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고르 1세
1. 소개
타르가르옌 왕조의 3대 왕. 아에곤 1세와 누나 비세니아 타르가르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아에니스 1세의 이복동생이다. 조카들의 왕위를 찬탈하고 눈에 거슬리는 자들을 닥치는 대로 숙청하던 폭군으로 유명하며 별명 역시 '잔혹왕 마에고르(Maegor the Cruel)'. 생몰년은 12AL ~ 48AL(36년), 재위 기간은 42AL ~ 48AL(6년).
아버지 정복왕 아에곤보다 더 큰 키에 굵은 목과 팔, 넓은 어깨를 가진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2017년 그전의 용들의 춤 관련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Sons of Dragons'라는 아에니스와 마에고르에 대한 단편이 앤솔로지에 수록되었다.
2. 행적
2.1. 왕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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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아에곤 정복 이후) 12년 드래곤스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함께 전국을 순회하던 형 아에니스와는 달리 마에고르는 계속 드래곤스톤에 머물렀기에 '드래곤스톤의 왕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 시절 마에고르는 어릴 때부터 몸이 건장했지만 성격이 매우 포악했는데, 소문에 따르면 처음 검을 든 3살 때 근처에 있던 고양이를 죽여버렸다고 한다. 8살 때는 말이 자신을 차자 칼을 빼들어 죽여버렸고, 말의 울음소리를 듣고 온 비슷한 나이의 마부 얼굴을 반으로 그어버렸다.
이후 성장한 마에고르는 드래곤스톤의 훈련관인 가웬 코브레이 경에게 무술을 배웠다. 마에고르의 무술 실력은 일취월장하여 12세의 나이에 종자가 되고, 13세의 나이에는 노련한 기사조차 마에고르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즈음에 어머니 비세니아로부터 발리리아 강철검인 '다크 시스터'를 물려 받았고, 하이 셉톤의 조카인 하이타워 가문의 세리스와 결혼했다.[1][2]
그리고 16세가 되기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경기란 경기에는 죄다 참여해 우승했고, 그 덕에 16세의 나이로 정식 기사가 되었다. 그리고는 형 아에니스를 돕겠다며 리버랜드와 스텝스톤 군도에서 산적과 해적들을 진압해 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렇듯 여러 군공을 세우고, 무술 실력도 뛰어난데다 많은 면에서 부친 아에곤 1세를 닮자 '마에고르가 후계자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돌았다고 한다.
37 AC 부왕 아에곤 1세 사후 형 아에니스가 즉위했으나, 아에니스에게 발리리아 강철검인 블랙파이어를 받으며 사실상 공동 통치자로 인정 받는다. 사실 이게 아에니스의 첫 번째 실책이라는 평을 받는데, 남들 보기에는 동생한테 양보를 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 그리고는 어릴 적부터 원해 왔던 아버지의 용인 발레리온을 다루는 데 성공해 새 주인이 되었다. 자신이 길들인 발레리온을 타고 이어리로 날아가 조노스 아린의 반란을 진압했다. 덕분에 붉은 하렌의 난을 진압하다 사망한 알린 스토크워스 공의 뒤를 이어 수관으로 임명받는다. 수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마에고르는 국왕인 형을 보필하며 왕국에서 일어나는 반란들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다.
그러나 2년 후, 아내인 세리스 하이타워가 애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어머니 비세니아의 주선에 따라 해로웨이 가문의 알리스 해로웨이를 새 아내로 들였다가 처삼촌인 하이 셉톤의 분노를 샀고, 알리스를 버리거나 추방을 선택하라는 형 아에니스의 명령에 결국 추방을 택하고 알리스와 함께 펜토스로 떠났다. 이때 아에니스는 가보인 블랙파이어를 두고 가라 명했으나, 마에고르는 이를 무시했다.
2.2. 즉위와 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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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었던 형 아에니스 1세가 무장 교단 봉기 때문에 킹스 랜딩에서 쫓겨나고 드래곤스톤에서 사망하자 42AC에 어머니 비세니아의 부름을 받아 드래곤스톤에 귀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다. 이때 그랜드 마에스터 가웬만이 아에니스 1세의 첫째 아들인 아에곤의 계승권이 위라고 주장하며 그의 즉위를 반대하자 "힘이 있는 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며 '''그 자리에서 목을 날려 버리고'''[3] 왕위에 앉았다.
그 직후 비세니아와 마에고르는 킹스 랜딩의 "기억의 셉트"에 가서 "이제부터 내가 왕이니 불만 있는 놈 다 나와" 라고 선언하자 칠신교의 군사 조직인 무장 교단의 기사단 '전사의 아들들'의 총단장 데이먼 모리겐이 7 대 7 결투 재판을 신청한다. 이때 마에고르가 같이 싸워줄 사람 없냐고 묻자 킹스가드는 아에니스에게 가 있었기 때문에 없었고 다들 최강의 전사들에게 덤빌 엄두를 못냈지만, 딕 빈이라는 일개 평민 병사가 어릴 때부터 왕을 섬겼으며 죽을 때까지 왕을 위해 싸우겠다며 먼저 나서자 다른 기사들 또한 용기를 얻고 마에고르와 함께 싸울 전사로 나섰다. 여기서 마에고르는 도전한 데이먼과 교단 기사들을 모두 죽이고 승리하지만 같이 참여한 기사들도 사망하여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고 본인 또한 결투 도중 철퇴에 머리를 맞아 30일 동안 의식 불명에 빠졌다. 하지만 추방 기간 중 사귄 티안나라는 여자의 도움으로 회복한다.
의식을 되찾자마자 마에고르는 드래곤 발레리온을 타고 킹스 랜딩의 셉트를 습격해서 안에서 기도하던 무장 교단 일원들을 모조리 태워 죽였다. 그 후에도 어머니 비세니아와 함께 무장 교단과 그를 지지하는 영주들이 일으킨 반란을 잔혹하게 진압하였고, 특히 리치와 웨스터랜드, 리버랜드는 마에고르의 소환 요구를 거부한 귀족 가문들이 본보기로 마에고르의 발레리온과 비세니아의 바가르에게 성이 태워졌다. 이후 승리에 취한 마에고르는 티안나를 세 번째 왕비로 들이고, 이에 반발하는 그랜드 마에스터 마이어스를 또(...) 참수했다.
교단과 왕의 갈등은 점점 심해져서, 왕이 직접 올드타운을 태운다 만다 하는 말이[4] 오가는 중, 43AC에 마에고르와 어머니인 비세니아가 작정하고 올드타운을 태워버리려고 각자 용을 몰아서 올라가던 중 갑자기 하이 셉톤이 죽고[5] 비세니아가 바가르에 탑승해서 먼저 도착했을 땐 이미 올드타운의 문은 활짝 열려 있고 타르가르옌 가문의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하이타워 가문은 신속하게 다시 한 번 충성을 맹세하면서 훨씬 대가 약하고 늙은 셉톤을 창 끝으로 압박해 그 자리에 오르게 만들고 마에고르를 왕으로 인정하면서 왕과 교단 사이의 갈등은 누그러든다. 마에고르도 세리스를 왕비로 복권시켜 주면서 화해했다. 이후 올드타운에 반 년 동안 기거하면서 조정을 연 마에고르는 종교 무장 금지법, 이른바 마에고르 법[6] 을 발표해서 귀족들의 지지를 얻는다. 하지만 무장 교단은 게릴라 전술로 여전히 투쟁을 계속하고, 이에 마에고르는 발레리온을 타고 직접 군대를 이끌며 나라를 돌면서 불순분자들을 사냥했다.
이 와중에 형 아에니스의 후계자였던 아에곤 왕자는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그의 용 퀵실버와 지지 세력을 이끌고 신의 눈 호수로 향해 숙부 마에고르와 맞선다. 겨우 서른을 넘은 용 퀵실버와 백 살은 가볍게 넘은 고룡 발레리온은 체급과 실전 경험부터가 다르니 상대가 될 리가 없었고, 마에고르 또한 칠왕국 최고의 전사이자 지휘관이라 애송이에 불과한 아에곤이 이길 수 없었다. 신의 눈 전투 중 아에곤 본인과 아에곤의 용 퀵실버는 일기토에서 패배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발레리온의 화염 공격에 퀵실버가 오른쪽 날개를 잃고 추락하면서 아에곤도 퀵실버와 함께 추락사했고 그의 군대 또한 섬멸당했다. 다음해 마에고르는 알리사 벨라리온 왕대비와 아에니스 1세의 자식들인 자에하에리스 왕자와 알리산느 공주를 드래곤스톤에 가두었으며, 아에니스 1세의 차남 비세리스 왕자는 자신의 종자로 두어 인질로 삼았다.
그러다가 알리스 해로웨이 왕비가 파충류같이 생긴 기형아를 사산했는데, 실망과 분노로 가득하던 와중 이게 다 알리스가 아버지랑 짜고 불륜을 저질러서 그런 거라는 티안나의 모함을 듣자 고문으로 여론조작을 감행, 그녀뿐 아니라 입막음을 위해 시녀들과 산파, 가족들을 포함한 친정 해로웨이 가문의 일원들, 그랜드 마에스터 데스몬드 등, 관련자들까지 싸그리 제거해 버렸다. 알리스는 편하게 죽지도 못하고 2주 동안 티안나의 손에 고문당하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해로웨이의 성을 쓰는 사람들을 모조리 학살한 이 사건은 마에고르가 저지른 최악의 실책으로 꼽힌다.
군대를 이끌고 하렌홀과 해로웨이 타운까지 쳐들어가서 해로웨이 사람들을 학살하고 귀환하지만, 어머니 비세니아 왕대비가 드래곤스톤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때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인질로 붙잡혀있던 알리사 왕대비와 그녀의 자식들이 드래곤스톤에서 도주한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알리사 왕대비의 차남이자 자신의 종자였던 비세리스는 티안나에게 9일 동안 심문과 고문을 받다가 죽고 만다. 비세리스의 시체는 알리사 왕대비를 유인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레드 킵에 내버려 두었지만 정작 알리사는 귀환하지 않았다.
45AC에는 왕성이자 궁전인 레드 킵(Red Keep)이 완성됐는데[7] 완성된 직후 성의 비밀이 알려지면 안된다는 이유로 왕성 건축에 참가한 석공들을 연회에 초대해 모조리 죽였다.[8] 그래서 같은 해에 드래곤핏을 지으려고 했을 때 이미 그 사실이 도시에 쫙 퍼졌기 때문에 아무도 건설에 참여하려 하지 않았고, 결국 죄수들을 동원하고 감독관들을 미르와 볼란티스로부터 데려와서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후사가 없자 47AC에는 측근들의 조언으로 또다시 재혼을 했는데, 결정된 신부들은 엘리노르 코스테인, 제인 웨스털링, 라에나 타르가르옌으로, 전부 남편이 마에고르와 싸우다가 죽었으며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여자들이었다. 마에고르는 이 셋과 한꺼번에 결혼했고 이들은 '검은 신부들(Black Brides)'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동시에 조카딸인 아에레아 타르가르옌을 후계자로 삼았다. 하지만 제인과 엘리노르 왕비 또한 기형아를 낳았고, 이중 제인은 산고로 죽었다. 마에고르 본인이 그동안 저지른 악행으로 천벌을 받은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으며, 이에 마에고르는 티안나로부터 다른 왕비들에게 독을 먹여 태아를 기형으로 만들었다는 자백을 받고 그녀를 처형했다.
2.3.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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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AC에 그동안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자에하에리스 왕자가 나타나 왕위를 주장한다. 마에고르의 계속된 폭정에 질려 있었던 온 나라의 귀족들과 백성들도 들고 일어나서 마에고르를 끌어내리고 자에하에리스를 새 왕으로 추대하려 하였다.
특히 바라테온 가문의 로가르 바라테온이 자에하에리스에게 호국경으로 임명되어 지지를 천명한 것을 시작으로, 라에나 타르가르옌은 드림파이어를 타고 막내동생에게 도주했으며, 소협의회의 최측근이었던 수관 에드웰 켈티가르, 그랜드 마에스터 베니퍼, 킹스가드 두명마저도 도주하고, 특히 다에몬 벨라리온은 함대까지 빼돌려 자에하에리스에게 가담했다. 나중에 가서는 툴리 가문[9] , 라니스터 가문, 티렐 가문, 아린 가문같은 대가문들까지도 대놓고 자에하에리스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이에 마에고르도 자기 지지세력을 불러모았지만, 국왕령의 소영주들과 그들의 병력 4천 명만이 소환에 응했다. 이때 국왕령의 소영주 가문인 헤이포드 가문의 영주는 마에고르에게 스스로 물러나 밤의 경비대로 들어가라는 말을 꺼냈다가 격분한 마에고르의 검에 참수되어 목이 철왕좌 옆에 내걸린다.
이런 깜깜한 상황에서 밤 늦게까지 국왕령 소영주들과 회의를 하다 혼자 철왕좌에 앉아 생각에 빠진 채 쓸쓸하게 앉아 있었는데, 다음 날 엘리노르 왕비가 아침에 보니 왕이 철왕좌에 앉은 상태에서 그 날에 크게 베어져 죽은 상태로 발견됐다. 그냥 팔만 그어진 게 아니라 목까지 칼날에 박힌 끔찍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철왕좌가 왕을 죽였다'''는 소문이 돈다. 더 현실적이지만 덜 멋진 가설로는 '엘리노르 왕비가 죽인 거다', '왕의 부하 중 누군가가 배신한 거다', '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석공이 비밀 통로로 들어와서 왕을 죽이고 도망갔다' 등등이 있지만 물론 가장 설득력있는 설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절망 속에서 자살했다는 것이다.[10]
3. 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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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여섯 명이나 되었으며 그 중 셋(엘리노르, 제인, 라에나)은 마에고르와 한꺼번에 결혼했는데 이들은 남편들이 전부 마에고르와 싸우다가 죽었으며 자식들이 따로 있었던 인물들로 '검은 신부들(Black Brides)'이라 불린다. 이 여섯 명 중 세 명은 왕에게 죽거나 의문사했다.
하지만 자식복이 없어 자식은 낳지 못하거나 용 모습이 섞여 있는 기형아를 사산했다. 이에 대해서는 폭정에 대한 천벌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검은 신부들
4. 평가
사후 웨스테로스에서는 폭군의 대명사이자 조카들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희대의 패륜아, 학살자로 통하게 된다. 사실 광기로 따지면 아에리스 2세가 더했지만 실제로 죽인 사람의 수는 마에고르가 훨씬 많았다. 이후 '마에고르'라는 이름은 타르가르옌 가문 내에서 기피되었지만, 역시나 광기로 유명했던 아에리온 타르가르옌이 자기 아들의 이름을 마에고르라고 지었다.
반대로 무능한 형을 대신해 왕권 강화에 노력했던 필요악적인 군주라는 평도 있다. 실제로 자에하에리스가 왕조의 기반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철권통치로 찍어 누르던 마에고르 덕에 영주들이 알아서 기던 것도 없잖아 있다. 그 예로 교단의 무장을 금지하는 마에고르 법 자체는 하이 스패로우와 세르세이 라니스터의 협상으로 무장 교단이 부활하기 전까지 200년 넘게 남아있었다.
모티브는 윌리엄 2세. 교단과 마찰을 빚은 점, 폭군으로 평이 안 좋았다는 점, 군사적인 능력은 뛰어났다는 점, 자식 없이 의문사했다는 점 등이 비슷하다. 재혼 문제로 교회와 마찰을 빚은 것은 헨리 8세와도 비슷하다.
조선의 세조와도 비슷한데, 유능한 왕이었던 아버지의 차남이었으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끝내는 죽였으며 왕권 강화 명목으로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것이 비슷하다. 3대왕이라서 태종과도 비교할 수 있으나 사실 막장성이나 무자비함으로 따지면 이쪽이 더 가깝다.
[1] 원래는 형 아에니스 1세의 딸이자 철왕좌의 후계자인 조카 라에나와 약혼을 맺으려 했으나, 형 부부와 하이 셉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2] 마에고르와 세리스의 결혼식은 올드타운의 별빛의 셉트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때 마에고르는 결혼식을 축복해주러 온 하이 셉트를 대놓고 무시하였으며, 결혼식 날 밤 한방에 세리스를 임신시키겠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내고 다녔다고 한다.[3] 이 마에스터를 포함, 마에고르의 재위 당시 그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 죄로 그랜드 마에스터가 3명이나 참수되었다.[4] 하이 셉톤이 마에고르한테 직접 올드 타운으로 와서 신에게 잘못을 얘기하며 빌라는 요구를 했고 격분한 마에고르는 거부하며 또 이런 요구를 하면 올드타운을 태워 버리겠다고 경고했다.[5] 암살인 건 거의 확실한데, 용의자가 너무 많아서 누가 했는지는 모른다. 하이 셉톤의 형이었던 하이타워 가문 영주가 그랬다, 영주 고모가 그런 거다, 왕의 협박에 겁 먹은 성직자가 그런 거다 등등.[6] 교단의 기사(Warrior's Sons)를 죽여서 두피를 벗겨 가져오면 금화를 주고, 일반 병사(Poor Fellows)를 죽여 두피를 가져오면 은화를 준다는 법.[7] 건축 자체는 아에곤 1세 때 시작했다.[8] 타지마할을 만든 샤 자한, 성 바실리 성당을 만든 이반 뇌제 등, 당대 권력자가 건물을 만들고 그보다 훌륭한 건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이러뉴짓을 했다는 카더라는 흔한 얘기다.[9] 무관왕 아에곤의 반란 시기까지만 해도 해로웨이 가문과 함께 마에고르의 최측근이던 툴리 가문이 셉톤 문과 조프리 도겟을 대놓고 지원할 정도로 마에고르는 인심을 잃었다는 것.[10] 원작의 철왕좌는 그야말로 잘못하면 찔릴 정도로 삐죽삐죽한 칼날들이 솟아난 구조였으니 이 칼들에 손 긋고 자살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