에는 삼성이 뽑은 박충식보다 유망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4], 쌍방울 역사상 최초로 억대 계약금을 받은 신인이자 당시 해태의 1차지명을 받은 고교동기인 이종범보다 더 비싼 계약금을 받았다.
데뷔 첫 해 성적은 타선의 지원을 못 받거나 상황이 여러 모로 꼬이는 등으로 인해 평균자책점은 4.03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지독히도 승운이 없어 1승 13패를 기록하였다.
동기생이자 동일한 옆구리 투수인 박충식199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보여 준 강인한 이미지에 밀렸을 뿐더러, 더군다나 하필이면 데뷔했던 1993년에는 양준혁, 이종범, 김경원, 박충식, 이대진, 이상훈, 구대성, 마해영 과 같은 향후 프로야구 10년을 좌지우지할 선수들이 대거 입단하여 비교적 관심도가 떨어지는 면도 있었다. 그러나 성영재는 입단 첫 해부터 쌍방울의 붙박이 선발로서, 매년 120~150이닝을 먹어 주는 언더핸드 에이스 노릇을 했다. 커리어 하이를 찍었던 1996년에는 10승 5패 ERA 2.37을 기록하여 쌍방울 팀 내 유일 10승 투수이자 최다승 투수이기도 했다. 특히 현대 유니콘스,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강해서 김성근현대 유니콘스와의 1996년 플레이오프를 회상하면서 "1차전 선발이었던 영재가 손가락 부상만 당하지 않았어도 우리가 이겼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쌍방울은 2차전까지 연달아 승기를 잡았지만, 성영재의 공백을 실감한 채 남은 세 경기를 내줘 한국시리즈 진출 문턱에서 탈락해야 했다. 김성근 체제에서 유일하게 붙박이 선발이었던 투수가 성영재였던 만큼 그의 위상은 확고했으나, 붙박이 선발인 만큼 김성근 체제 특유의 벌떼 야구의 특징상 선발승을 손해 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팀의 에이스로 점차 자리잡고 있었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병역 문제.''' 과거 현역 판정을 받았던 그는 허리디스크 수술, 속도위반[5] 등 합법적인 선에서의 병역 면제를 시도했지만 실패하여 현역 입대하게 되었고, 의병 제대를 위해 국군병원 군의관에게 3,500만 원의 언더머니를 제공한 뒤 목표를 이룬다. 그러나 훈련량 부족과 누적된 어깨 피로로 인해 성적이 해마다 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고향 팀 해태 타이거즈이호준을 상대로 트레이드된 후 2000년 겨울에 위의 병역비리 혐의가 적발되어 검찰에 구속 기소되었다가 이듬해 봄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되기까지 동계훈련을 완전히 공치게 된다.프로야구 성영재씨 병역비리 집유선고

2.2. 해태 타이거즈 및 그 이후 시절


SK 와이번스에서 뛰다가 2000년 이호준을 상대로 해태 타이거즈트레이드되었다. 당시 해태의 투수 사정은 이강철이 삼성으로 FA계약을 하면서 나가고, 이대진도 부상 여파로 선발을 제대로 소화할수 없는 시절이었다. 00시즌 해태에서 선발로써 풀타임 위력을 보인 투수는 최상덕이었을 뿐, 그 상황에서 선발로 4연승을 올리며 '''해태에서는 천군만마격, 무너져가던 명가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2001년에도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준수하게 활약했는데, 00시즌만큼의 성적은 올리지 못하며 점점 노쇠화되었다. 친구가 돌아오자마자 급격히 성적이 떨어진 것도 아이러니..

2002년 시즌에는 단 한경기만 나온 후 방출당했다. 이후 두산 베어스에 이적했으나 1패만 기록한 뒤 웨이버 공시됐고, LG 트윈스에 이적하여 2005년 시즌 후 은퇴했다.
성영재-이호준 트레이드의 손익을 계산하면 01까지는 성영재의 우세였는데 02시즌부터 이호준이 각성하면서 역전했다고 볼 수 있다.

3. 지도자 시절


2006년부터 2010년까지 LG 트윈스의 투수, 불펜, 재활코치를 맡았다.
2010 시즌 후 코치 계약을 해지하고 스카우트로 보직을 바꿔 2016년까지 LG 트윈스 육성 팀에서 프런트로 재직했다.
2016년 10월에 모교인 광주일고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7년 봉황대기에서 4강에 오르며 명문팀 부활을 암시했고, 2018년 시즌 전에는 학교 후배인 김병현의 개인 훈련 및 학생 지도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2018년 황금사자기에서는 북일고, 덕수고, 경남고 등 강팀들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라 대구고에 10:2로 승리하며 통산 6번째 우승을 달성했고 전국체육대회 금메달까지 차지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완투
완봉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3
쌍방울 레이더스
24
116
5
0
1
13
0
-
4.03
111
73
75
1994
28
147⅓
3
1
7
10
0
-
4.95
155
71
85
1995
27
154
5
1
9
14
0
-
5.04
168
78
92
1996
24
148
'''5'''
(4위)
'''3'''
(2위)
10
5
0
-
'''2.37'''
(4위)
122
49
92
1997
23
107⅓
1
'''1'''
(4위)
5
6
0
-
'''2.43'''
93
47
80
1998
36
138
'''3'''
(10위)
'''1'''
(8위)
7
9
1
-
3.51
145
48
76
1999
31
131⅓
1
0
5
16
2
-
6.10
155
57
74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완투
완봉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0
SK / 해태
31
111⅔
1
'''1'''
(1위)
7
7
0
2
4.84
133
56
74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완투
완봉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1
KIA 타이거즈
39
61⅓
0
0
5
4
3
'''6'''
(7위)
5.72
67
26
36
2002
1
1
0
0
0
0
0
0
9.00
3
0
0
년도
소속팀
경기
이닝
완투
완봉


세이브
홀드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3
두산 / LG
24
33⅓
0
0
1
1
2
2
3.24
37
16
17
2004
LG 트윈스
16
13
0
0
1
0
0
4
3.46
14
4
6
<color=#373a3c> '''KBO 통산'''
(12시즌)
304
1165⅓
24
8
58
85
8
14
4.24
1203
532
707

5. 기타


  • 한때 마구마구에서 최고의 선발로 꼽힌 적도 있다. 언더패치 이전에는 뛰어난 제구력과 특유의 1mm 포크볼을 중심으로 하는 삼지선다로(직구,슬라이더,포크) 악명을 떨쳤으나 패치 이후에는 추억속의 카드로 사라졌다. 물론 그 이후로도 쌍올을 중심으로 간간히 쓰는 사람은 있었다. 그리고 96년 재평가 이후 레어카드가 추가되면서 다시 쓰는 유저들이 많아졌고, 한때는 거래창 1페이지를 당당히 차지하기도 했다. 철완을 필두로 잠재력도 괜찮게 붙었고 특이폼이 없는점과 언더 포크라는 특징을 이용해 X계열 강화 및 팔각도 특이폼을 부여하면 꽤나 쓸만하다. 2019년현재 릴리스 포인트가 매우 앞쪽에 있음이 확인되면서 강한 선발로 각광받는다.
  • 친자식은 아니지만 조카 성준민도 야구선수로, 2021년 기준 동아대학교 야구부 3학년이며 좌완 투수로 뛰고 있다.
  • 그 유명한 마산아재 성영재 새총 저격 사건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본인은 새총에 맞은 기억이 없다고 발언하였으며 이후 마산아재 성영재 새총 저격 사건은 거짓으로 판명났다.

6. 관련 문서


[1] 1989학번[2] 당시 김응룡 감독은 동대문야구장에 4번이나 찾아와서 고민하다가 동기생 이종범을 1차 지명으로 낙점했으며 지역 라이벌 고교의 잠수함 투수였던 박충식도 1차 지명 후보였다.[3] 이종범은 청룡기 결승전 연장 11회말에서 군산상고에게 끝내기 2루타를 작렬하며 5대4 역전승에 기여했다. 이종범 외 광주일고 동기로 정영규가 있다.[4] 당시 해태가 1차 지명을 위해 이종범과 저울질했던 연고지 선수를 박충식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성영재였다.[5] 그 당시만 해도 결혼한 뒤 아이가 2명 이상 있는 입영 대상자는 면제 판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