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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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仁基
1953년 2월 26일 ~
1. 개요
2. 선거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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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법조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전의(全義).# 종교불교이다.
1953년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서 태어났다. 왜관초등학교, 계성중학교, 대구 계성고등학교(59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경찰에 소속되어 근무하다가 1990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칠곡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장영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북도 칠곡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국민당 이수성 후보(前 국무총리, 서울대 총장, 구 신한국당 9룡 중 한 사람.)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한나라당 원내부총무를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북도 칠곡군-성주군-고령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간사, 대한민국 국회 2012 여수 엑스포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박계로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소위 친이계의 공천 학살로 인해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한나라당을 탈당하였다. 그리고 무소속[1]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석호익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선 후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 한편 문제가 된 셧다운제 발의에 참여하였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안경률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완영에게 밀려 새누리당 공천을 못 밭자 일단 4년 뒤를 기약하며 승복하고 불출마했다. 그러나 20대 총선에서도 공천 탈락 당하자 정계를 떠나 변호사로 복귀했다. 아울러 이 때부턴 비박으로 돌아선 듯 했으나...
2019년 6월 작성시점 현재까지 새누리당의 후신 자유한국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이완영 의원의 6월 13일 의원직 상실이 대법원 상고심에서 확정되어 고령군·성주군·칠곡군 선거구가 무주공산이 되어 연고가 있는 총선 출마 희망자들이 활발하게 진작부터[2] 움직이고 있었고 이 기사에 따르면(동아일보 190613) 이인기 前 의원 본인도 변호사 사무실을 본인 고향 칠곡군의 중심지격인 왜관 읍내로 옮겨 출마에 대한 야망을 보이고 있다. 다만 예전 2018년 12월의 김병준 비대위 시절 당협 정비에서 진작에 재판받고 있다는 사유로 이완영의 당협위원장 자리가 김항곤성주군수에게로 넘어간 만큼 일단은 불리한 상황이다. 당협을 빼앗아오지 못하면 2008년 18대 총선처럼 또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하는데 그 때야 박근혜 前 대통령[3]과 친박 무소속 연대의 소위 '박풍'이라도 있었지 이제는 그런 거 없기 때문이다.

2.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군위·칠곡)
무소속
11,029 (17.67%)
낙선 (3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칠곡)
'''한나라당'''
'''23,898 (53.44%)'''
'''당선 (1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고령·성주·칠곡)
'''한나라당'''
'''49,586 (60.99%)'''
'''당선 (1위)'''
[4]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고령·성주·칠곡)
'''무소속'''
'''39,375 (49.37%)'''
'''당선 (1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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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박 무소속 연대[2] 2심까지 의원직 상실형급의 형량이 떴으면 3심도 시간 문제일 뿐 99% 확정이다.[3] 당시는 前 당대표[4] 2008.3.19 공천불복 탈당[5] 2008.7.11 한나라당 복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