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보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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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제2군단 제7보병사단 예하 '''제3보병여단'''. 별칭은 '''노연승부대'''.[1]
1946년 2월 26일 전북 익산에서 창설되었으며, 1950년 1월 25일 경기도 동북부를 담당한 (구)수도사단(현: 7사단) 예비대로 예속된 뒤 하필이면 전쟁이 벌어진 6월 25일 (구)수도경비사령부(현: 수도기계화보병사단)로 예속되어 떠나버렸고, 대타로 올 25연대까지 오지 못하는 바람에 (구)수도사단은 가뜩이나 극심한 전력의 격차가 더 벌어져 비참하게 밀려나고 말았다. 게다가 뒤늦게나마 이를 지원하겠다고 포천 전선까지 올라갔지만 이 역시 잠깐의 시간벌이만 된 채 의정부까지 밀려나서는 축차투입된 다른 부대들과 마찬가지로 유린당하고 말았다.
그 후 한강 방어선에선 혼성 제2사단에 예속돼 활동하다 낙동강까지 밀려나 영천 전투가 벌어지던 8월 20일, 재창설된 7사단에 다시 예속된 뒤 전쟁 중후반부터는 사단의 주력으로 취급되어 백석산 전투에서는 8연대를 보조하는 조공을 맡다 8연대 2대대를 전멸시키는 사상사고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는 강원도 화천군 후방을 담당하고 있다.
참고로 국방개혁 2.0 기본계획에 의거, 상비사단과 지역방위사단이 개편돼 3보병연대 역시 2020년부로 3보병여단으로 격상되었다.
2. 근무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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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 3연대 2대대 7중대원들이 혹한기 훈련 중 수리봉을 넘는 장면[2]
'''짐승 같은 체력을 요구하는 곳.''' 짐승이란 별명도 자조 겸 직설적으로 연승에서 한글자만 바꾼 것으로, GOP에 일절 투입되지 않고[3] 후방에서 온갖 훈련과 교육장 관리만 실컷 하며 짐승같이 구르기에 붙은 별명이다.[4]
즉, 자대 전입부터 전역할 때까지 자잘한 것을 싹 다 합쳐 30여개 이상의 훈련을 뛰며 같은 군단, 같은 예비대인 이기자 부대와도 작계지가 겹쳐 자주 마주친다. 이 여단 명물(?)인 연승로는 부대의 성격을 대변하듯 고개가 무한에 가깝게 연속되는 것으로 유명하다.[6]
3. 예하부대
3.1. 여단 직할대
3.2. 예하 대대
3.2.1. 군수지원대대 (구: 연대 수송대)
3.2.2. 제1대대 진격
2대대와 함께 여단의 훈련을 분담하는데, 2010년에 제2신병교육대대로 전환되어 2012년에야 야전 부대로 환원되었는데,[7] 당시 1대대는 갑작스럽게 교육대대로 전환됐을 당시 실거리사격장[8] 외엔 이렇다 할 교육 시설이 없다시피 했으므로 내부 부지를 변경해 실시하거나 일부 특수 보직들은 1대대 밖에 교육장을 조성해 그곳에서 실습을 하기도 했었다.
참고로 대대 밖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보면 (현재는 철거돼 터만 남은) 민통선 검문소 및 5여단 본부(덕비끼네)[9] 로 통하는 길이 있다. 또한 사방거리와 가까워서 주말에 외출/외박하기 좋은 곳이기도 했다. 물론 군 스마트폰 허용 이후로는 PC방이나 주점에서 놀고 싶은 갈망이 줄어들어서 장점이 퇴색되었다.
3.2.3. 제2대대 사자 > 이규학
사단 유격장을 관리하는데, 3여단 내에서도 훈련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상술한 1대대가 제2신병교육대대로 전환됐을 당시 3연대 내에서 유일한 야전 보병 대대였기에 연대에 부과된 훈련을 '''모조리 몰아넣었는데''', 아침 뜀걸음은 기본이고, 심지어 오후 4~5시마다 '사자는 달린다, 사자는 고지를 넘는다'라는 구호와 함께 산악행군까지 실시했는데 장병들은 죽을 맛. 그 덕분인지 사단 내에서 가장 전투교육이 잘 된 부대로 선정되는 영광(?)도 맛보기도 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2012년에 1대대가 야전으로 돌아와 연대에 부과된 훈련이 분산되리라 여겼는데 결국 2대대의 숙련도에 비할 바가 못 된다며 그 후로도 수년간 2대대에 훈련을 몰아줬고, 그 덕분인지 3연대는 2013년 '''군단 선봉연대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다. 하여간 이에 대한 보상인지 2016년 3월 한국 전쟁 말기 425고지-406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6중대장의 이름인 이규학 대대로 명명식을 가지게 되었다.
3.2.4. 제3대대 제7보병사단 신병교육대
이 대대 역시 90년대 후반~ 00년대 초반까지 상술한 1,2 대대들과 같은 전투대대였다. 입지는 2대대와 좁은 길을 하나두고 완전히 붙어 있는 두 대대였는데, 2대대 쪽은 고지대 쪽에 더 가까이 붙어 있고, 3대대는 강의 지류에 가깝게 평탄한 쪽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2003~04년대 시점에 7사단 신병교육대로 전환작업이 진행돼 05년대엔 완전히 신교대화 되었다.[10]
전환 이후 및 신교대에 관해선 제7보병사단/신병교육대 참고.
4. 출신인물
4.1. 여단장
4.2. 장교/부사관
- 윤석찬 3사 28기
4.3. 병
3연대 정훈병 출신이다.
네이버 베스트도전 마지막 휴가의 작가, 3연대 1대대 4중대에서 복무함.
5. 기타
5.1. 여단가
6. 사건사고
7. 여담
- 2009년 영화 고지전의 악어중대가 3연대 1중대라는 설정이 있지만 현존하지 않는 10사단 예속이다. 자세한 건 항목 참고.
[1] 6.25전쟁 전 빨치산 토벌 때 연전연승해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하사받은 명칭이다.[2] 다음 블로그에 게시되었을 땐 2대대 7중대로 기제되었으나, 국방일보 싸이트에선 2대대원으로 뭉뚱그려 칭했다.[3] 원래는 이 연대도 맡았었는데, 78년 철책을 넘어 남하한 무장공비 몇몇에게 농락당한 이후 제외되었다고 한다. #[4] 사실 이것의 유래는 후술하듯 2대대에서 유래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5] 빠른 걸음.[6] 부촌리와 신읍리를 연결하는 군사도로로, 화천 읍내까지 우회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 때문에 훈련 때 툭하면 여길 지난다. 비록 경사가 엄청나게 가파르진 않으나, 오르막과 약간의 내리막길이 계속 반복되는 구조라 이 고개가 끝일 거라는 기대를 품지만 그게 매번 깨어지니 자연스례 힘이 빠져 기진맥진하기도 한다. 또한 신읍리 방면에 급경사 구간이 있는데, 야간에 이를 속보[5] 로 막 내려가다간 헛디딜 정도라 조심성이 요구된다. 하여간 병사들은 행군할 때 연승로를 부촌리에서 타면 행군 지옥이 펼쳐졌다고 낙담하고, 신읍리에서 타면 처음에만 고생하지 그 후에는 무난하다고 좋아하는 반응이었다.[7] 이 때 예하 대대 전부가 각자 교육 시설을 하나 이상 담당하게 되어 당시 3연대는 교육훈련연대로도 불리었다.[8] 때문에 야간에도 사격을 실시해 대대 전체에 울리기도 하는데, 익숙해지면 하던일 하거나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된다.[9] 90년대까진 4대대 막사로 쓰이다 해체 후 본부가 여기로 옮겨온 것.[10] 입지가 평탄하고 병영 위치가 관리하기도 용이한 구조라서 교육훈련 및 체육활동을 하기가 용이했고, 그 몇 년 전부터 부임했던 두 대대장이 부대 시설 관리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써서 외부인이 방문할 때 사단에서 선호하는 대대이기도 했다. 그 점이 반영되어서 신교대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