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설

 

李容卨
일본식 이름: 미야모토 조세쓰(宮本容卨)
1895년 10월 12일 ~ 1993년 3월 8일
1. 개요
2. 상세
3. 선거 이력


1. 개요


대한민국의 내과 의사, 교육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정치인이다. 호는 여천(與天)이다.

2. 상세


1895년 평양부 희천군(현 북한 자강도 희천시)에서 이재후(李載厚)와 최재신(崔載信)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숭실중학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 석사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 베이징 협화대학 부속병원에 내과의로 근무하였다. 이때 안창호를 만나 1924년 흥사단에 입단하였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1941년 8월 친일 단체 조선임전보국단의 전신인 임전대책협의회(臨戰對策協議會)에 위원으로 참여하였고 같은 해 9월 7일 이각종 등과 함께 남대문 앞에 전쟁 채권을 들고 나서서 "銃後奉公(총후봉공)은 채권으로부터"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중들에게 일제에 협력할 것을 독려했다#. 이후에도 유억겸·장덕수·최용달·윤치호·현제명 등과 함께 친일 전향자 단체인 대화숙(大和塾)에서 활동하고 매일신보에 친일 연설을 기고하는 등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활동하였다.#

美國(미국)은 건국의 역사 그 자체가 약탈에서 시작되어 횡폭과 잔인한 피(血)로 세운 나라인 만치 그 국가의 의가 있을 리 없으며…… 이런 나라를 조국으로 가진 美國人(미국인)의 본성이 잔인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문명하다는 그놈들은 오늘날 조금도 주저하지 아니하고 감행하고 있습니다. 이놈들이야말로 元(원)의 대군과 같이 太平洋(태평양) 바다 속에 몰살하지 아니하면 東洋(동양)의 평화는 영원히 바랄 수 없을 것이다.

- 1944년 8월 6일, 《매일신보》 신간에 기고한 글#

8.15 광복미군정 보건후생부장,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위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장 등을 지냈다.
1950년 5월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기도 인천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중구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국민당 윤치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세브란스병원장을 지냈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50
제2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제1선거구(인천시 갑구))
'''무소속'''
'''9,032표 (29.96%)'''
'''당선 (1위)'''

1954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제1선거구))
무소속
3,090표 (15.66%)
낙선 (4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