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루딘
'''Scott Rudin'''
1958년 7월 14일 ~
프로듀서 중에서 EGOT를 모두 수상해본 인물은 별로 없다.
이미 17세때부터 프로듀서의 보조로 일했으며 1975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캐스팅 디렉터로 일하였고 1978년부터 영화 프로듀서로 활동하였으며 1987년에 독립 프로덕션을 차리면서 입지를 키웠다.
1980년 에드가 J 쉐릭 어소시에이트에 입사하면서 LA로 이사를 갔고 1984년 20세기 폭스로 전직을 하였다. 또다시 몇년후 파라마운트 픽처스로 전직을 하였는데 여기서 불과 29세에 프로덕션 사장직에 올랐다.
파라마운트에서 아담스 패밀리 1편, 야망의 함정, 트루먼 쇼, 슬리피 할로우, 쥬랜더 1, 디 아워스 등 흥행시켰다. 그렇지만 2004년에 파라마운트 CEO 섀리 랜싱이 취임하면서 그는 디즈니 계열의 제작사에서 활동하게 된다.
그 후에 할리우드 6대 대형 제작사 외에도 독립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제작 활동하고 있다.
제작 이외에 영화 연출 이력은 전무한 것이 특징이다.
1958년 7월 14일 ~
1. 개요
'''이 젊은이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카첸버그(역시 일중독자로 골든 리트리버라는 별명을 당시에 갖고 있었다)를 늙고 병든 래브라도 개처럼 보이게 만든다''' - ''래리 로드''[1]
'''현 세계 최고의 영화 프로듀서 중 한 명''''''루딘이 문제삼는 것은 언제나 최고의 영화, 최고의 감독, 최고의 시나리오다. 본인의 호텔 방 크기나 리무진 같은 화제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영화를 먹고 영화를 마시고 영화 안에서 잔다.''' - ''셰리 랜싱''[2]
프로듀서 중에서 EGOT를 모두 수상해본 인물은 별로 없다.
이미 17세때부터 프로듀서의 보조로 일했으며 1975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캐스팅 디렉터로 일하였고 1978년부터 영화 프로듀서로 활동하였으며 1987년에 독립 프로덕션을 차리면서 입지를 키웠다.
1980년 에드가 J 쉐릭 어소시에이트에 입사하면서 LA로 이사를 갔고 1984년 20세기 폭스로 전직을 하였다. 또다시 몇년후 파라마운트 픽처스로 전직을 하였는데 여기서 불과 29세에 프로덕션 사장직에 올랐다.
파라마운트에서 아담스 패밀리 1편, 야망의 함정, 트루먼 쇼, 슬리피 할로우, 쥬랜더 1, 디 아워스 등 흥행시켰다. 그렇지만 2004년에 파라마운트 CEO 섀리 랜싱이 취임하면서 그는 디즈니 계열의 제작사에서 활동하게 된다.
그 후에 할리우드 6대 대형 제작사 외에도 독립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제작 활동하고 있다.
제작 이외에 영화 연출 이력은 전무한 것이 특징이다.
2. 작품 목록
3. 기타
- 제작자 중에서 프랭크 마셜과 비교할 수 있지만, 스콧 루딘은 단 한번도 연출을 한 적 없다는 것이 차이가 난다.
- 감독인 웨스 앤더슨과 작업을 많이 한다. 사실 웨스 앤더슨의 2001년작 로얄 테넌바움부터 그 이후의 모든 작업을 함께 했다.
- 웨스 앤더슨 정도는 아니지만 코엔 형제와도 작업을 자주 함께 한다.
- 그가 제작한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무려 9번이나 오른 상태이다. 전체 순위에서도 2위이며, 1위는 스티븐 스필버그이다.
[1] 20세기 폭스 회장.[2] 파라마운트 픽처스 회장.[3] 2003년도(제75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4] 2008년도(제80회)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5] 2011년도(제83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6] 2011년도(제83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7] 2012년도(제84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8] 2014년도(제86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9] 2015년도(제87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10] 2017년도(제89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11] 2018년도(제90회)아카데미 작품상 후보[12] 2019년도(제91회)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