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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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한화 이글스의 투수이자, 前 한화 이글스 불펜코치.
한서고등학교와 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한화 이글스 역대 최악의 흉작이라는 1997년 드래프트에서 2차 9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여 2007년까지 10여 년 동안 한화 이글스에서만 뛰고 은퇴한 원 클럽 플레이어다.
2. 플레이 스타일
현역 선수 시절 140㎞/h 초반의 직구와 커브를 위주로 맞춰 잡는 투 피치 유형의 투수였으며 엄청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는 아니었지만 계투진에서 승리조와 패전조를 넘나들며 활약해 주었고 선발도 한때 맡는 등 전천후 투수로 소금같은 역할을 해 주었던 선수였다.
3.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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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프로 입단 첫 해부터 가능성을 보이며 중간계투로 1군에서 활약했다. 이 시즌 성적은 41경기 60⅓이닝 3승 2패 1세이브 ERA 3.73. 1998, 1999년에도 중간계투로 계속 등판했으나 성적은 방어율 5점대, 4점대로 그렇게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1999년 41경기에 등판해 92이닝을 소화하면서 전천후로 나와줬고, 한화 이글스의 첫 우승 멤버기도 하다.
그러나 2000년에 최악의 방어율인 7.86을 기록하며 군입대를 결심했다. 2000년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해 2003년 시즌을 앞두고 전역했는데 말년 때 살이 엄청 붙어 운동 능력이 확연하게 떨어졌고, 속구 구속도 130km/h대에 머물며 퇴물 취급을 받기도 했다. 결국 2003년에는 1군에 콜업되지 못했고, 2004년 정말 열심히 운동한 끝에 싱커를 익혔고 구속도 140km/h 중반대로 끌어올리며 부활을 알렸다. 이 시즌부터 선발 투수로 전향했고, 2004년 5월 26일 5⅓이닝 3실점으로 데뷔 첫 선발승을 따내기도 했다. 이 해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부정 선수로 출장을 했다. 이 때에 주심과 기록원은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경기 종료 후 적발.
커리어 하이는 2005년. 비록 10승은 거두지 못하고 평균자책점이 조금 높은 편이었지만 나름 규정이닝도 채우면서 쏠쏠하게 활약했다. 이 시즌 성적은 1군 32경기 128⅓이닝 6승 8패 ERA 4.28. 이 활약을 바탕으로 준 플레이오프의 선발로 나서기도 했었다.[3]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지연규의 투혼이 돋보였던 5차전에 등판하여 삼성의 젊은 중간계투진과 명승부를 펼치기도 했다.
2007년에는 13경기 14이닝에 그치며 별 기회를 받지 못했고 시즌 후 32세라는 다소 젊은 나이에 방출되며 은퇴하였다.[4]
4. 지도자 경력
4.1. 지도자 1기 시절
은퇴 후 2008년부터 성남고 투수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일본 독립 리그 팀인 코리아 해치의 투수코치로 재직했다. 코리아 해치가 공중분해된 후에는 빙그레/한화 선수 출신인 강정길이 감독으로 재직 중이었던 경북고의 투수코치로 활동했다.
4.2. 지도자 2기 시절
2016 시즌 후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로 선임되며 9년 만에 친정팀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2017년 시즌 중 김성근 사임 이후 김성근 사단이 모두 나가면서 1군 불펜코치로 승급되었다.
2020년 구단에서 재계약하지 않기로 한 코치 중에 포함됐다.
5. 프런트 경력
5.1. 롯데 자이언츠 스카우트 시절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 스카우트로 재임했는데, 이 시절은 그야말로 '''악평 일색.''' 2014년 드래프트 때는 부산고 3학년 때 단 1경기에도 등판하지 못한 김재열(지명 당시 이름은 김태석)을 2차 7순위로 지명했고[20] , 2015년 드래프트 때 텍사스 레인저스에서부터 제대로 던지지도 못했던 투수 안태경을 2차 1순위로 지명하여 날려먹고,[21]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즉전감 해외파 출신이라며 코리아 해치에서 뛰던 일본 독립리그 출신 석지형[22] 을 '''4라운드에''' 뽑질 않나[23] , 2016년 드래프트에서는 좌완 투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실력을 보지도 않고 좌완을 무려 5명을 뽑아버렸다.[24] 위 표를 보면 알겠지만 '''그 농사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금까지도 욕을 먹고 있다.'''[25]
6. 사건 사고
2019년 5월 7일 SK행복드림구장 SK 와이번스 3차전 원정경기에서 열린 경기 도중에 홈 팀인 그라운드 키퍼 '''아르바이트생을 폭행'''했다는 사실이 일요신문의 단독 취재로 뒤늦게 들통났다. 이후 엠스플뉴스도 이어서 보도되었다. 상황은 이렇게 되었다.
김해님 코치는 "3루 측 불펜 문앞에 있었는데 이동이 불편했고 경기를 보기도 어려워 부탁을 했다. 하지만 그라운드 키퍼도 자기가 할 일이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감정 싸움이 일어났다"라며 한화 이글스 구단은 다음날 5월 8일 사과를 했으며 클린베이스볼센터에 곧바로 신고했다고.. . 한편 건물에 가두고 폭행했다는 데는 강력 부인했다. 멱살을 잡은 상황에서 팬들이 보고 있어 몸싸움 도중 통로로 옮겨갔을 뿐이라는 해명이다.
한편 SK 와이번스 관계자는 “당일 운영팀이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확인에 들어갔더니 당사자들끼리 이야기가 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합의가 됐다고 안 상태였다”고 확인하면서 “해당 아르바이트생은 지금도 계속 같은 임무를 하고 있다. 해당 학생이 언론에 제보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라운드 키퍼인 5월 31일 경기전 피해를 입은 아르바이트생은 "기사에 잘못된 부분을 정정하고 싶었고, 사건이 끝났으면 한다"고 했다.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5회말 그라운드 카를 불펜 문 쪽에 대기시켰다. 그 때 코치님이 투구하고 있는 투수들의 공에 맞을 수 있다고 비켜달라고 했다. 그래서 2아웃이 되면 알려주기로 했고,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2아웃이 된 뒤 투수가 피칭을 하다가 손에서 글러브를 뺀 순간, 다시 문 앞으로 갔다. 이후 시비가 붙었다. 하지만 기사에 나온 것 처럼 난 욕을 한 적이 없다. 거친 말은 맞지만, 오해로 인해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 멱살을 잡았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코치를 잡은 것 뿐이다"라고 전했다. 이로 인해 5월 31일 열린 KBO 상벌위에서 경고를 받았다.
[엠스플 이슈] ‘코치의 알바생 폭행 사건’, 한화 단장 “합의했는데 무슨 경위서?” - 엠스플뉴스
[스포츠타임 현장] 김해님 코치 폭행 시비, “폭행은 사실, 8일 오전에 합의” - 스포티비뉴스
[SC이슈추적] '불펜 폭행 사건' 피해자 "사건 알리기 싫어 이미 합의, 악감정 없다"
7. 여담
- 한서고 야구부 출신 중에서 프로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다.[26]
- 성적과 별개로 독특한 이름 때문에 한화 팬들에게 인상적이었던 선수였기도 하다.
8. 연도별 주요 성적
9. 관련 문서
[1] 기존의 2군 불펜코치였던 마일영과 6월 24일 자리를 맞바꿨다.[2] 6월 6일부터 6월 8일까지.[3] 3차전에 선발로 출장했는데 1이닝 2실점하고 물러났다. 이후 등판한 최영필이 7⅓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면서 팀은 승리했다.[4] 이 시절 김인식 한화 감독에게 찍혔다는 카더라가 있다.[5] 2020년 초에 강태율로 개명[6] 지금은 베이스볼 코리아에서 일하고 있다.[7] 방출 이후 재입단 테스트를 보았으나 돌아오지못했고, 이후 독립야구단인 고양 위너스에서 뛰었으나 그만둔 모양인지 현재는 선수단 엔트리에서 이름이 사라져있다.[8] 현재는 독립야구단인 저니맨베이스볼 소속[9] 나중에 이찬건으로 개명[10] 나중에 김재열로 개명[11] 나중에 강로한으로 개명[12] 방출 이후 안우택으로 개명[13] 방출 후 파주 챌린저스에서 뛰었으나 그만둔 모양인지 선수단에서 사라졌다.[14] 2010년도 신인드래프트에서 롯데의 지명을 받았으나 낮은 순위 때문에 연세대 진학을 택했고, 연세대 졸업 후 육성선수로 입단했다.[15] 방출됐다가 군 복무를 마치고 재입단. 지금은 김강현이란 새 이름을 달고 뛰고 있다.[16] 200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롯데의 지명을 받았으나 낮은 순위때문에 대학 진학을 택했고, 이후 경찰 야구단에서 병역을 해결한 뒤 육성선수로 입단했으나 방출되었다.[17] 고양 원더스 원년 멤버 출신의 해외파 선수로 원더스가 해체된 이후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고양 원더스를 다룬 다큐멘터리 파울볼에서 모습을 제법 비췄으며 이로 인해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1년만에 방출되었다. 하지만 구단에서 선심 썼는지 프런트로 보직이동을 했으며, 해외파 출신 선수답게 구단 외인들의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지금은 LG 트윈스 프런트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18] 안형권과 마찬가지로 고양 원더스 출신의 원년 멤버로 포지션은 좌완투수. 입단 1년만에 방출을 당했으며 현재 근황은 알려지지않았다.[19] 유신고 출신의 동명이인[20] 김재열은 입단 후 2년 동안 2군 기록이 없었고, 이후로도 참담한 성적을 낸 채 2017 시즌 종료 후 방출됐다. 물론 서진용처럼 고교 별로 안 던진 투수를 포텐을 보고 상위 지명하기도 하지만, 그걸 정확히 파악해 내는 게 스카우트의 일이고 실패 시의 책임과 비난은 당연하다. 롯데에서 방출된 후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면서 몸을 만들어 2020년 KIA 타이거즈에 육성선수로 입단하는데 성공했고, 정식 전환까지 이루어냈다.[21] 같은 해외 리턴파 장필준을 고를수 있었음에도 거르고 뽑은건데, 장필준이 삼성 불펜진에서 간간이 얼굴을 비추고있는 반면 안태경은 3년도 못 써먹고 2017년 시즌 종료 후 방출당했다. 아마 안태경이 부산고 당시 1차지명 후보로 꼽히다 미국으로 갔던 선수였기에 당시의 포텐을 믿고 뽑았겠지만, 현재 폼을 파악하지 못한 처사임엔 틀림없다.[22] 김해님과 코리아 해치 코치 시절 같이 있었던 인연으로 뽑았다는 말이 있다. 결국 뽑은 지 2년 만에 폐기급으로 취급받고(2군 등판 단 1경기) 방출당했다.[23] 이 외에 고교 3년 내내 9이닝도 채 던지지 않았고 그나마 3학년 때는 아예 등판이 없었던 배제성을 지명한 것도 있었으나 배제성은 9라운드에서 지명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 정상참작이 되는 편이다. 배제성은 2017시즌 도중 kt wiz로 트레이드된 뒤 2019 시즌에 선발 투수로 10승을 거두며 비로소 꽃을 피우게 된다.[24] 한승혁, 김남길, 김성재, 임지유, 정종진 이렇게 다섯인데 이들 중 현재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한승혁 혼자다. 김성재는 어느 정도 기대를 받았지만 2년만에 방출된걸 보면 현장의 평은 썩 좋지않은 모양이었던듯. 여담으로 김성재는 시간이 흐른 2020 시즌에 오랜만의 근황이 공개되었다.[25] 여담으로 항상 충청권 출신이 한 명씩 포함되게 뽑아서 지역 챙기기, 비밀 독수리란 비난도 있었으나, 김해님은 정작 서울 출신에 서울 한서고등학교를 나왔다. 학력만으로는 대전고나 북일고같은 곳과 아무 관련이 없다.[26] 한서고 야구부는 경기도 고양시에 자체 야구장까지 보유할 정도로 재단의 투자가 강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프로에서 성공한 선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학교였다. 김해님 이전에는 창단 초기 에이스였던 김민국이 그나마 가장 많이 뛴 축에 속한다. 이후 어렵게 스카웃해온 오승환, 채병용 등이 각각 경기고와 신일고로 전학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투자에 비해 성적이 나지 않으면서 재단의 관심이 점점 식어버린 가운데 2005년을 마지막으로 해체되었다. 이 과정에서 박해민이 신일고로 전학했다. 유일한 현역 선수였던 홍명찬마저 2015시즌을 끝으로 방출되어 한서고 졸업생 출신 선수는 더 이상 남지 않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