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레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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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유대계 미국인 영화 감독. B급 스플래터 호러인 이블 데드로 데뷔하여, 현재는 메이저 헐리우드 감독 중 한 명이다.
2. 생애
1959년 10월 23일 태어났다.
대학시절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문학, 역사학,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었으나 학업을 때려치우고 중퇴했다. 그 후 친구들과 함께 프로덕션을 만들어 영화를 시작한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1976년작 킹콩 리메이크판을 극장에서 볼 당시 마구 욕설을 퍼부으면서 뭐 이따위가 있어? 라며 불쾌함을 표시했다고. 영화가 개판이라 불쾌했던 게 아니라 킹콩을 이렇게 죽이는 게 불쾌했다고 나중에 인터뷰했다. 1977년에 《살인이야!》(It's Murder!)라는 단편영화를 만든 게 첫 데뷔작. 여기에 브루스 캠벨, 스콧 스피걸, 아우인 테드 레이미와 같이 주연까지 맡으며 감독했다. 1978년에 단편 《시계태엽》(Clockwork)를 감독하고 주연을 맡으며, 그 해에 이블 데드 시험판격인 《숲속에서》(Within the Woods)를 감독했다. 이 영화에선 《이블 데드》의 브루스 캠벨을 빼고 다른 배우들이 나왔는데 친구인 스콧 스피걸이 여기서도 나왔고 스피걸은 나중에 스파이더맨에서도 카메오인 아나운서로 나왔다. 이후 스피걸은 호스텔3를 감독 하였다.
본격적인 장편 데뷔작은 《이블 데드》. 나뭇가지와 여자가 뒤엉키면서 마치 촉수물을 연상케 한다든지 여러 모로 정신나간 센스가 결합된 좀비영화로서 미국 B급 영화 마니아들에게 폭풍 같은 인기를 얻는다. 또한 상투적인 공포영화의 틀을 벗어난 재치 있는 영상들로 비평가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이런 재능은 2009년작인 《드래그 미 투 헬》에서 유감 없이 발휘된다. 현재까지 출시한 이블 데드 게임들의 스토리 구상은 모두 이 양반이 하였다. 최근 나온 미드 애쉬 VS. 이블 데드에도 관여했다.
코엔 형제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크라임웨이브》(Crimewave)(1985)를 만들었고, 《이블 데드 2》(1987)를 거쳐 《다크맨》(1990)에서 작가로서의 기량이 크게 성장했음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우주최강의 스승''' 리엄 니슨. 이처럼 1990년대 까지만 해도 그는 공포영화라는 장르에서 작가영화의 실험을 계속하는 희귀한 B급 감독이었다. 이 영화는 3편까지 제작되었는데, 2편부터는 연출자가 다르다.
그랬던 그가 2002년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시리즈의 감독으로 낙점되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건 놀랄 일이 아니다.[3] 걱정했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우려를 불식시키며 스파이더맨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그는 《스파이더맨 2》에서 비평과 흥행 모두를 만족시켰다. MCU가 시작되기 전까지 마블 영화의 최고 걸작이었다. 물론, MCU가 시작된 이후로도 여전히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들 중 하나다. 자세한 건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시리즈 항목을 참고.
그러나 2007년 개봉한 《스파이더맨 3》는 3억 달러라는 전무후무한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린 고블린 주니어, 샌드맨, 베놈 등 3명의 악당을 무리하게 시나리오에 조합시키려다 실패했으며, 특히 2편이 여러 모로 걸출했던 지라 관객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흥행도 체면치레(미국 흥행은 3억 3600만 달러)는 했으나 2억 5800만 달러 제작비를 생각해 보면 아쉬울 정도다.[4] 이것은 제작사인 소니에서 세 악당을 출연시킬 것을 종용하면서 제작에 간섭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샘 레이미는 샌드맨을 메인 빌런으로 삼고 보조 플롯으로 그린 고블린의 이야기를 집어넣어 각본을 집필, 영화를 크랭크 인 하였으나 소니 측의 아비 아라드가 프리 프로덕션 기간부터 이번 영화에서 만큼은 심비오트가 꼭 나와야 한다며 감독을 압박했다고 한다. 훗날 《스파이더맨 3》의 비평이 좋지않아 소니 측에서는 영화의 실패요인을 레이미가 심비오트 장면을 성의 없이 찍어서 그렇다며 레이미를 비난하는 언플을 했다. 이때부터 레이미와 소니 간의 알력이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소니 사와 알력 탓에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가 리부트된다는 풍문이 꾸준히 나돌았다. 각본이 완성되지 않아서 촬영이 연기되고 각본가가 계속 바뀌면서, 레이미와 소니 측의 의견이 서로 달라서 마찰을 빚었고, 개봉일까지 연기되는 등 불화가 끊이지 않다가 결국 '''스파이더맨 4는 제작 취소'''. 레이미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고전악당인 벌처를 출연시키고 싶어했지만 소니 측은 더 인기 있는 악당을 출연시키고 싶어했다는 듯. 레이미는 인터뷰에서 "나는 심비오트 일당을 증오한다."라고 할 정도였다. 베놈을 위시한 심비오트 관련 캐릭터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이후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감독과 주연배우까지 싹 갈아치우고 리부트'''. 고딩 피터 파커로 돌아가서 더 하이틴스럽게 변했다. 감독은 《500일의 썸머》 감독인 마크 웨브. 하지만 흥행은 3편보다 기대에 못 미친데다가 이전 3부작보다 가장 흥행에서 뒤떨어졌기에 소니로선 실망하는 분위기이다. 자세한 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참조.[5]
오랜만에 공포영화로 돌아온 《드래그 미 투 헬》은 이블 데드 시절의 그를 생각나게 한다는 의견과 함께 호평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류의 영화가 그렇듯이 한국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워너브라더스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을 추진하는 《워크래프트》의 감독으로 그가 낙점되기도 하였으나, 2012년 7월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위해 워크래프트 시리즈 영화화 프로젝트의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아무런 계획도 잡혀있지 않은 상태에서 감독 하나 공개된 것만 믿고 기다리던 워크래프트 팬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 이후 워크래프트 영화의 감독은 《더 문》, 《소스 코드》로 유명한 덩컨 존스가 맡았다. 레이미가 감독직을 하차한 이유는 처음 감독직을 맡았을 때 블리자드가 제시한 기존 스토리가 맘에 들지 않아 직접 오리지널 스토리를 제작했으나 무슨 일인지 9개월 뒤에 블리자드 쪽에서 레이미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거부하고 다시 만들라는 얘기가 나와 하차한 것. 이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운데 레이미는 애초에 블리자드는 신경쓰지 않고 제작사인 레전더리 픽처스를 오히려 더 신경썼다. 레이미의 각본은 레전더리에서도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으나 정작 블리자드측에서 거부함에 따라 뒤집어졌으니 아이러니. 본래 블리자드가 이런 쪽에서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스타크래프트 영화화 계획도 블리자드 측에서 게임의 본래 설정을 유지하는 것을 계속 고집하여 영화사와 감독이 영화화를 전격 취소했던 전적이 있다.
2020년 4월 14일, 닥터 스트레인지 인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의 감독으로 확정되었다. 스파이더맨 3 이후 13년 만에 히어로 무비 감독직을 맡게 됐다. 또한 영화 연출로써도 7년만에 복귀하게 되는 것이다.
3. 에피소드
코엔 형제하고 절친한 친구 사이. 초기엔 서로의 영화 작업에 참여까지 했을 정도(《이블 데드》에서 코엔 형제 중 조엘 코엔이 편집조수로 참여했다)였다. 그런데 코엔 형제 인터뷰에서 보면 샘 레이미가 무슨 임상실험 대상 같다(...). 《밀러스 크로싱》에서 카메오로 등장했다. 항복한 사람을 쏴죽인다(...) 상대방이 기관총을 쏴대니 권총 쏘다가 피살된다.
앞서 서술한 대로 이블 데드 시험판인 《숲속에서》에서 친구인 스콧 스피걸이 나왔으며 스피걸은 나중에 스파이더맨에서도 카메오인 아나운서로 나왔다. 또한 샘 레이미 역시 동생 테드 레이미와 함께 스피걸 영화에 자주 카메오로 출연한다. 스피걸이 감독한 호러영화 《인트루더》(1988)에선 샘 레이미가 고기 꽂는 갈고리에 얼굴을 찍혀 죽는 역으로 나왔으며, 그의 딸도 《스파이더맨 3》에서 깜짝 출연한다. 바로 제임슨 사장이 스파이더맨을 찍기 위해 피터를 찾다가 카메라를 찾던 도중에 카메라를 건내주는 여자애가 바로 그의 딸이다. 존 카펜터와 토브 후퍼, 웨스 크레이븐 같은 호러물 유명인사들이 연출과 카메오를 맡아 화제가 된 TV 영화 《보디백》(1993)에선... '''살해당한 시체로 말없이 나오기'''까지 했다.
샘 레이미가 연출한 모든 영화에는 노란색 자동차가 등장한다. 차종은 1973 Oldsmobile Delta 88. 원래는 샘의 아버지의 차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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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아니다.조지 w 부시에게도 후언을 한 적도 있고 일론 머스크와 같이 특별히 몸담는 정당 없이 자신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약속하는 정치인을 자비롭게 후원해주는 스타일이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인 바바라 복서를 후원한 적이 있는데 그녀는 민주당원이다.
가장좋아하는 호러영화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1968)이라고한다.#
4. 연출작
5. 제작
6. 외부링크
로저 이버트의 '드래그 미 투 헬' 리뷰
샘 레이미의 다크맨 빛을 보다!
박찬욱 감독님이 평한 샘 레이미의 다크맨
샘 레이미 스파이더맨4 스토리 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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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살 연상의 형으로 시나리오 작가이자 정골의학 박사. 다크맨, 이블데드 3, 스파이더맨 3의 각본을 동생과 함께 집필하기도 했다.[2] 6살 연하의 동생으로 배우 겸 영화 제작자. 샘 레이미 영화에 자주 조연, 카메오로 출연하는데 이블데드 시리즈,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그루지, 드래그 미 투 헬 등에 출연했다.[3] 본래 소니 픽처스 측에서는 공포영화 전문 감독으로 여겨지던 레이미를 감독 후보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지만 평소 스파이더맨의 열렬한 팬이었던 레이미가 스파이더맨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하자 직접 소니 픽처스의 사장과 스탠 리를 계속해서 만나며 설득하였고 마침내 감독으로 낙점되었다고 한다.[4]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흥행 8억 9천만달러로 전작들 보다는 흥행이 높았다.[5] 샘 레이미와 토비 맥과이어가 떠나고 제작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레이미 스파이더맨 3부작보다 더 흥행과 평가에서 실패했다. 결국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넘어가 다시 리부트되는 운명을 맞는다.[6] 하반신 마비의 흑인 과학자가 밤에는 강화복을 입고 범죄자들과 싸운다는 내용의 미드. 한국에서도 더빙됐던 적이 있다.[7] 흑인이 슈퍼히어로였다는게 꽤 신선했는지 흑인 기자가 "흑인 슈퍼히어로잖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https://twitter.com/djuna01/status/965232138965544961[8] 드라마. 시즌 1 1화의 연출 또한 맡았다.[9] 짧은 길이의 시리즈만 제작하는 QuiBi 독점 시리즈. 미국 50개 주에 있는 괴담들을 바탕으로 한 공포 앤솔로지이다.[10] 왜 취소선이 그어져 있나면, 히로인 MJ의 몸매부각을 찬양하는 글이라서 그렇다. 3편은 소니의 간섭이 너무 심해선지 MJ의 몸매를 감상할수가 없었다나 뭐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