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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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花津外國人宣敎師墓園 | Yanghwajin Foreign Missionary Cemetery

'''종류'''
묘지, 공원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진길 46
'''개장'''
1890년 7월 28일 (존 헤론이 최초로 안장.)
'''연락처'''
02-332-9174
'''공식링크'''

1. 개요
2. 상세
3. 안장된 인물들
3.1. 주요 인물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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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144번지에 위치한 묘원.
합정역 인근, 절두산 성지의 바로 옆에 있는 나루터에 조성되었다. 원래는 항구이자 양화나루를 수비하는 진영인 양화진이 설치되어 있던 곳이라 양화진이라고 부른다. 찾아가려면 합정역 7번 출구에서 내려서 2호선 선로 방향을 따라 걸어가면 된다.

2. 상세


서울 지하철 2호선합정역에서 당산철교로 빠져나가는 오르막길 바로 옆에 바싹 붙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실내에 있다 보면 어디서 낮게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다름아닌 지하철 지나가는 소리다.
100년에 이르는 세월동안 조성되어 있던 곳으로서, 특히 외국의 공원을 방문하는듯한 독특한 이국적인 정취가 있다. 실제로 서양 문화권에서는 묘지를 일종의 추모공원 같은 곳으로 예쁘게 꾸며놓아서 님비는 커녕 오히려 핌피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귀신 나올까 봐 으슥하다는 소리들 이 나오는 국내의 공동묘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1]
절두산성지(천주교)과 양화진묘역(개신교)을 한데 묶어 양화진성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포구에서는 이걸 함께 묶어서 가톨릭개신교범기독교 연합 사업 비슷한 것으로 만드려고 했지만 두 종파 간의 의견 차이로 무산됐다.[2] 안장된 인물의 대부분은 장로회감리회 소속이지만, 그래도 성공회[3]구세군 같은 군소 교단 소속도 좀 된다. 참고로 개신교 선교사 묘원이라고는 하지만 개신교 선교사가 아닌 인물의 묘도 꽤 많다. 최근에 조성된 정체 불명의 묘비도 보이며, 프리메이슨의 로고가 새겨진 묘비도 몇 보인다.(…)[4]
2005년까지만 하여도 사실상 방치된 곳이었으나[5]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개신교 교계의 문제 제기 후로는 그 관리를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하고 있으며, 안내판도 상당히 정비를 하였다. 거기에 주말에는 일정 시간대별로 무료 안내 가이드까지 운영한다. 월요일~토요일 하루 4회이며,[6] 사전 예약을 하는 것이 장려되지만 당일 방문도 가능하다. 코스는 실내 영상물 시청 → 묘소 참배 → 양화진홀 관람이며, 전체적으로 1시간~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그 외에 유료로 안내해 주는 사람들은 100주년 기념교회와는 무관하다.
그런데, 명색이 묘역이라 어느 정도는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하는데, 촬영을 한다면서 시끄럽게 떠들고 이곳 저곳을 쑤시고 다니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끔 하기도 한다. 심지어 비석에 앉거나 기대서 사진을 찍는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 당연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정말 어리석은 짓'''이니 절대 하지말자.

3. 안장된 인물들


고종황제 이후 대한민국의 종교계, 언론계, 교육계 등에 공헌한 외국인 인사 500여명의 묘가 있다. 그 중에서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 및 가족들의 수는 145명. 이래저래 한국 근현대사와 관계된 인물이 많다.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인 어니스트 베델(배설), 장로회 선교사이자 연세대학교 설립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배재학당의 설립자인 헨리 아펜젤러, 이화학당의 설립자 메리 스크랜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의 설립자 더글러스 B. 에비슨, 감리회 선교사이자 독립운동한글 발전에 큰 역할을 한 호머 헐버트 박사,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곡한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의 묘도 여기에 위치하여 있다. 최초로 안장된 인물은 헤론(J.W.Heron)으로, 1890년 7월 28일이다.
외국인 개신교 선교사 묘지라는 이미지 때문에 구미권 출신 인사의 묘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 1867~1962)라는 일본인도 안장되어 있다. 처음엔 YMCA일본어 교사로 활동하다가 이후 감리회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한국의 독립을 지지했고 용산구 후암동의 가마쿠라보육원(현 영락보린원)에서 한국인 고아들을 보살폈다. 8.15 해방 후 1947년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1961년 다시 내한했고, 1962년 3월에 영락보린원에서 향년 95세를 일기로 소천했다. 시대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장수한 인물.

3.1. 주요 인물 명단


가나다순. 본인 대신 가족이 안장된 경우 ☆ 표시.
  • 게일, J.S. - 한국학 연구활동 ☆
  • 레이놀즈, W.D. - 성경 한글번역 활동 ☆
  • 무어, S.F. - 백정 선교활동
  • 벙커, D.A. - 배재학당 운영
  • 베델, E.T. - 대한매일신보 창간
  • 베어드, W.M. - 숭실학당 설립 ☆
  • 브로크만, F.M. - YMCA 설립 ☆
  • 소다 가이치 - 고아원 운영, 유일한 일본인 안장자
  • 쇼, W.E. - 국내 군종 창설
  • 스크랜턴, M.F. - 이화학당(한국 최초의 여학교)과 삼일소학당 설립
  • 아펜젤러, H.G. - 배재학당 설립 ☆[7]
  • 언더우드, H.G. - 경신학교, 연희전문학교 설립
  • 에비슨, O.R. - 세브란스병원 설립 ☆
  • 전옥자 -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의 희생자로 한국계 미국인.[8]
  • 프란츠 에케르트 - 대한제국 애국가 작곡
  • 위더슨, M. - 고아원 운영
  • 웰본, A.G. - 선교활동
  • 최봉인 - 대한민국 초대장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토지의 원 소유자이자 기증자이자 묘지기. 양화진 묘원에 묻힌 유일한 한국인
  • 캠벨, J.P. - 배화학당 설립
  • 터너, A.B. - 성공회 주교, YMCA 운영.
  • 하디, R.A. - 선교활동 ☆
  • 헐버트, H.B. - 고종 시기 외교활동
  • 헤론, J.W.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최초 안장자, 제중원 운영
  • 홀, R.S. - 의료활동.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녀관(保救女館)[9]에서 활동한 여의사.
[1] 그러나 서양 매체에서도 꽤나 을씨년스럽고 공포스러운 공동묘지가 곧잘 나오기도 하니 아마 묘지마다 제각각인 듯하다. 실제로 영국의 그레이프라이어스 커크야드의 경우 악령이 방문객들을 물리적으로 공격한다는 말까지 돌아서 오컬트 매니아들이 자주 찾을 정도.[2] 개신교 쪽에서 이 사업에 대해 더 적극적이었지만, 가톨릭 측에서 운영과 관련된 부분에서의 불협화음에 의해 무산됐다.[3] 대한성공회 2대 주교이며 YMCA 회장이었던 터너 A. B.를 비롯한 여러 성공회 교인의 묘들이 가장 가장자리에(...) 성공회 묘역을 이루고 있다.[4] 프리메이슨 로고가 새겨진 묘비의 주인은 회원으로 있었던 주한미군으로 밝혀졌다.[5] 쓰레기가 쌓이고 인근의 비행 청소년들이 아지트로 삼기도 했다고 한다.[6] 10:00, 11:30, 14:00, 15:30. 양화진홀 관람은 10:00~17:00.[7] 본인 시신 수습하지 못 함.[8] 당시 42세였으며 16세와 14세의 두아들인 크리스토퍼 킴과 스코트 한솔 킴과 함께 안장되었다.[9]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