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역사

 



'''년도'''
'''항목'''
'''명칭'''
'''적용/발명자'''
'''국적'''
'''비고'''
1500(?)
구체적인 구상의 최초 등장
-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이탈리아
다빈치의 드로잉북인 코덱스 아틀란티쿠스(Codex Atlanticus)에서 등장한다.
1790
최초의 자전거
셀레리페르
(Celerifere)
콩트 드 시브락
(Conte de Sivrac)
프랑스
둘 중 어떤 것이 최초의 자전거인지는 논란이 있다.
1817
최초의 조향계 부착
드라이지네
(Draisienne)[1]
카를 폰 드라이스 남작
(Baron Karl von Drais)
독일
1839
최초의 페달
-
커크패트릭 맥밀런
(Kirkpatrick MacMillan)
스코틀랜드
페달-크랭크구동 방식. 앞바퀴 쪽 페달을 밟으면 양쪽에 달린 긴 봉을 통해 뒷바퀴의 크랭크를 구동했다. 구조가 복잡하고 쉽게 고장난다는 단점 때문에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1860
크랭크 구동
벨로시페드
(velocipede)[2]
피에르 미쇼
(Pierre Michaux)[3]
프랑스
최초로 대량생산된 자전거이지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벨로시페드는 거의 없다. 프러시아 전쟁과 1차 세계대전 중 철 부족으로 모조리 압류당했기 때문이다. 한국 한정으로 대중에서 일명 빈폴 자전거로 불린다.
1866
나무안장 개선, 제조사
브룩스 안장
존 볼트비 브룩스
(John Boultbee Brooks)
영국
최초로 안장을 개발하지는 않았다. 이전부터 안장에는 여러가지 소재를 사용해 왔다. 다만, 브룩스의 경우 19세 때 구한 자전거의 나무안장이 너무나도 불편한 나머지 아버지의 승마용 안장에서 착안, 자전거에도 편안한 안장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한다. 브룩스가 설립한 회사는 현재까지도 가죽 안장을 만들고 있다.
1868
고무타이어
-
클레망 아데르
(Clement Ader)
프랑스
나무 바퀴에 통고무를 씌운 형태
1868
크랭크-체인
-
에두아르트 마이어
(Eduard Meyer)
앙드레 길메
(Andre Guilmet)
독일
프랑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발발로 두 사람의 협력이 끝났고 약 20년 후 스타일리가 관련 기술을 독점했다.
1869
프리휠 특허
-
윌리엄 반 안덴
(William Van Anden)
미국
라체팅 메커니즘을 이용한 프리휠이다. 하지만 정작 대중화와 양산은 30년 정도 후에 독일에서야 이루어지게 된다.
1869
볼베어링 특허
-
쥘 피에르 쉬리르
(Jules Pierre Suriray)[4]
프랑스
자전거 적용 특허 획득
1869
볼베어링 양산
-
프리드리히 피셔
(Friedrich Fischer)
독일
쉬리르의 특허 사용
1870
하이 휠 등장
하이 휠
(High-Wheel)[5]
-
영국
1870~1890년대 표준 자전거였으나 속도와 형상에 따른 사고 위험성 때문에 항상 문제가 되었다. 런던 시내에서는 오디너리를 타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여성은 보다 안전한 세발, 네발 자전거(tricycles, quadracycles)를 선호했다. 이렇게 자전거 바퀴가 감당 못할 정도로 커진 이유는 단 한가지, 속도 경쟁 때문이었다. 당시 자전거에는 아직 기어는 커녕 체인 드라이브 개념조차 적용되지 않았고, 앞바퀴에 페달이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앞바퀴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 자전거가 크게 유행하면서 영국의 자전거 산업이 크게 성장 및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페니 파딩의 가격은 당시 일반 노동자의 6개월치 월급 정도였다. 비슷한 시기에 페니 파딩의 스핀오프 격으로 외발자전거가 개발되었다.
1870
하이 휠
에리얼
(Ariel)[6]
제임스 스탈리
(James Starley)
월리엄 힐먼
(William Hilman)
영국
제조특허획득
1870
스포크 개량
탄젠트 스포크
(Tangent Spoke)
제임스 스털리(
James Starley)
영국
이전까진 래디얼, 즉 허브의 중심 축에서 림까지 지름 축선을 타고 직선으로 스포크를 배열하는 방식을 썼다. 이 방식의 스포크는 측면에서 가해지는 응력에는 강하나 허브 축에서 자전거의 진행방향/역방향으로 가해지는 힘에 대한 비틀림에는 약하며, 힘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개선한 것이 허브 축으로 부터 약 90˚ 정도의 측면에서 림으로 뻗는 크로스 방식으로, 뒷바퀴의 구동축 또는 디스크브레이크 측에서 주로 사용된다. 정식 명칭은 탄젠트 배열(Tangential lacing pattern)이나 스포크끼리 겹치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크로스 방식'''이라 흔히 부른다. 크로스되는 스포크 수에 따라 2크로스, 3크로스 등으로 부른다.
1876
브레이크 개선
캘리퍼 브레이크
해리슨 브로웻
(Harrison Browett)
영국
싱글피벗
1877
크랭크-체인
캥거루
(Kangaroo)
윌리엄 힐먼
(William Hillman)[7]
영국
멀티플라이 기어, 전륜구동
1879
크랭크-체인
바이시클렛
(Bicyclette)
해리 존 로슨
(Harry John Lawson)
영국
최초의 후륜구동 자전거. 그러나 구동되는 바퀴는 여전히 컸다.
1885
크랭크-체인
로버 세이프티
(ROVER Safety)
존 켐프 스털리
(John Kemp Starley)
월리엄 힐먼
(William Hillman)[8]
영국
탑튜브로 이어지는 똑같은 크기의 두 바퀴와 크랭크로 구동되는 뒷바퀴, 캐스터 각이 있는 포크로 핸들과 이어지는 앞바퀴 등의 현대적인 자전거의 큰 틀이 여기서 잡혔다.
그동안 오디너리 등 기존의 자전거가 중, 상류층의 오락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면, 세이프티 이후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자전거는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노동자로부터 주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소유하고 탈 수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영미권과 유럽의 사회상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일단 커다란 드레스가 주류였던 빅토리아 시대 말 여성들의 패션에 클로트(Culottes, 치마바지)와 스커트 리프터(치마를 고정하는 클립) 등이 등장했고, 이후 움직임에 방해가 될 수밖에 없는 코르셋과 치렁치렁하고 과도하게 화려한 복장들이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자전거가 보급되면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에 제한이 있었던 여성들이 기존에 누릴 수 없었던 이동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19세기 말부터 형성되었던 1세대 페미니즘서프러제트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또한 노동자들부터 부르주아 등의 사회지도층 모두를 막론하여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 레저활동으로 크게 유행했으며, 이 때부터 남녀노소와 사회계층을 넘나드는 클럽 모임 등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기 시작했다. 자전거가 일종의 사회적 혁명까지 일으킨 셈.
1885
가황고무 발견
-
찰스 굿이어
(Charles Goodyear)
미국

1885
제조사
비앙키
(Bianchi)
에두아르도 비앙키
(Eduardo Bianchi)
이탈리아

1886
프레임 생산기술 개선
-
만네스만
(Mannessman)
독일
쇠파이프 개발. 당시 프레임은 두들겨 만들었다. 만네스만 형제는 요즘의 방식인 파이프-러그를 사용할 수 있는 파이프를 개발하였고 이를 자전거 제조사들이 적용하면서 자전거가 더 가벼워졌다.
1887
자전거 세계일주
하이 휠
토마스 스티븐슨
(Thomas Stevenson)
미국
1884년 4월 2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해 약 3년 만인 1887년 1월에 되돌아왔다. 시베리아 횡단이 불허된 데 이어 다른 육로 루트였던 아프가니스탄마저 국경을 폐쇄시키는 바람에 콘스탄티노플로 되돌아와 카라치까지는 해로를 이용해야 했었고, 환경적인 여건 때문에인도차이나 반도한반도도 해로로 우회해야만 했지만, 어쨌든 세계 최초의 자전거 미국 횡단과 인도 횡단에는 성공했다.참고
1888
제조사
롤리
(Raleigh)[9]
프랭크 보든
(Frank Bowden)
영국

1888
튜브 타이어
던롭
(Dunlop)
존 보이드 던롭
(John Boyd Dunlop)
영국
던롭의 외아들이 당시 금속으로 된 휠로 만든 세발 자전거를 타고 놀다 넘어져 크게 다치는 바람에 개발하게 되었다고. 공기 주입이 가능한 최초의 타이어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오디너리든 세이프티든 달고 나오는 휠들은 그냥 통짜 고무가 붙어있었었다.
1891
자전거 도로 경기
파리-보르도
(Paris-Bordeaux)
벨로 스포
(Veloce Sport)
프랑스
최초의 프로 경기이며, 가장 긴 당일치기 경기였다. 첫 경기 때에는 대략 600km 정도의 거리를 밤새도록 달렸다고 한다. 첫 우승자 조지 필킹턴 밀스(George Pilkington Mills)의 기록은 '''26시간 36분 25초.''' 르 쁘띠 쥬흐날(Le Petit Journal)이라는 언론사에서 후원했다. 워낙 힘든 경기이다보니 초창기에는 텐덤(2인용 자전거)과 일반 자전거의 뒤에서 슬립스트림을 이용한 페이싱을, 1931년 이후부터는 오토바이 혹은 자동차를 이용한 페이싱을 허용했다. 페이싱 거리는 전체 경기의 반 정도였다고. 그랜드 투어 대회들과 경기시즌이 겹치는 데다가 경기 중 너무 가혹한 경기 조건으로 인해 빈번하게 발생하는 부상 등의 문제가 있었고, 결국 1988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지금은 부정기적으로 열리는 프로-아마추어 장거리 대회 형식으로 남아 있다.
1891
클린처 타이어 등장
미쉐린
(Michelin)
에두아르, 앙드레 미슐랭
(Edouard, Andre Michelin)
프랑스
던롭 타이어 수리가 매우 어려워 개발하게 되었다. 당시 던롭의 타이어는 구멍난 타이어를 휠셋에서 떼어 수리한 다음 다음 휠셋에 다시 접착제를 도포하고 타이어를 부착한 후 마를 때 까지 '''하루가 넘게 기다려야 했다.''' 사실은 요즘 튜블러도 실런트로 때울 수 없을 정도로 큰 구멍은 타이어 채로 갈아야 된다. 그리고 접착제 마르는데도 몇 시간이 필요하니 1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건 많이 없다. 여담으로 유명한 미쉐린맨 비벤덤은 1898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1892
협회 발족
ICA
(International Cycling Association)
-
국제기구
최초의 협회. 1883년 영국의 NCU(National Cyclist's Union) 등 각 국가단위의 협회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경기 기록을 서로 인정하지 않았다(사실 룰이 나라마다 다 달랐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이후 올림픽의 활성화 등으로 국가 간 아마추어리즘, 스포츠맨십 등이 19세기 말 스포츠계에 주요 이슈가 되었고, 자전거 경기에서도 국제표준 규정이 필요함에 따라 발족된다. 1892년 11월, 영국 NCU의 헨리 스터미(Henry Sturmey)와 W.M.애플턴(W.M.Appletone), 프랑스의 유니옹 데 쏘시에떼 프랑세 드 스포트 아뜰레띠끄(Union des Societes Francaises de Sports Athletiques, 프랑스 체육회 연합)의 A.E.캉플랑(A.E.Kemplen), 독일 자전거인협회의 하인리히 클라이어(Heinrich Kleyer), 네덜란드 자전거인협회의 프란츠 네처(Franz Netcher), 이탈리아의 자전거인협회 G.보네티(G.Bonetti), 벨기에 자전거인협회의 A 코이지(A.Choisy), 캐나다 자전거인협회의 P.E.둘리틀(Dr P.E.Doolittle)이 영국 런던의 농업회관(Agricultural Hall)에 모여 만들었다.
그러나 이 때 프랑스의 정식 자전거 협회는 위 단체가 아니라 유니옹 벨로시페디끄 프랑세(Union Velocipedique Francaise, 프랑스 자전거인 연합)였다.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하는 협회의 특성과 앞서 말했듯 프랑스의 정식 자전거협회가 참여한 국제 협의체가 아닌 점, 영국의 주도로 국제대회를 개최한다는 점, 그리고 지금의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와 브리튼 두 팀이 각 국가 자격으로 출전하듯, ICA에서 실질적으로 '''영국이 가지고 있는 표도 여럿'''(실제 England와 United Kingdom 두 표를 가졌었다)이고, 국제대회에 나오는 팀도 여러 팀이라는 점 등 문제점이 많았다. 때문에 프랑스는 여기에 반대해 결국 아래에 나오는 UCI를 만들고야 만다. ICA는 1900년 형평성과 공정성이 강한 UCI에 밀려 없어졌다.
1895
최초의 자전거용 속도계 등장
사이클로미터
(Cyclometer)
커티스 H. 비더
(Curtis H. Veeder)
미국
최초의 아날로그 사이클링 컴퓨터. 톱니바퀴를 사용해 자전거 바퀴가 돌아가는 횟수를 계산했고, 이를 아날로그 카운터에 기록할 수 있게 해 놓은 기계였다. 바퀴의 지름과 시간만 잘 계산한다면, 이동한 거리는 물론 자전거의 평균 속력까지 계산할 수 있다.
1895
뒷 드레일러 변속기
라 폴리셀레르
(La Polyceler)
장 루베이어
(Jean Loubeyre)
프랑스
두 특허 중 어느 것을 최초로 봐야하는가에는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마다 이견이 있다. #
1896
뒷 드레일러 변속기
그래디언트
(Gradient)
에드먼드 호치킨슨
(Edmund Hodgekinson)
영국
1896
경기
1896 아테네 올림픽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
(Pierre de Frédy, Baron de Coubertin)
그리스
사이클 경기가 올림픽의 시범 종목으로 추가되었다. 이후 MTB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BMX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추가된다.
1896
자전거 도로 경기
파리-루베
(Paris-Roubaix)
-
프랑스
처음에는 파리에서 출발, 루베에서 끝났으나 1966에는 파리 북쪽 50km정도 떨어진 샹띠이(Chantilly)에서, 1977년 부터는 80km 떨어진 꽁삐에뉴(Compiegne)에서 시작해 대략 260km 정도의 거리를 하루에 주파하는 경기. 우승 트로피가 금칠한 '''실제 도로포장용 돌'''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 코스는 레이싱 문화 보존을 위해 '''일부러 아스팔트로 포장을 안 한다.''' 때문에 코스도 엄청 험난하다. 예전 그 도로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코스가 꽤 많기 때문에 도로폭이 매우 좁고, 비포장 구간은 비만 오면(경기 시즌이 프랑스 북부 우기와 겹친다) 진창이 되는가 하면, 그나마 포장된 곳은 가로 x 세로 x 높이 20cm 정도 되는 주춧돌 수준의 포장석 때문에 지나가려면 엄청난 진동을 감수해야 한다. 경기코스 별 짧게는 200m, 길게는 3.7km에 이르는 그런 '''포장도로가 도합 약 52km''' 정도 된다. 그래서 두껍고 쿠션감 좋은 27c 타이어와 편안하고 튼튼한 인듀어런스 자전거, 두 겹의 바테이프로 무장하고도 피로감을 호소하는 선수들이 많고, 기재 트러블도 상당히 자주 일어난다. 원데이 클래식 경기로는 아래의 론드 판 플란데렌(영국식으로는 투어 오브 플랜더스)와 함께 최고이자 최악의 경기로 불린다. (오죽하면 l'enfer du Nord(북쪽의 지옥), A Sunday in Hell(지옥에서 보내는 일요일) 같은 식의 별명이 붙었다. 가끔은 순례(Pilgrimage)라고도 불린다.)
1896
자전거 도입
-
고희성
(高羲誠)[10]
조선
정확한 연대는 불명이며 1898년 서재필 박사가 처음 탔다는 설도 있다. 확실한 것은 1898년 윤치호가 하와이에서 자전거를 들여온 것과 1903년 가을에 정부에서 조정의 관리들을 위해 백여대의 자전거를 도입한 일이다.
1896
도핑
-
아서 린튼
(Arthur Linton)
영국
최초의 사이클링 경기 중 도핑 및 사망 사고사례. 영국 웨일스 출신의 선수 아서 린튼이 1896년에 열린 파리-보르도 경기에 참여한 2주 뒤 티푸스성 고열과 탈진으로 인해 죽은 일이 있었는데, 부검 결과 당시 코치였던 제임스 "차피" 워버튼(James "Choppy" Warbutton)에 의해 강제적으로 코카인카페인, 스트리크닌이 섞인 칵테일을 마셨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사이클링 협회에서는 약물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지 않았고, 600km 가량의 거리를 주파하기 위해 각성제를 복용하는 일이 선수들 사이에서는 꽤나 흔했다고 한다.
1898
프리휠 양산
-
에른스트 삭스
(Ernst Sachs)
독일

1898
2인승 자전거
페데르센 자전거[11]
미카엘 페데르센
(Mikael Pedersen)
영국

1899
프레임 혁신
페데르센 자전거
미카엘 페데르센
(Mikael Pedersen)
영국
위플-머피(Whipple-Murphy) 다리의 트러스 구조에서 프레임 형상을 차용했고, 당시로서는 처음으로 알루미늄 프레임과 휠셋을 도입하여 가볍고 편안한 자전거를 만들었다. 이 이후 자전거들이 대부분 다이아몬드 프레임이라 부르는 최소화된 트러스 구조를 갖게 된다. 실제 다이아몬드 프레임의 형상은 로버 세이프티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페데르센 자전거에서 거의 완성을 보게 된다.
1899
제조사
슈윈 앤 컴퍼니[12]
이그나스 슈윈
(Ignaz Schwinn),
아돌프 아놀드
(Adolph Arnold)
미국
비치크루저, MTB 등을 생산한 것으로 유명하다.
1899
경기
세계 실내 자전거 경기 선수권 대회[13]
메이저 테일러
(Major Taylor)
미국
세계 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낸 최초의 흑인 사이클 선수.
1903
자전거 도로 경기
투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
로뚜(L'Auto)[14]
프랑스
프랑스 일주경기.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1900
협회 발족
UCI[15]
-
국제기구
스위스 에글(Aigle) 소재. ICA에서 보여준 영국의 행태에 프랑스가 실망하여 1900년 4월 14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이 모여 설립되었다. 앞서 설명했듯 ICA는 이후 완전히 묻힌다(ICA는 1900년을 기점으로 유명무실해졌다.) 영국은 한 팀으로 출전(협회 투표권도 한 표)하거나, 아니면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세 팀으로 나눠서 출전하도록 제한되었다. 1965년에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의 압력으로 아마추어 협회(Federation Internationale Amateur de Cyclisme/FIAC)와 프로 협회(Federation Internationale de Cyclisme Professionnel/FICP)로 갈라졌다가 UCI나 FICP보다 FIAC가 매우 커지는 바람에 위기를 느낀(응?) UCI가 1992년 다시 합쳐버렸다. 참고로 FIAC는 이탈리아 로마(Rome)에, FLCP는 룩셈부르크(Luxemburg)에, UCI는 스위스 제네바(Geneva)에 위치하고 있었고, 합친 후에는 IOC가 있는 스위스 로잔(Lausanne)과 가까운 스위스의 에글(Aigle)로 옮겼다. 예전까진 여기저기 돌면서 그랑 투르를 같이 주최했었는데, 현재는 그랑 투르가 협회로부터 모두 독립했다. 그래도 여전히 선수들에 대한 등록과 도핑 판정, 주요 대회 개최(남/녀 원데이 프로경기(Man's/Woman's World Cycling Champion), 사이클로크로스(Cyclo-cross), BMX(UCI BMX Supercorss, UCI World Championships), MTB(UCI Mountain Bike & Trial World Championships), 실내경기인 UCI 인도어 사이클링 챔피언십인 아티스틱 사이클(Artistic Cycling, 자전거 체조)과 사이클 볼(Cycle Ball, 자전거 축구) 등의 국제대회를 주관한다. 현 회장은 아일랜드(Ireland)의 팻 맥퀘이드(Pat McQuaid). 가끔 국제대회에서 무지개 테를 두른 저지나 헬멧을 쓰고 나오는 사람이 보인다면 UCI 월드 챔피언이라는 뜻이다. 우승 저지가 가슴에 가로로 무지개를 두른 무지개 져지(Rainbow Jersey)이기 때문.
자전거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극도로 보수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장 태초부터 1930년대까지 투르에 출전하는 자전거에 변속기를 부착하는 것을 금지했고, 리컴번트는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쭉 금지되어오고 있으며, 프레임 형상도 다이아몬드 형상이 아니면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로드바이크의 디스크 브레이크 허용에 관해서도 이랬다 저랬다 하는 등 말이 많았다.
1909
자전거 도로 경기
지로 디탈리아
(Giro d'Italia)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
(La Gazzetta dello Sport)
이탈리아
첫 경기는 1909년 5월 13일.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의 편집자인 에밀리오 카밀로 코스타마냐(Emilio Camillo Costamagna)가 로토의 성공신화에 자극받아 시작했다.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가 있는 밀라노에서 출발해서 이탈리아 전역을 일주하고 다시 돌아오는 8개 스테이지에 총 거리 2448km로 그 첫 시합을 개최했는데, 127명이 출발해서 49명만 최종적으로 골인했다. 1960년 이후 종종 코스와 종착지가 바뀌었고, 100주년 기념 경기 종착지는 로마였다.
우승저지의 색은 TDF와 마찬가지로 당시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 신문의 색이었던 분홍색, '''말리아 로자'''(Maglia Rosa. TDF의 경우 노란 저지인 마이요 존느). 최다 포인트 득점자는 '''말리아 로소 파시오네'''(Maglia Rosso Passione. 빨간색 저지. TDF의 경우 녹색 저지인 마이요 베르), 산악왕은 '''말리아 베르데'''(Maglia Verde, 녹색 저지. TDF는 흰색 바탕에 붉은 무늬가 들어간 마이요 아 푸아 루주), 젊은 최우수 라이더는 '''말리아 비앙카'''(Maglia Bianca, 흰색 저지. TDF의 마이요 블랑과 동일한 색이다.)
1910
뒷 드레일러 변속기
-
폴 드 비비
(Paul de Vivie)
프랑스
원래 비비는 섬유업을 하고 있었는데, 영국 방문 당시 자전거를 보고 감명받아 프랑스 셍에띠엔느 지역에서 자전거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지역이 산악지형이 많아 자전거를 타기에 너무 힘들었고, 결국 변속기를 개발하게 된다.
1913
자전거 도로 경기
론드 판 플란데런(Ronde van Vlaanderen)
-
네덜란드
매년 봄에 개최되는 원데이 클래식 경기. 개최되는 시기도 그렇고, 도로사정도 그렇고, 어쩌면 경사도가 높은 고개가 끼어 있어서 파리-루베보다 더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다. 똑같은 이름으로 여자 경기가 개최되고 있고, 1999년부터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 경기도 운영 중.
1915
접이식 자전거
경보병용 접이식 자전거[16]
에두아르도 비앙키
(Eduardo Bianchi)
이탈리아
군용. 프런트 포크에 샥이 달린, 굳이 따져보면 MTB의 할아버지뻘 되는 자전거.
1928
변속기
생플렉스
(Simplex)
루시앵 쥐
(Lucian Juy)
프랑스
풀리와 플레이트 일체형. 오스기어처럼 페달을 앞으로 계속 밟으면서 변속이 가능하다.
1920
경기
경성시민대운동회
엄복동(嚴福童)
조선
링크참조
1930
변속기
상피옹 드 프랑스
(Champion de France)
루시앵 쥐
(Lucian Juy)
프랑스
암, 풀리 플레이트 일체형. 현대의 풀리-암(너클)이 같이 움직이는 방식과는 살짝 다르지만 거의 근접했다.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나 판매량은 TDF 공식 지정 변속기였던 쉬페르 샹피옹에 밀렸다고. '35년에는 생플렉스 상피옹 뒤 몽드가 나오고 TDF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자 그 후속모델인 투르 드 프랑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30
리컴번트
벨로카
(Velocar)
찰스 모셰
(Charles Mochet)
프랑스
원래 아들이 조금 더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만들었는데, 만들어주고보니 너무 잘 나가서 개조를 한 것이 시초. 1933년 스위스의 오스카 에그(Oscar Egg)가 20년간 보유하고 있던 시속 44.247Km의 기록을 45.055Km으로 갈아 치웠다. 여기에 놀란 UCI는 기록 경신을 인정하지 않았고, 클래식 자전거를 탄 상태로 측정한 것만 기록으로 인정하는 규정을 세우게 된다. 세세한 규정이 만들어진 이유는 당시 클래식 자전거업체의 로비가 가장 컸다. 현재에도 UCI는 자전거의 형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프레임의 크기, 비율, 지상고 등등을 매우 세밀하게 정의해 두고 있다.
1931
변속기
비토리아
(Vittoria)
카발리에 우피키알레 안토니오 니에두
(Gavaliere Ufficiale Antonia Neiddu)
이탈리아
3단변속. 크랭크축 쪽의 래버를 원하는 쪽으로 밀면서 뒷쪽으로 크랭크를 당기면 바뀌는 구조였다.
1933
벌룬 타이어
슈윈 앤 컴퍼니
이그나스 슈윈
(Ignaz Schwinn),
아돌프 아놀드
(Adolph Arnold)
미국
이 기술은 당시에는 비치크루저용 타이어를 만드는 데에 주로 쓰였지만, 후에 MTB 타이어의 모태가 되었다.
1933
프레임
엑셀시어
(Excelsior)
슈윈
(Schwinn)
미국
MTB 프레임의 모태. 프레임 자체가 매우 튼튼했다고 한다. 현대의 다이아몬드 프레임 중 탑 튜브쪽에 보강용 튜브가 하나 더 있다. 이 튜브의 형상이 이후에 싯스테이까지 둥글게 연장된 형태가 전체적으로 다이아몬드 프레임+아치구조를 갖도록 만들어 매우 우수한 강성을 띄도록 개선되었고, 이 형상에서 조금 더 발전하여 비치크루져와 같은 아름다운 자전거까지 나오게 된다.
1933[17]
퀵릴리즈
퀵릴리즈
(Quick Release)
제튤리오 캄파놀로
(Getullio Campagnolos)
이탈리아
캄파놀로 설립.
제툴리오 캄파놀로는 경기 중 다 이긴 경기를 펑크난 타이어 교체로 날려먹은 일을 계기로 퀵 릴리즈 레버를 개발했다. 이후 캄파놀로는 드레일러, 쉬프터, 브레이크, 휠셋 등등 대략 150여개의 자전거용 부품을 발명 또는 개선을 하게 된다. 이후 자동차 부품까지 만들었는데, 람보르기니 에스페다(Lamborghini Espada)의 마그네슘 휠이 바로 캄파놀로에서 만든 것.[18]
1934
변속기
오스기어
(Osgear)
쉬페르 샹피옹
(Super Champion)[19]
이탈리아
4단기어. 비토리아의 가드에서 조금 발전한 정도 수준이였는데, 개량으로 계속 전진하면서 변속이 가능해졌다. 덕택에 1934년 한해만 4만 5천개가 넘게 팔렸다고. [20]
1935
변속기
비토리아 마르게리타
(Vittoria Margherita)
카발리에 우피키알레
(Gavaliere Ufficiale)안토니오 니에두
(Antonia Neiddu)
이탈리아
3단변속
1935
자전거 도로 경기
부엘타 아 에스파냐
(Vuelta a España)
후안 푸욜
(Juan Pujol)[21]
에스파냐
에스파냐 전역을 3주간 총 3411km에 걸쳐 달리는 경기. 1935년 첫 경기를 가졌으나 에스파냐의 다사다난한 어른의 사정(1937~1940 내전, 1943~1944 WWII)으로 인해 취소와 개최를 반복, 1955년 이후에서야 매년 개최되었다. 처음에는 봄에 열렸으나 지로가 역시 3월에 열리는 관계로 1995년 이후부터는 9월에 열리게 되었다.
스페인에 산악지형이 많고 부엘타도 스페인의 산악지대에서 주로 펼쳐지기 때문에 다채로운 경기양상을 보인다. 산악구간이 아니더라도 경사가 꽤 되는 코스가 사이사이에 많은 만큼 다양한 작전의 구사가 가능하기 때문. 다만, 산악구간을 꽤 많이 포함하고 있는데 세계선수권과 겹치기 때문에 다른 대회를 준비하는 프로선수들이 기피하는 경향도 있어서 다소 에스파냐 지역경기적인 특색이 강하다. 2010년 현재 최대 우승국은 에스파냐로 우승횟수는 29회. 2위인 프랑스는 9회. 산악지형이 많아 의외로 힘든 경기이기 때문에 역사에 비해 종합우승을 다승으로 기록한 선수는 드문데, 스위스의 토니 로밍거(Tony Rominger), 에스파냐의 로베르토 에라스(Roberto Heras)가 각각 3승을 차지했고, 이 외에는 6명의 2승 선수가 나왔을 뿐이다.
종합우승 져지는 마이요뜨 아마리요(Maillot Amarillo, 노란색 져지. 그런데 TDF의 노란색과 달리 살짝 붉은 기가 돌기 때문에 자존심도 새울 겸 헤르세이 데 오로(Jersey de Oro), 황금색 져지라고 불렀었다.)였었는데, 이게 경기 개최하는 연도의 스폰따라 그때그때 달랐다고. 처음엔 오렌지색이였다가 1941년 흰색, 1942년엔 다시 오랜지, 2차 세계대전으로 쉬었다가 1945년엔 빨간색, 1946년부터 1950년가지는 또 흰색, 1955년부터 2009년까지 중 1977년 한해 오렌지색을 제외하고는 앞서 말한 황금색으로 통일되어서 거의 전통으로 내려왔었다. 그러다가 2010년 부터는 종합우승의 경우 '''마이요뜨 로호'''(Maillot Rojo, 빨간 저지)로 하고 다른 부분은 TDF와 헷갈릴 요소가 많아 TDF랑 유사하게 통일해 버렸다. 포인트 구간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획득하면 '''마이요뜨 뿐또스'''(Maillot Puntos, 포인트 져지. 녹색), 산악왕에게 수여하는 '''마이요뜨 몬따냐'''(Maillot Montana, 산악 져지. 파란색 땡땡이 져지. 이 땡땡이는 각 지역의 스폰이 달라지면 땡땡이 색이 달라지는 경우가 꽤 있다.)를 수여받는다. 이래저래 복잡한 경기.
1936
변속기
캄비오 코로사
(Cambio Corosa)[22]
제튤리오 캄파놀로
(Getullio Campagnolos)
이탈리아

1938
프레임
엑셀시어
(Excelsior)
슈윈
(Schwinn)
미국
스프링포크를 도입해 생산된 최초의 프레임. 실질적인 MTB의 모태이며, 최초의 샥은 아니지만, 포크에 스프링을 장착해 거친 지형에서도 잘 달릴 수 있었다.
1946
변속기
캄비오 코로사
(Cambio Corosa)
제튤리오 캄파놀로
(Getullio Campagnolos)
이탈리아

1949
변속기
파리-루베
(Paris-Roubaix)
제튤리오 캄파놀로
(Getullio Campagnolos)
이탈리아
1949
변속기
허큘레즈 허레일러
(Hercules Heraileur)

영국
인덱스 방식. 당시까지 모든 드레일러는 적절히 기어가 변속되는 범위를 찾아 조정해야 했지만, 인덱스드 방식은 기어변환이 정해진 곳에서 변속레버가 멈추는 방식을 취했다.
1951
변속기
그랑/수페르 스포르트
(Gran/Super Sport)
제튤리오 캄파놀로
(Getullio Campagnolos)
이탈리아
현대식 드레일러의 등장. 평형사변형 방식(Parallelogram)의 암을 사용했다. 기어의 단차에 의한 각을 주지 않고 정면에서 볼 때 허브축과 수직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라 현대의 변속기처럼 변속이 매끄럽지는 못하다.
1959
변속기
앞 드레일러
제튤리오 캄파놀로
(Getullio Campagnolos)
이탈리아
평형사변형 방식[23]
1961
제조사
몰튼
(Moulten)
알렉스 몰튼
(Alex Moulton)
영국
고성능 미니벨로 등장. 미니벨로의 개념은 훨씬 오래전 부터 나왔으나 몰튼이 만든 것 처럼 성능과 승차감을 겸비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였다. 자동차 서스팬션을 자전거에도 적용을 해 봤는데, 이게 그냥 단순히 스프링을 단 것이 아니라 엘라스토머를 이용한 것이라 보다 유연한 대처가 가능했다. 게다가 투어링을 위해서 앞/뒤에 캐리어를 달 수 있도록 구멍도 뚫어놨다.
1963
BMX[24]
스팅레이
(Stingray)[25]
슈윈
(Schwinn)
미국
BMX의 원조. 매우 튼튼한 프레임과 각각 16/20인치의 작은 바퀴를 사용하여 큰 토크를 전달 가능하게 만들었다. 슈윈의 엑셀시어가 MTB의 시초가 되었다면 스팅레이는 BMX의 시초가 되었다. 순수히 빨리 달리기 위한 것에서 발전한 유럽의 자전거 문화와 대비되는 미국만의 자전거 문화를 연 것이다.
1964
변속기
선투어 그랑프리
(SunTour Gran-Prix)
오자키 노부오
(尾崎 信夫(?), 선투어)[26]
일본
최초의 슬랜트형(slant-parallelogram) 변속기. 사실 페러럴그램만 가지고는 원활한 변속이 불가능하다. 드레일러의 풀리가 자연스럽게 스프라켓 코그들의 선을 따라 움직여 줘야 하는데, 그냥 직선으로만 움직이면 힘들다. 선투어에서는 페러럴그램이 포함된 이 너클 부분을 허브 축 기준 약 45도 정도 바깥쪽으로 돌려 달아 이 문제를 해결했다. 게다가 특허를 획득해서 이후 20년간 당시 자전거 시장을 꽉 잡고 있었던 캄파놀로를 닭 쫒던 개 신세로 만들어버렸다.
1970년 초
MTB[27]
클렁커
(Clunker)[28]
-
미국
최초의 MTB 경주 시작. 캘리포니아 마린 카운티의 젊은이들이 산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을 대체로 MTB의 기원으로 본다.
1971
프레임
칼튼 플라이어
(Carlton Flyer)
제라드 오도너번
Gerald O'Donovan
영국
세계 최초의 탄소섬유 자전거 프레임. 알루미늄 러그가 일부분 쓰였고,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세계 최초의 알카본 자전거다.
1974
제조사
스페셜라이즈드
(Specialized)
마이크 신야드
(Mike Sinyard)
미국
부품회사로 시작했지만, 이후 MTB를 대량생산하면서 MTB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1976
산악자전거 경기
리팩
(Repack)[29]
마린 카운티 벨로클럽
미국
최초의 산악자전거 경기. 비슷한 유형의 산악경기는 1970년대부터 미국에서 다양하게 벌어졌었지만, 이 경기를 대부분 공식 경기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최초 우승자는 앨런 본즈.
1977
MTB
브리저
(Breezer)
조 브리즈
(Joe Breeze)
미국
찰리 켈리의 요청으로 니켈 프레임, 슈원 S-2림, 유니로열 너비 타이어, 레드라인 포크, 선투어 변속기, 켄틸레버 브레이크, 허브핸들 변속기, 브룩스 안장 등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는데, 현대 MTB의 구성요소를 거의 다 갖추고 있었다. 프레임은 기존 다이아몬드 프레임에 헤드튜브에서 드랍아웃까지 연결되는 보강용 파이프를 하나 더 추가한 형태였다.
1979
제조사
마운틴 바이크
(Mountain Bike)
게리 피셔
(Gary Fischer),
찰스 케니
(Charles Kenny)
미국
MTB 전문회사. 현대 MTB의 원형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다.
1980년 초
BMX 프레임

밥 하로
(Bob Haro)[30]
미국
BMX 전용 프레임
1981
MTB
스텀점퍼
(Stumpumper)
스페셜라이즈드
(Specialized)
미국
본격적으로 대량생산된 최초의 MTB. 품질 개선, 원가 절약을 위하여 일본에서 생산된 프레임을 적용했다.
1982
BMX 경기
BMX 세계선수권대회
(BMX World Championships)
-
미국
최초의 BMX 경주 시작
1983
자전거용 컴퓨터
어보셋 30
(Avocet 30)
어보셋
(Avocet)
미국
최초의 디지털 사이클링 컴퓨터
1983
협회 발족
미국 프리스타일 연합(American Freestyle Association)

미국
정식경기개최[31]
1983
클릿과 클립리스 페달


(Look)
프랑스
클립리스 페달은 찰스 헨슨(Charles Henson)에 의해 이미 1895년에 개발되었지만, 스트랩과 단단한 결속장치 때문에 발에서 떼기 쉽지 않았고, 결국 자전거를 멈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벨로드롬 등의 제한적인 장소에서만 사용되었었다. 여기에는 "죽음의 클릿" 이라는 오명이 붙어 있었는데, 도로에서 사용하던 사람들 다수가 클릿을 제때에 빼지 못해 큰 사고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룩이 스키용 부츠를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클릿과 클립리스 페달은 빼고 끼기 매우 쉬워서 도로에서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었고, 이는 그렉 르몽드(Greg LeMond)의 투르 우승 이후 빠른 속도로 보편화되었다.
1984
외발자전거 경기
UNICON[32]
-
미국
최초의 외발자전거 경기 시작. 전통적인 자전거 트랙 레이스와 타임 트라이얼 뿐만 아니라 외발자전거 농구, 하키, 크로스컨트리 등의 퓨전 스포츠와 피겨 스케이팅같은 트릭 경연 대회도 열린다.
1986
프레임
케스트렐 4000
케스트렐
(Kestrel))
미국
세계 최초로 모노코크(Monocoque) 방식으로 만들어진 순도 100% 탄소섬유 프레임이다. 케스트렐 이전의 카본 자전거들은 미리 만들어진 알루미늄 러그와 카본을 조합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었지만, 케스트렐의 프레임은 자전거 형상을 그대로 담은 몰드로 통째 제작된 것이다.
1987년
MTB
락샥
(Rockshox)
폴 터너
(Paul TUrner)
미국
최초의 풀 서스펜션 바이크.
1989
변속기
래피드파이어
(Rapidfire)
시마노
(Shimano)
일본
STI, 정확히는 MTB용 쉬프터인 SIS의 시초가 된 변속기. 인덱스타입의 다운튜브 쉬프터를 라쳇 등을 이용한 현재의 섬쉬프터와 비슷한 형식으로 핸들바쪽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1989
변속기
레코드 OR
(Record-OR)
캄파놀로
(Campagnolo)[33]
이탈리아
MTB 전용
1990
변속기
STI[34]
시마노
(Shimano)
일본
통합레버 등장. 브레이크 레버와 변속기를 하나의 레버 속에 박아놓은 물건이다. 경주에서 일분 일초가 아까운 판에 변속하기 위해 포지션을 흐뜨려야 하는 다운튜브 쉬프터에 비해 매우 편리하고 유용하다. 기존의 다운튜브 쉬프터(더듬이)이 비해 무게가 조금 더 나간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STI 레버는 프로 경기를 매우 다이나믹하게 만들었고, 캄파놀로의 전성기를 끝내기도 했다.
1992
변속기
에르고 파워
(Ergo Power)
캄파놀로
(Campagnolo)
이탈리아
STI와 유사한 듀얼 컨트롤 레버. 실제 개발은 유사한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하나 완성과 출시가 늦었다고 한다. STI 레버와는 다르게 브레이크레버로 변속하지 않고 브레이크 뒷쪽의 작은레버와 후드 측면의 레버 두 가지로 조정한다. 쉬프트업할 때 한번에 코그를 5단까지 변속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선수들이 스프린팅 포지션에 들어갈 때 유용했다고 한다.
1992
변속기

(Zap)
마빅
(Mavic)
프랑스
최초의 전동 변속기 프로토타입. 크리스 보드만(Chris Boardman)이 이 변속기가 장착된 자전거를 1997년 TDF에 끌고 나오기도 했으나, 기계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실패한 작품이었다.
1997
브레이크
헤이스 매그
(Hayes Mag)
헤이스
(Hayes)
미국
최초의 자전거용 디스크 브레이크. 유압식 브레이크였다.
1999
프레임
TCR
자이언트
(Giant)
대만
슬로핑 탑튜브 등장. 이전까지의 로드자전거는 슬로핑이 없는 수평 탑튜브로 이루어진 완전한 다이아몬드형의 자전거가 대부분이었는데, 탑튜브에 슬로핑을 주는 것은 자이언트사에게는 로터스 108 이후 자전거 지오메트리에 민감해져 있는 UCI에게 도전하는 일종의 모험이었다. 슬로핑이 있기는 해도 어쨌든 근본적으로는 다이아몬드형이었기에 UCI는 자이언트의 새 자전거가 투르에 나오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는 대성공. 자이언트사의 스폰을 받는 팀 ONCE는 더 가벼워진 무게와 컴팩트한 지오메트리로 이득을 봤고, 자이언트는 세분화되어있는 지오메트리 표를 크게 간략화해 공정을 줄이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2009
변속기
듀라에이스 Di2
(Dura-Ace Di2)
시마노
(Shimano)
일본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전동 변속기.
2014
트레이닝 시뮬레이션
즈위프트
(Zwift)
에릭 민
(Eric Min),
존 메이필드
(Jon Mayfield)
미국
베타테스트 시작. 이후 2015년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인도어 온라인 자전거 트레이닝 시뮬레이션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사이클링의 e스포츠화에 크게 기여했다.
2015
변속기
레드 이탭
(Red eTap))
스램
(Sram)
미국
최초의 무선 전동 변속기.
2016
도핑

펨케 반 덴 드리셰
(Femken Van den Driessche)
벨기에
상업스포츠 최초의 기계 도핑(Mechanical doping) 사례 적발. 조사 결과 프레임 튜브 안쪽에 전기 모터를 숨기고 2016 UCI 사이클로크로스 챔피언십에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1] 독일어로는 달리는 기계라는 뜻의 Laufmaschine[2] 영국에서는 본쉐이커(Boneshaker)라고 불렀다. 프레임과 휠이 철제였기 때문에 당시 자갈길 수준의 저급한 포장도로를 달리면 뼈를 뒤흔드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3] 정확히는 1855년부터 60년까지 아들인 에르네스 미쇼(Ernest Michaux)와 함께 지속적으로 개량했다고 한다.[4] 프랑스 Parisian bicycle의 기계공.[5] High Wheel. 페니파딩(Penny-farthing), 오디너리(Ordinary) 등으로 불렸다.[6] 천왕성. 이후 개량을 거듭하여 속도와 안정성을 향상시켜 일반적인 자전거라는 뜻의 오디너리(Ordinary)라 불리게 되었다.[7] 제임스 스털리(James Starley)의 회사 직원이었다.[8] 제임스 스탈리의 조카. 당시 재봉틀 공장을 운영했었는데. 동업자인 조슈아 터너(Joshiah Turner)가 끌고온 벨로시페드를 보고 힐먼과 같이 아리엘을 만들게 되었다.[9] Raleigh Bicycle Company[10] 당시 예조시랑[11] 더즐리-페데르센 자전거사(Dursley-Pedersen Cycle Co.)[12] Arnold, Schwinn & Company[13] 1899 ICA Track Cycling World Championships[14] 르 뀌프(l'Equipe)의 전신. 스포츠 신문.[15] Union Cycliste Internationale, 영어는 International Cycling Union[16] 이탈리아 베리살리에르(Bersaglier, 경보병)[17] 특허등록은 1930년[18] 캄파놀로의 역사와 타임라인은 각각 Campy Only! HistoryCampy Only! Time Line을 참조할 것.[19] 오스카 에그(Oscar Egg)가 소유하고 있던 회사.[20] 자세한 사항은 요기 참조[21] 일간지 인포르마시오네스(Informaciones)의 편집장.[22] 초기에는 이름이 없었다가 10년 후 정식으로 TDF에 승인을 받고 경기에 본격 적용했다.[23] TDF 운영위원회의 안이한 운영방식에 의해 프랑스는 드레일러의 기술개발이 멈춰진 상태였다. 이 때 R&D에 치중한 캄파놀로는 70년대까지 짧지만 강렬한 전성기를 구가했다.[24] Bicycle Motocorss. 초창기에는 패달크로스라 불리었다가 이후 BMX로 고정되었다. 어원은 아마 오토바이로 달리는 모터크로스인 듯.[25] 기존의 다이아몬드 프레임에서 벗어나 엑셀시어의 프레임을 이어받았고, 안장은 길게 늘여 드랍아웃에서 연결한 수직의 보강대 겸 등받이를 설치, 후에 포크에 스프링커 쇽업쇼바를 달고, 핸들바는 길게 뽑아 마치 초퍼 바이커들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가지고 있어 편안한 라이딩이 가능하도록 했다.[26] 1912년 마에다 공업(前田工業, Maeda Iron Works Company)으로 자전거의 프리휠과 스프라켓 제조사로 설립. 이후 현재까지 기타 자전거 부품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상세한 역사[27] MTB에 대한 보다 상세한 역사는 Museum of Mountain Bike Art & Technology 참조.[28] 덜커덩거리는 낡은 기계라는 뜻. 엑셀시어 프레임 + 벌룬 타이어 + 코스터 브레이크를 장착했다. 애초에 다른 용도로 나온 프레임에 각종 부품들을 막 달아 마개조에 가깝게 커스터마이징된 관계로 생김새 자체가 투박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게다가 경기라도 한번 치른다면...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9] 당시 MTB에서 사용하던 코스터 브레이크에 들어있는 오일이 경기 끝내고 나면 다 타버려서 오일을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는 의미의 우스갯소리가 경기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변화된 것.[30] 하프파이프만 있던 BMX 장르에 프리스타일을 개발해 추가한 사람. 그러다 보니 프리스타일 전용 자전거가 필요해서 직접 개발했다.[31] 처음에는 주로 쿼터파이프와 평지에서 하는 경기를 관장했다. 나중에는 다양한 경사면, 파이프, 블럭 등이 경기용 기물로 추가된다.[32] Unicycling Convention and Championships, 외발자전거 컨벤션 및 선수권 대회[33] 제툴리오 캄파놀로는 1983년 2월 3일 사망[34] Shimano Total Integration. 통상적으로 영어권에서는 듀얼컨트롤 레버(Dual Control Lever)라고 했지만 30년동안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았기에 쉬프터(Shifter)로만으로도 지칭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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