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모건
1. 소개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창단 초창기를 이끌었던 선수이자 1970년대 최강의 타선이자 메이저리그 역대 최강의 타선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신시내티 레즈의 '''빅 레드 머신'''의 중심 타자로 활약한 명2루수. 지금까지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2루수 중 한명으로 평가되는 레전드. '''라이브볼 시대 이래 최고의 2루수'''이다.[2]
키가 168cm 밖에 안되는 작은 체구였지만 MLB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야구 센스와 재능으로 팀에 엄청난 도움을 가져다 주었고 말년에는 야구 해설로 활약하며 최고의 야구 해설자로 불렸다.
통산 기록은 타율 0.271, 출루율 0.392, 장타율 0.427, 2517안타, 268홈런, 1133타점
2. 휴스턴 애스트로스 : 최고의 선두타자
아직 인종차별이 일상적이었던 시기, 모건은 흑인이었고 거기다가 키까지 작았다. 뛰어난 야구 실력과 센스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건은 1962년 11월 1일에 신생구단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간신히 계약을 맺고 선수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계속 공부를 하길 원했는데 나중에 대학교에 진학한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아냈다고 한다.
인종차별을 피부로 직접 겪었지만 모건은 이를 실력으로 극복했고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1965년부터 애스트로스의 타선을 이끌어나갔다.[3] 모건은 드넓은 외야를 지닌 애스트로돔에 스스로를 적응시켜 장타보다는 단타와 2루타 위주, 그리고 넓은 외야를 활용한 스프레이히팅을 발전시켰고 출루시에는 빠른 발을 활용하여 많은 도루를 했다. [4]
그러나 1971년 시즌이 끝난 후, 모건은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는데, 표면적인 이유는 레즈의 거포 리 메이의 영입때문이었지만 사실은 해리 워커 감독과 모건을 비롯한 몇몇 유색인종 선수들의 갈등 때문이었다.[5]
그리고 이 트레이드는 애스트로스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중 하나로 뽑힌다.
3. 신시내티 레즈 : 빅 레드 머신의 중심타자
이 당시, 신시내티 레즈의 감독이었던 스파키 앤더슨은 모건의 능력을 알아보고 모건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6] 또한, 드넓은 애스트로돔을 벗어난 모건은 그간의 타격습관을 버리고 당겨치기와 어퍼스윙을 익혀 장타력도 끌어올린다.
이 당시, 신시내티 레즈에는 자니 벤치, 피트 로즈, 토니 페레즈, 데이브 콘셉시온, 그리고 모건과 함께 온 세자르 헤로니모등이 타선을 구성했는데 이 타선은 빅 레드 머신으로 불리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의 타선으로 불리게 된다.[7]
모건은 빅 레드 머신에서 3번을 치며 활약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모건이 팀에 가장 큰 활약을 했던 분야는 자신의 천부적인 센스를 활용해 상대 투수가 무엇을 던지는지, 언제 상대 팀이 투수를 교체하는지, 언제 상대 팀이 도루를 시도하는지등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 팀이 적시에 대비를 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모건은 5번의 골드 글러브와 2번의 내셔널리그 MVP수상을 하며 최전성기를 보낸다.
4. 저니맨
1976년의 월드 시리즈 우승과 1977년의 골드 글러브 수상이후, 모건의 기량은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했고 1979년을 끝으로 레즈와도 헤어진다.
이 후, 1984년에 은퇴하기까지 모건은 5년간 4개의 팀에서 뛰게 되는데, 1980년에는 친정 휴스턴 애스트로스, 1981년과 1982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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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에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뛰었는데, 이 때 필리스에는 모건과 함께 레즈에서 활약했던 피트 로즈, 토니 페레즈등이 있어서 사람들은 필리스의 타선을 빅 그레이 머신이라고 불렀다.
결국, 1984년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뛴 것을 마지막으로 모건은 22년간의 메이저리거 생활을 끝마친다.
5.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 JAWS - Second Base (4th)
6. 이후의 행보
이 후, 모건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학교를 졸업한 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해설자로 제 2의 인생을 살게 되는데, 풍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천부적인 직관력을 통해 최고의 인기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한 독점 전국중계인 ESPN의 선데이 나잇 베이스볼에서 20년간(1990~2010) 캐스터인 존 밀러와 콤비를 이루면서 방송을 진행한 것이 유명하다.
또한, 은퇴 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첫 해에 81.8%의 투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명예의 전당 부의장을 맡고 있으며, 2017년 11월 경기력 향상 약물(PED) 복용자의 쿠퍼스 타운 입성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9]
2020년 10월 11일, 지병인 말초신경병증으로 인해 향년 7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10]
7. 조 모건과 빌 제임스
조 모건은 한 시대를 풍미한 강타선의 중심으로 활약한 선수로 명성이 드높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이버메트리션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플레이어의 모습으로 뽑히는 선수이기도 하다. 3할 타율을 기록한 적은 단 2번에 그쳤지만 엄청난 수의 볼넷을 얻어내는 출루머신이었고, 레즈 시절에는 장타력까지 보유한 이상적인 OPS형 타자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테드 윌리엄스처럼 레벨 스윙보다는 어퍼 스윙을 통해 공을 높이 띄우는 타법을 선호했는데, 이는 2010년대 후반의 뜬공 혁명을 통해 효율성이 증명되었다.
하지만 정작 모건 자신은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당연히 세이버메트리션들의 시초이자 거두인 빌 제임스와의 관계는 그야말로 최악으로 모건과 제임스는 서로 공개적으로 디스하는 관계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빌 제임스는 역대 최고의 2루수로 조 모건을 뽑았다.
영화 머니볼의 마지막 부분에 시즌 막판 20연승 행진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에서 또 한번 실패를 겪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빌리 빈의 한계를 지적한 "아무도 야구라는 스포츠의 본질은 바꾸지 못한다"(Nobody reinvents this game)는 논평의 목소리의 주인공이 조 모건이다.
[1] 이때의 애스트로스는 휴스턴 Colt.45's라는 팀명으로 메이저리그에 참가했다.[2] 일반적인 총평은 데드볼 시대는 로저스 혼스비 - 에디 콜린스 - 나폴레잉 라조이의 삼대장 순, 라이브볼 시대부터는 조 모건 - 찰리 게링거 투탑에 비지오, 알로마, 샌버그, 휘태거, 그리히를 아래 그룹으로 놓는다. 여기에 예외로 등장하는 게 바로 전 구단 영구결번인 재키 로빈슨이다. 야구 외적인 요인(인종 문제)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활동 기간이 길지 못해서 통산 성적만을 기준으로 하는 순위에서는 조금 밀려나고, 외적 요인을 고려하는 순위에서는 상당히 올라간다.[3] 이 당시 애스트로스의 홈구장 애스트로돔은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불릴만큼의 찬사를 받았지만 드넓은 외야와 파울지역으로 인해 타자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구장이었다. MLB의 대표적인 친투수적 구장인 다저스타디움과 다름없을 정도.[4] 모건의 도루는 좌투수와 우투수상대로 성공률이 별 차이 없었으며 오히려 좌투수를 상대로 더 높은 성공률을 기록했다.[5] 이 때 모건과 함께 트레이드된 선수중에는 빅 레드 머신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세자르 헤로니모도 있었다.[6] 휴스턴에서의 마지막 해에 첫 인연이 있었는데, 당시 내야 플라이를 친 뒤 1루까지 천천히 걸어간 조 모건을 본 앤더슨 감독이 '''"아까 자네는 야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플레이를 한 것일세."''' 라는 일침을 직접 날렸고 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미 진작부터 스파키 앤더슨 감독이 있는 신시내티로 간 것은 조 모건에게 있어서 최고의 전환점이었다.[7] 나중에는 630개의 홈런을 친 타자의 아버지가 가세한다.[8] 1982년에 선수로서 마지막 기량을 불태우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를 차지한다. 물론 모건은 젊은 시절에 더 뛰어난 타자였고 75년과 76년에 리그 OPS 1위, 76년에는 리그 장타율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 시절에는 실버 슬러거가 없었다.''' [9]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인 MLB.com에 따르면 모건은 명예의 전당 투표권을 보유한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 기자 전원에게 직접 ‘PED 복용자들에게 투표권을 행사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모건은 “약물 검사에서 적발됐거나 스테로이드 복용을 시인한 선수 그리고 ‘미첼 리포트’에 이름이 포함된 선수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해선 안 된다”며 “비록 모든 명예의 전당 입성자들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많은 헌액자가 이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10] 모건 외에도 2020년 한해 동안 메이저리그 역사를 빛낸 대스타들이 여럿 타계했다. 구체적으로는 알 칼라인, 톰 시버, 루 브록, 밥 깁슨, 화이티 포드 등이다. 이들 모두 소속 구단의 영구결번자이자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며, 화이티 포드를 제외하면 모두 첫 투표를 통해 헌액된 기록을 갖고 있다.