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브 미나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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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게이브 미나케
(Nnadubem Gabriel Enyinaya Muoneke)
'''생년월일'''
1978년 2월 7일 (46세)
'''국적'''
나이지리아, 미국
'''출신학교'''
텍사스 대학교 (1996-2000)
'''포지션'''
스몰 포워드, 파워 포워드
'''신장'''
195.5cm, 113kg
'''KBL 데뷔'''
2004년 부산 KTF 매직윙스 (자유계약)
'''KBL 소속팀'''
부산 KTF 매직윙스 (2004~2005)
서울 SK 나이츠 (2005)
'''국가대표'''
나이지리아 대표팀 (2003~2009)
'''수상경력'''
FIBA 아프리카선수권 준우승(2003) / 3위(2005)
1. 개요
2. 선수 시절
2.1. KBL 입성 전
2.2. KBL 시절
2.2.2. 서울 SK 나이츠 (2005.10.22~2005.10.30)
2.3. 이후 행보
3. 국가대표
4. 여담


1. 개요


KBL의 전 외국인 선수.
탄탄한 체구에 내외곽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공격력으로 자유계약 시절에도 최고 수준의 외국인선수로 꼽혔으나, 다혈질의 성격을 자주 표출하며 일명 "문제아 용병"으로 찍히기도 했다. 04-05 시즌 테크니컬 파울 1위.[1]

2. 선수 시절



2.1. KBL 입성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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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12 컨퍼런스의 강호 텍사스 대학교[2] 출신으로, 1학년때부터 팀의 주전 파워포워드로 뛰며[3] 팀이 1996-97 시즌 NCAA 토너먼트 16강(Sweet Sixteen)까지 오르는데 기여한다. 2학년때는 팀 성적이 부진하여 감독이 교체되는 등 부침을 겪지만, 이후 3학년때 미나케는 시즌 평균 16.5점-6.6리바운드를 잡아내며 2학년 센터 크리스 밈(213cm)[4]과 함께 텍사스 롱혼스를 Big 12 컨퍼런스 시즌 1위로 올리는 반전을 이뤄냈고 미나케 자신은 Big 12 컨퍼런스 퍼스트팀에 선정된다. 하지만 팀은 토너먼트 1회전에서 퍼듀 대학교에 업셋을 당하며 탈락하고 만다.
4학년때는 후배 크리스 밈이 일약 전미 최고 센터 수준으로 활약함에 따라 다소 비중이 줄어들었지만 평균 13.7점-6.3리바운드로 여전한 활약을 펼치며 팀을 2년 연속 토너먼트에 진출시키지만, 스트로마일 스위프트(206cm)[5]가 이끄는 루이지애나 주립대에 패하며 32강 진출에 만족하고 만다.
2000년 드래프트에서 낙방한 미나케는 터키 리그로 진출, 00-01 시즌 피나르 카르시야카팀에서 뛰며 평균 19점-9.5리바운드를 올렸고, 이후 아르헨티나 리그를 거쳐 새로 출범한 NBDL로 합류해 시즌을 보내며 NBA 입성을 노린다. 당시 NBDL 시절 팀 동료로는 네이트 존슨(전 대구동양, 서울 삼성), 테런스 섀넌(전 인천 전자랜드, 서울 SK) 등이 있었고, 특출난 기량을 선보였던 미나케는 01-02 시즌 NBDL 득점 2위에 오르기도 했다.
2003년 스페인 2부리그에서 잠깐 뛴 후[6] 03-04 시즌 비시즌에 NBA의 4개팀(디트로이트, 샬럿, 휴스턴, 유타)의 트레이닝캠프 초청을 받았으나, 결국 엔트리 잔류에 실패하고 중국 CBA베이징 올림피언스에 입단해 한시즌을 보낸다.
중국리그에서 뛰면서 추일승 감독의 레이더망에 걸린 띈 미나케는 04-05 시즌 새 외국인선수로 부산 KTF에 합류하며 KBL 커리어를 시작한다.

2.2. KBL 시절



2.2.1. 부산 KTF 매직윙스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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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KBL의 명장 중 한명이자 특히 외국인선수 고르는 안목 높기로 정평이 난 추일승 감독이지만, 직전시즌엔 외국인선수들의 부진으로 8위에 그친데다, 자유계약 시대를 맞아 전 NBA 출신 선수들까지 오는 마당에 부산 KTF가 데려온 데려온 두 선수(애런 맥기-게이브 미나케)는 특색없는 떡대형이라 조니 맥도웰 시절의 몸빵농구로 돌아가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받으면서 04-05 시즌을 맞이한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미나케-맥기 듀오는 NBA 출신 제럴드 허니컷[7]을 비롯, 상위권 리그에서 온 타팀 자유계약 선수들을 가히 압도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만년 하위권이던 부산 KTF를 일약 선두권으로 올려놓는다. 특히 미나케는 첫경기부터 3점슛 4개(4/7)를 꽂으며 23점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시즌 평균 24.7점(득점 4위)-8.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부산 KTF의 에이스로 자리잡는데, 투박한 겉모습과는 달리 미나케는 준수한 탄력과 스피드, 훌륭한 공격스킬에 부드러운 슛터치까지 겸비한 만능선수였고, 특히 팀의 슈터 손규완보다도 많은 경기당 1.76개씩의 3점슛(성공률 35.2%)을 꽂아주면서 당초 공존이 어려울 것이라 예상되었던 현주엽-미나케-맥기 빅포워드 트리오의 스페이싱 문제도 말끔히 해결해주었다. 이들 트리오의 손발이 들어맞기 시작한 2라운드 들어 부산 KTF 7연승을 질주하며 리그 깜짝 선두에 오르는 등 시즌내내 부산발 농구 열풍을 이끌었고, 김주성-자밀 왓킨스 듀오의 원주 TG삼보, 이상민-찰스 민렌드 콤비의 전주 KCC와 시즌내내 선두권 경쟁을 펼친다.
하지만 국내 선수층이 얇았던 부산 KTF[8]는 다른 선두권팀들에 비해 두 외인들에 대한 의존도가 유난히 컸고[9], 이들 두명 중 한명이 부진하면 그야말로 얄짤없이 털리는 경기가 잦았다. 강한 승부욕 만큼이나 다혈질을 자랑(?)했던 미나케는 특히 상위권팀들과의 대결때마다 테크니컬 파울을 기본으로 적립하며 KBL 한시즌 테크니컬파울 기록(19회)를 갈아치웠고, 한경기 테크니컬 파울 2개로 다이렉트 퇴장당하기도 부지기수였다. 확실한 실력에도 불구 매경기 시한폭탄같은 모습을 보여준 "성질왕" 미나케 때문에, 시즌 중반까지 원주 TG삼보와 1위 다툼을 하던 부산 KTF는 막판들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6라운드에서 고작 3승에 그쳤고, 단테 존스 합류 후 시즌 막판 15연승을 달린 안양 SBS 돌풍에 밀리며 리그 4위(32승 22패)로 시즌을 마감하고 만다.[10]
비록 초반기세에 비해 낮은 순위로 플레이오프에 나서게 되었지만, 다른 4강권 팀들이 외인 1명의 특출난 기량에 의존한것[11]에 반해, 두 외인 선수들이 고루 에이스급 기량을 갖추고 있었던 덕분에,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부산 KTF를 여전히 우승후보 중 한팀으로 꼽고 있었다. 6강 상대였던 5위 삼성과의 대결에서 항상 자신있는 모습을 보였던 부산 KTF였기에[12], 당시 추일승 감독에게 6강 플옵은 아웃 오브 안중이었고 6강 플옵 승리 후 4강에서 만나게 될 리그 1위팀 원주 TG삼보[13]와의 대결을 고민하고 있었다.
6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부산 KTF는 리그 막판 발목부상을 당했던 에이스 미나케를 아예 '''퇴출'''시키고, 미국 CBA에서 뛰던 198cm의 스몰포워드 크니엘 딕킨스[14]를 영입한다. 사실 무릎부상은 대외적으로 발표된 이유였고, 실제로는 원주 TG삼보와의 대결때마다 약한 모습을 보였던 미나케의 기량에 아쉬움을 느꼈던 부산 KTF 프런트에서 "단테 열풍"을 몰고왔던 단테 존스 만큼의 활약을 보여줄것이란 기대를 안고 도박처럼 내세운 교체카드였다는게 정설이다. "포인트포워드"로 불리며 팀을 이끌었던 현주엽은 은퇴 후 한 인터뷰에서 이때 상황을 회상하며, 당시 미나케의 퇴출이 부상때문이 아님을 밝힌바 있다.현주엽 인터뷰
폭발적인 점프력에 정교한 3점슛을 보여줄거라 기대받은 딕킨스였지만, 정작 6강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외곽만 맴도는 소극적인 플레이만 보여주다 1차전 22점, 2차전엔 16점에만 그치며 5위팀 서울 삼성에게 힘 한번 못쓰고 2전 전패로 광탈하는 원흉이 되고 만다.

2.2.2. 서울 SK 나이츠 (2005.10.22~200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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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시즌, 게이브 미나케는 서울 SK와 자유계약을 맺는다. 서울 SK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부터 미나케를 눈여겨봤던 김태환 감독은 다혈질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미나케의 뛰어난 기량을 높이 평가하며 시즌전 인터뷰때마다 미나케를 자주 칭찬했고, 미나케도 새시즌부터는 성질을 좀 죽이겠다고 다짐하며 더 나아진 활약을 예고했다. 임재현-조상현-전희철 등 부산 KTF시절보다 화려해진 국내 멤버구성 속에서도 미나케는 여전히 독보적인 에이스로 등극하며 시즌 첫 5경기에서 평균 27.2점-8.2 리바운드를 올리는 맹활약을 보여준다. 하지만 5번째 경기인 창원 LG전에서 무릎이 탈골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는 바람에 시즌을 마감해야했고, 05-06 시즌 미나케와 서울 SK의 시즌은 그렇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2.3. 이후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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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을 떠난 후, 부상에서 회복한 미나케는 푸에르토리코 리그를 거쳐 중국 CBA, 이란 리그, NBDL, 스페인 1부리그 등에서 활약한다. 특히 07-08 시즌에는 당시 유럽 최강권 팀이던 스페인 Saski Baskonia 팀에 합류하여, 피트 마이클, 티아고 스플리터, 제임스 싱글턴 등과 함께 '''07-08시즌 스페인 리그 챔피언'''과 '''유로리그 4강'''에 오르는 영광을 누린다.
Baskonia팀의 재계약 요구에도 불구, 미나케는 08-09 시즌 중국 CBA의 윈난 러닝불스와 계약을 맺으며 CBA 3번째 시즌을 맞이했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엄청난 스탯을 올리며 중국리그 최고의 외인 선수중 한명으로 활약했다.
이후 08-09시즌 프랑스 리그에 진출했다가 금새 방출되었고, 유타 재즈와 프리시즌 계약을 맺으며 마지막으로 NBA 진출을 노려보지만 결국 실패, 이후 2009년 31세의 나이로 선수생활을 그만둔다.
현재는 전공(석유공학)을 살려 부모님의 고향인 나이지리아에서 정유관련 쪽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 국가대표


미국 미주리주 출신의 미국인이나, 부모님이 나이지리아 이민자 출신의 이중국적자라 나이지리아 국가대표팀에서 오랜기간 활약했다.
나이지리아 대표팀으로서 첫 출전한 2003년 아프리카선수권 대회에선 올루미데 오예데지와 함께 팀을 결승까지 진출시켰고, 홈팀 앙골라와의 결승전에선 21점을 퍼부으며 활약했지만 결국 아프리카 최강자 앙골라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쳐 간발의 차로 2004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실패했다.
2005년 대회에서도 역시 팀의 주전 스몰포워드로서 센터 오예데지와 함께 출전해 4강에서 앙골라와 리턴매치를 벌였고, 미나케가 16점을 넣었음에도 나이지리아는 앙골라에 또다시 패하고 만다. 하지만 최종 순위 3위를 기록하며 2006 FIBA 농구 월드컵 출전에 성공하고, 본선에서 강호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꺾는 이변을 일으킨 끝에 16강까지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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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미나케는 2009년 대회에 또 한 번 도전하지만 이번엔 5위에 그치면서 2010 FIBA 농구 월드컵 티켓 획득에 실패한다. 참고로 사진 속 미나케의 뒤에 있는 선수는 2009년 대회 때 나이지리아 팀 주장이었던 마이클 이페브라다.

4. 여담


  • 험상궂은 외모와는 달리 의외(?)로 인텔리로,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KBL에 뛰던 시절엔 입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어 간판을 읽는 등, 언어 학습 능력이 남다르다고 한다. 부산 KTF 시절 김용식의 서남방언을 구수하게 따라해 선수단을 놀래키기도 했다고.
  • 08-09 시즌 중국 CBA 윈난 러닝불스에서 뛰던 미나케는, 리그 최하위의 팀 성적에도 불구하고 평균 34.6점의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며 리그 최고의 외인 중 하나로 손꼽혔다. 하지만 미나케 특유의 거친 플레이 스타일은 중국선수들과 잦은 트러블을 일으켰고, 결구 사고가 터지고 만다. 08-09 시즌 내내 윈난 러닝불스와 탈꼴찌 경쟁을 벌이던 샹하이 샤크스[15]와의 경기 도중, 미나케는 상대팀 중국선수인 차이량(203cm)과 거친 몸싸움을 벌였고, 경기중 난투극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그대로 끝나는가 싶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샹하이 샤크스의 주장 류웨이[16]와 차이량을 비롯한 다른 샤크스 선수들이 가족과 함께 있던 미나케를 기습(!!!)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아내, 장모, 아이와 함께 있던 미나케는 이들의 폭력을 피해 도망가다가 코너에 몰려 물통으로 얻어맞는 등의 폭행을 당했다. 당시 기사 이 사건은 CCTV에 고스란히 담겨 결국 류웨이, 차이량을 비롯한 샤크스 선수단과 샤크스 구단은 CBA로부터 각각 징계를 받았고,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미나케는 시즌 도중 팀을 이탈해 잠적하기도 했다.
[1] 19개[2] 전공은 석유공학.[3] 미나케와 같은해 텍사스 대학교로 편입한 선수 중 아이라 클라크가 있었다. 텍사스에서의 2년동안 아이라 클라크는 미나케의 백업을 담당했다.[4] 2000년 NBA 드래프트 전체 7순위[5] 2000년 NBA 드래프트 전체 2순위. KBL 선수였던 버넬 싱글턴(전 서울 삼성)이 은퇴 후 에이전트로 일했던 선수였다.[6] 이때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7] 1997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38순위로 밀워키 벅스에 지명되어, NBA에서 총 3시즌을 뛰었다.[8] 주전멤버로 손규완-현주엽-미나케-맥기가 고정이었고, 정락영, 이홍수, 조동현 정도만이 출장시간을 나누면서 가드자리를 메웠다.[9] 미나케-맥기 듀오는 팀내 득점 56%, 리바운드 62%를 전담하고 있었고, 이는 경쟁팀인 원주 TG삼보(득점 42%, 리바운드 52%)와 전주 KCC(득점 50%, 리바운드 58%)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10] 리그 1위 원주 TG삼보(36승 18패)와는 단 4경기 차였다.[11] 각각 자밀 왓킨스, 찰스 민렌드, 그리고 단테 존스를 보유한 원주 TG삼보, 전주 KCC, 안양 SBS였지만, 이들의 파트너인 아비 스토리, 제로드 워드, 주니어 버로와의 기량차가 큰 편이었다.[12] 당시 서울 삼성은 주희정-강혁-알렉스 스케일(186.5cm)-자말 모슬리(198.1cm)-서장훈 주전에, 이규섭, 이현호, 박성배 등이 벤치에서 출전하고 있었다. KBL 연봉 1위 서장훈을 보유한 탓에 벤치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편이었고, 부산 KTF와의 대결에선 늘 현주엽이 본인보다 12cm 큰 서장훈을 마크해주면서 미나케-맥기 두 덩치들 중 한명은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이점이 있었다. 다만 당시 상대전적은 3승 3패로 팽팽했다.[13] 정규리그에서 유독 부산 KTF를 괴롭혔던 팀이 바로 원주 TG삼보로, 리그 상대전적 1승 5패로 압도당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거둔 1승은 TG삼보의 개막 8연승을 저지한 경기였긴 하다.[14] 2000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50순위로 유타 재즈에 지명받았고, CBA에서 주로 활약하다 간간히 NBA에 콜업되어 2003-04시즌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서 5경기, KBL 합류 직전인 2004-05 시즌엔 뉴저지 네츠에서 총 11경기에 출전한 바 있다.[15] 야오밍의 전 소속팀으로 유명하다.[16] 오랜 기간 중국 대표팀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 활약한 그 선수 맞다. 우리에겐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김승현에게 탈탈 털리던 걸로 더 기억남는 그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