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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愼道晟
1918년 3월 7일 ~ 1999년 9월 6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및 정치인이다. 호는 구암(龜庵), 본관은 거창(居昌).[1]
2. 생애
1918년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2]참조에서 아버지 신종삼(愼宗三)과 어머니 풍천 노씨 노정현(盧正鉉)의 딸 사이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 및 일본 사가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진학하였다. 학부 졸업과 함께 동 대학원 연구과에 행정법전공으로 진학하였다. 해방이 되자 연희전문학교 조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설립과 함께 초대 주임 교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3]
1951년 김성수 대한민국 부통령의 비서관으로 임명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거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당 신중목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1955년 민주국민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조봉암의 진보당 창당에 관여하였다가 그만두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마포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김상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9년 11월부터 1960년 4월까지 관선 경상남도지사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1960년 3.15 부정선거에 연루되었고 4.19 혁명을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하였다. 4.19 혁명 이후 구속되었다.
1960년대에는 대구대학 학장을 역임하는 등, 정치생활을 접고 학계로 돌아왔으며, 영남대학교 내에 '한국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남북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74년부터 1975년까지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아울러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지금까지의 친정부적 이력과 달리, 야당의 거물이자 훗날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는 김대중의 대북정책 자문역을 맡게 되었다. 평화민주당 및 신민주연합당 고문으로 추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