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

 




'''Central Intelligence Agency
중앙정보국'''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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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문장'''
'''창설'''
1947년 9월 18일
'''국가'''
[image] 미국
'''본부'''
미국 버지니아 주 랭글리#s-2.1
'''직원 수'''
21,575명 (예상)
'''모토'''
One Agency. One Community
한 가족, 한 공동체
'''웹사이트'''

1. 개요
2. 조직과 업무
2.1. 주요 조직 편성
2.2. 임무
2.3. 역대 국장
3. 역사
3.1. 냉전
3.1.1. 라틴아메리카
3.1.1.1. 과테말라
3.1.1.2. 쿠바
3.1.1.3. 니카라과
3.1.1.4. 칠레
3.1.2. 중동
3.1.2.1. 이란
3.1.2.2. 이라크
3.1.3. 아프리카
3.1.4. 아시아
3.1.4.1. 베트남
3.1.4.2. 대한민국
3.1.4.2.1. 한국미션센터
3.1.4.3. 중국
3.1.5. 동유럽
4. 문제점
4.1. 인권 유린/고문
4.2. 미국 정보기관간 암투와 견제
4.3. 삽질의 역사
4.4. 외국어 능력의 부재
5. 등장 매체
6. 기타
6.1. 추모의 벽
7. 관련 문서


1. 개요


국가의 사업, 정보의 중심(The Work of a Nation. The Center of Intelligence)

미국정보기관. 특정 부처에 속하지 않은 독립 정보기관으로 본부는 워싱턴 D.C. 인근에 위치한 버지니아 주 랭글리#s-2.1에 있다.[1]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의 승리를 위해 설립된 전략사무국(OSS)의 후신으로 1947년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설립되었다. 현재 전세계에 걸쳐서 2만여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며 상당수 직원의 신분은 외부에는 숨겨져있다. 또한 정보기관이기에 예산규모도 기밀사안으로 대략적인 규모만 외부에 알려져 있다.
버지니아에 위치한 본부 청사는 1999년부터 조지 부시 정보센터(George Bush Center for Intelligence)로 명명되었다. 지난 1970년대 국장을 역임하고, 이후 41대 미국 대통령을 역임한 조지 허버트 부시를 기념하는 의미다.
비공식 모토는 요한 복음서 8장 32절 구절인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And ye sha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로, 정교분리 원칙으로 인해 허용되지 않아 공식 모토는 아니다.

2. 조직과 업무



2.1. 주요 조직 편성


  • 사무국(Executive Office)
최고위 3개 관료들이 속해 있는 부서로 모든 CIA의 수뇌부 역할을 한다. 미군과 CIA의 합작을 주도하는 것도 주요 임무 중 하나이다.
  • CIA 국장(The Director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D/CIA)
  • CIA 부국장(The Deputy Director, DD/CIA)
  • CIA 수석작전요원(The Chief Operating Officer, COO/CIA)
  • 디지털 기술 혁신국(The Directorate of Digital Innovation)
가장 최근에 생긴 조직으로 2015년 5월경까지는 존재 사항 자체가 비밀이었다. CIA가 임무 수행에 있어서 더욱 효율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혁신을 일으키고 그 속도를 가속시키는 부서이다. CIA 내에서 사이버전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총괄한다.
  • 분석국(The Directorate of Analysis)
정보국(Directorate of Intelligence)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미국의 정책 결정 방향과 국가 안보에 있어서 필요한 정보를 분석, 연구한다.
  • 지역 그룹
    • 중동, 북아프리카 그룹 (MENA)
    • 남아시아 그룹 (OSA)
    • 러시아 유럽 그룹 (OREA)
    • 동아시아, 태평양,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룹 (APLAA)
  • 초국가적 그룹
    • 테러 분석 사무소(The Office of Terrorism Analysis)
ODNI와 국가대테러센터(NCTC)를 지원한다.
  • 초국가적 이슈 사무소(The Office of Transnational Issues)
미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긴급한 위협을 다룬다. 고위 정책결정자나 법집행기관을 지원한다.
  • CIA 범죄 마약 담당센터(The CIA Crime and Narcotics Center)
CIA 내에서 분석한 관련 정보를 FBIDEA, ATF와 같은 국내법집행기관에 보고서로 보낸다.
  • 무기 정보, 핵 확산 방지, 무기 통제 센터(The Weapons Intelligence, Nonproliferation, and Arms Control Center)
이름 그대로의 역할을 수행한다. 미 국방부 산하의 국방 위협 축소기관(DTRA)과 협업한다.
  • 방첩 분석센터(The Counterintelligence Center Analysis Group)
외국 정보 기관의 동향 정보를 분석한다. FBI 내의 방첩 부서와 협업을 담당한다.
  • 정보 작전 분석센터(The Information Operations Center Analysis Group)
미국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위협을 다룬다. DNI를 지원한다. 미 국방부, 미 국토안보부와 협업한다.
  • 공공 부문, 지원 담당 부서
    • 전략 수집 분석 사무소(The Office of Collection Strategies and Analysis)
    • 정책 지원 사무소(The Office of Policy Support )
  • 국가 비밀 공작국(National Clandestine Service)
작전국(The Directorate of Operations), 계획국(Directorate of Plans)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기밀 유지를 위해서 명칭은 수시로 변경 된다. 공작국을 담당하는 부국장 두 명의 신분도 다른 부서와 달리 공개하지 않는다. 이름 그대로 CIA 내에서의 모든 위험한 작전, 즉 흑색 작전을 총괄하는 부서이다. 물론 필요에 따라 백색 요원도 투입한다. CIA 내에서 가장 적은 규모이며 산하에 각종 군사 활동, 정치 공작, 비밀 작전을 담당하는 특수 활동 조직인 CIA SAC를 거느리고 있다.
  • CIA 특수활동 부서(CIA Special Activities Center)
  •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부서(Counterproliferation Division)
  • 대테러 센터(Counterterrorism Center)
  • 방첩 센터(Counterintelligence Center)
  • 기술지원 부서(Technology Support Divisions)
  • 지역 · 다국적 문제 담당 부서 (Regional & Transnational Issues Divisions)
  • 집단인간정보 조정 센터(Community HUMINT Coordination Center)
  • 지원국(The Directorate of Support): 타 부서의 직원들, 주요 고위 관료들과 CIA의 여러 시설들을 관리,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다.
  • 보안 사무소(The Office of Security)
  • 통신 사무소(The Office of Communications)
  • 기술 정보 사무소(The Office of Information Technology)
  • 과학 기술국(The Directorate of Science and Technology)
기술적 의미에서의 모든 정보를 수집 분석하며 CIA의 정보 수집 능력 향상을 위한 기술 시스템 개발 또한 담당한다. 화학, 원자력, 생물 관련 기술 또한 연구한다.
기타 조직들
  • 출판물 관련 부서(The office of General Publications)
  • 의회(General Counsel)
  • 감사, 인사 총괄 부서(The office of Inspector General)
  • 대외 공공사무 부서(The office of Public Affairs)
  • 인재 발굴 부서(Talent Acquisition): 신입 채용, 특채를 총괄
CIA의 최고책임자인 국장(Director)는 CIA를 대표하는 조직 수장으로 국가정보장실의 지휘를 받는다.
2019년 9월 현재 수뇌부는 다음과 같다.
  • 국장 / Director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D/CIA) - 지나 해스펠(Gina Haspel)
  • 부국장 / Deputy Director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DD/CIA) - 버건 F. 비숍(Vaughn F. Bishop)
  • 수석작전요원 / Chief Operating Officer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COO) - 앤드류 (앤디) 마크리디스(Andrew (Andy) Makridis)
  • 부국장(분석) / Deputy Director of CIA for Analysis
  • 부국장(작전) / Deputy Director of CIA for Operations
  • 부국장(작전-집단 휴민트) /Deputy Director of the NCS for Community HUMINT
  • 부국장(과학기술) / Deputy Director of CIA for Science & Technology
  • 부국장(지원) / Deputy Director of CIA for Support
  • 부국장(디지털혁신) / Deputy Director of CIA for Digital Innovation
  • 부국장보(양성) / Associate Director of CIA for Talent
  • 정보연구센터장 / Director of the Center for the Study of Intelligence
  • 공보실장 / Director of Public Affairs - 브리트니 브라멜(Brittany Bramell)
  • 법무실장 / General Counsel - 코트니 시몬스 엘우드(Courtney Simmons Elwood)
  • 감사실장 / Inspector General - 크리스토퍼 R. 샤플리(Christopher R. Sharpley)
  • 인재발굴부서장 / the Chief of Talent Acquisition - 셰론다 도르시(Sheronda Dorsey)

2.2. 임무


  • 미연방의 안보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종합평가하고 필요한 대상에게 정보를 배포하며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와 관련된 기타 역할과 임무를 수행한다.
  • 정보공동체의 정보분석 활동에 참여하거나 공개첩보자료를 관리하고 각종 국가안보 사안들에 대한 종합적 분석결과를 제공하며 다른 정보기관과 협력한다.
  • 인적 자원 등의 수단을 이용한 정보수집 활동을 하고 해외 정보활동을 하도록 권한이 부여된 미국 정부기관 및 관련 정보기구들과 협의해 인간정보 수집활동을 조정하고 종합지휘한다. 단, 경찰통솔, 법정소환, 법집행 및 국내 치안유지 권한은 없다.
  • 비확산, 테러, 방첩, 국제조직범죄, 마약유통, 환경, 군축 등 주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특수종합센터들을 두고 있다.

2.3. 역대 국장


  • 시드니 사워즈 (1946)
  • 호이트 반덴버그 (1946~1947)
  • 로스코 H. 힐렌코터 (1947~1950)
  • 월터 베델 스미스 (1950~1953)
  • 앨런 W. 덜레스 (1953~1961)
  • 존 A. 맥콘 (1961~1965)
  • 윌리엄 라본 (1965~1966)
  • 리처드 헬름스 (1966~1973)
  • 제임스 R. 슐레진저 (1973)
  • 버논 A. 월터스 직무대행 (1973)
  • 윌리엄 콜비 (1973~1976)
  •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1976~1977)
  • 헨리 노키 직무대행 (1977)
  • 스탠스필드 터너 (1977~1981)
  • 윌리엄 J. 케이시 (1981~1986)
  • 로버트 게이츠 (1986~1987(직무대행)/1991~1993)
  • 윌리엄 H. 웹스터 (1987~1991)
  • 리처드 제임스 커 직무대행 (1991)
  • 윌리엄 O. 스투드먼 직무대행 (1993/1995)
  • R. 제임스 울시 주니어 (1993~1995)
  • 존 M. 도이치 (1995~1996)
  • 조지 테넷 (1996~2004)
  • 존 E. 맥롤린 직무대행 (2004)
  • 포터 고스 (2004~2006)
  • 마이클 헤이든 (2006~2009)
  • 레온 파네타 (2009~2011)
  • 마이클 모렐 직무대행 (2011/2012~2013)
  • 데이빗 패트레이어스 (2011~2012)
  • 존 브레넌 (2013~2017)
  • 메로에 박 직무대행 (2017)
  • 마이크 폼페이오 (2017~2018)
  • 지나 해스펠 (2018~2021)
  • 데이비드 코언 직무대행 (2021~ )
  • 윌리엄 번스 (미정)

3.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전략사무국(OSS)에서 출발하였다. 비밀공작이나 스파이 정보기관으로 생각이 되지만 실제로는 정보수집, 통계, 분석 업무에 매우 능한 조직이고 그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60년대에는 자체 항공대를 운용하면서[2] 공산권 영토를 횡단비행하며 각종 사진과 지형 정보를 수집했고 U-2SR-71 같은 정찰용 항공기를 개발하며 최초로 인공위성을 이용해 정보를 모은 단체이기도 하다. 이후 인공위성에 관련된 주 업무는 대부분 NASA와 미 공군으로 넘어갔지만 지금도 CIA는 인공위성, 군사용 무인항공기 사업 등에서 미군 못지않은 주요 고객이다.

3.1. 냉전


미국 정부는 나날이 생기는 공산정부를 억제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그러나 전면적인 침공을 통한 정권교체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상당히 무리가 가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비밀 작전을 통한 정권교체를 위해 CIA에게 많은 법적 권한을 부여한다.
CIA는 전 세계에서 작전을 하고 있었다. 공산국가에서는 반체제인사를 지원하거나 피지배민족(일례로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다른곳에서는 공산정권의 창출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중 많은 성과를 올린 곳은 남아메리카와 중동이였다.

3.1.1. 라틴아메리카


CIA는 세계 여러곳에서 다양한 공작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남미 지부는 그 중에서도 한층 '더러운' 공작을 벌인 것로 알려져 있고 아래에 언급되지는 않지만 여러 군부독재 정권을 지원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엄연히 민주적인 선거로 집권한 아옌데 정권을 박살내고 피노체트 독재정권이 들어서게 한 일이 알려져 있지만 그 이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볼리비아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과테말라의 독재정권을 반공을 내세운다면서 그 정권이 좀체 민주적인 면이 눈꼽만큼 없었음에도 대대적으로 지원해주었고 좌파단체뿐만 아니라 중도적인 민주파 인사를 깔아뭉개는 짓을 해도 봐주었기 때문에 중남미에서는 미국이 민주주의의 수호를 해주는 세계의 경찰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특히 이중에서 아르헨티나는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는 악명높은 반체제인사 탄압을 겪었고 선진국이라고 불리던 예전의 영광으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정치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제통화기금이 그 계보를 이어받으면서 빛이 바래기는 한다.

3.1.1.1. 과테말라

1951년 과테말라의 대통령이었던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은 대지주와 미국기업이 소유하였던 토지들을 국유화하여 빈민들에게 분배하고, 그 외에 바나나 산업같은 외국기업이 침탈하고 있었던 산업들을 국유화하였다.
처음에 미국 정부는 아르벤스가 과격한 사회주의자는 아니었기에 방관하였으나 미국 기업의 이권을 뺏기자 이는 결과적으로 과테말라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소련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생각했다.[3] 이에 아이젠하워 정부는 1953년 8월 과테말라 쿠데타 지원을 승인하게 된다.
CIA는 1954년 과테말라의 우익세력을 훈련시켜 아르벤즈 정부를 전복시킨 후, 육군 대령이었던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Carlos Castillo Armas)를 앉힌다.

3.1.1.2. 쿠바

쿠바는 미국의 앞마당에 있었던 만큼 미국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쿠바의 공산정권을 전복시키려고 했다. 피그스만 침공 작전이 실패한 이후에도, 몽구스 작전이나 노스우즈 작전을 통해 쿠바의 공산정권을 전복하려는 작전은 많이 있었다.
이 경향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심화되었다. 쿠바가 미국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존재임을 똑똑히 확인하였고, 미국은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내쫒기 위해 많은 계획을 짰지만, 피그스만 침공 이후 전면적인 작전은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침공을 했다간 제2의 미사일 위기를 불러올 수 있었고, 미국은 피그스만 침공이 자신들의 짓임이 만천하에 알려지자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반체제 인사들을 지원하기 위한 방법책을 모색했다. 거기다, 당시 이들은 피그스만 침공 실패의 원인을 작전 자체의 허술함이 아닌 '내부의 적'으로만 보고 내부 스파이 색출에 골몰한 나머지 팀킬하던 중이기도 했다.[4]

3.1.1.3. 니카라과

1980년대 레이건 정부가 집권한 뒤에 CIA는 니카라과에 들어선 좌파정부인[5] 산디니스타 정권을 뒤집기 위해 다양한 공작활동을 펼친다. 항구에 기뢰를 뿌려 수송함을 격침시키고 우익 성향인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였다. 콘트라 반군은 온두라스에 기지를 두고 CIA로부터 훈련을 받고 무기를 지원받고 있었다. 콘트라 반군은 그 잔악함이 극에 달해 일부러 병원을 비롯한 민간시설을 테러하는 등 욕도 많이 들었고 그 와중에 이란-콘트라 사건 같은 일이 발생하기도 해서 남미에서 미국은 나쁜 국가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6] 더군다나 니카라과에서는 1984년에 상당수 야당의 불참을 중용해서 불참시켜났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웃 엘살바도르나 온두라스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선거가 치러졌고 당시 니카라과 최고지도자였던 다니엘 오르테가가 압승했다지만 야당도 의회 의석의 1/3로 개헌저지선을 획득하여 견제가 가능한 나름대로 납득할만한 선거결과가 나왔음에도 여전히 불공정한 선거 운운거렸으니 도대체 까이지 않을래야 까이지 않을수가 없기는 했다. 더군다나 당시의 니카라과는 공산주의의 전형과는 거의 반대의 국가였으니 할말이 없던 것이다.[7] 사실 이 정책은 미국내에서도 엄청나게 까이기는 마찬가지라서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타임즈에서 까기도 했고, 미국 하원에서도 콘트라에 대해서 제동을 거는[8]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콘트라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산디니스타 정권의 실책이 없냐면 그건 아니었는데 경제제재로 날이 갈수록 경제가 추락하자 다급해진 산디니스타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야당 지지자들을 잡아들이고 언론검열도 저질렀지만 결국 2500%의 인플레이션을 찍으면서 민심을 잃어버렸고 어쨌든 CIA는 그럼에도 산디니스타가 여전히 지지를 잃지않고 있다고 오판하면서 콘트라 반군을 이용해 무력으로 정권전복을 하려고 했으나 1990년 선거에서 산디니스타가 40%의 득표율을 얻는데 그치고 중도우파 정권이 집권하면서 계획은 중지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16년간 니카라과는 우파정당이 정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2006년 대선에서 좌파열풍을 타고 1980년대 당시의 니카라과의 대통령인 다니엘 오르테가가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복귀하였고 선거에서 압승하는 식으로 집권중이다.
1986년 니카라과가 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국제사법재판소는 미국이 니카라과에 대한 주권침해에 대한 보상으로 120억 달러를 지불해야한다고 판결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부정하고 소련이 산디니스타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군인들을 훈련시켰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3.1.1.4. 칠레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이 된다. 사회주의 성향인 아옌데는 구리 광산과 은행을 국유화하고 대규모 토지개혁을 밀어붙였다. 또한 이전 정부가 다국적 기업에 주던 여러가지 특혜를 더이상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미국과의 관계마찰을 유발시켰다.
새로운 사회주의 정권 출현에 당황한 미국은 칠레와 소련이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는것을 두려워하여[9] 1970년 'Project FUBELT'를 발동시키고 정부전복을 승인한다.
아옌데가 당시 무리한 개혁으로 인해 처한 경제위기를 더욱 악화시킴으로써 쿠데타가 발생할 배경을 조성하고, 온갖 사보타주 공작과 선동을 통해 아옌데 정부에 대한 반감을 끌어올렸다. 이후 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위시로 한 군부가 칠레를 장악하고 아옌데는 자살한다. 이후 피노체트 군부는 약 17년동안 잔인한 독재 정치를 펼친다.

3.1.2. 중동


중동의 경우에는 남미와는 다른 점이 있다. 남아메리카의 경우에는 CIA가 쿠데타를 각본부터 실행까지 완전히 주도하였다면 중동과 아프리카의 경우는 쿠데타를 묵인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정도의 조연역할을 했다. 사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의 뒷공작은 KGB가 더 심각하여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소련이 영 안좋은 취급을 받는다.

3.1.2.1. 이란

이란은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란은 그렇기에 소련과 미국의 암투의 장이 되어왔다.
1951년 민족주의 성향의 모하메드 모사데그(Mohammad Mosaddegh)가 총리로 당선된다. 이란의 석유산업은 영국이 1900년대 초에 개발하여 영국 기업인 앵글로-이란 석유회사(AIOC, Anglo-Iranian Oil Company,)가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었는데, 모사데그는 이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국영기업인 NIOC(National Iranian Oil Company)를 만들어 대항하였다. 영국은 석유산업에 이권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미국은 모사데그가 소련과 가까이 지낼 것을 두려워해(미국은 소련에 대해서 광적인 집착을 하였고 반자본주의적 경제정책만 펼쳐도 공산주의라 간주하고 몰아낸 경우가 적지 않다. 모사데그도 민족주의자였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쫒겨났다.) MI6와 합작하여 모사데그를 몰아냈고 팔레비 왕조는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전제군주정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 쿠데타 이후로 이란의 반서구감정은 극에 이르렀고 결국 1979년 이슬람 혁명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중요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CIA, 미 국무부, 국방부 할 것 없이 왕정 시절 이란 현지에 정보망이 없었다. 이 때문에 팔레비 정권 비밀경찰의 정보 보고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래서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직전까지도 '이란의 팔레비 정권 안정적. 체제 변화 가능성 전무' 라는 정보보고를 상부에 제출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도 상황은 비슷해서 팔레비 정권에 대한 이란인들의 반감, 현지 상황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팔레비만 옹호하다가 극단적인 반미 정권의 성립을 초래하였다.
막상 민중혁명이 발발하자 군대에서 갓 제대해서 CIA 에 들어온지 1년도 안되는 '''현지어도 못하는 요원'''에게 '''이란 내부의 사정파악과 가급적이면 이란을 친미세력으로 묶어두라는 임무'''를 줘서 파견했다가 그 요원이 붙잡혀서 이란인들을 극도로 분노케 했다. 이것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CIA 국장을 지냈던 스탠스필드 터너(조지 부시 후임)의 책임이 크다. 터너 국장은 인간정보(HUMINT)에서 신호정보(SIGINT)로 CIA의 포커스를 전환하면서 무려 '''800명'''이나 되는 작전관들을 짤라버렸다. 이 사건은 핼러윈 대학살이라고 불린다. 이 사건 때는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초짜에게 그런 큰 임무를 부여해서 보냈냐'며 이란인들이 길길이 날뛰었고 이 때문에 혁명이 조금 더 거칠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 이 사건은 발생 직전 이란 주재 CIA 주요 요원들의 신분이 모조리 노출되고 덤으로 행정부가 바뀌면서 실시한 구세대 인원 교체계획 실행이 겹쳐 물갈이를 서두른 탓에 벌어진 사건이기도 하긴 했다. 그러나 삽질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3.1.2.2. 이라크

이라크의 경우는 논란이 있다. CIA가 이라크에서 정권전복을 시도했다는 증거가 부족해서, CIA가 쿠데타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많다. 애초부터 나세르가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기도 하거니와, 범아랍주의는 미국의 아랍 내 영향력을 감소시켰기에 바트당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우선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아래와 같으니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길 바란다.
1958년 7월, 육군 장군이었던 압드 알카림 콰심(Abd al-Karim Qasim)이 쿠데타를 일으켜 이라크 군주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선포한 뒤 본인은 총리에 오른다. 초기엔 쿠르드족의 자치를 인정하고 교육을 진흥하고, 여성인권을 확대하는 등 개혁정책을 펼쳐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영국의 석유기업을 국유화하고 영미와의 관계를 멀리했으며, 소련과 친하게 지내 서방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콰심정권의 위기는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아랍끼리 뭉치자'는 이름 아래 만든 아랍연방공화국에 가입하길 거부한 데서 시작했고, 이는 범아랍민족주의자인 바트당(Ba'ath Party)의 분노를 일으켰다. 바트당과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공산당의 충돌은 심각해져 내전까지 터지게 되는데, 결국 콰심정권은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1963년 CIA의 협력 아래 이루어진 바트당의 쿠데타에 실각하게 된다.
1966년 이라크의 지도자였던 살람 아리프(Salam Arif)가 죽고, 그의 동생인 압둘 라흐만 아리프(Abdul Rahman Arif)가 정권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라흐만 아리프는 반(反)바트당 주의자였기 때문에 바트당은 실각하고, 다시 이라크는 소련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바트당은 석유와 황 개발권을 미국에게 넘겨주는 대신 쿠데타를 도와주고 묵인해줄 것을 CIA에 요청하였으며, CIA는 받아들인다.
1968년 바트당 지지자인 아흐메드 하산 알바크르(Ahmed Hassan Al-Bakr)(알 바크르는 미국에 적대적이었고 CIA가 알바크르를 실각하게 하려고 했다는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1968년에 미국이 이라크의 쿠데타를 지원했다는것에는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고 이는 사담 후세인이 권력에 다가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3.1.3. 아프리카


콩고 내전때 프랑스-벨기에와 함께 여러 방면으로 개입했다. 아프리카에서 소련-중국의 친공 세력과 미국-서방의 반공 세력의 대리 전쟁은 여러 내전과 분쟁을 통해서 나타났다.
냉전때 뿌려진 갈등의 씨앗은 냉전이 끝나고 여러 군벌과 테러세력으로 남아 현재도 아프리카의 불안요소로 남아있다.

3.1.4. 아시아



3.1.4.1. 베트남

냉전기 베트남 공화국에 꽤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베트남국 왕정 폐지 국민투표[10]에도 CIA가 관여했다고 한다. 대외적으로는 미 정보국이 활동하는 모양새였지만, 그늘에서 분주하게 활동하며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베트남의 흑막으로 존재했다. 현재 미 정보국 건물은 베트남 전쟁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 건물에 CIA도 일부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미군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것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굴욕.

3.1.4.2. 대한민국

한국은 냉전 시기에 최전선이었다. CIA가 굉장히 활발히 활동하는 곳이라고 한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이들의 활동이 거의 밝혀지지 않았으나 1986년 월간조선 2월호에 조갑제 기자가 한국내 미 CIA의 내막이라는 기사를 써서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리서치 유닛(Research Unit)이라는 이름의 CIA 한국거점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활동을 하며 한국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분석했다. 문제는 당시 조갑제 기자가 '''CIA 사무실들의 전화번호까지 밝혀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조갑제 기자는 안기부에 끌려가게 된다.[11]
박정희5.16 군사정변이 미국(CIA)의 관여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또다른 추측성 기사. 5.16쿠데타, CIA의 '가장 성공적인' 해외 공작?
1953년부터 1961년까지 중앙정보국장을 지낸 앨런 덜레스가 1964년 5월 BBC와 인터뷰하면서 자신이 중앙정보국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성공적인 해외 비밀공작'으로 5.16 쿠데타를 꼽았다고...
반면에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김대중을 구출한 곳도 CIA였다. 납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CIA측에서 김대중의 소재를 즉시 파악하고 박정희에게 절대로 김대중을 죽여선 안된다는 압박을 준 것. 대한민국의 핵무장을 파악해서 방해하고 압박을 주거나 청와대 도청사건을 일으키는등 박정희 정부와 협력하면서도 갈등을 겪는 관계였다. 김종필의 회고에 따르면 한국인 내부의 자발적 스파이가 CIA 에 정보를 물어다주었다라고 하는걸 보면 한국인 협력자도 상당한듯 하다.
현재도 미국 주도의 대북 공작과 한국, 미국 양국 정보 교환에 관여하는 곳으로 파악되고 있다. 애초에 미군이 있는 곳에 CIA가 없을리가 만무하다. 한동안 국경에서 직접 북한군 라디오 감청까지 했다는 카더라도 존재한다.[12] 분계선 라디오 도청으로 알아내는건 병력 이동을 파악하는 수준인데 지금은 위성과 레이더로 대부분 보이기 때문에 하지 않는듯 하다.
2010년, 중국 소재의 CIA 네트워크를 중국 정부가 일망타진함에 따라 대중/대북 공작을 위해 한국에 다시 집결했을 수도 있다. 최소한 대북 정보활동에 한해서는 일단 지리적으로 최적의 요충지이고 동맹국에 공식적으로 비공식적으로 협조를 구하기도 쉬웠을것이다.

3.1.4.2.1. 한국미션센터

2017년 5월 10일 CIA는 북한의 핵 및 탄도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 미션 센터를 설립했다.
새 미션 센터는 기관의 숙련된 사무관들을 모아 북한에 맞서기 위해 그들의 전문 지식과 창의성을 제공하기 위해 한 기관으로 통합한 것이다.
베터랑 CIA 운영 책임자가 한국의 새 부국장으로 선출되었다. 새 미션 센터는 정보커뮤니티 및 전체 미국 국가 안보 커뮤니티와 긴밀히 협력 할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은 “한국 미션 센터를 설립하면 미국과 북한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위협에 대항하여 CIA를 통합 지시할 수 있으며 또한 진화하는 국가 안보 문제에 가져 오는 CIA의 역동성과 민첩성을 반영합니다."라 하였다.
출처

3.1.4.3. 중국

중국에서 CIA는 역대 최악의 굴욕을 당하면서 상술했다시피 첩보망이 한 차례 완벽하게 와해당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CIA는 중국 내에서 5명의 미국인 요원 밑으로 주로 현지 인원들을 포섭하여 첩보 네트워크를 구축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2010년에서 2013년까지 '''중국 내 모든 요원에 대한 명단이 유출돼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30여 명이 붙잡혀 처형당하거나 실종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13] 이 사건은 미국 정부조차도 모르고 있었다가 2011년, 겨우 중국에서 탈출한 극소수의 생존자들을 FBI가 심문하는 과정에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미국 정부의 주도로 CIA와 FBI가 합동 태스크포스를 꾸려 진상조사를 시작하자 이에 대응해 중국과 러시아가 합동으로 방첩작전을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 쪽의 CIA 요원들까지 상당수 실종되었다고 한다.
4명의 전직 CIA 요원들이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한 증언에 따르면 중국은 체포된 인원들을 친구나 가족이 보는 앞에서 총살하거나 죽을 때까지 고문하는 등의 방식으로 끔찍한 최후를 맞이 하게 했다고 한다.
미국 측은 이 사건의 용의자로 CIA 베이징 지부 요원 관리를 총괄하다가 퇴직한 리전청(李振成)으로 특정하고 그를 체포했으나 이후에도 계속 요원들이 살해 혹은 실종되자 2013년에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시켰다. 그러나 그에 대한 감시와 조사는 계속 되었고 결국 2018년, FBI는 리전청을 중국 당국과 접촉하여 중국 지부의 전체 명단을 수억 원을 받고 팔아 넘겼다는 혐의로 다시 체포하고 법원에 기소했다. 하지만 기밀 문서인 CIA 중국 조직 명단 불법 소지 혐의는 인정되었으나 그것을 넘겼다는 것에 대해서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반역죄로는 처벌이 불가능했고, 징역 19년형을 선고받게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CIA 내부에서는 뇌물에 의한 배신 이외에도 허술한 CIA 중국 지부의 공작원 관리 시스템의 해킹 가능성도 의심하고 있다.#
위 사건 이후, 2019년 초 미국 CIA는 중국 활동 거점을 중국 본토가 아니라 홍콩으로 옮겼다. 마침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타이밍 좋게 터진 덕분에 CIA는 홍콩 민주파, 본토파 인사와 연계하여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2019년 8월 신규 착임한 주 홍콩 미국 총영사가 CIA 출신 인사이다. 홍콩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홍콩 주재 MI6하고도 협력하는 듯.

3.1.5. 동유럽



3.1.5.1. 소련

냉전 시기에 소련의 국방비를 가늠하기 위해 입수 가능한 모든 소련군 사진과 자료를 모은 뒤 보병의 총검과 전투화부터 전차, 전술기, 잠수함까지 하나 하나 세어가며 확인 가능한 모든 군사장비에 전부 예상 가격을 매기는 식으로 소련의 국방비를 추산하는 프로젝트를 몇 년에 걸쳐 진행한 적도 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끝나자 이번에는 WTO군 전체를 대상으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미국과 소련 단독비교 시에는 소련이 미국보다 살짝 더 많은 국방비를 쓰고 있으나 NATO와 WTO를 전체 단위로 비교 할 경우 NATO가 WTO를 압도하는 국방비를 집행하고 있음을 결론 내기도 했다. 참고로 그로부터 2~3년 뒤에 소련이 붕괴하며 냉전이 끝났다.
1960년대 티타늄은 소련에서 생산이 가능했다. SR-71 제작 당시 300도까지 올라가는 고열을 견디기 위해서는 항공기에 티타늄 사용이 반드시 필요했다. CIA는 골프채 위장회사를 설립해 소련에서 티타늄을 수입한 뒤 군사용으로 이용했다.
소련의 붕괴에도 이런저런 역할을 했다. 소련의 수입원이 기름이라는 걸 알아내고 사우디아라비아와 협상해서 석유생산을 급증시켰고 소련은 경제난을 겪었다.
1982년 6월에는 시베리아 가스 파이프라인을 폭파시켰는데 이것이 우주에서도 관측 가능할 정도의 대폭발이었다고 한다. 특수공작원이 가서 폭탄을 설치하는 등의 상식적인 수법이 아니었다. 소련 요원은 외국 회사에서 가스 파이프라인 시스템에 대한 자동제어 소프트웨어를 훔쳤고 그 프로그램이 오작동했을 뿐이었다. 1982년 CIA는 소련이 자신들의 가스 파이프라인 시스템이 너무 낡았다고 보아 서방에서 신기술을 훔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정보를 얻어냈다. 처음에는 요원을 잡는 걸로 끝낼까 하다가, CIA에서는 훔쳐갈 소프트웨어가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정상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작동하면 펌프, 밸브, 터빈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해서 압력을 상승시키도록 짜놓은 부비트랩 프로그램으로 몰래 교체하였다. 천연가스 수출이 당시 소련 국가수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결과가 치명적이었고 배관 재설치에는 10년이 넘게 걸렸다.[14] 그리고 이것이 CIA의 공작인지 단순 버그인지 소련에서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관련 기술을 자체 제작해야 했고 모자란 기술로 인해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의 진상은 2007년 공개된 CIA 비밀문서로 자신들의 소행임을 공개하였다.
1982~1985년 즈음에는 미국에서 사 온 더치 와이프에 에어백처럼 공기를 집어넣는 기술을 추가한 다음 중절모를 씌운 정장 차림 남성의 형태로 변형시켜 모스크바에 반입하여 KGB의 미행자를 속이는 용도로 활용했다. [15]현재는 그런 낡은 수법은 먹히지 않는다.

3.1.5.2. 폴란드

1980년대 폴란드 노동조합에 인쇄기, 컴퓨터, 팩시밀리, 해적방송용 송신기 등을 밀반입해주고 자금을 지원하였다.

3.2. 9.11 테러 이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CIA가 직접 산악지방에 정보 수집기지를 차려두고 이 정보를 기반으로 프레데터, 리퍼로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때려잡다가 탈레반의 자살공격으로 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16] 참고로 이 때 사망한 요원들 중에는 용역을 받는 민간군사기업 직원도 있는데, 대부분 CIA 비밀공작 경험자, 특히 상당수 실제 CIA 출신자들이 CIA의 비밀공작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이들이 설립한 회사이다. CIA의 자체 특수공작 및 준군사작전 보조요원들은 이런 식으로 전직 정보요원을 다수 포함한 용역 직원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으로 미 연방정부는 계약 형식의 노동력이 필요하면 계속 회사에 용역을 주는 식으로 노동력을 충당해왔다. 타국 정보기관은 연방 공무원에 비해 보안기준이 좀더 느슨한 이 용역 노동력을 매수해 미 정부기관에 침투하곤 했다.#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비슷한 경우를 찾아보자면 홈랜드에서 주인공 '캐리'의 시다바리(...) 노릇을 하는 감시 셔틀 '버질'을 예로 들 수 있다.
사실 CIA가 저지른 일들이나 각종 권한들, 그리고 아직도 기밀로 부쳐진 각종 자료들을 생각해보면 좀 너무 무시당하는 감도 있다. 그러나 냉전소련KGB에게 첩보전에서 열세였던 점은 분명한 까임거리이며 생각 외로 CIA가 냉전 시기나 현재 해외 정보 입수에서 저지른 뻘짓들이 좀 많은 편이다.[17] 하지만 CIA는 자유사회였던 미국의 영향도 받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다. KGB야 여론이 어떻든 무시할 수 있었지만 CIA는 일단 의회와 행정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여론도 무시할 수 없었고. 또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미국에 있는 KGB 첩보원이 러시아의 CIA 첩보원보다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고 따라서 더 쉽게 정보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따라서 CIA와 KGB를 같은 잣대로 비교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것이다.
이런 CIA의 삽질은 당연히 냉전 이후 만천하에 까발려지게 되며[18], 이후 점점 위상이 줄어 들더니 급기야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보공동체(U.S. Intelligence Community)의 내부 정보 공유 부재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다. 정보공동체의 좌장 역할을 CIA의 수장인 중앙정보장(DCI; 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이 맡다보니 다른 기관들이 CIA의 밥그릇 챙기기에 희생될 것을 우려해 협조를 꺼렸다는 것. 결국 중앙정보장은 그 명칭이 중앙정보'''국'''장(DCIA; 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 Agency)으로 변경되고 정보공동체의 수장 역할 역시 신설된 DNI[19]에 빼앗긴 상태이다.
이런 신세[20]라지만 사실 ODNI란 조직 자체가 그 위치가 애매하다. 어떻든간에 DNI를 주도하는 것도 사실상 CIA니까[21]. 게다가 CIA의 수난사는 ODNI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CIA를 비판하고 감시해 온 의회 및 행정부에 의해 가속화된 것이므로, 오히려 상황에 따라서는 DNI의 존재를 통해 CIA가 그간의 형편없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견실한 정보기관으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여전히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걸 보면 아직은 요원한 것 같지만.
아들 부시 시절에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CIA가 거두는 성공 하나하나가 바로 국방부의 실패요!" 라고 말할 정도로 펜타곤에게 쓸데없는 견제를 받기도 했었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넵튠 스피어 작전에서 CIA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듯한데 버락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이 CIA를 다시 밀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2011 이집트 혁명에서는 호스니 무바라크가 2월 10일 하야 발표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그날 무바라크는 안 물러날 거라고 뻗대는 발표를 해 돈값 못한다고 까였다. 거기에 무바라크는 그 발표를 한 지 '''하루 만에''' 하야하면서 더욱 자존심을 구기게 되었다.
2011년 11월 21일 미국 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중동에서 첩보활동을 하던 CIA 현지 요원들이 '''헤즈볼라의 치밀한 추격에''' 그만 발각되어 버렸다고 한다. 이들의 운명이 어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헤즈볼라의 성향상 즉결 처형했을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헤즈볼라는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서 CIA 요원들을 추적한 반면, CIA 요원들은 암호명을 'Pizza'로 하고 접선장소를 피자헛으로 몇 달째 고정하다가 잡혀버렸다고 한다. 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관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지만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2017년에 들어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 이란을 전담하는 임무센터를 창설했다고 한다.#
CIA 실패 잔혹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팀 와이너가 쓴 《잿더미의 유산(Legacy of Ashes)》을 읽어보자. 다만 저 책은 저널리스트,칼럼니스트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성향상 사건의 역사적 배경이나 상황, 맥락을 배제하고 팩트만 자세하게 늘어놓았기 때문에 CIA라는 조직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게 되기 쉽다. 하지만 그래도 CIA 조직의 배경과 역사,그리고 작가 본인의 치밀한 사료 조사,관련인물과의 인터뷰 내용,한국전쟁 당시 CIA의 비밀문서 일부분의 기록내용도 있어 국내판 기준으로도 999페이지라는 방대한 페이지를 자랑하니 CIA 역사를 알고 싶다면 추천하는 책이다. 참고로 팀 와이너는 펜타곤의 검은 예산에 대한 책과 CIA의 정보를 소련에 팔아넘기다가 체포된 내부 스파이였던 엘드리치 에임스에 대한 책도 저술했으니 이책도 영어가 된다면 참고해도 나쁘지 않다. 다만 이 두책은 미국에서도 발행된지 20년이 넘어가는 오래된 책이라 찾기는 쉽지 않을것이다.

4. 문제점



4.1. 인권 유린/고문




KGB(현재는 사실상 FSB)와 함께 고문을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최근에는 관타나모 수용소와 연관되어 화자되기도 했는데,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포로들을 잡아들이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인드 컨트롤을 실험했다. MK울트라 문서 참조.
911 테러 용의자에겐 물고문, 성고문도 일삼았다고 한다. 또한 KGB와 슈타지처럼 비밀 기지를 운영해 CIA와 미국 동맹국들이 피검거자들을 고문하기도 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가 고문기술자에게 개발 비용으로 8000만달러를 건넨 사실이 밝혀졌다. CIA는 이들과 함께 물고문, 수면박탈 등 20가지의 고문기술을 개발하였다. 미 상원 정보위원회가 발표한 ‘CIA 심문보고서’에 따르면 CIA는 당초 ‘심문기술 강화’를 위해 한 업체와 1억8000만달러(약 2000억원)의 계약을 체결했으나 2009년 계약이 종료되며 8100만달러(약 900억원)만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NBC방송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문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 고문 '기술'들이 별 쓸모도 없었다는 것. 관련 내용은 더 리포트같은 실화 영화에서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물론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이며, 러시아, 중국과 달리 이러한 비인권적 불법 행위에 대해 묵인하고 방조하는 것에 한계가 명백하다. 결국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의 조사로 CIA의 고문 실태가 파악, 보고서를 통해 공개되었다. 'CIA 고문실태 보고서' 공개…"잔혹하고 비효율적" 결국 CIA의 이미지는 심해까지 추락했다.

4.2. 미국 정보기관간 암투와 견제


정보기관이 이렇게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으면 임무 중복때문에 비효율적일 것 같지만, 막강한 정보력과 권력을 가진 이런 정보기관이 폭주하거나 아니면 비리를 저지르는 것들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간 극심한 경쟁 탓에 국가적 손실을 본 전례가 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10.26 사건을 일으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했고 그로 인하여 중앙정보부가 보안사령부, 즉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 균형이 깨졌다. 그 결과 벌어진게 12.12 군사반란이다. 사실상 중앙정보부가 보안사령부의 하위조직화 되어버리면서 장태완, 정병주를 위시한 군 상층부의 눈과 귀가 다 막혀버렸다. 실제의 사례가 있느니만큼 정보기관간의 균형과 견제는 국가의 안전을 위해선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FBI가 유일한 정보-사찰 기관으로 있었을 당시 존 에드거 후버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으나, 대항할 기관들은 없었거나 미약했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견제할 수 없었고, 그는 유명인사를 불법적으로 사찰하거나 민주국가인 미국에서 '''종신'''국장을 하는 등의 권력남용을 저질렀다.
후버 사후에 FBI 국장의 권한은 매우 축소되었으며, CIA, DIA, NSA등의 다른 정보기관들도 자리를 잡고 성장하여 이제는 어떤 한 정보기관이 종횡을 할수도 없다. 이런 것들이 꼭 낭비라고 볼수도 없으니, 한국에서 국정원을 해외정보처와 국내방첩부로 나눠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22]
2012년 11월에 물러난 CIA 국장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바로 이런 정보기관간 견제에서 바람피운 것이 감지되어 물러난 경우이다. FBI는 퍼트레이어스의 애인 폴라 브로드웰이 다른 애인[23]을 협박한다는 사실을 신고받고 수사에 착수했고, 결국 이러한 사실중에 퍼트레이어스와 브로드웰간의 이메일을 수사해서 이들이 내연관계임을 확인했다. 그것뿐이면 사실 사생활이니 그다지 문제가 안되는데 퍼트레이어스가 군사기밀을 작가인 브로드웰에게 누출했다는 혐의를 찾아냈고[24], FBI가 CIA국장을 직접 조사하자 이에 부담을 느낀 퍼트레이어스는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이 FBI는 CIA의 불법활동을 감시하며, CIA가 감지하지 못했던 CIA요원으로 가장한 이중간첩들을 잡아낸 적이 있으므로, CIA가 국내에서 불법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발각되게 마련이며, 만약 미국도 CIA가 한국처럼 유일한 정보기관으로 있었다면 이렇게 CIA국장의 정보유출 혐의를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25] 그런 면에서 볼 때 정보기관간의 암투나 견제가 꼭 중복되거나 낭비적인 것만은 아니다.

4.3. 삽질의 역사


과거 공산권과의 냉전 당시 동구와 남아메리카에만 역량을 집중하느라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해서는 무능 그 자체였다.[26][27] 소련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를 비롯한 제3세계 여러 군데에서 보여준 모습은 세금 도둑이란 말도 아까울 정도... 일례로 소련에 실질적으로 위협이 된 게릴라들에게는 지원 안하고 영어가 되는 게릴라 지도자들에게만 지원을 해주기도... 그 중 하나가 오사마 빈 라덴.
반 공산주의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조금이라도 비자본주의적인 정책을 실시하면(특히 국유화) 경기를 일으켰다.''' 이러한 이유로 진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실리를 위해 소련과 친하게 지내거나 아니면[28] 아옌데처럼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인 인물이라도[29][30] 공산주의자라 가정하고 그냥 뒤집어버렸다. 이러한 이유로 반미주의가 횡행하게 되어 결국 해당 피해국(?)이 진짜 공산화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이는 미국에 역풍을 가져와 오히려 영향력이 감소하게 되었다. 공산주의자가 아닌 보통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미국이 깡패짓을 하고 다닌다는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 이런 일들 때문이다. 특히 아옌데 사례를 읊는 것은 단골 메뉴.
공산권에 대해 엄청난 정보력을 기울였으면서도 막 개발된 소련의 신형 전차였던 T-72의 성능도 끝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31] 결국은 SIS에게 정보요청을 했으며[32]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에 나온 보고서에 '''소련 체제에 아무런 이상 없음'''이라고 했다.[33] 심지어 SIS케임브리지 5인조 사건에 충격을 먹고 내부 첩자들을 단속하라는 명령을 내린 국장조차도 알고보니 KGB 첩자였다는 주장이 CIA 내부에서 나올 정도.[34] 그 외에도 동구권의 정보전문가가 목숨을 걸고 망명해왔는데 안가에 몇 년간 처박아두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석방해버린 사례도 있다.
(CIA의 삽질 링크)
위 항목 중 고문 사례도 유명한 병크 사례 중 하나인데, 실증도 안 된 좆문가 몇몇을 데려다가 고문 기술을 개발하겠다며 엄청난 비용을 쏟아붓고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지만 제대로 된 정보 하나 건지지 못했으며, 그 와중에도 이 잘못들을 감추기 위해 별 방해공작을 자행했으나 결국 십수년의 지난한 조사 끝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4.4. 외국어 능력의 부재


미국 국가기관 전체가 이런 약점을 안고 있다. 1950년 시점에 한국어와 중국어를 제대로 구사 가능한 미국 국적 CIA 요원이 거의 없었던 것을 시작으로 해서[35] 1990년대 후반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될 무렵에는 CIA 내에서 흥분한 아랍인들이 구사한 아랍어 방언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통역관이 전체를 통틀어 단 3명 뿐이기도 했다.
이렇게 외국어 능력이 없기 때문에 CIA는 현지에서 고용한 요원들이나 동맹국 정보기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고 자연스레 이중간첩에게 놀아나거나 아니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 독재정권의 후견인으로 자리잡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지금도 한국 등 상대적으로 통용되는 정도가 덜한 언어는 해당국 정보기관이나 협력자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벌어진 대표적인 사례가 1979년 이란 팔라비 왕조의 붕괴인질구출 작전의 처참한 실패이다. 당시 CIA는 이란에 현지언어에 능통한 현장요원이 없었고, 이란 비밀경찰이 물어다 주는 정보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이때문에 반팔라비 시위대가 테헤란을 뒤덮고 있는데도 백악관에는 ''팔라비 왕조 통치기반 안정적''이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얼마안가 친미 팔라비 정권은 무너졌고, 심지어 얼마 뒤에는 시위대가 미 대사관을 점거해서 외교관들이 인질로 잡히는 막장상황에 처한다. 인질구출을 위해서 특수부대를 파견하지만, 현장요원이 없던 관계로 사전 정보수집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작전은 처참하게 실패한다.[36] 현지 언어에 능통한 현장요원의 부재로 현지인이나 동맹국에만 의존하다가 뒤통수 맞은 이런 사례는 찾아보면 수도 없이 나온다.
혹은 해당국 대신에 일본 같이 주변국에 의존하다가 그 국가에서 심어준 편견을 갖기도 한다. 한국어 능력자가 없어서 일제가 왜곡한 자료에만 의존하다가 문제가 생긴 경우를 들 수 있다.[37]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으로 특히 중국어, 러시아어, 한국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파슈토어[38] 구사자를 특별채용 하고 있다. 종종 미국 내 한인신문에서도 CIA 채용광고를 볼 수 있을 정도.

5. 등장 매체


거의 십중팔구는 흑막 또는 악의 축으로 나온다.[39] 또한 어째서인지 MI6KGB보다 한 수 쳐지는 듯한 묘사도 자주 나온다.
그나마 리얼한 CIA가 나오는 작품을 보고 싶다면, 제이슨 본 영화 시리즈를 추천한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CIA의 모습을 알게 모르게 보여준다. 그 외에는 영화 《굿 셰퍼드》나 알 파치노 주연의 《리크루트》가 괜찮다. 벤 애플렉의 영화 《아르고》가 CIA가 성공시킨 실제 구출작전을 잘 다루고 있으며 《제로 다크 서티》는 9.11테러 이후 넵튠 스피어 작전으로 빈 라덴을 사살하기까지 10년 가까이 뒤쫓던 내용으로 CIA가 얼마나 집요하게 추적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 쪽에서는 《컴퍼니》가 CIA의 성공과 실패 등 팩트를 기반으로 가상의 인물들을 넣어 잘 표현하고 있다. 《앨리어스》는 여주인공이 먼치킨으로 나오지만, 기본적인 정보기관의 운영방식을 잘 묘사하고 있다
  •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주인공인 이단 헌트와 그의 동료들이 속한 비밀부서인 IMF가 CIA의 하부조직이다. 영화내내 IMF는 CIA에게 발목이 잡히고 발목이 잡힌 결과는 항상 CIA의 삽질이다.
  • 메시아의 여주인공 에바 겔러는 CIA 소속이다. 그리고 CIA에서는 알 마사히라고 불리는 남자를 위험인물로 여기고 조사한다.
  • 코버트 액션에서 플레이어가 소속된 집단이며 남미와 유럽 등을 돌며 활동한다.
  • 배틀필드 시리즈에서 CIA 소속인 라즐로 W. 코빅이 등장한다. 배틀필드 3에서는 상관살해로 체포된 블랙번병장을 심문하고, 배틀필드 4에서는 미해군 강습상륙함 발키리호에 탑승해 작전을 지휘하다 중국군 헬기에게 공격받아 사망한다.
  • 70(웹툰)에서는 국내 방첩망을 가지고 노는 수준(...)으로 나온다. 대통령직속 특수부대인 JSOC[40] 1팀 팀장인 한석규는 CIA가 파견한 대통령감시요원이다. 2차 한국전쟁을 목적으로 중국과 연계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무위원들을 포섭, 전쟁을 일으킨다.[41][42]
  • 게이트 - 자위대. 그의 땅에서, 이처럼 싸우며에서는 여기 소속 특수활동부라는 놈들이 일본의 VIP를 생포한다는 주제에 경호팀의 존재를 처음부터 상정 안하고 돌입(공통)하는 건 약과요 코믹스판에선 심지어 자위대가 권총 정도만 갖고 있을 줄 알았다는 한심한 과소평가는 둘째 치고 아예 일본 자위대가 특수부대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로 등장하는 등 아무리 우익 성향이라지만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완전 세금 도둑놈들로 그려 놓았다(...). 하지만 유명한 CIA니까 그나마 저 정도로 나온 거지, 중국 정보국이란 놈들은 한 술 더 떠서 공작원들을 비무장 NGO 폭력시위대로 위장시켜 자위대가 총 들고 경비중인 게이트로 반자이 어택(!) 시키는 더한 병신들(...)로 나왔다.
  • 마피아 3에서 주인공 링컨 클레이의 협력자이자 베트남 전쟁 당시 전우인 존 도노반이 CIA 요원으로, 본편에서는 살 마르카노의 이탈리아계 마피아 를 콩가루로 만드는 것을 도와 주고, 2번째 DLC에서는 반대로 도노반의 예전 CIA 동료 요원이자 변절해 버린 미치광이 매국노 코너 알드리지와의 결판을 내는 것을 역으로 링컨이 도와주게 된다. 그 과정에서 뉴 보르도의 CIA 안전가옥이 알드리지가 고용한 (콩고 내전 쪽에서 활약한 것으로 추정되는) 흑백 혼성 용병부대에 의해 무참하게 털리는 수모를 당했다(...). DLC 미션 마지막에 등장하여 알드리지가 북베트남에 팔아 먹으려 했던 소련 핵탄두를 회수한 헬기 조종사가 도노반과 같은 CIA 소속으로 추정.
  • 첩보의 별에도 주인공 조직으로 나온다. CIA라면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조직인데, 나중에는 미국 CIA의 부당계약을 뿌리친 김봉팔 선생이 멋대로 만든 짝퉁 조직으로 밝혀졌다(...). 더 어이없는 건 김봉팔 선생을 가르친 CIA도 짝퉁 조직이었다. 나중에는 진짜 CIA에게 수익의 90%를 바치는 조건으로 정식 CIA 한국 지부가 된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에버렛 로스는 CIA 부국장으로서 히어로들을 돕는 조력자로 등장한다. 쉴드의 붕괴이후 샤론 카터 등 상당수의 쉴드 요원이 CIA로 옮겨간듯 하다. 또 같은 MCU의 드라마 시리즈인 퍼니셔(드라마)의 주요 빌런 중 하나가 CIA 요원이다. CIA 비밀공작을 핑계로 각 분야 스페셜리스트 특수부대를 징집해와 중동지역에서 시체 안에 내장을 파낸 뒤 마약을 넣어 밀매하는 공작을 저질렀고, 퍼니셔에게 맞아서 실명한 왼쪽 눈을 작전 도중 실명한 것처럼 말하고 다니며 이를 기반으로 승진까지 했다.
  • 용과 같이 3에서 스토리에 나오는 세력 중 하나로 등장한다. 카자마 신타로의 동생인 카자마 죠지검은 정장의 남자가 CIA의 요원으로 등장하며 미군기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스포일러]

  •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간접적으로 등장하는데, 청와대를 도청하다 발각되는 바람에 김규평박통, 곽상천과 사이를 틀어지기 시작하는데 본의 아니게 기름을 붇게된다.(...)
  • 테넷에서는 주도자, 초반부의 오페라하우스 2층에 있던 중역이 소속된 곳으로 등장한다.

6. 기타


  • 동물농장의 1955년 개봉된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 관여했단 의혹이 있다.
  • CIA 요원들은 종종 신분을 위장하고 활동하지만 성직자, 언론인(기자), 평화봉사단(Peace Corps)으로 위장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이런 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분쟁지역 등 위험한 지역에서 제대로 된 보호 없이 활동해야 하는데, CIA 요원이 이들로 위장할 경우 이런 이들이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기 때문. 때문에 극중에서 미국 첩보원이 기자(지미 올슨, 배트맨 대 슈퍼맨), 성직자(이단 헌트, 미션 임파서블 3), 평화봉사단으로 변장하는 창작물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 미국의 만화가 톰 킹은 CIA 장교 출신이다.

6.1. 추모의 벽


In honor of those members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who gave their lives in the service of their country.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중앙 정보국 요원들을 기리기 위해.

CIA 본부 메인 홀 북쪽에 순직한 요원을 추모하는 벽이 있다. 요원 한 명이 순직할 때마다 검은 별을 하나씩 새기고, 세계 각국에서 비밀스러운 작전을 수행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순직하는 요원들이 상당해 2018년 이후로 125개 별이 있다.#
한국 국가정보원에도 비슷한 추모비가 있다.

7. 관련 문서



[1] 그래서 냉전 시절에 KGB가 '루뱐카'라고 불리는 것처럼 '랭글리'라고도 불린다. 편의상 인구통계 CDP의 분류에 미국의 특이 행정구역 제도 때문에 싱턴에 인접한 버지니아의 CDP 구역 매클레인으로 통합된다.[2] 공식적으로는 이런저런 방위산업체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신분세탁시켰다.[3] 쿠데타 후에 CIA가 조사한 결과 아르벤스는 공산주의나 소련과 아무 관련도 없음이 드러났다. 이처럼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소련의 영향력이 커지는것을 매우 두려워하여 미국에게 반대하는 정권은 모두 공산정부라고 생각하고 죄다 뒤집어버렸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남미의 공산화를 초래하게 된다.[4] 영화 《굿 셰퍼드》에서 이 당시 CIA의 혼란을 잘 보여주고 있다.[5] 혁명직후에는 다수의 중도파와 우파 정당도 참여한 대연정에 가까웠지만 1980년대 초반을 전후하여 우파인사들이 대거 연정에서 탈퇴하면서 산디니스타 단독집권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다.[6] CIA의 남미간섭은 이전에도 활발했지만 비교적 이와 관련하여 상세한 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한것은 이때부터이다.[7] 소모사 일당을 박살내는 과정에서 소모사와 그 잔당들이 소유하던 토지와 기업들을 몰수했지만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당대 니카라과 경제부문의 60%가 여전히 사기업이 차지하고 있었다.[8] 이것이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받아들인 법안이다. 법안이 통과된 시점이 1982년 12월로 이때는 친미국가인 멕시코,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콜롬비아, 페루가 막 터진 금융위기로 휘청거렸는데 그런데 그 와중에 경제력도 변변치 않고 미국의 웬만한 주 하나급으로 인구도 적고 미국과 어느 정도 멀리 떨어진 국가에 공산주의 확산된다고 수십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대해서 당시 미국 국회의원들과 언론들도 어이없어했다.[9] 아옌데가 정말로 소련과 가까운 관계를 가졌는지는 논란이 있다. KGB가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 공작을 펼친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으나 쿠데타 이전 아옌데가 KGB와 친했는지는 확실치 않다.[10] 찬성률 '''98.2%'''.[11] 당시 대공수사국 수사단장이 정형근이었는데 조갑제 기자도 정형근도 기본적으로는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에 이때 이후로 서로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12] 보통 정보수집을 미군이 하고 분석은 CIA가 하는듯 하다.[13] 처음에는 12명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2018년 재조사 과정에서 최소한 30명이 죽거나 실종된 것으로 밝혀졌다.[14] 막대한 돈이 들어갔기 때문에 소련의 붕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도 1982년 당시 CIA는 소련의 파이프라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15] 비슷한 트릭이 007 리빙데이라이트에 등장했다. 여기에서는 본드걸의 소품을 활용한다. 1987년 개봉작이니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이었던것.[16] 영화 《제로 다크 서티》에서 주인공의 선배가 죽는 사건이 바로 이 사건이다.[17] 전신인 OSS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콘플레이크 작전이란 뻘짓을 했다.[18] 사실 CIA는 이미 1960년대(예: U-2기 격추사건, 피그만 침공, 쿠바 미사일 위기 등), 70년대(예: 워터게이트 사건, 전 국민에 대한 CIA의 불법 사찰 사실 폭로, 중남미 쿠데타의 미국 연루 문제 등), 80년대(예: 이란-콘트라 사건 외 다수) 등 10년 주기로 잘못된 공작이나 불법행위가 미국 국내에서 노출되어 여론의 질타를 받아왔다. CIA가 현재와 같은 위상추락을 겪은 것은 저런 CIA의 치부가 지속적으로 노출된 끝에 냉전 종식을 기점으로 해서 제대로 폭발한 결과다.[19]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국가정보장.[20] 그런데 ODNI는 CIA를 비롯한 각종 정보기관을 통괄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CIA가 정보를 가져와도 다른 정보부서에서 이미 ODNI에게 정보를 주었을 경우가 많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악명을 얻어버린 CIA와 달리 국방정보국(DIA)이나 국가안보국(NSA)은 그런 악명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운영 역시 여전히 순조로운 편이라, 분야에 따라서는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에서 DIANSA가 CIA보다 나은 경우 역시 매우 많은 편이다.[21] 원래 CIA는 오래 전부터 ODNI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해 왔고, 실제 지금 역시도 ODNI에게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첩보를 수집하고 공작을 해 온 CIA일 수밖에 없다.[22] 비슷하게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 연방이 되면서 KGB는 대외정보국(SVR)과 연방보안국(FSB)로 나뉘어졌다.[23] 그런데 이 여인 질 켈리는 ISAF 사령관을 지낸 퍼트레이어스의 후임인 ISAF 사령관 존 앨런 해병대장과도 이중으로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대한민국 명예 영사 자리를 얻어내는 등 여러 기업들의 로비스트 노릇을 했다는 사실이 수사 결과 발각되었다. 즉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었다.[24] 브로드웰은 퍼트레이어스와 마찬가지로 미국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소령으로 제대한 인물이라 군사기밀을 누설하면서도 심리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느끼지 못했다는 게 그의 주장인데, 전역한 군인은 일반 민간인이라는 점에서 자기합리화일 뿐이다.[25] 한국의 경우 군 정보기관이나 경찰 정보기관이 따로 있긴 하지만 활동 영역 자체가 아예 다르다.[26] 동구 집중 역시 그다지 성과는 없었다. 특히 아래에 소개된 제임스 앵글턴 문제, 그리고 행정부가 품은 소련의 역량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으로 CIA는 거의 10여 년 이상 대소 첩보전에서 믿을 수 있는 정보 원천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27] 사실 미국의 현지 적응력이 원체 병맛이기도 하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에서 감옥에 있는 마피아들을 죄다 풀어준적도 있다. 유럽에서도 일을 이따위로 하는데 제3세계에서 어떻게 하는지는 뻔하다(...)[28] 미국이 조금만 더 다가갔다면 충분히 우방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호치민이 그 대표적인 예고, 파키스탄의 줄피카르 알리 부토도 그랬다.[29] 사회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절차와 헌법 아래에서 사회주의적 정책을 이뤄내는 것으로 당장 스웨덴, 핀란드가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국가이며 스웨덴은 지금의 복지국가를 만든 집권당명부터 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이다. 또한 프랑스나 독일 같은 서유럽 부국들도 완전히는 아니지만 특히 프랑스는 상당히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을 가진 국가이다. 사회 자 들어간다고 다 스탈린주의식 독재 또라이들이 아니라는것[30] 특히 중남미에서는 더욱 그러했고 미국의 국가이미지가 어찌되었든 미국기업의 이권이 뺏기기만 하더라도 말 그대로 뒤엎어버릴려고 작정을 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31] 진짜 황당한게 프랑스 대사관 주재무관이 신형 전차를 보여달라 하자 소련군부는 그대로 T-72를 보여줬다.[32] 영국은 신형 전차 매뉴얼을 보내주며 '''복사비'''를 청구했다. 비웃은 거다.[33] 소련 붕괴를 멀쩡히 예상한 분석가들이 서방엔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것을 기억하고서 이 부분을 봐야 한다. CIA가 이 문제에서 욕을 먹어야 하는 건 '체제 이상 없음'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분석가들과 차원이 다른 정보수집수단을 가지고 있었고 그 능력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34] 그래도 첩자가 나온 집단이라는 것은 중간에 삽질이 좀 많긴 해도 어떻게든 잡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나도 없는 국정원을 오히려 의심하는 이들도 있으니... 라지만, 실제로 미국 정보/공안기관 내부에 침투한 첩자는 모두 6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사이에 소련에 줄을 댔다. 그리고 단속 명령을 내린 장본인이 KGB라는 소리는 그 주장을 꺼낸 당사자인 제임스 앵글턴의 오랜 친구가 하필이면 그 유명한 케임브리지 5인조 중 하나인 킴 필비라는 것에서 나온 일종의 루머다. 오히려 앵글턴은 이 사건으로 '''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편집적으로 CIA 내부 방첩을 다졌고, 사실상 침투를 허용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자기 상관들 모두가 실은 KGB의 이중간첩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힐 정도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지나치게 두더지(이중첩자) 사냥에 편집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조직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이 때문에 그 자신이 되려 KGB의 이중첩자가 아니었냐는 의혹을 산 것이었다.[35] CIA뿐만 아니라, 미군과 국방부, 국무부 등 안보기관 전체에 동아시아 지역 전문가가 엄청나게 부족했다. 그나마 중국어 능력자는 약간 있었지만, 한국어 가능자는 정말 전무했다. 해방 직후 미군정의 남한 통치가 엉망진창이 된 것도 이런 상황때문이다. 한국어 가능자가 없다 보니 통치를 위한 기본자료는 일본인들한테 의존하고, 실제 한국인들과의 소통은 영어가 가능한 극소수의 미국유학파들이 독점한 것이다. 일제가 남겨놓은 편견과 왜곡에 가득찬 데이터를 가지고, 현지 상황은 하나도 모른채 몇 명 안되는 통역관들한테 휘둘리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결정이 나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더구나 그 미국유학파 출신 통역들 중에 상당수는 친일파들이었고, 자신들의 입지 때문에 일부러 미군정과 한국의 민족지도자들 사이에서 고의적인 분탕질을 자행했지만, 존 리드 하지 미 군정장관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36] 다만 당시 미군 특수부대의 조직체계가 엉망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참사이지 사전 정보 수집 미흡이 작전실패의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독수리 발톱 작전 항목 참조.[37] 이것은 지금까지 이어진 문제로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전문가들은 대부분이 일본어 전공자이며 약간의 중국어 전공자들이 있다. 이들이 정치권, 학계, 언론계에서 곁다리로 한반도 문제까지 다루는 것이다. 당연히 이들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한국에 대한 지식은 매우 단편적이며 그나마도 일본과 중국에서 만들어진 편견과 왜곡에 가득찬 것들이다. 평창올림픽 당시 미국 NBC 방송국의 해설자 '조슈아 쿠퍼 라모'가 '한국인은 일제 식민통치에 감사해야 한다' 같은 망언을 서슴없이 내뱉고, 유력 언론 포춘의 '노만 펄스틴'이 이것을 옹호하는 기사를 싣는 등의 행태는 바로 이런 환경 때문이다. 조슈아 쿠퍼 라몬은 칭화대학 겸임교수와 골드만삭스 중국고문을 지낸 중국전문가이며, 노만 펄스틴은 월스트리트 저널 도쿄 특파원 출신이다. 한국어는 할 줄 모르고, 한국에 대한 특별한 연구나 활동도 없는 이런 사람들이 미국에선 동아시아 지역 전문가라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이다.[38]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에 걸쳐 살고 있는 파슈툰족의 언어이다.[39] 이게 최근까지도 CIA를 부정적으로 보는 매체가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이 때문에 CIA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주는데 대중매체도 한몫하고 있다.[40] 4군통합특수작전사령부. 육군 특수전사령부와는 별개의 조직이다.[41] 국회의원들중 대다수와 국방장관이 포섭되었지만 이들은 국회에서 공안측 연계조직인 황정민에 의해 전원 살해당한다. 이 행동이 사전에 협의된 행동인지슨 불명.[42] 사실 CIA는 센트럴이라는, 2차 한국전쟁을 통해 방위라인 밖으로 밀려난-이 만화의 설정에서 미국은 한국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철수했다- 한국을 북한과 함께 날려버리고 한반도에 매장된 희토류 채굴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 장악한 상황이고, 현 미합중국 대통령과 일부조직은 이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스포일러] 사실 미군기지의 BMD(탄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 도입 계획 자체가 국제 무기 밀수조직인 '블랙 먼데이'를 끌어내기 위한 미끼였고 후에 검은 정장의 남자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CIA의 요원은 그저 위장신분이었고 진짜 정체는 '블랙 먼데이'의 수장인 '안드레 리처드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