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왕

 

'''征服王 / o Conquistador'''
1. 개요
2. 실존 인물
2.1. 한국사
2.2. 세계사
3. 가공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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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매우 넓은 영토를 정복한 군주를 높여 부르는 일종의 찬사이다.

2. 실존 인물



2.1. 한국사


  • 위만조선 - 위만[1]
  • 고구려 - 태조왕, 미천왕[2], 광개토대왕[3], 장수왕[4]
  • 백제 - 고이왕[5], 근초고왕[6], 무령왕[7]
  • 신라 - 파사 이사금[8], 진흥왕[9], 태종 무열왕[10], 문무왕[11]
  • 발해 - 무왕, 문왕, 선왕[12]
  • 고려 - 태조[13], 공민왕
  • 조선 - 세종[14]

2.2. 세계사


  • 대영제국 - 빅토리아 여왕[15]
  • 영국 - 윌리엄 1세[16]
  • 덴마크 - 크누트 대왕
  • 포르투갈 - 아폰수 1세[17]
  • 알렉산드로스 제국 - 알렉산드로스 3세[18]
  • 페르시아 제국 - 키루스 2세[19], 다리우스 1세
  • 몽골 제국 - 칭기즈 칸[20], 오고타이 칸[21], 몽케 칸[22]
  • 프랑스 제국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프랑크 왕국 - 샤를마뉴
  • 로마 제국 -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트라야누스
  • 한나라 - 한무제
  • 당나라 - 당태종
  • 명나라 - 영락제
  • 마우리아 왕조 - 찬드라굽타 마우리아, 아소카 대왕
  • 무굴 제국 - 악바르 대제, 아우랑제브
  • 오스만 제국 - 무라트 1세, 바예지트 1세, 무라트 2세, 메흐메트 2세[23], 셀림 1세, 쉴레이만 1세
  • 티무르 제국 - 티무르

3. 가공 인물



[1] 한나라의 변경을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한의 지원을 받아서, 이웃의 작은 마을과 진번, 임둔을 공격하여 영토를 수천리로 늘렸다.[2] 고구려가 동북아 패자로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을 깔아준 군주. 낙랑과 대방을 정복하여 한반도 서북부를 장악했는데 이를 통해 영토 확장은 물론이고 이전 중국 직할지였던 한사군을 합병함으로써 고구려가 고급 인력을 확보하고 중원 문화를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해주었다.[3] 말이 필요없는 한국사 정복군주의 대표. 고구려의 체급을 완성한 국왕으로 이러한 체급을 바탕으로 고구려는 삼국 중 압도적인 전력을 구가하게 되었고 수비전에서나마 중국 통일왕조 , 과도 대등한 전쟁을 할 수 있었다. 요동, 부여, 한반도 중부 등의 알짜배기 땅들이 모조리 이 시기 확보되었다.[4] 선대인 광개토대왕의 적극적인 북진정책을 지켜보았으나 당시에 남부 2국의 움직임을 불안하게 생각하였다. 더이상의 북진은 국경이 너무 넓어서 진군 중에는 무조건 국군을 대부분 데려가야 했기 때문에 광개토대왕이 승하한 이후 즉위하자마자 남진 정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후, 적극적인 남진정책으로 백제와 신라를 몰아붙였으며 백제의 수도 한성을 차지하고 경상북도까지 영토를 넓혔다.[5] 서울과 인천에 국한되었던 백제 초기 강역을 수 배 확장했고 이 시기 백제는 한강 중하류 전역을 장악하게 된다.[6] 서울과 경기도 한강 유역 일대에 한정된 백제의 영역을 북으로는 황해도, 남으로는 충청도 거의 전역과 전라북도 북부 정도까지 크게 확장시켜 백제가 마한의 맹주를 넘어 삼국의 일원이 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왜국에 사신을 파견하고 칠지도를 선물함으로써 한일관계의 역사를 열기도 했다.[7] 마한을 멸망시켜 전라도 전 지역을 모두 정복했다. 흔히 전라도(특히 전남)는 백제 영역이었던 시기가 짧다고 얘기들 하는데 이 시기부터 660년 백제가 멸망할때까지 140여년간 호남 거의 전역(가야 문화권에 속한 낙동강 서안의 극동부 지역 일부 제외)은 확고한 백제의 영토였다. 참고로 무령왕이 경기도 남부와 한강 유역 부근까지 재진출했다는 견해도 존재했는데 무령왕기 백제의 북쪽 영토 경계선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충주 고구려비가 장수왕이 아닌 광개토대왕의 비석으로 밝혀져 광개토대왕시기 고구려 영역에 대한 재논의가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무령왕 시기 한강 유역까지 백제가 다시 치고 들어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기존의 역사를 다시 수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8] 신라 전기의 대표적인 정복 군주로 경주시와 그 인근 일대 정도에만 국한된 신라의 영역을 현재의 경북 거의 전역으로 확장해 신라를 진한 최대 맹주로 성장시켰다.[9] 경상북도 정도에 한정되던 기존 신라 영토를 몇 배로 늘렸고, 이후 삼국시대 최후의 승자가 되는 기반을 닦았다.[10] 백제를 멸망시켰다.[11]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백제 지역을 온전히 흡수하는데 성공했으며 한반도를 완전히 지배하려는 당나라의 침공을 물리치는데 성공하여 신라의 자주성을 지켰다.[12] 교과서에 나오는 해동성국 발해 영역은 선왕 때 완성되었다.[13] 남으로는 후백제, 신라를 집어삼켰으며 북으로는 평안남도와 함흥 일대를 확보했다.[14] 4군 6진 개척을 기려서 묘호를 받은 것이다.[15] 정복을 진두 지휘했다기 보단 국가가 활발히 정복한 시기의 군주라 일반적인 정복왕과 다르다.[16] 별명이 William the Conqueror(정복왕 윌리엄). 이곳에 기재된 정복왕들과 차별되는 점이라면 윌리엄은 출신자체가 영국 왕족 출신인 것이 아니라 프랑스 국왕의 신하 신분으로서 노르망디의 영주로 있다가 기존에 이미 존재하던 국가인 잉글랜드에서 왕위다툼이 벌어지자 바다건너 쳐들어가서 왕위를 차지한 왕이라는점이다. 참고로 그렇다고해서 윌리엄은 그냥 프랑스 영주지위도 갖고 별도로 잉글랜드 왕도 하게된 것이지 잉글랜드가 프랑스의 신하국인것으로 이해하면 안된다.[17] 포르투갈 백작 엔히크 드 보르고냐의 아들로, 1139년 포르투갈의 국왕으로 대관식을 치루면서 포르투갈을 건국했다. 별명으로는 o Conquistador(정복왕), o Fundador(창업왕) o Grande(대왕)[18] 수많은 이들을 대왕병에 걸리게 만든 정복왕[19] 정복왕 부문의 원조라고 부를수 있는 왕이다[20] 사실상 정복군주의 대명사이자 본좌급인 인물.[21] 금나라동유럽 등을 정벌해 몽골 제국은 오고타이의 시대에 가장 서쪽 끝까지 넓어졌다.[22] 몽케의 시대에 동생 훌라구를 주축으로 해서 중동을 정복했다. 북아프리카까지 진출하려 했고 그건 아인잘루트 전투의 패전으로 무산되었지만, 이미 획득한 영토만 해도 어마어마했다.[23] 이쪽은 el-Fātiḥ (الفاتح, 엘 파티흐). 역시 '정복자'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