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1. 설명
2. 원인
3. 관련 문서


1. 설명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 어린 왕자 中'''

대한민국속담으로서 자신이 어렵게 지내던 시절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를 가진 이를 업신여긴다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서 "'''종이 종을 부리면 식칼로 형문을 친다.'''"[1]와 "'''나비애벌레 시절 모른다.'''", "'''병아리 시절 모른다."''', '사다리 걷어차기#s-2'도 있다. 윗 세대 사람이 아랫 세대 사람에게 말하는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도 비슷하다 할 수 있다.
흔히 자신이 부자나 높으신 분이 되면 자신이 어렵게 지내던 시절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자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거나 오히려 탄압하는 모습을 보일 때 쓰인다. 그야말로 가해자가 된 피해자의 일종이다. 실제로 한때 피해자였던 사람들이 원래 가해자보다 타인을 더 괴롭히는 사례가 제법 많다. 혹자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한테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그럼 너는 계속 올챙이로 살든가!" 같은 뻔뻔스러운 반박도 한다.[2] 전자는 와패니즈들의 단골 표현이기도 하다. 역사가 반복되어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물론 초심을 잊어도 반드시 망하거나 대중에게서 까인다는 보장도 없고, 반면에 초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도 반드시 대중의 지지를 얻거나 흥행한다는 보장 또한 없다. 초심보다 더 좋을 수도 있고, 초심이 나쁠 수도 있다.
국가나 기업 단위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운영하는 이는 결국 사람이고, 대개 혼자 운영하는 것이 아닐 뿐더러, 후손이나 후계자가 조상이나 선구자의 올챙이 시절을 알기는 어려울 수 있으므로 다소 부적절한 방법이다.
흔히 말하는 개천에서 용나는 현상 자체를 비판할 때 이 개념을 빌어다 사용하기도 한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안 생각하는 것처럼 '개천'에서 떠난 '용'은 더 이상 개천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별별 형태의 양서류가 다 서식하는 열대지방에는 올챙이 시절 자체가 아예 없어서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개구리도 있다. 물론 어린 시절 모습이 올챙이 모습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개구리의 기억력으로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는 것도 무리이고, 개구리가 되기 전에 잊어 버릴 수도 있다.
때로는 옛 물건이 올챙이 시절 기억을 되살려 주기도 한다(#).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2. 원인


개구리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수치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그것을 잊으려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철저히 조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조질 때는 굉장히 고통스럽고 사악하며 악랄하다. 흔히 사이코패스가 감정이입이나 이해심이 없어서 흉악할 것 같지만 저런 올챙이 때 몹시 어려웠던 개구리들은 어느 정도는 자신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잔인하고 고통스럽다. 알고 있어서 어떻게 부서질 줄 알고 조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는 개구리들은 올챙이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는 하지만 이미 거기엔 타인에게 하는 공감이나 배려, 상대에게 대하는 깊은 이해와 동정심의 요소가 빠지는 일이 대부분이다.
사실 더 근본을 파고 들어가면, 위에서도 나왔지만 개구리 올챙이 시절형 인물들은 소위 '입지전적' 성공을 이룬 인물들이 상당수고, 성격심리나 상담심리에서는 지나친 자수성가형 인물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인물들은 드물다. 이러는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은 그 아픔을 극복했기 때문에 극복하지 못한 처지의 사람들을 비웃는 경향이 강해 이런 오만함과 편견이 같은 경험을 했음에도 그 처지를 두고도 감정이입이나 공감, 이해, 동정을 못 하게 막는 사례가 많다. 한마디로 자기는 했는데 남들은 못하니 남들이 문제라는 식의 사고방식인 것. 결국 사람은 비슷해 보이는 아픔을 지녀도 그 경험이 모두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올챙이 시절의 고생으로 인성 자체가 비뚤어지거나 사회 구조 자체가 해당인을 그러게 하는 사례도 있다. 사회적으로 자기보다 못 한 남을 깔아보는 것이 아무 문제 없다는 식으로 내면화되어 있는 상태로 신분 상승을 이루고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보기보다 사회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고 저런 이들을 핍박하는 것이 자기만 하는 일이 아니며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결국 사회 구조 자체가 문제인 것이지, '누가 누구를 몰아낸다'는 식으로 개인의 질적 특성에만 의해서 타인이나 사회를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또한, 엄연히 고통이 현재진행형인 쪽과 이미 그 고통에서 벗어난 쪽의 차이는 크고 이런 입장 자체의 차이 때문에 고통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대체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의 경험은 희미해지기 때문에 공감을 못 하는 일도 많다. 실제로 막 그 처지에서 벗어난 때는 그러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고 달라진 이들도 많다.
물론 현실에는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 그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가진 이들이 서로 감싸줄 줄 모르고 저러는 것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병신스러운 꼴이 아닐 수 없다.
위의 문단에서는 나와있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든 올챙이들이 원인을 제공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니다. 특히 과거 지향적인 사회, 출세 지향적 사회에서 '''"초심을 잊지 마."'''라는 핑계로 올챙이들이 개구리 하나에게 들러붙어 '''무임승차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일이 많은데, 이러는 태도가 개구리들에게 "내가 잘 나서 성공한 건데 왜 빌붙어서 날로 먹으려 하냐?" 같은 반발심리를 조장해서 이들이 모질게 올챙이들에게 대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는 상황에서도 가끔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며 올챙이들이 몰아가는 상황이 나오기도 한다. 개구리 하나한테 붙어서 자신들은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방관자 효과의 원인이기도 하다.

3. 관련 문서



[1] 여기서 '형문(刑門)'이란 몽둥이로 죄인의 정강이를 때리며 죄를 심문하는 것을 말한다.[2] 이런 말을 하면서 고증/사실 반영 오류를 까면 이중잣대가 된다. 심지어 이걸 지적하면 '''"과거와 역사는 달라!!"''' 식으로 반발하기도 하는데, 이건 귀에 걸면 귀걸이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 되는 식인지 모를 지경. 특히 역사 책에도 삼국 시대, 조선 시대, 일제강점기 같은 내용이 많아 그런 것들만이 역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