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에곤 1세
1. 소개
통일된 칠왕국의 초대 왕이자 3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도른과 장벽 너머를 제외한 웨스테로스 대륙 전체를 통일한 패왕(아에곤의 정복 참고). 별명으로 '드래곤', '정복왕 아에곤(Aegon the Conqueror)', '드래곤의 지배자(Dragonlord)'가 있다. 생몰년은 27BC ~ 37AC(64년), 재위 기간은 1AC ~ 37AC(36년).
왕비는 누나 비세니아 타르가르옌과 여동생 라에니스 타르가르옌이었으며 2대 왕 아에니스 1세와 3대 왕 마에고르 1세의 아버지다. 아에나르 타르가르옌의 7대손으로 아버지는 아에리온 타르가르옌이고 어머니는 발라에나 벨라리온. 바라테온 가문의 시조이자 인생의 친구였던 오리스 바라테온이 사실은 그의 이복동생이라는 소문[2] 이 있다.
아에곤이 타고 다녔던 드래곤의 이름은 발레리온(Balerion)으로, '검은 공포'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에곤 남매가 타고 다녔던 세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몸체와 날개를 가졌다고 한다. 애용한 무기는 검은 불꽃(Blackfyre)이라는 이름의 발리리아 강철 장검으로 아에곤 사후에도 왕가의 가보로써 대대로 이어졌으나 블랙파이어 반란 때 행방이 묘연해졌다.
드래곤 발레리온 때문에 부각되지 않지만 자신을 습격한 암살자들을 직접 제압하는 등 뛰어난 무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키도 크고 어깨도 넓었고 얼굴도 잘생겼다고 한다.
반항하는 자들은 가차없이 찍어눌렀지만 일단 항복한 적들에게는 관대하게 대해줬으며 백성들에게 선정을 펼쳤다. 뛰어난 카리스마와 외교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신망을 받았지만 의외로 혼자 있기 좋아하고 속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철왕좌를 제작한 계기가 '''"왕의 자리는 결코 편안해서는 안된다"''' 는 신조로 본인과 후세의 왕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기 위한 것으로 보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엄격하고 올곧은 성품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2. 생애
2.1. 왕국 설립 이전
어렸을 때부터 누이들과 함께 웨스테로스에 여러번 방문했다고 한다. 타르가르옌 가문의 가주가 된 뒤로는 자유도시들로부터 각각 자기들과 함께 발리리아를 계승하는 정통 후예 국가를 건설하자고 요청받았지만 거부하고, 피의 세기 당시 볼란티스 대신 그에 맞서는 티로시와 리스를 지원했으며, 리스 앞바다에서 볼란티스의 함대를 불태웠다고 한다.
그리고 수년간의 준비 후에 자신의 누나인 비세니아 타르가르옌과 여동생인 라에니스 타르가르옌[3][4] , 세 마리의 드래곤, 휘하 병사들과 함께 천년이 넘게 전란에 시달렸던 칠왕국의 통일전쟁에 나선다. 약 2년의 기간 동안 6개의 왕국은 통일에 성공하지만 도른만은 정복하지 못하였다. 자세한 건 아에곤의 정복 문서 참조 바람.
2.2. 왕국 설립 이후
여섯 왕국을 통합시킨 다음 올드타운의 하이 셉톤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아 정식으로 웨스테로스의 왕으로 인정받았고 이 해를 연호로 삼았다. 동시에 기존에 있던 도시들이 아닌 새로 만들어진 킹스 랜딩을 수도로 삼았다. 한편 소협의회를 창설하고 오리스 바라테온을 초대 수관(Hand of the King)으로 삼았다.
이후 도른에 재침공을 시도했는데, 이 제1차 도른 전쟁에서는 여동생이자 부인인 라에니스를 잃고 실패한다. 킹스가드 창설도 아에곤 때의 일이다. 암살자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위협받을 때 누나이자 왕비인 비세니아가 왕 전용 보디가드가 필요하다고 건의했지만, 왕이 무시하자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왕의 얼굴을 그어 버리고는 "당신 경호원들 둔하고 게으르다" 고 하자(...) 왕도 더 이상 반대를 못했다.
단순히 전쟁만 잘한 게 아니라[5] 외교 및 행정 분야에서도 매우 뛰어났던 왕이며, 왕비인 누이들도 이런 면에서 상당히 뛰어났다. 평민과 여성들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등 선정을 펼쳤으며 본인도 정복보다 통치가 더 힘들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정복 후에는 새로 만들어져 아직 통합이 덜 된 왕국을 순시하며 통합에 애썼다. 예를 들어 대가문의 영주들부터 일개 평민들의 여관까지 왕국 곳곳을 방문하면서 왕가의 힘을 과시하는 동시에 귀족들과 백성들에게 골고루 친근한 이미지를 세우도록 하였고, 이 지방 귀족 자식과 저 먼 지방 영주 자식 혼사를 주관했다. 전체적으로 정복 후에 백성들의 삶의 질이 전체적으로 향상되었다.
이후 수도 킹스 랜딩과 갓 짓기 시작한 레드 킵의 행정과 건설을 왕비 비세니아에게 맡기는 동안 본인은 윈터펠을 방문하고 고향인 드래곤스톤으로 돌아가 사실상 은퇴했고, 드래곤스톤에서 손자들인 아에곤과 비세리스에게 자기 정복 이야기 하다 뇌일혈로 쓰러져 사망한다. 역대 타르가르옌 가문 왕들 중 수명과 재위 기간 둘 다 2위다. 손자인 자에하에리스 1세가 수명과 재위 기간 둘 다 1위. 장례는 화장으로 치루어졌다.
문제는 왕위를 이은 두 자식들이 아버지가 애써 세운 나라를 뻘짓으로 말아먹을 뻔 했다는 것(...) 하지만 마찬가지로 명군이었던 손자 덕에 나라는 살아났으며 300여년은 더 갔다.
3. 기타
모델은 영국을 정복한 윌리엄 1세와 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아우구스투스로 보인다. 별명인 정복왕부터가 정복왕 윌리엄에서 따웠다. 또한 카롤루스 대제와도 비슷하다. 둘 다 거대 국가의 멸망 이후 거대한 영토 확장을 하고 종교의 권위자에게 인정을 받았다. 메흐메트 2세와도 비슷하다.
칠왕국의 초대 왕답게 대륙 곳곳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다. 처음부터 타르가르옌의 거점이었던 드래곤스톤에는 아에곤이 통일을 구상할 때 사용한 웨스테로스 대륙 모양의 테이블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통일과정에서 불태운 거성 하렌홀은 드래곤의 불꽃으로 녹은 형태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칠왕국의 수도의 이름이 킹스 랜딩(King's Landing, 왕의 상륙지)인 이유 또한 아에곤이 처음으로 웨스테로스 대륙에 상륙한 땅이라는 역사적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당시 북부의 왕이었던 토렌 스타크와 만나 항복을 받아낸 여관 또한 본편의 시대까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유산은 자신의 적들의 무기를 모아 드래곤의 불꽃으로 녹여 만든 철왕좌로, 왕좌 자체가 뾰족한 날로 구성되어 있기에 앉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왕국을 통일 하는데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와 왕좌로 상징되는 절대권력의 무게를 잊지 못하게 했다.
아에곤이 에소스가 아니라 웨스테로스를 정복한 이유가 '''북쪽의 위협을 미리 예지하고 이에 맞설 연합된 왕국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설이 있다. 다만 이 경우 밤의 경비대에 딱히 관심을 가졌다는 묘사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설명이 안된다. 그런데 드라마 시즌 7 4화에서 이를 지지할 근거가 나왔다!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드래곤스톤에 있는 흑요석 광산에 숲의 아이들의 유적이 있다. 이들이 남긴 각종 기록도 있는데, 그 기록 중 하나는 숲의 아이들과 최초인들이 같이 아더에 대항하는 기록도 있다.
[1] 양옆에 있는 여인들은 그의 누이이자 왕비들인 비세니아 타르가르옌과 라에니스 타르가르옌.[2] 그리고 불과 피에서 자에하에리스 1세가 사실이라고 인정한다.[3] 비세니아와 라에니스는 그의 누이들인 동시에 아내들이기도 했다. 이후 그가 세운 타르가르옌 왕가는 발리리아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근친혼(대개는 남매혼)이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이는 가문의 시조인 그가 두 누이들을 아내로 삼은 (즉 근친혼과 일부다처제를 동시에 행했던) 점과도 연관이 있다. 그러나 근친혼 풍습은 보존된 데 비해 일부다처제는 자취를 감췄다. 일단 일부다처제가 발리리아에서도 그렇게 흔해빠진 풍습은 아니었고, 애초에 칠신교 교단에서 하나는 몰라도 둘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4] 사실 전통을 따랐다면 아에곤은 누나 비세니아하고만 결혼해야 했지만, 라에니스까지 모두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 이는 타르가르옌 가문에서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였지만, 흔한 처사도 아니었다. 이에 불과 피에서의 혹자는 아에곤이 비세니아와는 의무 때문에, 라에니스와는 자신이 원해서 결혼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5] 사실 초병기라 할 수 있는 드래곤덕분에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군사적 능력에 대해서는 결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