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축구 국가대표팀

 


[image]
중화 타이베이 축구 국가대표팀[1]
中華臺北國家足球隊
'''정식명칭'''
中華臺北國家足球隊[2]
'''FIFA 코드'''
TPE
'''협회'''
중화민국 축구 협회 (中華民國足球協會, CTFA)
'''연맹'''
아시아 축구 연맹 (AFC)
'''지역연맹'''
동아시아 축구 연맹 (EAFF)
'''감독'''
왕지아중 (王家中, Wang Jia Zhong)
'''주장'''
천보량 (陳柏良, Chen Po-liang)
'''최다출장자'''
천보량 (Chen Po-liang) 79경기
'''최다득점자'''
천보량 (Chen Po-liang) 25골
'''홈 구장'''
타이베이 무니시팔 스타디움(臺北田徑場)
가오슝 국립경기장(國家體育場(高雄市))
'''첫 국제경기 출전'''
VS 남베트남 (3:2 승), 필리핀 마닐라 (1954년 5월 1일)
'''최다 점수차 승리'''
VS (10:0 승), 중국 마카오 (2007년 6월 17일)
'''최다 점수차 패배'''
VS 쿠웨이트 (0:10 패), 아랍 에미리트 알아인 (2006년 11월 9일)
'''아시안컵'''
출전 2회, 3위 1회 (1960)
'''올림픽'''
출전 3회 (1936, 1948, 1960)
'''유니폼'''
''''''
'''어웨이'''
'''상의'''
'''파랑'''
'''하양'''
'''하의'''
'''파랑'''
'''하양'''
'''양말'''
'''파랑'''
'''하양'''
1. 개요
2. 팀명
3. 역대전적
3.3. 아시안 게임 축구


1. 개요


대만축구 국가대표팀. 2020년 11월 기준 피파 랭킹 136위의 약체다. 아직까지 FIFA 월드컵 본선에 올라간 적이 없다.
1950년대1960년대 당시에는 대만 축구가 아시아 정상급으로 분류되었고, 실제로 대만 국내에서도 야구를 뛰어넘는 최고 인기 종목이기도 했다. 야구는 원래 대만에서 일제시대부터 인기가 좋았던 종목이었지만, 일제시대 이후 본토에서 넘어 온 중국 국민당이 왜색 스포츠라는 명목으로 야구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축구를 밀어주던 시절로, 실제로 1954, 1958년 아시안 게임에서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게다가 2대회 모두 결승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차지한 금메달이었다. # 1954년 대회는 5-2로 완승했고, 1958년 대회는 연장전까지 가서 3-2로 승리했다.
현재까지 한국 대표팀을 상대로 역대 전적이 '''5승'''[3] 1무 14패, 19득점 50실점이다. 그러나 1967년에 대만 홈에서 가진 아시안컵 예선에서 1-0으로 한국을 이겨 본 뒤로는 50년 동안 한국을 도저히 못 이기고 있다. 1967년 뒤로 한국전에서 9연패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도 아시아 국가 중 한국에 6승이나 거둔 나라는 의외로 많지 않다. 모두 1950 ~ 1960년대 승리로 당시 대만 축구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긴 하지만... 한국을 더 많이 이긴 말레이시아(8승... 대신 24패)와 태국(9승... 대신 30패)도 있긴 하지만, 패배 기록은 더 많다.
지금도 종종 한국을 괴롭히는 쿠웨이트나 강팀들인 이란, 일본, 호주는 제외하면... 사실 대만 대표팀은 중국과의 정치적 문제로 인해 AFC에서 축출되어 1975년에 OFC으로 편입되었고, 그래서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지역예선부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지역예선까지 오세아니아에서 지역 예선을 치렀다.[4] 그러다가 1989년에 다시 AFC로 복귀했다. 이것이 대만 축구가 몰락하게 된 결정적 계기다. AFC 축출 시기에 축구의 인기가 야구에 완전히 밀려 버리면서 대만 국내에서 축구는 비인기 종목으로 전락한다. 현재는 베트남, 태국, 홍콩 같은 국가들에도 경기력이 완전히 밀릴 정도로 대만 축구의 경쟁력은 바닥 수준이다.
가장 최근 한국과 국가대표끼리 맞붙은 경기는 2007년 아시안컵 예선. 2006년 8월 16일에 대만의 홈 구장인 타이베이 중산 스타디움에서 한국과의 경기가 치러졌는데, 경기장 잔디가 워낙 개판이라 패스나 슈팅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고, 결국 한국에게 0-3으로 패배하면서 선방했다. 경기 전에 대만 기자들이 선수들에게 '''니네 2002년 때 심판 매수 하지 않았느냐?'''는 식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오만 쇼크를 들먹이며 몇 십년 만에 한국을 꺾을 기회라고 설레발을 쳤지만, 두 팀간의 실력 격차가 워낙 넘사벽이어서 대만 기자들은 결국 데꿀멍하고 말았다.
그리고 2006년 9월 6일, 3주 전의 그 인터뷰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는데, 수원에서 열린 한국 홈경기에서 0-8로 관광당하며 도합 0-11로 완전 아작나고 만 것이다. 정조국이 전반 4분, 전반 46분, 후반 43분에 골을 넣으며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그리고 같은 조에 속했던 이란시리아한테도 박살나면서 6전 전패에 무득점 24실점으로 광탈했다.
대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이태호 감독은 “대만은 야구와 농구에 밀려서 축구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으며, 훈련도 한 달에 두 번 정도 밖에 못하고, 그나마 모이면 이런저런 핑계로 10명 정도밖에 훈련장으로 나오지 않았다."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계약 연장을 거부하고 그만둬 버렸다고...
이렇게 열악한데다가 프로화도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농구야구 인기에 밀려 급격히 사양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제는 어지간한 동남아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에게도 밀릴 정도로 동네북이 되어버렸다. 2006년 8월에 한국 아시안컵 예선을 치를 당시에 피파 랭킹이 144위였는데, 2014년 7월 순위는 178위, 2015년 1월 순위는 182위로 지속적인 순위 하락을 겪고 있고, 이후로 180위권에서 맴돌고 있다. 2016년 5월 랭킹도 182위이다. 대만보다 경제사정이 영 좋지 않은 북한113위를 찍고 있는데... 그래도 2018년 8월에는 피파랭킹 125위로 역대 대만 피파랭킹 최고 기록이다.
때문에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지역예선에서는 1차 예선부터 치렀는데,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과 1승 1패(1-2, 3-2)를 주고 받았으나 원정 다득점에 밀려 광탈했다.
2015년 2월 한국의 K3 챌린저스리그 우승팀인 화성 FC와의 경기에서 1:1로 비겼다. 이 경기만 놓고 보면 5:2로 패한 캄보디아보단 나은 편 같이 보인다. 그러나 위에 이미 언급된 대로 2015년 1월 FIFA랭킹은 캄보디아(179위)보다도 3위 밑이고 캄보디아는 그래도 자국의 프로축구 리그가 인기가 매우 좋은 편이기 때문에 미래의 발전 가능성이나 희망적인 측면에서도 대만이 캄보디아보다 상황이 낫다고 보기 어렵다.
심지어 2014년 10월 8일 타이베이 홈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도 대만이 캄보디아에 0:2로 패했다. 게다가 2018 러시아 월드컵 지역예선도 1차 예선부터 치뤘는데 (2015년 1월 기준 피파랭킹 198위로 캄보디아보다도 19위 낮은) 브루나이 축구 국가대표팀에 그것도 홈에서 0:1로 패배했다. 하지만 2차전에서 2:0으로 이겨 기사회생하며 2차 예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1차전 경기 홈경기 태국전에서 0:2로 패하면서 역시... 그래도 7차전 경기 태국 원정 경기에서 태국을 상대로 선제골도 넣고 추가골까지 더하여 두 골을 넣으면서 선전하긴 했는데... 2019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는 10월 13일 현재 2승 2패를 올리며 조 3위를 기록 중. 하지만...예선 5차전에서 복병 투르크메니스탄에 패하면서 아시안컵 예선 탈락을 확정한다.
대만의 경우 캄보디아 외에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대만이 미래의 발전 가능성 면에서 나은 게 없다. 자세한 건 대만/스포츠 문서의 축구 문단 참고.
그렇지만 2017년에 '대만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하고, 2018년에는 역대 최고 FIFA 랭킹인 123위를 기록하는 등 나름대로 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9년 아시안컵 본선 진출은 실패했지만, 챌린지컵 예선에서도 쩔쩔 매던 팀이 나름대로 6승을 기록하며 의외의 선방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는 본선 진출이 확정되어, 1966년 이래로 참으로 오랜만에 아시안 게임 축구 종목에 참가하게 되었다.
개리 화이트 부임 이후 전 세계에서 대만계 2세 선수들을 박박 긁어모으는 중이다. 이러다보니 화교가 많은 대한민국에서도 한 선수가 대만 대표팀으로 소집되었는데, 제주 유나이티드 출신이었던 K3리그 청주CITY FC 소속 왕건명 선수가 그 주인공. 워낙 깜짝 발탁이라 국내에서도 기사가 여럿 났으며, K3리그 소속으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A매치 데이에 소집된 선수가 되었다. 정작 비자 문제 때문에 경기에 투입되지 못했다고... 하지만 6월 친선 대회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대만에서는 왕치엔밍으로 불린다(...).
왕건명 선수와 같이 발굴된 대만계 2세 선수들에는 주로 영국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은데, 위건 애슬레틱을 거쳐 로스 카운티에서 뛰는 24살의 팀 추(중국어명 저우딩양周定洋) 선수처럼 경력이 꽤 되는 선수 뿐만 아니라, 크리스탈 팰리스 유스 선수인 윌 던킨 같이 2000년(!!) 생도 소집되었다. 게다가 소집된 이후로 7경기째 출전했다. 대만 축구계에서는 대단한 천재를 얻었다면서 좋아하지만, 역설적으로 2000년 생 어린 해외파 유망주보다 나은 기량을 보여주는 선수층이 거의 없는 대만 축구의 현실을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국내 리그의 뼈대가 튼튼하지 않으니 부실한 국가대표팀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참고로 윌 던킨은 대만 국가대표 선발 이후 크리스탈 팰리스 1군에 끝내 데뷔하지 못하고 노르웨이 리그 스타벡으로 팀을 옮겼다. 하지만 귀화 선수 정책이 마냥 공염불인것만은 아니라서, 스페인계 선수인 ADO 덴 하흐 소속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같이 유럽 수준급 리그를 경험하는 선수도 국가대표에서 뛰며 팀 전체의 수준이 한단계 높아진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양안관계가 안좋긴 해도 말도 어느정도 통하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중국 슈퍼 리그에 몇몇 선수들이 진출해 활약하고 있다. 주요 중국리거로는 창춘 야타이의 대표팀 정신적 지주 천보량, 베이징 BSU에서만 8시즌째 뛰고 있는 웬치하오, 스페인계 선수로 대만 국가대표 선택 이후 창춘과 칭다오 황하이에서 활약하고 있는 야키 옌 등이 있다.
대만 축구의 몰락을 소개한 기사가 있다. '왕년의 강호' 대만은 AFC 퇴출 후 몰락했다
2019년 3월에는 대만보다 피파랭킹이 20단계나 낮은 144위 솔로몬 제도에게 0:1 패배를 당하는 충격을 2000여명 이상의 홈팬들에게 선사했다.

2. 팀명


[image]
양안 문제로 인해 1981년부터 "중화민국"이나 "대만(타이완)" 대신 중화 타이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국제 경기에서 국기도 원래의 청천백일만지홍기를 쓰지 못하고, 중화 올림픽 위원회기를 사용한다.피파 공식홈페이지 위 이미지는 축구협회기인데 실제로는 올림픽위원회기를 쓴다.

3. 역대전적



3.1. FIFA 월드컵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1930 우루과이 월드컵
불참
1934 이탈리아 월드컵
불참
1938 프랑스 월드컵
불참
1950 브라질 월드컵
불참
1954 스위스 월드컵
기권
1958 스웨덴 월드컵
기권
1962 칠레 월드컵
불참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불참
1970 멕시코 월드컵
불참
1974 서독 월드컵
불참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 탈락
1982 스페인 월드컵
예선 탈락
1986 멕시코 월드컵
예선 탈락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 탈락
1994 미국 월드컵
예선 탈락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 탈락
2002 한일 월드컵
예선 탈락
2006 독일 월드컵
예선 탈락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 탈락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 탈락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 탈락
2022 카타르 월드컵
예선 탈락
2026 북중미 월드컵
?
?
?
?
?
?
?
?
합계
본선진출 없음
0/22[5]







3.2. AFC 아시안컵


'''AFC 아시안컵 역대 순위 : 23위'''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승점
홍콩 1956
예선 탈락
대한민국 1960
결선리그[6]
3위
3
1
0
2
2
2
'''3'''
이스라엘 1964
기권
이란 1968
결선리그[7]
4위
4
0
2
2
3
10
'''2'''
태국 1972
기권
이란 1976
AFC에서 축출당함
쿠웨이트 1980
AFC에서 축출당함
싱가포르 1984
AFC에서 축출당함
카타르 1988
AFC에서 축출당함
일본 1992
예선 탈락
아랍에미리트 1996
예선 탈락
레바논 2000
예선 탈락
중국 2004
예선 탈락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2007
예선 탈락
카타르 2011
예선 탈락
호주 2015
예선 탈락
아랍에미리트 2019
예선탈락
합계
3위(1회)
2/13[8]
7
1
2
4
5
12
'''5'''

3.3. 아시안 게임 축구


1954년 필리핀 대회 결승에서 한국을 5:2, 1958년 도쿄 대회 결승에서 3:2로 이기고 금메달 2개를 받았다.

[1] 공을 발로 잡고 있는 새는 믿기 힘들겠지만 두루미(...)이다. 과거 로고에는 두루미인 것이 확실히 드러났으나, 날개를 펼치는 모양으로 고치면서 목이 정사영되어 버리다 보니 정면에서는 어떻게 봐도 두루미가 아니라 에 가까운 모습이 된 것.[2] 중국어: 중화대북국가족구대[3] 참고로 1960년 4월 30일 타이베이에서 치러진 로마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 도중 폭력 사태로 경기가 중단되어 한국이 몰수패를 당한 것까지 합하면 6승이다. 하지만 이 경기는 공식 기록에 포함되진 않는다.[4] 그러나 이 당시 OFC는 전혀 체계화되지 않은 중구난방적 행정 때문에 A매치를 여는 게 힘들었고, 대만도 1년에 A매치 1경기도 안 한 채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다. 게다가 오세아니아는 축구 자체가 비인기 종목이기고 하고... 결국 이게 대만 축구 몰락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5]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6] 이 대회는 4개국이 풀리그로 진행하는 대회였다.[7] 이 대회는 5개국이 풀리그로 진행하는 대회였다.[8] AFC에 있던 기간만 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