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잔 올 스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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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록 밴드. '''일본을 대표하는 밴드'''로, 1978년에 데뷔해 2020년 현재까지 롱런하며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그룹이다. 2018년 6월 25일 기준 40년째 활동을 돌파하고 2020년 6월 25일 기준으로는 42년차 현역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전설적인 록 밴드.
일본식 발음으로 정확히 하면 '사잔 오-루 스타즈'이다. 외래어의 일본식 발음. 약칭으로는 주로 사잔(サザン)이라고 발음한다. 중국에서는 초기엔 南天群星(남천군성)이라고 표기하였다가 현재는 영어표기 Southern All Stars와 의미가 유사한 南方之星(남방지성)이라고 표기한다.
밴드의 시작점은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내 음악서클이었던 AFT에서 분열되어 나온 Better days의 멤버였던 쿠와타 케이스케가 결성한 것을 밴드의 시초로 보며, (멤버 중 4명이 아오야마가쿠인 재학중이었으며 드러머인 마츠다와 퍼커션의 노자와는 외부영입. 아오야마가쿠인을 졸업한 멤버는 베이스의 세키와 키보드의 하라 2명뿐) 77년 야마하에서 개최한 'EAST WEST 77' 록 페스티벌에서 '女呼んでブギ'라는 곡으로 록 보컬상을 수상한다.
1978년 6월 25일에 정식 메이져 데뷔를 하게 되며, 동시에 발매한 데뷔싱글 勝手にシンドバッド(마음대로 신밧드)가 51만 6천장으로 대히트하며 일본 밴드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후에도 싱글을 계속 히트시키며 인기 밴드로서의 위치를 견고히 한다.
2. 기록
2017년 7월 기준 '''음반 총 판매량은 4897만장''', 일본 '''역대 음반판매량 5위'''[2] 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사잔 올 스타즈가 2008년 9월부터 2013년 6월 초반까지 당시 은퇴라고 여겨질 정도로 휴식기를 길게 가졌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판매량이다.
2015년 8월 뮤직 스테이션 스페셜에서는 쇼와 vs 헤이세이 최고 판매량 아티스트 랭킹을 매겼는데 여기서 쇼와 시대 1237만 장으로 12위 + 헤이세이 시대 3657만 장으로 8위라고 소개되었다. 이 랭킹에서 쇼와 시대와 헤이세이 시대 양쪽에 모두 랭크인 된 것은 그룹에서는 사잔 올 스타즈, 솔로에서는 국민 여가수격인 마츠토야 유미가 유일하다. 사잔의 활동 40주년인 2018년을 맞아 8월 1일에 베스트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라서 사잔 올 스타즈가 드디어 역대 총누적 5천만장 돌파를 해낼 것인지가 관심사이다.
아래부터는 일본 특유의 특이한 랭킹 산출이므로 재미로 보도록 하자.[3]
한때 '''일본 역대 싱글 판매량 TOP10[4] 와 일본 역대 앨범 판매량 TOP10[5] 에 동시 랭크 했었다.''' 지금은 다른 앨범들의 판매량이 올라가 앨범 랭킹이 아슬아슬하게 11위로 떨어져서 과거형이 되었지만, 이 탑10 안에 들려면 앨범은 350만, 싱글은 250만 이상 팔아야 올릴 수 있는 업적이며, CD 총판매량에서 사잔에 앞서있는 B'z, 미스칠, 아유조차도 싱글과 앨범 모두 총판매량 TOP 10을 달성하는 기록은 올리지 못했다. 애당초 이러한 판매량을 십여년 이상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부터가 엄청난 능력이다.
동시에 사잔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이른바 '4개년대'에 안에 싱글[6][7] 과 앨범[8] , 그리고 영상매체[9] 판매 랭킹에서 오리콘 1위를 달성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
아무리 인기가 많은 밴드라고 하여도 80년대, 90년대, 00년대, 10년대 40년간 오리콘 차트에서 10년 단위로 한번씩 1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사잔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사랑받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증거이다. 일본의 수많은 밴드들이 대중적인 인기가 떨어진 뒤에도 라이브를 하며 활동을 계속하고 있지만 사잔은 앨범 판매량과 대형 라이브 양쪽 다 그 어떤 현역 밴드에도 뒤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중견 밴드가 된 이후 2000년대에 들어와 발매한 싱글 TSUNAMI는 공식 기록상으로 293만장 6천장을 넘은 판매고[10] 를 올렸다. 이 곡을 통해 사잔은 제42회 일본음악대상을 수상했다. 이 곡은 한국에서는 가수 V.ONE이 리메이크해서 '그런가봐요'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많은 이들이 잘 알지는 못하지만 1992년에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에서 해외 공연을 가진 적도 있다.[11] 콘서트 문단에 나오는 南天群星 北京で逢いましょう 이라는 공연이다. 쿠와타 케이스케와의 절친인 당시 인기 아이돌 사이조 히데키 다음으로 중국 본토에서 공연을 가진 기록도 가지고 있다. 참고로 1992년은 공산권 붕괴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이 이뤄진지 정말 얼마 안된 시절이였는데, 영상에서 환호하는 중국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 인터넷이 없던 시절임에도 해외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12] 이때 공연 영상은 당시 NHK가 50분 가량 편집한 버전으로 방영하였고, 현재도 간간히 발견할 수 있다. 공연 후반부에 쿠와타 케이스케가 간주중 어설픈 영어와 중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관객들에게, "베이징, 고마워, 우리 꼭 다시 올게. 알았지? 다음에 우리 여기서 다시 만나. OK?"라고 외치는 부분은 뭉클해 진다.
콘서트에서도 상당한 티켓파워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닛케이 스타일에서 매년 통계 발표를 하는 1년간 각 가수들의 콘서트 관객 동원력 랭킹을 발표하는데, 데뷔 41년차에 가진 2019년 콘서트 동원력 랭킹에서는 앞뒤로 거대 아이돌 팬덤들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도 관객 약 65만 9천명을 모아 전체 4위를 기록하는 노익장을 발휘했다.
3. 록 밴드 대중화의 선구자
사잔의 데뷔 전에는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록음악의 위치는 당시 엔카나 가요 등의 대중음악과 비교하여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다. 성장기로 여겨지는 1969년~1972년 사이에 데뷔한 선배 밴드인 RCサクセション(RC 석세션, 1969년~1991년), 핫피 엔도(1969년~1972년), キャロル(CAROL, 1972년~1975년), オフコース(OFF COURSE, 1969년~1989년)[13][14] 등이 기반을 닦고, 캐롤에서 솔로로 데뷔한 야자와 에이키치가 홀로 록음악을 대중 앞에 가져오는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사잔은 그런 일본 음악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둔 록밴드로, 록밴드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78년 데뷔와 동시에 주목을 끌면서 데뷔한 직후 이듬해 홍백가합전에 출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 봐도 당시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이후 쿠와타가 솔로 활동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실험정신 가득한 하드록 활동으로 눈을 돌린 구와타 밴드 시절까지 80년대 상황에서 사잔은 일본 음악계에서 밴드라는 형태로 마츠다 세이코 같은 초거물 솔로 아티스트들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유일한 밴드였으며[15] ,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정도가 되어서야 안전지대, 보위 같은 록 밴드가 각자 이뤄온 음악성을 기반으로 인기 음악 프로그램에 단골로 나오는 대중적 인기와 확장까지로 이뤄지게 되었고, 비로소 록 장르가 일본 음악의 주류로 자리잡게 된다.
타 밴드 팬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사잔의 데뷔연도인 1978년부터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TBS 더 베스트 텐 등에서 밴드음악은 대중매체 기준으로는 비주류인 편이였다. 단적으로 데뷔연도 당시 사잔의 평가가 후한 평가라서 파격적인 음악을 하는 밴드사운드, 깎아내리는 쪽에서는 돌+I 밴드 취급이였다.[16] 사실 그랬기에 1979년에 바로 '이토시노 에리'가 나온 것이 센세이션이기도 했다. 지금도 사잔 3대 발라드곡으로 꼽히는 이토시노 에리 때문에 당시 '마음대로 신밧드' 같은 곡이 다시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던 대중과 음악평론계에서 '어? 19금 밴드가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 노래를 만들었다고?'라는 충격을 받았으며, 쉽게 일본가요계를 접수하게 되었다.[17] 밴드로써 대중음악 프로그램의 단골 출연자로 나올 수 있는 인지도라고 했을 때는 사잔이 먼저 개척해서 탑클래스로 올라간 다음에 타 밴드들도 대중적 인지도와 출연 흥행카드를 거머쥐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알기 쉽게 쓰자면 데뷔 당시 노라조 컨셉으로 데뷔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파급력을 가져온 밴드가 약 40년 동안 활동을 이오면서 그 위상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잔의 특성을 본다면 한국 가수에서 정확히 딱 누군가로 대입하기가 어려운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데뷔 앨범의 음악성이 당시로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는 점, 이 후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면서 넓은 음악적 저변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는 당시 한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고 활동한 산울림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공연 기술이나 퍼포먼스 등에서는 싸이 정도라고 볼 수 있다.
4. 가사와 연주, 콘서트의 특성
가사 내용은 사랑, 고향, 사회풍자 등 넓은 범위에 걸쳐 있으며, 섹스를 대담하게 표현한 가사도 있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연주 스타일 또한 상당히 인상적인 밴드이다. 당장 데뷔곡인 勝手にシンドバッド은 당시 매우 파격적인 스타일로 들고 나와 메이저 음악으로 진출하여 화제를 모았다. 이를 통해 당시 대중들에게 괴팍한 밴드가 등장했다고 이미지가 각인되었을 때 1년만에 정반대 스타일의 발라드곡인 いとしのエリー를 들고 나온 것에서부터 음악 저변이 상당히 넓음을 입증해냈다.[18]
락밴드임에도 관현악과 컴퓨터 사운드의 배치와 조화를 이뤄내 단순히 뒤에 깔리는 배경음이 아닌 노래 진행의 한 축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성공한 명곡이 꽤 많다. 1984년에 발매한 싱글앨범 ミス・ブランニュー・デイ(MISS BRAND-NEW DAY)에서는 당시 사회상을 담아내는 가사와 매우 독특하면서 인상적인 신디사이저 인트로 연주를 앞세운 파격성을 보여주었고, 1985년에 발매한 앨범 KAMAKURA 라는 앨범에 수록된 Computer Children이란 노래는 PC 보급에 따른 인간군상을 대중음악으로 노래하는 실험정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음악 스타일은 신나는 팝 록을 기반으로 하여 약간 엔카풍의 멜로디를 도입하는 락발라드를 만드는 등 대중성있는 스타일이나, 愛の言靈(사랑의 언령)같은 곡에서는 사이키델릭한 기법과 인도네시아어 랩을 삽입하는 등 대담한 시도를 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사잔 올 스타즈의 음악성이 바뀌었다며 큰 논란과 파격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와 함께 공격적인 기타 사운드를 앞세운 하드 록 음악도 유명하고 일레트로닉 음악에 도전하는 등 웬만한 분야에 적극 도전하는 음악을 보여주고 있다. 음반이 엄청난 인기를 얻고 음악적의 수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등 실력도 대단한 밴드이다.
콘서트에서는 자신들이 발매한 히트곡을 새로운 방향으로 편곡하는 도전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공연 횟수, 연차가 늘어날수록 내공이 쌓이면서 같은 노래더라도 새롭게 편곡하며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곡에 맞는 무대연출을 구현하며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댄스팀의 활용을 잘 하기도 하면서 노래에 어울리는 안무팀의 연출까지 꾸준히 신경쓰는 편이다. 이전까지는 조명배치를 통한 무대연출을 하였는데 전광판에 영상효과를 띄우는 방식을 도입한 이래 공연이 더욱 화려해졌다. 연주실력, 퍼포먼스, 안무, 조명효과, 레이저, 전광판 CG 등 나이를 먹은 밴드라는 점이 믿겨지지 않게 매우 폭넓고 빠르게 흡수하여 활용하고 있다. 사잔 콘서트의 특징 중 하나로 불기둥 효과, 폭죽 발사를 정말 아낌없이 활용한다는 것이 있다. 심지어 실내공연인 요코하마 아레나 혹은 돔구장에서도 화끈하게 불을 질러버릴 정도. 이 점에 대해서는 국내 가수로 치면 싸이의 공연 실황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가사나 콘서트에서의 퍼포먼스나 보면 이게 방송으로 되나? 싶을 정도로 일본에서 가장 독한 섹드립의 대가라고 할 만하다. 그냥 보컬 쿠와타의 특성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사례를 열거하자면 발매한 히트곡의 제목이 '''マンピーのG★SPOT'''[19] 이라던가 '''エロティカ・セブン EROTICA SEVEN''' 이라던가 식이고, ボディ・スペシャルII (BODY SPECIAL) 이 싱글의 경우에는 표지를 토플리스인 사진으로 정식 발매했다!!! 후방주의 그리고 콘서트에서 섹드립의 경지를 넘어서서 방송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저질댄스를 춘다던가, 마이크를 고간에 댄다던가, 게스트로 그라비아 아이돌을 불러놓고 한번 대줘!(...)라고 하더니 얻어맞는 퍼포먼스를 한다던가, 망X를 가사 도중에 당당히 외친다던가 하는 무지막지한 퍼포먼스를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미친 섹드립을 쏟아냄에도 성적인 문란함이나 여성문제로 한번도 시달린 적이 없을 정도로 사생활이 매우 깨끗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일본 연예계의 추문 기사를 쏟아내는 수준이 매우 지독한 점을 생각하면 멤버 하라 유코와 결혼한 이래 지금도 일본의 유명인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금슬 좋은 부부이면서 찌라시에서도 여성 문제로 단 한번도 시달린 적이 없다.
5. 콘서트 목록
사잔 올 스타즈/콘서트 문서 참고. 경력에 걸맞게 콘서트 목록을 단순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워낙 방대하여 따로 서술.
6. 국내에서의 인지도
국내에서는 예전부터 일본 음악을 접하던 사람들 사이에 매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 홍스구락부로 유명한 조문홍도 사잔 오루 스타즈 팬 중의 한명이다. 다만 대중적인 인지도는 X JAPAN 등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며 경력이 오래된 밴드라 그런지 매니아들만 찾아 듣는 정도. 물론 일본 음악계에서의 영향력이 대단하다 보니 관련 업계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수준이긴 하다.
의외로 일부 세대에선 '''"구와타 밴드"'''라고 하면 안다는 식으로 묘한 인지도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사잔의 노래가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에 사잔 올 스타즈의 보컬인 쿠와타 케이스케가 활동했던 한정밴드 "KUWATA BAND"의 앨범, 쿠와타 솔로 1집과 함께 나이트클럽을 통해 들어온 것이 계기인데 이때 사잔 시절, 쿠와타 밴드 시절, 쿠와타 솔로 노래들이 뭉뚱그려서 '''구와타 밴드'''라고 알려졌기 때문. 그래서 사잔이라는 이름은 인지도가 매우 낮으나, 구와타 밴드라고 하면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
그나마 과거에 비해선 꾸준한 방송활동과 드라마 주제가 참여로 국내 인지도가 이전보다 나아진 편이다. 2007년 솔로활동 중에 낸 드라마 프로포즈 대작전의 엔딩곡인 明日晴れるかな 일드 시청자들을 통해 인지도를 다시 쌓게 되었다. 밴드로는 2015년에 드라마 유성 왜건의 주제가인 イヤな事だらけの世の中で를 맡았다.
리더인 쿠와타 케이스케는 90년대 그가 한국계라는 루머를 만드는 데 일조한 LOVE KOREA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서 KOREA는 한국만 말한다기보단 한반도에서 건너온 재일교포들을 일본인의 시각에서 본 '재일한국인 문화'에 대한, 쿠와타 나름의 애정이 깃든 곡이다. 그와 함께 한국에 대한 친근감과 일정 수준 이상의 한국어 듣기, 말하기도 가능한 것을 공식 석상에서 종종 보여왔다. 자세한 내용은 쿠와타 케이스케 문서 참고.
7. 2013년, 5년만의 컴백과 이후 활동
7.1. 2013년
2008년에 밴드 해산이라고 전망했을 정도로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몰랐던 활동중지가 이어졌다가 2013년, 5년만에 활동재개 선언과 함께 35주년 싱글과 전국 스타디움 투어를 발표했다. 그리고 활동재개 선언과 동시에 소속사 '''아뮤즈의 주가가 폭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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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08년 사잔 올 스타즈의 활동중지 선언 때 아뮤즈의 주가가 폭락했던 전례가 있었다. 이후 한번 더 폭락한 적이 있었는데 사잔의 보컬인 쿠와타 케이스케의 식도암 확진 보도 이후였다. 그만큼 일본 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밴드다.
7.1.1. 피스와 하이라이트
근데 싱글로 내놓은 노래 ピースとハイライト(평화와 하이라이트)[20] 가 아시아의 평화와 화해를 노래한 곡이라 꽤나 화제가 되었다.
가사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에서 보듯 초딩들이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가면과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가면을 쓰고 투닥투닥하는 모습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이 그려진 가면을 쓰고 양복을 입은채 투닥투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걸 사잔 올 스타즈 멤버들이 말리면서 평화를 노래한다는 게 주요 내용. 그도 그럴 것이 일본에서는 민감할 수 있는 정치적 소재를 저렇게 직설적으로 이슈화시키는 것을 상업적으로 발매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何気なく見たニュースで(무심코 본 뉴스에서) お隣の人が怒ってた(이웃나라 사람들이 화를 내는걸 보았어)
敎科書は現代史をやる前に時間切れ (교과서는 현대사를 다루기 전에 끝나버리지)
そこが一番知りたいのに何でそうなっちゃうの (그 부분이 가장 알고 싶은건데 왜 그렇게 되어버린거야?)
都合のいい大儀名分で争いを仕掛けて(허울 좋은 대의명분으로 싸움을 걸고)
裸の王が牛耳る世は狂気 (벌거벗은 왕이 좌지우지하는 세상은 광기에 휩싸여 있어)
20世紀で懲りたはずでしょう? (그런 짓은 20세기 때 질릴만큼 했잖아?)
팀의 리더 쿠와타 케이스케는 "뉴스를 보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주변 나라, 즉 한국·중국과의 관계였다. 대중가수로서 왕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사잔 올 스타즈가 활동을 재개하는 장을 빌려 노래로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가나가와 신문은 사설에서 "주변 나라들과 융화하자고 한마디 하면 인터넷 공간에서 반일이니 매국노니 하는 악담이 쏟아진다. 그 창끝은 사잔 올 스타즈에게도 향할 것이다"라면서 "한번 암에 쓰러졌다 컴백한 이 사람(쿠와타)이야말로 신뢰할 만한 언어로 메시지를 전하는 소중함을 갖고 있다"고 썼다.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한 이 노래는 10대를 비롯해 4개 연령대에서 선호도 1위로 꼽혔다.기사 어디서 많이 보던 광경인데 그러다가 급기야는 '이 노래는 일본이 아닌 중국과 한국에게 충고하는 노래'라면서 인지부조화적인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활동재개 전국투어를 시작하기 하루 전인 2013년 8월 9일 밤 10시에 NHK에서 35周年スペシャル 復活!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の流儀(35주년 스페셜 부활! 사잔 올 스타즈의 방식)을 편성하였다.당시 NHK-FM 홍보 블로그 내용 NHK 101 스튜디오에서 가진 미니 콘서트를 방영하였는데 특이점으로 NHK 전 채널에서 방영하였다. 여기에는 해외로 송출되는 채널도 포함. 즉, 당시 이 공연 방송분을 케이블 채널이나 IPTV를 통해 NHK가 공급되는 한국의 가정에서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이 노래로 인해 노래가 발표되고 나서 고베 콘서트 당시[21] 공연을 보러 온 한국팬들에게 한국인임을 드러내지 말아달라는 주의까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9월로 넘어가서는 그런 험악한 분위기는 덜해졌다... 아니 마지막 공연이였던 미야기 콘서트에서 "피스와 하이라이트"에 나온 배경화면은 가장 독한 버전이였다(!) 그리고 블루레이/DVD를 발매할 때 기간한정으로 이 노래의 미야기 콘서트 버전을 무료공개했는데 당시 배경화면에 어버이연합도 등장하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집회 화면도 나온다. 당초 기간한정이라는 말과 달리 현재도 고화질로 아직도 걸려있다(...). 슬그머니 기간한정이었다는 말도 뺀 듯 하다. 여담으로, 한동안 빅터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한국 접속을 막아놓은 상태라 VPN이나 우회를 통해 봐야 했으나, 2018년 들어 어느샌가 한국에서의 접속 차단이 풀려서 이제는 한국에서 빅터가 올린 공식 영상을 볼 수 있다.
이것 영상이 발매된 ピースとハイライト 콘서트 버전이다.
그러나 이 '피스와 하이라이트' 의 싱글 CD 에는 2013년 대히트한 카미카제 특공대 소재 영화 '영원의 제로'의 주제가인 蛍(호타루) 가 같이 실렸다. 때문에 이 곡의 의미에 대해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자세한 것은 해당 영화 문서 참고.
7.2. 2014년
2014년에는 9월에 아시안게임 캠페인 곡으로 신곡을 발표한 다음 12월 31일에 토시코시(年越し) 콘서트를 한다고 발표. 우리나라에서 연말 카운트다운 콘서트인 것을 그동안 사잔 올 스타즈는 "사잔 토시코시"라고 해서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개최했는데 2005년 이후로 사잔 올 스타즈의 이름으로는 중지되었다가 9년만에 재개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 콘서트에 대한 기사가 나왔는데 아베 신조 부부가 관객으로 참석한 날에 그 면전에서 중의원 해산을 대놓고 까는 애드립으로 가사를 바꿔 불렀다고 나왔다! 아사히신문 보도내용 경향신문 보도
그리고 12월 31일 콘서트에서 31년만에 NHK 홍백가합전에 참여했다! 홍백가합전 소개에서도 당초 참여가수 목록에 들어있지 않았던 상황. 그리고 현장에서도 앞의 3일간 공연에서는 "홍백... 안나가요 지금까지는"이라고 살짝 흘리다가 당일에는 관객들에게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장의 관객들 입장에서는 기습 이벤트였던 상황. 요코하마 아레나 현장 생중계로 참여했는데 2013년과 2014년 싱글 메인곡 ピースとハイライト와 東京VICTORY를 생중계로 불렀다. 덤으로 홍백가합전 중계가 끝나고 다음 순서에서는 28일 콘서트를 통해 보도가 된 아베의 중의원 해산 비판 가사를 31일 생중계에서도 똑같이 불렀다.
콘서트의 분위기는 팬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다. 9년만에 재개하는 새해맞이 콘서트였다는 점과 홍백가합전 참여 이벤트, 그리고 세트리스트 상에서 80~90년대에 발매한 실험적인 곡들을 콘서트로 다시 연주했다는 점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날 31일 새해맞이 콘서트에서 2015년 3월 31일에 10년만의 오리지널 앨범을 발표하겠다는 것과 2015년 전국투어 계획을 발표하였다. 2005년 전국투어 이후 10년만에 재개하는 도쿄돔을 포함한 5대 돔투어를 포함한 전국투어 일정을 발표. 밴드로써는 최고령 5대돔 투어를 가지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을 포함한 경우에는 오다 카즈마사가 최고령 5대돔 투어 기록 보유자이다. 참고로 2015년의 사잔 올 스타즈 도쿄돔 일정 중 마지막 날 공연이 평일이다! 이유는 도쿄돔 문서 참고.
7.3. 2015년
연초부터 마가 끼인 것인지, 2014년 토시코시 콘서트였던 "양들이라구! 전원집합!"[22] 콘서트 상의 내용을 가지고 극우 세력들이 사잔 올 스타즈를 집중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이 트집잡은 것은 2014년에 쿠와타가 록 뮤지션으로써 최초로 아키히토 덴노로부터 자수포장(우리나라로 치면 문화훈장에 해당)을 받아서 화제가 되었는데 이 훈장을 가지고 농담 따먹기 소재로 써먹었다는 점[23] 과 ピースとハイライト의 가사 내용과 콘서트 상에서 보여주던 영상구성, 콘서트 중 폭소 아일랜드라는 노래에서 아베 신조의 중의원 해산을 비판한 내용, 그리고 2014년 65회 홍백가합전에서 NHK 이원생중계로 등장할 때 히틀러 콧수염을 붙이고 등장한 것 등이고 이걸 공격소재로 삼았다(...).
일본 극우 세력들의 눈에는 쿠와타 케이스케의 그 퍼포먼스가 아키히토 천황에 대한 장난 이라 규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극우세력 자신들에 대한 비방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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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짤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고 실컷 물어뜯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사잔 올 스타즈 공식 홈페이지에 쿠와타 케이스케 명의의 사과문이 올라오는 지경까지 벌어졌다. 해당 사과문 하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사과문이라기보다는 변론서의 성격이 강하다.
이 사과문의 내용을 잘 읽어보면 애당초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적고 그 잘못을 풀어낸게 아니라 관련 논란에 관해 설명을 한다고 한거니 사과문이 아니다(...). 본문을 들어가면 "자수포장 관련 드립은 제가 경솔하게 오버하면서 불찰을 저질렀으니 반성할게요. 근데 나머지는 '''거 웃자고 하는 거에 뭐 그리 진지를 잡수시고 그래?''' 콧수염 붙이면 웃기잖아? 그리고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반성하는게 잘못됐수? 그리고요~ 저희는 특별히 특정 단체나 사상 등에 편들거나 얕보려고 한거 없어요~ 그냥 웃고 즐기자고 한거라니까요?"라고 한 다음 맨 마지막에 "저희가 관객 여러분에게 최고의 라이브를 만들다가 미비한 점이 약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 전 멤버, 전 스태프 일동은 여러분의 즐거움을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라는 내용이다. 참고로 이 당시 일본 내에서 극우 세력들이 쿠와타를 향해 비방하는 집회를 실제로 하면서 실력행사를 했다고도 하는데 그 이후에 나온 사과문에서 일본 극우파들이 듣고 싶어하는 굴복의 사과를 단 한마디도 적지 않고서 그들의 일방적 비방을 이렇게 튕겨내버린 점을 봤을 때 쿠와타가 보통 인물은 아닌게 확실하다(...). 그와 함께 35년 넘게 신뢰해온 사잔 올 스타즈 멤버들의 신뢰도가 대단하단 것도 엿볼 수 있다.
2014년 새해맞이 콘서트 이후의 광고를 통해 2015년 1월 1일부터 일본 위성방송사 WOWOW의 2015년 CM송으로 선정된 アロエ(알로에)가 일부 공개되었다. WOWOW의 사잔 올 스타즈 특별 홈페이지에서도 시청이 가능하다.해당링크
2015년 3월 31일에 오리지널 앨범 발매를 발표하였고, 4월부터 5대돔 투어를 포함한 전국투어의 구체적 일정을 발표하였다. 앨범명은 葡萄(포도)로 공개하였고 총 16곡을 담은 앨범이라고 상세사양을 공개하였다. 그리고 이 앨범은 발매하자마자 하루만에 15만장을 팔았고,#, 3월 5주차 주간차트 1위를 달성했다.
그와 함께 전국투어의 이름 또한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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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잔의 티켓파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참고로 이 포토는 2015년 5월 26일 '''화요일''' 도쿄돔 콘서트 이후의 모습이다.
2005년에 가진 전국투어 이후 10년만에 도쿄돔을 포함한 5대 돔구장 콘서트를 포함한 전국투어 본공연을 소화했다. 공연이 끝날 때마다 투어 포토를 공개를 하였다.
2015년 7월 25일에 WOWOW 프라임 채널을 통해 후쿠오카 돔 공연 영상을 중심으로 편집한 4시간 편성 또한 전파를 탔다. 8월 17일과 18일에는 22년만에 무도관에서 추가공연을 가지며 예고했던 2015년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무도관 공연에서는 비틀즈에게서 음악적 영감을 강하게 받았다는 쿠와타답게 비틀즈의 대표곡 중 하나인 Help!를 리메이크했다고 일본 연예뉴스에서 보도되었다.
2015년 전국투어 영상을 발매할 예정이라고 발표하며 11월 5일에 특설 홈페이지를 개설하였다.홈페이지 영상 발매명은 おいしい葡萄の旅ライブ -at DOME & 日本武道館-. 블루레이 버전과 DVD 버전을 동시에 낼 예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 홍보영상에 의하면 at DOME 버전은 후쿠오카 돔 + 도쿄돔 위주의 영상으로 발매하고 무도관 버전은 22년만의 공연이라고 소개한다.
7.4. 2016년
2015년에 가진 전국 돔투어+일본무도관 추가공연 영상인 おいしい葡萄の旅ライブ -at DOME & 日本武道館- 을 1월 6일에 발매하였다. 블루레이판과 DVD판을 동시에 발매하였는데 2016년 1월 13일 기준으로 2016년 1월 1주차 주간 DVD 차트 1위와 주간 블루레이 차트 1위 양쪽으로 달성하였다.
東京VICTORY (at DOME)
돔투어 영상으로는 2014년에 싱글로 선발매했던 東京VICTORY를 풀버전으로 공개하였다.
アロエ (at 日本武道館)
포도 앨범의 첫 트랙인 アロエ는 무도관 추가공연 버전으로 공개하였다.
2016년에는 쿠와타 케이스케의 솔로 음반 활동과 12월 31일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가지는 쿠와타 솔로 새해맞이 콘서트로 마무리하였다. 그와 함께 타 멤버들도 자신의 솔로 활동을 하고 있다.
7.5. 2017년
2017년은 쿠와타의 솔로 활동 30주년이라 솔로 활동에 집중하는 듯 하였으나, 뜬금없이 7월에 미츠야 사이다 CM송 발표와 함께 사잔 멤버가 모두 정식 광고모델로 발탁되었다. CM송으로 弥蜜塌菜(やみつだーさい)のしらべ가 선정되었는데, 이 노래는 사잔 올 스타즈 40주년이 되는 2018년에 발매할 노래라고 알려졌다. 그와 함께 특별 사이트도 만들어졌으며, 아사히 맥주 유튜브 계정에서 광고를 볼 수 있다. 특별 사이트 링크. 광고 영상 중에서 유튜브 판으로만 보이는 75초짜리 장편 CM이 있는데 여기서 노래를 꽤 길게 보여주었고 이 75초 광고에서만 마지막에 See you in 2018이라는 문구가 등장한 것으로 봐서, 2018년에 사잔 올 스타즈 40주년으로 복귀하는 것을 예고한 듯하다.
여담으로, 사잔 올 스타즈는 데뷔 2년차였던 1979년에 미츠야 사이다 광고 모델을 한 적이 있다. 무려 38년만에 다시 메인 모델을 맡은 케이스로, 79년 당시 광고 모습과 같은 구도로 2017년 현재의 모습을 대비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7.6. 2018년
미츠야 사이다 CM 출연을 통해 2018년에 사잔 올 스타즈 40주년 활동은 기정사실인 상황. 차후 계획은 공식 사이트가 개설되면 추가할 예정. 2018년 4월부터 미츠야 사이다에서 "미츠야와 사잔 2018" 이라는 컨셉의 광고가 송출된다. 달라진 문구는 Here we go! 2018이다.
40주년의 활동 시작으로 소설가 이케이도 준의 유명작을 영화로 제작한 空飛ぶタイヤ(하늘을 나는 타이어)의 주제가로 闘う戦士(もの)たちへ愛を込めて(싸우는 전사들에게 사랑을 담아서) 라는 노래를 발표하였고, 영화 예고편을 통해 후렴구와 전반부 반절을 공개하고 있다. 3년만의 사잔 올 스타즈 명의로 내는 신곡으로, 풀버전은 영화 개봉일인 6월 15일부터 아이튠즈 스토어 등에서 정식으로 다운로드 발매를 시작하고 있다. 발매 이후 디지털 음원 차트에서 첫주 1위를 기록하며 블루레이 첫 발매 이후로 새로운 장르로 1위를 기록하였다.
그와 함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闘う戦士(もの)たちへ愛を込めて(Full ver.) 뮤직비디오를 공개하였다.
이후 또다른 신곡인 壮年JUMP(Full ver.)도 업로드했다. 이 노래는 미츠야 사이다의 새로운 CM송.
4년 전에 발표하였던 노래인 東京VICTORY가 일본 TBS 테레비에서 중계하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테마곡으로 발탁되었다.
그와 함께 데뷔 40주년을 맞아 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 キックオフライブ 2018「ちょっとエッチなラララのおじさん」, 사잔 올 스타즈 킥오프 라이브 2018 살짝 H한 라라라 아저씨 라는 사잔의 노래 가사를 마구 섞은(...) 작명 센스를 돋보이는 스페셜 라이브를 발표했다. 데뷔 40주년 당일인 6월 25일과 26일 이틀간 NHK 홀에서 스페셜 라이브로 40주년 콘서트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26일 라이브는 일본 국내에서 라이브 뷰잉을 진행했다.
ROCK IN JAPAN 2018 페스티벌에 밴드로써는 2005년 이래로 13년만에 마지막날 공연인 2018년 8월 12일에 출연하기로 발표하였다.
데뷔 40주년인 6월 25일에 새로운 공지가 나왔다. 공지 내용은 신곡을 포함하는 데뷔 40주년 베스트 앨범인 프리미엄 앨범 海のOh, Yeah!![24] 를 8월 1일에 발매하는 내용이다. 미츠야 사이다 광고에 쓰이는 신곡 壮年JUMP의 광고도 공개되었고 이 베스트 앨범에 수록이 결정되었다. 사양 예고에 따르면 한정판 특전으로 처음 활동공지를 알린 미츠야 사이다 CM송인 弥蜜塌菜(やみつだーさい)のしらべ도 한정판 보너스 트랙으로 공개된다. 이를 통해 사잔의 CM송이 발매될 것이라는 소문이 사실로 확정됐다. 동시에 사잔 40주년 기념 굿즈를 발표했다. 참고로, 사잔 40주년 스페셜 홈페이지, 공식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40주년 기념 대문 사진이 공개됐는데, 상당히 코믹한 컨셉이다.
그와 함께 데뷔 40주년이 지나고 나서 2019년 봄에 전국 돔투어 + 아레나 투어를 진행하고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공지하겠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2018년 8월 1일에 베스트 앨범 海のOh, Yeah!!를 발매했다. 발매 첫날인 8월 1일자 오리콘 데일리 순위에서 첫날 추정 판매량 66,482장으로 1위를 차지하였으며, 그와 함께 1998년에 발매했던 이 앨범의 원조(?) 격인 海のYeah!!가 20년만에 데일리 5위 진입으로 급격히 치솟는 기염을 토하였다. 그리고 2018년 7월 5주차 랭킹에서 추정판매량 32만 5474장으로 주간 1위를 차지하였다. 오리콘차트 7월 5주차 랭킹 그와 함께 海のYeah!!는 8,943장으로 주간 7위로 랭킹 재입성을 하였다.
2018년 8월 12일에는 ROCK IN JAPAN 페스티벌 2018에 참가하였다. 사잔 올 스타즈 명의로는 2005년 이래 13년만에 락인재팬 재등장이였다. 사잔 미니 콘서트 정도의 스케일로 피날레를 배정받았고, 이 영상은 WOWOW에서 海のOh, Yeah!! 스페셜이란 제목으로 사잔 파트를 통째로 전곡 방영했다.
2018년 12월 12일에 홍백가합전 출장 확정 공지가 나왔다.# 35년만에 NHK홀 현장에서 직접 공연을 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부를 곡은 勝手にシンドバッド와 希望の轍로 발표됐다. 사잔이 데뷔 이래 처음으로 홍백가합전의 오오토리를 맡았고, 사잔 특유의 떠들썩한 방식으로 2018년 일정을 마무리했다.
7.7. 2019년
사잔의 데뷔 40주년 기념일인 2018년 6월 25일에 2019년 봄 전국 돔투어 + 아레나 투어 발표 공지가 나와서 콘서트 활동 예고가 나왔다. 그리고 홍백가합전 종료 이후 2019년 새해로 넘어가자마자 곧바로 투어 일자를 발표하는 특설 페이지를 개설했다. 특설 페이지 현재 가칭으로는 사잔 올 스타즈 LIVE TOUR 2019 이고, 정식 투어명은 상당히 길쭉하게 공개되었다. 공개된 풀네임은 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 LIVE TOUR 2019「“キミは見てくれが悪いんだから、アホ丸出しでマイクを握ってろ!!”だと!? ふざけるな!!」 (너는 볼품 없으니까 바보같이 굴면서 마이크나 잡아!! 라고!? 웃기지마!!). 이를 WOWOW 광고 영상에서는 성우가 투어명을 읽고 노자와, 마츠다, 세키구치가 "어라? 이거 쿠와타 아냐?ㅋㅋ" 라고 놀리고 뒷부분의 후자케루나!! 부분을 쿠와타가 샤우팅하는 꽁트로 표현했다.
2019년 3월 30일 미야기 공연을 시작으로 6월 16일 도쿄돔 공연으로 마무리하는 전국 6대돔 + 아레나 투어 일정을 발표했다. 세이부 야구장 시절 이후로 방문하지 않은 돔구장으로 개조한 메트라이프 돔에서 첫 공연이자 23년만의 세이부 재방문 공연을 가지고, 사잔보다 흥행력이 더 좋음에도 관객동원의 고난도로 인해 공연 횟수를 하루로 줄이는 삿포로 돔 공연에서는 토일 이틀 공연을 강행하는 패기를 예고했다. 일정에서 보이는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아레나 투어까지는 헤이세이 시기의 마지막 활동이고 메트라이프 돔공연 시작부터는 레이와 시기의 첫 공식 활동이다.
메트라이프 돔에서부터 시작한 돔투어는 6월 16일 도쿄돔 일요일 공연으로 모든 투어 일정을 마쳤고, 2019년 8월 24일 WOWOW 프라임에서 도쿄돔 파이널 공연을 기본으로하여 오사카돔 공연 장면을 살짝 넣은 버전이 방송되었다.
이후 해당 영상의 블루레이판이 발매되었다. 한정판 구성으로 2018년 ROCK IN JAPAN 다큐멘터리와 40주년 킥오프 라이브 일부 영성 + 다큐멘터리를 담았고, 투어 당시 쿠와타와 댄서들이 입었던 불효자 빤쓰(...)를 실제로 제작하여 동봉하였다.
7.8. 2020년
데뷔 42주년이 되는 오는 6월 25일에 특별 라이브를 실시한다. 콘서트 타이틀은"사잔 올 스타즈 특별 라이브 2020 'Keep Smilin'~여러분 감사합니다!~"
장소는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진행되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면 무관객으로 진행된다. 이번 라이브는 각 주요 생방송 미디어의 전폭적인 협조하에 무료 8개의 플랫폼에서 동시 송출 된다.
이날 송출 영상은 스트리밍 시청권을 구매했던 시청자들에게 6월 28일까지 3일간 무제한 다시보기도 제공하였다. 이후 NHK에서 무대 준비 다큐멘터리와 공연 영상 일부를 섞은 방송을 편성하고, WOWOW에서 당시 무관중 콘서트 풀버전을 방영했다.
8. 밴드 멤버 목록
- 쿠와타 케이스케 (보컬, 기타[25] , 리더). 1956년 2월 26일, 가나가와현 치가사키시 출생. - 프로필 등 공식적으로는 리더라는 점이 표기되지 않지만 사잔 올 스타즈의 리더로 인정받고 있다. 밴드가 휴식할 때는 솔로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도쿄 FM에서 桑田佳祐のやさしい夜遊び (쿠와타 케이스케의 친절한 밤놀이)라는 프로그램을 매주 토요일 밤 11시부터 한 시간동안 진행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쿠와타 케이스케 항목에 서술되어 있다.
- 세키구치 가즈유키 (베이스). 1955년 12월 21일, 니가타현 출생. 솔로 활동 시에는 우쿨렐레 연주가로 활동하기도 한다. 2015년 12월 21일에 만 60세가 되어서 60세 생일축하 특설 홈페이지가 개설되었다.홈페이지 젊었을 때는 풍성한 장발도 휘날렸으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카우보이 모자라던가 중절모 등으로 모자로 패션을 드러내고 있다. 2019년 4월 15일에 국내 우쿨렐레 매체인 유크모쿠에서 세키구치를 인터뷰한 기사를 올렸다. 이 인터뷰에서 하와이 우쿨렐레 페스티벌의 기원이 된 사고를 설명한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세월호 사고 소식을 일본에서도 자주 접하여 알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아픔에 공감하며 아픔을 치유할 방법에 대해 세키구치가 생각하는 방법을 밝혔다. 유크모쿠 4월 15일자 기사
- 마쓰다 히로시 (드럼). 1956년 4월 4일, 미야자키현 출생 - 콘서트에서의 입담이나 모자 퍼포먼스를 보면 상당한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인 듯하다. 풍채라던가 평소 대화체와는 달리 노래를 부를 때는 톤이 얇은 편이다.
- 하라 유코 (키보드) 1956년 12월 11일,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출생. - 별명은 하라보(原坊)이고, 쿠와타도 콘서트에서 간혹 하라보라고 부른다. 음악서클에서 처음 만나 데뷔 전부터 교제중이던 쿠와타 케이스케와 82년 결혼,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일화로, 처음에는 쿠와타에 대한 소문으로 상당한 변태가 있으니 가까이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듣고 실제로 상당히 키모이 했다[26] 면서 껄떡거리는 것을 피했다고 밝혔다. 정확한 사연은 쿠와타 케이스케가 처음 1년 후배 하라 유코에게 접근했던 것이 하라 유코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녀와 절친한 친구인 한 후배 여학생을 짝사랑해서였기 때문이었고 이를 알게 되어 싫어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둘이 조금 말을 트고 보니 음악적 성향이 의외로 매우 잘 맞아 음악얘기만 하기 시작했는데도, 어느 순간 자신들도 모르게 사랑에 빠졌다고. 정작 그런 사람과 밴드를 같이 하고 결혼까지 해서 일본에서 가장 금슬이 좋은 부부가 된 것을 보면 인생은 알다가 모를 일이다. 사족으로 1990년대 초에는 眠れぬ夜の小さなお話(잠 못드는 밤의 작은 이야기)라는 동화책을 쓴 적이 있었다.
여담으로 하라 유코의 집안은 2019년 기준 147년째 대대로 튀김집을 하고 있으며, 현재 사장은 5대째인 하라 시게오(하라 유코의 오빠)라고 한다. 하라 유코의 조카인 히로야 씨가 6대째 잇기 위해 전수중이라는 인터뷰 기사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가게의 이름은 天吉(텐키치)라고 하며, 위치는 요코하마 스타디움 근처인 칸나이역 앞. 후기에 의하면 가게 내부에 사잔 올 스타즈의 친필 싸인이 전시되어 있고, 일본 현지에서는 사잔 팬들이 방문하는 가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또 한국에서 방문한 손님, 특히 한국 손님이면서 사잔 팬이라고 하면 더욱 친절하게 대해준다고 한다.
- 노자와 히데유키 (퍼커션) 1954년 10월 19일, 도쿄도 출생. - 사잔 올 스타즈 내의 최고령 멤버. 별명은 털게이다. 2014년 기준으로 가장 먼저 60세(한국 나이면 환갑)을 맞이하였다. 모터스포츠 팬이기도 해서 1994년, 스즈카 서킷에서 열린 스즈카 1000km 내구레이스[27] 의 게스트 해설로 나오기도 했다. 오랜 시간 자신이 앓아온 허리 통증과 이를 이겨낸 체험담, 그리고 허리 건강을 챙기는 체조 노하우를 쓴 책을 발매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 책의 광고 영상이 카도카와사 유튜브에 있는데, 보면 꽤나 병맛이다.
8.1. 이전 멤버
- 오오모리 타카시 (기타) 1956년 12월 12생,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출생. - 2001년에 음악적 견해차를 이유로 탈퇴하였다. 함께 활동했던 시기에는 사잔의 하드록 성향을 담당하는 멤버였고 후술할 불미스러운 일들 이전까지만 해도 꽤나 훤칠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실제로 타카시의 탈퇴 이전 사운드와 탈퇴 후 세션 체제로 녹음한 사운드와 편곡의 차이가 조금이나 보이는 편이다. 그러다가 2006년에 각성제와 대마초 사용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솔로 기타리스트이자 세션으로 소소히 활동 중이고 소규모 솔로 공연도 꾸준해 활동을 해나가고는 있다. 하지만 이때 체포 이후로 일본의 모든 방송 자료화면에서 오오모리가 나오는 장면은 전부 편집당하고 있다. 사잔이 오오모리 활동시절 오오모리가 나오는 영상물을 DVD로 잘 발매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도 이것 때문.
8.2. 대표 서포트 멤버
밴드의 역사만큼이나 여러 서포터들이 있고 일본 웹에서 찾아보면 쿠와타 케이스케 솔로까지 같이 뛰는 멤버들도 소개를 하는데, 이 중에서 상대적으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사잔 올 스타즈 명의로 녹음과 콘서트에서 가장 최근까지 함께 하고 가장 대표적인 멤버가 두명의 정보를 서술한다.
- 사이토 마코토[28] (기타). 1958년 1월 3일 생. - 도쿄도 출생. 오오모리 타카시가 탈퇴한 이후 공석이 된 사잔의 메인기타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쿠와타가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교를 다녔을 때 선후배 사이였고 이때 학교밴드 Better Days에 가입한 것을 인연으로 사잔 올 스타즈, 쿠와타 케이스케 솔로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꾸준히 함께해서 그런지 이제는 사잔의 반 정규 멤버 수준으로 인식될 정도. 정확히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B'z의 서포트 키보디스트 마스다 타카노부의 존재감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여담으로 쿠와타와 인연이 있어서 레이블이 아뮤즈나 빅터 소속일 것 같지만, 의외로 현재는 에이벡스 소속이다. 그리고 세키구치처럼 대머리이다...
- 카타야마 아쓰오 (신디사이저) - 팀의 정규 키보디스트 하라 유코와 다른 영역의 신디사이저 음색을 담당하는 세션 멤버이다. 주로 현란하거나 힘있거나 사이키델릭한 효과가 필요할 때는 카타야마의 연주가 이를 담당한다. 콘서트에서 보면 키보드 자리가 양쪽에 있는데, 한쪽은 하라 유코가 마이크와 함께, 반대쪽 키보드 자리는 카타야마가 담당하고 있다.
9. 음반 목록
9.1. 싱글
9.2. 정규앨범
9.3. 베스트 앨범
사잔 올 스타즈는 82년과 87년, 그리고 00년에 총 세 차례의 발라드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는데 막상 들어보면 록큰롤 성향의 곡이나 사이키델릭한 곡이 많다. 사실 발라드는 흔히들 생각하는 느린 템포의 노래만을 뜻하는게 아니라 '대중음악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감상적인 노래.'[112] 라는 뜻도 있다. 사잔 올 스타즈의 발라드 베스트 앨범은 후자의 뜻을 가진 노래 모음에 속한다.
10. 그 외 기록들
일본 오리콘 싱글차트 판매량 역대 3위인 TSUNAMI 외에 앨범 목록에 소개되지 않은 기록을 자세히 서술하면 이렇다.
- 싱글 주간차트 1위 달성 작품으로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총 4개 년대 동안의 기록 보유
- 1980년대 : さよならベイビー (1989년)
- 1990년대 : ネオ・ブラボー (1991년), 涙のキッス (1992년), エロティカ・セブン EROTICA SEVEN (1993년), あなただけを 〜Summer Heartbreak〜 (1995년), 愛の言霊 〜Spiritual Message〜 (1996년)
- 2000년대 : TSUNAMI (2000년), 勝手にシンドバッド (2003년 재발매 버전), 涙の海で抱かれたい 〜SEA OF LOVE〜(2003년), 彩 〜Aja〜 (2004년), 君こそスターだ/夢に消えたジュリア (2004년), 愛と欲望の日々 (2005년), DIRTY OLD MAN 〜さらば夏よ〜 (2006년), I AM YOUR SINGER (2008년)
- 2010년대 : ピースとハイライト (2013년), 東京VICTORY (2014년)
- 앨범 주간차트 1위 달성 작품으로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총 4개 년대 동안의 기록 보유
- 1980년대 : タイニイ・バブルス (1980년), ステレオ太陽族 (1981년), Shout! (1982년), NUDE MAN (1982년), バラッド '77〜'82 (1982년), 綺麗 (1983년), 人気者で行こう (1984년), KAMAKURA (1985년), バラッド2 '83〜'86 (1986년), すいか SOUTHERN ALL STARS SPECIAL 61SONGS (1989년)
- 1990년대 : Southern All Stars (1990년), 稲村ジェーン (1990년), 世に万葉の花が咲くなり (1992년), HAPPY! (1995년), Young Love (1996년), 海のYeah!! (1998년), さくら (1998년)
- 2000년대 : バラッド3 〜the album of LOVE〜 (2002년), キラーストリート (2005년)
- 2010년대 : 葡萄 (2015년)
- 영상매체 주간차트 1위 달성 작품으로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총 4개 년대 동안의 역대 최초 기록 보유
- 1980년대:女神達への情歌 (報道されないY型の彼方へ) (1989년)
- 1990년대:歌う日本シリーズ 1992〜1993 LIVE at YOKOHAMA ARENA 29th Dec.1992 (1993년)
- 2000년대:FILM KILLER STREET (Director's Cut) & LIVE at TOKYO DOME (2006년), 真夏の大感謝祭 LIVE (2008년)
- 2010년대:SUPER SUMMER LIVE 2013 「灼熱のマンピー!! G★スポット解禁!!」 胸熱完全版 (2013년), おいしい葡萄の旅ライブ –at DOME & 日本武道館- (2016년)
- 오리콘차트 싱글차트 역사상 처음으로 같은 가수가 동시에 발매한 작품이 월간 차트 1위 & 2위 기록
- シュラバ★ラ★バンバ SHULABA-LA-BAMBA & 涙のキッス (1992년 7월 21일)
- 涙のキッス : 오리콘차트 주간 1위, 1992년 8월 1위 / シュラバ★ラ★バンバ SHULABA-LA-BAMBA : 오리콘차트 주간 2위, 1992년 8월 2위
- シュラバ★ラ★バンバ SHULABA-LA-BAMBA & 涙のキッス (1992년 7월 21일)
11. 카피 밴드
이들의 히트곡명을 본딴, 게다가 사잔 올 스타즈의 음악으로만 공연을 위주로 하는 (참고로 이쪽은 안무팀도 꾸려서 다니고 있다) 이토시노 에리즈(いとしのエリーズ)라는 카피밴드가 있다. 사잔의 인기를 등에 업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방축제 등에서는 꽤나 인기가 있는 밴드 같으니 사잔 올 스타스에 관심이 많은 위키러들은 유투브 같은 곳에서 한번 검색해 보도록 하자. 쿠와타 케이스케의 모창에 오리지널 밴드에서는 못보던 엽기 안무 컨셉 등도 볼 수 있다.
[1] 트위터 계정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페이스북 계정은 상당히 늦게 생겼다. 2016년 1월 6일에 발매한 2015년 전국 돔투어 & 일본무도관 콘서트 영상을 발매하고 1주일 뒤인 2016년 1월 13일에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개설하였다. 첫 게시글은 이 영상 발매분의 오리콘 주간차트 1위 기념글이다.[2] 1위는 B'z, 2위는 AKB48, 3위는 미스터 칠드런, 4위는 하마사키 아유미이다. 이 네 팀만이 현재까지 일본 내에서 음반 판매량 5천만장을 넘긴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5년의 휴식을 깨고 2013년부터 복귀한 사잔이 2015년 사잔 명의의 정규앨범 발표 이후 쿠와타 솔로 명의로 음반을 냈기에 머지 않아 역대 5번째로 5천만장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3] 이를테면 B'z의 세계 시디 판매 랭킹 5위가 이런 식으로 나온 것.[4] 그 작품이 TSUNAMI이다. 일본 오리콘 싱글 차트에서 매체 전체로 역대 판매량 4위, 순수 CD 집계로는 2위. 참고로 2016년 10월까지는 사잔의 TSUNAMI가 순수 CD 집계로 1위였다.[5] 일본 역대 앨범 판매량 10위 사잔의 베스트 앨범 海のYeah!!이다. 더 무서운 점은 이 앨범이 아직도 오리콘 차트에 차트인하고 있으며, 사잔의 40주년 베스트 앨범의 영향으로 다시 구매가 이뤄지며 오리콘 역대 판매량 9위를 노리는 상황이다. 2018년 8월 첫째주 랭킹 기준으로 통산 482주 차트인.[6] 참고로 쿠와타 케이스케는 솔로로도 이 기록을 달성했다. 쿠와타는 사상 최초로 30대, 40대, 50대, 60대의 연령 4년대 연속으로의 싱글 1위를 달성했고, 2019년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령 1위를 기록했다.[7] 2016년 2월까지 이 시기로써는 오리콘 차트 내 모든 가수 통틀어 최초 기록. 70년대부터 00년대까지 나카지마 미유키가 수립한 기록이 있어서 일본 위키에서는 역대 1위 타이기록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를 감안해도 그룹 기록으로 역대 최초이다.[8] 그룹으로서 최초. 이전까지는 솔로가수들이 달성했다. 상당히 무서운 사실은 그룹 사잔으로 달성하기 전에 쿠와타가 솔로 활동으로 이 기록을 먼저 차지했다.[9] 이 부분도 모든 가수 통틀어 최초. 오리콘 기사에서는 영상 랭킹 사상 최초 라고 표현했다.[10] 역대 일본 싱글 판매량 4위. 1위 곡이 시몬 마사토가 1975년 12월 25일에 발매하여 약 457만 7천장을 판 LP판 인기 동요 およげ!たいやきくん(헤엄쳐라! 붕어빵군), 2위가 1972년 12월에 LP판으로 발매하여 약 325만 6천장 가량을 판매한 宮史郎とぴんからトリオ의 엔카 女のみち 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순수 CD 발매로만 따졌을 경우에는 TSUNAMI가 압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여담으로 TSUNAMI 바로 다음으로 싱글차트 총 판매량 5위인 노래가 1999년 3월에 발매된 だんご3兄弟(경단 3형제)로 판매량 약 291만 8천장이다. 일본어 기초반 수업에서 들어봤을 그 노래이다. 2016년 SMAP의 일명 괴물꽃이 판매고를 앞질러서 현재는 역대 판매량 4위가 되었다.[11] 일설에 의하면 해당 콘서트를 계획할 때 중국 베이징 콘서트와 한국 서울 콘서트 둘 중 하나를 고려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국 중국 베이징 콘서트가 되었다.[12] 한국에서도 정식으로 진출, 발매한 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락카페 등지에서 사잔 올 스타즈, 쿠와타 밴드, 쿠와타 케이스케 솔로 곡이 퍼진 것을 생각하면 한국에서의 당시 인지도 또한 은근히 있었다. 장년층에게 사잔 올 스타즈라고 하면 그게 뭐냐고 해도 구와타 밴드라고 다시 물어보면 아는 사람들이 꽤 있다.[13] 일본 가요계의 전설 중 한명인 '''오다 카즈마사'''가 이끌던 그룹. 사실 이들 또한 이전까지는 포크송 듀오 그룹이었으나 1979년도, 즉 사잔이 막 나타나 주목받기 시작할 무렵에 5인조 락밴드로 개편되면서부터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사잔과 함께 락 대중화의 문을 연 셈.[14] 참고로 같은 록밴드지만 사잔과 오프 코스는 음악적 스타일이 꽤나 다른데, 존 레논(사잔)과 폴 맥카트니(오프 코스)가 각각 다른 밴드에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고 하면 두 밴드의 차이를 이해하기 쉬울 듯.[15] 글쎄.. 안전지대는 76년에 시작되어 83년 ワインレッドの心부터 크게 뜨기시작했었다. BOOWY같은 경우는 80년대초중반이 전성기였고 87년에 해산했다. 이외 앞에 나온 오프코스도 있었고.. 사잔의 대단함을 폄하할수는 없지만, 유일하다라고까지 얘기하기에는 좀..[16] 겉모습으로는 그런 평가가 나올만 했던 것이, 데뷔 당시 TV 출연 영상을 보면 보컬 쿠와타가 멀쩡한 옷도 아닌 난닝구 차림, 다음 출연 떄는 잠자리채 들고 흔들기 등등으로 카메라 앵글 밖으로 날뛰면서 데뷔곡을 부르는 모습이였다.[17] 단순한 일본 내 명곡이 아니라, 세계적 명곡으로 레이 찰스가 영어 번안곡을 불렀고, 중국어나 여러 유럽계 언어, 아랍어 등 수많은 언어로 번안되었다. 한국에서도 이십여년 뒤 가수 박상민이 번안곡을 불렀으나 잘 알려지지 않았다.[18] 실제로 당시 일본에서 반응이 "저 돌+I 밴드가 이렇게 멀끔하게 감미로운 노래를 할 줄이야" 라는 반응이였다고 한다.[19] 발음이 당신이 예상하는 그거 맞다. 그리고 앞의 만삐-는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 말인데 어떤 말을 비틀어서 표현한 것인지는...[20] 사실 Peace와 Highlight 일본에서 시판중인 담배 이름이다보니 지극히 사잔다운 장난끼가 가미된 곡명이라 볼 수 있다.[21] 고베 문서에도 적혀있지만, 고베는 케이한신 지역 중에서 극우 성향이 짙은 지역이기도 하다.[22] 사잔 올 스타즈는 콘서트 이름이나 앨범 컨셉 등에서 다른 작품 패러디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 제목은 일본 민영방송사 TBS 전설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8時だョ!全員集合(8시라구! 전원집합!)에서 8시를 양의 해를 맞이한다고 히쯔지로 패러디했다. 추가로 사잔과 쿠와타의 새해맞이 콘서트는 전해와 새해의 12간지에 맞춰서 컨셉을 잡는다.[23] 그런데 팬 입장에서 봐도 당시 영상에서 과하긴 했다. 차라리 "이게 그 귀~하신 거예요" 드립을 치면서 애지중지하는 몸개그를 했으면 모를까, 국왕이 있는 나라에서 국왕이 준 훈장을 뒷주머니에 잔돈을 꾸깃꾸깃 넣듯이 한것과 "이거 옥션에 내면 얼마 될까요? 오천엔 콜?" 등의 드립을 해서 이거는 실드를 치기 어려웠다.[24] 아무래도 20주년 때 발매한 베스트 앨범인 海のYeah!! 를 셀프 패러디한 것 같다(...).[25] 레코딩 및 콘서트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26] 기분 나쁘다는 의미인데, 이거 일본에서는 상대방에게는 큰 모욕감을 줄 수 있는 욕 수준의 말이다. 당시 하라 유코의 쿠와타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처참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27] 당시 명칭은 Pokka International 1000km(ポッカインターナショナル1000km耐久レース)[28] 한자 표기로는 斎藤誠 인데, 조선총독인 그 사이토 마코토(斎藤実)와는 발음만 같고 한자가 다르다.[29] 메이저 데뷔싱글. 초동 순위 132위로 TV에 이 곡이 나오자마자 화제가 됨. 라라라 이기는 하지만 곡의 시작을 연주가 아닌 보컬 지르기로 시작했다는 점과 당시 낯설었던 삼바 리듬을 전면에 배치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발매 4개월 만에 최고순위 3위를 기록. 이 곡을 만들던 당시 1977년 일본 히트곡 제목들 중에서 '마음대로'라는 부분은 사와다 켄지의 당시 히트곡 勝手にしやがれ(네 멋대로 해라), '신밧드'라는 부분은 핑크 레이디의 당시 히트곡 渚のシンドバッド(해변의 신밧드)를 그냥 따와서 지은 제목이라고 한다. 노래 내용에는 마음대로와 신밧드라는 가사가 전혀 없다. 가사는 고향 치가사키의 여름 바닷가에서 만난 여자와 사랑을 나누며 밤을 보냈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의 인기로 만들어진 것이 일명 쇼난 붐이다.[30] 콘서트에서 어레인지할 때는 드럼과 퍼커션 비트, 호루라기 불기를 상당히 찰지게 연주하면서 "오~ 예~", "오~ 오오~" "예↗예예~ 예예~↑" 등으로 호응을 유도하면서 달린다. 주로 콘서트의 절정부에서 부르며 간혹 초반부에 배치하기도 한다.[31] 1978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23위[32] 2003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23위[33] 1978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49위[34] 이 곡으로 1979년도 홍백가합전에 첫 출연을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로 레이 찰스가 부른 Ellie My Love는 10년 뒤인 1989년에 이 노래를 영어로 커버하여 발매한 것이고 사잔이 낸 이토시노 에리가 원곡인 것이다.[35] '''통산 16주동안 오리콘 싱글차트 TOP 10 이내 랭크인.''' 이후 나올 TSUNAMI보다 더 오래 랭크인됐다.[36] 1979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11위[37] 정규앨범으로 부터 리컷 싱글[38] 1979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56위[39]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60위[40] 1982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8위[41] 커플링곡인 走れ!! トーキョー・タウン는 사잔 올 스타즈가 최초로 영어 100%로 작사한 노래이다.[42] 이 싱글의 표지가 진짜로 토플리스이다! 혹시나 찾아보려면 일단 후방주의가 필수이다.[43] 1984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36위[44] 타이틀곡과 커플링곡을 모두 영어 가사로 만든 최초의 작품. 커플링곡은 앨범 人気者で行こう에 수록한 JAPANEGGAE (ジャパネゲエ)를 영어가사로 바꾸어 녹음한 버전이다. 타이틀곡은 2015년 돔구장 투어의 오프닝곡으로 16년만에 연주.[45] 1984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17위[46] 1985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43위[47] 1988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12위[48] 1989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95위[49] 데뷔 후 첫 오리콘 싱글차트 1위 획득[50] 1989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33위[51] 1990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72위[52] 훗날 홍콩의 스타 가수 장학우가 이 곡의 저작권을 사서 중국어 리메이크 버전 음반을 냈을 정도로 동북아시아권에서 인정받는 명곡. [53] 1990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5위[54] 여담으로 1992년 9월 12일과 13일에 가진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 콘서트인 "南天群星 北京で会いましょう"에서 오프닝 곡으로 불렀다. 사잔 올 스타즈의 최초 해외공연에서 부른 첫번째 곡.[55] 1991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24위[56] 최초의 동시발매 싱글. 콩라인 됐다.[57] 1992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13위[58] 30번째 싱글이 콩라인이 된 이유는 이 노래가 주간차트 1위였기 때문이며 사잔의 첫 밀리언셀러 싱글.[59] 1992년 8월 1위[60] 주간차트에서 발매 7주 연속 1위. 사잔 올 스타즈가 발매한 싱글 중에서 최장기간 동안 세운 1위 기록이다.[61] 1992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5위[62] 오리콘 역대 싱글 랭킹 79위[63] 1993년 후지TV드라마 '악마의 키스' 주제곡으로 쓰였다.[64] 2주 연속 1위[65] 1993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2위[66] 1993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56위[67]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52위[68] 발음이 당신이 생각하고 발음을 또박또박 읽어보면 나올 그 지스팟 맞다(...). 이 노래를 발매한 이후 콘서트에서 몇번을 제외하고 꾸준하게 웃긴 가발을 쓰고 나온다. 매우 특징적인 공연사를 보면 1995년 발매 이후 미나토미라이 특별 콘서트에서는 평범하게(?) 옆머리만 남은 대머리 가발, 1998년 20주년 나기사엔 슈퍼라이브에서는 콘헤드, 2003년 25주년 콘서트에서는 문어인형을 얹은 가발, 2004년 새해맞이 콘서트에서는 본인이 안 쓰는 대신 댄서들에게 대머리 가발, 2006년 몽인도 페스티벌에서는 본인은 장어가 G 모양으로 되어있는 대머리 가발과 댄서들에게 웬 이상한 장어 옷 퍼포먼스, 2008년 30주년 당시에는 쿠와타 본인이 피망과 동상이 달린 가발을, 2009년 쿠와타의 솔로 방송활동의 미니 콘서트에선 본인이 안쓰는 대신 현악단에게 대머리 가발, 2013년 활동재개 전국투어에서는 티슈가 뽑혀나오는(...) 가발, 2015년 돔구장 투어에서는 머리 대신 사타구니 위쪽(...)에 콘서트 지역의 대표상징을 차고서 저질댄스(...)를 췄고, 2015년 무도관 추가공연 때는 티슈가 뽑혀나오는데 옆에 포도 모형이 주렁주렁 달린 가발을 썼다. 2019년 전국 돔투어 때는 가발에 불효자 빤쓰(...)를 뒤집어씌운 다음 가운데에 G마크와 황금 마이크, 양옆에 도쿄타워(...) 뿔이 달린 가발로 등장했고, 댄서들은 변태가면 떼거지로 나왔다. [69]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71위[70] 이 싱글에 수록된 커플링곡이 다름아닌 본문에 나온 그 LOVE KOREA[71] 1995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25위[72] 2주간 1위[73] 특이하게 발매하고 한달 이상이 지난 1996년 7월 오리콘 월간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74] 1996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7위[75] 1996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82위[76] 1998년에 방영된 TBS 테레비계 드라마 Sweet Season의 주제곡으로 사용되었다. 요코하마의 랜드마크들이 가사 속에 녹아있다. [77] 1998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39위[78]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해당 곡 문서에 자세히 서술.[79] 오리콘 주간차트 통산 5주 1위[80] 싱글차트 TOP 10에 14주간 랭크인[81] 오리콘 역대 싱글 판매량 4위[82] 2000년대 발매 싱글 중에서 판매량 2위[83] 2000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20위[84] 2000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97위[85] 2주 연속 1위[86] 2003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7위[87] 2004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23위[88] 君こそスターだ는 2004 아테네 올림픽 비공식 응원가. 夢に消えたジュリア는 오타 쥬리아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곡으로 쿠와타 본인이 이 설명을 TBS 테레비 우타방에서 밝힌 바 있다. [89] 2004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8위[90] 2005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16위[91] キラーストリート의 선행싱글로 해당 주간 차트 1위는 GLAYxEXILE, 2위는 L'Arc~en~Ciel[92] 2005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33위[93] 2006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38위[94] 30주년 기념 신곡. 당시에는 사잔의 마지막 작품으로 여겨졌다. 주간차트 1위.[95] 2008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3위[96] 35주년 컴백곡. 한정판 특전으로 우비가 들어있다. 차트 1위.[97] 2013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17위[98] 위의 ピースとハイライト와 함께 2014년 65회 홍백가합전 출연곡.[99] 2014년 오리콘 연간 싱글 랭킹 51위[100] 아이튠즈 1위 기록[101] 데뷔 25주년 기념 25만장 한정 스페셜 박스 사양으로 리마스터링 재발매[102] 일본 오리콘 싱글차트에서 발매후 1위가 되기까지 가장 오래 걸린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25년만의 재발매로 주간차트 1위를 달성하였는데 그 기간이 무려 '''1305주'''(...).[103] 정규앨범 최초로 2CD 앨범 발매.[104] 9주 1위[105] CD 1장에 17곡이 들어가있다. 이 때문에 CD 그대로 들으면 각 곡들이 급하게 재생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고 추출시 곡의 트랙 구분이 다른 앨범에 비해 어색하다.[106] KAMAKURA 이래 20년만에 2CD 정규앨범. 당시 뮤직 스테이션에 출연하여 가진 인터뷰에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느라 앨범 완성과 발매가 늦어졌다고 밝혔다.[107] 10년에 발매한 정규앨범. 2015년3월 5주차(3월 30일~4월 5일 기준) 오리콘 주간차트 1위, 오리콘 3월 월간차트 1위,2015년 상반기 앨범차트 3위로 누적 판매량 50만장을 돌파했다.[108] 평균나이 환갑에 근접한 밴드의 판매량이 비록 28만장 차이가 나지만 순위상 AKB48의 바로 다음이였고 요즘 밴드씬 대세 SEKAI NO OWARI보다도 4만장을 더 팔았다! 이와 함께 사잔 올 스타즈가 데뷔 이래 처음으로 아이튠즈 스토어 앨범차트 1위까지 달성하였다.[109] 77~82년 발라드 베스트 앨범.[110] 83~86년 발라드 베스트 앨범.[111] 2019년 1월 2주차 기준으로 총 505주 차트인[112] 출처 : 네이버 단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