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미 타카시
1. 개요
일본 국적의 축구선수. 포지션은 미드필더와 포워드를 맡고 있다.
2. 클럽 경력
2.1. 프로 입단 이전
일본 교토부의 감바 오사카 서포터즈인 부모 아래 태어나, 축구를 하게 된 두 형의 영향을 받아 만 5세시절부터 지역 어린이 축구팀에 들어가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어 초등학교 졸업시까지 도합 600골 이상을 기록했다고 한다.
2005년 중학생이 되면서 감바 오사카 유스팀에 가입했고, 같은 해 6월,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MBC 국제 유소년 대회에 일본 U-13 대표팀으로 참가하여 결승에서 남아공을 꺽고 우승하는데 크게 공헌했다.결승에서 남아공을 꺽고 우승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2006년 전국 일본 유소년 선수권에는 10골을 기록, 대회 득점왕과 팀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7년 중3 시절에 고등학생 유스팀으로 승격했고, 유일하게 중학생이면서도 주전으로 정착하여 일본 클럽 유스팀 선수권에서 우승하는데 기여했다. 고1이 된 2008년 등번호 10번을 받아 J리그 유스컵 결승에서 멀티골을 기록하여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이런 활약으로 인해 어린 나이지만 그 기량에 관해선 프로 스카우터들 사이에도 정평이 나 있었고, 감바 오사카 유스팀에선 '역대최고걸작' 이라는 평을 받았다.
2.2. 감바 오사카 1기(2009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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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감바 오사카 클럽 역사상 최초로 고2의 나이로 프로 1군팀에 승격되며 프로에 입문하게된다. 등번호는 33번을 받았다.
2009년 5월 20일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6차전 FC 서울전에 클럽 역사상 최연소 데뷔 기록(만 17세 171일)을 갱신하며 선발 출전, 후반 19분에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5월 이후로 폼이 떨어지면서 1군 멤버에도 거의 들지 못했고 첫 시즌은 공식전 4경기 출전 1골(ACL 1경기, 리그 3경기)에 그치고 만다.
2010년, 시즌 초반에는 출전 기회가 좀 처럼 없었지만 주전들의 부상이 겹치면서 4월 10일 리그 6라운드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선발로 기용됐다. 리그 8라운드 FC 도쿄전에서 리그 첫 득점을 기록했고, AFC 챔피언스 리그 수원 삼성전에서는 후반 추가시간에 역전골을 기록하여 팀의 역전승을 이끌었다. 시즌 중반부터는 왼쪽 윙과 톱 포지션을 오가며 주전으로 기용됐고, 리그 26경기에서 7골을 기록하여 시즌 종료후, 베스트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다.
2011년, 등번호가 11번으로 변경됐고, 왼쪽 미드필더와 쉐도우 스트라이커 롤을 맡았다. 하지만 포지션 특성상 본인의 장점인 돌파력과 결정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해, 8경기 연속 무득점으로 벤치 멤버로 밀려났다. 5월 15일 리그 11라운드 아비스파 후쿠오카전에서 리그 첫 득점을 기록했다.
2.3. 바이에른 뮌헨(2011 ~ 2012)
2011년 6월 27일 감바 오사카에서 보여준 가능성을 평가받아 11-12시즌을 앞두고 완전 이적 옵션이 포함된 1년 임대 계약으로 분데스리가 최고의 명문 구단인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였다. 등번호는 14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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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3일 리그 2라운드 VfL 볼프스부르크전에 막판 교체 투입되며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가졌다.
2011년 10월 26일 DFB 포칼컵 2차전 FC 잉골슈타트 04전에서 이적 후 첫득점을 기록했다.
2011년 12월 7일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마지막경기인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일본인 최연소 챔피언스리그 출전기록을 세웠다.
2012년 4월 21일 32라운드 베르더 브레멘전에서 이적 후 처음으로 선발 풀타임 출전을 기록했다.
2012년 5월 19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첼시전에서 일본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 멤버에 이름을 올렸지만,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소속팀은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시즌 통틀어 주로 벤치나 리저브팀에서 시즌을 보내며 1군 경기는 총 5경기밖에 나서지 못했고, 바이에른 뮌헨측이 완전 이적 옵션을 행사하지 않아, 1년만에 퇴단하게 된다.
2.4. TSG 1899 호펜하임 (2012 ~ 2013)
우사미가 유럽에서 보낸 첫 시즌이 실망스럽자 감바 구단측은 그의 복귀를 원하는 눈치였으나 우사미는 계속 유럽에 남길 원했고 결국 TSG 1899 호펜하임으로 다시 한 시즌 임대되며 12-13시즌도 유럽에서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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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2골을 기록하는 등 자신의 포텐셜을 어느정도 입증하는 듯한 폼을 보여주었다. 후반기가 시작한 뒤에도 꾸준히 경기에 나섰으나 소속팀의 성적은 강등권에 쳐져 쉽사리 반등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27라운드를 끝으로 경기 출전은 커녕 1군 훈련에서도 제외되는 등 사실상 전력 외 취급을 받았고 소속팀에서도 조기에 우사미와 연장 계약 포기를 선언했다. 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도 당연히 출전하지 못했고 에이전트의 13-14시즌에도 우사미는 독일에서 뛸 가능성이 높다라는 발언이 무색하게 두 시즌간의 독일 임대 생활을 접고, 자신이 임대된 뒤에 J2리그로 강등되었던 감바 오사카로의 복귀가 확정되었다.
2.5. 감바 오사카 2기(2013 ~ 2016)
2013년 6월 18일 친정팀 감바 오사카로 복귀하는 것이 발표됐다. 등번호는 39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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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0일 2년만의 복귀전이 된 J2리그 25라운드 빗셀 고베전부터 멀티골을 기록하더니, 8월에는 5경기 5득점으로 월간 MVP를 수상했다. 이후 38라운드 도쿠시마 보르티스전에서 프로 데뷔 후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18경기에서 19골을 기록, 득점 랭킹 2위까지 오르며 감바 오사카의 J2리그 우승, 1부 승격에 크게 기여했다.
2014년 등록 포지션을 포워드로 변경했다. 시즌 개막전인 2월 중순, 훈련중에 왼다리의 비골이 탈골되는 부상을 당해 전치 8주 진단을 받았다.
2014년 4월 26일 리그 9라운드 가와사키 프론탈레전에 복귀하였고, 복귀후 첫 선발로 출전하여 도쿠시마 보르티스전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이후, 패트릭과 함께 투톱을 이루며 골을 양산했고 리그 10골, 리그컵 5골, FA컵 6골을 기록, 감바 오사카의 국내 트레블에 크게 기여했다.
2015년 리그 3라운드부터 8라운드까지 클럽 연속골 기록인 6경기 연속골을 기록하여 4월 월간 MVP를 수상하였고 시즌 통틀어 대표팀과 클럽팀을 오가며 활약하여 총 38경기 23골을 기록했다.
2.6. FC 아우크스부르크 (2016 ~ 2017)
2016년 6월 20일 FC 아우크스부르크와 4년 계약을 맺으며 이적하여, 3년만에 분데스리가로 복귀하게 되었다. 당시 리그앙의 FC 낭트도 우사미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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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시즌이 개막하자 13라운드까지 교체로만 딱 3경기에 나와 37분(...)이라는 안습한 출전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개막전 후반 막판 교체로 잠깐 출전하더니 그 이후로는 명단 제외와 부상 등을 이유로 11라운드까지 뛰지 못하다 12, 13라운드 들어서야 교체로 다시 경기에 투입됐다.
아우크스부르크의 주전 공격진들이 줄부상으로 공격진과 2선에 공백이 있음에도 교체 출전으로 11경기 밖에 나서지 못했고 [2] 결국 2017년 8월 2. 분데스리가에 있는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로의 1년 임대가 결정되었다. #
2.7.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2017 ~ 2019)
2017년 9월 1일 입단 인터뷰에서 과거 바이에른 시절 자신을 지도했던 피터 헤르만 현 뒤셀도르프 코치와의 관계때문에 입단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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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코치와의 사제관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지는지 후반기에는 4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하는 등, 괜찮은 폼을 보여줬고, 17-18시즌 2부리그에서 8골 3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승격에 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으므로 임대 연장 계약을 해서 한 시즌 더 뒤셀도르프에서 뛰게 되었다.
18/19 시즌 들어서는 2018년 11월 10일 헤르타 베를린전에서 첫골을 기록했다.
18/19 시즌 통틀어 22경기 출전하여 1골 3도움으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2.8. 감바 오사카 3기(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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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 시즌이 끝나고 2019년 6월 24일 3년만에 다시 감바 오사카로 이적하였다. 등번호는 신인시절 쓰던 33번을 받았다. 팀의 공격을 이끌던 황의조가 7월 14일 보르도로 이적하게 되면서 우사미의 팀내 역할이 더욱 커지게 됐다.
7월 20일 리그 20라운드 나고야 그램퍼스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경기 종료 직전 헤딩으로 동점골을 만들어내며 복귀를 알렸다.
2019시즌 최종 성적은 14경기 7득점을 기록했다.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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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된 2005년 이후로 각 연령별 대표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고 각종 국제 유스대회에서 득점왕과 MVP를 수상한 경력이 있다. 이때 함께 활약한 미야요시 타쿠미, 타카기 요시아키, 미야이치 료, 시바사키 가쿠등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낸 동년배들과 우사미를 같이 묶어 일본 현지에서는 '플래티넘 세대(プラチナ世代)' 라고 칭한 바 있다.
감바 오사카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후인 2009년 11월, FIFA U-17 월드컵에 출전하였으나 조별리그 3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고, 일본 대표팀도 3연패로 조별리그 최하위로 탈락하고 말았다.
2010년 10월, U-20 월드컵 출전권이 걸린 AFC U-19 챔피언십에 출전하여 조별리그 베트남전에서 해트트릭을 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였지만 일본 대표팀은 8강에서 탈락하면서, 4강 진출팀들에게 주어지는 U-20 월드컵 출전권을 획득하는 데 실패했다.
2011년 AFC 아시안컵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최종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2011년 6월 A매치 명단에 선발되면서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으나, 경기에 출전하진 못했다.
2012년 8월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일본 대표로 출전하여 4경기에 출전했으나 득점을 기록하진 못했고, 일본 대표팀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한민국에 패배하여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2015년 3월 27일 튀니지와의 A매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가졌고, 31일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성인 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2018년 6월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하여, 조별리그 세네갈전과 폴란드전에 왼쪽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4. 플레이 스타일
포지션은 주로 좌측면 미드필더, 레프트 윙 포워드부터 쉐도우 스트라이커, 투톱 전술에서 톱을 맡기도 했다. 양발을 모두 잘쓰고 빠른 발과 정교한 드리블을 살린 돌파 능력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킥력도 좋아 세트피스를 전담하기도 하며 일본선수들의 전형적인 특징인 볼터치 및 패스연결이 상당히 부드럽다. 이런 훌륭한 재능으로 어렸을 때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고 뮌헨에 이적할 수 있던 비결이 되기도 했지만 수비력이 별로이고 피지컬이 약해 유망주 시절만큼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압박강도나 피지컬이 약한 편인 J리그에서는 메시놀이를 하지만 뮌헨에서 실패. 호펜하임에서도 초반에 에이스놀이 하다가 후반들어 전력외.[3] 선수층이 얕은 아우크스부르크에서도 전력외 취급을 받을만큼 피지컬에서 버텨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실제 경기를 보면 상당히 빠르지만 압박이 들어오면 허둥대고 볼터치는 부드럽지만 몸싸움에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4] 훌륭한 재능이지만 가는 곳마다 전력외 취급을 당하는 이유.
5. 이모저모
- 어린 나이에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한 만큼 일본 축구사의 역대급 선수로 성장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고, 따라서 프리시즌부터 뮌헨의 경기를 밤을 새서 챙겨보는 일본 축구팬들이 굉장히 많았다. 여기서 재밌는 일화가 있다. 뮌헨이 프리시즌 친선 컵대회인 리가토탈에서 함부르크 SV와 맞붙게 되자 일본 축구팬들은 '우사미가 선발 출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밤을 새서 경기를 시청하였으나, 기대와는 달리 우사미는 경기에 나오지도 못하고 뜬금없이 어느 한국인 유망주가 뮌헨을 상대로 2골을 작렬하며 함부르크를 승리로 이끌고 스타덤에 오르는 참사(...)를 목도하고 만다.
- 교토 출신으로 말투에 간사이 지역 사투리의 억양이 배어있고.[5] 어려서부터 감바 오사카 서포터 였다고 한다.
- 동년배인 시바사키 가쿠와는 각 연령별 대표팀부터 성인 대표팀까지 줄곧 함께 뛰어온 사이다.
- 부인이 여배우 다이나카 란(田井中蘭)인데(어릴적부터 타고난 자연미인이다!) 중학교 때 행사에서 서로 처음 만나 관계를 이어가다가 2011년 바이에른 뮌헨 이적과 동시에 만 19세의 나이로 결혼을 발표했다. 2015년 12월 장녀 스미레가, 2018년 차녀 사쿠라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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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감바 시절,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패널티킥을 연거푸 실축한 적이 있다. 4월 19일에 열린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조별리그 홈경기였는데, 염기훈의 반칙으로 얻어낸 패널티킥이 노동건 골키퍼에게 막혔으나, 이 때 노동건이 공을 차기 전에 앞으로 나오는 바람에 다시 차라는 주심의 지시에 다시 한번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얻어낸 두번째 기회에서 보다 위력이 약한 슈팅을 날려 노동건에게 가볍게 막히는 굴욕을 받았다. 본인에게는 흑역사.
6. 같이 보기
[1] 일본 축구 협회 공식 프로필[2] 경기 출전하면 패스나 크로스는 나쁜편이 아닌데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맞지 많아 약속된 플레이에서 엇박자를 내는 경우가 많다. 아사노 타쿠마와 대조되는 부분인데, 우사미의 경우, 과거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던 만큼 독일 리그에 대한 적응이 있음에도 팀에 녹아들지 못하는데 반해, 아사노는 팀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보장받고 나름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감독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꾸준히 기용되지 못하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3] 다만 우사미가 후반기에 벤치만 달군 이유는 피지컬 문제보다도 초반에 그를 중용하던 마르쿠스 바벨 감독이 중간에 짤리고 새로 온 감독이 처음부터 우사미를 잘 기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4] 우사미가 몸싸움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건 어디까지나 분데스리가에서 그런 거고 J리그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는 아챔에서 K리그 수비수들과도 제법 대등하게 몸싸움을 했었다.[5] 시바사키와 우사미의 더블 인터뷰에서 동년배인 시바사키 가쿠는 우사미의 첫 인상을 '역시 관서인이라 말을 잘하는 구나' 라고 말했으며, 우사미는 시바사키에 대해 '머리가 좋고 과묵한 편이지만 경기 안에서는 그의 생각을 느낄수 있었다' 라고 언급한 바 있다. 참고로 둘은 일본의 92년생 '플래티넘 세대'의 대표주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