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정치인)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시민운동가, 정치인이다. 대구경북에 희귀한 원조 친노 정치인으로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지냈다.
2. 생애
1947년 경상북도 대구부(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대구서부초등학교, 대구중학교, 계성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경북대학교를 졸업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7년 6개월 동안 복역하였다. 이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중앙위원,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겨레민주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수성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민주정의당 이치호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민주자유당 유수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박준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주성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청와대 비서실로 들어가서, 정무특보를 지냈고, 민정수석으로 재부임한 문재인의 뒤를 이어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이 워낙 신뢰해서 '왕수석' 문재인과 더불어 '왕특보' 이강철로 불렸다.
2005년말에 박창달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치러진 2005년 재보궐선거(10.26)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유승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으며[1] 다시 정권이 끝나는 날까지 정무특보직을 수행했다.
2005년 재보궐선거 이후로는 공직선거 출마를 포기했는데 자신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선거에서 패한 것에 깊이 상심한 것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다. 2006년에 횟집을 개업했는데 이게 또 통의동(청와대 옆)이어서 말이 많았다.# 한나라당에서도 횟집정치하냐고 떠들 정도. 이후 강남에도 2호점을 내며 잘나갔으나 정권이 바뀐 이후로는 장사가 안되었다고. 본인 말로는 횟집에서 10만원 이상 긁은 사람들을 다 검찰에서 조사했다고 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이후 KTF에서의 뇌물수수 의혹과, 전 농협중앙회 회장 정대근에게 천만원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되어 검찰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구형받았으나, 이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 무렵 민청학련 사건이 무죄판결 되었다.
2012년 대선 때는 김두관 진영에서 활동했으나 이후 문재인으로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가 정해지자, 문재인 후보를 도왔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이후 2018년 1월에 KT 사외이사로 선임되었다.
민주당계 정치인 중 김부겸보다 훨씬 앞선 대구바라기지만 결국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쉬운 점은 이런저런 이유로 대구 내에서도 지역구를 이곳저곳 옮겨다닌 점. 본래 수성구에서 정치를 시작했다가 중구로 옮겼는데, 중구가 그만 남구와 선거구가 합쳐져버렸고, 무소속으로 남구청장 재선을 한 이재용이 열린우리당에 합류하면서, 해당 선거구를 이재용에게 양보해야 했기에 동구로 옮겨야 했다.
3. 여담
- 유수호, 유승민 부자와 모두 선거에서 맞붙어 패한 기록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