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4 팬텀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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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개발
3. 운용 개념
4. 주요 제원 및 성능
4.1. 탑재장비 및 무장
5. 특성
6. 계열기
6.1. 특수목적 계열기
6.2. 수출형
6.3. 연구/실험기 및 기타 계획안
7. 운용국
7.1. 미국
7.2. 한국
7.3. 일본
7.4. 영국
7.5. 이란
7.6. 독일
7.7. 호주
7.8. 기타 국가
8. 실전사례
9. 대중매체
9.1. 등장 게임
9.2. 등장 영화
10. 관련 문서
11. 참고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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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cDonnell Douglas F-4 Phantom II'''
미국의 다목적 전폭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작된 제트 전투기 중 가장 성공적인 기종으로 5,195기가 생산되어 서방제 초음속 전투기 중에서는 최대 생산수를 자랑한다.[1]
거대한 덩치[2]와 그에 걸맞은 압도적 파워와 탑재량, 기동성을 자랑했으며 진정한 멀티롤 파이터(Multirole fighter)로서 당대 어느 전투기보다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냉전 시 라이벌이었던 소련이 F-4와 근접한 멀티롤 파이터를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이 MiG-23, 그것도 최후기형인 MLD형이 등장한 이후에야 가능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름이 '팬텀Ⅱ'인 것은 해군 전투기 중 이미 같은 제조사에서 제작한 FH 팬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들 선대 팬텀은 깔끔하게 잊고 그냥 팬텀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 해군과 같은 명칭을 쓰기 싫었던 미 공군F-110 스펙터(Spectre)라고 명명했다가[3] 항공기 제식명칭 통합을 추진하던 로버트 맥나마라에게 까이고 울며 겨자먹기(?)로 해군과 같이 F-4 팬텀II로 굴리게 된다.[4] 여담으로 제안된 별명 중에는 사탄(!)도 있었다고 한다. 가히 충격과 공포
한국 공군기 중 가장 육감적이고 섹시한 기종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방위성금헌납기 마킹은 스페셜 마킹에서도 제일 독특하다는 평을 받으며 나름 인기도 있었다. 지금 보면 꽤 촌스러운 마킹이지만 이 덕에 의외로 컬트적인 인기가 있어서 프라모델과 다이캐스트 모형으로도 간간이 나오고 있다.
기체 프로포션 때문에 좀 아담하다는 느낌을 받기 쉽지만 팬텀은 사실 꽤 크다. F-16보다는 훨씬 크며 대형기인 F-15나 F-22와 비슷한 덩치다. 때문에 개발 당시 “벽돌집도 엔진만 큰 것을 달아주면 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은 소위 파워하우스 대형 전투기였으며, 팬텀에게 “비행 벽돌”, “비행 모루”, “코뿔소”, “무쇠 썰매”, “납 썰매” 등 무겁고 크다는 뉘앙스의 별명이 붙었다.

2. 개발


미 해군의 요구에 의해 맥도넬 더글러스 사는 1953년 장거리 공격용 전투기에 대한 예비설계를 시작하여 쌍발 엔진의 전천후 장거리 복좌형 방공전투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954년 2대의 시제기 제작이 발주되어 강력한 레이더와 3시간 이상의 항속능력을 갖춘 시제기가 1958년 첫 비행(F-4A)을 실시한 이래, 실전용으로 배치된 F-4B는 1960년 말부터 미 해군/해병에 인도되었고 당시 케네디 정부의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의 지시에 의해 미 공군에서도 채용을 검토한 끝에 F-110 스펙터라는 이름으로 채용, 이후 미 공군용으로 전자장비를 보강한 F-4D가 생산되어 베트남전에 참전하였다.
최초의 F-4 설계는 미 해군의 요구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맥도널 더글라스의 독자 계획으로부터 출발했다. 때문에 F-4의 초기 설계안에 대한 자료는 사내 기밀로 분류된지라 많지 않다. 초기 설계를 마무리한 후 맥도널 더글라스는 이 설계안을 미 해군에 제시하였으며, 미 해군은 F-4를 처음 봤을때 넉넉한 무장탑재량에 주목, 함재 공격기로 개발할 것을 주문했다가 다시 함대 방공까지 맡을 수 있는 다목적 전투기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제미니 계획을 앞두고 선발된 NASA 우주인단의 제2기인 뉴 나인 클래스가 대부분 1950년대에 개발되던 당시 F-4 프로그램에서 활동한 테스트 파일럿들이다. 짐 러블, 존 영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훗날 아폴로, 그리고 스카이랩, 우주왕복선 프로그램까지 이어지는 NASA의 역사를 장식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인물이 존 영으로, 존 영의 자서전에는 F-4와 F-8을 테스트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해군참모총장께서 손수 전보 보내왔는데 러블 대신 내가 받은 게 자랑ㅋ"[5] 같은 얘기 등, 이것은 또 다른 의미도 있는데 이 시절 F-4 테스트 파일럿들이 맥도넬 더글러스를 자주 드나들며 관계자들과 호흡을 맞추었고 그 엔지니어들이 제미니를 만들 때도 유지된 것이다. 이 외에 미 해군 항공대 50주년을 기념한다고 F-4를 공중급유기까지 동원해서 전국 순회비행을 시킬 때의 조종사도 아폴로 12호 사령선 조종사인 리처드 고든이다.

3. 운용 개념


  • 공대공 및 공대지 폭격 임무 수행
  • 적 방공망에 대한 대공제압 임무
  • 정찰 임무 수행

4. 주요 제원 및 성능


F-4E 팬텀 II 기준
전장
62.98ft (19.17m)
기폭
38.61ft (11.76m)
기고
16.47ft (5.02)
자중
30,328Ibs (13.75t)
최대이륙중량
61,795Ibs (28.02t)
최대무장적재량
16,000Ibs (7.25t)
전투 행동반경
683NM
엔진
General Electric J79-GE-17 터보제트 2기(E형)
실용 상승고도
54,382ft
추력
17,900Ibs×2
최대속도
마하 2.27
최대항속거리
1,718NM (약 3180km)
제작사
맥도넬 더글라스

4.1. 탑재장비 및 무장


'''고정'''
20mm M61A1 기관포 (640발)
(E,EJ,F형)
'''건포드'''
M12/SUU-16/A
M25/SUU-23/A
Mk4 HIPEG
'''공대공 미사일'''
AIM-9 사이드와인더
AIM-7 스패로우
AIM-120 암람 (독일군, 그리스군의 개량형)
AAM-3 (일본자위대)
Python-3 (이스라엘군)
'''공대지 미사일'''
AGM-12 불펍
AGM-62 월아이
AGM-65 매버릭
AGM-45 슈라이크 (와일드 위즐로 개조된 기체들)
AGM-78 스탠다드 암 (와일드 위즐로 개조된 기체들)
AGM-88 HARM (G형)
AGM-142 팝아이(한국군,터키군 소속 E형)
'''폭탄'''
M-117, M-118, Mk 80계열 등의 통상 무유도 폭탄
페이브웨이 1/2
CBU 계열, Mk20로크아이 등의 확산탄
B61, B43 등의 핵폭탄
'''기타 외부 무장'''
페이브 스파이크(PAVE SPIKE) 목표 지시기
페이브 택(PAVE TACK) 목표 지시기
페이브 나이프(PAVE KNIFE) 목표 지시기
AN/ALQ-87/88K[6]/101/119/130/131 전자전 포드
370갤런 외부 연료탱크 최대 3기
레이더
AN/APQ-99/100/120
AN/APG-59/65/66
하드 포인트
최대 8,480 kg (18,650 Ibs) 무장 및 외부 연료탱크 적재 가능

5. 특성


  • 항공기 동체가 매우 커서[7] 내부에 7,022리터(1,855갤런)의 연료를 적재 가능하며, 동체 하부에 4개의 무장장착대가 부착되어 있다.
  • 저익 구조로 설계된 주익은 삼각형의 테이퍼(Taper)형태이며, 주익의 내측은 연료 탱크로 사용되고 외측은 접히도록 설계되어 함내 수납을 용이하게 했다.
  • 미익은 보조익과 연동되는 방향타(Rudder)가 있으며, 23도의 하반각을 가진 전 가동식(All Moving) 승강타(Stabilator)가 있다.
  • 동체 양 옆으로 17,900Ibs 추력의 제네럴 일렉트릭의 J79-GE-17 터보제트 엔진 2기를 장착하고 있으며, 주익 상부의 동체에 있는 장방형의 공기흡입구는 공기 속도에 따라 조절되도록 되어있다.

6. 계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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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4A: 단좌형 시제기. 통합명명법 이전의 이름은 F4H-1.
  • F-4B: A형을 개량한 미 해군형. 통합명명법 이전의 이름은 F4H-2. 복좌형이며 엔진은 J79-GE-8이 채택되었고 미 공군 최초로 다기능 FCS를 장비했다. AN/APQ-72 레이더를 탑재해서 기수 아래쪽의 안테나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이 특징이다.
  • F-4C: B형을 개량한 미 공군형. 통합명명법 이전의 이름은 'F-110A 스펙터'. 지상활주로에서의 작전을 위해서 폭이 넓은 타이어를 채택했으며 이를 수납하기 위하여 주익이 약간 볼록해졌다. 미 해군과 다른 공중 급유방식을 사용하는 공군의 요구로 동체 윗면으로 수유 프로브가 이동되어 설치되었다. 한편 미사일의 성능에 불만을 가진 몇몇 부대에서는 마개조를 통해 20mm 기관포 포드를 동체 중앙 파일런에 장착하여 운용했다. AIM-4 팔콘의 핵탄두형으로 미국 영토에 접근하는 소련 폭격기를 요격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 F-4D: C형의 미 공군 개량형. 항법장비, 사격통제장비 등의 전자장비를 신형으로 교체하였다. 가장 큰 특징은 F-4C에서 실험적으로 장착되었던 SUU-16 20mm 건 포드를 사격통제장비를 통해서 레이더와 연동된 기총 조준도 가능하도록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C형과 구분하는 포인트는 기수 부분 레이돔에 돌출된 부분이 사라지고 동그랗게 바뀐 점. 하지만 RWR(레이더 경보장치.)이 달린 후기형은 C형과 동일한 기수를 사용한다. C형과 마찬가지로 핵무기 운용능력이 있다.
  • F-4E: 미 공군이 원하던 다목적 전술기로서의 최종 개량형이다. 근접공중전 능력 강화를 위해서 기수를 쭉 잡아늘려서 M61A1 20mm 발칸포를 고정 무장으로 탑재해서. J형과는 다르게 룩 다운 능력이 없는 레이더를 장착해야 했다. 후기형에서는 공중 기동성 향상을 위해서 기수의 발칸포구를 새롭게 디자인하였다. 또한 주익에 연장 슬랫(slat)을 사용하여 최고 속도는 조금 저하되었으나 운동성이 매우 향상되었다.[8] 왼쪽 주익에는 레이더를 보조할 광학장비 TISEO가 장착되었다. 미국 공군에서는 베트남전 후반부터 F-16이 완전히 배치되기까지 주력기로 운용된데다, 미국 이외의 F-4 운용국들도 거의 대부분이 이 E형을 채택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개량형을 만들어낸 경우도 있다. 그래서 보통 '팬텀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종이 되었다.
  • F-4J: E형이 미 공군이 원하던 형태의 F-4라면, J형은 미 해군이 원하던 함대방공임무에 맞게 개량된 것이다. 미 공군의 D형에 자극을 받아 룩-다운 능력을 가진 신형 레이더를 채택하였으며 이로 인해서 기수 아래의 작은 안테나가 사라진 단순한 원뿔 형태의 기수가 특징이다. C형처럼 폭이 넓은 타이어를 사용하기로 함에 따라 주익에 볼록한 부분이 생겼다. F-4D처럼 동체 하부 파일런에 외장 기관포드를 탑재할 수는 있었으나 개틀링 건포드가 아니라 Mk.20 리볼버 캐논을 사용했다. 다만 이 리볼버 캐논 자체가 신뢰성이 꽝인데다 해군은 그 자리에 보조연료탱크를 탑재하는 것을 매우 선호했기에 해군의 기관포 포드는 거의 흑역사급이다.
  • F-4N: F-14의 배치가 늦어지자 전력공백을 메우기 위해 기존의 F-4B를 J형 사양으로 개량하였다. 주로 비행제어와 전자장비, 그리고 엔진의 개량이 진행되었지만 기골 보강은 없었다.
  • F-4S: F-4N과 같은 이유로 J형을 개량한 것이다. S형은 기골이 강화되고 E형과 비슷하게 주익 연장 슬랫이 적용되었다. 이 주익 연장 슬랫 때문에 최저 비행속도가 약간 빨라져서 착함시 난이도가 높아졌다. 미 해군/해병대에서 최후까지 운용된 F-4[9]이다.

6.1. 특수목적 계열기


미 공군은 베트남전 당시에 C, D형에 전자장비를 추가하여 방공망 제압 임무에 투입한 바 있었다.[10] 미 공군은 이 전훈을 바탕으로 하여 방공망 제압 전용기를 만들게 된다.
E형의 기관포 수납공간을 활용하여 AN/APR-38 레이더 호밍 경보장비와 이 라인을 수납하는 Under Nose Faring을 장착하였다. 전방/측방 감시용 레이더 안테나를 비롯해 52개의 수신/송신용 안테나와 각종 전자전 장비를 장착하였다. 걸프전을 마지막으로 퇴역했다.
  • RF-4B/C/E: 기수의 레이더를 제거하고 카메라 등의 정찰용 장비를 내장한 정찰기.
RF-4B는 기존의 B형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1990년까지 미 해병 항공대에서 운용되었다.
RF-4C는 C형을 기반으로 하며 미 공군에서 운용되었으며 걸프전까지 참전했다. 무장은 거의 탑재하지 않지만, 미 공군 소속기들은 핵폭격 기능이 살아 있었고, 일부 기체에는 자체방어용 사이드와인더를 장착할 수 있었다. 미국 외에 한국 공군과 스페인 공군이 도입했다. 한국 공군의 경우 미 공군이 운용하던 중고기를 받아서 사용하다가 F-16에 관측장비를 탑재한 RF-16으로 교체하면서 전량 퇴역했다.
RF-4E는 RF-4C의 해외 수출용 기종으로 엔진이 배기가스가 줄어든 J79-GE-17C형으로 교체되었다. 독일, 이스라엘, 일본, 그리스, 터키가 도입했다. 기본적으로는 비무장기이며 무장 운용능력은 각 운용국의 자체 개량에 의해 부여되었다. 독일공군의 RF-4E중 일부는 전자정보 수집기로 개조되었다.
한편, 일본 항공자위대와 이스라엘 공군의 경우, RF-4E외에 기 보유한 전투기형 기체를 기반으로 한 별도의 정찰형을 만들었다. 상세는 아래 참고.
  • QF-4x: 무장 및 방어 시스템 연구에 사용하기 위해 퇴역한 기체들을 원격 제어 무인기로 개조한 것.
기본적으로는 원래의 기체에 원격 조종 능력을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무장 운용 능력은 거의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현용기들의 미사일 실사격 표적 외에도 각종 무장이나 전투장비의 시험 및 연구용으로 다양하게 운용되고 있으며, 조종사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시험 임무에 원격 조작으로 투입한다. 일례로 신형 대레이더 미사일 시험 때 QF-4G를 발사 플랫폼으로 사용하면서 무인 원격 조종으로 운용한 바 있다.
무인기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운용은 조종사가 탑승해서 하고 있다.[11] 현역 시절 그대로의 도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행사에 동원되는 기체를 제외한 나머지 기체들의 색은 많이 바랜 상태이다. 본 문서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F-4들이 바로 행사용으로 때 빼고 광 낸 QF-4들이다.

6.2. 수출형


  • F-4EJ/EJ改(kai): 일본 항공자위대용. F-4E를 일본에서 면허생산한 형식으로 당시에는 철저하게 공중전, 요격 전용기로 도입되었다. 때문에, 기본적인 공중전 장비 및 능력은 원본과 비슷하나, 대지공격능력, 공중급유기능, AN/AJB-7 폭탄투하 시스템이 삭제되었다. 많은 시스템이 일본제 시스템으로 변경/ 장착되었다. 예를 들어 J/APR-2 기미부 경보 레이더가 장착되었으며, 일본제의 BADGE(Base Air Defense Ground Environment)가 장착되었다. 외형적으로는 기수는 E형의 후기형이면서도 주익의 연장 슬랫(slat)과 미익의 안정기가 없는 전기형의 특징이 섞여있다.
이후, F-15J가 도입되면서 EJ改(kai)형으로 개수되었다. 록다운, 슛다운 기능이 부가된 AN/APG-66J 펄스 도플러 레이더[12], 중앙 컴퓨터, HUD, 피아식별장치, 관성항법장비, J/APR-6 레이더 추적/경보 시스템, AN/ALQ-131 EMS 포드(옵션) 등이 교체되었다. 또한 EJ형에서 삭제되었던 전폭기로서의 지상공격능력이 부활하여 ASM-1 공대함 미사일과 ASM-2 공대함 미사일을 2발까지 장착이 가능하고 광학유도폭탄 투하 시스템도 새로 추가되었다.
일부 기체는 정찰포드[13] 운용 기능이 추가되어 정찰기로 개수되었으며, 이 정찰기 사양은 RF-4EJ로 명명되었다.
  • F-4F: 독일 공군용. 처음엔 E형을 간략화한 형태로 개발되었다.1973년에 초도기를 인수했으며 원래는 오래 써봤자 10년만 쓰려고 했다. 초기형은 공중급유, 공대공 기능, 레이더 기능 등이 간략화[14] (따라서 AIM-7 운용 불가...BVR 불가...어?)되었다. 전체적으로 E형 후기형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미익의 안정기가 없다.
하지만, 스패로우 운용능력을 비롯해 초기 배치 당시에 빠진 각종 기능들 대부분은 도입 10년도 채 안 된 1980-83년 사이에 오리지널에 준하는 수준으로 복구되었고, 이후, 예상외로 장기간 운용하게 되자 1990년대에 F/A-18의 APG-65 레이더를 장착하는 마개조를 실시하였다. 이 개조형은 ICE형이라 불리며, 이를 통해 디지털 무장 컴퓨터, 전자 대응수단, 조종석 디스플레이 등의 시스템을 갖추고, 각종 무장 운용능력 역시 업그레이드되어 F-4 계열기 중 유일하게 암람을(AIM-120A) 사용할 수 있다.[15]
독일통일 직후 (구 동독 공군 소속이었던) MiG-29와 훈련했을 때 구소련식 전술에 얽매여서 움직이는[16] MiG-29를 손쉽게 털어먹은 적이 있다.
  • Phantom FG.1(F-4K)/FGR.2(F-4M)/F.3(F-4J)[17]: J형을 기반으로 개량한 영국군형. FG.1은 영국 해군용, FGR.2와 F.3는 영국 공군용이었다. 이 중 F.3형은 F-4J를 그대로 채용한 것이므로(운용국 문단을 참고), 여기서는 FG.1과 FGR.2에 대해 설명한다.
1960년대 영국군의 주요 군용 전술기 개발은 정치적, 재정적 문제로 인해 시간만 끌다가 줄줄이 무산되기에 이른다. 공군과 해군이 공통으로 사용할 초음속 수직이착륙 전투기 컨셉의 P.1154가 취소[18]되면서 영국 해군의 함재기 교체가 급해졌다. 영국 공군의 경우에는 더 심각했는데 전투기 교체 계획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도 모자라서, 캔버라 폭격기의 후속기로서 개발되던 TSR.2가 취소되었고 그 대안으로 논의되었던 F-111의 도입도 무산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빠른 시일내에 전력화가 가능한 미국제 기종의 도입을 결정했지만, 2차 대전 당시부터 영국이 늘 그래왔듯이 자국 군수업체의 일감을 확보한다는 명목하에 주요 구성품을 자국산으로 채울 것을 요구했다. 거기에다 미 해군의 항공모함보다 크기가 작은 자국의 항공모함에서 함재기로 운용해야 했으므로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영국군형 F-4들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엔진을 롤스로이스의 RB.168-15R Spey 201 터보팬 엔진으로 교체하였고, F-4J의 AN/AWG-10 사격관제 시스템을 자국제 AN/AWG-11 사격관제 시스템으로 변경하였다. 외형상의 특이점은 엔진 변경 때문에 엔진 노즐이 원래의 F-4보다 짧고, J79보다 직경이 큰 엔진을 넣기 위해 후방 동체의 볼륨감이 더욱 커졌다. 문제는 이러한 기체 형태 변화 때문에 고공에서 최대 속도가 떨어지는[19] 단점이 생겨버렸다. 그러나, 그외의 가속력, 항속거리, 상승력, 이착륙 거리 등의 중요한 성능에서는 오히려 10~15% 정도 향상된 수치를 보여주었다. 해군용 FG.1(F-4K)의 경우, 앞부분 랜딩 기어가 미국제 오리지널보다 긴데[20], 이는 당시 영국군이 운용하던 항공모함 크기가 미국보다 작아서 더 짧은 활주거리로 이륙할 수 있도록 이함시 기수를 치켜세우기 위해서였다. 배치 초기엔 엔진 노즐을 빼면 쉽게 눈에 띌만한 외형적 특징이 없었으나, 1970년대 초반에 자국제 전자전 장비가 추가되면서 수직꼬리날개 끝단에 사각형 구조물이 생겼고, 수직꼬리날개 옆으로 안정핀이 추가되면서 영국군형 특유의 외형적 구분점이 하나 더 생겼다.
  • Kurnass: 이스라엘이 도입한 E형에 대해 이스라엘에서 별도로 부여한 명칭. Kurnass는 히브리어로 '큰 망치'라는 의미이다. 1969년 구매 당시 이스라일이 종심 타격이 가능한 기종을 원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었다. 처음에는 미군에서 사용하던 중고 F-4E를 들여와서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이후 이스라엘의 독자적인 개량이 진행되면서 기체 안팎으로 Kurnass 특유의 개성이 나타났다.
1973년에 연장 슬랫을 추가하고 1975년에는 동체 내부에 자체적으로 개발한 항전장비 및 채프/플레어 투하 장치를 설치했다. 이후 1978년에 몇 가지 특징적인 개수가 이루어지는데, 기수 근처에 공중 급유구가 고정되고(이 경우는 항시 고정되어 드러나 있다.) ECM 장치가 동체에 내장된다.
이후 이스라엘은 F-4-2000 슈퍼 팬텀 혹은 kurnass 2000이라고 이름붙인 마개조계획을 세운다. 엔진을 라비 전투기에 사용할 예정이었던 PW1200 엔진으로 교체해 비행 성능을 높이고 A-12용 레이더인 APG-76 레이더를 장착하고 전자장비 교체 및 컴퓨터 교체, 기체 강화, 통신장비 강화, 이스라엘제 무기 추가, 연료누출 방지, 공중 급유용 장비 장착, M61을 30mm 기관포로 교체하는 것이다. 예산문제로 엔진과 무장까지 바꾸지는 못했지만 나머지는 1994년까지 이스라엘 공군이 보유한 F-4E 전체에 적용되었다. 한편, PW1200 엔진을 탑재했던 기체는 슈퍼 크루징이 가능하다는 기염을 토했다.
한편, 이 Kurnass를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정찰형도 있다. 이스라엘 공군은 RF-4E를 도입하면서 G-139라는 대형 정찰포드를 같이 운용하려 했지만, 이 정찰포드의 크기와 무게가 어지간한 외부 연료 탱크보다도 휠씬 커서 비행성능 저하 문제가 발생했다. 때문에 F-4E의 기수에 GE와 미 공군의 협조 하에 G-139 포드의 구성품을 내장시키는 개조가 이루졌다. 이 기체들은 옆에서 볼 때는 기존의 F-4E에다가 해군형 F-4의 레이돔이 덧붙여진 듯한 특이한 실루엣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레이돔에는 레이더 대신 대형 카메라가 장비되어 있다. 이들 기체들은 F-4E(S)라고 불리기도 한다.
  • Peace Icarus 2000: 그리스 공군의 현대화된 F-4E. AN / APG-65GY 레이더를 장착했고, AIM-120 AMRAAM, 타겟팅 포드, 신형 공대지 무장의 운용능력이 추가되었다.

6.3. 연구/실험기 및 기타 계획안


  • YRF-4C PACT: F-4B형[21] 62-12200번 기체를 개조한 시험기로, FBW 기술을 시험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PACT는 정밀 항공기 조종 기술(Precision Aircraft Control Technology)의 약자다. 주익 내측 앞전슬랫을 부착하고 이후 카나드까지 부착됬으며, 무게중심을 위해 납 무게추(Lead ballast)까지 내장했다.
  • YF-4E: 카나드가 달린 버전.
  • F-4E(F): 독일 공군을 위한 단좌형 수출기. 계획으로만 남았다.
  • RF-4M: 영국 공군을 위한 정찰형 팬텀. 정찰 기기를 외장 포드로 장착하지 않고 내장시킨 형태로, 생산되지는 않았다.
  • F-4T: 공중 우세기 형태. 계획으로만 남았다.
  • F-4 (FVS): 가변익 형태. 계획으로만 남았다.
  • (R)F-4X: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이스라엘과 합동으로 설계한 계획안으로, 일명 Peace Jack. 고고도에서 마하 3의 속도를 달성하기 위해 외장형 탱크에 9600L의 냉각수를 실었으며, HIAC-1 LOROP 카메라를 장착했다. 이 계획안은 미 국무부가 타 국가가 자국보다 더 좋은 성능의 기체를 보유하게 되는 것을 우려하여 정지되고, 무장 능력을 제거한 RF-4X계획으로 다시 제개되었으나 미 공군이 이 기체가 F-15계획에 영향을 줄 것을 염려하여 중단시켰다. 이후 이스라엘 단독으로 염가형인 F-4E(S)을 제작하여 정찰기로 사용했다.
  • Boeing Super Phantom: 보잉이 프랫 & 휘트니와 합동으로 연구한 계획안. 엔진을 PW1120으로 교체하여 초음속 순항을 비롯한 더욱 높은 성능을 낼 수 있게 하였으나 일찍 중단되었다.
  • IAI Super Phantom: 일명 F-4-2000. 엔진을 PW1120으로 교체하여 애프터버너 없이 마하 1로 초음속 순항이 가능하며, 1987년 파리 에어쇼에 등장하였다. 총 1기 제작.

7. 운용국


10개국에서 운용하고 있으나 점차 퇴역중이다. 지상 공격력이 워낙 출중해서 아직 운용 중이며,[22] 레이더 등을 개수하여 원본보다 현대적인 전투력을 갖춘 경우도 다수 있다.(독일 공군의 ICE가 대표적인 예)

7.1. 미국


1960년에 처음으로 들여온 뒤로 F-4는 미군의 주력 전투기로 운용되었으나, 1980년대 들어 구식화되어가자 미 해군을 시작으로 퇴역을 시작했다. 다른 나라들이 개수에 마개조를 통해 현대적인 항전장비를 장착하고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퇴역할 때까지 HUD 등 현대적인 전투기라면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하는 장비들이 장착되지 않았다.
미 해군의 경우 1960년에 처음 배치되었으며, 1987년을 마지막으로 전투비행대에서 퇴역했다. 미 해군 공중전 센터에서 무인 표적기(Aerial Target)로 운용했지만 이 역시 2004년에 완전 퇴역했다. 미 해병대는 1962년에 처음 수령했으며 1992년에 완전 퇴역하였다.
미 공군에서는 상당히 장수하였다. 첫 배치는 1962년이었지만 정찰형 RF-4C 및 와일드위즐 전용기 F-4G가 1990년대까지 일선에 있었다. 1996년에 마지막 F-4G가 F-16으로 대체되면서 전투비행대에서 완전히 퇴역했다. 그 뒤로도 2010년대까지 미 공군에서 무인표적기로 운용되었으며 이들 무인기들은 2016년 12월 21일부로 완전 퇴역했다. 무인표적기는 F-16을 개조한 QF-16으로 대체되었으며 남은 F-4는 지상목표용으로 전용된다고 한다.

7.2. 한국


대한민국 공군에서 F-4 팬텀 기종의 경우 F-4D, RF-4C를 운용했었고 F-4E를 운용하고 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F-4 팬텀은 1968년 월남전 파병의 댓가로 미국으로부터 도입된 이래 제법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기로 활약했었다. 이전까지 미 공군에서 훈련기나 별반 차이 없는 F-5를 운용하던 대한민국 공군은 F-4의 도입으로 순식간에 유의미한 전력을 가진 공군으로 급부상했다. 당시 최강의 기체였던 F-4를 운용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네 번째였다. 이후 상당 기간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기로 활약했다. 1990년대 초반에 F-4D와 F-4E를 업그레이드하는 독일의 ICE 수준에 맞먹는 사업인 KPU(Korean Phantom Upgrade) 사업을 진행했었다. 실제 독일 F-4F ICE 업그레이드를 실시했던 독일의 DASA사가 이 사업에 제안서를 넣기도 했다. 참고로 다른 경쟁사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사인데, F-16에 사용되는 APG-66 레이더를 사용한 개량 계획을 제시했다.[23]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실시된 율곡사업 특별 감사에서 KFP 사업의 후속으로 F-15의 면허 생산 사업을 전망하여 업그레이드가 무용하다고 판단하여 비용 대 효과가 낮다는 이유로 취소되었다.
이후 KF-16F-15K에 자리를 물려주면서 2010년대 현재는 AIM-7이나 운용하는 관계로 BVR(가시거리 밖 공대공 전투) 능력이 떨어져 제공전투보다는 AGM-65 매버릭, AGM-142 팝아이 등의 공대지 미사일이나 KGGB와 같은 유도폭탄을 이용한 폭격 및 근접항공지원에 주로 투입된다. 사실상 AGM-142 셔틀이며 그 외 다양한 임무는 F-15K가 수행하고 있다. 또한 F-4 팬텀의 경우 2010년대 초반에 RF-4C와 F-4D 계열은 퇴역했고 F-4E는 차후 F-35KFX로 교체되면서 2024년에 퇴역할 예정이다.
  • F-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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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성금헌납기 팬텀. 일명 필승편대
1968년 F-4D형이 최초 도입되면서 시작되었다. 이전부터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에 팬텀기 도입을 요청했지만 처음에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전 파병으로 미 정부 측에 우방으로서 신뢰가 높아졌고, 1.21 사태푸에블로호 피랍사건 등으로 북한의 위협이 가시화가 되면서 미국은 한국의 요청에 응해 한국의 F-4 도입을 승인했다. 한국은 1968년 기종전환훈련을 위한 F-4D 6기 대여를 시작으로 운용했으며 이후 대여한 F-4D를 반납할 예정이였으나 당시 기준으로 최신 전투기였고 성능상으로도 우수한 편이라서 1975년 12월 12일 방위성금으로 구입한 5기가 '방위성금헌납기'로 알려진 기체이다. 그리고 추가로 1969년 최신예 전천후 전폭기인 F-4D 18기를 인도받으면서 장구한 F-4 운용 역사가 시작된다. AIM-7은 약간 뒤에 들어왔으므로 한국 공군이 BVR 능력을 얻은 때는 그보다는 뒤였다.
이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210$ 수준이었던 1969년에 영국이란을 뒤이어 동아시아 최초로 F-4 팬텀 운용 국가가 된 것[24]이다. 당시 국군의 베트남전 3차 파병과 관련하여 제공된 특별군원 1억 달러 중 64%인 6400만 달러를 들여 도입하였다. 당시 북한 공군은 한국보다 양적, 질적 면에서 월등하여 빈번하게 공중도발을 자행하였다. 그러나 F-4 도입 이후 2010년까지 북한의 공중도발은 일체 없었다.[25]
F-4 팬텀의 도입 과정에는 논란이 있다. 많이 알려진 카더라 통신은 장지량 장군의 회고에 따른 것으로 미국은 F-104을 주려 했지만 그 기종이 문제투성이라는 것과 팬텀의 우수성을 알고 있던 자신(장지량)이[26] 박정희에게 그 기종은 절대 안되고 F-4를 받아야 한다고 설득했고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주장으로 F-4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지량 장군의 회고 이외에는 근거가 전무하고 F-104를 공여하는것이 거론된 것은 그보다 더 이전의 이야기이며 F-104 공여가 거론된 당시 한국이 원한 기종이 F-104였지만 미국측에서 F-5로 변경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게다가 장지량 장군의 경우 회고록에서 자신의 상관이었던 김영환 장군의 공적을 가로채려다가 유족들에게 걸린 전적도 있는 만큼 다른 근거도 없는 장지량 장군의 회고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여하튼 월남전 때 한국 공군의 F-5A 36기와 RF-5A 8기의 남베트남 공여 문제가 있었는데 박정희 정부는 남베트남에 F-5A를 넘기는 대신 미국에게 F-4D를 제공받기로 합의하였다. 이렇게 해서 총 18대의 F-4D가 도입되었다.

하여튼 2010년대 F-35급 위상의 전투기를 일본보다 먼저 수령한 셈이다. 이로써 대한민국 공군은 한동안 중국, 일본, 대만을 제치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공군력을 자랑하게 됐다. 이 때 미군으로부터 F-4D가 최초로 공여될 당시에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급하게 미군의 실사용기를 들여왔는데 핵투발 기능이 삭제되지 않은 채로 들어오면서 핵발사 버튼이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당시 일본이 이를 두고 강력 항의했었다.[27]
다만 F-4D의 경우 F-4E와 다르게 내부 기관포가 없고 외부에 기관포 포드를 장착해서 운용하는 방식으로 발포할 때마다 조준점이 약간씩 틀어져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 T-50 골든이글의 개발비화에 의하면 국산 전투기가 아니고 미국에서 대여/구입한 전투기라서 함부로 마음대로 뜯어서 고칠 수가 없어서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했다는 카더라도 있었다.
F-4D를 사고로 손실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는 카더라가 있는데 이 때 미국에서 분석하기로는 사실상 새로 구매해야 된다는 의견이 강했지만 1970년대 당시 경제력으로는 새로 구매하기 힘든 상황에서 공군에서 겨우 복구하여 다시 배치한 일화도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후 한동안 잘 운용하다가 2010년 6월 16일자로 41년 만에 퇴역했다.
  • F-4E

현재 운용중인 F-4E 팬텀 30여 대는 1976년과 1978에 도입된 기종이며 이후 1989년 10월 MIMEX(주요 잉여물자) 사업으로 미군이 운용한 기종을 일부 RF-4C와 함께 도입하였다. 이후 제17전투비행단 산하 3개 대대에서 한동안 잘 운용하다가 노후화가 되면서 2013년 8월 1일에 미군이 운용하다가 도입된 F-4E 기체들을 우선으로 순차적 퇴역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2018년부터 F-35A 도입이 되면서 순차적 퇴역 및 비행대대 통폐합을 거쳐 제10전투비행단에 재배치되어 운용 중이고 2024년에 전량 퇴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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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사관학교로 육로 수송되는 블랙이글스 마킹 F-4 팬텀 II
대전광역시에서 계룡시로 넘어가는 도로변에 전시된 퇴역 기체[28]
2013년부터 순차적으로 퇴역한 F-4E 1대는 2013년 10월 4일 10시 퇴역절차를 마치고 공군사관학교운반되었다. 블랙이글스과 유사하게 스페셜 마킹되었다. 다만 이 기체의 스페셜 마킹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많다. 팬텀이 블랙이글스 기종으로 활약한 적도 전혀 없을뿐더러 우리나라 공군 전통의 기체도장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데 굳이 블랙이글스 도장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겠냐는 의견이다. 이 외에도, 간지나는 외형과 상징성 탓인지 전국 곳곳에 전시물로 전환된 팬텀들이 꽤 된다. 거의 해군의 S-2 대잠초계기 수준으로 뿌려져 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 공군이 분석하기로는 아직 F-4E 계열을 향후 10년 이상 운용이 가능하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단종되어 부품을 더 생산하지 않아 조달이 어렵다. 그래서 스페인, 터키, 독일, 노르웨이 등 F-4를 운용하는 국가가 보유하는 잉여 부품을 구매했으며, 민간 군수업체까지 동원하였다. 그러나 운용 국가가 점차 줄어들어감에 따라 단종 부품은 늘어갔다. 공군에서는 부품 돌려막기를 사용하다가 이후 공군 군수사령부는 일부 F-4의 부품 국산화를 시작으로 점차 국내 항공산업의 발전 등의 영향으로 국산화된 부품이 늘어났고 그 결과 이러한 기사도 등장했다. 심지어는 노후된 부품을 금속 3D 프린터로 찍어내어 유지보수 해보니, 미국에서 조달받는 부품가격보다 훨씬 저렴했다고 한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2010년대 초반에 퇴역한 F-4D와 2024년에 퇴역할 F-4E의 경우 2000년대 중반에 F-15K이 도입되면서 노후화된 일부 기종이 어느 정도 대체가 되었으며 그나마 운용 중인 남은 F-4E도 F-35A로 순차적으로 대체하면서 2024년에 전량 퇴역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F-5E/F의 경우 KF-X가 120대 정도가 실전배치되는 2030년까지 운용할 예정. 즉 이런 노력이 있어 F-4의 가동률은 F-5, KF-16의 가동률을 상회하는 90%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갈수록 가동률이 떨어져서 15년에는 81%로 같은 해 85%와 84%를 기록한 F-15K, KF-16에게 밀렸고 17년에는 76%로 감소하고 2020년에는 목표치인 75% 아래인 71%로 떨어졌다. 아무래도 노후화가 심해지다보니 정비소요가 늘어나는듯.
  • RF-4C

대한민국 공군은 RF-4C를 도입했었다. RF-4C는 미군에서 1969년 이후로 취역하여 운용한 기종으로 1989년 10월 MIMEX(주요 잉여물자) 사업으로 미군이 운용한 기종을 일부 F-4E와 함께 도입하였다. 이후 2010년대 초반까지 운영하여 RF-4C의 실 운용기간이 40년 이상을 운용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2010년 추락한 RF-4C은 44년 운용했다. 이후 ADD가 개발한 국산 전자전기장비를 장착한 RF-16이 등장하면서 2014년 2월에 RF-4C는 완전히 퇴역하면서 지난 1989년, 18대가 처음 도입되었던 팬텀기의 세 번째 개량형인 F-4C가 전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서 퇴역했다. RF-16과 관련해서 자세한 내용은 F-16 항목 참조.

7.3. 일본


일본은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E형을 EJ로 명명하여 138대를 면허생산했다(최종 도입수량은 140대).[29] 도입과정에서 평화헌법으로 인하여 공중급유, 지상 공격 능력이 제거되었고, 대신 국산화비율을 높이며 일본 자국산 장비가 들어갔다. 기수는 재설계된 후기형이지만 주익은 연장 슬랫(slat)이 없는 초기형이다. 또한 정찰용으로 따로 RF-4E형도 13기 도입했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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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식 유도장치가 부착된 MK.82 폭탄을 탑재한 F-4EJ kai
후에 F-15를 도입하면서 기존의 F-4EJ도 개수에 들어갔는데 이것이 F-4EJ KAI(改)이다. 개수형은 기존에 삭제되었던 공중급유능력과 지상공격능력이 추가되었고 일본산 ASM-1/2 공대함 미사일 AAM-3 공대공 미사일 운용능력도 추가 되었으며 레이더 및 각종전자장비들도 개수하여 기존의 F-4EJ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갖추게 되었다. 일부 기체는 도색도 대함 임무등 해상작전을 위해 기존 회색 대신 F-2와 같은 청색 해양위장무늬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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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전자전 포드와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한 RF-4EJ
또 일부 기체는 정찰용으로 개조하였는데, 정찰용 RF-4EJ도 기존의 화력제어시스템 및 무장 하드포인트는 그대로 남겨두어 정찰 임무 및 전투 임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2017년 10월 18일 오전 11시 45분 한 대의 F-4EJ 1기가 전소되었는데, 이상한 점은 이륙을 위해 지정된 활주로로 이동하던 도중에 왼쪽 뒷바퀴에 불이 붙었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여러 밀리터리 커뮤니티에서 도대체 어떤 상황이 갖춰져야지 활주로로 이동하는 도중 바퀴에 화재가 일어나 전투기 한 대가 전소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화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사 결과 F-4 팬텀이라는 기종 자체가 전체적으로 노후화되어 금속피로 같은 원인으로 바퀴 부근에서 균열이 생긴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으며 전소된 F-4EJ 역시 도입된지 이미 30년이 넘은 최고로 노후화된 기종이 었다. 이때문에 이미 2019년부터 순차 퇴역하고 있었으며, 2020년까지 모든 F-4EJ가 퇴역한다. 대체기종은 F-35A다.
2020년 고노 다로 방위상이 점점 증액되고 있는 방위비(국방비)에 보탬이 되고자 퇴역하는 F-4를 폐기하는 대신 부품별로 분해해 다른 퇴역물자들과 함께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7월 26일에 실제로 경매가 이루어졌고 무려 581만 8000엔의 수익을 올렸다.#
2020년 11월 21일, 세계에서 가장 최후로 제조된 기체를 포함, 모든 F-4가 항공자위대의 전투비행대에서 퇴역했다.링크 링크 2 2021년까지 비행개발실험단에서 운용하는 기체들도 모두 퇴역할 예정이다.

7.4. 영국


영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F-4를 운용하였다. 운용한 기종은 K, M, J형이며, 이들은 각기 팬텀 FG.1, 팬텀 FGR.2, 팬텀 F.3라는 제식명을 부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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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군에서 사용된 F-4K Phantom FG.1
해군용인 팬텀 FG.1(F-4K)은 총 48대가 생산되어 1968년부터 배치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CVA-01급 2척과 오데이셔스급 2척에서 총 140대를 운용할 계획이었으나 CVA-01이 취소되면서 생산량이 1/3로 줄었다. 하지만, HMS 이글의 개장이 비용문제로 취소됨에 따라 HMS 아크 로열에서 운용할 28대만 영국 해군에 남고 나머지 20대는 영국 공군으로 돌려졌다. 영국 해군에 배치된 28대의 팬텀들은 700 비행대대에서 작전 능력을 평가받은 다음 767, 892비행대대에 배치되었다. 767비행대대는 지상기지에서 훈련임무에만 종사하였기 때문에 항공모함에서 운용되는 팬텀은 전부 892비행대대에 배치되었으며 종종 미 해군 항공모함에서 작전을 뛰기도 했다.[31][32] 767비행대대는 1975년에 해체되었고 1978년에 HMS아크로열이 퇴역하면서 892비행대대도해체되었으며 해군에서 운용하던 FG.1은 전부 공군으로 이관되었다. 이들 FG.1은 111비행대대에 배치되었다가 1990년에 파나비어 토네이도로 대체되고 전량 퇴역하였다. 한편 처음부터 공군에 배치된 팬텀 FG.1은 43비행대대와 64비행대대에 배치되었다. 43비행대대는 1989년에 파나비어 토네이도로 기종전환을 하였고 64비행대대는 1991년에 해체되면서 FG.1은 영국군에서 완전히 퇴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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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군에서 사용된 F-4M Phantom FGR.2
공군형 중 하나인 팬텀 FGR.2(F-4M)는 1969년부터 총 118대가 배치되었으며, 해군에서 받은 FG.1과 함께 호커 헌터를 대체하였다. 영국 공군은 이들 기체를 방공, 근접항공지원, 정찰 임무에 투입하였으며 이후 SEPECAT 재규어블랙번 버캐니어가 배치되면서 방공임무에 더 집중했다. 포클랜드 전쟁 이후 영국은 1개 비행대대(23 비행대대)를 포클랜드에 배치하였고 1988년에 역시 FGR.2를 보유한1435편대에게 임무를 넘겨주고 본토로 돌아왔으며 1435편대는 1992년 7월까지 FGR.2를 운용하였다.[33] 1987년부터 방공형 파나비어 토네이도인 토네이도 ADV가 배치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기 시작하여 1992년에 최종 전량 퇴역했다.
또 다른 공군형인 팬텀 F.3(F-4J)은 포클랜드 전쟁 이후 증가한 방공용 요격기 수요를 채우기 위해 급히 도입하였다. 포클랜드 전쟁이 끝난 뒤, 영국 공군은 1개 전투비행대대의 팬텀 FGR.2를 포클랜드 제도 방공임무에 투입하였다. 이로 인해 생긴 본토 방공의 공백은 방공형 파나비어 토네이도로 메우려 했으나 방공형 토네이도인 토네이도 ADV의 개발과 배치가 지연되자, 1984년에 미 해군의 중고 F-4J를 15대 도입하여 1개 비행대대를 편성하였다. 이들 기체들은 토네이도 배치까지의 공백을 메우고 1991년에 퇴역했다.

7.5. 이란


지금이야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사이가 됐지만 한때 팔라비 왕조가 다스리던 이란과 미국은 사이가 아주아주 좋은 나라였다. 이 때의 이란은 C-130이나 F-4 뿐만이 아니라 F-14[34]까지 구입해 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집권하면서 반미/반서방 노선을 걸었고, 당연히 미국은 모든 미제 무기에 대한 부품 공급을 끊어버렸다. 이후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이란은 제3국을 통한 부품 조달을 시도했는데[35] 중동 석유에 국가경제가 걸려있는 한국이 여기에 응답해서, 전쟁 기간 내내 이란에 F-4 팬텀을 포함한 주요 미제 무기들의 부품을 공급하였다. 미국은 이를 알고도 모른척 그냥 넘어갔는데 이란-콘트라 사건이 아직 밝혀지기 이전이라 이런저런 이란과 유착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란 공군 소속의 F-4E 편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F-15 편대와 교전을 벌이다가 모두 격추당한 사건도 있다. 맥도널 더글러스 사의 전투기끼리 교전을 벌인 것은 저 때가 유일하다고 한다. 맥도넬 더글라스 사는 이후 보잉에 인수합병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맥도넬 더글라스 사의 전투기끼리 교전을 벌이게 되는 경우는 보기 어려워졌다.

7.6. 독일


1973년부터 1976년까지 170여기가 도입된 독일 공군의 F-4F는 원래 스패로우 운용능력과 7번 내부 연료 탱크 및 공중급유 능력의 삭제, 화기관제 시스템 능력 다운 등을 실시한 다운그레이드 모델이었다. 그러나 1980-1983년 사이 F-4F를 개량, 기존에 제외되었던 F-4E 수준의 능력을 회복했다가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전력화까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ICE(Improved Combat Efficiency) 업그레이드를 실시, 결국 AIM-120A AMRAAM까지 운용할 수 있는 최강의 F-4를 만들어냈다. 참고로 F-4를 운용하던 제72전투비행단(JG 72)에서는 MiG-29G/GT도 함께 운용했다. 그런데 정비보수가 번거롭고 기종 자체가 노후된 이유로 유로파이터가 도입되자 2009년 MiG-29G/GT는 전량 퇴역하여 폴란드로 수출되었고, F-4F 역시 수명연장 계획을 거쳐 2013년 6월까지 운용하다가 퇴역했다고 하지만, 2020년에도 운용 중인 기체가 확인되었다.[36]

7.7.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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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정식으로 도입한게 아니라 노후된 캔버라 폭격기의 후계기로 주문해놨던 F-111의 인도가 기술적 문제로 기약없이 늦어지자 1970년 미 공군에서 멀쩡하게 사용하던 F-4E 24대를 임대, 1973년까지 사용했다. 어느 정도 운용해본 호주 공군은 F-4의 성능에 상당히 만족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김에 F-111의 계약을 모조리 취소하고 F-4를 정식으로 도입하자는 주장까지 나왔으나, 기껏 한 국가가 아닌 크고 아름다운 오세아니아 대륙을 방공영역으로 삼아야 하는 호주 입장에서는 F-111의 사기적인 항속거리가 무척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고...[37] 결국 미국에 반납 후 F-111을 수령해서 2010년까지 마르고 닳도록 운용했다.
1971년 훈련중 1대를 상실했고 최종적으로는 23대를 반납했는데, 추후 이 기체들은 대부분 F-4G 와일드 위즐로 개조되어 걸프 전쟁에서 신나게 이라크 방공망을 제거하는 활약을 펼친다.

7.8. 기타 국가


  • 그리스 공군도 F-4 팬텀에 암람 운용능력을 부여했다고 한다. 현재 33대의 F-4E를 운용중이다.
  • 스페인 공군은 1971년 F-104, F-86을 대체하는 목적으로 F-4C와 정찰형 RF-4C를 도입했다.(두 기종 모두 미국 주방위군에서 사용하던 중고기) F-4C는 1989년까지 운용하고 EF-18로 교체했다.
  • 터키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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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번째 생산기(F-4E)는 화려한 기념 마킹으로 스케일 모델화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기체가 한국 공군 인도분이었으며 2000년대 초반 운용중 사고로 손실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실은 이 기체는 터키 공군 소속이며 한국으로 왔다는 소문은 잘못 알려진 것이고 추락은커녕 2011년 6월 현재까지 잘 운용 중이다. 한국에 들어온 것은 5000번째 생산기체가 아니고 미국내 5057번째 최후생산기(F-4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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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공군은 2020년 기준 F-4E를 48대 운용중이다.
  • 이스라엘

8. 실전사례


서방제 제트 전투기 중 최다 실전 참가 기종이며 그만큼 전투손실 또한 최다를 자랑한다.

8.1. 베트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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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지상 폭격 중인 미국 해군 VF-111 선다우너즈의 F-4B 팬텀.
1964년 월남전에 참전하여 엄호, CAS, 후방차단작전 및 정찰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미 해군이 40대의 MiG기를, 공군이 107대를 격추시켜 전체 MiG기 손실량의 70%(140여 대)를 격추시켰킨 반면에 F-4의 공중전 손실은 해군이 7대 공군이 33대로 합쳐서 40대에 그쳤다. 공중전 손실비만 따진다면 1:3.67로 F-4가 확실하게 우세한 성과를 올린 셈. 그러나 미사일 만능주의 때문에 초기형에는 기관포가 없어서 공중전에서 불리했으며, 대공포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된 F-4 숫자가 훨씬 많다. 전체 손실은(비전투 손실 제외) 해군이 73대 공군이 370대로 443대이며 이중 공중전 손실은 40대에 불과하니 대공포와 SAM에 의한 손실이 공중전 손실의 10배까지 나오는 셈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초기 북폭 작전인 롤링썬더 작전에 호위용으로 참가한 F-100이 초음속기도 아닌 MiG-17에 공중전에서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F-105가 MiG-17의 기관포에 격추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미군은 큰 충격을 받았다. F-100과 F-105는 초음속 핵 폭격을 목적으로 설계한 기종이었다. 당연히 핵을 사용하지 못하고 도그파이트를 벌여야 하는 베트남의 상공에서는 당할 수밖에 없기는 했지만.
더군다나 당시 미군은 미사일 만능주의로 인해 공중에서 근접전이 사라질 것으로 짐작하고 도그파이트를 상정한 기종을 전혀 개발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대규모 실전에서 미사일의 명중률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거기다 미군 파일럿들은 높으신 분들이 오인 교전을 막는다면서 '적기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쏴라'라는 지침(ROE, Rules Of Engagement라 한다.)을 내려놓아서 사거리가 길고 적기 전방에서도 조준이 되는 스패로우 미사일의 진가를 살릴 수가 없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초기형 스패로우의 경우 부실한 관리와 유도장치의 저성능으로 인해 가시거리에 가까스로 들어와서야 명중률을 기대할 수 있는 정도로 신뢰도도 낮았다.
결국 적기의 꽁무니를 잡고 보어사이트 방식으로 스패로우를 쏘거나 사이드와인더를 쏘아야 했으며, 꽁무니를 잡기 위해 싫든 좋든 도그파이트를 벌여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F-4는 여타 미군 기종들보다 낮은 익면하중 등 F-100 같은 기종에 비하면 수직 기동을 활용하여 도그파이트 성능에서 우월한 점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F-4가 대MiG용으로 적극 투입되었다.
이 당시에는 파일럿들이 전문적인 도그파이트 훈련을 받지도 못했던 데다 여타 미군 기종들보다는 좋다 해도 F-4는 고전적인 선회전 성능에선 MiG기에게 밀렸기에 베트남전 초기의 북폭 작전인 롤링 썬더 작전 동안에는 고전했다. 제아무리 도그파이트를 수직 기동으로 몰고 가면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전술적인 상황 때문에 한두번의 패스로 승부가 결정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보통 미군은 공격, 즉, 종심 타격을 가하는 입장이었고, 북베트남군은 방어를 하는 입장이었다. 이 말인즉슨, 미군 전투기는 도그파이트를 벌이는 상황이 되면 연료가 부족하여 수직 기동을 마음껏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나온다는 것이며, 적진 깊숙한 곳에서 벌이는 공중전이므로 당연히 심리적인 부담도 엄청났다. 반면 북베트남군 조종사들은 방어적인 입장이므로 격추당해도 탈출해서 살아남기만 한다면 다시 출격할 수 있었기에 항속 거리가 짧은 MiG기들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유리한 입장이었다.
거기다 F-4에는 기총이 없다는 점은 여러 방면에서 약점이 되었다. 적의 꽁무니를 잡고 미사일을 쏜다 해도 미사일에는 최소 사정거리가 있기 때문에 꽁무니를 잡고도 너무 가까워서 공격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일어났다. 그 뿐만 아니라 바로 전방에서 나타나는 적기를 공격할 수단이 마땅히 없다는 점 때문에 F-4 조종사들은 적기가 전방에서 나타날 때마다 매우 난처해했다. 일부 MiG기들은 이를 알아챘는지 미군기를 전방에서 기습하고는 사라지는 전술을 이용하기도 했다.[38]
기관포 문제의 경우 미 공군에서는 "전투기에 기관포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 하면서 20mm 건포드를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D형에 장비해 운용했으며 이런 공군의 불만을 받아들여서 개량한 형식이 바로 F-4E이다.
F-4는 MiG기에 비해 불리한 부분이 많았으나, 반면에 MiG기들을 압도하는 추력과 롤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었다. 미군 파일럿들은 MiG기의 선회전 성능에 대응해 F-4의 추력과 롤이라는 장점을 활용한 3차원 기동을 만들어내면서 MiG기에 대응해 나갔다. 특히 미 해군탑건 과정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도그파이트에 대비한 훈련을 했다. 라인배커 작전이 진행되던 1972년만 해도 2기가 배출될 정도로 열심이었으니... 그러나 미 공군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체계가 잘 잡혀있지 않아서 개념있는 지휘관(예를 들어 볼로 작전의 영웅 로빈 올즈 대령 등...)이 이끄는 부대들만이 제대로 된 기량을 선보였다. 특히, 로테이션 제도 때문에 막상 실전 경험이 조금 쌓이려고 하면 신참들로 교체되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크게 기량이 향상되지는 않았다.[39] 물론, 베트남전 이후로는 달라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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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의 장점을 활용하는 공중전투기동의 개발과 훈련은 베트남전 후반기의 북폭 작전인 라인배커 작전에서 진가가 드러났다. 롤링 썬더 작전 때와는 달리 F-4는 공중전에서 MiG기를 크게 웃도는 성과를 올렸으며, 특히 미 해군은 탑건 과정을 수료한 파일럿들이 대활약하는데 탑건 과정을 수료한 VF-96 소속의 랜디 커닝햄(조종사)과 윌리 드리스콜(RIO/레이더 요격 관제사)[40] 콤비가 베트남전에서 미 해군 최초의 에이스가 되었다.
미 공군은 해군만큼의 도그파이트 훈련이 없고 조종사들간의 능력 편차가 크다 보니 해군보다는 덜 압도적이고 들쑥날쑥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스티브 리치(조종사)와 척 드벨뷰(WSO/화기 시스템 관제사) 콤비가 미 공군 최초의 에이스가 되는 등 롤링 썬더 작전 때보다는 크게 나아진 성과를 올렸다. F-4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전투기가 아닌 SAM(지대공 미사일)을 비롯한 방공망이었다. 롤링 썬더 작전 초기에는 RWR도 장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주변을 잘 살피다가 SA-2가 내뿜는 수직 비행운을 감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총이 없어 상대적으로 해군형 F-4가 공군형에 비해 공중전에서 밀렸지만, 베트남전 당시 공중전 격추 비율로는 해군이 공군보다 더 우수한 성과를 올렸다. 이는 탑건 훈련도 영향이 있었고, 미사일도 해군의 AIM-9이 더 추적 능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관리부실 때문에 불량품이 넘쳐난 것은 공통적인 사항이지만...
한편 미 공군,미 해군 모두 F-4를 운용해보니 공중전에서뿐만 아니라 지상 폭격 등 다방면으로 쓰기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때문에 F-4는 베트남전 내내 MiG기 사냥만이 아니라 여러 대지 공격 임무에도 다방면으로 쓰이며 멀티롤 파이터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미 해병항공대의 경우 주 임무가 지상공격이나 지상지원이다보니 이러한 멀티롤 능력이 더욱 각광받았다.

8.1.1. 기관포


F-4 초기형에는 기관포가 장착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로는 미사일 만능주의도 있지만 1960년대의 기술로는 기수에 레이더를 집어넣으면서 발칸포까지 넣기 힘들었기 때문인 탓도 있다. 당시 레이더는 진공관을 사용했는데, 진공관은 진동에 매우 취약하다(백열전구를 여러 개 꽂은 기판에 큰 진동을 가하면 과연 어찌될까 생각해보자.). 기관포를 기수 근처에 배치하면 진동이 생길 테고, 그러면 레이더의 진공관 회로를 보호하기 힘들었다. 덤으로 초기 공대공 미사일들의 정확도가 엉망이었던 이유도 이 진공관 회로 때문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기술이 발전해서 개량형 레이더가 개발되는데, 당시 기관포 포드를 장착해 사용한 공군은 진동 때문에 명중률이 좋지 않다는 것을 발견[41]하고 결국 동체안으로 내장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때문에 진동을 이겨낼 수 있게 개량된 레이더와 발칸포를 기수에 넣은 E형을 원했다. 반면 해군은 아무래도 함대방공을 좀 더 중요시하고 작전교리상 룩다운 능력이 있는 더 큰 레이더가 필요했기 때문에 기수에 기총을 장착할 공간이 부족해서 기총이 장비되지 못했다. 이것이 J형이다.
다만 해군 역시 공군의 SUU-23A에 비견되는 Mk.4 20mm 건포드(이쪽은 개틀링이 아닌 리볼버 캐논)을 가지고 있었으나 널리 쓰이지는 않고 이러저러하다 도태되었다. 미 해군의 리볼버식 건포드는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었다. 거의 흑역사급.
미 해군에서는 기관포 문제로 F-8 조종사와 F-4 조종사들 사이에서도 미묘한 자존심 싸움이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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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후반기에 활약한 F-4 운용 부대 중 366전술전투비행단은 북베트남 보병들이 자꾸 집적대자 빡친 나머지 보유한 F-4E에 SUU-23A 건포드를 추가로 2기 탑재, 거기에 Mk. 20 록아이 클러스터 폭탄까지 매달아 지상을 쓸어버리기까지 했다. 20mm 기관포 3문(고정탑재 1문+건포드 2문) 일제발사도 가능했는데, 위력은 조종사의 말에 의하면 "땅을 갈아엎는듯 했다." 라고 한다. 관련자료 1, 관련자료 2
그리고 F-4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초음속 상태에서 기총으로 적기를 격추시킨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기록의 주인공은 필 핸들리(Phil Handely) 소령으로 1972년 6월 2일의 공중전 도중 북베트남의 MiG-19가 그 동료기를 추격하자 AIM-7 2발을 발사했으나 1발은 그냥 떨어지고 1발은 빗나갔다. 그래서 꼬리를 잡고 AIM-4를 발사했는데 또 2발 다 빗나가서 결국 M61 벌칸으로 격추시켰다. 이때 핸들리 소령의 F-4는 마하 1.2로 비행하고 있었다.[42]

8.2. 중동전쟁


1967년 제3차 중동전쟁과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 F-4는 이스라엘군 전폭기로써 우수한 성능을 발휘했다. 개전 초기에는 큰 희생을 치렀지만 다마스커스의 시리아군 참모본부 폭격 및 수에즈운하의 이집트군 부교폭격 작전에서 크게 활약했다. 조엘 아로노프라는 미 공군 출신 조종사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나중에 이스라엘로 이주해 이스라엘 공군에 입대했는데 4차중동전에서도 팬텀기를 조종해 베트남전과 중동전에 참전한 유일한 팬텀 조종사라는 이례적 기록을 세웠다.

8.3. 걸프 전쟁


걸프전에서는 적 방공망 교란 및 제압 작전(와일드 위즐)에 투입되었다.

9. 대중매체




러시아에는 팬텀(Фантом)이라는 노래가 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팬텀 조종사가 비밀리에 파견된 소련 조종사들에게 격추당한다는 내용. 원조를 알 수 없는 노래라서 여러 버전의 가사가 있다. 노래 배경에 대한 설명과 또다른 버전의 노래.
Cat Shit One에 F-4G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F-4G 1기가 대공포에 격추되고, 페키와 레츠는 상관으로부터 조종사들을 구출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기밀이 넘어가지 않도록 그들을 사살하라는 명령[43]을 받는다. 이미 전방 조종사는 탈출하지 못하여 전사하였지만, 레츠와 퍼키는 부조종사를 월맹군으로부터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미 척추가 골절되는 등 중상을 당했던 부조종사는 레츠와 퍼키에게 가족사진을 보여준 후 사망한다.

9.1. 등장 게임


유명한 기종이니만큼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에 많이 등장했다. 1990년대 초에 출시된 '척 예거의 공중전'에서도 베트남전 전장에서 탈 수 있다. 이후 같은 회사(EA)에서 출시된 USNF 97에서 베트남전 배경 켐페인에서 탈 수 있고, Jane's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불릴 만한 USAF에서도 탈 수 있다. 이후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탈 기회가 없다가 Strike Fighters가 출시되면서 또다시 탈 수 있게 되었다.
에이스 컴뱃 시리즈에서는 첫 작품부터 게임 시작시 주어지는 스타트 기체로 등장하여[44] 먼 미래를 다루는 3편을 제외한 전 시리즈에 초기 스타드 기체로 개근 중이'''었'''다. 에이스 컴뱃 4까지도 모비우스 1의 첫 기체로 등장했으나 에이스 컴뱃 5에서는 F-5E 타이거 II가 초기 워독 편대의 탑승기로 나오고 F-4E는 워독 1의 기체로 등장하여 초기 기체의 자리에서는 밀려났다. 무장은 주로 공대지에 특화된 편으로,[45] 공대공 선택 무기는 현실을 매우 충실하게 반영해서(?) SAAM만 있다. 등장 기종으로는 주로 F-4E가 나오지만 에이스 컴뱃 5에선 F-4G와 F-4X가 파생형으로 등장했다. 이 F-4를 애기로 삼는 에이스 디트리히 켈러만에이스 컴뱃 제로에 등장한다. 에이스 컴뱃 6에서 캐스팅에서 제외되기 시작하더니 이후로는 에이스 컴뱃 어설트 호라이즌에이스 컴뱃 7에서 쭉 초기 예약 특전기체로만 나오는 중.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서는 NATO군 및 그 협력국들의 다양한 F-4 계열기가 나온다. 한국 공군과 일본 항공자위대 역시 F-4를 운용하며, 미군은 F-4G 와일드 위즐도 운용한다.
Strike Fighters에서는 Wings Over Vietnam에서 등장하며 적기는 MiG-21 피쉬베드, MiG-17 프레스코 등이다.
Wings Over Israel에서 등장한다.
스트라이커즈 1945 III에서는 속도와 파워 모두 준수한 기종으로 나왔다. 보조 무기는 네이팜 탄인데 사거리는 짧지만 일직선상의 적들을 모두 관통하고 위력도 뛰어나다. 차지 샷은 현재 자리에 비트를 설치하고 그 비트가 네이팜을 일직선상으로 연사하는 설치형 차지샷으로 보스전에서 절륜한 위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봄은 전통의 필살기 사무라이 소드. 네이팜의 사거리만 극복한다면 좋은 기종이지만 네이팜 의존도가 높을 정도로 일반 사격이 약해서 상급자용이다.
라이징 스톰 2: 베트남에서는 미군, ANZAC 지휘관의 지원 스킬 중 하나로 등장한다. 네이팜을 들고 지정한 목표지점으로 날아가는데, 저고도에서 갑자기 날라와 네이팜만 툭 떨구고 튀기때문에 SAM호출로 잡을려면 그냥 미리 SAM 불러놔야 격추가된다, 실력있는 지휘관들은 F4 쿨타임 시기를 노려 SAM을 부르기도 한다, DSHK 중기관총에도 격추가되며 RPG로도 가능하다. 인터레스팅......
팰콘 4.0 시리즈의 한반도 전장에서 대한민국 공군의 D/E형과 일본 항공자위대의 EJ형이 구현되어있다.
도미네이션즈에서 냉전 시대의 첫 번째 전투기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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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C'''
'''F-4E'''
'''F-4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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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M (FGR.2)'''
'''F-4K (FG.1)'''

워썬더 1.91 패치로 F-4C형이 추가되었다. 기본 사양은 동체 하단에 장착되어있는 건팩 1문. 추가로 1.97 패치로 F-4E 팬텀도 추가되었다. 처음에는 MiG-21에 밀리는 듯 했으나, 이후 기체 특성 및 이를 이용한 활용법을 유저들이 알게 되면서 어느정도 밸런스가 잡혔다. 이후 F-4E가 추가되면서 AIM-9J 형까지 등장하자 아예 상황이 뒤집어져 MiG-21은 그냥 밥이 되었다. 그리고 애초부터 기동성이 이외로 둔한편인 MiG-21에 밀리던 팬텀의 절망적인 수준의 선회력 때문에 2020년 중반부터 잡는건 간단해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MiG-21뿐만 아닌 기동성 끝판왕인 미라지와 드라켄마저 나와 대부분이 근접 기동전으로 이루어지는 후반으로 갈수록 게임에서는 일방적으로 썰려나가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현재는 R60의 유도 성능이 많이 애매해졌으며, 프랑스와 스웨덴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아군으로 만남과 동시,미그유저 대부분이 능지가 상당히 떡락한탓에 탑젯방 최강자가 되어있다.
미국 이외에도 일본 수출형인 F-4EJ, 영국 수출형인 F-4M (FGR.2) 그리고 F-4K (FG.1)가 추가되었다. 모든 팬텀들은 RWR과 플레어(F-4C 제외)를 가지고 있다.
1.101패치로 모든 팬텀유저들이 대망하던 AIM-7E 스패로우 미사일이 추가되었다...지만 스패로우 미사일을 정상적으로 쓰는방법이
너무 어려운탓에 스패로우의 적절한 운용법을 모르는 장비빨만 믿고타는 유저들 일명 능지딸린 유저들은 쓰레기라고 우기고있다...
그덕분에 유저 능지측정기로 잘쓰이고 있는중이다.
마브러브 시리즈에서는 2족보행 병기로 등장한다.

9.2. 등장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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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개
  • 1981년 미국에서 방영된 TV 영화 '레드 플래그 : 디 얼티밋 게임'에서 주역기로 등장했다. 미 공군의 레드 플래그 훈련을 소재로 했으며 플롯은 5년 후에 나온 영화 탑건과 비슷하다. 시대가 1981년인 관계로 주인공들의 전투기는 F-4, 교관의 가상적기는 F-5이다. KBS 명화극장을 통해 국내 방영된 적이 있다. F-4가 주역기로 등장하는 영화는 사실상 이것 하나밖에 없다...
  • 2005년 영화 일본침몰에서 일본 총리가 중국으로 가기 위해 탑승했다가 아소산의 분화로 규슈 상공에서 화산탄에 맞아 추락한 일본정부전용기의 피해 확인을 위해 RF-4EJ 편대가 긴급 발진하는 모습이 잠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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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범블비에서 블리츠윙의 비클 모드로 나왔으며, 미사일을 발사해 섹터 7과 범블비를 공격했다.

  • 플래툰에서 베트콩들이 기지에 총공세를 가했을 때 등장한다.

10. 관련 문서



11. 참고 링크



12. 둘러보기










[1] 초음속 전투기 중 최대 생산수는 동구권 MiG-21 (13,996대), 서구권 아음속 전투기로는 F-86 세이버 (9,860기), 아음속 전투기로는 동구권 MiG-15로 18,000대 이상.[2] 후계기라 볼 수 있는 F-14F-15랑 비교해도 살짝 작은 정도로 기수가 연장된 E형의 경우는 길이는 F-15와 거의 같을 정도. 물론 이는 F-4가 후방구조물이 뒤로 튀어나와 있는 형상이라서 그렇긴 하지만. 공중량은 오히려 더 무겁다. 다만 이 역시 공중량만 그렇고 엔진, 주익, 사이즈의 차이로 체급은 조금 차이나는 편으로 제조사 기준 F-15는 68000파운드, F-4는 55600파운드급으로 제시하고 있다. C형과 J형 최대 이륙중량 기준. 동시대 타국의 기체들이 공중량 1.5만, 최대이륙중량 2만 파운드대에서 머무르고 있던 시기 그 두 배가 넘는 체급이고 이는 미 해군 자신이 먼저 채용한 F-8과 비교해도 공중량에서 1.2만, 최대이륙중량에서는 2만 파운드 이상 차이가 난다. 탑재 가능한 미사일의 수도 F-15와 마찬가지로 단거리 4개, 중거리 4개다.[3] 사실 제식 부호는 당시 미 해군과 미 공군이 완전히 달랐기에 어쩔 수 없었다. 3군 제식명 통합 후에야 기준이 동일해졌다. 이 당시 미 해군은 '주임무' '해당제작사에서 해당 임무형 항공기 순번' '제작사 부호' '-개량번호'라는 특이한 형태였기 때문. 자세한 것은 군용기의 명명규칙문서를 참고. 때문에 당시 팬텀 II의 제식명은 F-4A가 아니라 F4H-1였다. 물론 팬텀이랑 의미만 비슷한 스펙터로 붙인건 고집피운거지만.[4] 통합 기준은 사실 미 공군의 명명기준에 더 가깝게 채택되었다. 대신 팬텀II는 해군이 원형이므로 F4H에 가깝게 F-4가 된 것. 팬텀II보다 먼저 개발된 기체지만 F8U란 제식명을 갖고 있던 크루세이더가 팬텀II보다 뒷 번호인 F-8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5]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칭찬한 게 아니라 '''갈굼'''인데, F-4를 쌔끈하게 조종하다가 "지금 니가 일으킨 소닉붐 때문에 체사피크 근처 창문들이 싹 다 박살났다고 난리가 났는데 어쩔래 이거?" 란 내용. 여담으로 이 시기 참모총장은 바로 알레이 버크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당시 테스트 파일럿 매니저였던 짐 러블한테 전보를 안 보내고 알레이 버크가 직접 갈궈서 내리갈굼을 방지한 정도?[6] 대한민국 공군[7] 중앙 동체가 길죽해서 이미지만 보면 F-16 정도로 작은 크기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제원은 F-15급으로 크다. 미사일 적재량도 F-14, F-15에 꿀리지 않을 정도. 그래서 한국 공군에서 아직도 운용하고 있다.[8] 연장 슬랫은 크피르 전투기에도 채용되었다.[9] 1992년 1월까지 운용[10] 이들은 Wild Weasel IV나 EF-4로 불리기도 한다. 합계 38대가 개조되었으며 베트남전 종전 후 다시 통상형으로 돌아갔다.[11] 기지간 이동, 행사 동원, 그리고 조종사 훈련시가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F-4 계열기가 현역에서 물러난지 오래됐기 때문에, 현역 조종사들은 F-4 조종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12] F-16A/B형에 탑재된 것과 동일한 것이다.[13] 3종류의 자국산 포드를 운용한다. (통상적인 정찰 포드, 원거리 촬영용, 전자 정찰용)[14] APQ-120 레이더에 CW 일루미네이션 기능을 뺐다.[15] 하지만, IFF 질문기(interrogator)가 없어서 BVR 전투시 항상 AWACS나 GCI가 피아식별을 해줘야 했다.[16] 철저히 GCI 통제관의 지시대로 움직인다.[17] 영국군의 경우, 기종의 이름 뒤에 영문 약자를 붙여서 용도를 표시하고 개량번호는 숫자를 추가 기입하는 방식으로 각 기종을 구분한다. 예를 들어 전투기·공격기·전폭기·정찰기에 부여되는 영문 약자의 경우 F는 Fighter(전투), G는 Ground Attack(대지 공격), R은 Reconnaissance(정찰), S는 Strike(대지 타격), A는 Attack(공격)을 의미한다. 여기서 영문 약자는 복수의 약자를 합성해서 표기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자면 FG는 Fighter Ground Attack, FGR은 Fighter Ground Attack and Reconnaissance, FGA는 Fighter Ground Attack, FA는 Fighter Attack, FRS는 Fighter Reconnaissance Strike, GR은 Ground Attack and Reconnaissance를 의미한다.[18] 이후 성능요구치를 낮춘 P.1127을 기반으로 AV-8 해리어가 탄생했다.[19] 엔진 출력은 올라갔으나 무거워지고 기체 형상이 바뀌어 기체 저항이 커진 것이 영향을 주었다.[20] 덕분에 전방 랜딩기어 오레오 링크가 앞뒤로 두 개 ㄷㄷㄷ[21] 이후 C형을 거쳐 E형으로 개수되었다.[22] FX사업에서 F-15가 좋은 점수를 받은 이유 중 하나이다.(FX사업 자체가 F-4의 후계기를 구하기 위한 면이 있었다.) 한국 공군이 아직까지 F-4 전폭기를 운용하는 이유중 하나가 F-16으로 운용할 수 없는 대형무기의 운용 플렛폼 때문이다. 제원표상의 무장 탑재량을 보면 F-4나 F-16이나 큰 차이가 없어보이지만 실제 무장 탑재량이나 무장탑재 시 행동반경을 보면 F-4가 더 낫다고 한다. F-15K가 도입되기 전까지 유사시 북한을 폭격할 때 F-16은 평양-원산 이남지역까지만 행동반경이지만 F-4는 거의 북한 전역을 행동반경 안에 둘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F-15K가 도입(원래 120대를 요구했지만 현재까지 도입된 것은 총 61대(2대 손실)뿐이다.)되어도 F-4를 2020년까지 운용하겠다는 게 공군의 계획이다. F-4가 퇴역한 후에는 F-15K와 F-35A를 합한 약 120대와 KF-16 130여대가 F-4E의 임무를 승계할 예정이다. 에어버스 A330 MRTT 공중급유기를 2018년, 2019년 각각 2대씩 도입함에 따라 F-4E가 퇴역할 때에는 KF-16도 공중급유를 받으면 행동반경이 크게 확대된다.[23] 실제로 이 시기에 일본 항공자위대의 F-4는 이 APG-66 레이더를 장착하는 개수를 시행해 2020년까지 운용했다.[24] 참고로 이란은 F-4D 소수 도입 후 바로 F-4E를 대량 도입한다. 미국, 한국과 함께 전 세계 단 세 국가뿐인 F-4D 운용국가. 현재로써는 F-4D는 고사하고 F-4E도 부품이 모자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판이라 사실상 한국이 유일한 F-4D 운용국이었다. 2010년 6월 16일 도입 41년 만에 퇴역했다.[25]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당시 MiG-23 3대가 연평도 인근 상공에서 F-15K와 대치함으로써 공중도발 비슷하게 진행되었는데... F-15K 쪽에서 레이더 조사 한번 해 주더니 그대로 도주했다. RWR은 장착되어있었던 모양이다.[26] 업무차 미국에 방문했다가 맥도넬 더글러스의 초청을 받아서 F-4 팬텀에 직접 탑승할 기회가 있었는데 후방석이긴 해도 직접 조종까지 해봤다고 한다.[27] 물론 핵투발과 관련된 장비(주로 폭탄 세팅이나 핵폭탄 투하를 위한 일종의 탄도 계산장비 등)가 붙어있었다는 이야기고, 핵폭탄이 같이 딸려왔다는 말은 아니다. [28] 현재 이 기체도 블랙이글스의 도장으로 바뀌었다.[29] 참고로 일본의 전투기 면허생산은 F-86, F-104, F-4, F-15, F-35 순으로, F-4는 중간에 자리한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T-1 제트훈련기, T-2 제트훈련기, F-1 지원전투기, T-4 제트훈련기, F-2 지원전투기를 독자개발 생산했다.[30] RF-4EJ와 달리 RF-4E는 미국 직도입분이다.[31] 그리고 미 해군의 전통(?)인 낙서테러를 당하기도 했다.[32] 그리고 월간 디펜스타임즈 2002년 10월호에 따르면 아크로얄과 같은 오데이셔스급 항모가 대전 직후 항모임으로 비행갑판이 짧아서 받음각을 크게주기위해 노즈기어가 길었다.[33] 이 편대는 오늘날에도 포클랜드 제도에 배치되어있으며 파나비어 토네이도를 거쳐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운용하고 있다.[34] 일명 알리캣...[35] 의외로 여기에 응한 나라 중 하나가 이스라엘이었다.[36] F-4 해체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F-4F를 대상으로 다뤘는데, 이때 '''아직 쓸 수 있는 부품은 따로 분류'''하는 장면이 나왔다.[37] 급유기를 도입하면 해결되겠지만 비용에 있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38] 사실 물자가 부족했던 북베트남군 MiG기들은 기습 작전을 기본으로 운용되었다. 이게 소련 공군 운용 교리이기도 해서 이 당시 MiG기들은 멀티 롤은커녕 항속거리가 긴 기종이 많지 않았다.[39] 이 로테이션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있었던 역사가 깊은 제도였다. 전선에서 실전 경험이 충분히 쌓이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전과를 올린 베테랑 파일럿들을 후방의 교육부대로 돌려서 훈련생들을 가르치는 교관 역할을 맡기는 식으로 운용되었기에 2차대전 당시의 미군 파일럿들의 평균적 기량을 크게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 덕분에 미군 파일럿들은 독일군이나 일본군의 파일럿들에 비해서 한층 더 높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렇듯 2차대전 무렵까지만 해도 여러모로 순기능이 많은 제도였으나, 베트남 전쟁에서는 전선부대를 실전 경험이 부족한 신참 투성이로 만들어 버려 오히려 역효과를 발생시키고 말았다.[40] 당시 미 해군의 팬텀 승무원은 조종사+RIO(Radar Intercept Officer, 레이더 요격 관제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RIO는 미 공군의 WSO(Weapon System Officer, 무장관제사)에 해당하는 보직이다.[41] 초기형은 심지어 외부 프로펠러 동력으로 전력을 얻어서 작동했기 때문에 기체 속도가 줄어들면 영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42] Phil Handley - FU Hero[43] 그도 그럴 것이 격추된 팬텀에 탑승했던 이가 전자전 담당 장교였기 때문이었다.[44] 난이도에 따라 스타트 기체의 구성이 다른데, 이지에선 MiG-29, F-14, F-4가 주어지고 노멀에선 MiG-29 제외, 하드에서는 F-4만 준다. 즉 F-4가 난이도 무관하게 주어지는 스타트 기체.[45] 특히 베트남전 당시에 네이팜을 투하하던 이미지가 강해서 네이팜이 특수무장으로 주로 쓰인다. 하지만 성능이 워낙 떨어져서 당장 UGB만 나오더라도 묻힌다. 실제였다면 AGM-65 매버릭을 날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