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라니크 테이무리안
1. 개요
이란의 국가대표 축구 선수. 주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 및 중앙 미드필더. 네쿠남과 같다.
네쿠남이 프리메라 리가에 진출한 첫 이란 선수라면, 테이무리안은 이란 선수로써는 처음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선수이다. 당시 소속팀도 이청용의 소속팀이었던 걸로 유명한 볼튼 원더러스.
대한민국에서는 이란의 박지성이라는 축구영웅 자바드 네쿠남에 밀려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꽤 오랜 시간동안 이란 대표팀의 중원을 네쿠남과 함께 책임졌던 레전드 중 한명이다.
테이무리안 이전에 알리 다에이, 바히드 하셰미안, 알리 카리미, 메흐디 마다비키아 등 여러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 진출하긴 했지만, 대부분이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반면 테이무리안은 첫 해외 진출 무대로 프리미어리그를 선택하며 이란선수로서는 다소 낯설었던 프리미어리그에 개척자로서 발을 내딛게 되었다.[2]
2. 클럽 경력
2.1. 초기
이란 2부리그 팀인 오그하브 FC에서 2002년 만 19살의 나이로 데뷔하여 21살이었던 2004년 이란 프로리그 소속 아부모슬렘으로 이적, 두 시즌간 26경기를 뛰며 1골을 기록하였다. 이 무렵 두각을 나타내어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뽑히기 시작했다.
2.2. 프리미어 리그 시절
2006 독일 월드컵 이후 여름 이적시장에서, 당시 프리미어리그 소속이던 볼턴 원더러스 FC와 2년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최근 2년간 치른 A매치의 75% 이상을 소화해야 한다' 는 규정에 걸려 취업비자를 받지 못 할 뻔 했으나, 재신청 끝에 취업비자를 받았고 이란의 첫 번째 프리미어리거가 되었다.
볼턴 소속으로 경기를 치른지 3경기만에 2007년 1월 6일 동커스터 로버스 FC와의 FA컵 3라운드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존재를 알렸고, 프리미어 리그에는 2007년 2월 11일 풀럼 FC와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그 이후에는 간간히 서브 멤버로서 경기에 투입되었다. 2007년 4월 7일에는 지역 라이벌인 위건 애슬레틱 FC과의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MVP로 선정되었다.
2008년 여름 풀럼 FC와 자유계약으로 2년 계약을 맺고 이적해 아스널 FC와의 경기에서 데뷔하여 팀의 1대0승리에 공헌했다.
그러나 부상, 감독의 아시아 선수에 대한 편견 등으로 부침을 겪으며 그 이후 한경기도 나오지 못했고 겨울 이적시장에서 당시 챔피언십 리그소속이었던 반즐리 FC로 반시즌 임대를 떠났다. 임대 후 복귀해서는 풀럼에서 머물고 싶다며 2009-10시즌 한 시즌동안 풀럼에 소속되어있었으나 역시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2009-10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로 방출되었다.
2.3. 이란 무대 복귀 후
풀럼에서 방출 된 이후, 2010년 9월 자국리그로 복귀해 트락토르 사지 FC에서 뛰었고, 한시즌 후 에스테그랄 테헤란 FV로 이적하여 활약해 2011년 AFC 올해의 선수상 최종 후보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2012-13 시즌에는 카타르 스타스 리그 소속의 알 카리티야트로 이적료 180만 달러에 1년 계약으로 이적하였다.
계약 만료 후 전 소속팀 에스테그랄로 3년 계약을 맺으며 복귀했다. [3]
2014년 12월에는 다시 전 소속팀 트락토르 사지로 1년 6개월 계약을 맺고 이적하여 데뷔 경기에서 프리킥골을 성공시켰다.
그 뒤에는 2015년 여름 역시 카타르 스타스 리그 소속 움 살랄, 반시즌 후 자국리그 팀인 사이파, 또 반시즌 후 이란 2부리그 팀인 마신 사지, 역시 반시즌 후 나프트 테헤란 FC으로 이적하여 선수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17 18 시즌 고스타레쉬 폴라드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은퇴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
'''네쿠남의 그늘에 가렸지만 꾸준하게 오랫동안 대표팀의 주축이었던 선수'''
이란 청소년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었던 경력이 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선발되어 3경기 모두 출전했다. 그 외에도 2007 아시안컵, 2011 아시안컵, 2014 브라질 월드컵, 2015 아시안컵 등 어지간한 중요한 메이저 대회에는 모두 선발되어 주축으로 뛰었다.
2014년 5월 18일 벨라루스와의 친선경기에서는 주장 완장을 달며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인 주장이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 2014 브라질 월드컵 대표에도 발탁되어 3경기 풀타임을 뛰었고 이로써 월드컵에 6경기 출전하며 메흐디 마다비키아와 함께 역대 가장 많은 월드컵 경기에 출전한 이란 선수가 되었다. 6경기에서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15 AFC 아시안컵 이후 자바드 네쿠남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 주장이 되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지역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 출전하며 자신의 100번째 A매치 출장을 기록했다.[4]
2016년 10월 한국전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 A매치 골 기록
4. 여담
- 이슬람교가 국교인 제정일치 국가이며, 국민의 99.3 프로, 그야말로 압도적 절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국가인 이란에서 극소수에 해당하는 기독교인이다. 이란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아르메니아인이라 대대로 오래 전부터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를 믿어왔고, 그래서 기독교를 믿는 아르메니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부모님을 따라 본인도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를 믿는 듯 하다.[5] 기독교인이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 주장이 되었다고 화재가 되기도 했다.
- 2009년과 2013년 등 월드컵 예선에서 대한민국과 상대를 할때 카를로스 케이로스, 자바드 네쿠남 등이 지옥 드립 등 장외 설전을 펼칠 때 이들과 달리 별 자극적인 말은 하지 않으며 담담한 태도로 인터뷰 하곤 했다.[6]
[1] 페르시아어 آندرانيک تیموریان / 아르메니아어 Անդրանիկ Թէյմուրեան[2] 이후에 독일에서 태어나 자란 아슈칸 데자가가 풀럼 FC에서 뛰었고, 현 이란 국대 핵심 윙어 알리레자 자한바크슈가 브라이튼에서 뛰고 있다.[3] 에스테그랄 소속이던 2013년 9월에는 FC 서울과 AFC 챔피언스 리그 8강전을 치르기 위해 서울에 왔었다. 결과는 서울의 2-0 깔끔한 승리.[4] A매치 101경기 출장으로 이란의 역대 최다 출장 6위이다. 1위는 네쿠남, 2위는 알리 다에이.[5] 아르메니아는 그래도 역사적으로 이란과 우호적이었다. 물론 전쟁도 치루고 갈등도 있지만 16세기 페르시아 시대조차도 떡하니 수도 한복판에 아르메니아인 자치구역을 허용할 정도였으며 거기서 기독교를 믿던 말던 자유롭게 인정했다. 게다가 이란에서 대대로 살아온 아르메니아인들은 오래전부터 호메이니를 지지했고 이란-이라크 전쟁에 아예 돈까지 지원하면서 이란 정부를 편들고 있었다. 이러니 호메이니도 이들이 소수이고 자기들끼리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혹은 아르메니아 가톨릭을 믿는 것이라서 공존을 허락해 테헤란과 이스파한에 있던 아르메니아 자치 구역은 건드리지 않고 이들 종교를 공존하게끔 선포했다. 이러니 국부 호메이니가 인정한 극소수 기독교이며(이란 내 기독교인 인구가 11만여 명인데 이 가운데 7~9만은 아르메니아계이고 나머지는 근본주의자들의 탄압으로 지하교회화 되었다.) 무엇보다 현 이란 정부도 아르메니아와 친하게 지내는 터에 이들을 건드리는게 좋을리 없다. 이란도 주변 나라들이 적들이 수두룩하고 아제르바이잔도 동족인 아제리인들이 많이 사는 이란에 대하여 불만을 보이는 판국에 외교적으로도 아르메니아와 우호를 가지는게 좋은 상황에 이들에게 이슬람 강요하고 탄압하자는 건 자신들에게 타격을 줄 일이다.[6] 당시 기사 를 보면 알 수 있듯 케이로스나 네쿠남에 비하면 무난한 인터뷰를 했다. 2011년 아시안컵 당시 인터뷰에서도 한국을 존중하면서 이기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는 인터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