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석

 


'''이름'''
양현석(梁鉉錫)
'''출생'''
1970년 1월 9일[1] (54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국적'''
[image] 대한민국
'''신체'''
180cm[2], 70kg, A형
'''학력'''
서울교동초등학교
중동중학교
광명공업고등학교 졸업[3]
'''경력'''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
YG엔터테인먼트 설립, 대표 프로듀서[4]
'''가족'''
아버지 양재훈[5], 어머니 한춘자
형제 3남 중 차남 (형 양홍석, 남동생 양민석(1973년 생)[6])
처남 이재진
'''배우자'''
이은주 (2010년 결혼)
'''자녀'''
딸 양유진 (2010년생)
아들 양승현 (2012년생)
'''종교'''
무종교#[7]
'''링크'''

1. 개요
2. 행보
2.1.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2.2. YG엔터테인먼트 설립 이후
2.3. 사생활
2.4. 경제력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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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가수이자 전직 프로듀서 이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 멤버이자 대형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 및 최대주주이다.[8]
젊은 시절에는 한국 가요계의 전설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로서, 이후 중년이 되어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 기획사 중 하나를 이끌게 되었다. 이렇게 긴 시간에 걸쳐서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에 끼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여러모로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역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의 하나라고 평해진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소속 가수들의 잦은 불법행위와 2019년에 드러나기 시작한 일련의 사건으로 YG엔터테인먼트 대표직을 사퇴하였으며 사회적으로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개인적인 성격은 털털하다고 전해진다. 본인이 기본 예의만 잘 지키면 경칭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YG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누션의 션이나 YG 초창기 때부터 동거동락해오던 원타임이나 빅뱅[9] 등은 양현석을 사장님이라 안 부르고 그냥 현석이형이라 부른다고 한다.
현재 양현석은 검찰로부터 출국 금지를 받았는데 이유는 아래와 같다. 성매매 알선, 마약 유통, 경찰유착, 성접대, 해외도박, 탈세, 성폭행, 버닝썬 게이트 핵심 인물 등 8가지 혐의이다.
2019년 9월 20일 기준으로 양현석은 경찰로부터 성매매 혐의가 없어 불기소 송치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불기소 송치 예정이라고 해서 무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고 조사 기관이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간 것이다.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수사하게 되면서 수사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는 지켜봐야 한다. 현재 성매매 혐의만 검찰로 송치된 것이고, 원정도박, 환치기 혐의는 경찰이 수사하고 있어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낼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증거가 불충분이 되어, 결국 무혐의 처리 되었다.
2020년 8월 기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김호삼)는 양 전 대표 등에 대한 사건을 수원지검으로부터 이송받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현석은 비아이의 마약투약 의혹을 공익제보한 B씨에게 진술 번복을 강요하고 협박한 혐의를 받는다.

2. 행보



2.1.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데뷔 전까지만 해도 댄서 시절의 형편이 어려워서 단칸방에서 세들어 살기도 하는 등 안습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당시의 춤꾼들은 주로 이태원에 몰려다녔고 당시 이주노, 박남정, 박철우[10] 등이 대세였다. 양현석은 상대적으로 저들보다 좀 어린 나이인데 해외의 춤 영상을 많이 구해서 보고 매번 이태원 문나이트 클럽에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춤을 선보여서 선배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태원 댄서들 중 그를 추종하는 댄서 후배들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11] 이 때 양현석 밑에 있던 후배들이 나중에 이주노가 데뷔시키는 영턱스클럽, 양현석의 흑역사인 킵식스의 멤버들이다. 박남정은 양현석이 뜨기 전에 가수로 데뷔했고, 이후 친구인 이주노의 소개로 양현석을 자신의 백댄서로 쓰며 이게 양현석이 연예계에 데뷔하는 계기가 된다.
1991년 같은 업소에서 전속밴드와 댄서로 만났는데 양현석에게서 춤을 배우고자 했던 서태지(정현철)에게서 한달에 150만 원씩 3개월로 450만 원으로 당대 직장인들의 몇달치 봉급에 해당되는 적지 않은 댄스 강습료를 받아놓고[12] 군 입대를 하여 말 그대로 먹튀가 되는가 했는데 의병 제대 이후 잊지 않고 인연이 다시 닿아서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을 했다. 이 때문에 이문세의 오아시스에 출연한 양현석은 서태지보다 2살 많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런 부분에서 장난스럽게 말하기는 하지만, 양현석은 서태지를 엄청 아끼는 편이라 자신은 물론 YG 내에서도 타 가수/뮤지션에 대한 디스곡을 거의 안 내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서태지의 편에 서서 디스곡을 낸 적이 있다. 팬들의 추측에 의하면 그가 첫 번째로 발표한 디스곡은 자신의 솔로앨범에 수록된 '무시'라는 곡이다. 두 번째는 페리 솔로 앨범에 수록된 'Oh, No!'라는 곡으로 충 두 차례에 걸쳐서 서태지를 지켜주었다. 전자인 '무시'의 경우는 시나위신대철을 디스한 곡이라 전해진다. 시나위의 곡 "은퇴선언"에 대항 하는 곡이었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대부분 팬들의 추측으로 만들어진 정보이며 양현석 본인의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 대신 Oh, No!의 경우는 가사 내용에서도 직접적으로 자세하게 들어가는데다가 YG 소개글에서도 컴배콤을 발매한 이재수를 겨냥한 곡이라고 못을 박아놨기 때문에 공식적인 이재수를 디스한 곡이 확실하다.
하지만 의외로 서태지에게 섭섭한 것도 있는지 팀명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선 때에 따라서 본인도 표현이 분분하다. 사실 실제 팀명은 "태지보이스(TAIJIBOYS)"였으나, 앨범명을 한글로 등록할 때 음반 배포 쪽 스탭이 멋대로 '태지보이스'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앙현석은 SBS의 예능프로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이와 비슷하게 회상했다. 실제 1.5집(테크노 믹스 & 라이브)과 3집 라이브 앨범(95 다른 하늘이 열리고)에서의 앨범 자켓에는 그룹명이 태지보이스라고 되어있는데, 이 잔재로 보인다. 양현석 본인도 태지보이스라는 그룹명에서는 거부감이 없었는데, 판이 나오고 나니깐 "아이들"이 되어있어서 기분이 나빴다고 회상했다.
사실 서태지를 상당히 아꼈던 만큼 진짜 섭섭한 부분은 서태지 특유의 '''사망설이 터졌는데도 아무것도 모른 채 연락 두절하고 앨범 작업만하던 외골수 같은 성격'''을 봐야 한다. 콕 집어 섭섭하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힐링 캠프 두번째 출연 때 서태지와 양현석의 불화설에 대한 질문이 있을 때 "내가 서태지 걸음걸이만 봐도 몸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했을 정도로 불화설을 부정하긴 했으나[13], 얼굴을 못 봤으면 못 본 만큼의 시간차가 느껴진다고 얘기하였다.[14]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 이후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지게 된다. 데뷔 이후 MBC 인간시대에서 그의 집을 찾아가서 살펴본 일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단칸방에서 소박하게 사는 모습이 공개되자 팬들이 돈 벌어서 어디다 썼냐고 의아해한 적이 있었다. 양현석은 그게 안 좋은 집이라는 생각은 안 해봐서 아무렇지도 않게 집을 공개했다고 밝혔다.[15]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래퍼[16]와 댄서를 맡았다. 랩 실력은 랩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당시 대한민국 시대상 훌륭하다고 평가 받았다. 하지만 2010년 이후 탁월한 실력의 래퍼가 많아지면서 래퍼로서 위상은 많이 내려갔다. 대신 춤 실력에 있어서는 당대나 지금이나 역대 최고라 불린다. 특히 몸 관절을 놀라울 정도로 꺾어서 고난도 동작을 만드는 능력은 그의 주특기다. 전성시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의 무대를 보면 서태지가 전체적인 보컬의 비중을 가져가고 양현석과 이주노는 고난도 춤 실력을 선보이는 구도가 잦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에는 댄스로 시작했지만 이후 락을 기반으로 한 밴드 음악도 시도하며 자연스레 그의 음악적 성향도 일부분 바뀌었다. 하지만 서태지처럼 기타를 비롯한 다양한 악기를 모두 다루지는 못한다. 대신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가끔씩 드럼도 쳐서 악기 중에서 드럼을 잘 다룰 줄 안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4집 필승 뮤직비디오를 보면 양현석이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처음부터 드럼 실력이 출중한 것은 아니고 양현석이 드럼을 배운 것은 3집 활동 중반기에 습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95년 1월 콘서트 '다른 하늘이 열리고'에서 'Farewell to love" 무대를 위해 드럼을 배우게 되었다. 해당 곡은 시나위의 곡이며 서태지와 아이들 최고의 히트곡 중에 하나인 환상 속의 그대에서 잠깐 흘러 나온다. 서태지의 회고로는 원래 드럼 초짜였지만 특유의 춤 실력을 응용해서 빨리 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시기에 박선주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댄서로서는 특히 힙합 댄스가 주력인데 그 실력이 가히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서태지 중심의 그룹인 것은 사실이지만 양현석 역시 이 분야에서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된 후 그는 잠시 솔로 가수로 변신했다. 이후 본인의 애칭을 본뜬 양군기획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가수 제작자의 길을 걷고 있다. '양군'은 서태지가 양현석을 부를 때 쓰던 애칭이라고 한다.[17] YG엔터테인먼트의 회사 경영 및 배우 매니지먼트는 동생인 양민석 대표가 주로 지휘하고 양현석은 프로듀서로서 YG의 주 사업인 가수 제작 및 음악 분야를 총괄하는 쪽으로 형제간 역할 분담을 한다.

2.2. YG엔터테인먼트 설립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급격한 성장을 이룩한 YG가 처음부터 대형 기획사는 아니었다.[18] 특히 초창기의 YG는 매우 어려웠다. 야심차게 데뷔시킨 킵식스가 실패하며 회사가 휘청거렸다. 초창기에 자금이 없어서 본인이 직접 솔로 1집을 내고 활동하기도 했다. 솔로 앨범은 큰 실패를 거두어 양현석 본인도 이를 흑역사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19]
솔로 앨범 구성을 보면 프로듀서 페리 덕분에 퀄리티는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급하게 준비한 티가 역력했다.[20][21] 훗날 양현석의 회고에 의하면 YG 설립 초기에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솔로 1집을 낸 거라고 하였다.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력이 있었기에 상업적인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뮤직뱅크 최고 순위 10위 안에는 들었으며[22], 앨범 판매량도 22만장 정도로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앨범 발매 의도가 자금 확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훌륭한 평을 듣기도 한다. 같은 해에 나왔던 서태지 5집(국내복귀는 하지 않고 음반만 냈었다)가 110만장이라는 경의적인 성적을 낸 것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수치지만 이주노 솔로 1집(대략 4만장 정도 팔았다)에 비하면, 확실히 인기는 더 있었다.[23] 이 솔로앨범으로 기초 자금을 확보한 양현석은 앨범 활동 직후 데뷔한 원타임을 제대로 지원하며 지누션 1.5집에 이어 YG패밀리 활동의 초석을 다졌다. 이후 회사 식구들을 끌어모아 YG패밀리 활동으로 나름대로 유의미한 성적을 냈다.
솔로 활동 이후 본인은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본인은 그 때 자신이 가수보다는 제작자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YG패밀리의 단독공연 및 페리의 라이브 무대에서는 무대에 직접 올라서 관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도 했다.[24]
과거에는 박진영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댄서로써 이름을 날렸지만,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지 나이가 나이인지라 2000년대 이후로는 몸이 굳어서 예전의 춤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마지막 솔로 활동 이후로 10년 넘게 무대에 나서지 못한 점도 춤 실력 하락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연배인 박진영은 꾸준한 자기 관리와 연습으로 아직도 수준급 춤 실력을 보여주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양현석의 춤 실력 하락을 가장 눈에 띄게 보여준 사건은 "이문세의 오아시스" 출연이다. 그는 해당 토크쇼에 출연하여 자신이 아직은(나이가 들었음에도) 후배 가수인 세븐에게[25] 밀리지 않는 춤 실력을 지녔다고 발언했다. 그는 오랜만에 서태지와 아이들난 알아요를 직접 선 보였지만, 당시 이문세가 "이젠 세븐에게 밀리겠네요"라고 말해 굴욕을 당했다. 당시 영상을 본 대중은 그의 떨어진 춤 실력을 보며 한탄했다. 특히 전성기 시절 유연한 동작이 트레이드 마크인 양현석이 뻣뻣하게 춤을 추는 장면은 대중을 폭소하게 했다. 해당 링크를 보면 세월 앞에 무너진 양현석의 춤 실력을 볼 수 있다. (2005년도 2월 25일 방영분)
킵식스의 실패를 딛고 1997년 지누션과 1998년 원타임 등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양현석은 이후 '양군기획'을 설립하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특히 원타임의 성공은 차후 YG에 엄청난 재산이 된다. 원타임의 일원인 '테디'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훗날 원타임이 사실상 해체한 후, 테디는 래퍼에서 작곡가로 전향해 YG에서 엄청난 성공 신화를 써내려간다.[26]
킵식스의 실패 직후 존폐 위기까지 갔었던 YG가 살아난 이후는 양현석의 솔로 앨범의 영향이 크지만 DR뮤직[27]의 관계자의 도움도 크다. 양현석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한 DR뮤직 관계자가 도움으로 YG는 간신히 회사의 수명을 연장한다. 양현석은 어려웠던 시절 도와준 이때의 경험을 잊지 않고 2012년 해당 소속사 걸그룹인 라니아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해줬다. 자세한 내용은 라니아 항목을 참조. 이런 영향 때문에 라니아의 멤버는 양현석에게 호의적인 발언은 여러 차례했다.
YG 설립 이후 수 년이 지난 이후 다수의 전문가는 YG 특유의 매니징 방식을 주목한다. 양현석은 자신의 소속사를 운영할 때, 업계의 라이벌인 다른 두 사람인 이수만, 박진영과 비교되는데 그의 스타일은 '''완전방목형'''이다. 소속 가수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크게 사생활적인 관여를 하지는 않으며,[28]귀를 열고 가수들의 의견을 모두 듣고 자신의 입장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향을 찾아서 최대한 도와주는 스타일이다. (기사원문)
그를 비판하는 세력은 그가 유능한 특정 인물 덕분에 운 좋게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뮤지션으로서는 서태지를 만나서 성공했고, 제작자로서는 초기에는 Perry, 나중엔 Teddy, KUSH라는 작곡가 덕분에 겨우겨우 버티다가 우연히 빅뱅이 터져줘서 운으로 부자가 됐다고 비판하는 세력은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대체적으로 2010년 이후 YG 소속 가수의 팬들[29] 혹은 악성 YG 안티팬일 의견으로 추정된다.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전의 서태지는 그룹을 결성할 생각은 없었고 양현석에게 춤만 배우려고 했지만, 서태지가 작곡한 음악을 듣고 먼저 그룹을 만들 것을 제안했던 이가 양현석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 데뷔했을 때 일부 평론가가 좋지 못한 평을 내린 것을 감안하면 양현석의 곡을 고르는 선구안과 트렌드를 보는 눈은 탁월한 편이라 평가된다. 또한 각 가수가 자신의 색을 표현할 수 있게 돕는 능력도 뛰어나다. 자신의 주관을 강하게 투입시키는 이수만박진영과는 여러모로 대조적인 서포팅형 기획자라고 다수의 전문가는 평가한다.
소속사 가수가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할만한 사고를 친다면 불같이 화를 낸다고 한다. 지드래곤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조사를 받았을 때, 평소에 지드래곤에게 다른 사건사고가 있었을 때는 모두 감싸줬지만 이 사건 만큼은 엄청나게 화를 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하지만 가수들의 일탈을 방지하기 위해 교육을 시킨다는 말과 어울리지 않게 지드래곤에 이어, 박봄, 그리고 까지 똑같이 마약 문제로 큰 물의를 일으키자 양현석이 논하는 '교육'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의문 부호를 가지는 대중이 늘고 있다. 일각에서 양현석이 가수를 매니징할 때 음악 활동의 자율성과 사생활의 자율성 사이에서 정도를 찾는 일을 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음악을 만들 때 가수 개개인의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 최대한 간섭을 하지 않지만 도덕적/법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행동을 할 때도 간섭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해외진출 면에서도 다른 기획사와는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2011년에는 에이벡스와 합작으로 YGEX 레이블을 설립해 YG 소속 가수들의 음반을 내고 있다. 아키모토 야스시와 더불어 에이벡스에 전용 레이블을 세운 몇 안 되는 프로듀서로, YG의 브랜드파워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앨범의 발매 주기는 팬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200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빅뱅이 메가 히트곡 '붉은 노을'을 발매하고 수 년간 국내 활동에서 공백기를 가지는 동안 빅뱅의 팬클럽 VIP가 이러한 YG의 성의없는 운영에 크게 분노했다. 지나친 공백기는 빅뱅의 후배 그룹인 위너와 아이콘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이때문에 해당 그룹들의 팬덤은 양현석의 방만한 운영에 분노하는 경우가 크다.[30] [31] 2000년 이후로 지난 몇 년간 YG가 보인 행보를 토대로 추정하면 YG 소속 가수의 공백기는 대체로 1년 6개월이다. 음악 활동의 공백기가 여타 가수에 비해 길며 국내 방송도 많이 출연하지 않는다. 양현석 본인은 음원차트를 휩쓸 만큼의 좋은 노래가 마련 되지 않으면 내보내지 않는 자신의 철학 때문에 공백기가 길어진다고 해명했다.[32] 이러한 양현석의 철학 때문에 빅뱅은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공백기를 가졌고, 투애니원 공백기 3년, 위너는 1년 6개월 ,그리고 아이콘은 데뷔에 걸리는 시간이 무려 3년이다.
'양현석은 가수 뽑을 때 얼굴을 안 본다'가 정설처럼 퍼져 있다. 하지만 힐링캠프에서 '예쁘고 잘생긴 사람보다 멋있는 사람이 좋다'고 밝혔다. 외모보다 끼와 카리스마를 훨씬 많이 보는 것으로 추정된다. 덧붙여서 2NE1도 얼굴이 예쁘지는 않지만 멋있기 때문에 좋다고 말했다. 제작자로서 연예인을 보는 것 말고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작고 귀여운 여성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공백기나 매니징 방식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연예인을 발굴하는 안목은 엄청나다고 평가받는다. 당장 서태지를 알아 보았으며 그의 사업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테디'와 '빅뱅'[33], 그리고 2010년 이후 PSY까지, 양현석이 함께한 연예인은 대부분은 일반적인 히트의 범주를 넘어선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소속 가수 외에도 양현석이 호의적으로 평가한 인물이 향후 좋은 성적을 거둔 경우가 많다. 케이팝스타에 출연했던 유주김세정을 높게 평가했으며, Mnet의 오디션 프로 방송인 '슈퍼 스타 K'에서 서인국을 발탁했다. 그에게 적대적인 와이지 팬덤은 '캐스팅만 하는 게 좋겠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2019년 6월 14일 양현석은 버닝썬 게이트 및 소속 가수들의 연이은 불법행위로 인해 YG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직책에서 사퇴했다.[34]

2.3. 사생활


2009년 이재진의 여동생이자 스위-티, 무가당의 멤버였던 이은주와 결혼에 골인했다.[35] 연애기간이 9년을 넘었다니, 스위-티 연습생 때부터 교제한 것으로 추정된다.[36] 이재진이 한 잡지 인터뷰에서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여동생과 양현석이 사귀는 걸 알았고, 양현석이 병문안을 자주 와서 부모님께 많은 위안이 되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재진과 양현석의 별명은 '춘삼이'라는 점은 대중에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 해당 별명은 얼굴에 점이 있어 생긴 별명이다. 또한 이재진은 데뷔 전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이었다고 한다. 스위-티는 2002년도 데뷔한 걸그룹이다. 본인은 힐링캠프 출연 때 아내 이야기를 하면서 나이가 어려서 좋아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2017년 7월 21일 사옥 건물 용도를 무단 변경한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
2018년 이후 SNS 활동이 늘었다. 특히 인스타그램을 많이 하는 편인데, 다수의 YG 팬덤은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댓글을 남기곤 한다.

2.4. 경제력


2012년 강남스타일의 세계구급 열풍으로 YG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급등하더니 2012년 9월 24일 계속된 주가 상승으로 양현석의 지분 가치는 3,000억 원을 넘어 마침내 이수만 회장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현재는 거품이 꺼져 많이 내려간 상태로, 최근 중국의 사드 보복 우려로 엔터주가 떨어져서 2016년 8월 9일자로 양현석이 약 1,200억 원, 이수만이 약 1,300억 원이다.# 이후 버닝썬 게이트, 비아이 사태 등을 겪으며 YG의 시가총액은 2019년 초 8,000억 원대에서 8월 현재 4,000억 원대로 절반 가까이 쪼그라든 만큼 양현석의 지분도 가치가 폭락했다.
홍대에 빌딩을 여러 채 가지고 있으며, 모 클럽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또한 하이브리드 슈퍼카 3대장 중 하나인 포르쉐 918 스파이더[37] 오너라는 말이 있었으나 이는 잘못된 정보이며 해당 사진의 918 오너는 양현석과 닮은 외모일 뿐 양현석이라는 증거는 없다. 대신에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를 소유하고 있다.
처남인 이재진이 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양현석의 카드 한도는 1억 원'''이라고 한다.

3. 사건사고 및 논란




4. 여담


본래 양현석은 YG 공식 홈페이지의 아티스트 소개 페이지의 제일 끝자락에 숨어 있어서[38]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는 그룹 이름인 'YG'가 대표 양현석의 애칭인 '양군'의 약자인 것도 모르는 외국인이 수두룩 했었으나 SBSK팝 스타의 심사위원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 특유의 존재감을 강하게 어필했고, 2013년부터는 공식 홈페이지의 아티스트 페이지의 제일 앞자락에 자신의 소개가 옮겨지면서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외국인들이 부르는 애칭은 ''''YG papa''''.(의역하자면 와이지 삼촌)이 덕분에 YG 엔터테이먼트에서 유튜브에 올린 가수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영상에는 "YG papa eng sub plz"같은 영어 자막 달아달라는 요청섞인 댓글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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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사장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아주 닮았다.
엄청난 노안이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앨범 때 그의 모습을 보면 저게 과연 20대 초반인지 의심이 가는 정도가 아니라 웬 아저씨가 서태지 옆에 있다. 정말 충격과 공포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서태지도 양현석을 늙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50대인 지금은 상대적으로 그 나이에서 어려 보이는 외모이다. 쉽게 말해 그렇다고 동안은 아닌데, 그래도 예전의 노안에서는 많이 벗어났다고 봐야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얼굴이 크게 안 변해서 나이가 액면령(?)을 넘어가서 동안으로 보이는 효과다.
코미디 빅리그에서 양현석의 YG 엔터테인먼트를 패러디한 "양꾼 기획"이 나오기도 했다. 개그 요소는 양사장 특유의 혀짧은 소리.
기획사 수장으로서 방송이나 공식 석상에 설 때 거의 항상 빵모자를 쓰고 있어서 빵모자가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 있으며, '모자가 본체다.' 같은 드립과 함께 탈모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위의 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는 머리숱이 많고 흰머리도 없다. 머리 관리할 시간이 없어서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서태지서태지와 아이들 1집 때 늘 모자를 쓰는 코디 때문에 앞머리 빼고 대머리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연예계 활동 및 소속사 사장 일 등으로 그나마 나아지긴 했으나, 사실 낯가림이 많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본인은 연예계 자체에 큰 뜻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39]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도 본인이 처음부터 하려던 것도 아니었고, 원래 서태지에게 멤버만 소개해 줄 셈이었는데[40] 정작 서태지는 양현석이 소개해 준 멤버들이 맘에 들지 않았고, 결국 서태지가 양현석보고 "직접 해라"라고 권유하여 팀에 들어간 거라고 한다. 참고로 이주노를 소개해줄 때애도 양현석도 이주노도 둘 다 서태지보다 나이가 많아 양현석이 괜찮겠냐고 묻자 서태지는 쿨하게 괜찮다고 했다고 한다.
이런 성격에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MC들이 낯가림이 심했는데, 활동은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엔 "그냥 음악하는 게 즐거웠고, 무대 위에선 사람들의 시선 신경 안 쓰고 그냥 춤만 췄다. 춤추는 게 즐거웠으니 무아지경으로 춤만 췄다"고 했다. 사실 4집 때는 서태지도 힘들었으나, 양현석도 본인도 톱스타였던 때가 가장 스스로가 지쳐있던 때였다고 했다.
이주노의 빚 1억 6,500만원을 대신 갚아주기도 했다. 덕분에 이주노는 구속에서 풀려났는데 돈을 아예 준 건 아니고 형식상 차용증을 써주었지만 이주노의 수입이 별로인 데다가 자식은 셋이나 되어서 사실상 돌려받을 수가 없다. 세월호 때는 5억을 기부하고도 묻혔는데 이번에는 3분의 1도 안되는 액수이고 차용증까지 썼는데도 대중들에게 오히려 더 강한 인상을 준 듯하다.
김영환한테는 처이종사촌이라 한다. 김영환이 밝힌 에피소드에 의하면 김영환이 과거 치과의를 하던 시절에 양현석이 치과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양현석에게 "너 이제 딴따라 그만하고 공부 좀 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해서 대박이 났으며 그후 김영환은 양현석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박수홍과는 한때 이웃으로 살면서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미우새를 보면 박수홍의 모친과도 안면이 있는 눈치다.
대만 남자아이돌그룹 스페셜(Spexial)의 일본인 멤버 'Win(風田)'이 양현석과 도플갱어급으로 닮았다.
엄청난 춤실력의 소유자. 한국 1세대 힙합댄서였으며, 애초에 서태지와 아이들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위와 같은 춤실력 덕분에 가능했다. 당시엔 올드스쿨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었고, 한 때 한국 댄서들의 집결지로 통했던 이태원 문나이트를 주름 잡던 인물이었다. 이 때문인지 YG에서 활동했던 댄서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양현석과 일했던 댄서들은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본인이 댄서 출신이다 보니 더 잘 챙겨주거나 하는 편이었던 모양이다.
디시인사이드 양현석 마이너 갤러리도 있는데, YG 소속가수를 가리지 않고 양현석의 삽질 및 소속가수 처우에 대한 비판이 많이 올라온다.
YG 가수들에게는 꼭 하는 성대모사의 피해자(?) 1인이다. YG 출신치고 성대모사를 안한 사람들이 없으며 특히 빅뱅은 이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근에 데뷔한 블랙핑크도 양현석 성대모사에 능하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업로드할 때 해시태그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1] 1970년 1월 9일 신분상 나이이며 실제로는 1969년 12월 2일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1970년 1월 9일의 음력이 1969년 12월 2일이다. 당시에는 음력 생일양력 생일을 헷갈려서 반대로 등록한 경우가 가장 많기도 했고 1960-70년대 이전 출생자들은 행정체계가 미비하다는 이유를 핑계로 나이를 올려부르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연예계에서도 이런 호칭 문제로 폭행사건까지 간 사례가 있으며 1990년대생 중에서도 가끔씩 있는데 연예계에서 유독 1월생들 중에서 정확하게 한달 늦게 신고되었다거나 음력생일로 기재하는 거 보면 그냥 빠른 년생 문제로 골칫거리 만들기 싫어서 1살 올리려는 의도로 대강 짐작된다. (사실 위키의 나이 기준이 되는 만나이로 보면 그래봐야 1-2달 차이라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다.)[2]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프로필에는 184cm로 기록했었다.[3] 現 경기항공고등학교[4] 2019년 6월 14일부로 YG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직책에서 사퇴했다. [5] 2017년 5월 20일 노환으로 별세. https://news.joins.com/article/21593303.[6] YG엔터테인먼트 前 대표이사. 양현석과 함께 모든 직책에서 사퇴하였다.[7] YG패밀리 1집 등 잘나가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 때는 프로필의 종교란에다 자신의 1집 수록곡인 "아무도 안 믿어"드립을 치기도 했다.[8] 초기에는 자신의 동생인 양민석과 공동 대표였으나 현재는 임원에서 물러나 있는 상태이며 회사 대표 프로듀서 겸 YG 지분 17.62%를 보유한 대주주로 머물고 있다.[9] 의외라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지드래곤 같은 경우에는 14세(2001년도) 때부터 YG에서 있었다.[10] R.ef의 그 박철우 맞다.[11] 실제 아는 형님이나 여러 프로그램에서 이상민이 양현석을 최고로 뽑는다.[12] 다만, 이는 양현석이 힐링캠프에서 밝힌 내용이고 후에 서태지가 해피투게더에 나왔을 때는 한달에 50만 원씩 석 달에 150만 원이라고 말했다. 즉, 서태지는 "총액" 150만 원에 3개월로, 양현석은 "매월" 150만 원에 3개월로 기억에 남아있는데, 사람의 기억에는 오류가 생기기 때문에 진위는 불명. 어쨌든 후자로 쳐도 당대 대기업 신입사원의 두세달치 봉급에 해당되는 금액이었으니 결코 싼값은 아니었는데, 양현석은 당시 록밴드 출신이었던 서태지에겐 관심이 없어서 떨궈낼 생각으로 일부러 높은 가격을 불렀다고 증언했다.[13] 서태지는 원래 휴대폰도 지갑도 안 들고 다니는 인간이라고 얘기했다. MC들이 "그게 가능해?"라고 하자 양현석은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심 안돼요"라며 서태지를 이해해주는 모습을 보였다.[14] 서태지 8집 컴백 후 김종서와 함께 서태지의 자택에 놀러갔는데, 본인은 간만의 서태지의 컴백이기도 해서 음악 얘기나 업계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정작 서태지는 김종서와 '''"어느 슈퍼의 야채가 가격이 싸고 할인을 많이 하더라"'''라는 살림 얘기 삼매경에 혼자만 붕 뜬 것 같았다는 회상을 하기도 했다.[15] 그리고 이 집은 1994년 12월 12일, 천상병 기념관이 됐다(천상병이 시를 쓰던 방을 재현#s-1한 곳이 양현석 방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재개발사라졌다.[16] 랩 실력이 나쁘진 않은데, 혀짧은 발음을 자주 해서 서태지가 데뷔 당시 많이 놀리기도 했다.[17] 실제로 서태지가 2000년 9월에 국내 활동을 재개하며 이듬해까지 진행했던 '태지의 화' 투어의 영상을 보면 '하여가'와 '컴백홈' 무대를 위해 게스트로 출연한 양현석에게 양군이라고 부르는 걸 확인할 수 있다.[18] 2010년 이후 YG는 SM, JYP와 함께 '3대 기획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19]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흑역사라 치부할 수는 없다. 앨범 자체가 퀄리티는 뛰어난 편에 속하며 당시 인기도 꽤 많았다. 본인은 흑역사라고 언급하기는 하지만, 앨범 자체는 꽤 고퀄인건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다.[20] 솔로 1집 수록곡인 악마의 연기 뮤직비디오를 보면 연애인 보다는 일반인에 가까운 양현석의 몸을 볼 수 있다.[21] 해당 앨범에는 서태지가 "아무도 안 믿어"의 곡을 써준 것에 대해 보답곡으로 "잊혀질 때까지는 널 사랑할게"의 곡이 들어갔다.[22] MBC 음악캠프에선 1위도 한 적이 있다.[23] 공교롭게도 두 앨범 모두 삼성뮤직/오렌지 브랜드에서 발매되었다.[24] 방송공연에서는 전혀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25] 세븐은 2000년대 초중반 남자 솔로 가수 중 최고의 춤 실력을 보유한 실력자다.[26] 테디는 히트곡을 만드는 능력이 출중하지만 그만큼 표절 의혹이 있다.[27] 베이비복스가 있었던 그 기획사 맞다.[28] 최근들어 사생활 적인 관여를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아이돌 그룹 위너는 차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며, 역시 아이돌인 아이콘은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해야 한다.[29] 대체로 응원하는 그룹의 지나친 공백기로 양현석의 안티팬이 된 이들이 많다.[30] 특히 아이콘은 2016년과 2017에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 당시 양현석과 아이콘의 팬 클럽 아이코닉의 관계는 최악이었다.[31] 아이콘은 2018년을 기준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32] YG 소속 가수가 긴 공백기를 끝내고 발매한 앨범이 대체로 엄청난 성적을 거둔 경우가 많기에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33] 특히 K-Pop 역사상 단일 파급력이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는 G-Dragon(지드래곤)은 양현석 인생의 역작으로 평가받는다.[34] 하지만 여전히 최대 주주이므로, 회사에 대한 영향력은 줄지 않았다.[35] 젝스키스 데뷔 전 이재진과 김재덕이 아직 가수지망생이던 동네 댄서일 때 양현석은 둘의 춤 실력이 출중하다는 소문을 듣고 둘과 조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재진과 김재덕은 당시 아주 약간의 자만심을 품고 양현석 앞에서 춤을 췄고 이걸 본 양현석은 "니들 아직 10년은 더 춰야겠다."라고 크게 혹평했다. [36] 양현석이 이은주를 처음 본 것은 젝스키스가 출연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다. 이재진의 부산 집이 나올 때 이은주가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놀라운 것은 이재진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데뷔했기 때문에 당시 이은주의 나이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37] 참고로 이 차는 대한민국에 단 3대가 있는데, 그 중 두 대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생전 소유하고 있었고, 한 대는 김앤장 로펌 대표가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가격은 무려 '''9억 4,893만 원'''이라고 한다.[38] YG 홈페이지를 새로 리뉴얼하면서 부터다. 다른 소속 가수들 앨범에 열심히 피쳐링해주고 YG패밀리 2집이 나왔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맨 앞자락에 있었다. 다음부터가 지누션, 원타임, 페리, 마스타 우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39] 정말 순수하게 그냥 춤추는 게 좋았다고 했다.[40] 서태지가 리더이기도 해서 웬만하면 서태지보다 나이가 어린 멤버로 결성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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