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요리
1. 개요
징차이(京菜)라고도 부르며, 베이징 시지역의 요리 뿐 아니라 인근의 지역 요리를 포함한 개념이다. 타이완 요리도 북경요리의 분파로 취급된다. 지역 특성상 밀 생산량이 많아서 만두나 면 계열의 분식이 많으며, 북쪽이라 추워서 그런지 튀김, 볶음, 구이 요리 같은 기름진 음식도 많다. 특히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로 이어지는 3대 통일왕조의 수도가 북경에 있었기 때문에 고급 요리라는 이미지가 있다.
대표하는 요리로는 베이징 덕이라고 불리는 북경 오리 구이나, 짜장면의 기원이 된 작장면 등이 유명하다. 참고로, 이 요리들을 산동 요리 항목에서도 볼 수 있을 텐데, 북경요리를 산동요리의 지류로 보기 때문이다.
몽골 요리의 영향이 강한 편인데 내몽골자치구와 붙어 있고 몽골계 종족인 몽골족이나 만주족[1] 이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언급된 만주족을 비롯한 만주의 여러 민족들 음식(만주 요리)의 영향도 받았다. 몽골계의 지파인 거란은 탕후루를 남겼고, 훗날 만주족이라 불리는 일부 여진계 민족은 물만두와 군만두를 남겼다.
2. 역사
중국을 대표하는 북경은 고대시대에 처음으로 연나라가 수도를 건설했다. 본격적으로는 북중국 지역일대의 정복왕조 시기부터 다시 도시로서 발전되었으며, 요나라가 송나라 북부 일부를 정복한 뒤 주요 도시를 건설했고, 금나라가 수도로 자리 잡으면서부터 도시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2] 요, 금 왕조 이후 쿠빌라이 이후 원나라, 영락제 이후의 명나라의 수도가 되기도 했으며, 특히 청나라 때는 북경이 가장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였다. 원, 명, 청 3대의 수도였기 때문에 중국의 국가 요리라고 불리며, 현재 북경을 중심으로 산동성, 산서성 태원까지의 요리를 포함한다. 추운 기후를 견디기 위해 기름기를 많이 사용한 고열량 음식은 튀김과 볶음요리가 발달하였고, 지리적·문화적 중심지이기 때문에 궁중 요리 등 주로 고급 요리가 발달하였다.
면, 만두, 육류 요리를 위주로 한 궁정 요리는 중국 요리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큼 그 가짓수가 많다. 베이징이 가장 화려한 문명을 자랑한 것은 청나라 때로, 이때부터 궁중을 중심으로 중국 각지에서 명물 진상품과 우수한 요리사들이 모여 각 지역의 장점만을 받아들인 음식 문화를 발달시켰다. 중국 요리의 별칭인 '청 요리'도 이때 유래된 것이다. 밀의 생산이 많아 면류·만두·전병의 종류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대표적인 음식은 베이징 오리 요리이고,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국집은 대부분 이 베이징 요리법을 따르고 있다. 유명 요리로는 북경오리, 해삼조림, 돼지고기 짜장 볶음 등이 있으며, 흔히 우리가 먹는 짜장면은 북경요리이다. 그 밖에도 코야(오리구이)를 병에 말아서 춘장에 찍어 먹는 요리도 있는데, 북경요리는 좀 달고 짠 것이 특징이지만 북경사람들은 매운 것을 싫어해서 맵게 먹지는 않는다고 한다. 물론 이촌향도 현상으로 베이징에 외지인들이 많이 유입되고 쓰촨 요리나 후난 요리. 구이저우 요리나 한국 요리, 태국 요리. 멕시코 요리. 인도 요리 등 타 지역이나 타 국가 요리가 많이 퍼진 지금에 와서는 딱히 들이맞는다고 보기 힘들지만[3] 어쨌거나 전통적으로 그러하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음식의 색이 연하고, 사용되는 조리법은 지지고, 찌고, 전분을 넣고 끓인 국물을 끼얹는 방법을 사용한다.
3. 대표 요리
- 북경오리통구이 北京烤鸭
- 칭기즈칸구이
- 작장면 炸酱面
- 자오쯔, 빠오쯔 饺子、包子
자오쯔는 중국 북방지역에서 즐겨 먹는 전통음식이며 중국의 설인춘절에는 새해가 시작되는 12시부터 자오쯔를 먹으며 새해를 축하하며 정월 대보름에는 새해 시작 후 첫 보름달을 맞는 기념으로 둥근 자오쯔를 먹는다.
빠오쯔는 자오쯔와 비슷한 고기만두의 일종으로 찐빵 같은 만두피의 질감과 동그스름한 모양이 자오쯔와는 구별되며 빠오쯔의 속 재료로는 다진 고기를 넣은 것도 있다고 한다.
꿔바로우는 얇고 넓적하게 자른 돼지고기에 전분가루[6] 를 묻혀 튀긴 음식으로 쫀득하며 매우 시큼한 소스와 고소한 돼지고기 튀김의 조화를 보여주는 음식이다. 닭 대신 돼지고기를 써서 만든 오랜지 치킨과 맛과 식감이 얼추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 피단 (삭힌 오리알) 皮蛋
[1] 몽골계는 아니지만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몽골계 민족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2] 요나라 때는 남경석진부라는 5경 중 하나에 속하는 도시였고, 금나라 때는 중도대흥부라고 불리는 수도였다.[3] 특히 중국의 초대 주석인 마오쩌둥과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은 매운음식을 매우 즐겨먹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4] 본래는 폔이팡이 400년이나 먼저 생긴 데다 북경의 터줏대감이었지만 중국의 험난한 현대사를 거치며 주인이 국민당 지지파였던 폔이팡은 국민당 정권 몰락 이후 함께 다소 기세가 줄어들었다. 반면 취안쥐더는 공산당 정권의 요구에 잘 부응하여 살아남았고, 저우언라이가 헨리 키신저와 식사를 하며 이 식당의 카오야를 대접했기에 엄청난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현재는 취안쥐더 쪽이 규모가 더 큰데, 막상 손님의 적지 않은 수는 북경에 갓 상경한 사람들이거나 외국인들이라고. 북경 토박이들은 폔이팡을 더 찾는다. 물론 둘다 맛집으로 알려져있기는 하기에 개혁개방 이후로는 둘다 전국 각지에 지점을 내는 등 잘나가고있기는 하다. [5] 물론 다른이유도 있다. 취안쥐더가 체인사업을 하면서 조리의 편리성을 내세워서 오리구이를 숯불로 굽던 방식에서 전기오븐으로 굽는 방식으로 변경했는데, 맛의 차이가 많이 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과거 취안쥐더를 찾은 북경 토박이들조차.펜이팡쪽으로 상당수 떠나게 된 것이다.[6] 한국에서 찹쌀 탕수육이라 불리기도 하나 본래는 쌀을 쓰지 않고 튀김옷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