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요비
[clearfix]
1. 개요
화요비는 대한민국의 R&B 가수이다.
예명은 박노미[7][8] 였다가 데뷔하면서 박화요비로 바꿨다.
'화요비'라는 이름은, 이름을 지은 날인 '화요일'과 장르 R&B의 'B'에서 따 왔다는 이야기와 '화요일에 내리는 비'의 줄임말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9]
2000년 8월 19일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본인 얘기로는 화요일에 이름을 지은 것에서 '화요'를 따왔고, R&B를 부르기 때문에 '비'를 따왔다고 한다.[10] 그녀는 이후 인터뷰에서 각자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했다. [11]
5집 활동부터 성을 뗀 '화요비'로 활동명이 바꾸었다가 2017년 11월 중순 다시 '박화요비'로 활동명을 바꾸어 활동한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이후에 활동이 거의 없다.
2021년 1월 27일 싱글 앨범을 음원 사이트와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박화요비'로 다시 바꾼 이후 첫 앨범이다.
2. 특징
2.1. 가창력 및 멀티 보이스 컬러
화요비의 음악적인 강점을 고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음도 고음이지만 화요비가 다른 아티스트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창법으로 다양한 음색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면, 이제껏 내왔던 정규 앨범은 물론 미니 앨범까지 각 앨범마다 전부 창법과 음색이 다를 정도로 10년이 넘는 가수 생활에서 다양한 음색을 선보여 왔다. 때로는 음악적 지향에 맞추어서, 앨범 컨셉에 맞추어서 팔색조 같은 목소리의 매력을 자랑하는 그녀. 화요비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하는 올드 팬들은 목소리만 들어도 이게 몇 년도에 불렀던 노래인지를(!) 짐작하기도 한다.
그녀는 EP 앨범 '반쪽'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 '가수가 이 노래 저 노래 똑같이 부르면 곡 느낌이 살지 않는다'고 멀티 보이스 컬러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고, 5집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는 창법이 바뀐 것에 대해서 자신의 꿈은 '멀티 보이스 컬러'라고 밝힌 바 있다.
데뷔 초기의 맑은 음색을 필두로한 테크닉 중심적인 음악에서부터 점점 감성과 소울이 짙어졌다고 하는 5집까지의 가창은 그녀의 목 상태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12] 성공적인 성대 수술 이후의 가창은 '가사중심적이고 감성중심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의향을 확실히 따라가고 있다. 6집에서의 음색은 오히려 5집의 그것보다 부드럽지만, 7집부터는 현재의 목소리로 노선을 전환, 현재는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가수가 되었다. 현재 팬들도 거의 모든 앨범을 명반으로 추천하고 있고, 간간이 내는 싱글이나 OST들 역시도 팬들의 호감이 굉장히 높은 편.
2.2. 싱어송라이터
데뷔 앨범 때부터 작사와 작곡에 일부 참여했다. 앨범의 숫자가 더해갈수록 참여도도 높아지고, 아예 앨범을 자체 제작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2010년 7집을 기점으로 출연한 방송에서는 '싱어송라이터 화요비'로 MC의 소개 멘트가 바뀔 정도.
발매된 모든 앨범[13] 에 작사를 참여했다.
본인의 앨범에 수록된 130곡[14] 중 64곡을 작사했다.
무려 48%. 작곡도 37곡으로 29%. (2020년 6월 기준).
즉, 전체의 절반(1/2)은 작사하고, 1/3은 작곡한다는 얘기.
단순히, 보컬리스트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라 불릴만 하다.
싱어송라이터의 본격적인 시작의 앨범인 7집 앨범의 성공 후,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곡을 쓸 때는, 느낌이 오는 날 짧은 시간에 완성하는 편이고 '오늘은 날이 아니다' 싶으면 억지로 쓰지 않는다고 한다.
타 가수의 노래를 작사, 작곡하기도 한다. 대표곡은 윤하의 '오늘 헤어졌어요' .
2013년 10월 31일, 남성 솔로 가수 '신재'의 타이틀곡 '이 노래 듣고 니가 돌아왔으면'에 작사, 작곡, 코러스까지 참여하여 작곡까지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절친인 거미의 2014년 6월 10일 자정 공개된 새 미니 앨범에 휘성과 함께 자작곡을 선물했다.
2.3. R&B 디바로서의 이미지
그녀의 연이은 예능 출연이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변화시켰다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다. 실제로 (박)'화요비'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노래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웃기는 사람이라는 사람이 상당히 늘은 것을 보면 예능의 파급력, 나아가 미디어의 영향력은 방기할 수준이 아니다.
다만 그녀가 예능을 위한 예능을 찍은 것이 아니라, 가수이기 전에 연예인이자 방송인으로서 예능에 출연한 점, 본인 스스로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예능 활동에 따른 이미지 변화에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등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무엇보다 음원 성적으로 연결될 만한 예능 출연은 당시에나, 향후 음악 활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특별히 논란이라고 부풀려 말할 만큼 논란은 아니었지만, '디바 이미지'가 흔들릴 만큼의 행보는 '스타 화보'에서 다시 드러났다. 두 차례에 걸쳐 '스타 화보'를 찍어 디지털 판매를 한 이력이 있었는데, 노출도가 '스타 화보다워서'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이전의 그녀는 라이브 무대든 어디서든 신체적인 노출이 거의 없었고,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주목은 클 수밖에 없었다. 화보 자체도 팬이든 아니든 본 사람은 입을 벌리게 될 만한 수위였기도 했고.
후술할 '가창력 논란'과 더불어 예능 출연, 스타 화보 촬영은 '알앤비 디바'로서의 화요비의 이미지를 바꾸게 한 요인이 되었다며 아직까지 걱정을 하는 팬이 남아있는 편이다. 정작 본인은 예능 출연이든 화보 촬영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기에, 팬으로서 그녀의 다짐과 사상을 믿어주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3. 음반 목록
4. 활동
4.1. 가수 활동
대학 시절,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클래식을 접고 실용음악과로 진로를 바꾸었다. 1집 앨범이 나오던 시절부터 집안의 반대도 어느 정도 누그러져갔다고. 그녀는 만약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피아노를 치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포항MBC 라디오 '별밤 뽐내기' 연말 결선에서 이희진의 '용서'를 불러 대상을 타고 데뷔하게 되었다. 데뷔 당시에는 박화요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지만, 일본 진출을 위해[15] 예명을 화요비로 바꿨다. 18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가창력과 성숙한 목소리로 주목받았으며, 박효신 등과 함께 국내 R&B 아티스트의 대표주자였다. 당시는 박정현, 박화요비, 박효신의 이른바 '3박' 시절. 당시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해 환상적인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고, 같은 소속사였던 박효신과의 듀엣곡 라이브도 선보였다. 본인의 노래뿐만 아니라 머라이어 캐리 등의 팝을 굉장한 실력으로 소화했다. 화요비의 유명한 팝송 소화 능력은 데뷔 때부터 증명된 셈.
초기 창법은 머라이어 캐리와 매우 흡사했는데, 그녀의 데뷔 앨범인 1집 앨범 제목도 머라이어 캐리 5집 후속곡 제목인 <My All>을 그대로 가져왔다. 머라이어 캐리와 창법이 비슷한 것에서 착안하여, 그만큼 파워풀한 실력파 가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타이틀곡 Lie 뿐만 아니라 전곡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해도 될 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1집을 내고 타이틀 곡 <Lie>의 인기에 힘입어 두 차례의 콘서트를 열고 인기와 실력에 힘입어 창작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신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업적을 남겼었다.
2집 <Nineteen Plus One>을 내고 자신이 작사한 타이틀 곡 <눈물>로 활동했다. 판매량은 1집에 비해 다소 부진하였지만 환상적인 가창력과 라이브 무대로 주목받았다.
이정봉 원곡의 <어떤가요>를 리메이크한 동명의 타이틀곡으로 한 3집 <Because I Love You> 활동은 '가창력 좋은 가수, 박화요비'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고 판매량 자체도 좋았다. 후속곡인 <끝이 보일 때쯤> 뿐만 아니라 수록곡 <사랑은>도 라이브 무대를 많이 가지는 등 다른 수록곡의 인기도 좋았다.
이후로는 4집 <Soul saver>의 타이틀곡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보아요>, 이하 당키세 활동을 기점으로, 아래 항목에서 후술할 예능 활동과 더불어 대중적인 인기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당키세는 화요비의 앨범 타이틀곡 중에서도 1집의 <그런 일은>과 더불어 굉장히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곡으로 팬들 사이에서도 역시 지명도가 높다. 원곡은 일본 가수 코야나기 유키의 것인데, 원곡의 락 요소를 발라드적 요소로 편곡하고 가사도 일부 바꾼 리메이크곡. 이후 SBS '김윤아의 뮤직웨이브'에서 두 가수가 한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
이후 일본 활동, 일부 팬들 사이에서 화요비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5집과 리메이크 앨범을 거친다.
2007년, 몇년 전부터 앓아오던 성대낭종이 악화되어 수술을 받았다. 수술 회복 이후 2008년 초 6집 활동을 시작하고,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로 큰 인기를 얻었다. 특유의 환희와의 앙상블은 코믹 그 자체. 자세한 사항은 후술할 문서 참조.
예능의 파급력은 음원에도 미쳐, 그때를 즈음하여 냈던 음원인 <반쪽>, <나 같은 여자>, <마취> 모두 음원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정규 7집 타이틀 곡 <BYE BYE BYE>는 당시의 음원 강자였던 원더걸스의 <2DT>를 위협하는 성적을 냈다.
2013년 9월 9일, 서울종합예술학교의 실용음악예술학부 보컬과 겸임교수로 임용됐다.
새 미니 앨범 <820211>의 선공개곡인 <마주보기>와 함께 다큐 에세이를 공개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화요비와 함께 출연한 김성주가 나레이션을 맡았다.
2014년 12월 30일, 앨범 발매 전 연말공연 중 실신하여 병원에 후송되어 콘서트가 도중 취소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전액 환불 조치를 해주고, 소속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요비가 무릎을 꿇고 사과 동영상을 올리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기 까지했다. 다음날 공연에는 차질 없이 진행하여 잘 마무리 하였다.
2015년 1월 15일, EP 앨범 <820211>을 발매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2018년, 이름을 다시 박화요비로 변경하여 신보로 컴백 예정.
2020년 3월 기준으로 이름을 박화요비로 바꾼이후 공식적인 소식은 없고 가끔식 행사소식만 들을 수 있었고 그나마 최근에는 본인이 팬톡방, 팬카페등에서 나타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2021년 1월 27일 싱글 앨범 "바람 같은 그대를"을 음원 사이트와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박화요비로 다시 바꾼 이후 첫 앨범이다.
4.2. 방송 및 예능 활동
- 뮤지컬 바람의 나라,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SBS X맨
- MBC 우리 결혼했어요
- KBS 2TV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 올리브 마스터셰프 코리아 셀러브리티 등 다수
4집 활동 도중, 추후 화요비의 제2의 전성기를 열어준 예능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녀가 두각을 나타난 예능 프로그램은 KBS 2TV의 상상플러스로, 그전에는 음악 방송에만 출연해왔기 때문에 그녀의 발언과 화제성의 파급력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이휘재를 비롯한 출연진들을 빵 터지게 한 '케이블 TV는 한 것을 자꾸 틀어준다는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비슷한 기믹을 이어 '비디오' 관련 소재를 SBS X맨을 찾아라에서 사용하여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KBS 2TV 위기탈출 넘버원 39회[16] 에서는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이후 출연한 SBS X맨을 찾아라를 기점으로 대중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얻으며 화요비란 가수, 아니 '연예인'이자 방송인을 대중에게 알리는 확고한 기회가 된다.
이전의 예능 출연에 비해 더더욱 대중적인 알림과 이미지를 구축한 것은 2008년 한가위 특집부터 출연한 우리 결혼했어요. 지고지순(?)한 여성적인 매력이 부각되고 특유의 말투와 캐릭터성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로, 무뚝뚝한 남자인 환희와의 앙상블은 팬들 입장에서보면 거의 환상 그 자체였다. 환희의 다소 마초적인 모습까지 화요비에 대한 여성 시청자들의 관심도를 상승시켰다는 점에 있어서 이래저래 시너지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던 셈. 이후 언터쳐블의 슬리피와 연애 사실이 알려지며 '가상결혼'에 대한 진실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한동안 고정출연한 예능 출연은 없다가 2013년 2월 22일, 마스터셰프 코리아 셀러브리티의 출연자로 참가했다. 평소 요리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보이던 터라 팬들의 이목 집중. 발 부상으로 깁스를 하고 나오는 투혼을 발휘.
복면가왕 37차 경연에서 아씨가 타고 있어요 꽃가마로 참가해 통금 12시 호박마차, 참 외롭다를 차례차례 꺾었으며 결승전 상대인 뫼비우스의 띠에 이어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자신은 방송에서 타이틀 곡만 하게 되니까 다른 장르의 노래를 해보고 싶어서 나왔으며, 또한 데뷔한 지 16년이 되었는데도 부모님이 자신 노래를 휴대폰 컬러링으로 안 해 놓아서 기왕이면 모두가 사랑하는 프로그램에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밝혔다. 그 뒤 43차 경연에서 판정단으로 합류했다.
5. 성대 낭종과 음악적 변화
정규 6집 앨범 녹음 중, 성대 종양 진단을 받아 성대 수술을 받고 잠시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그 이후로 그녀의 가창 스타일은 최대의 변화를 겪는다. 흔히 ''''성대 수술이 잘못 되어서 기량이 떨어지고 음색이 부드럽고 가는 미성(1~5집)에서 굵고 소울풀한 탁성(7집~현재)으로 변했다''''라고 생각하는데 명백한 오해다.
화요비는 흔한 성대결절이 아니라 유착성 '''성대낭종'''에 가까워 혹을 제거했기 때문에 음색이 변했을 수 있으나, 수술 이후 화요비의 음색은 기존의 생각과는 달리 더 맑고 얇게 변화했다. 그 이후의 점점 소울풀해지고 굵어지는 음색의 변화는 본인의 음악적 지향성의 변화에 의한 것.
또 최근 '그 사람' 라이브 불안 때문에 화요비의 실력을 성대 수술로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전부터 화요비는 컨디션에 영향을 많이 받는 가수였고 박자 타는 것이 독특해 정박을 중시하는 한국 사람들의 기대와 어긋날 수 있다.
다음은 그녀가 성대 수술 이후에도 건재하다는 사례들.
- 성대 수술 후인 2008년도 콘서트에서는 데뷔 초반의 음색으로 '어떤가요', '그런 일은' 등 성대 수술 전의 스타일을 완벽히 재현했다.
- 2011년 휘트니 휴스턴의 'run to you', 'why does it hurt so bad'을 대학 축제와 합동콘서트에서 완벽히 소화.
- 2011년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 당시 변화된 창법으로 '어떤가요'를 불렀지만, 최고음 부분에서는 성대 수술 전의 음색이 짙게 묻어 나왔다.
- 자신의 의향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다는 드라마 OST에서는 성대 수술 전의 음색을 풍기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마취'.
- 성대결절 이후 그 어렵다는 'run to you' 는 화요비가 행사장에서 가장 즐겨 하는 선곡 중에 하나이다.
- 2014년 연말 전날 실신해서 목이 다 쉬어 화요비의 강점인 간드러지는 음색이 없는 상태에서 가성과 진성만으로 20곡을 소화.
그러나 2015년 기준 과거 창법으로 부른 것 같은 노래[17] 를 들어봐도 100% 옛날 2, 3집 시절의 목소리가 나진 않는다. 앨범을 낼 때마다, 노래를 바꿀 때마다 음색이 확연히 달라지는 후술할 화요비의 특성과 지나온 세월이 긴 만큼 1~2집 때의 음색을 다시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일 듯 하다.
그럼에도 특정 장르의 음악적인 기량만큼은 현재가 최고라는 인식이 있는데 다음은 그 사례들이다.
- 2004년 문명진과 부른 'slow jam'과 2013년 부른 'slow jam'을 비교해보면 어느 쪽이 더 파워풀하고 흑인 음악에 적합한지 잘 알 수 있다.
- 데뷔 초반과 2013년의 '그런 일은'을 비교해보면 데뷔 초반 음색이 발라드에 더 적합하긴 하지만, 최고음 부분은 13년 쪽도 손색 없는 고음인 데다 성량은 더 크고 발성은 더 탄탄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현재 화요비는 '데뷔 초반의 부드러운 음색은 예전만 못하지만, 카랑카랑한 고음은 데뷔 때와 비슷하게 낼 수 있으며 흑인음악적 소울, 음색의 유니크함, 완숙도나 성량은 지금이 발전된 완성형 보컬' 이라는 것이 팬들의 중론. 하지만 예전의 음색을 그리워하는 팬들도 많다.
이렇게 독보적이고 유니크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왜 많냐고 하면, 음악 방송과 음원의 특성상 타이틀 곡에서는 가창력을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요비 본인이 레잇백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좋은 평을 얻지 못한 이유도 크다.
여담으로, 저음과 고음 모두 특화 되어있다. 저음은 0옥타브 시[18] , 믹스 고음은 4옥타브 레[19] 최근 불후의 명곡에서도 라이브로 3옥타브 솔#을 냈다![20] 최근 정규 8집에서도 3옥타브 솔이 등장한다.[21]
6. 여담
- 피아노를 잘 쳐 예전의 장래 희망은 클래식 피아니스트였다는 듯. 인터뷰에서도 가수를 하지 않았다면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 성격이 특이하다. 말투 등과 더불어 예능에 매우 적합하고 흥행력(!)도 좋다.
- 데뷔했을때부터 외국 팝송을 잘 부르는 것으로 유명해진 데다, 어눌한 말투와 특이한 예명 때문에[22] 교포출신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군산 태생에 포항에서 자라서 대학교까지 전부 한국에서 다닌 토종 한국인이며 외국에 산 적도 없다. 기자들도 오해해서 데뷔 초에는 박정현과 엮어서 교포 출신 라이벌로 엮는 기사도 있었을 정도. 다만 영어 실력이 나쁜 편은 아닌데 라디오에서 밝히길 아버지 사업 때문에 외국으로 이민을 갈 수도 있었어서 영어 공부를 많이 하기는 했다고 한다.
- 언터쳐블의 랩퍼 슬리피와 공개연애를 했었다. 차후 공개 연애는 안할 거라고.
- 본인 말에 따르면 불 같은 사랑을 하는 여자라고.
- 청담동 황금 비율이 본인 별명.
- 은근히 문신을 많이 했다. 팔과 다리에 새긴 문신은 성경 구절이라고.
- 창법만큼이나 비주얼도 다이나믹한데, 캐릭터가 확실해서 그렇지 사실 앨범 낼 때마다 비주얼 이 확확 변하는 편. 앨범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점점 아름다워진다.
- 뛰어난 가창력에 대한 일화들이 상당히 많으며 성시경이 여러 차례 그녀의 가창력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 대한민국에서 가장 팝을 잘 소화하는 가수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영어 발음도 수준급이고 팝 표현력과 완창 능력이 출중해 가끔은 본인 노래 라이브보다 팝을 더 잘 소화하기도. 어느 팝을 불러도 기본 중박은 한다.
- 1대 100 161회에서 100인으로 참가해 우승 상금 532만원을 받았으며, 271회에 1인으로 참가했을 때는 평소보다 어려운 난도로 인해 4단계에서 광탈했다.
- 그녀의 중학교 담임에 따르면 노래를 잘 불러 당시 존재하던 야간학습까지 빼주며 노래 레슨을 보내주었다고.
- 포항중앙여고 재학 당시 음악교사에 따르면 음악 교과서의 노래를 R&B처럼 불렀다고 한다.
- 신인시절 본인의 CD를 방송국에 돌릴때 유재석이 가수의 마음이 담긴 작품을 그냥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며 만원씩 걷고 자기 돈 10만원을 얹어 화요비에게 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 몸매가 글래머러스하고 좋다.
- 다음 팬카페에 종종 들어 와서 가끔씩 'From. Yobi'에 글을 남긴다. 팬들의 글에 꼼꼼히 댓글을 달아주기도 한다. 과거엔 팬들과 채팅도 했었다.
- 2016년 디시인사이드 화요비갤에 '레알레아'라는 닉네임으로 인증글을 몇 개 남겼다.
- 2019년 카카오톡 오픈채팅 화요비 팬방에 몇 차례 들어와서 팬들과 대화를 나눴다. 사진이나 음성 녹음도 했었다.
- 포항에 있는 군부대 근처, 모 피자 가게의 딸로 유명했다는 후문. 지금은 부모님이 피자집을 운영하지 않는듯.
7. 관련 문서
[1] 박미영에서 개명[2] 아버지가 대한민국 군무원이라서 3살에 포항으로 이사가서 고등학교까지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하여 졸업했다.[3] 데뷔 초에는 창법이나 음색만 보고 교포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으며 말하는 스타일도 컨셉으로 웅얼거리는 게 많아서 교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4] 포항중앙여자고등학교에서 전학. 동대전고등학교도 다녔다고 한다.[5] 소속사 음악권력[6] 다음 팬카페[7] '개구리 왕눈이'의 여자친구인 아로미에서 따온걸로 보인다. 화요비와 묘하게 외모가 닮았다.[8] 박효신 1집 등에 피처링하던 시절 기준.[9] 화요일에 태어나서 화요비란 말이 있지만 전혀 사실무근. 1982년 2월 11일은 화요일이 아닌 '''목요일'''이었다. . 어쩌면 예명을 지은 날이 화요일이었을수도..?[10] 이때 박효신과 함께 나온다.[11] 이름 덕분에, 화요일과 비오는 날에는 화요비의 음악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비오는 화요일에 화요비 음악을 들으면 금상첨화... 실제로, 비오는 화요일이면 라디오 신청곡으로 박화요비 노래를 틀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12] 지금은 리즈 시절로 보는 2~3집 활동 당시에도 1집 때와 창법과 음색이 바뀌었다고 성토하는 팬들도 많았다.[13] 리메이크 앨범 등은 제외. [14] 싱글, 베스트, 리메이크 앨범 등은 제외. 일부 중복이 있을 수 있다. [15] '박화요비'의 '박화'가 'バカ' 로 들릴 수 있다. [16] 2006년 4월 29일 방송분[17] '그 사람', '마주보기', '나의 우주' 등.[18] 거위의 꿈[19] On & on, 라이브는 'Nobody supposed to be here', 'Careless whisper'의 3옥타브 라.[20] '당신은 모르실거야'(혜은이)[21] '만약에 우리 둘 중 하나라도'(8집 버전)[22] 박화요비라는 예명을 본명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으며, 2008년 박미영에서 박레아로 개명을 하면서 더욱 오해가 커졌다.[23]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조합일 수 있는데, 그 당시 화요비는 20대였고 한승연과 강민경이 지금과 같은 위상이 아니었고, 당시 화요비는 우결로 상한가를 달리고 있었으니, 그중에 나름대로 가장 핫한 스타였다...[24] '불후의 명곡'에서 그룹 '틴탑'의 무대를 보고 한 조언. 꽤 직접적이었기에 일부 틴탑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적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