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런 맥기
1. 개요
외국인선수 제도가 자유계약이던 2004-05시즌부터 3시즌 동안 부산 KTF 매직윙스에서 활약했던 선수로, 나산→골드뱅크→코리아텐더 시절의 약체 이미지를 벗지 못하던 부산 KTF를 3시즌 내내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며 강팀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부산 KTF의 기둥이었다. 특히 2006-07시즌에는 팀 역사상 유일한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이뤄내기도 했다.
2. 선수 시절
2.1. KBL 입성 전
NCAA 기록
1998년 신시내티 대학교에 입학한 맥기는 팀 선배였던 케년 마틴(206cm)[3] , 피트 마이클 등 기라성같은 선배들에 밀려 출전시간을 많이 잡지 못했고, NCAA 토너먼트에서도 팀이 대승을 거둔 1회전에서만 잠깐 출전했을 뿐이었다. 첫 시즌을 마친 후 맥기는 돌연 NJCAA 소속의 빈세네스 대학교로 전학을 택했고, NJCAA에서 평균 26.5점-9리바운드-1.6블록을 올린 맥기는 NJCAA MVP와 퍼스트팀을 석권한 뒤, 이듬해 다시 NCAA 소속인 오클라호마 대학교로 전학간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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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12 컨퍼런스 소속 오클라호마 대학교 3학년으로 편입한 맥기는 일약 팀의 주전센터 자리를 차지했고, 평균 12.9점-4.8리바운드를 올린 맥기의 활약 덕분에 팀은 Big 12 토너먼트 챔피언을 차지한다. 하지만 NCAA 토너먼트에선 1회전만에 하위시드인 인디애나 주립대와 연장접전 끝에 업셋을 당하고 만다.
다음 시즌 맥기는 평균 16점-7.7리바운드(컨퍼런스 득점 10위, 리바운드 9위)에 무려 '''13회'''의 더블더블을 기록했고, 팀은 2년 연속 Big 12 토너먼트 챔피언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이어진 NCAA 토너먼트에서 맥기는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득점력을 과시하며 토너먼트의 강팀들을 연파, 오클라호마 대학교를 1988년 이후 14시즌만에 처음으로 '''파이널 포(4강)'''에 올려놓은 대활약을 펼쳐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졸업 후 프리 드래프트 캠프에서 MVP를 차지할 만큼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빅맨을 보기에는 꽤나 단신이었던(착화신장 203cm) 맥기는 2002년 NBA 드래프트[5] 가 꽤나 흉작이었음에도 불구, 지명되는데 실패하고, 곧장 해외리그로 눈을 돌려 이탈리아 1부리그의 빅토리아 리베르타스 팀에 입단해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하고, 시즌 도중 스페인 2부리그팀으로 이적한다. 2003-04 시즌 역시 스페인 2부리그 그라나다에서 뛰면서 팀을 2부리그 준우승 및 1부리그 승격으로 이끌었고, 이때의 맹활약 덕분에 "외인농사꾼" 추일승 감독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면서[6] 자유계약으로 부산 KTF 매직윙스에 입단하며 KBL 생활을 시작한다.
2.2. KBL 1기: 부산 KTF 매직윙스 (2004~2007)
KBL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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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퍼 존슨 이전 부산 KTF의 짧은 전성기를 이끌어낸 용병'''
지금이야 KBL에서 외국인선수 뽑는 눈만큼은 최고로 꼽히는 추일승 감독이지만 04-05 시즌만해도 겨우 KBL 2년차였고, 자유계약제가 시작되면서 팀들마다 NBA 경력자나 2m를 훌쩍넘는 장신센터들을 데려온 반면, 각각 스페인 2부리그 경력이 최고인 애매한 신장의 두 떡대 애런 맥기와 게이브 미나케 콤비를 꼽은 부산 KTF의 선택은 다른 팀들 및 팬들의 이목을 별로 끌지 못했고, 그저 현주엽의 건강이 새 시즌의 성패를 가늠할거란 의견이 전부였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개막하자 미나케-맥기 콤비는 가히 04-05 시즌 최고의 외인조합이라 불릴만큼 엄청난 활약을 펼치는데, 미나케가 평균 24.7점(리그 4위)-8.1리바운드, 맥기가 '''22.7점-12.9리바운드(리그 1위)'''를 기록, 두 선수들이 팀 득점의 56%, 리바운드 62%를 다 해주었고, 이 덕분에, 현주엽을 제외하곤 특출난 선수가 없던 부산 KTF는 원주 동부, 전주 KCC 등과 함께 리그 내내 선두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떡대 콤비가 맹활약해준 덕분에 무릎이 성치 않던 舊 에이스 현주엽은 공격 부담에서 벗어나 원래 장기였던 패스웍을 맘껏 발휘하며 평균 14.2점-3.6리바-'''7.8어시스트'''를 기록, 대구 동양의 김승현에 이어 리그 어시스트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비슷한 체형의 세선수는 육중한 덩치에도 불구 결코 스피드가 뒤쳐지지 않은데다 세 선수 모두 3점 능력을 갖추어 공격 시엔 상대팀 프런트코트 누구와 붙어도 미스매치가 발생했는데, 이는 "포워드 농구"를 주창하는 추일승 감독의 주 전략이기도 했다.
6라운드에서 3승 6패로 부진하면서 시즌 막판 몰아쳤던 단테 존스 열풍에 밀려 리그 4위로 시즌을 마친 부산 KTF는 플레이오프 판도를 뒤흔들 유력한 카드로 꼽혔으나, 하필 6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포워드 농구의 한축인 미나케가 발목부상으로 이탈하는 바람에 5경기차[7] 였던 5위팀 서울 삼성에 2연패를 당하며 허무하게 6강에서 탈락하고 만다.
05-06 시즌을 앞두고 맥기는 부산 KTF와 재계약을 맺었지만, 포워드 농구의 양대 축이었던 현주엽[8] 과 미나케[9] 가 떠난데다, 설상가상으로 새 외국인선수 마크 샐리어스의 부진까지 겹치며 팀은 2라운드 초반까지 4승 8패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2라운드 중반 샐리어스의 교체 외국인선수로 온 "킹콩" 나이젤 딕슨이 KBL에서 거의 샤킬 오닐급 존재감을 보여준데다, 서울 SK와의 3:3 트레이드[10] 로 조상현, 황진원 등 좋은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 되었고 다시 상위권으로 치고나갔고, 딕슨의 존재로 골밑 부담을 다소 던 맥기는 평균 22.9점-9.8리바의 변함없는 활약으로 팀을 든든히 지켰다. 하지만 5라운드 막판, 2월 25일 오리온스전에서 딕슨이 무릎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면서 또다시 지난시즌의 악몽이 재현되는가 했더니, 딕슨의 대체 외국인선수로 데려온 NBA 출신 켄 존슨(202.8cm)과 함께 정규시즌은 어찌어찌 버티다가 4위를 하지만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 켄 존슨이 거의 투명인간급 활약을 보여준 탓에 또다시 5위팀 전주 KCC에 2연패를 당하는 굴욕을 겪었고, KTF는 코리아텐더 시절을 합쳐서 플레이오프 7연패에 빠지고 말았다. 덕분에 추일승 감독은 "플레이오프 '''일승'''이 급한 거 아니냐?"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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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시즌, 팀과 3년 연속 재계약한 맥기는 새 파트너로 스페인 리그 출신의 백인 떡대 필립 리치(196cm)를 맞이한다. 맥기와 마찬가지로 몸싸움과 외곽슛 모두 가능한 전천후 빅맨이었던 리치는 맥기와 최강의 호흡을 자랑했고, 이때쯤부터 추일승표 포워드 농구가 정상궤도에 오르면서 두 외국인선수들에게 의존하던 기존의 플레이에서 벗어나, 신기성-황진원-송영진-리치-맥기의 베스트 5와 김도수, 이한권 그리고 아직 신인이던 조성민까지 출전하는 모든 선수가 치열하게 달리는 농구를 선보이며, 프랜차이즈 사상 최고 성적인 리그 3위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안양 KT&G와의 6강 플옵에서 맥기는 단테 존스와 치열한 몸싸움과 신경전을 벌인 끝에 2연승으로 안양 KT&G를 격파, 추일승 감독에게 드디어 플레이오프 승리를 안겨주었고, 이어진 창원 LG와의 4강전에서도 찰스 민렌드를 잘 막아내며 3승 1패로 창원 LG를 격파, 팀 창단이래 최초로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한다. 사직 홈에서 열린 3차전에서 맥기는 심판판정에 흥분을 참지 못하고 심판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1경기 출장정지를 당했으나, 이어진 4차전에서 그 유명한 "퍼비스 파스코 심판 폭행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맥기가 빠진 부산 KTF가 간신히 승리할 수 있었다.
울산 모비스와 맞붙은 챔프전은 사상 최고의 접전이었고, 양동근 vs. 신기성의 신구 포인트 가드 대결만큼이나 크리스 윌리엄스/크리스 버지스 vs. 애런 맥기/필립 리치 간의 골밑 대결도 화제가 되었다. 결국 7차전 접전끝에 울산 모비스가 승리를 거두면서, 맥기는 KBL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준우승으로 마감하고 만다.
2.3. 다시 해외리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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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 시즌을 끝으로 KBL 외국인선수 제도가 다시 트라이아웃으로 바뀌었고, 지난 3년간 자유계약으로 선발됐던 외국인선수들은 아예 트라이아웃 참가자격을 박탈당한다. 자유계약 3시즌간 암암리에 이루어졌던 뒷돈거래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곤 하나, 이 조치로 인해 단테 존스, 크리스 윌리엄스 등 줄어든 연봉으로도 재계약을 맺으려했던 외인들을 비롯, 지난 3년 연속 부산 KTF에서만 뛰며 헌신했던 맥기도 결국 KBL무대를 떠나야했다.
KBL에서 다시 뛰고싶었던 맥기는, 3년간 유럽 상위권리그에서 뛰지 않으면 KBL에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규정을 고려, 푸에르토리코 리그를 거쳐 2007-08 시즌엔 중국 CBA 신장 플라잉 타이거즈에 입단, 또다른 KBL 출신 선수 데이비드 잭슨과 함께 한 시즌을 보낸다.[11] 하지만 이후 맘이 바뀐 맥기는 유럽 상위권 리그인 이스라엘 리그로 진출, 08-09 시즌엔 Ironi Nahariya팀에서 뛰며 평균 18.5점-10.4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시즌 중반 Maccabi Rishon LeZion 팀으로 이적해 09-10시즌까지 뛰며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보낸다.
만 30세가 넘으면서 맥기는 유럽 중위권 리그인 우크라이나 리그를 거쳐 2012-13 시즌 러시아 2부리그의 우랄 예카테린부르크에 입단해 2시즌을 보내는 등 점차 노쇠화의 기미를 보인다. 만 35세이던 2014년 9월, 맥기는 코소보 리그 팀과 계약을 맺었으나 2달만에 방출되었고, 이후 대체 외국인선수를 찾던 안양 KGC 이상범 감독의 부름을 받으며 무려 7시즌 만에 KBL에 재입성하게 된다.
2.4. KBL 2기: 안양 KGC 인삼공사 (201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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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2인보유 1인 출전제였던 14-15 시즌, 안양 KGC는 센터 리온 윌리엄스의 백업인 CJ 레슬리가 빈약한 체구 탓에 센터역할을 해주지 못하면서 아직 부상에서 완쾌되지 않은 오세근의 부담이 계속 커지던 상황이었다. 이에 이동남 감독대행은 2라운드 종료와 함께 CJ 레슬리를 퇴출하고, 만 35세의 애런 맥기를 영입하는 강수를 띄운다. 나이도 많은데다 최근 활약한 리그 수준이 전성기에 비해 턱없이 낮아져 "퇴물을 영입한게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지만, 맥기 본인은 인터뷰에서 자신을 팀 던컨과 비교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맥기는 예상보다도 더 노쇠해져 있었고, 둔해진 몸놀림과 극악의 슛감을 보여주며 윌리엄스를 대신해 출전할때마다 매치업에서 구멍이 되는 모습만 보였다. 전성기때는 센터임에도 팡팡 터뜨려주던 3점슛은 총 24경기동안 겨우 4개 성공시키는데 그쳤고, 필드골 성공률은 처참한 수준인 37.5%였다. 리온 윌리엄스 마저 시즌내내 체력문제로 골골대는 마당에 맥기까지 부진하면서 2시즌 전 오세근도 없이 4강 플레이오프에 올랐던 안양 KGC는 리그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고, 5라운드 들어 부진의 원흉인 맥기를 퇴출하고 "덩크왕" 조셉 테일러(198cm)를 급히 데려왔지만 결국 전 시즌보다 4승을 더 한 23승 31패를 기록했으나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지 못한채 시즌을 마감, 이바람에 이동남 감독대행은 재계약에 실패한다.
KBL을 떠난 후, 맥기는 푸에르토리코 리그, 멕시코 LNBP에서 뛰다 2016년 선수생활을 마쳤다.
3. 국가대표팀
부산 KTF에서 뛰던 2005년 열린 FIBA 아메리카 대회[12] 대표팀에 애런 맥기가 포함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1년후 열리는 2006 일본 세계선수권 대회의 참가국 수가 24개국으로 늘어나면서(종전 16개국), 예선을 거쳐 올라온 본선 총 10개팀 중 5위안에만 들면 되는 지라 당시 미국농구협회는 NBA선수들을 배재하고 해외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위주로 멤버를 구성해 대회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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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 애런 맥기를 비롯, 다수의 KBL 출신 선수들이 이때 대표팀에 선발되었고,[13] 이중 알렉스 스케일, 애런 맥기, 크리스 랭은 당시 대표팀 주전멤버였는데, 특히 맥기는 전 경기에 선발출전하며 평균 10.7점-6.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 대회에서 미국팀은 레안드로 발보사-앤더슨 바레장-티아고 스플리터가 버틴 브라질, 마누 지노빌리가 빠졌지만 여전히 강호였던 아르헨티나, 그리고 전 KBL 외국인선수 헥터 로메로가 뛰던 베네수엘라에게 각각 패하면서 최종순위 4위를 차지했다.[14]
4. 여담
- 부산 KTF 시절의 기억이 너무도 좋았던지, KBL에서 더 이상 뛸 수 없는 상태였던 2007-08 비시즌에 부산 KT의 미국 전지훈련장에 찾아와 연습파트너로 같이 뛰어주기도 했다. 가끔 폭발하긴 했지만 그래도 꽤나 정이 있는 외국인선수였다는 평.
[1] 2006년 세계선수권 대회 미주지역 예선으로, 10개팀 중 5위안에만 들면 되는터라 NBA 선수들은 배재하고 해외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위주로 선발했었다.[2] 부산 KT 역사상 유일한 챔프전 진출이었다.[3] 2000년 NBA 드래프트 전체 1순위[4] 이 덕분에 맥기는 NCAA 소속 대학교끼리 바로 전학을 가면 1년 유급을 해야만 하는 규정을 피할 수 있었다.[5] 1순위로 중국의 야오밍이 뽑혔다. 9순위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2라운드 35순위 카를로스 부저 정도를 제외하곤 NBA에서 성공한 선수가 별로 없다.[6] 당시 외국인 선발제도가 자유계약제로 바뀌었지만, 지나친 몸값상승을 우려한 KBL 사무국에서 연봉 제한과 함께 출신리그 제한을 걸어놓은 탓에 유럽 상위리그(스페인, 이탈리아, 이스라엘, 그리스, 러시아 등) 출신은 계약이 불가했다. 맥기의 경우 직전시즌 뛴 곳이 스페인 2부리그였기에 계약이 가능했다.[7] KTF는 당시 1위 TG삼보와는 4경기차였다.[8] 창원 LG와 FA 계약을 맺으며 이적했고, 대신 FA 보상선수로 송영진이 합류했다.[9] 다혈질의 성격탓에 재계약에 실패했다.[10] 부산 KTF get: 조상현, 황진원, 이한권 ↔ 서울 SK get: , 정락영, 김기만[11] 이 시즌 신장 팀은 두 외국인 선수의 활약으로 시즌 내내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시즌 중반 홍콩 국적의 선수를 중국선수로 등록해 뛴게 발각되면서 승점이 대폭 삭감되면서 플레이오프 탈락권으로 순위가 추락해버린다.[12] 축구와는 달리, 남미와 북중미를 통합해 대회를 치른다.[13] 11번- 아답 첩(전 울산 모비스), 15번- 크리스 랭(전 서울 SK), 9번- 테픈 해밀턴(전 인천 전자랜드), 8번- 알렉스 스케일(전 서울 삼성)[14] 그리고 본선대회에선 르브론 제임스-카멜로 앤서니-드웨인 웨이드-드와이트 하워드 등 주축멤버들을 내세워 싱겁게 우승을 차지...할 줄 알았는데?? 4강에서 복병 그리스에게 패하면서 3위에 그쳤다. 이바람에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대표팀은 "리딤팀''이란 이름으로 확실한 정신무장을 하고 나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