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준(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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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경상북도 김천군[2] 출신이며, 최종 계급은 해병 중장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요아킴이다. 본관은 평산 신씨
2. 일생
부모를 따라 일찍 만주로 이주하여 하얼빈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관동군 군속으로 지내다가 그를 눈여겨본 일본군 장교의 도움으로 만주국 봉천군관학교에 1936년 4월 입학하였다. 졸업한 후에는 만주군 대위로 근무했으며, 이때 박정희보다 상관으로 같은 부대에 있었다. 그는 박정희를 비롯하여, 정일권, 백선엽, 이한림, 김석범, 원용덕, 김창룡 등과 함께 국군 내의 대표적인 만주군 인맥이었다.
만주군 복무만으로도 이미 '일제 부역'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그가 항일 독립운동가들과 그 항일조직들을 소탕하고 잡아 죽이는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대인 간도특설대 간부였고, 그것도 창설 멤버였다는 점이다.[3] 신현준 본인은 자서전 등에서 당시의 행적을 '공비토벌' 정도로 간단하게 얼버무렸지만, '''대한민국 해병대의 초대 사령관이 간도 특설대의 일원인 친일반민족행위자였던 것은 두고두고 해병대 역사에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8.15 광복 후 잠시 광복군에 편입되었다가 귀국하여 1946년 조선해안경비대에 입대한 뒤 대한민국 해군 중위로 임관하였다. 같은 해 인천기지사령관을 거쳐 1948년에는 진해특설기지 참모장에 임명되었으며, 1949년 4월 15일에 약 380명의 병력으로 해병대가 창설될 때 초대 사령관을 맡았다.[4]
해병대 창설의 계기도 신현준의 건의에서 시작됐는데, 1948년 여순 14연대 반란사건 직후 신현준은 해군본부에 "육전대와 같은 상륙부대가 있었으면 진압이 보다 수월했을 것"이라고 보고했고, 이 신현준의 보고내용에 주목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한 해군본부가 해병대 창설을 결심하게 되었다.
5.16 군사정변 후 해병 중장으로 예편했다. 미국 네바다주립대학에 유학을 갔다가 귀국하여 초대 모로코 대사, 초대 바티칸 대사로 외교 분야에서 활동하였으며, 세계반공연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10월, 향년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해병대 초창기를 함께 이끌었던 후배 김성은 전 사령관이 세상을 떠난 지 5개월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